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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보에서의 축지법』에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사건보다 문장이었다. 처음에는 독특한 표현과 낯선 문체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야기를 따라가기보다 문장 하나하나에 멈춰 서게 되었다.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지만, 그만큼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었다. 특히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화자가 네발로 기는 행위를 '굴종'이라고 말하는 대목이었다. 보통 굴종은 누군가에게 강요당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은 그보다 훨씬 미묘한 감정을 보여준다. 말을 잘 듣고, 참고, 순응하는 것 역시 이미 굴종일 수 있다는 문장은 꽤 오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굴종이 연극이라는 공간 안에서는 오히려 해방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가짜로 혼나고, 가짜로 용서받고, 다시 가짜로 용서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현실에서 끝내 해소되지 못했던 감정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모습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다. 가장 인위적인 공간에서 가장 솔직한 감정이 드러난다는 역설이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든다고 느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부분은 '우익적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대목이다. 아름다움을 생명력이나 자연스러움이 아니라, 박제된 이상을 향한 욕망으로 설명하는 시선은 낯설면서도 흥미로웠다. 우리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기준조차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 믿지만, 사실은 오랫동안 사회가 만들어온 이미지와 규범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 문장을 읽고 나니 평소 아무렇지 않게 소비했던 수많은 이미지들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이 책은 친절하게 의미를 설명해 주는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독자가 빈칸을 메우고 스스로 해석하기를 요구한다. 그래서 읽는 동안은 어렵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책을 덮은 뒤에는 이상하게 문장들이 계속 떠오른다. 어떤 소설은 재미로 기억되고, 어떤 소설은 이야기로 기억된다. 하지만 『림보에서의 축지법』은 문장으로 기억되는 소설이었다. 당장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 다시 펼치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은 작품. 쉽게 소비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래 곱씹게 되는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천천히 읽어볼 만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