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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쓰던 방이 비면 쓸쓸하겠지. 좋은 일이 있어서 집을 떠난 거라면 덜 하겠지만. 그 방을 쓰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면 슬프겠다. 주인이 돌아오지 않는 방을 그대로 두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사람은 없지만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 방을 썼을 테니. 그대로 두면 언젠가 방주인이 돌아올 것 같기도 할 거다. 그저 기억하는 것과 무언가를 남겨두고 기억하는 것에서 어떤 게 더 슬플까. 이런 생각을 하다니.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게 더 마음 아프겠지. 그렇다고 세상을 떠난 사람 물건을 빨리 정리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남은 사람한테는 슬퍼할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런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죽은 사람 물건을 정리할 수 있다. 슬픔은 평생 가겠지만 산 사람은 살아간다. 어쩐지 이 사실도 무척 슬플 것 같다. 죽는 사람은 더 살지 못해서 안타까울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 더 살지 못한 안타까움도 산 사람이 더 크게 느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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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는 2013년 7월 30일, 사십 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함께 하였던 아내 베벌리 밴크로프트 버거를 떠나 보낸다. 베벌리 버거의 나이 일흔 두 살이었고, 존 버거는 여든 일곱 살이었을 때였다. 그리고 그는 그 해 겨울 열화당 쪽에 자신의 아내를 회고하는 글과 함께 그림을 보낸다. 아마도 존 버거의 에이전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생각되는 아내 베벌리 버거를 추모하면서 2014년 열화당은 그 글과 그림을 묶어 책으로 펴냈다.
나와 아내는 1991년에 만났고, 1999년에 결혼하였다. 우리는 그때 이미 반쯤 동거 생활을 하고 있었고, 결혼이라는 제도에는 두 사람 모두 부정적이었다. 결혼을 위해서는 변명 같은 것이 필요했다. 부모님에게 드릴 수 있는 효도 차원의 어떤 선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자, 어차피 함께 살 거라면 20세기를 넘기지 말자, 라는 두 가지 엉뚱한 변명의 결과물이우리의 결혼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2039년까지 함께 하면 우리도 사십 년의 세월을 함께 보낸 부부가 된다. 나는 일흔 두 살이, 아내는 일흔 살이 될 것이다.
존 버거, 이브 버거 John Berger, Yves Berger / 김현우 역 / 아내의 빈 방 : 죽음 후에 / 열화당 / 39쪽 / 2014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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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벼르던 존 버거의 <아내의 빈방>을 읽었습니다. 스페인 여행기를 쓸 무렵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으로 처음 만난 존 버거는 <본다는 것의 의미>, <어떤 그림>, <풍경들>, <초상들> 등을 읽으면서 그의 글 솜씨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아내의 빈방>은 지난해 아내가 아팠을 때 어디선가 보고 읽어보겠다고 생각했던 책입니다. 읽을 책을 고르는 순서에서 밀리는 바람에 지금에서야 읽을 기회를 만든 것인데, 막상 읽어본 뒤에는 진즉 읽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의 빈방>은 사십년을 함께 한 아내 베벌리 벤크로프트 버거가 세상을 떠난 몇 달 뒤에 존 버거와 아들 이브 버거가 함께 그리고 쓴 책입니다. 불과 40쪽에 불과한 얇은 책이지만 아내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책은 아들 이브 버거가 첫 번째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어머니에게 전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브는 어머니가 계신 “그곳은 삶이 절대 끝나지 않는 곳일 거예요. 우리 사랑처럼요, 엄마.”라고 적었습니다. 이어서 존 버거의 글이 이어집니다. 아내가 죽은 4주 후 꿈에서 아내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이 없어진 자리에 당신의 존재감이 들어왔다고 할까?’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 담긴 내용에 대하여 “우리는 당신에게 바칠 비가(悲歌)를 쓰고 있는 거요.(10쪽”라고 적었습니다. 또한 아내에 관하여 독자들에게 전하는 글이라고도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아내에게 쓴 글을 결혼 전 하계봉사활동에 갔을 때와 혼자서 미국에 백일 동안 연수를 받으러갔을 때 몇 통의 편지를 쓴 것 말고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해 말에 출간한 <양기화의 BOOK소리-유럽여행>이 아내에게 바치는 첫 번째 책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인용한 팔레스타인의 국민작가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글귀를 읽다가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 그리고 당신이 내게 말했지, 내가 당신보다 먼저 죽으면, 판에 박힌 말과 죽은 날짜 같은 것으로 나를 가두지 말고, 내가 잠든 곳의 흙을 한 줌 떠주세요. 그럼 아마도 한 줄기 풀잎이 당신에세 죽음은 무엇인가를 또 하나 심는 것에 불과함을 알려 줄테니 (…)(12쪽)”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그 세월 동안 내가 쓴 거의 모든 글들을 당신에게 가장 먼저 보여 줬소. 당신은 즉시 반응을 보이며 이런저런 제안을 했고, 타자기로 옮겨 친 다음, 그 글들을 외부로 보내고, 번역이나 계약 같은 것을 진행했지.(17쪽)” 저 역시 제가 쓴 모든 글을 아내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내는 베벌리처럼 이런저런 제안을 하기 보다는 오류를 지적하는 정도에 머물렀습니다. 그래도 책을 만드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침대에 누운 당신이 온몸을 꿰뚫는 것 같은 고통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할 때, 그통을 가라앉히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모르핀이나 코르티손 주사를 한 대 더 놓아주거나 몸을 받치는 베개들을 다시 맞추어 주는 일밖에 없었을 때, (…) 당신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다웠소. 그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은 당신의 용기에서 나오는 것이었지. (…) 당신의 용기는 부질없이 두려움을 극복하려 애쓰기 보다는, 그 두려움을 손님처럼 맞이해 주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당신의 용기가 마지막까지 당신과 함께한 거요. 그리고 시간을 물리친 그 용기가 우리와 함께 남아, 침묵을 채우고 있는거요.(23-24쪽)”하는 대목은 새겨두고 싶었습니다. 그런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말입니다. 존 버거는 아내가 곁을 떠났지만 여전히 함께 한다는 의미의 글도 남겼습니다. “우리는 계속 뒤돌아보고 있소. 그리고 당신이 그런 우리와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당신은 시간을 벗어난 곳에, 되돌아보거나 내다보는 일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 있으니 말이 안 되겠지만, 그래도 당신은 우리와 함께 있는거요.(31쪽)” 이야기의 마지막은 다시 이브 버거가 마무리했습니다. “어디에 계세요. 엄마? 죽은 이들이 진짜로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고 누군가 말하더군요. 그런데 그건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그런 곳을 말하지 않잖아요. 우리는 어디에도 없는 곳이 뭔지 모르니까요.(32쪽)” 그리고 “엄마가 어디에 계신지 모르기 때문에, 엄마의 몸이 누워 있는 곳으로 가요. 잠시 후면 우리가 고른 돌멩이가 엄마 무덤 위에 놓이겠죠. 흙과 풀 사이에 놓을 텐데, 그러면 아름다울 거라고 믿고, 또 그러기를 바라요. (3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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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의 노년을 생각해 본다. 나는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남편과 아이들과 오래오래 함께 살 수 있을까? 상처를 가득 안은 채 혼자 남겨지거나 혼자 먼저 떠나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들.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떠남과 헤어짐에 대한 쓸데없는 생각들이 종종 나를 지배할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존 버거가 떠난 아내를 생각하며 쓴 글을 읽고 있자니 먼저 떠나가는 것도, 홀로 남겨진 것도 그렇게 슬프고 절망적인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끼리 오래 함께 하는 것이 좋다. 내 곁에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의 차이를 알기 때문에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안정감과 힘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존 버거와 아들에게 부인이자 엄마인 존재가 더 오래도록 머무를 수 있었더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녀는 그들의 곁을 떠났다. 그리고 남겨진 남편과 아들이 그녀를 추억하면서 사진과 글을 남겼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마음을 무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담담하고 읊조리듯이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서인지 극적이진 않아도 마음에 와 닿았다. 오로지 떠난 사람을 위해, 그리고 함께 얽혀있는 추억과 자신을 연결시키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비록 떠난 사람이지만 추억이 깃든 물건과 장소, 기억까지 함께한다는 생각이 들어 절망스럽거나 쓸쓸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떠난 뒤에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하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는 계속 뒤돌아보고 있소. 그리고 당신이 그런 우리와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당신은 시간을 벗어난 곳에, 되돌아보거나 내다보는 일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 있으니 말이 안 되겠지만, 그래도 당신은 우리와 함께 있는 거요. (31쪽)
나는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을 가지고 있을까? 문득 아내와 엄마를 추억하는 두 남자의 마음이 절절하고 찡하게 느껴지면서도 나는 그런 사랑을 하고 있는지 멈칫해졌다.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잘 모르는 어리석음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나라서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하지 않고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순간을 살아가면서,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으니 하자, 하자 하면서도 나중으로 미루는 경우가 태반이다. 사람을, 사랑을 미룬다고 나중이 있을까? 종종 남편과 별 거 아닌 일로 말다툼을 하고 삐쳐 있을 때마다 나의 어리석음을 한탄해 보지만 이런 글을 만나면 부끄러워진다.
떠남은 순서가 없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살아가고 있다는 누군가의 말에 어느 정도 동조하면서도 그렇기에 더 삶을 사랑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늘 당연하단 듯이 내 곁에 존재하는 것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음에도 감사한 마음이 부족한 채 더 큰 것을 바라며 살진 않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로 인해 현재 내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해 하는 것이 어쩌면 조금은 진부할 수도 있으나 내 삶은 진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 위해선 오늘도 열심히 사랑하며 사는 수밖에 없으리라. 그것이 내게 주어진 삶의 숙제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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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자신이 발 디디고 있는 곳만이 수면아래로 잠겨 버리는 순간입니다. 모든 것은 수면 아래 침묵으로 고요하게 덮혀버리지요. 간간이 내쉬는 얕은 숨으로 버티며 살아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떠나버린 이를 사무치도록 그리워한 적이 있을 겁니다. 존 버거는 아내를 먼저 보내면서, 고인을 기억속에서 되살리며 추억하고 부재를 극복해나가기 위해 <아내의 빈방>이라는 작품을 남긴 듯합니다. 다만 추모의 대상 자체가 글을 읽는 독자와는 거리감이 너무나 크기 때문인지, 글 자체보다는 누군가를 이토록 정중하고 아름답게 추모할 수도 있다는 부분에서 감탄이 나왔습니다. 존 버거의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 표현력, 문장력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소장욕까지는 이끌어내지 못하는 작품이기는 합니다만, 어차피 전작주의적 성향을 지녔다고 한다면 기필코 찾아 읽게 되겠지요. 사랑했던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고 타인과의 동질감을 통해 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메우고 싶다고 한다면 이 작품이 도움이 될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살포시 지나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 day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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