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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은 움직이는 이미지를 통해 감정을 전하고, 소설은 문장을 통해 보이지 않는 장면을 만든다. 오랫동안 화면을 설계해 온 에릭 오는 첫 소설집에서도 여전히 이미지를 믿는다. 인간의 등에 붙은 등껍질, 개량한복을 입고 위스키를 건네는 천사, 철학자의 장례식장에서 배변을 참는 몰티즈, 미래를 예측하는 AI 플랫폼. 현실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 없는 풍경들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일상 속에 놓인다. 그러나 이 기이한 상상력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통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삶을 조금 더 선명하게 비추는 빛이 된다. 화면을 다루던 예술가가 문장으로 옮겨 온 것은 인간을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장면들이다. 『천사의 위스키』 속 세계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위에 서 있다. 불가능해 보이는 존재들이 등장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아무렇지 않게 펼쳐지지만, 그 안에서 다뤄지는 것은 언제나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의 문제다. 상실 이후의 삶, 선택하지 못한 미래에 대한 후회, 관계 속에서 쌓여 온 죄책감, 스스로에게조차 숨기고 싶었던 감정들. 인물들은 모두 서로 다른 사연을 품고 있지만 묘하게 닮아 있다. 누구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고, 누구도 완전히 행복하지 않다. 에릭 오는 비현실적인 장치를 통해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인간의 얼굴을 비춘다.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대부분 삶의 속도에서 조금 벗어난 사람들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 멈추게 된 사람들,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었으나 사실은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던 사람들. 우리는 멈춤을 실패와 같은 말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속도를 잃으면 뒤처졌다고 여기고, 제자리에 머무르면 잘못 살아온 시간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에릭 오는 멈춤을 결핍이나 낙오의 상태로 바라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실패한 인물이나 연민의 대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멈춤은 움직임의 부재가 아니라, 더 이상 자신을 외면할 수 없는 순간이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다시 읽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이 불안을 마주할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자각한다고 보았다. 평소에는 너무 당연해서 보이지 않던 삶이 불안을 통해 낯설어지고, 그 낯섦 속에서 사람은 스스로를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 소설집의 인물들이 겪는 시간도 그와 닮아 있다. 이들의 삶은 거대한 사건을 통해 변화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 작은 균열과 마주하며 걸음을 멈춘다. 평범한 일상 속에 갑자기 끼어든 낯선 존재, 설명할 수 없는 한 장면, 우연처럼 찾아온 만남은 인물들이 외면해 온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 소설집의 판타지는 현실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더 깊게 바라보기 위한 장치다. 이런 이야기를 무겁게 끌고 가지 않는다는 점도 이 작품의 매력이다. 천사는 종이컵에 위스키를 따른다. 철학자의 장례식장에서 가장 진실한 존재는 한 마리 몰티즈다. 운명을 예측하는 AI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침묵하고, 성공한 소설가는 자신이 누구를 바라보며 글을 써 왔는지를 뒤늦게 깨닫는다. 웃음이 먼저 피어오르는 장면도 있지만, 그 웃음은 삶의 허무를 비웃기보다 인간의 모순을 다정하게 끌어안는다. 현실은 때로 비현실보다 더 기이하고, 가장 엉뚱한 장면이 가장 깊은 진실을 드러내기도 한다는 사실을 에릭 오는 알고 있다. 한 인물이 무엇을 선택했는지보다, 그 선택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감정을 품었는지가 더 오래 남는 이유는 에릭 오의 애니메이션적 감각과 맞닿아 있다. 한 프레임 안에 빛과 움직임, 감정을 담아내듯 그는 짧은 문장과 낯선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포착한다. 사건보다 장면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가 만들어 낸 이미지는 읽는 순간보다 읽고 난 뒤 더 선명해진다. 익숙한 일상을 조금 비틀어 보여 준 풍경은 결국 낯선 세계가 아니라, 오래도록 외면해 온 우리의 얼굴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책 뒤표지에는 ‘무섭게 질주하는 세상과 속도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보다 이 작품을 더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장이 있을까.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시대에는 잠시 멈춰 선 사람을 쉽게 실패한 사람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사람은 달릴 때보다 멈춰 섰을 때 자기 삶을 더 오래 바라본다. 그래서 이 소설집은 다시 달리는 법을 알려 주지 않는다. 대신 잠시 멈춰 선 자리에도 삶은 여전히 흐르고 있으며, 그 시간 역시 한 사람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장면임을 보여준다. 후회와 상실, 사랑과 외로움은 사라져야 할 흔적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게 만드는 표정들이다.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때로는 멈춰 서서 자신이 무엇을 외면하며 걸어왔는지를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천사의 위스키』는 바로 그 시간을 건네는 소설집이다. 속도를 잃은 사람들에게 다시 속도를 강요하는 대신, 그 자리에 잠시 함께 머물며 인간이라는 존재를 천천히 들여다본다. 그 다정한 시선 덕분에, 이 기이한 이야기들은 오래도록 현실의 얼굴을 닮은 채 기억 속에 머문다. 낯선 존재와 기묘한 풍경이 펼쳐지는 세계 속에서도 결국 마주하게 되는 것은 가장 익숙한 인간의 얼굴이다. 『천사의 위스키』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우리가 너무 빠르게 지나쳐 온 감정과 순간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소설집이다. 에릭 오는 비현실적인 장치를 통해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인간의 얼굴을 비춘다. 낯선 세계를 바라보는 일은 결국 우리가 지나쳐 온 삶의 장면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현실적인 인간의 고민을 비현실적인 이미지로 풀어내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 삶의 속도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고 싶은 독자에게 이 작품은 특별한 장면들을 건넨다. 또한 짧은 이야기 속에 깊은 울림을 담은 소설과 애니메이션, 영화처럼 이미지로 기억되는 서사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에릭 오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만나는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천사의 위스키』는 에릭 오가 이미지의 예술을 문장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첫걸음이다. 앞으로 그가 만들어 갈 새로운 장면들이 기대된다.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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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무섭게 질주하는 세상과 속도를 잃어버린 사람들 에릭 오가 들려주는 인간에 대한 아홉 개의 고백 천사의 위스키
세계가 주목한 아카데미상 후보 감독이자 픽사 애니메이터 출신 에릭 오의 소설 천사의 위스키 소설도 소설 나름이지만 나의 기준, 좋은 소설의 기준 중 하나는 '몰입'이다. 집중해서 읽게 된다는 것은 에세이, 그림책보다 소설에서 더 확실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그런 소설을 읽고 싶었는데, 오랜만에 여름 더위를 날려버린 소설을 읽었다.
무언가를 꾸준히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록하려는 행위에는 기억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선명하게 느끼는 것들에 대해서 기억하는 마음이 기록하는 행위로 이어진다는 것. 소설이지만 사람의 이야기가 들어 있어서 각자 다른 삶임에도 나의 삶과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같다.
이 소설에서는 인간이 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모순들이 새겨져 있다. '해서는 안 된다', '해야 한다'라는 마음 이면에 또다른 본능에 대해 독자가 생각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준다. 그럴 때 종종 자책하거나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기도 하는데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인간다운 결단'이라고 말하며 나약하지만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
문학평론사의 해설도 좋았다. 천사가 영적인 존재로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징한다면, 위스키는 쾌락적 물질로서 눈에 보이는 세계를 상징하는 대립을 잘 설명해 줘서 이 소설을 잘 읽어냈구나라고 느끼게 해 주었다.
우리가 가진 모순 앞에서 우리는 종종 넘어지고 좌절할 테지만 그것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면이라는 것을. 9개의 단편 소설이 각자 다른 삶의 이야기를 말해주지만 이야기 끝에 위로와 함께 책을 덮었다. 올 여름 시원하게 읽기 좋은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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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등껍질을 달고 사는 세계, 교통사고 후 천사를 만난 남자, 고인이 남긴 영상이 재생되는 장례식장에서 똥을 싼 개. 이 책에는 몇 줄만 읽어도 그다음 장면이 궁금해지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한 편만 읽고 덮으려 했는데,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 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잘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 여러 편을 차례로 보는 기분이 들었다. (이건 저자가 픽사 애니메이터라는 소개 글을 봐서 더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장면은 선명하게 그려졌고, 한 편이 끝날 때마다 질문이 뒤따라왔다. 감출 수 없는 세계는 더 다정할까 「등껍질」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등껍질을 달고 살아간다. 몸의 일부이면서 한 사람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한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사람들은 등껍질마저 비교하지 않을까. 얼굴과 몸, 옷과 집을 비교해온 것처럼 등껍질의 모양에도 기준을 세우고 서열을 매길 것 같았다. 남과 다른 껍질은 개성이 되는 동시에 감추고 싶은 결함이 될 수도 있다. 아니다. 반대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껍질이 있고 그것을 숨길 수 없다면, 자신의 모습에 조금 더 당당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차이는 또 다른 비교의 기준이 되겠지만, 적어도 서로에게 함부로 완벽을 요구하지 않는 너그러운 사회가 될지도 모른다. 천사와 마시는 마지막 위스키 표제작 「천사의 위스키」를 읽는 동안에도 장면들이 스토리보드처럼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죽은 남자가 자신을 다시 살려줄 수 없는 천사와 밤하늘 아래에서 위스키를 마시며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천사는 기적도 구원도 주지 못한 채 곁에 앉아 위스키 한 잔을 나눌 뿐이다. 그 동행에는 묘한 낭만이 있다. 마지막이 될 밤에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지나온 삶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 장면에서 한동안 잊고 지낸 질문이 떠올랐다. 내 꿈은 무엇이었을까. 서른이 넘은 직장인인 내게 꿈을 묻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무슨 일을 하는지, 돈은 얼마나 모았는지, 어디에서 사는지는 물어도 무엇을 꿈꾸느냐고 묻지는 않는다. 무언가를 간절히 이루고 싶었던 때가 있었는지도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는 되고 싶은 것이 있었을 텐데. 이야기는 꿈을 되찾으라고 압박하지 않는다. 밤하늘 아래에서 자신이 살던 방을 바라보게 한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과 남겨둔 물건들을 내려다보면서 오래전의 꿈이 아니라, 지금도 희미하게 남아 있는 희망을 생각하게 한다. 예측된 미래는 운명인가 「운이 사라진 밤」은 재미있었지만 조금 무서웠다. 인공지능이 충분히 발달하면 한 사람의 운명을 어디까지 예측할 수 있을까. 기질과 반복되는 행동을 모두 패턴화하면 한 인간의 미래도 읽을 수 있을까. 사람은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하게 망설이고, 익숙한 두려움 앞에서 같은 방향으로 물러난다. 그런 선택이 오랫동안 쌓인다면 미래에 가까운 무언가를 계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운명이 신비한 힘이 아니라 데이터가 가리키는 가장 가능성 높은 경로라면,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 사람의 삶이 그렇게 쉽게 예상되지는 않았으면 했다. 우리는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에 평소와 다른 선택을 하고, 우연히 읽은 책 한 권 때문에 오래 믿었던 생각을 버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미래를 완전히 알 수는 없지 않을까. 물론 인공지능은 그런 변화까지 확률로 계산하려 할 것이다. 내가 어떤 책을 집을지, 누구의 말에 흔들릴지, 예상하지 못한 사건 앞에서 어떻게 움직일지까지. 그러나 그 예측이 당사자에게 전달되는 순간, 계산에는 새로운 변수가 생긴다. 그것 역시 삶에 들어온 하나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예측을 피하려다 오히려 그쪽으로 갈 수도 있고, 이미 정해졌다는 생각 때문에 다른 선택을 포기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예언은 미래를 발견한 것일까. 아니면 미래를 만들어낸 것일까. 가해자가 늙어도 기억은 늙지 않는다 「두 번째 그림자」에는 장성한 아들과 이제는 늙고 약해진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가 휘두르던 폭력은 과거의 일이 되었지만, 아들은 여전히 그 시간 속에 산다. 눈앞에는 노인이 된 아버지가 있는데, 몸은 자신을 위협하던 사람 앞에 서 있는 듯 반응한다. 늙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마음은 복잡해진다. 한때 자신을 두렵게 했던 사람이 작고 약해진 모습을 보면 연민이나 부모를 방치했다는 죄책감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에게 다친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연민한다고 해서 용서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용서하고 싶다고 해서 원망과 공포까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가해자가 노쇠했다고 해서 피해자의 기억까지 늙는 것은 아니다. 시간은 두 사람에게 똑같이 흘렀지만, 폭력이 남긴 시간은 같은 속도로 지나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를 용서하는 일일까. 아니면 더는 용서할 의무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일까. 가장 좋았던 한 편을 고르려고 목차를 다시 보았다. 하나를 고를 때마다 바로 다음 작품이 생각났다. 등껍질과 천사, 운명을 계산하는 인공지능처럼 기발한 설정에서 출발한 이야기들은 결국 비교하고, 꿈을 잊고, 두려워하고, 용서 앞에서 머뭇거리는 평범한 사람에게로 돌아왔다. 읽는 동안에는 즐거웠는데, 책을 덮고 나니 몇몇 장면 앞에서 자꾸 멈추게 된다. 이야기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천사의 위스키』는 금세 읽었다. 다만 그 안에 남겨진 질문들에 답하는 데에는 조금 더 오래 걸릴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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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에릭 오 작가는 본래 픽사 스튜디오에서 애니메이터로 활동하다가 독립하여, 영화와 매체를 넘나들며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아티스트라고 한다. 평소 시각 예술 분야에서 독특한 상상력을 선보였던 작가이기에 과연 글로 풀어낸 소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증과 기대를 안고 책을 펼쳤다. 9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집은 저마다 각기 다른 색깔과 분위기를 지니고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두 번째 단편인 ‘바늘의 끝’은 간절히 아기를 바라는 부부의 현실적인 고뇌와 솔직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깊은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 다음으로 등장하는 표제작 ‘천사의 위스키’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마치 우리네 도깨비를 떠올리게 하는 천사를 만나 위스키 한 잔을 얻어마시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현실과 비현실이 모호하게 교차하는 그 경계선 위에 선 주인공의 담담한 고백이 마음에 묵직하고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조금은 잔잔하고 다소 어둡게 흐르던 전체적인 분위기는 네 번째 단편인 ‘무주’에 도달하면서 완전히 반전된다. 평소 누구보다 젠틀했던 교수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뜻밖의 유쾌한 소동을 보며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책의 기조가 유쾌하고 밝게 전환되는데, 이후 이어지는 단편들 역시 때로는 진지하게 인간의 내면을 다루고 때로는 위트 있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천사의 위스키>의 가장 큰 매력은 한 권의 책 속에서 정말 다채로운 소재와 분위기를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관된 하나의 톤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감정을 번갈아 건드려 주어 끝까지 지루할 틈 없이 몰입할 수 있었다. 이번 여름 밤에, 소소한 유머와 깊은 여운을 동시에 느끼고 싶은 독자들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권하고 싶은 책이다. #리뷰어클럽리뷰 #인사이드아웃 #단편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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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장편소설도 좋아하지만, 비교적 호흡이 짧은 단편소설들이 실려 있는 소설집을 읽는 걸 무척 좋아한다. 에릭 오 작가의 이 소설집에 실린 아홉 가지 단편들도 비교적 짧은 호흡으로 되어 있어 술술 잘 읽힌다. 또한 「인사이드 아웃」, 「도리를 찾아서」 등의 제작에 참여한 픽사 애니메이터 출신이라는 작가의 화려한 이력 덕인지, 소설들에는 마치 애니메이션을 보듯 현실과 환상을 자연스럽게 가로지르는 생생한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동물인 무주의 시선으로 자연스럽고 익살스럽게 전개되는 <무주, 숲속의 생활>은 마치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 옆에 중요한 감초 역할로 등장하는 귀여운 동물 캐릭터들을 보는 것 같은 재미를 준다. 주인의 장례식장에서 똥을 참는 개라니!
예스24의 <책소개>에 쓰여 있는 것처럼, 작품들 속 등장인물들은 어딘지 모르게 “지체된 순간”에 속해 있다. 팍팍한 일상 속에서 정체된 느낌을 받고, 삶이 텅 비어 있다고 느끼며, 애초에 꿈꾸던 삶은 저 어디론가 증발해 버린 채 우울감과 공허함과 권태감을 느끼는 소설 속 인물들.
예를 들어 표제작 <천사의 위스키>에서는, 어느 날 한순간에 일어난 교통사고로 ‘억울하게’ 사망하게 된 50대 직장인 동식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오래도록 영화감독을 꿈꾸었으나 불미스러운 일로 쫓겨났다가 ‘꿈’을 제대로 이루기도 전에 변을 당한 것이다. 죽기 전 그의 삶은 꿈도 좌초당하고 “남아 있던 삶의 활력마저” 전부 잃어버린 50대 노총각으로서의 삶이었다. 갓 사망한 그를 데리러 천사가 찾아오고, 동식에게 위스키 한 잔을 건네준다. 천사에게서 종이컵에 위스키 한 잔을 건네받아 마시는 동안, 동식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과연 다시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인지 성찰하고 자조하게 된다.
<두 번째 그림자> 속 주인공 정민 또한 겉보기에는 남들이 다 부러워할 정도로 성공한 인생을 사는 듯 보이나, 그 자신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성공을 온전히 받아들인 적이 없”으며 “외부의 평가나 부러움과는 무관하게, 그의 내면은 늘 텅 빈 공간처럼 느껴”진다 (165쪽). 그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권위주의적이고 냉정한 태도로 가족을 쥐락펴락한 아버지의 세계로부터 도망쳐 나오기 위한 사투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세계로부터 비로소 도망쳐 나왔다고 생각했으나, 그는 깨닫는다. 여전히 자신의 마음이 아버지의 영향 아래 매여 있다는 것을.
그러나 소설집은 단지 우울함과 절망의 한가운데서 끝나지 않는다. <등껍질>과 <바늘의 끝>에서처럼, 주인공은 삶의 권태와 절망을 이기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지하철 칸을 채우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 그들을 꼭 안아 주고 있는 단단한 등껍질들. 우리는 등껍질을 죽을 때까지 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 무게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하루를 살아내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값진 일인지, 등껍질에 난 모든 금과 주름이 하나하나 얼마나 소중한지 지완은 조금 알 것 같았다. (<등껍질>, 35-36쪽)”라는 고백처럼. 무엇보다 인간이 거북이처럼 저마다의 삶의 결을 닮은 등껍질을 이고 산다는 <등껍질>의 설정이 신선하고 좋았다. 각자의 삶이 짊어져 온 무게, 그리고 외부로부터 오는 스트레스와 상처로부터 감정을 방어하기 위해 형성된 등껍질이라는 메타포.
< 인상깊은 구절 >
“당신네 인간들의 윤리, 도덕관념, 뭐 이런 것들은 해마다 바뀌고. 옳았던 것이 틀린 것이 되고, 틀렸던 것이 옳은 게 되고. 내가 그거 적응하는 데 지쳐 손 뗀 겁니다.” (<천사의 위스키>, 93쪽)
“균형과 순환. 우리는 그것만 신경 씁니다.” (<천사의 위스키>, 98쪽)
“해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늘 사회와 인류를 탓해 왔지만 사실 줄곧 자기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바늘의 끝>, 66쪽)
“울퉁불퉁하게 굳은살이 베긴 아버지의 등껍질은 어린 지완에게 높고 거대한 산이었다. 지완은 한없이 넓은 그 등 위에 올라타며, 얼른 아버지처럼 강하고 멋진 어른이 되기를 꿈꿨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아버지의 흉터투성이 거친 등을 조금씩 무서워했고, 때로는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 수 있었다. 공장에서 일하다 생긴 상처들과, 오랜 세월 허리를 굽히며 살아 생긴 주름들로 가득한 아버지의 등껍질은, 지완과 가족을 위해 전부를 바친 그의 아름다운 자화상이었다.” (<등껍질>, 32쪽)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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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당신은 누군가의 삶과 닮아있나요? 📚 천사의 위스키 | 에릭 오 | 민음사 | 274p. 요즘 짧은 호흡으로 읽기 좋은 단편집들을 많이 읽고 있는데요, 무너져 내리는 삶을 무한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작품이 있어서 소개하려고 해요. 바로 <천사의 위스키>입니다.
이 책은 9개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단편 소설집인데요, 저자인 에릭 오는 <몬스터 대학교>, <인사이드 아웃>, <도리를 찾아서> 등의 작품에 애니메이터로 참여했고, 단편 애니메이션인 <오페라>로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오른 이력이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첫 소설집답지 않게 상상력 넘치는 이야기와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은 생생함이 느껴지는 단편들이었어요.
책 속에는 다양한 장소에서 제각기 무너지거나 소리 없이 가라앉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표제작인 "천사의 위스키"와 "무주, 숲속의 생활"을 짧게나마 소개하려고 해요. 천사의 위스키 천사의 위스키는 가족도 없이 홀로 살아가는 노총각 '정식'이 집으로 돌아가는 밤길에 천사를 치면서 일어나는 일을 담고 있어요. 정식은 한때 천만 영화감독을 꿈꾸었지만 업계에서 퇴출당해서 작은 회사의 이사로 살지만 혼밥, 혼술이 다인 외롭고 쓸쓸한 사람이에요. 천사와 종이컵에 위스키를 따라 마시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데요, 그저 평범했고, 그저 외로웠던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어떻게 되긴요. 분해되고 증발되겠죠. 흙으로, 물로, 공기로, 저 우주로. 과학 시간에 자연의 섭리 뭐 그런 거 안 배웠어요?" 천사는 죽음을 이렇게 말하는데요, 제목인 '천사의 위스키'를 위스키 문화에서 쓰이는 ‘천사의 몫’과도 연결할 수 있었어요. 위스키를 숙성하는 도중 자연 증발하는 원액을 가리키는 표현이거든요. 자연스럽게 분해되고, 증발하는 것이 죽음인 걸까요? 죽음 너머에 뭔가 고차원적인 것이 있을 거라는 것은 그저 인간의 착각일 뿐인 걸까요? 정식의 죽음에도 슬퍼할 사람이 9명뿐이라도, 정식은 다시 살아갈 의지를 되찾는데요, 과연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요? 무주, 숲속의 생활 철학과 교수로 정년퇴직한 후 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예순넷의 최도현. 그의 장례식장엔 아내와 딸, 그리고 노견인 몰티즈 '무주' 한 마리가 있는데요, 무주는 장례식 내내 배변을 참고 있어요. 그러다, 고인이 특별히 남긴 메시지가 담긴 USB 영상이 재생되는데요, 철학과 교수였던 도현은 한 달에 한 번씩 사람이 없는 무주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옷을 벗고 네 발로 기어다니며 흙냄새를 맡는다는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저 역시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생전에 여러분께 이 말을 전하지 못했어요. 정말 후회됩니다. 이제야 진심을 다해 외칩니다. 제발 눈을 뜨십시오. 여러분이 믿는 가치는 모두 허상입니다!" 그리고 몰티즈인 '무주'는 신나게 배변을 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네 발로 기어 다는 게 인간의 본모습이라는 철학과 교수의 말과 함께 참아왔던 배변을 하는 강아지의 모습이 나오는데요, 뭔가 철학적이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한 장면이었어요. 깊은 서사가 있는 이야기라기보다 장면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은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정말 인간의 본성은 무엇일까요? 짧은 단편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이야기였어요.
책속에 있는 이야기들은 '희망'보다는 '소멸'해 가는 인간의 모습들을 다루고 있어요. 소멸하며 증발해 가는 여러가지의 모습을 통해 나는 지금 누군가의 삶을 닮아있나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단편이라 시간이 나는 대로 짤막짤막하게 읽기 쉽고, 책장을 덮고 생각하기도 좋은 책이었어요. 물론, 재미도 있었답니다! 🔖지하철 칸을 채우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 그들을 꼭 안아 주고 있는 단단한 등껍질들. 우리는 등껍질을 죽을 때까지 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 무게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하루를 살아내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값진 일인지. 등껍질에 난 모든 금과 주름이 하나하나 얼마나 소중한지 지완은 조금 알 것 같았다. 35~36p. 추천 짧은 호흡의 단편소설집을 읽고 싶은 독자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고 싶은 독자 에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은 생생함을 느끼고 싶은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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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오 작가의 『천사의 위스키』는 인간에 대한 아홉 개의 고백을 담아낸 소설집이다. 작가에 대한 흥미로운 점이라면 그가 픽사 애니메이터 출신이라는 점이며 이 분야로 이미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인데 특히나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작가가 소설을 썼다는 점에서 과연 어떤 스토리를 담고 있을지 굉장히 궁금한데 뭔가 철학적인 내면에 대한 질문,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탐구를 그려내는 것 같아 심오하게도 느껴진다. 어떻게 보면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결코 즐겁거나 밝은 상황이라기 보다는 반우울이라 표현한 것처럼 우울감과 좌절감, 그리고 한편으로는 공허함도 느껴진다는 점에서 몽상적인 분위기가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와닿는 스토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다. 어느 날 우연히 발길이 이끌리는 대로 들어간 수족관에서 마주한 거북이, 그 거북의 등껍질을 보면 자신의 모습과 비교하면 삶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등껍질」)부터 시작해 한 난임 부부의 이야기가 겪는 이야기 속 과연 남편이 아내에게 주지시키고자 하는 비출산의 의도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바늘의 끝」) 표제작인 「천사의 위스키」는 젊은 날의 기대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한 남자가 우연히 마주한 천사와 위스키를 마시며 과연 이 남자는 무엇을 이야기 하게 되고 그 이후 이 남자에게 남게 될 것은 무엇일지가 꽤나 흥미롭기도 하다. 인간이 아닌 주인의 장례식장에 있는 노견의 이야기를 그린 「무주, 숲속의 생활」이라든가 AI 시대, 이를 활용한 플랫폼을 개발한 주인공이 과학이냐 운이냐를 두고 생각하는 부분은 아무리 최첨단의 시대가 되어도 우리가 운을 점쳐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인가 싶은 생각도 하게 만든다.(「운이 사리진 밤」) 이외에도 가정 폭력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시금 보여주는 작품도 있고(「두 번째 그림자」) 성공했지만 여전히 성공에 대해 압박을 받는 작가의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다(「타고난 이야기꾼」). 싱글맘의 고충을 넘어 이민자의 자녀이기에 남들과 다른 상황에 놓인 자식을 걱정할 수 밖에 없는 어머니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작품도 있다.(「웨스털리」) 몽환적인 분위기나 이야기 속 평범하지 않은 스토리의 전개와 그 과정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작품 전체에 무게감을 더하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천사의위스키 #에릭오 #민음사 #리뷰어스클럽 #소설집 #인간에대한아홉개의고백 #세계가주목한아카데미상후보감독 #픽사애니메이터출신 #지체된순간 #반우울의인간들 #동명의앨범발매 #한국소설 #단편소설모음집 #책추천 #책 #독서 #도서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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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데뷔 소설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특히 애니메이터 출신이라 그런지 표현 방식이 특이했고,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모든 소설이 지금 당장이라도 애니메이션으로 살아 움직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아무래도 ‘무주, 숲속의 생활’이었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읽어도 될 만큼 폭넓은 소화력을 가졌고, 피식 웃게 만드는 위트와 함께 밀려오는 감동까지 단 22페이지에 모든 걸 담아냈다. 장소는 뜻밖에도 장례식장이었다. 철학과 교수로 정년퇴직한 뒤 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최도현 교수를 기리기 위한 자리였다. 장례식에는 강아지 한 마리도 있었다. 바로 몰티즈 무주였다. 도현과 14년을 함께한 노견인 무주는 낯선 상황에 적응하기도 바빴다. 모두가 각자의 슬픔에 취해있을 때 단 한 명, 아니 한 마리의 강아지만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무주의 머릿속에 가득 찬 것은 아침 내내 참아온 똥이었다. 하지만 무주는 어엿한 노견이었다. 아무 데서나 똥을 싸는 매너 없는 강아지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주도, 장례식장의 사람들도 간과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이 장례식의 특별한 절차인 유언 영상 시청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영상이 재생됐다. 영상 속에는 수척해진 도현이 나왔다. “사실 여러분께 꼭 드릴 말씀이 있어 이 영상을 찍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 달에 한 번씩 사람이 없는 무주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옷을 벗고 네 발로 기어다니며 흙냄새를 맡았습니다…그게 진짜 제 모습이었습니다. 아니, 우리 인간의 진짜 모습입니다.” 이 소설의 마지막을 아직까지 잊을 수 없다. 충격적인 고백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알몸으로 인간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소리치는 도현과 그 소리를 신호 삼아 아침부터 참아왔던 똥을 싸는 무주의 모습을 말이다. 인간과 동물의 본능이 아주 잘 나타난 소설이 아닐까 싶다. 심지어 도현이 철학과 교수였다는 점도 생각해 볼수록 웃긴 지점이었다. 하나씩 어긋난 고리들을 멀리서 보면 멋진 그림이 되는 느낌이었다. 짧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강력한 이야기. 에릭 오가 만든 9가지 세계관이 담긴 <천사의 위스키>를 읽으면서 그의 장편 소설도 궁금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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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천사의 위스키/에릭 오 소설집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픽사 애니메이터 출신 에릭오의 데뷔소설이라는 추천글이 눈길을 끈다. 2010년 픽사 스튜디오에 합류해 몬스터대학교, 인사이드 아웃, 도리를 찾아서 등의 작품에 애니메이터로 참여했다. 내가 참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에 참여했다고 하니 어떤 느낌의 소설로 나를 사로잡을까 하는 기대감이 먼저 든다.
에릭 오의 소설집 [천사의 위스키]에 담긴 단편집 등껍질, 바늘의 끝, 천사의 위스키, 무주 숲속의 생활, 운이 사라진 밤, 두 번째 그림자, 웨스털리, 타고난 이야기꾼, 연어와 케일 샐러드에는 인간에 대한 아홉 개의 고백을 단편에 하나하나 채워 넣었다.
소설은 나, 혹은 우리 이웃의 이야기들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다소 SF적인 소재를 다루기도 했지만 어쩐지 너무 내 얘기 같기도 하고, 마음이 짠해지기도 하고.
인간의 삶의 무게를 담은 등껍질이나. 인간의 사고에 대해 이야기 하는 천사의 모습. 엄숙한 장례식장에서 만난 강아지. 한때 무섭게 느껴지던 아버지의 모습 등등 우리가 만나는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찾게 하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생각하는 일상들이, 인생이라는 과제들이 우리의 시선들 속에서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시간들 속에서 다르게 변화되어 가는 것들을 다시 짚어보게 한다. 천사와 만나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이 결론이 정해지지 않았는지, 혹은 정해져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름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니 그 결과가 어떻든 나는 나를 칭찬할 수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삶을 조금 여유있게 조금 내려놓고 사는 것, [천사의 위스키]에 담긴 소설들이 이 나에게 건네주는 이야기는 아닐까? 소설은 결론을 내려 이 소설은 이런 결말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고 끝맺지 않는다. 소위 열린 결말. 그 결말은 독자 각자의 몫이다.
소설을 다읽고 책장을 덮으면 “오늘 밤, 천사와 술 한잔한다면 당신은 어떤 비밀을 털어놓을 건가요? 라는 질문과 더불어 무섭게 질주하는 세상과 속도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라는 문장이 눈길을 끈다. 나는 무슨 비밀을 털어놓을까?
9개의 단편마다 개성이 넘치고, 가볍게 읽기 좋지만 깊이있는 무게를 가지고 있다. 일단 재미있다.
<도서내용 중>
p35. 지하철 칸을 채우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 그들을 꼭 안아주고 있는 단단한 등껍질들, 우리는 등껍질을 죽을때까지 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 무게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하루를 살아내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값진 일인지.
p93. 당신네 인간들의 윤리, 도덕관념, 뭐 이런 것들은 해마다 바뀌고, 옳았던 것이 틀린 것이 되고, 틀렸던 것이 옳은 게 되고, 내가 그거 적응하는 데 지쳐 손 뗀겁니다.
p188. 한 때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처럼 무섭게 세상을 밀어붙이던 그 얼굴이, 지금은 힘이 빠진 골격만 남은 채 조용히 버티고 있었다. 정민은 용기를 내어 아버지의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쥐었다. 너무 작고, 너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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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소설집 #인간에대한아홉개의고백 #에릭오 #천사의위스키
어느덧 내 나이 40대 중반!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여러가지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거워진 나이!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커다란 곰이 업혀 있는 것처럼 축 쳐져 있는 것이 세월의 무게가 확 느껴진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 맞을까? 흔들리고 고뇌하는 요즘 읽게 된 <천사의 위스키>! 단편소설 여러편이 묶인 소설집으로 세계적인 애니메이터이자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던 에릭오 작가의 첫 데뷔소설이다. 작가 에릭 오는 서울대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UCLA 영화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몬스터 대학교>, <인사이드 아웃>, <도리를 찾아서> 등의 작품에 애니메이터로 참여해 큰 역할을 하였다. 움직이는 영상과 빛, 그리고 연출로 세상에 매혹적인 작품을 선물하던 그가 이번에는 '글'이라는 도구로 빚어낸 세계 <천사의 위스키> '등껍질', '바늘의 끝', '천사의 위스키', '무주, 숲속의 생활', '운이 사라진 밤', '두 번째 그림자', '웨스털리', '타고난 이야기꾼', '연어과 케일샐러드' 9개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첫 번째 작품 '등껍질'이 나는 제일 인상깊었다. 사실 처음 소설에서 등껍질 이야기가 나올때 등뼈를 비유한 것으로 이해했는데 읽다보니 진짜 거북이의 등껍질을 말한거여서 당황했다. 누구나 가지고 있고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등껍질인데 어느날부터인가 주인공에게 등껍질은 알아내야만 하는 강박의 대상이 되었다. 왜 등껍질이 있어야하는지 등껍질은 어떻게 변해가는지.. 강박처럼 등껍질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느껴지는 것이 많았다. 등껍질은 지금 내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아닐까? 거북이는 몸을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등껍질을 지니고 살아가지만, 인간인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감정을 억누르고,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가져야 하는 책임이라는 이름의 '고민과 고뇌의 감정적인 등껍질'을 스스로 만들어 짊어지고 살아가는 듯하다. 주인공 지완의 등껍질을 통해 무언가를 깨닫고 나오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깊었다. 어쩌면 소설은 무거운 등껍질을 지고 버텨온 우리의 시간을 비난하지 않고, 가만히 그 무거움을 알고 있다고 도닥여주는 것 같았다.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고 50대에 접어들어 세상으로부터 잊혀지고 외면당하는 주인공 정식이 밤길 드라이브 중 개량한복을 입은 꾀죄죄한 천사를 만나 종이컵에 위스키를 나누어 마시는 이야기이다. 젊은 날의 건강과 열정이 사라지고, 체력은 점점 빠지고, 무엇하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월 속에서 무언가를 자꾸 잃어버리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나는 나에게 이 글은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 사라진 것들이 꼭 상실만은 아니라, 나라는 인간의 내면을 조금 더 단단하고 진하게 연단시키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위스키를 마시는 장면을 읽으며 위스키 한 잔이 내 마음에 있는 어떤 묵직함도 씻어내려주는 느낌이었다. 요즘은 장편 소설을 읽을 마음에 여유가 많지 않았는데 단편 소설을 엮어놓은 소설집이어서 틈나는대로 읽기가 편했다. 9편의 단편들이 하나같이 잔잔한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 머릿속에 그려져서 좋았다. 짧은 단편들을 하루에 한 편씩 잠들기 전 꺼내 읽다 보면, 지친 하루의 피로가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았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와 조금은 지치고 피곤한 나에게 어쩌면 괜찮다 다독여주는 위로같은 독서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