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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짓지 않은 사람이 스스로 죄를 자백한다. 그것도 강요에 못 이겨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나중에는 정말 자신이 그 일을 저질렀다고 믿게된다. 이런 일이 나한테도 일어날까??저자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는 것 같다. 계속 너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말한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사례 분석과 전문적인 심리학 실험·통계 자료가 페이지마다 빼곡하다. 600쪽에 달하는 두께는 완독까지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초반 몇 챕터를 넘기는 동안은 솔직히 ‘내가 이걸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찬찬히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 책이 단순한 사건 고발서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저자 사울 카신이 수십 년간 이 문제 하나를 붙들고 쌓아온 철저한 문제의식, 그리고 그것을 관철해온 학자로서의 태도에 절로 경의를 표하게 된다. 무고하게 자백을 강요당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처연할 정도로 깊은 공감을 담고 있으면서도, 결코 감정에만 호소하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본질적으로 지닌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 제도의 허점을 진단하고 개선하려는 지극히 인간적이면서도 객관적인 태도 — 좌와 우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 애쓰는 논조 — 가 책 전체를 관통한다. 바로 이 균형감이 이 책을 ‘일회성 고발’이 아니라 ‘연구’로 만들어주는 힘이라고 느꼈다. 이런 저자의 미덕에 값하는 역자의 역량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어려운 심리학 개념과 방대한 사례가 번역서 특유의 뻣뻣함 없이 자연스럽게 술술 읽힌다는 점이 우선 반갑다. 특히 책 말미에 실린 역자 후기를 눈여겨보길 권한다. 역자 후기 안에 책 전체의 전개도가 알기 쉽게 담겨 있어서, 사실 이 후기를 먼저 읽고 본문에 들어가면 6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을 훨씬 수월하게 따라갈 수 있다. 국내 화성 연쇄살인사건이나 삼례 나라슈퍼 사건 같은 실제 허위자백 사례와 연결 지어 우리 사법 현실을 짚어내는 대목도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이 책 속 사건들의 생생한 묘사는 비단 심리학이나 법학에 관심 있는 독자만이 아니라, 논픽션이든 소설이든 글을 쓰는 이들의 상상력에도 날개를 달아줄 만하다. 두껍고 진입이 쉽지 않은 책이지만, 그 문턱을 넘고 나면 오래도록 남는 질문 하나를 얻어갈 수 있는 책이다. 강추한다. 아무데나 펼치고 봐도 눈앞에서 드라마 속의 스토리가 펼쳐지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