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의 책을 읽게되는 아니, 정확히 말해서 사게되는 동기의 유형에 있어서 -조금은 치사한 유형이지만- 저자의 이름에서 얻어지는 '반사적 광영'에 도취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프랑스의 경우 책표지에 찍힌 작가의 이름에 의해 살지 말지가 결정되는 것이 절반 이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독자들 또한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 역사적인 배경이나 사고방식의 깊숙한 내면을 들여다보면 양상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겠지만 외면적으로 프랑스와 우리나라가 비슷해 보이는 것은 비단 '살 책을 고르는' 성향만이 아니다. 그것이 비록 일부 계층에 국한되는 얘기라고는 하나 프랑스 정치, 경제계를 주름잡는 엘리트들이 길 러지는 배타적 경로에 대한 비이성적 선망과 허영은 자식에게 속칭 'KS 마크'(경기고·서울대 출신)를 달아주기 위해 위장전입도 불사하는 한국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저러한 정황을 참고했을 때, 이 책 '노년'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잘 팔릴'요건을 갖추고 있었다. 당대의 천재 시몬느 드 보봐르라는 이름은 '지적허영'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이었을 것이요, 이 책의 광범위한 인문학적 전문지식과 문화인류학적 배경지식, 게다가 인간의 생로병사를 꿰뚫는 통찰력은 '지적사기'의 양분을 갈망하는 자들에게 굉장한 메리트였을 터이니 말이다. 베스트셀러까지는 몰라도 스테디셀러의 요건은 충분했다. 하지만 현재 이 책은 '한정적 절판' 상태이다. 저조한 판매율은 이 훌륭한 역작을 출판사로 하여금, 한글판으로 더 찍어낼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게 했다. 우리는 또 하나의 양서가 사라지는 거대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책을 통해 시몬느 드 보봐르가 말하고자 한 '노년'의 비극과 문제점은 이 책의 '한정적 절판' 상황과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녀가 노년에 관한 수필을 준비중이라고 말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놀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참 이상한 생각도 하셨군요. 당신은 늙지도 않았는데…어찌 그런 서글픈 주제를…." 노년에 대한 의도적 무관심과 침묵의 묵계가 보봐르의 수필 출간을 독려하지 않았듯 우리사회의 노년에 대한(혹은 인문학에 대한 무관심인가?) 무관심은 이 책의 한국어 재판(再版)을 독려하지 않았다. 보봐르가 이 책을 저술할 당시 프랑스의 고령자는 2001년의 우리나라 고령화 비율보다 훨씬 높은 전 인구의 12%에 달했다. 그녀는 사회가 노년층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하나같이 모두 이중적이라고 비판한다. 정치가나 경제학자들에게 비경제활동 인구인 노인은 큰 '짐덩어리'이자 '문제'로 인식될 뿐이고 노인의 욕구나 인간적 감정들은 아무리 정당한 것일지라도 마음속의 빈축부터 사게되기 마련이다. 백발의 후광에 싸여 인간조건을 저 높은 곳에서 굽어보는 존경할 만한 현자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면 노인은 형편없는 저자바닥의 조롱거리로 떨어진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보봐르의 비판은 2001년 대한민국에서도 통용되는 보편성을 갖고 있다. 우리문명은 이윤에 종속되어 있으며 이윤추구의 원칙 속에선 -소비촉진을 위해-인간이란 '도구'도 너무 오래 쓰여져선 안된다. 이윤추구 원칙의 착취체제는 유효기간을 넘긴 '폐물'이자 걸어다니는 '시체'인 노인들에게 결코 퇴직 후의 달콤한 여생을 보장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구속에서 해방되는 순간 그 자유를 활용할 수단, 자격을 박탈당하는 것이 현대의 노인. 극빈층의 대부분이 노인인 상황에서 '늙고 가난한'이란 표현은 동의어의 반복일 뿐이라는 보봐르의 지적이 과연 시대착오적인가. 정녕 그대들은 지금이 60년대 말 프랑스의 현실과 다르다고 믿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