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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있지만 새 질서는 나타나지 않는, 혼란의 시대로 들어가는 긴 터널의 입구에 이제 막 들어섰다. 터널의 출구가 어디에 있는지, 터널의 저쪽 끝에 어떤 세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한쪽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단순한 해법으로는 그 깜깜한 터널을 헤쳐 나갈 수 없다.” 책을 읽고 나니 저자가 맺음말에서 이처럼 언급한 대로 차라리 안 읽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답답했다. 그동안 중국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게 얼마나 경솔한 것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고. 중국을 다루었다고 하니 G2에 오르기까지 중국이 구사한 정책과 이로 인해 미국이 느끼는 위협이나, 중국제품의 back door로 대표되는 무차별한 정보전 정도가 주류를 이루지 않을까 짐작했다. 물론 그런 내용도 상세히 다루었지만, 그보다는 중국의 대만 병합 시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우리에게 결코 남의 일이 아니며, 그런데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서술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런데도 나는 중국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여겼으니 말이다. 사실 책 앞부분에서 다룬 중국의 ‘이중경제(dual economy)’를 읽을 때만 해도 중국에 대해 느끼는 공포감은 과장된 것이 아닐까 했다. 화웨이 같은 첨단 기업이 미국의 제재를 뚫고 첨단 기술 자립을 이루어 가는 것이나 전기차와 딥시크 같은 AI 기업의 대약진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는 것도 중국이고, 아울러 2억 명에 가까운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 대부분이 이삼십 대 청년이라는 현실도 중국이라는 ‘이중경제’ 개념은 위협과 안도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대만이 차지하는 지리적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거기에 모든 화력을 쏟아붓는 듯한 중국의 행보는 솔직히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주석이 최고의 권력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는 집단 지도체제에 가까웠던 중국에서 어떻게 시진핑이 4연임을 넘어 종신 집권을 꿈꾸게 되었는지 의문을 가져왔다. 저자에 따르면 그 종신집권의 꿈이 대만 문제에 맞닿아있었다. 시진핑의 권력이 모택동에 버금가게 강력하지만 부족한 권위를 강화할만한 뛰어난 공적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대만 통일이라는 것이다. 대만이 통일되면 중국이 미국을 대신해 세계 질서를 확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 세계는 트럼프와 푸틴의 헛발질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자국의 능력을 과대평가해 이란과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그들은 기대와는 달리 세계의 비웃음을 사고 있는 형편이 되었다. 멀쩡히 잘 다니던 호르무즈 해협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인제 와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용을 분담하자고 나선 트럼프나, 한 달이면 충분히 손아귀에 넣을 걸로 오판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가 4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자국 영토 깊숙한 곳까지 드론 공습으로 불바다가 되게 만든 푸틴으로 인해 생긴 불안정이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건 물론,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온 중국이 미국-소련 냉전 이후 나름대로 안정을 이루어오던 세계 질서를 요동치게 만들고 있다. 저자는 중국이 미국 주도 국제 질서에 도전장을 내민 것을 2012년으로 잡는다. 2008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 실패와 금융 위기라는 이중의 수렁에 빠지자 2009년 후진타오 주석이 국제 세력 균형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났다고 선언하면서 미국을 넘어서려는 전략을 공공연히 주장했다는 것이다. 2012년 중국 최고 지도자가 된 시진핑은 남중국해에서 암초를 매립해 인공섬을 만들고 활주로와 군사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어 일대일로 전략을 추진해 유라시아 대륙과 남중국해, 인도양까지 경제 정치 군사적 영향력을 파죽지세로 확대해 나갔다. 이러던 차에 2016년 트럼프 당선이 또 하나의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다. 중국은 이를 미국이 돌이킬 수 없는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는 결정적 신호로 해석한 것이다. 미국이 제조업의 붕괴로 휘청이는 사이에 아시아의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갔고, 일본-대만-필리핀을 잇는 제1도련선(First Island Chain)을 지킬 능력도 충분치 않은 지경이 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2025년 후웨이 전 상해 공산당당교 교수가 위챗에 올렸다는 ‘트럼프 집권이 중국에 유리한 다섯 가지’라는 글이 매우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1) 트럼프는 민주와 독재를 구별하지 않으므로 독재라는 이유로 중국을 고립시킬 수 없고, 2) 미국의 분열이 심화하고 미국 민주 제도가 위협받고 있으며, 3) 동맹 관계에 균열이 발생해 미국의 리더십이 약해짐으로서 중국에 큰 공간이 열리며, 4) 미국과 러시아가 연합해 중국에 대항하는 국면은 오지 않을 것이고, 5) 트럼프는 대만 문제를 두고 중국과 거래할 거라는 것이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지만, 그 얕은 지식으로도 어느 것 하나 반박할 거리가 없었다. 저자는 이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트럼프가 압도적 우위를 가진 금융과 군사력을 동원해 베네수엘라, 쿠바, 이란 등 중국의 전략적 거점을 압박하고 무너뜨리려 들었다고 말한다. 이즈음에 미국 보수 싱크탱크에서 이란 공격은 모두 중국과 관련된 거라는 보고서도 나왔다. 이 보고서는 이란 공격이 중국을 겨냥한 더 큰 전략 일부라고 강조하면서, 이번 공격으로 이란 체재가 흔들리면 중국의 지역 영향력과 에너지 후방 기지가 약화되 미국이 중국 견제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의아한 건 같은 보고서에서 트럼프의 기대와는 달리 미국이 이란과 이란이 지원하는 무장세력에 대응하기 위해 중동에 묶여 있는 상황 자체가 미국의 자원을 소모하게 하고 중국의 전략적 이익이 되어왔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내 눈에도 미국의 중국 견제가 실패로 돌아간 걸로 보이니 말이다. 그런데 뭘 어떻게 중국 견제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저자는 이제 중동은 트럼프가 전쟁을 벌이기 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지역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미국은 이전보다 더 많은 군사력을 중동에 묶어둘 수밖에 없고. 그러니 트럼프 주변 인사들이 이란 체제를 전복시키면 그 자원을 인도 태평양으로 돌려 중국 견제에 집중할 수 있다고 기대했던 모습은 이 전쟁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트럼프의 헛발질이 중국을 더 키워줬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가 이를 실패로 여긴다는 정황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거래의 조건이 달라졌다고 여기는 게 아닐까 싶어질 뿐이다. 저자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만과 중국에 대한 정책이 모호하고 혼란스럽다고 평가한다. 모든 군사적 역량을 중국 견제에 집중하려는 세력도 있지만, 외부의 일에 미국 자원을 쓸 필요가 없다는 마가 세력의 목소리도 강하다는 것이다. 트럼프 본인은 중국을 압박한 뒤 시진핑과 거래를 통해 미국의 이익을 최대화하겠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니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더라도 미국이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대만을 보호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저자는 미중 패권전쟁이 본격화된 2017년부터 시진핑이 모택동의 지구전론을 계속 인용해왔다고 말한다. 모택동이 1938년 일본에 맞서는 전략으로 제시한 지구전론은 약자가 강자를 상대하는 3단계 전략이다. 1단계는 힘이 적보다 약한 시기로 ‘전략적 방어’를, 2단계는 양쪽의 힘이 팽팽히 맞서는 시기로 ‘전략적 교착’을, 3단계는 마침내 적보다 강해지는 시기로 ‘전략적 공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인데, 현재 중국은 이미 2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자평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한국이 중국의 일부였다고 주장하고 공공연히 자국을 대국 주변국을 소국으로 지칭한다. 그래서 몹시 언짢고, 그 결과가 혐중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불편한 감정이 배부른 투정이라는 걸 곧 깨닫게 된다. 지금은 트럼프가 나토와 유럽을 모욕하고, 그래서 이에 경악한 유럽 국가들이 중국 쪽으로 떠밀려 들어가는 상황이다. 불안정한 악당보다는 강압적이지만 그래도 예측 가능한 황제가 그나마 나을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상황이 눈앞에 벌어지는 판이다. 북한은 또 어떤가.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늘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2017년에는 북한이 중국의 잠재적인 적이라는 평가도, 김정은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으며, 북한에 원유와 석유 제품 수출을 중단하기도 했다. 압록강 변에 군사를 배치해 북한을 압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중국과 무역 전쟁을 시작하고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가지자 중국은 북한이 자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관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김정은도 중국에 깊은 불신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격동의 세계 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행히 저자는 중국이 북한과 헤어질 수 없는 관계이면서도 그들의 최우선 순위는 한반도 안정 유지라고 판단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해 한국이 북한을 흡수 통일하고, 그 결과로 주한 미군이 중국과 국경을 맞대는 상황을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해법을 제시한다. “한반도 안정 유지라는 중국의 절대적 목표 안에서 북한이 핵을 위험한 방식으로 사용하거나 전쟁을 일으키려는 것을 억제하는 것은 한중이 협력할 수 있는 영역이다. 한미 동맹과 북한 비핵화에 대해 한국과 중국의 거리는 명백히 존재하지만, 북한이 한국을 향한 위험한 도발과 핵 위협에 나서지 않도록 억제하고 관리하는 것을 한중 외교의 중요한 교집합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중국을 다룬 책을 몇 권 읽으면서도 이런 상황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덕분에 상황을 직시하게 되었다. 사석에서 몇 번 뵌 일이 있는 저자는 겸손하고 조용한 분으로 기억에 남았는데, 저자가 다루는 중국과 주변 정세는 이토록 살벌한 각자도생의 전쟁판이다. 이것 말고도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을 텐데, 그것은 다음 달 4일에 있는 북콘서트에서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