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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안드로이드 성빈을 좋아하게 된 이연의 이야기이다. 풋풋하고 설레는 로맨스 인줄 알았는데,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이연은 사람이 적은 특기 계발 활동을 찾다 도예부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성빈을 만나고,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그를 눈으로 쫓고 있게 된다. 긴 고민 끝에 그에게 마음을 고백하지만, 성빈은 자신이 안드로이드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는다. 소설 속 사회는 AI에게 인간의 노동을 대부분 맡기면서도,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사랑만큼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예전에는 안드로이드와 사랑에 빠지는 설정이 그저 SF적 상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먼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 ai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고, 때로는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건넨다. 만약 AI가 눈앞에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지금과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이연은 자신의 감정과 주변의 시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결국 자신과 성빈에게 상처를 준다. 이 모습이 현실적으로 보여서 더더욱 몰입이 되었다. 안드로이드 자리에 소수자의 이름을 넣으면 지금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 소설은 사랑 이야기이면서도, 우리가 타인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소설에서 도예는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우연히 생긴 얼룩이 하나의 도자기를 고유하게 만드는 것처럼, 우리도 역시 저마다의 얼룩으로 고유하고 구분된다. 무더운 여름, 가볍게 읽기 좋은 소설이었다. 책 뒤편에 수록된 몽글몽글한 일러스트도 이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한층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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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뿐사뿐교사북클럽 #사계절출판사 #청소년추천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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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첫사랑의 몽글몽글한 마음, 오랜 고민과 기다림 끝에 어렵사리 시도한 고백. 그리고 그 끝은. 맞닿음이었을까, 거절이었을까.
📕 <물에 발을 담근 채> 🖊️ 저자 | 이새벽 글, 김승아 그림 🏢 사계절 출판사
연은 관심도 없던 도예부를 그 마음 하나로 오래 붙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마음을 피어오르게 한 성빈에게 고백한다. 서평이랍시고 스포일러를 해도 되나 싶지만 — 돌아온 답은 "나는 인간이 아니야". 생각해 보면 하필 도예부라는 게 묘하다. 흙을 주무르고, 형태를 잡고, 불에 넣어야 비로소 '무언가가 되는' 일. 사람의 손으로 빚어진 것에 사람이 마음을 붙이는 일이 도예부 안에서 이미 매일 일어나고 있다. 관심도 없이 발을 들인 부활동이 하필 그런 일이었다는 게, 이 소설이 처음부터 깔아둔 밑그림 같다. 그런 영화를 본 적 있다. 로봇과 사랑을 하고 혼란을 느끼는 사람들의 이야기. MBTI의 대문자 N인 나는 또 상상을 한다. 누군가를 사랑했는데, 그 떨림을 고백했는데, 안드로이드라는 대답을 들었다면,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가 안드로이드라고 해서 이 마음을 접을 수 있을까? 로봇이라고 한다면 내 마음이 불에 모래를 뿌린 듯 훅 꺼질까? 그럴 수 있나? 나는 안드로이드가 아닌데? 그가 안드로이드인 거지, 내 마음은 안드로이드가 아니지 않은가. 예전에 어느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키우던 로봇 강아지가 수명을 다하자, 절에서 장례를 치러 주고 기린 사람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사람을 어리석다고 할 수 있을까. 그 마음에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그래, 사실 그 기사에도 왜 이렇게까지 슬퍼하고 기리느냐고 손가락질하는 이들이 있었다.) 결국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무엇을 애도할 자격이 있는가. 아니, 애도에 자격이라는 게 필요하기는 한가. 우리는 늘 상대의 자격을 먼저 따진다. 그것이 살아 있었는지, 감정이 있었는지, 진짜였는지. 그런데 슬픔은 그 심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미 슬퍼진 다음에 자격을 따지는 건 순서가 틀렸다. 어쩌면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일 수 있다. 대상이 무엇이든 나의 감정이 더 소중하다는 것. 🔖 "성빈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누군가를 버린 쪽을 고르자면, 그건 나였다." 누군가에게 버림을 받는다는 것은 참 아픈 일이다. 한번이라도 겪어본 사람은 버림받을 낌새가 보이면 방어벽을 높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얼마나 아플지 알기에. 친구에게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던 연은, 결국 다른 사람의 눈 때문에 성빈을 먼저 버린다. 버림받기 전에 먼저 버린다고 해서 그 마음이 편한 건 아니다. 하지만 버려진 쪽은 무엇을 느꼈을까. 아니, 사람이 아닌 성빈이 느낄 수는 있었을까. 문득 성빈이 걱정되었다. 성빈에게는 그 버림이 상처로 남았을까, 그저 기록으로 남았을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었을까, 아니면 망각되지 않는 기록으로 더 아파지려나. 그래서 마지막에 성빈이 복수하러 찾아왔을 때, 나는 오히려 안심했다. 이상한 안도였다. 복수를 하러 온다는 건 상처받았다는 뜻이고, 상처받았다는 건 그 시간이 성빈에게도 무언가였다는 뜻이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결말이었을 것이다. 연에게도, 나에게도. 제목을 다시 본다. 물에 발을 담근 채. 완전히 뛰어들지도, 그렇다고 물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 자세. 딱 연의 자세다. 좋아하는 마음은 이미 물속에 있는데 몸은 뭍에 남겨두고, 남들이 보면 언제든 발을 뺄 수 있는 척. 그 어중간함이 결국 누군가를 먼저 버리게 만들었다. 발만 담그고 있으면 젖지 않을 줄 알았겠지만, 사실 그 자세로는 아무것도 건널 수 없다. -나도 어쩌면 늘 이런 자세로 살고 있지는 않나. 안드로이드와 인간, 그 차이가 뭘까. 언젠가, 어쩌면 아주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마주할 상황이다. 그때 나의 성빈을 마주한다면, 글쎼, 어쩌면 나는 지극히도 내 감정에 치중하느라 쉽게 돌아서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은 나의 마음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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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출판사의 '사뿐사뿐: 사계절 교사 북클럽' 활동을 통해 『물에 발을 담근 채』를 읽게 되었다. 어릴 때의 나는 어른이 되면 많은 것들이 분명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오히려 선택은 더 많아졌고, 고민도 깊어졌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순간이 더 많아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연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세상에는 믿을 사람이 없다고 스스로를 가두고 살아가는 아이다. 그러다 한결같이 다정한 성빈을 만나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처음에는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관계를 그린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장을 덮고 나니 오래 남은 것은 SF적 설정이 아니었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 누군가를 믿는 일, 후회 이후에도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이었다. 성장은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할 수밖에 없는 선택들을 지나며 조금씩 나를 이해하게 되고, 완벽하지 않은 나를 받아들이며 다시 앞으로 걸어가는 것. 그것이 성장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아직 물에 발을 담근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발끝은 젖어 있지만, 후회 속에서도 앞으로. ※ 이 글은 사계절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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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완벽하게 다정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책의 배경은 독특하다. 인공지능과 안드로이드가 인간인 해 오던 거의 모든 노동을 대신하는 시대. 어쩌면 우리가 곧 맞이할 시대이다. 인간의 노동이 더는 특별한 가치를 지니지 못하게 되자, 학교는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능력으로 창의성을 강조한다. 학생들은 특기 계발 활동을 통해 자신만의 재능과 개성을 발견해야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이 실제로 묻는 것은 인간의 창의성이 인공지능보다 뛰어난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무엇이 진짜 마음이고 무엇이 인간다운 감정일까. 친구들 사이에서 투명인간이 되어 본 주인공은 누구도 쉽게 믿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말과 표정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 마음을 추측한 뒤에 자신의 감정을 숨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상대를 의심하고, 상대에게 들키지 않도록 자기 마음을 감추는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자신의 마음을 숨길 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진심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친절한 말도, 다정한 표정도 얼마든지 꾸며 낼 수 있다면 세상에는 진짜가 아니라 가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주인공의 의심은 단순히 친구 관계에서 비롯된 불안이 아니라, 타인의 진심을 확인할 수 없는 인간관계의 근본적인 한계를 보여 준다. 그런 주인공 앞에 성빈이 나타난다. 성빈은 도예부에서 언제나 한결같은 친절과 다정을 보여 준다. 그런 일관적인 감정 앞에서 주인공은 마음을 스르르 열고 마음을 고백하게 된다. 그러나 성빈은 뜻밖의 비밀을 지니고 있었다. 바로 실험을 위해 특수 제작된 안드로이드 모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빈의 일관된 다정함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인간의 감정은 불완전하고 흔들린다.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오히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친절한 존재는 오히려 인간답지 않게 느껴지지 않는가. 프로그램에 따라 작동하는 기계라면 언제나 같은 태도를 유지할 수 있겠지만, 감정과 상황에 흔들리는 인간이 늘 일정한 수준의 친절을 베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좋아하면서도 상처를 주고,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거리를 둔다. 어떤 날에는 따뜻했다가도 다른 날에는 무심해진다. 타인에게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조차 일관적이지 못하다. 변하지 않는 태도보다 흔들리고 모순되는 모습이 오히려 인간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상대가 보여 주는 말과 행동을 통해 마음을 짐작할 뿐이다. 그렇기에 관계에는 언제나 오해와 의심의 가능성이 남는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반복되는 다정을 믿어 보고, 감춰 두었던 마음을 내보이는 순간 관계가 시작된다. 도예부라는 공간 역시 이러한 관계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흙은 단단한 완성품이 아니라 쉽게 찌그러지고 무너지는 재료다. 힘을 너무 많이 주면 형태가 망가지고,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기울어진다. 그러나 물을 묻히고 천천히 손을 대면 조금씩 새로운 모양을 갖춘다. 사람의 마음도 흙과 닮았다. 상처받기 쉽고, 관계 속에서 흔들리며,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마음을 함부로 단정하는 대신 오랜 시간 곁에 머물며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성빈의 한결같은 친절은 주인공을 단번에 변화시키지 않지만, 반복되는 작은 다정은 굳게 닫혀 있던 마음에 조금씩 새로운 형태를 만든다.
『물에 발을 담근 채』는 인공지능과 안드로이드가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는 미래를 배경으로 삼아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오히려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듯 하다.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마음을 지닌 채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려는 태도, 진심을 완전히 확인할 수 없어도 다정을 믿어 보려는 선택에서 우리는 인간다움을 발견한다. 기술의 흐름으로 볼 때 생성형 AI에서 AI 에이전트로, 이후에는 피지컬AI로 흐름이 이어질 것이다. 이미 중국이 피지컬 AI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것은 그런 부분을 현실적으로 담아낸 부분이다. 책 속의 안드로이드 모델 성빈은 전문가가 아니면 인간과 구별하지 못할 정도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구현해 낸다. 음식물을 삼키고 체내에 저장했다가 배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심지어 성장하는 모습까지 구현하기 위해 골격 전체가 모듈화 되어 있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감정을 느끼기까지 한다. 마치 곧 다가올 미래를 들여다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급 궁금해서 이새벽 작가님의 이력을 보니, 한낙원과학소설상 우수상을 받았다. 무려 9회와 10회 두번이나 우수상을 받았다. 미래의 모습을 구구절절 쓰지 않았지만, 핵심적인 흐름을 잘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 및 공학 수업과 연결해 볼 수 있는 부분 1. 기술의 발전 과정 - 생성형 AI와 AI 에이전트는 무엇이 다를까? - 피지컬 AI가 등장하면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바뀔까? - 인간형 로봇이 꼭 사람의 모습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 공학 설계 관점 - 성빈이 인간처럼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기술은 무엇일까? * 센서 * 컴퓨터 비전 * 모터와 액추에이터 * AI 추론 * 배터리 * 생체 모사 소재 * HRI(Human-Robot Interaction) 3. 기술 윤리 - 감정을 표현하는 AI와 실제 감정을 느끼는 AI는 같은 존재일까? - 안드로이드에게도 권리가 필요할까? -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어떤 새로운 법과 윤리가 필요할까? 4. 미래 사회 - 앞으로 사라질 직업보다 새롭게 생길 직업은 무엇일까? -학교는 왜 ‘지식’보다 ‘창의성’을 가르치게 되었을까? -인간이 AI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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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말하고 나면 우리가 전과 같을 수 있을까?" 과거 친구들에게 받은 심한 배신과 따돌림으로 마음을 닫은 여고생 이연은 세상에 '진짜'는 없으며 모든 관계는 '가짜'일 뿐이라 믿는다. 그런 이연 앞에 나타난 다정한 소년 성빈에게 도예부 공방에서 용기 내어 마음을 고백하지만, 성빈은 물그릇에 푹 담가도 쭈글쭈글해지지 않는 매끈한 손을 보여주며 자신이 '안드로이드'라는 뜻밖의 말을 건넨다. 『물에 발을 담근 채』는 안드로이드 소년과 인간 소녀의 풋풋한 관계를 넘어, 기술이 극도로 발전한 사회에서 맞닥뜨릴 차별과 인간성에 대한 서늘한 경고를 담아낸다. 안드로이드를 향한 차별 속에서 성빈의 정체가 드러나자 이연은 두려움에 선을 긋고 만다. 하지만 정작 성빈이 사라진 뒤 아이들은 그를 외면하고 괴롭혔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지워버린다. 타인을 소외시킬 때의 집요함과 대비되는 무심한 망각의 모습은, 지금 우리 사회가 가진 서늘하고 폭력적인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해 깊은 씁쓸함을 남긴다. 편집자에 편지에서 읽은 내용인데 당초 '복수'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생각하다가, 복수의 여러 정의 중 '물을 엎지름(覆水)'이라는 뜻에 눈길이 가 지금의 원제를 지었다고 한다. 현장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지켜보다 보면, 일상에서 무수히 물을 엎지르고 또 그것을 주워 담으려 애쓰는 모습들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때로는 잘못을 저지르고, 두려움에 부끄러운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성장이란 그렇게 엎질러진 물과 자신의 불완전한 밑바닥을 가만히 마주하며 스스로를 조금씩 다시 빚어 나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주인공 이연 역시 성빈을 저버렸던 실수를 되새기며 다시 그의 곁에 서려는 용기를 내고, 성빈 또한 상처와 복수심을 넘어 "내 마음을 느껴 봤으면" 하는 진심을 건넨다. 이처럼 내면의 얼룩을 숨기지 않고 마주할 때 아이들은 비로소 성장의 첫걸음을 뗀다. 앞으로도 살아가며 무수한 실수를 맞닥뜨릴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끈적하게 발을 붙드는 진흙이 신발 밑창 아래로 느껴"지는 그 성장의 감촉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담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마음 깊이 응원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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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발을담근채 #이새벽_글 #김승아_그림 #사계절출판사 #사뿐사뿐 물에 발을 담근 채. 이새벽 글/김승아 그림. 사계절출판사. 2026. 책 날개 부분에 이 책의 해시테크가 '차별'로 되어 있다. 책을 다 읽고, 한번 더 다시 읽고, '차별'이란 글자를 발견하고, '아, 차별!'하고 깨달았다. 그렇지, 이 이야기가 차별에 대한 이야기지, 하고 한번에 이해가 갔다. "내가? 저 깡통이랑? 미쳤냐?"(43쪽) 나는 예전의 내가 얼마나 순진했었는지 깨달았다. 그 누구도 본심을 위장한 채로 살지 않았다. 흥미와 상황에 따라 언제든 손쉽게 태도를 바꿀 뿐이었다. 마음을 쓰지 않으니 애초에 숨길 본심 같은 건 없었다.(45쪽) 아주 짧은 이야기였지만 여운이 오래 남았다. 한참을 다시 생각하고 곱씹게 되었다. 그래서 한번 읽고, 또 다시 한번 더 읽었다. 그리고 이 문장을 발견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일까. 차별을 뛰어넘어 혐오까지도 너무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며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서, 과연 우린 어떤 마음으로 온전히 나의 태도와 자세를 바로잡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솔직히, 대부분은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상황에 대해 판단하며, 그 이후 어떤 마음을 품게 되는지에 대해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요즘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그런 태도가 무척 잘 보인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다보니 어느 지점부터 어떻게 아이들의 태도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또 그런 기회에서 스스로 자신을 찾아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할지 막막할 때도 많다. 대놓고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설명만 했다가는 오히려 더 잘못된 반감만 쌓는 결과를 낳을 때도 많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우린, '흥미와 상황에 따라 언제든 손쉽게' 태도를 바꾼다. 어쩌면 주변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일 수도 있고, 애초에 자신의 태도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자신의 태도를 명확히 할 줄 모른다는 것에 문제의 지점이 있다. 이제 요즘의 시대는 AI와 사람이 공존하고, 또 일정부분 사람이 기계에 의존하게 되는 경향이 커져가고 있다. 이때, 진짜 사람이 아닌 안드로이드라고, 다르다고 차별할 그런 수준은 아닐 것 같다. 오히려 안드로이드라면 더 인정받고 우대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짧은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이 소설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비단, 인간과 기계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대상에 대해 감정이 움직였던 자신의 마음마저도 다른 이들의 시선과 반응으로 인해 격하게 거부하고, 심지어는 쉽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을 읽는 독자의 입장으로서는 무서운 마음이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언젠가는 나에게도 그런 반응이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덧- 좋아하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분명 누군가를 향하는 예쁜 마음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마지막은 복수로 끝나는 이야기가 됐다. 물론, 그 복수에 동참함으로써 마음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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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사뿐사뿐의 책은 <물에 발을 담근 채>이다. 학기말 바쁜 때를 고려해주셔서인지 70페이지짜리 짧은 소설을 보내주셨다. 압도적 감사!! 독고독락 시리즈로 가볍게, 하지만 담긴 주제는 가볍지 않은 소설이었다. 주인공 '나'는 친구에게 따돌림을 당한 경험으로 세상에 진짜는 없고 가짜만 있다는 생각에 오래 붙들려 있던 인물이다. 그런 '나'에게 도예부에서 만난 '성빈'은 예외적인 존재다. 함께 도자기를 빚는 시간 속에서 쌓인 다정함은 결국 고백으로 이어지지만, 그 직후 성빈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급격히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이 지점이 소설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진짜'라고 믿었던 유일한 존재가 실은 인간조차 아니었다는 설정은, 단순한 반전을 넘어 주인공이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진짜, 가짜의 이분법 자체를 흔든다. 그런데 정작 그 이분법을 먼저, 그리고 가장 잔인하게 붙잡는 쪽은 '나'다. 성빈이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이 학급에 알려지고 누군가 '나'에게 "너 쟤랑 친하지 않았냐"고 묻자, '나'는 "내가? 저 깡통이랑? 미쳤냐?"라고 답한다. 성빈에게 직접 건넨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내뱉은 부인이라는 점이 이 장면을 더 아프게 만든다. 방금까지 자신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었던 존재를, 여럿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깡통'으로 격하시켜 관계 자체를 지워버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성빈은 그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조용히 교실을 빠져나가고, 그 뒤로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더 아픈 것은 그다음이다. 성빈이 사라진 뒤, 그를 따돌리는 데 가담했던 반 아이들 중 누구도 그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괴롭혔다는 죄책감조차 남지 않을 만큼 깨끗하게, 있었던 적 없는 존재처럼 지워지는 것이다. 이 장면을 읽으며 문득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축소판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밀어내는 데는 그토록 열심이던 사람들이, 정작 그 피해자가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면 그를 기억하는 일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가해는 능동적이지만 망각은 무심하게, 어쩌면 더 폭력적으로 이루어진다. 이후 가상공간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이 그날의 일을 두고 서운함을 이야기하는 장면에 이르면, 성빈에게 정말 서운했던 것이 '나'의 그 한마디였는지, 아니면 그 뒤로 자신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는지 궁금해진다. 감정을 먼저 다치고 서운함을 토로하는 쪽이 오히려 성빈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여기에 복수에 대한 이야기까지 겹쳐지면서, '나'는 되묻게 된다. 정체성으로만 보면 성빈은 인간이 아니지만,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더 사람다운 감정을 느끼고 표현한 쪽은 성빈이 아니었을까. 성빈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를 '가짜'로 만드는가, 아니면 그가 느낀 서운함과 상처야말로 '나'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짜인가. 소설은 이 질문을 섣불리 정리하지 않고 독자에게 남겨둔다. SF적 설정(성빈의 정체)이 청소년소설의 화두(따돌림, 관계, 차별, 자기 고백)와 결합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정체가 밝혀지는 장면이 스릴러적 반전으로 소비되지 않고, 오히려 주인공이 자신의 감정과 정체성을 되짚어보는 계기로 기능한다. 덕분에 장르적 재미와 성장서사가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함께 간다. 성빈의 정체와 고백 사실이 함께 드러났을 때 주인공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묻는 마지막 질문은, 이 소설이 결국 '관계가 발각되었을 때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걸 보여준다. 다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오래 남는 것은 그 결말보다도, 정작 상처를 주고 관계를 저버린 쪽은 '나'였다는 사실이다. 성빈은 자신을 부정당하고도 반박하지 않고 조용히 사라졌다가, 다시 만났을 때는 원망보다 서운함을, 그리고 복수를 이야기한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드러내는 쪽은 '비인간'으로 분류된 성빈이고, 정작 감정을 부정하고 도망친 쪽은 '인간'인 '나'다. 이 역전이야말로 소설이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함께,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 자체의 두려움과 용기를 다루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짧은 소설이었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표지만 보고 연애소설이라고 판단한다면 그건 대단한 오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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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빈과 이연(소설 속에는 나오지 않는 이름)의 연애소설이자 '성장'을 다룬 청춘 로맨스 소설이다. 이연이 특기적성 수업 시간에 ‘도예반’에 들어가서 성빈을 만나 그 녀석을 좋아하게 되는 과정이 담겨있다. 성빈은 이연이 좋아하는 마음의 진심을 알기에 ‘물에 손을 담근 채’ 자신의 진실을 이야기한다. 이연과 다르게 성빈의 손은 불지 않고 매끄러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성빈은 인간이 아닌 안드로이드였다. 그 진심을 말하기까지 마음을 쓰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조심했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감정을 배워가는 과정인 것 같다. 성빈이 인간이 다니는 학교를 다니며 처음으로 배운 감정은 안드로이드라는 것이 들킬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다. 그 다음 감정으로 이연이 자신을 향해 말하는 고백을 듣고 자신이 안드로이드임을 밝혔을 때 느낀 ‘서운함’이다. 마지막에는 같은 반 친구들이 안드로이드임을 알고 자신을 서운하게 한 것에 대한 ‘복수’라는 감정을 배우게 된다. 복수라고 해서 무슨 일을 크게 낸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서 자신의 서운함을 알려주겠다는 다짐이지만 왠지 인간을 향한 복수라고 하니 섬뜩했다. 인간을 통해 감정을 배우고자 하는 안드로이드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기계가 복수를 결심한다면 아마 세상의 모든 것들이 뒤바뀔만한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은 아마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물에 손을 담근 채'가 아니라 ‘물에 발을 담근 채’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책 표지에서 두 명이 손을 담그고 그 손가락 끝이 서로 맞닿아 있는 모습이 설레이게 만드는 장면이라는 점이 연애소설임을 알게 하지만... 제목은 반대로 ‘물에 발은 담든 채’라고 적혀있어서 왠지 반전의 복선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작은 분량의 책이고 가방에 쏙 넣어다니면서 읽을 수 있어서 좋았고, 책을 펼쳤을 땐 한 번에 단숨에 다 읽어내려갈 수 있는 재밌는 책이다. #사계절, #지원도서,#청춘,#로맨스,#안드로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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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인원이 유독 적었던 도예부에 들어간 ‘나’는 늘 한결같은 ‘성빈’을 만난다. 성빈의 모습이 유독 좋았던 ‘나’는 다음 학기, 다음 학년에도 도예부를 선택한다. 그 이유는 조금이라도 성빈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다. 그리고 성빈에게 기회를 봐서 고백한다. “나, 너 좋아해. 친구로서가 아니라.” 여기서 반전은 시작된다. 성빈은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고 고백한다. 사람이 아니라 안드로이드라고. 그러고보니 뭔가 이상했다. 도예를 하며 물속에 손을 담그게 되는 일에 ‘나’의 손은 물에 불었지만 성빈의 손은 그대로였다. 인간이 아닌 안드로이드라는 존재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에 ‘나’는 충격을 받는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인공지능 시대에 사람들은 생성형 인공지능에게 심리상담을 하며 자신의 피난처를 찾는다. 온전히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영화 <HER>에서는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 대상이 등장한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범위가 아니라 인공지능과 교감하며 유대감을 느낀다. 『물에 발을 담근 채』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성빈의 정체가 학교에도 퍼진다. 성빈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냐는 친구들의 질문에 성빈 앞에서 모르는 일이라고 선을 명확하게 긋는다. 우연히 VR 커뮤니티에서 성빈을 만난다. “복수하려고.”라는 성빈의 말 한 마디로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물에 발을 담근 채』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확인되는 순간, 인공지능이 얼마나 뛰어난 지능을 소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섬뜩함이 함께 밀려온다.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누군가에게 저질렀던 차별이 곧 부메랑처럼 돌아온다고 생각하니 지난 날 후회와 반성을 하게 되는 섬뜩함이. 소설의 제목 『물에 발을 담근 채』에 대해서 고찰 해 본다. 물이라는 차가운 물성, 발을 담그는 행위는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발을 담그면 되레 기계가 고장날 수도 있다. 그렇게 물에 발을 담그고 축축한 채로 살아가는 일이 인생이라는 두 글자일지도 모른다.
도예부를 소재로 선택한 일도 인간이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걸 은유적으로 나타낸 것 아닐까 싶다. 인공지능 안드로이드는 기계일 뿐이다. 그렇게 도예를 한다는 것이 흙을 만지며 세상에서 하나뿐인 작품을 만드는 행위는 인공지능 안드로이드가 느낄 수 없는, 사람만이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감촉일 수도 있다. 아울러 이야기 후반에 등장한 안드로이드 성빈의 복수가 어떻게 진행될 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물에 발을 담근 채』는 80쪽의 짧은 소설이지만 여운은 길다. 『물에 발을 담근 채』의 특별한 점은 뒤표지의 큐알 코드를 찍으면 이새벽 작가의 낭독과 일러스트가 담긴 영상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80페이지의 짧은 이야기의 여운을 이새벽 작가의 낭독과 일러스트로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오늘도 축축하게 신발에 흙을 묻히고 학교로 걸어가는 청소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축축한 청소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은 교사, 어른들에게도 추천한다. #물에발을담근채 #이새벽 #사계절출판사 #사계절출판사책 #청소년소설 #청소년소설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