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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의문. 세상 모든 질문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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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았기에 뜻하지도 않았다.그러나 누군가가 뜻했기에 생명을 부여받았다.인간이 보기에 좋지 않은 모습이기에 당연히 생명과 함께 부여받아야 마땅한 애정과 배움을 받지 못하고 고립되고 말았다. 누가 어둠에서 빛으로 끌어올려 달라고 빌었던가? 무언가를 창조해 낸 자는 결과가 어떻든 창조물에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지 않을까?⠀이 묵직한 질문은 #프랑켄슈타인 (#메리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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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았기에 뜻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가 뜻했기에 생명을 부여받았다.

인간이 보기에 좋지 않은 모습이기에 당연히 생명과 함께 부여받아야 마땅한 애정과 배움을 받지 못하고 고립되고 말았다. 누가 어둠에서 빛으로 끌어올려 달라고 빌었던가? 무언가를 창조해 낸 자는 결과가 어떻든 창조물에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지 않을까?

이 묵직한 질문은 #프랑켄슈타인 (#메리셸리 지음 #머묾 출판)을 관통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넘어 AI와 유전자, 생명과 관련된 모든 신기술을 연구하는 지금 우리 시대에게도 유효한 질문으로 책을 덮어도 남는다.

처음에는 겁도 없이 생명을 창조해 낸 프랑켄슈타인과, 아무 잘못도 없는 인간들을 복수라는 이유로 파괴하는 괴물 모두에게 화가 났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입장이 아니라 그 혜택을 누리는 입장으로 살아왔어서였는지는 몰라도 괴물의 분노에 공감도 했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괴물은 도를 넘었고,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폭주를 멈추지 않았다. 아무도 그를 인간이라 여기지 않았지만 이러한 성향은 이토록 불완전하면서도 만물의 영장이라 스스로를 드높이는 인간의 그것도 너무나 흡사했다.

어느 정도 자신과 닮으면 혐오감이 높아진다는 ‘불쾌함의 골짜기’, <프랑켄슈타인> 속 괴물이 딱 그것이었다.

존재할 수 있나 의문이긴 하지만, 완벽한 이타심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끔찍한 결과가 만들어졌다면 그것을 지금 당장 바로잡기 위해 태어나지도 않은 후대의 희생을 강요할 수 있는지도 이야기의 핵심이다.

인간성에 대해, 생명의 존엄에 대해, 뜻하지 않은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순간에 염두해야 할 것들에 대해.

너무나 많은 의문들이 마음을, 머리를 어지럽힌다.

책을 덮고 찬찬히 되짚어보면 이 수많은 의문들 사이에서 그래도 가장 무겁게 자리 잡고 흘러가지 않는 것은 괴물의 스스로에 대한 물음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위의 수많은 의문들의 답도 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의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설정된다면,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취해야 할 태도가 분명하게 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만큼 대답하기 어려운 것이긴 하다.

하지만 어려운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대부분이 과연 이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는 데 얼마나 시간을 할애하는지, 그것이 진짜 문제이다.

사회가, 부모가 옳다고 말하는 대로, 좋다고 평가하는 대로 보살핌이라는 이름으로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와 수능을 치르고,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는다. 그 자녀에게 우리는 또 그것을 반복한다.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살아낸 사람들은 물론 훌륭한 인내심을 지니고 있지만 진짜 그것들을 찾아낸 사람들이 누리는 만큼 충만한 삶을 누리기는 힘들다. 참아야 할 이유, 이렇게 살아야 할 이유가 부족한 것이다.

수많은 과학 기술들, 그로 인한 그 어떤 시대에도 통하는 이야기이지만 그것보다 격변하는 시대에서 두려움을 떨쳐내고 잠시 멈춰 서서 나는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우리 각각이, 그렇기에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의 답이 될 수 있는 그 근본적인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한다.

과학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그 어떤 책보다 철학적이다.


k********4 2026.09.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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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누가 더 괴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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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본래 선하고 착했어. 불행이 나를 악마로 만들었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줘. 그러면 다시 덕스러운 존재가 될 테니.'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프랑켄슈타인은 무지하고 무자비한 괴물이었다. 하지만 다시 만난 프랑켄슈타인은 무지하지 않았고,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헤치는 무자비한 괴물도 아니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사랑받기를 바라는 존재였다.  생명의 신비를 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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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본래 선하고 착했어. 불행이 나를 악마로 만들었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줘. 그러면 다시 덕스러운 존재가 될 테니.'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프랑켄슈타인은 무지하고 무자비한 괴물이었다. 하지만 다시 만난 프랑켄슈타인은 무지하지 않았고,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헤치는 무자비한 괴물도 아니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사랑받기를 바라는 존재였다.


  생명의 신비를 밝히려는 열망과 광기에 의해 탄생한 프랑켄슈타인은, 생명을 부여받은 순간 창조자 빅토르에게 배척당한다. 세상에 내던져진 프랑켄슈타인은 사랑받고 공감받기를 원했지만, 흉측한 외모와 거대한 체구 때문에 사람들에게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 된다.

  따뜻한 애정과 유대를 원했지만, 자신의 어떠한 노력에도 그 소원이 좌절되자 결국 자신에게 생명을 부여하고도 사랑해 주지 않은 빅토르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친구와 가족들을 살해하는 진짜 괴물이 된다.


  '나는 의지할 사람도 없었고, 누구와도 관계가 없었어. 내 모습은 흉측했고 체구는 거대했어.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내 목적지는 어디인가? 이런 질문들이 끊임없이 되풀이되었지만, 나는 그 답을 찾을 수 없었어.'


  사랑과 유대를 원했지만, 어디에서도 심지어 자신의 창조자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오히려 미움을 받자,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누구인지, 사람인지 괴물인지 끊임없이 질문한다. 주위를 둘러봐도 나 같은 존재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의지하고 관계를 맺을 사람도, 동정하거나 도와줄 사람도 하나 없다. 선의를 가지고 다가가도 악의로 받는 사람들. 결국 나 자신조차 나는 혐오하게 되었을 때, 그 고통스럽고 비참한 마음이 결국은 그를 진짜 괴물로 만들었다.


  그러면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일까? 아니면 인간일까? 이런 주제는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A.I』, 김영하 작가님의 『작별 인사』 속에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인공지능 로봇들이 나온다.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 때문에 로봇들을 만들고 폐기한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한 로봇이 아니다. 사람처럼 생각하고 심지어 자신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인공지능 로봇이다. 사람보다 더 사람다운 감성을 가진 그들을 그저 기계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신인류인 걸까?

  이 이야기들은 미래 이야기였지만 어쩌면 수년 내에 현실이 될 이야기가 아닐까? 그때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 걸까? 인간이라는 것, 인간답다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책이었다.


  '그 잔해가 나 같은 존재를 만들어내려는 호기심 많은 불경한 자에게 단서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나는 죽을 것이다. 지금 나를 불태우는 이 고통을 더는 느끼지 않겠고, 채워지지도 꺼지지도 않는 욕망의 먹잇감도 되지 않겠지.'


  어딘지 『터미네이터』의 마지막 장면이 연상되는 프랑켄슈타인의 마지막 말을 읽으며, 호기심에서든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든 우리의 활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다시 한번 심사숙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정말 괴물은 누구일까? 흉측하게 창조된 피조물일까? 그런 피조물을 만들어 낸 창조자일까?



※ 우주 @woojoos_story 진행으로 우주세문단 옵챗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우주세문단 #프랑켄슈타인 #메리셜리 #머묾


YES마니아 : 플래티넘 n*****a 2026.09.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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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짜 괴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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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모두가 제목을 알지만 정작 내용은 잘 모르는 책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이 나에게는 그런 책이었다. 대중 매체에서 소비되는 기괴한 괴물의 이미지만 보고 이 작품의 내용을 다 알고 있다고 착각했으나, 직접 읽어본 원작은 예상보다 훨씬 흥미로웠다. 묘사가 뛰어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의 전개가 몰입도를 높였다. 그리고 가장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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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모두가 제목을 알지만 정작 내용은 잘 모르는 책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이 나에게는 그런 책이었다. 대중 매체에서 소비되는 기괴한 괴물의 이미지만 보고 이 작품의 내용을 다 알고 있다고 착각했으나, 직접 읽어본 원작은 예상보다 훨씬 흥미로웠다. 묘사가 뛰어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의 전개가 몰입도를 높였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사실인데도 놓치고 있었던 점은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이 아닌, 그 존재를 창조해 낸 젊은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작품은 단순히 자극적인 공포를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생명을 창조한 인간의 오만함과 창조주에게 버려진 피조물의 고독을 꼼꼼하게 다룬다. 특히 책을 읽으며 의문이 들었던 지점은 창조주인 빅터의 무책임한 태도였다. 오랜 노력 끝에 탄생시킨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외모가 흉측하다는 이유로 보자마자 거부하고 회피하는 모습은 모순적으로 다가왔다. 더욱이 그 피조물을 보자마자 혐오한 이후로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은 그가 자초한 것이 아닐까 하는 싶을 정도로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꽤 오랜 기간 방관하는 대목에서는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조차 보이지 않았다.


피조물에게 그는 생명을 불어넣었으니 부모와 마찬가지인데 빅터가 보인 태도에서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많았다. 자신이 세상에 내놓은 존재에 대한 의무를 저버린 과학자의 모습은 부모의 역할과 책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책의 뒷표지에 적힌 "나는 본래 선하고 착했어"라는 문장은 이러한 맥락에서 작품의 핵심을 관통한다.


피조물은 처음부터 악한 존재가 아니었으며, 그가 원한 것은 창조주의 온기와 타인과의 소통뿐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만든 창조주에게 외면당하고 사회의 냉대를 받으면서 그의 내면은 점차 증오와 복수심으로 바뀐다. 이 비극적인 전개는 독자에게 과연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끝내 서로를 향한 증오와 복수로 파멸에 이르는 결말은 고전이 지닌 묵직한 힘을 잘 보여준다. 북극의 얼음 위에서 창조주 빅터의 시신을 마주하고 슬퍼하며, 스스로 화형대 위에 올라 생을 마감하겠다고 선언한 채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피조물의 마지막 모습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 비극적인 종막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생명과학의 윤리적인 문제를 일찍부터 고민하게 만든 경고 같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책임과 인간성을 잃었을 때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200년 전에 이미 날카롭게 예견한 메리 셸리의 통찰력과 필력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YES마니아 : 로얄 h****s 2026.09.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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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을 만드는 것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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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프랑켄슈타인'은 자연과학과 화학을 좋아하던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이다. 죽음과 생명을 탐구하던 빅터는, 해부실과 도살장을 뒤져가며 작업을 하여 창조물을 창조해낸다. 그러나 창조물의 기괴한 모습에 빅터는 그 자리에서 바로 도망쳐 나온다.이름도 없이 버림받은 창조물은 혼자 숨어지내고 사람들을 관찰하고 책을 읽는 등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창조물은 빅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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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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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은 자연과학과 화학을 좋아하던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이다. 죽음과 생명을 탐구하던 빅터는, 해부실과 도살장을 뒤져가며 작업을 하여 창조물을 창조해낸다. 그러나 창조물의 기괴한 모습에 빅터는 그 자리에서 바로 도망쳐 나온다.


이름도 없이 버림받은 창조물은 혼자 숨어지내고 사람들을 관찰하고 책을 읽는 등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창조물은 빅터를 찾아가게 되는데, 우연히 만난 빅터의 남동생 윌리엄이 창조물을 보고 괴물이라 칭하며 소리를 질러 죽이게 된다. 


빅터와 마주친 창조물은 본인과 비슷한 여성을 만들어 주길 요구하여 빅터가 작업을 시작하였지만 새로운 종족에 대한 두려움에 없애버린다. 이 모습을 지켜본 창조물은 빅터의 소중한 사람들을 하나둘씩 살해하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빅터까지 살해하려 했지만, 빅터가 먼저 죽게 되어 복수를 이루지 못하게 된다. 빅터의 시신 앞에서 그의 창조물은 오열하며 울분을 토해낸 뒤에 그대로 사라진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한다. 괴물은 누가 만들어내는 것인가. 빅터가 애초에 괴물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존재를 창조한 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외형적인 모습에 불편함을 느껴 도망친 것을 시작으로, 여럿의 시선이 창조물로 하여금 괴물로 만든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즉,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선입견이 그들을 괴물로 만드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빅터가 창조물을 만들어 냈듯이, 우리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개념으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 그리고, 아기가 성인이 되는 과정까지, 부모와 주변인들의 시선과 교육이 이 아이의 인격체를 만든다. 절대악을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 반대로 괴물이 되지 않게끔 하는 것도 우리이다.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거나 소외시키지 말고, 똑같이 바라보는 힘이 필요하다. 그들도 괴물이 되고 싶지 않을 지도 모른다.


h*******1 2026.09.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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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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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과학방_자아3부작 #도서지원과학의 발전으로 도전적인 실험으로 괴물을 만들어내는 과학자 이야기로 알고 있었다.다시 읽는 프랑켄슈타인은 또 다르게 다가왔다.'나는 인간을 창조하기 시작했다.'프랑켄슈타인은 그렇게 인간을 창조했고 자신이 만든 존재가 너무 끔찍해서 버리고 달아나 버린다.그 무책임함이 만들어낸 결과는 끔찍했다.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만들어낸 것을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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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과학방_자아3부작 #도서지원



과학의 발전으로 도전적인 실험으로 괴물을 만들어내는 과학자 이야기로 알고 있었다.

다시 읽는 프랑켄슈타인은 또 다르게 다가왔다.



'나는 인간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프랑켄슈타인은 그렇게 인간을 창조했고 자신이 만든 존재가 너무 끔찍해서 버리고 달아나 버린다.

그 무책임함이 만들어낸 결과는 끔찍했다.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만들어낸 것을 괴물, 악마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 만들어진 존재는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지적 존재로 성장해 나간다.

'내가 잘 설명하면 이해해 줄 거고 나를 받아 줄 거야'라고 믿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외적인 모습이 흉측하다는 이유로 괴물로만 본다.

그래도 복수를 꿈꾸고 살인을 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의 관심사에만 집중하고 손안의 작은 세상, 핸드폰 속 세상에 관심이 더 많은 요즘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같이 있지만 소외되고 관심받고 싶지만 외면당하는 모습 말이다.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그 괴물도 어쩌면 그렇게 소외된 것은 아닐까?

흉측한 겉모습만 보고 놀라고 정작 그 속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고, 정작 그 존재를 만든 사람조차 버렸으니 말이다.




나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어쩌면 우리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마음으로 나를 만들어 가고 있지는 않을까?

내가 진정 원하는 모습보다는 사회적 통념에 맞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것은 아닐까?

모든 사람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는 않을까?

프랑켄슈타인도 자신이 만든 존재가 모두가 바라는 존재였다면 그렇게 버리진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그 괴물도 보이는 외모만으로 평가받지 않았다면 정말 괴물로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p112

평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한 가지 연구를 꾸준히 해나가면 반드시 그 분야에서 대단히 숙달된 경지에 이릅니다.




p251

내가 떠나는 길은 자유로웠고 내가 사라져도 애도할 사람 하나 없었지. 내 모습은 흉측했고 체구는 거대했어.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내 목적지는 어디인가? 이런 질문들이 끊임없이 되풀이되었지만, 나는 그 답을 찾을 수 없었어.




p337

나는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기에, 돌아가는 바퀴처럼 끊임없이 새롭게 고문하는 이 숱한 충격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우주 진행으로 머묾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우주세문단 옵챗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우주세문단 #자아3부작 #머묾출판사

t********9 2026.09.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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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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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셸리의 삶까지 함께 바라보면 <<프랑켄슈타인>>은 오히려 외로움, 창조와 책임, 인간다움, 버림받음에 대한 아주 깊은 소설로 다가온다.메리 셸리(1797~1851)는 영국의 소설가로,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를 쓴 작가다. 어머니는 여성의 권리와 교육을 주장했던 사상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였지만, 메리가 태어난 지 불과 11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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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셸리의 삶까지 함께 바라보면 <<프랑켄슈타인>>은 오히려 외로움, 창조와 책임, 인간다움, 버림받음에 대한 아주 깊은 소설로 다가온다.


메리 셸리(1797~1851)는 영국의 소설가로,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를 쓴 작가다. 어머니는 여성의 권리와 교육을 주장했던 사상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였지만, 메리가 태어난 지 불과 11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윌리엄 고드윈에게 교육받으며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폭넓은 지적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1816년, 스위스 제네바의 빌라 디오다티에서 퍼시 셸리, 바이런 등과 머물던 중 비가 계속 내리고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괴담을 하나씩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때 메리 셸리가 떠올린 것이 바로 죽은 신체를 이용해 생명을 만들어내는 과학자의 이야기였다. <<프랑켄슈타인>>은 1818년 익명으로 처음 출간됐다.


특히 재미있는 점은 우리가 흔히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부르는 괴물의 이름이 사실은 창조자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이름이다. 작품 속 피조물은 이름조차 제대로 부여받지 못한 존재다.


——————


처음에는 프랑켄슈타인을

괴물을 만들어낸 한 과학자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내가 마주한 것은 괴물이 아니라

버림받은 한 존재의 외로움이었다.


메리 셸리는 아주 어린 나이에

생명을 만들어내려는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이 만들어낸 비극을 이야기했다.


빅터는 생명을 만들어냈지만

자신이 만든 존재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다.


어쩌면 이 소설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괴물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것을 외면하는 인간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피조물은 처음부터 악하지 않았다.

사랑받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고 싶었고,

자신도 다른 사람처럼 살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겉모습을 보고

그를 괴물이라 불렀다.


그를 괴물로 만든 것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악함이 아니라

계속되는 거절과 외로움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나 자신에게도 질문하게 되었다.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상처일까, 외면일까,

아니면 아무도 손 내밀어주지 않았던 시간일까.


메리 셸리는 과학의 힘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창조한 사람에게는 책임이 따라야 하고,

인간에게는 서로를 바라볼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이 작품은 과학의 발전과 함께 인간의 책임과 공동체에서의 소외를 묻는 작품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괴물’이라는 말을 쉽게 사용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조금 서툴다는 이유로,

상처가 많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괴물처럼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는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작은 프랑켄슈타인이 하나씩 있는지도 모른다.


상처받았지만 살아가고 싶었던 마음,

버림받았지만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


그래서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받지 못한 인간이 얼마나 외로워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오래 남는다.


그리고 책을 덮은 뒤에도

한 문장이 마음에 남는다.


우리를 괴물로 만드는 것은

태어난 모습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들어낸 이야기보다, 사랑받지 못한 존재가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o*******9 2026.09.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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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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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에찬 과학자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시체를 조합하여 생명을 불어넣는 실험에 성공합니다.하지만 자신이 만든 존재의 흉측한 외모에 공포와 혐오를 느끼고 그를 버리고 도망치죠.홀로 남겨진 창조물은 인간의 언어와 감정을 배우고 사랑받기를 원하지만,사람들은 그의 외모만으로 그를 배척하고 폭력을 가합니다.결국 사랑받고 싶었던 존재는 상처와 분노 속에서 자신의 창조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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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에찬 과학자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시체를 조합하여 생명을 불어넣는 실험에 성공합니다.하지만 자신이 만든 존재의 흉측한 외모에 공포와 혐오를 느끼고 그를 버리고 도망치죠.

홀로 남겨진 창조물은 인간의 언어와 감정을 배우고 사랑받기를 원하지만,사람들은 그의 외모만으로 그를 배척하고 폭력을 가합니다.결국 사랑받고 싶었던 존재는 상처와 분노 속에서 자신의 창조주에게 복수를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빅토르는 가족과 친구를 잃고,자신이 만든 존재를 끝까지 쫓다 죽음을

맞이합니다.




머묾 출판사의 자아 3부작 시리즈

 <이방인>,<올랜도>에 이어 마지막으로 <프랑켄슈타인>을 읽었습니다.



<이방인>의 뫼르소가 부조리한 세상속에서 마주하는 '홀로서는 자아'를


<올랜도>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아'를 그렸다면,


<프랭크슈타인>은 '관계와 공감의 부재속에서 고립되고 파괴되는 자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빅토르가 만들어낸  존재에게는 이름조차

없습니다.

그저 괴물이라 불릴 뿐이죠.


그런 그가 가장 간절히 원했던 것은

특별한 능력도,위대한 삶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줄 한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공감을 받으며 살아가면 내 악한

욕망은 사라지겠지!"(p283)



이 말을 읽으며

'자아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공감과 관계 속에서 자라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랑받고 싶은 욕구,인정받고 싶은 마음,

외로움과 분노.

어쩌면 이런 감정들은 나를 이루는 자아의

중요한 일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문장은 창조물의 마지막 말이었어요.


"쓰라린 회한의 가책이 죽음으로 영원히 봉합될 때까지 상처를 끊임없이 쑤셔댈

테니까."(p417)



누군가에게 버림받은 존재가 결국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가 되어버린

이야기.


<프랑켄슈타인>을 읽으며 

한 사람의 자아가 어떻게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또 관계의 부재 속에서 무너질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를 인간답게 살아가게 하는 것은

어쩌면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작은 공감

인지도 모르겠다고.



#프랑켄슈타인

#머묾자아3부작 

#유여사책이야기🗒️  

#책스타그램 

 @meomum_books


🎉도서이벤트에 당첨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정성을 담은 리뷰

@shiningmybook




m******5 2026.08.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