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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죄'보다도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더 쉽게 심판받는 것은 아닐까. ㅡ 가끔은 진심보다 '보여지는 모습'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사회가 정해 놓은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우리는 쉽게 이상한 사람으로 규정되고, 판단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내가 이상한 걸까.' '딴 사람들처럼 똑같이 살면 될 텐데, 괜히 이렇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이방인> 속 뫼르소의 삶을 따라가며 평범함의 기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마음 속 질문 하나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나는 지금 정말 나답게 살아가고 있는걸까' ㅡ 1️⃣ 간단한 줄거리 <이방인>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뫼르소의 삶과 그를 둘러싼 사회의 시선을 보여줍니다. ㅁ 1부 : 태양 아래서 벌어진 비극 주인공인 뫼르소는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양로원으로 향합니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눈물을 흘리거나 슬픔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장례식을 마친 다음 날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해수욕을 즐기고, 여자친구를 만나며, 이웃 레몽과 어울립니다. 이후 레몽의 싸움에 휘말린 뫼르소는 해변에서 마주친 아랍인과 대치하게 되고,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과 숨 막히는 열기 속에서 방아쇠를 당기게 됩니다. 한 발의 총성, 그리고 이어진 네 발의 총성. 그 순간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ㅡㅡㅡ ㅁ 2부 : 사회가 규정한 정상의 기준 아랍인을 살해한 뒤 뫼르소가 재판을 받는 과정을 다룹니다. 하지만 법정과 사회는 그가 저지른 살인이라는 죄 자체보다도,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점, 장례식 다음 날 여자친구를 만났다는 점 등 그의 냉담하고 남들과 다른 태도를 더 큰 문제로 삼기 시작합니다. 결국 뫼르소는 비정한 인간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죽음을 앞둔 그는 세상의 부조리와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게 됩니다. ㅡ 2️⃣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자유를 찾아서 세상은 그의 죄보다도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더 크게 문제 삼습니다. 사람들은 진실보다 '평범함'이라는 기준을 더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뫼르소의 재판 과정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도 놀라울 만큼 닮아 있어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카뮈는 절망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삶은 본래 정해진 의미를 갖고 있지 않으며, 우리는 그 부조리를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남들의 시선에 맞춰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나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 이 책이 특히 인상 깊었던 이유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보다 '나는 지금 누구의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었습니다. ㅡ 3️⃣ 소장하고 싶은 머묾 자아 3부작 감각적이고 예쁜 디자인의 표지는 물론, 작가 소개와 작품 해설, 깊이 있는 해석까지 함께 수록되어 있어 고전 문학이 어렵게 느껴졌던 분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특히 작품을 읽은 뒤 이어지는 해설은 <이방인>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전을 처음 읽는 분들에게도 좋은 가이드가 되어 줄 책이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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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머묾 세계문학 자아 3부작 알베르 카뮈/(지은이),한수민/(옮긴이)
"오늘, 엄마가 죽었다."
속직히 말하자면, 우주세문단에서 만난 『이방인』은 낯설은 고전에 불과했다 지금에 와서 그것도 ‘머묾’ 출판사에서 새롭게 옷을 입고 나온 이 책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혹은 퇴근 후 혼자 맥주 한 캔을 딸 때 문득문득 찾아오던 묘한 공허함. 그 이름 모를 감정의 실체를 뫼르소를 통해 마주한 기분이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이토록 건조하고 유명한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의 주인공 뫼르소는 참 이상한 사내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밀크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운다. 바로 다음 날엔 여자친구와 해수욕을 가고 코미디 영화를 보며 데이트를 즐긴다. 심지어 자신을 사랑하냐는 여자친구의 물음에 "아마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며 무덤덤하게 진심을 내뱉는다.
우리가 흔히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감정의 문법에서 그는 철저하게 비껴가 있다. 세상은 그런 그를 감정 없는 괴물 취급을 한다. 아랍인을 죽인 살인 사건의 재판에서조차, 사람들은 그의 범행 동기보다 "장례식에서 왜 울지 않았는가"에 더 집착하며 그를 벼랑 끝으로 몬다.
책을 읽는 내내 “뫼르소는 도대체 왜 저럴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엔 화살이 나를 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우주세문단에서 던져준 질문처럼 "나는 세상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생활을 하는 보통의 남자로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진짜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간다. 굳이 슬프지 않아도 슬픈 척 애도의 표정을 지어야 하고, 피곤해 쓰러질 것 같은 회식 자리에서도 억지웃음을 지으며 분위기를 맞춰야 한다. 속으로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 상사의 의견에도 고개를 끄덕인다. 사회가 요구하는 적절한 리액션을 보이지 않으면 이 조직에서, 이 사회에서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보이지 않는 공포 때문이다.
하지만 뫼르소는 달랐다. 그는 슬프지 않을 때 슬픈 척하지 않았고, 느끼지 않는 것을 느낀다고 포장하지 않았다. 그가 받은 사형 선고는 살인에 대한 죗값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 무대에서 거짓된 감정 연기를 단호히 거부한 대가였을지도 모른다.
머묾 출판사에서 이 책을 '자아 3부작'으로 묶어낸 이유가 짐작이 든다. 남들이 원하는 ‘적당히 포장된 나’로 살 것인가, 세상의 비난을 받더라도 투박하지만 ‘진짜 나’로 남을 것인가. 카뮈가 그려낸 뫼르소의 고독한 뒷모습은, 오늘도 사회생활이라는 명목하에 나 자신을 속이며 살아가는 나의 비겁함을 예리하게 찌른다.
-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 억지웃음과 감정 노동에 지쳐, "지금 내 삶은 진짜 내 것인가" 회의감이 드는 직장인들 - 세상이 정해놓은 '평범'의 잣대와 암묵적인 룰 속에서 왠지 모를 답답함과 소외감을 느껴본 분들 - 군더더기 없이 건조하지만, 폐부를 날카롭게 찌르는 문장의 힘을 느끼고 싶은 분들
- 마음에 남은 문장 및 사유 기록 - "그는 자기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자 사회는 즉각 그가 위협적인 존재라고 느낀다."
- 사유 -
우주@woojoos_story 진행으로 우주세문단 옵챗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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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세문단 / 자아3부작🌿 《이방인》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어느 정도 연극을 한다. 슬픔 앞에서는 울어야 하고, 죄 앞에서는 반성하는 표정을 지어야 하며, 때로는 마음에 없는 말과 행동으로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속 뫼르소는 그 연극을 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사회가 기대하는 슬픔을 연기하지 않고, 재판장 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꾸며내지 않는다. 그는 냉정한 인간이었을까. 아니면 누구보다 자기 감정에 솔직한 인간이었을까. 사람들은 뫼르소의 침묵과 무표정에 의미를 붙인다. “왜 울지 않았는가” “왜 반성하지 않는가” “왜 남들처럼 행동하지 않는가.” 결국 그는 살인 그 자체보다, 사회가 요구한 감정을 연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더 가혹하게 심판받는다. 뫼르소는 세상이 인간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세상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그저 무관심할 뿐이다. <이방인>은 끝내 우리를 불편한 질문 앞에 세운다. 우리가 믿는 도덕과 슬픔과 죄책감은 진짜 내 감정인가, 아니면 사회가 요구한 표정인가. 뫼르소가 이방인이 된 이유는 세상 밖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의 연극에 끝내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고 있는가 세상과는 어느정도 타협을 하되 중심에는 내가 있어야 한다. 나의 세상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야 행복함과 만족감을 느낀다. 나는 세상이 원하는 방식과 내가 원하는 방식 그 중간 어디쯤에서 살아가고 있다. 알베르카뮈 머묾출판사 @meomum_books 우주@woojoos_story 진행으로 우주세문단 옵챗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이방인 #알베르카뮈 #머묾출판사 #우주세문단 #고전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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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들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해야 하는가. 모든 아들들은 경제적 여력이 부족해도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서는 안 되는가. 모든 아들들은 어머니의 장례 바로 다음 날에 이성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안 되는가. ‘안 되는가’와 ‘안 된다’ 이 둘 사이에는 ‘이성’이라는 노력과 이해가 담겨 있다. 하나는 개인의, 또 다른 하나는 전체를 대표하는 복수의 사람들의. ⠀ 일 대 다수라는 것만으로 이 둘 사이에 우위를 정할 수 있을까. 사회를 위해 개인은 희생하고 무시당해야 하는가. 애초에 사회란 무엇이며, 사회를 ‘위한다’는 것은 누가 만든,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절대 기준이 될 만한 것인가. ⠀ #이방인 ( #알베르카뮈 지음 #머묾 출판) 속 뫼르소는 읽는 내내 ‘얘는 왜 이래?’라는 의문이 끊이지 않는 인물이다. 자신은 오늘을, 내일을, 현실을 보고 있다고 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현실은 그의 현실 속 우리가 더 눈이 가는(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에서 멀어져 있다. 하지만 그는 직장이 있고, 친구가 있고, 타인에게 (최소한의) 관심이 있고,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연인도 있다. ⠀ 그렇다면 그 주변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인정하고 받아주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들도 ‘이상한 것’일까. <이방인> 속 사회에서는 뫼르소를 이상함을 넘어 문제가 있다고, 죄를 짓고 있다고(지을 것이라고), 사회에서 분리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당방위로 바라봐 질 수도 있는 가능성조차 엄마의 장례식에서 슬퍼하지 않았고, 엄마에게 향했어야 할 연민과 사랑이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몸과 마음으로 향했다는 것으로 소멸되는 사회.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은 뫼르소, 사건이 아닌 다른 것으로 죄를 결정짓는 사회. 무엇이 더 이상한가? ⠀ 카뮈의 그 유명한 ‘부조리’라는 개념이 담겨 있는 소설 <이방인>을 읽기 전에 겨우겨우 <시지프 신화>를 읽었더랬다.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 자신의 신념을 지켜 결국 평생 반복하는 벌을 받은 시지프.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벌을 받는 시지프,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벌을 피한 시지프. 과연 누가 행복할까. 누가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 <시지프 신화>처럼 <이방인>에서도 개인과 사회, 제도의 엇나감, 그것에서부터 발생하는 부조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결국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살아나가야 하는 것은 본인인데,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옳지 않은 것이라 하니 무엇을 따라야 이 부조리함이 해결될까. 세상이 부조리함으로 가득하다고, 이 부조리함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냐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냐고 <이방인>은, 카뮈는 묻고 있다. ⠀ 책을 읽으면서 뫼르소의 이질감이 힘들게 했다면 책을 덮고 나서는 사회의 이질감이 뒷맛을 찝찝하게 만든다. 애써 외면해 오려 했던 것을 기어코 마주한 기분. 뫼르소가 남다른 것은 이제 문제가 되지 않는다. ⠀ 발견해낸 이 부조리함에서 우리 스스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내는 것이 정녕 중요한 문제였다. ⠀ 끝없이 바위를 밀어올리는 벌을 받을 것인가. 딱 한 번 눈감고 사회의 안락함을 누릴 것인가. 내 안에 있는 나는 어떤 ‘시지프’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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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을 읽으며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왜?'다. 왜 뫼르소는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을까? 엄마를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 왜 레몽과 친구가 되고 그의 옳지 못한 행동에 동참했을까? 왜 다시 뜨거운 햇빛 속을 걸어 그 샘가로 가서 아랍인에게 총을 쐈을까? 왜 자기 삶에 의미를 두지 않을까? 그리고 도대체 왜 그 검사는 뫼르소의 죄를 확대 해석해서 존속 살인자와 맞먹는 극악무도한 살인자로 만들었을까? 하지만 '왜?'라는 질문들을 따라가 보니 결국 검사의 생각에 맞닿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만약 그 법정에 배심원으로 있었다면 나 역시 뫼르소가 사형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뫼르소는 진짜 나쁜 사람인가? 책을 읽는 내내 뫼르소가 불편했다. 삶의 의욕도 없고, 다른 사람을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지도 않고, 사회적 통념과는 거리가 먼 사회의 '이방인'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그런 무심함이 불편했다. 책의 주인공이 아니었다면 '사회 부적응자'라고 비판했을 것이다. 왜 이렇게 뫼르소가 불편했을까? 그건 아마 나와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람이라면 이래야 한다'라는 기준에 맞닿아 있지 않아서 불편했다. 하지만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걸 종종 간과해 버린다. 그리고 뫼르소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엄마를 사랑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자기 삶을 의미 없이 산 것도 아니었다. 뫼르소는 엄마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았지만 그건 엄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뫼르소는 중요한 순간마다 엄마를 생각했고, 돌아가시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엄마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엄마는 죽음과 아주 가까이에 있었으면서도, 오히려 그곳에서 행방감을 느꼈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기세를 갖추었던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아무도, 그 누구라도 엄마의 죽음에 대해 눈물을 흘릴 권리가 없는 것이다.' 뫼르소는 자기 삶을 좋아했고, 나름의 즐거움과 확신을 가지고 살았다. 뫼르소는 항소와 면책을 생각하며 살기를 원했다.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당신은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어서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없지. 나는, 나야 겉보기에는 양손에 쥐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야. 그러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에 대한 확신, 모든 것에 대한 확신, 당신보다 더 분명한 확신, 내 삶과 앞으로 다가올 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그래,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이것뿐이야. 하지만 적어도 이 진실이 날 붙잡고 있는 한, 나는 그 진실을 움켜잡고 있어.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언제나 옳을 거야.' 뫼르소는 엄마를 사랑했고, 삶을 사랑했다. 단지 그 방식이 보통의 사람과는 좀 다를 뿐이었다. 사람들은 자기와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배척하고 고립시키는 경우가 많다. 뫼르소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공감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 '나는 그를 붙들고 싶었다. 그의 공감을 원한다고, 그러니까 변호를 잘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에 대한 그의 공감을 바라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동안 타인을 이해한다고, 공감한다고 말했던 과거의 내가 얼마나 교만했는지 새삼 느꼈다. 앞으로는 선입견을 버리고, 잘못된 일이 아니라면 나와 다르다고 틀렸다고 하지 말고, 다정하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죽음 앞에서도 세상에 손을 내밀었던 뫼르소처럼 말이다. '또한 나 역시, 나도 모든 것을 다시 살아낼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다. 마치 좀 전의 그 엄청난 분노가 내 안의 악덕을 씻어내고 희망을 비워내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온갖 신호와 별들로 가득한 그 밤의 어둠 앞에서 난생 처음으로 이 세계의 다정한 무심함에 가슴을 열었다. 세계가 그처럼 나와 닮아 있었고 결국 내 형제 같다는 것을 터득함으로써, 나는 과거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결되기 위해서, 내가 덜 외롭게 느끼기 위해서, 내 사형이 집행되는 날에 많은 구경꾼들이 오고 그들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이하기를 바라는 것, 그것만이 내게 남은 마지막 일이었다. ※ 우주 @woojoos_story 진행으로 우주세문단 옵챗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우주세문단 #이방인 #알베르카뮈 #머묾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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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가, 잘 모르겠다.' (pg.29) '이방인'은 강렬한 첫문장처럼, 어머니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가 죽었는데도 슬퍼하지도 않고, 정확한 사인이나 사망 시각, 그리고 실제 나이 등 그 어떤 것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어머니의 장례식 후에는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여자와 코미디 영화를 보며, 질 나쁜 이웃 레몽과 친구가 되고, 레몽의 싸움에 연루되어 한 아랍인을 총으로 쏘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뫼르소는 재판을 받게 되는데, 어머니의 죽음부터 그 후의 일들로 인해 결국 사형을 받는다. 뫼르소는 '이방인'의 사전적 의미인 다른곳에서 온 사람, 이라는 뜻처럼 일반적인 범주에서 벗어나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지녔다. 어머니의 죽음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애도의 기간 없이 바로 일상을 즐기고, 여자친구 마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도 마리가 원한다면 결혼을 한다고 하며, 아랍인을 살해한 이유에 대해 태양이 뜨거워서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나 살아가는 뫼르소는 사회에 대해 무관심하며, 본인의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뫼릐소의 재판은 아랍인을 살인한 행위보다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태도에 의해 판결이 내려진다. 보편적인 규범과 사회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장 무거운 판결인 사형을 받게 되는데, 이는 사회적 부조리가 담겨있다. 나는 한때 이방인처럼 살아가던 때가 있었다. 어릴적 외국에서 살았던 경험 덕에 한국에서 받아들여지는 기준보다는 더 개방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이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뫼릐소와는 조금 결이 다르긴 하지만, 한국 사회가 정한 기준과 선에서 벗어난 나의 태도들이 뫼르소가 받았던 시선과는 비슷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다만, 나는 이런 사회에 순응하여 그 기준을 따라가며 살아가게 되었고, 뫼르소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갔다는 점이다. '이방인'은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의 모습과 개인의 실제 모습의 차이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듯하다. 나처럼 사회의 요구에 순응하는 자가 대부분이겠지만, 이런 세상 속에서도 뫼르소처럼 자신의 모습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가는 우리가 항상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부분인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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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도서지원 우주세문단을 통해 <이방인>을 재독했다. 아마 그때도 뫼르소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의 냉소적인 모습도, 여자 친구가 결혼하자고 하니 그러겠다는 태도도, 사형 선고를 받고도 남의 일처럼 여기는 모습도 모두 나의 상식 저편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해할 수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도 뫼르소를 이해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 엄마의 장례를 치렀던 날에 나를 비추던 바로 그 뜨거운 햇빛이었다. 나는 그 행동이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한 걸음 더 움직인다고 해서 태양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사전에서 이방인이란 뜻을 찾아봤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이었다. 일반 상식선 밖의 모습을 보여주는 뫼르소가 이방인인 걸까? 아니면 보통의 기준으로 사는 우리들이 이방인인 걸까? 이 보통의 기준은 꼭 지켜져야 하는 것일까?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는 사람은 상식적이지 않는 사람일까? 결혼하자는 여자 친구의 말에 당신이 원하니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는다고만 볼 수 있을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뫼르소의 삶이지만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다름은 인정해야 하는 것이지 나와 다르다고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는가? 이방인이 되지 않으려 세상의 상식 속에 숨어 나의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세상의 흐름에 맡겨 살아가더라도 진정한 내 목소리는 낼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어렵고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 속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주님 진행 출판사 도서 지원으로 우주세문단 단톡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머묾출판사 #우주세문단 #자아3부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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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을 읽고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처음 마주했을 때는 조금 낯설었다. 주인공 뫼르소의 무심한 태도와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모습이 차갑게 느껴졌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그의 모습이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세상이 정해놓은 방식대로 살아가기를 거부하는 모습처럼 다가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감정을 ‘이렇게 표현해야 한다’는 기준 속에 담아두고 살아간다. 슬퍼해야 할 때 슬퍼해야 하고, 사랑한다면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모습으로 감정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뫼르소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꾸미지 않았고, 세상이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바꾸지도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순간에 내 마음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왔을까. <<이방인>>은 나에게 ‘다르게 살아간다는 것’과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한 책이다. 읽고 나서도 뫼르소의 모습보다 오래 남은 것은 하나의 질문이었다. 나는 지금, 정말 나의 삶을 살고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모두 어느 순간 세상 속에서 조금씩 이방인이 되어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 질문 하나가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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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클래식, 머묾에서 세계문학의 두 번째 큐레이션 ‘자아 3부작’ <프랑켄슈타인><이방인><올랜도>가 박스세트로 출간되었습니다. 좋은 기회로 이방인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방인』은 여러번 읽은 작품으로 인간의 자유와 삶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끝나는 책이 아니라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읽어 보면 또 다른 느낌을 받을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작품은 유명하고 강렬한 첫 문장.“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합니다. 책은 너무나도 유명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입니다. 좋은 기회가 되어 다시 읽었습니다. 카뮈는 프랑스의 철학자, 작가, 신문 기자이고 1907년 수상자인 러디어드 키플링에 이어 1957년 역대 두 번째로 43세의 나이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자 프랑스 대표 소설가입니다. 주인공 뫼르소가 처해진 상황과 그의 정신세계를 들여다 보는 불멸의 고전입니다.
뫼르소에게 강렬한 태양은 어떤 것일까요? 벗어 날 수 없이 압박해 오는 세상을 표현한 걸까요? 소설은 전반부 주인공 뫼르소의 아랍인 살해를 중심으로 그리고 후반부는 재판과정을 담았습니다. 뚜렷한 이유 없이 강렬한 태양이 싫어서 아랍인에게 총을 쏜 것은 주인공이 비극으로 치닫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 뜨거운 햇볕에 볼이 타는 듯했고 땀방울이 눈썹에 맺히는 것을 느꼈을 때 그는 머리가 아팠습니다. 이마의 모든 핏대가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지끈거렸다고 까지 했습니다. 그 상황을 벗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그냥 자포자기 하듯 모든 상황을 받아들입니다.
내가 돌아서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날 터였다. 그러나 태양의 강렬함으로 진동하는 해변 전체가 내 뒤에서 나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p.110
인간의 부조리한 사회에서 소외된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 별다른 슬픈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 독특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주인공의 이름 '뫼르소(Meursault)'는 '살인(meurtre)'과 '태양(soleil)'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뫼르소는 알제리 사람으로, 늙은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내고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장례식에서 보듯 어머니의 정확한 나이조차도 모르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생활의 변화를 거부하는 인물로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는 문명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평범한 인간이었던 사람이 살인자 뫼르소가 되어 가는 과정이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스토리는 일어난 사건들을 하루의 순서에 따라 풀어가고 어머니의 죽음에서부터 시작해 그리고 사형선고를 받게 됩니다. 이야기에서 제목이자 가장 중요한 핵심은 뫼르소가 재판을 통해서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살인할 의사는 전혀 없었지만 살인을 하게 된 일,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을 관객이 구경하듯이 참관합니다.
누구보다도 절실한 상황에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는 그는 사람들의 말투나, 신문기자들의 행동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추측하기도 하는데 자신의 일을 타인의 일로 그려지는 카뮈의 독특한 방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여러번 읽은 작품이지만 주인공 모르소의 과거, 재산, 가족관계 등은 알수 없었습니다. 카뮈의 인생 자체가 어쩌면 이방인의 삶이었을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알제리의 프랑스 인으로 어느 곳에서 뿌리 없는 이방인일 수 없었던 가난 하지만 지식이었던 저자의 삶도 작품을 통해 연상됩니다. 오랜만에 다시 읽었지만 매력적인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명작 고전을 읽는 즐거움 다음 시리즈도 기대가 됩니다.
출판사 제공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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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변호를 잘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에 대한 그의 공감을 바라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p119) [이방인]을 읽는 내내 주인공 뫼르소의 성격유형이 궁금했습니다.문득 '뫼르소는 ISTP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뫼르소는 사회적 관습이나 도덕적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고,오직 현재의 감각적 진실과 논리에만 반응하는 극단적인 형태의 성향의 인물입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마지막 모습을 보지 않겠다고 말하는 장면이나,여자 친구 마리의 청혼에 "당신이 원한다면 결혼할 수 있다"라고 담담하게 대답하는 모습에서도 뫼르소의 성격이 드러납니다. 법정에서도 그는 자신을 변호사거나 사회적 규범에 맞춰 연기하려 하지 않아요. 변호인이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피곤함이나 졸음을 억누르려고 애썼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아니요. 그건 거짓말이니까요." 라고 답해요. 해변을 혼자 걷던 뫼르소는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볕과 아랍인이 든 칼날에 반사된 불빛 때문에 눈이 멀 듯한 감각적 압박을 느껴요.자신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겨 아랍인을 살해하고,쓰러진 시신에 네 발의 총탄을 더 쏩니다. 하지만 법정의 관심은 살인의 진실이 아니었습니다.어머니의 장례식에 밀크 커피를 마셨는지,눈물을 흘렸는지와 같은 도적적 잣대로 뫼르소를 냉혈한으로 규정합니다. 뫼르소는 끝내 거짓된 감정을 연기하지 않았고,가식을 거부했어요.결국 그는 사형을 선고 받아요. 결국 뫼르소는 사회와 정서적으로 끝내 어울리지 못한 '이방인'이 됩니다. 🔖p201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인생 전체에 걸쳐,내 미래의 저 깊은 심연으로부터 한 줄기의 어렴풋한 바람이,내게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의 세월을 가로질러 내게로 불어 올라 오고 있어.(…) 당신이 살인 죄로 기소 되어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집행을 당하게 된 듯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그게 과연 정으로운 재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뫼르소는 살인보다 사회적 연기를 거부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그는,가장 순수한 ISTP처럼 보였습니다. #이방인-알베르카뮈 #책스타그램 #머묾자아3부작 @머묾출판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감성리뷰 @shiningmyboo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