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씩 신문에서 타 종교에 대한 배타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읽고는 합니다. 저 역시 캐톨릭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입니다만 한국인들의 배타성에 가끔씩은 마음이 아파올 때가 있습니다. 명동성당 100주년 행사에서 법정스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이런 기회를 주신 명동성당측에 감사드리고 저에게 이곳에 설수있게 해주신 천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타 종교에 관한 맹목적 배타성은 그 종교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불교를 단순히 불상을 숭배하는 또 하나의 일신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하다못해 불교 신자분들 중에도 이러한 오해를 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기에 오늘날의 불교에 대한 일반인들의 오해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교는 가르침입니다. 붓다가 우리에게 전하는 자비의 메세지입니다. 개개인의 해탈과 고통에서의 해방을 위해 위대한 스승께서 주시는 사랑의 메세지인 것입니다. 선의 나침반은 이런 의미에서 매우 가치있는 책입니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수 있는 기회가 적은 불교에 관한 매우 성실하고 체계적인 양서입니다. 점집이나 절이나 비슷한곳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계신분들의 오해를 바로 잡을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차근차근 읽다가 보면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을 돌아보는 기회가 될 그런 책입니다. 이책이 종교간의 오해에서 오는 불미스러운 일들을 막는데 많은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독자여러분 성불하십시요.... |
|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를 처음 읽고 그의 알고자 하는 마음과 그 알 수 없는 마음이 나에게도 있음을 느꼈다. 자신의 물음에 따라 스스로 고행의 길에 접어선 그의 결심에 나는 작은 감동, 긴 여운을 갖게 되었다. 쉽게할 수 없음에 그의 결심은 더욱 크고 값져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적으로 선의 나침반이라는 책으로 옮겨졌다. 그 책을 읽은지는 오래되었다. 알게 된지도 오래되었다. 지금 숭산 스님은 서거하셨고 그로 인해 해외포교에 대한 문제점을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글을 보기도 했지만 나는 선의 나침반을 마음의 양식 삼아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읽을 것이다. 숭산 스님의 정신과 교류를 할 것이다. 사실. 한 번 읽고 리뷰를 쓰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는 바 아무리 꼼꼼하게 두어 번 읽었다 해도 역시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좋은 책은 누구에나 좋을 수밖에 없다. 읽을지 말지로 망설일 그 1%를 위해서 나는 쓰고 있는 셈이다. 누구에게나 마음을 안정시키는 책이 있겠지만 나는 주로 불교관련 서적에서 힘을 얻곤 한다. 결국 선의 나침반은 불교사나 교리,경전 등에 관한 책으로 나를 이끌었고 앞으로도 그 깊이와 폭을 넓히게 될것이고 우리의 대승이신 원효나 의상 등의 대각자들로 이어져 결국 우리 역사 속 불교의식까지 맞물려 엄청난 파급효과를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진리에 대한 갈급함을 더 이어갈 것이고 그 안에서 보상도 받을 것이고 또다시 다른 무언가로 인해서 계속 고통을 받을 테지만 분명 삶을 대한 고귀한 가치와 깨달음은 얻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사람은 태어난 이상 생노병사며 늘상 겪는 혼돈을 당연시하는 자세를 되찾는다. 그리고 평안을 얻는다. 물론 틱낫한이나 달라이라마라는 대승을 통해 얻기도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법정 스님과 몇 몇 분들을 제외하고는 번역본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으니 이 책은 더욱 귀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현각이 한국어가 부족해 도움을 받긴 했지만. 그 마음은 보통 번역자보다 더 컸으리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잊지 않고 떠올리는 것. 그것은 결국 나에 대한 믿음과 삶에 대한 애정이지만. 결국 나로 시작한 만물과 만인에 대한 사랑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한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 눈을 감기 전까지 계속될 끊임없는 나 자신에 대한 질문과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불합리, 또는 인간의 공통된 속성이 결국 어디로 향하고 그 속성으로 인해 우리가 어떤 고통을 받게 되는지까지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귀를 기울인다. 내 자신에게. 그것이 선이 나침반이 되어 나를 이끌 때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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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살면서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아는가...? 적어도 이런질문을 받는 사람들은 질문한 사람이 친한 사람이 라면 몰라도 다른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하면 분명 이사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피해 버릴 것이다. 만약에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어떨까..?화장실에서 일보면서 생각 할수도있고 혹은 죽음 직전에 생각 할 수 있을만큼....언제 어느덧 불쑥 엄습해 오는 생각일 것이다...이책은 바로 그런 우리의 목마름 진실이 무엇인지...과연 진실이란 존재하는 것일까...단지 맹목적인 믿음 만이 있는 것이지....그래서 이교들이 생겨나고 아픔을 덜러 가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한 아픔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어떤 특정 종교에 대해서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우리의 생각을 정리하자는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열심히 수행해서 오직'모를뿐 으로 돌아가면 이미 마음이 없는 것이다. 이미 마음이 없는데 경전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아프지 않은데 약을 먹을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즉,부처님의가르침이 필요 없다는 예기이다.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마으이 있다고 생각하고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한다.그 때는 약이 핑요하다. 경전이 필요하다. 그러나 수많은 경전들과 연구서들은 마음을 그저 설명하고 있다, 오로지 마음에 대한 어떤생각들을 담고 있을 뿐이다. 마치 아주 맛있는 음식을 찍어 놓은 사진과 같다.아무리 잘찍어 놓아도 만족하지 못한다. 배고프면 직접 먹으면 된다. 그래야만 배고픔의 괴로움 에서 벗어 날 수있다. 그러나 선의 가르침은 '마음없는 마음'이다 |
| 책이 2권으로 나뉘어 있는 줄도 모르고 읽었던 책이지만, 아직까지도 내 기억속에 느낌은 선명하다. 붓다란 책에서도 나와 있듯이 싯다르타는 오로지 본질을 추구하였고, 모두를 사랑하려고 하였다. 그러한 말씀들을 불교라는 종교로 묶은 것은 후대의 인들이며 그 후 불교는 많이 변했다(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아직 많이 빗나간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왜 자꾸 네가 옳다, 내가 옳다 따지려 들고, 나누려 드느냐..본질은 하나다.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며 세상을 살아가게 할수 있을 까..하느냐다. 그 안에는 야망이 큰 사람도 있고, 게으른 사람도 있으며, 좋아하는 사람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야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간의 본성이란 너무나 복잡하고 오묘해서 심리학이나 의학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해 낼수가 없다. 그러니까, 수많은 인간의 욕망들을 조절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종교란 것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종교들(불교,기독교,천주교,이슬람교..등등)은 이러한 본질에 얼마나 충실한 걸까? 또다시 너의 가르침 옳다, 나의 가르침이 옳다 주장하고 있지 않는가..결코 싯다르타는 다른이의 깨달음이 그르며, 자신의 깨달음이 옳다 하지 않았다. 고통을 알고, 고통의 원인을 알고, 고통의 소멸을 알며, 고통의 소멸을 향한 길을 아는 것이 깨달음을 얻는 길이며, 이로써 윤회의 고리를 끊고 괴로움을 벗어나는 것이 목표였다. 붓다는 다른 종교 교리들을 꼬집기는 하였으나, 그것이 그르고, 내것이 옳다 하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한 본질 추구에 있어서 나에게 불교는 하나의 정신이다. 여기 선의 나침반은 그 뜻을 그대로 펴고 있는 듯하다. 이 책에는 재밌는^^; 깨달음의 3가지 단계가 나와 있다. 1. 산은 물이요, 물은 산이로다. 2. 산도 없고, 물도 없다. 3.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깨달음을 얻은자는 모두, 같은 붓다의 깨달음을 가질수 있고, 그가 진짜 깨달았는지 그렇지 못한지는 이야기를 하면 알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깨달음의 과정중에 벽 넘어를 볼수있는 투시 능력같은 것은 부수적으로 딸려오는 능력인데, 그것의 신비함에 빠져들어 자신을 내세우고 한계를 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정리하면서, 조금은 오래전에 읽었던 이 책과 함께 했던 아련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어서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