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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받는 지배자, 한국의 미국유학파 김종영 돌베개/2015
‘지배받는 지배자’라는 말은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계층 이론에서 ‘지식인’을 일컫는 말이다.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지식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지식인은 지배층에 속하지만 자본가에게 지배를 받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배받는 지배자>는 저자가 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 재단의 지원을 받아, 2009년부터 15년간 1단계 50명과 2단계 80명을 심층면접을 통해 한국 대학과 지식 공동체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종단연구의 결과물이다.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지배자로,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미국 유학파들에 대한 연구다. 이들은 왜 미국 유학길을 선택했으며, 미국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지배자로 활동하게 되는지 현지 인터뷰를 중심으로 파헤쳤다. 한편 미국 현지에 남게 된 유학파들은 어떤 곳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아울러 조사 내용을 정리했다. 우리나라의 학문적 지배자가 된 미국유학파들은 왜 미국학파의 변방에 속하게 되는지 아울러 독자적인 학맥을 형성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도 간단하게 제시하고 있다.
저자 김종영은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 분야는 지식사회학, 교육사회학, 과학기술사회학, 사회운동론 등이다. 국내 논문으로는 <삼성 백혈병의 지식 정치 : 노동보건운동과 현장 중심의 과학>, <대항지식의 구성 : 미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운동에서의 전문가들의 혼성적 연대와 대항논리의 형성>, <전통적 지식의 정치 경제학: 한의학의 바이오 경제화와 천연물신약 분쟁>등이 있으며 해외 저널에 논문을 다수 발표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미국 유학 동기는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사회적 지위의 상승 수단으로 유학을 택한다. 명문대 유학을 다녀오면 회사나 대학에 취직하기가 쉬울 뿐만 아니라 상류사회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글로벌 학문의 중심지에서 배움을 추구하여 자기만족을 위해서다. 셋째 여성이라는 이유나 지방대학 출신이라는 학벌차별에서 벗어나고자 할 뿐만 아니라, 권위적인 한국 대학문화의 비민주성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유학을 택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코즈모폴리턴 엘리트가 되고픈 욕망이 그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미국 유학은 여러 가지 잇점이 있다. 첫째, 학식이 높은 대가 밑에서 공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최신의 혁신적인 연구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고, 그들 연구자들과 교류하며 연구 활동을 하는 데 여러 가지 이점을 준다. 둘째, 이런 교류를 통해 한국 유학생들은 자신의 연구를 학계에 알리게 될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연구자와 심리적 거리를 좁힐 수 있으며, 트랜스내셔널 전문가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 셋째, 개인, 대학, 기업의 트랜스내셔널 위치 경쟁과 연결되어 있으며, 유학생들은 더 나은 사회적 지위와 직업 기회를 갖기 위해 미국 학위를 획득한다. 그러나 언어의 유창성이 떨어지고 몸에 밴 주입식 교육의 폐해로 자기 의사표현이 서툴러 아웃사이더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게 된다. 셋째, 이들은 경쟁자보다 우위에 서고자 글로벌 문화자본을 추구하며, 미국 대학은 이들에게 나은 직업 기회를 제공한다. 복잡하지만 이 세 행위자들의 전략적이면서 상동(相同)인 관계 속에서 미국유학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상당수의 지식인들은 한국으로 돌아와서 주류적인 위치를 점하게 되는데 이는 트랜스내셔널 기회와 연관된다. 한국에서는 같은 학교 동문을 위주로, 해외 유학 박사를 선호하는 경향으로 폐쇄성이 강하다. 무엇보다 교수 임용은 ‘실력만’ 뛰어난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교수들과 평생을 같이 지낼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한국 대학의 가부장적 유교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교수직에 한 번 임용되면 미국과 달리 평생 동료로 지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심사자들도 후보자를 평생 같이 지낼 사람으로 인식한다. 한국 대학에서 권위는 학문의 우수함보다는 나이와 직위에서 나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연구자를 실력으로 평가하는 문화를 저해한다. 이렇게 형성된 미국유학파의 학맥은 우리나라 대학사회에서 지배자로 군림하지만 미국의 학맥에서 보자면 하나의 지맥을 형성하고 있어 우리나라와 미국 중심학맥의 매개자 역할을 한다. 바로 미국학맥의 지배를 받는 한국 대학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한편, 미국 대학의 교수 시장은 매우 개방적이고 경쟁적이다. 그리고 미국 대학의 임용 과정은 한국 대학보다 심도 있고 치밀하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 대학과 대조적으로 임용을 둘러싼 교수들 사이의 알력이나 다툼이 적은 편이다. 미국에 정착한 한국 지식인들도 미국에 지식 생산 체계의 상층부를 차지하기 힘들기 때문에 중간자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 그친다. 이들이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중간자적 역할은 달라진다. 대학에서는 학문적 리더들과 추종자들 사이, 기업에서는 상층부 요직과 하층부 생산직 사이의 중간에 위치하게 된다. 이들이 나이 들어 중간 관리자 위치에서 더 승진할 기회가 힘들어지면 한국 기업으로 옮겨 상층부의 세력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요즈음 한국의 대기업들은 미국에서 공부한 인재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고, 국내 학위자보다 간소한 취업 절차를 제공하며, 미국 기업과 대등한 연봉을 주기 때문에 많은 유학생들이 한국 기업을 선택하게 된다. 또한 한국 부자들 가운데 미국의 부동산과 주식을 사고 자녀들을 미국 학교에 보내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한국의 미국 유학파 회사원들은 이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금융, 법률, 문화 서비스를 제공해주며 생활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이 책은 한국 엘리트 지식인의 탄생을 지식 생산의 글로벌 위계 속에서 분석하였다. 곧 미국 유학 현상은 한국 대학과 미국 대학의 글로벌 격차 때문에 발생한다. 이 격차는 크게 구조적, 조직적, 문화적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우리는 큰 그림(거시/글로벌구조), 중간 그림(중시/조직), 작은 그림(미시/문화)을 동시에 보아야만 한다. 세계 최상층을 차지하는 연구 중심 대학 집단, 영어 글로벌 지배력, 세계 최고의 연구 생산성과 영향력, 전 세계로부터 인재를 끌어 모으는 견인력 등은 미국 대학의 글로벌 우위를 구조화 시키는 요소들이다. 조직적 측면에서 미국 대학은 기능적으로 분화되어 있고, 우수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학문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교수진을 끊임없이 검증하고, 우수한 연구진에게 차등적 보상을 제공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적 인정을 부여한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미국 대학은 합리적이고 개방적이며 경쟁적이다. 한국 대학과 달리 학벌 인종주의가 미약하고 파벌이 약하며 업적주의를 철저하게 견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무엇보다 이들은 헤게모니를 쥔 입장에서 유학파/국내파의 위계와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p.293)」
한국 대학의 전방위적 개혁은 멀고, 개인의 당면 현실은 가깝다. 한국 대학의 구조적, 조직적, 문화적 변혁을 기대하는 것은 극히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한국의 공학 분야가 세계 수준에 근접했고, 서울대공대나 포항공대, 그리고 카이스트대학 등 몇 개 대학은 연구 중심 대학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한국 대학의 상당수 연구진들은 중요한 글로벌 행위자로서 활약하고 있다. 연구 문화를 합리적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실력주의가 점차 자리를 잡고 있다. 물론 한국의 대학이 미국의 연구중심 대학처럼 세계적인 대학으로 비상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부터 우리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우리나라만의 학풍과 경쟁력 확보를 위한 일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대학뿐 아니라 사회 지도층을 이루고 있는 미국유학파들에 대한 최초의 종합적인 종단연구라 할 수 있다. 유학을 꿈꾸거나 상류층 진입을 희망하는 젊은이들이라면 한번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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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받는 지배자, 한국의 미국유학파 김종영 돌베개/2015 sanbaram ‘지배받는 지배자’라는 말은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계층 이론에서 ‘지식인’을 일컫는 말이다.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지식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지식인은 지배층에 속하지만 자본가에게 지배를 받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배받는 지배자>는 저자가 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 재단의 지원을 받아, 2009년부터 15년간 1단계 50명과 2단계 80명을 심층면접을 통해 한국 대학과 지식 공동체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종단연구의 결과물이다.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지배자로,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미국 유학파들에 대한 연구다. 이들은 왜 미국 유학길을 선택했으며, 미국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지배자로 활동하게 되는지 현지 인터뷰를 중심으로 파헤쳤다. 한편 미국 현지에 남게 된 유학파들은 어떤 곳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아울러 조사 내용을 정리했다. 우리나라의 학문적 지배자가 된 미국유학파들은 왜 미국학파의 변방에 속하게 되는지 아울러 독자적인 학맥을 형성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도 간단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 엘리트 지식인의 탄생을 지식 생산의 글로벌 위계 속에서 분석하였다. 곧 미국 유학 현상은 한국 대학과 미국 대학의 글로벌 격차 때문에 발생한다. 이 격차는 크게 구조적, 조직적, 문화적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우리는 큰 그림(거시/글로벌구조), 중간 그림(중시/조직), 작은 그림(미시/문화)을 동시에 보아야만 한다. 세계 최상층을 차지하는 연구 중심 대학 집단, 영어 글로벌 지배력, 세계 최고의 연구 생산성과 영향력, 전 세계로부터 인재를 끌어 모으는 견인력 등은 미국 대학의 글로벌 우위를 구조화 시키는 요소들이다. 조직적 측면에서 미국 대학은 기능적으로 분화되어 있고, 우수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학문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교수진을 끊임없이 검증하고, 우수한 연구진에게 차등적 보상을 제공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적 인정을 부여한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미국 대학은 합리적이고 개방적이며 경쟁적이다. 한국 대학과 달리 학벌 인종주의가 미약하고 파벌이 약하며 업적주의를 철저하게 견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무엇보다 이들은 헤게모니를 쥔 입장에서 유학파/국내파의 위계와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p.293)」 한국 대학의 전방위적 개혁은 멀고, 개인의 당면 현실은 가깝다. 한국 대학의 구조적, 조직적, 문화적 변혁을 기대하는 것은 극히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한국의 공학 분야가 세계 수준에 근접했고, 서울대공대나 포항공대, 그리고 카이스트대학 등 몇 개 대학은 연구 중심 대학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한국 대학의 상당수 연구진들은 중요한 글로벌 행위자로서 활약하고 있다. 연구 문화를 합리적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실력주의가 점차 자리를 잡고 있다. 물론 한국의 대학이 미국의 연구중심 대학처럼 세계적인 대학으로 비상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부터 우리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우리나라만의 학풍과 경쟁력 확보를 위한 일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대학뿐 아니라 사회 지도층을 이루고 있는 미국유학파들에 대한 최초의 종합적인 종단연구라 할 수 있다. 유학을 꿈꾸거나 상류층 진입을 희망하는 젊은이들이라면 한번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 생각한다. 저자 김종영은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 분야는 지식사회학, 교육사회학, 과학기술사회학, 사회운동론 등이다. 국내 논문으로는 <삼성 백혈병의 지식 정치 : 노동보건운동과 현장 중심의 과학>, <대항지식의 구성 : 미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운동에서의 전문가들의 혼성적 연대와 대항논리의 형성>, <전통적 지식의 정치 경제학: 한의학의 바이오 경제화와 천연물신약 분쟁>등이 있으며 해외 저널에 논문을 다수 발표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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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수업, 하교수님 수업에서 추천 받은 책이 있었으니 바로 <공부논쟁>과 <지배받는 지배자>였다
저자는 안토니오 그람시와 피에르 부르디외의 개념을 빌어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을 조명하고 있다. 가르침과 배움은 곧 지배-피지배의 관계다. 그람시가 말했든 모든 헤게모니적 관계는 교육적 관계일 터, 미국은 ‘가르치는 나라’이고, 한국은 ‘배우는 나라’이다. 학문을 배운다는 것은 제도 공간인 대학 내에서의 지배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대학은 위계를 가지며 이 배움의 구조에서 탄생한 지식인들도 계층화됨을 의미한다.
현대사회는 학력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같은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 사이에는 유사종족 관계가 형성되고 이는 대학의 서열에 따라 차등화 되는데 이것이 곧 한국인들이 광범위하게 경험하는 학벌사회의 전형이다. 학벌사회는 또 다른 인종주의를 의미하며, 이 차별의 주요기제는 대학의 서열화로 나타난다.
저자는 대학이 개인에게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는 학위를 제도화된 문화자본의 형태로 지위재(positional goods)로 설명하고 있다. 지위재의 가치는 대학의 명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한국 대학은 미국 대학에 비해 열등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하여 미국 연구 중심 대학에서 훈련받는 대다수 한국 유학생들은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대학의 헤게모니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지식격차는 시공간의 격차를 의미하며, 이를 메우기 위해 개인적, 조직적 차원의 전략이 요구된다. 소극적으로는 미국에서 출판되는 논문을 꾸준히 읽는 것, 적극적으로는 직접 미국을 방문하여 공동연구를 하는 것이다.
또한 연구는 커뮤니케이션에 기반하고 있고, 영어는 학문과 연구 영역에서 지배적 언어로 한국인에게 영어는 ‘권력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수준 높은 연구 결과를 내는 교수라도 한국에서 명성 있는 대학의 교수가 아니라면 연구 인력 때문에 심각한 문제에 부딪힌다는 것은 이미 예견된 결과인지 모른다. 연구시설도 문제지만 학생들의 수준이 기대만큼 높지 않아 영어 논문을 학생에게 맡길 수 없어 본인이 다 써야 하며 우수한 포닥이 없어 교수가 직접 반복해서 실험을 해봐야만 하는 현실.
감정적 투신 없이는 탁월한 작업이 나올 수 없기에 학문은 감정적 작업이란 말이 와닿는다. 랜들 콜린스가 말하듯 성공적 학자는 학문자본과 학문에 대한 열정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탁월한 선생 또는 대가와의 접촉은 학문자본의 전수 뿐 아니라 학문적 열정의 고양과도 맥이 닿아 있으며, 학문적 열정은 사회적 상호 작용의 지속성 안에서 유지가 가능할 것이다.
언제까지 이 글로벌 지배와 미국 대학의 헤게모니 안으로 편입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인가. 언제까지 학벌 인종주의, 폐쇄적 파벌주의, 유교적 위계질서, 검증되지 않은 전문가, 상징폭력을 방치하고 있을 것인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저자의 목표라면_ 어디선가 배움과 탐구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수많은 연구자들의 희망을 놓치지 않도록 해주는 것 학부 순혈주의가 아니라 철저히 실력으로 검증받는 연구중심의 문화를 뿌리내리는 것, 그 언젠가 미국의 지식인들이 현실을 비관하며 유럽으로 넘어갔던 19세기를 훌쩍 뛰어넘는 발전과 진보를 이루어냈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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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 유학생의 트랜스내셔널 사회적 궤적을 다룬다. 상당수의 지식인들은 한국으로 돌아와서 주류적인 위치를 점하려고 하는데 이는 트랜스내셔널 기회와 연관된다. 미국에 정착한 한국 지식인들도 미국에 지식 생산 체계의 상층부를 차지하기 힘들기 때문에 중간자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 그친다. 한국 대학의 전방위적 개혁은 멀고, 개인의 당면 현실은 가깝다. 한국 대학의 구조적, 조직적, 문화적 변혁을 기대하는 것은 극히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한국의 공학 분야가 세계 수준에 근접했고, 몇 개 대학은 연구 중심 대학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한국 대학의 상당수 연구진들은 중요한 글로벌 행위자로서 활약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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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국적, 호적, 교적 등 각종 적(籍)이란
적은 죄다 변경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지만 불가능한 적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학적’이다. 현대기술의 발전이 생득적 지위인 생물학적 성마저 성취의 대상으로 전환시켰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적은 바꿀 수 없는 지위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학적이 성취 지위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즉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종합하자면, 한국사회에서
학적은 성취의 대상이긴 한데 성취 후에는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지위다. 그리고 이 같은 학적의
성격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좋은 학벌’을 추구하게끔
했다. 실제로 한국사회의 교육열을 상징하는 “공부 열심히
해라”는 말은 학벌이라는 무기로 취업 전쟁에서 승리를 이루어내야 겨우 잠잠해진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달성할 수 있는 최고의 학벌은 서울대에서
학부 과정을 마친 후 미국 명문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것이다. 한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 이래로, 한국에서
미국 학위는 엘리트의 상징이자 성공과 출세의 보증수표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처럼 이승만으로 대변되는 ‘미국 유학파 한국 지식인’을 분석한 책이 나왔으니, 그 책이 바로 본 서평에서 소개할 『지배받는 지배자』다. 『지배받는
지배자』라는 제목만으로는 책의 내용이 긴가민가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라는 부제가 더해지면서 이 책의 성격은
명확해진다.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김종영 교수는 『지배받는 지배자』를 통해 미국에서는 스스로를 열등한
이방인으로 정체화하던 유학생들이 한국에만 들어오면 왜 엘리트 지식인으로 둔갑하는지 분석하였다. 김종영은
미국 유학파 지식 권력의 탄생 과정과 그 속성, 그리고 작동방식을 낱낱이 해부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김종영은 1999년부터 2005년 사이 미국 유학생 50명을 심층 인터뷰 하였다. 이후 김종영은2011년부터 2014년
사이에 앞서 1단계에서 인터뷰했던 유학생들 중 20명을 다시
인터뷰하였고, 여기에다 60명을 새롭게 인터뷰하여 총 80명을 인터뷰하였다. 이를 김종영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진행한 “일종의 절충적 질적 종단 연구(47페이지)”라고 설명한다. 김종영이 15년간
수행한 심층 인터뷰는 ‘미국 유학파 한국 지식인’이 한마디로
‘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 유학생들은 한국에서 명문대 출신이거나 소속 학교의 최상위 그룹에 속하는 엘리트였건만, 미국에 가게 되면서 이 엘리트로서의 정체성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왜냐하면
미국 유학생들은 미국에서의 수업, 연구, 조교 생활 등을
통해 자신을 열등한 주체로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많은 경우 ‘영어’와 관련된다. 영어가
발목을 잡아버리니 수업에서의 토론은 물론이고 교수와 동료 학생들 간의 관계 또한 좋을 리 만무하다. 한편
유학생들은 영어나 문화적 차이, 배제 등으로 인해 괴로워하면서도, 말로만
들어왔던 선진적인 미국 대학 시스템의 글로벌 헤게모니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이 같은 미국 대학 시스템의 글로벌 헤게모니는 미국
유학생이 한국으로 돌아올 때 더욱 공고해진다. 한국에 돌아온 유학생들은 한국 대학의 폐쇄적 학벌주의, 비민주적 소통, 후진적 시스템, 유교적
가부장 질서 등의 장벽과 마주하게 되는데, 이 같은 한국 대학의 현실은 미국 대학 시스템의 상대적 우수성을
강조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한국 학계에 실망한 상당수 유학파들은 틈나는 대로 미국을 찾아가
연구하는 방식으로 나름의 활로를 찾게 되며, 이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미국의 시스템에 기대는 학문적 종속을
만들어 낸다. 그리하여 미국 유학파 한국 지식인은 미국 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의
지배를 받지만, 그러면서도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지배받는
지배자’가 되고 만다. 한편 김종영은 미국 유학생을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 국가 간의 연결·끼임·변형·초월) 미들맨 지식인’이라고도 호명하는데,
이는 미국 유학생이 지배계층(미국 대학, 미국
지식인)에게 지배 받으면서 피지배계층(한국 대학, 국내 학위자)을 지배하는 모순적인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점에 기인한다. 문제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한국 엘리트들이 미국 대학의
근대성을 한국 대학에 끌어 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불평등을 재생산한다는 데 있다. 김종영은 “미국 유학을 통해 국내 학위 소지자들과의 문화적, 상징적 간극을 더욱 벌리려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늘어날 것(300페이지)”이라며, 이를 “다른
계층이나 집단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사회적 폐쇄(300페이지)”라고 설명한다. 김종영의 냉정한 분석대로라면 한국 대학의 후진성과
전근대성은 미국 유학생들에 의해 좁혀지기는커녕 더욱 커지게 된다. 김종영의 『지배받는 지배자』는 15년간의 집요하고도 성실한 연구를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다. 앞서 말했듯
김종영은 1999~2005년, 2011~2014년 두 번에
걸쳐 미국과 한국 곳곳을 찾아가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이는 그야말로 발로 담아낸 연구 결과로써, 독자들은 김종영의 성실성 덕에 미국 유학을 둘러싼 생생한 사례들을 책 곳곳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또 김종영은 반(半)구조화된
질문지를 통해 수량화 된 자료에서는 접할 수 없는 현장감을 살림으로써, 양적 연구의 한계를 잘 극복하였다. 김종영은 사실상 설문 조사에 가까운 구조화 인터뷰가 아니라 반구조화 인터뷰를 방법론으로 채택함으로써,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생긴 유학생들의 다면적인 긴장과 갈등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혹자는 『지배받는 지배자』의 내용이 엄청나게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배받는 지배자』는 미국 유학생 출신 내부 고발자(김종영은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의 증언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며, 이제까지 학계에서 미국 유학파 지식인에 대한 분석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중요한 연구다. 왜냐하면 김종영이 말하듯 막연히 추측해오던 엘리트 지식인 집단의 성격과
탄생에 대한 면밀한 분석으로부터 한국 대학 및 학계의 재구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번째 단계다. 김종영의 연구는 한국의 학문 공동체 재건을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이 살 만하다. 그런데 성실하면서도 냉정한 분석과 달리, 김종영이 내리는 처방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김종영은 버턴 클라크의
논의를 빌려와, 미국 대학의 수준이 형편없던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유럽으로 간 유학생들은 미국 대학이 언젠가 유럽 대학처럼 ‘독수리’가 되기를 꿈꾸었다고 설명한다. 뒤이어 김종영은 “한국 대학이 독수리가 되어 비상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301페이지)”는 의견을 내어 놓는다. 이 같은 김종영의 주장은 학문의 세계에 적용되는 전지구적 ‘위계성’을 인정하고, 우리나라가 그 위계성의 구도에서 ‘독수리’가 되기 위해 노력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 하다. 『지배받는 지배자』에서 김종영은 미국과 대학과 한국 대학 사이에 존재하는 트랜스내셔널 ‘간극’에 천착하였는데, 김종영은
이 ‘위계성’으로 인해 지식 수입상 ‘미들맨’이 생겨난다고 분석한 바 있다. 그런데 위계성은 ‘지배받는 지배자’와 ‘미들맨’을 만들어내는 주요 기제이기에, 위계 구도에서 우위를 점하자는 김종영의 주장은 지금까지 해오던 분석과는 어딘가 모순되는 느낌을 준다. 위계성을 받아들이고 ‘독수리’가
되자는 김종영의 주장은 “미국 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에 대한 도전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게
만드는 것’(297페이지)”이라는 『지배받는 지배자』의 이상적인
목표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김종영은 “한국
대학과 지식 공동체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하여(7페이지)” 『지배받는
지배자』를 펴냈다고 밝힌다. 본 서평의 서두에서 보았듯이 한국사회에는 아직도 학벌에 대한 신화가 만연하지만, 사실상 ‘개천에서 난 용’은
멸종 된지 오래다. 근래 이루어진 각종 사회학적 연구와 통계적 수치들은 학벌이 성취 지위가 아니라 귀속적이고
생득적이며 폐쇄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배받는 지배자』 역시 이를 명징하게 드러냈다. 나아가 『지배받는
지배자』는 한국 지식인과 한국 대학이 미국 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에 종속됨으로써, 이를 통해 미국 유학생
출신 엘리트들이 한국에서 가시적인 특권을 누려왔다는 점을 폭로하였다. 김종영은 현재 다음 저서로 『지식민주주의』, 『미친 지식』(모두 가제) 등을
구상 중이라고 한다. 김종영 교수가 또 다른 책들을 통해서 한국 대학과 학계에 경종을 울려주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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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받는 지배자>를 읽고 김종영 돌베개/2015 sanbaram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저자 김종영은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 분야는 지식사회학, 교육사회학, 과학기술사회학, 사회운동론 등이다. 국내 논문으로는 <삼성 백혈병의 지식 정치 : 노동보건운동과 현장 중심의 과학>, <대항지식의 구성 : 미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운동에서의 전문가들의 혼성적 연대와 대항논리의 형성>, <전통적 지식의 정치 경제학: 한의학의 바이오 경제화와 천연물신약 분쟁>등이 있으며 해외 저널에 논문을 다수 발표 하였다. ‘지배받는 지배자’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계층 이론에서 ‘지식인’을 일컫는 말이다. 그에 따르면 현대 사회의 지배층은 자본가 계층과 지식인 계층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 중에서도 경제적 영역을 지배하는 자본가 계층이 문화적 영역을 지배하는 지시인 계층보다 우위에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지식보다 우선 한다는 것이다. 지식인은 지배층에 속하지만 이런 이유로 지배층이면서도 지배를 받는 모순적인 집단이다(p.20) 이 책은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 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한국 대학과 지식 공동체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연구의 결과물이다. 15년에 걸친 종단연구 결과로 미국 유학 지식인의 트랜스내셔널 궤적을 통해 지식권력의 글로벌 작동을 해부한다. 미국 유학생들이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어떻게 교육받고 졸업 후 어떻게 직업생활을 영위 하는지를 분석한다. (p.20) 1단계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Q대학에서 석사,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한국 학생 총 50명을 심층면접 하였다. 면접자는 모두 한국 대학에서 학사학위 또는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미국 유학을 선택한 남자 26명 여자 24명의 경우다. Q대학은 연구중심대학으로 교수 2,500여명, 행정직원 3,600여명 학부학생 36,000여명, 대학원생 12,000여명이며 대학에서 사용하는 총 연구비는 한 해 5,800억 원이 넘으며 30여개의 도서관에 소장된 장서가 1,000만권을 넘는다. 연구 능력 중심으로 대학 순위를 매기는 상하이 자오통 대학의 세계 대학 순위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이 대학은 30위권을 벗어난 적이 없다.(p.48) (우리나라 서울 대학은 200위권에 이름이 올라있다) 2단계 2011년부터 2014년까지 : 총 80명을 인터뷰. 한국에 정착한 사람 45명 미국에 정착한 사람 35명 이중 1단계 인터뷰자는 20명 이었다.(p.49) 미국 유학 동기는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사회적 지위의 상승 수단, 글로벌 학문의 중심에서 배움 추구, 성이나 학벌차별과 한국 대학문화의 비민주성으로부터의 탈출, 코즈모폴리턴 엘리트가 되고픈 욕망이 그것이다.(p.60) 미국 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는 서로 연결된 네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연구와 지식흐름의 중심, 영어의 글로벌 역할과 지식 커뮤니케이션의 글로벌 허브, 세계 각지의 우수한 인재들을 끌어들이는 글로벌 흡인력, 미국 대학의 학문적 규범의 지배로 인한 학문적 실행의 이상적인 장소가 그것이다.(p.30) 미국의 연구 중심 대학에서 훈련받는 대다수의 한국 유학생들은 이를 경험하며, 이는 미국 대학의 헤게모니를 강화한다. 뛰어난 대가들의 존재, 개방적인 학문 교류, 깊이 있는 연구는 한국 대학의 가부장적 학계 풍토, 폐쇄적 학벌 체제, 얕고 빨리 출판되는 조잡한 연구 결과물과 대비되어 인식 된다. 미국 대학의 이러한 도덕적 우월성은 한국 대학의 전근대성과 천민성을 폭로하고 개혁하게 만드는 해방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곧 한국 대학과 학계에서의 미국 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는 ‘지식 격차’뿐만 아니라 ‘윤리적 격차’로 인해 발생한다.(p.34) 정리하면 미국 유학은 개인, 대학, 기업의 트랜스내셔널 위치 경쟁과 연결되어 있으며, 유학생들은 더 나은 사회적 지위와 직업 기회를 갖기 위해 미국 학위를 획득한다. 이들은 경쟁자보다 우위에 서고자 글로벌 문화자본을 추구하며, 미국 대학은 이들에게 나은 직업 기회를 제공한다. 복잡하지만 이 세 행위자들의 전략적이면서 상동(相同)인 관계 속에서 미국유학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p.46) 각 학문 분야에서 1-2%의 핵심적인 멤버들은 대략 그 분야 전체 논문의 25%를 생산한다. 내부 핵심 멤버는 아니지만 학문 활동의 중추 역할을 하는 외부 핵심 멤버는 해당 분과의 전체 인구의 약 20%에 해당한다. 나머지 75-80%의 연구자들은 짧은 시기만 활동하다가 분야를 옮기거나 연구를 포기한다.(p.111) 학식이 높은 대가나 연구자들과 교류하는 것은 학문 활동을 하는 데 여러 가지 이점을 준다. 첫째, 최신의 혁신적인 연구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둘째, 그 연구자와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힐 수 있다. 또한 이런 교류를 통해 한국 유학생들은 자신의 연구를 알리게 될 뿐만 아니라 트랜스내셔널 전문가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p.114) 한국의 학벌 차별, 성차별, 비민주적인 대학 문화는 이상적인 학문 규범을 가지는 미국 대학과 대비된다. 즉 미국 대학과 한국 대학은 글로벌 지위 간극뿐만 아니라 글로벌 도덕 간극을 지닌다. 유학생들은 미국유학을 통해 다양한 전문가들과 사람들을 자유롭게 개방적으로 만날 수 있는 코즈모폴리턴 생활방식을 지향한다.(p.84) 무엇보다 교수 임용은 ‘실력만’ 뛰어난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교수들과 평생을 같이 지낼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한국 대학의 가부장적 유교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교수직에 한 번 임용되면 평생 동료로 지낼 가능성이 크다. 한국 대학에서 중간에 재임용이 거부될 확률은 매우 낮으며, 심사자들도 후보자를 평생 같이 지낼 사람으로 인식한다.(p.168) 한국 대학에서 권위는 학문의 우수함보다는 나이와 직위에서 나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연구자를 실력으로 평가하는 문화를 저해한다.(p.194) 미국 대학의 임용과정에서도 실력은 주로 논문 실적으로 판가름 난다. 논문의 수와 출판된 논문들이 실린 학술지의 명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후보자가 가진 잠재성을 더 중요하게 평가한다. 한국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실력 평가가 정량적이고 표피적인 반면, 미국 대학에서 진행되는 실력 평가는 질적이고 심층적이다.(p.129) 명망 높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이 한참 이래의 교육중심 대학이나 전문대학에 지원하는 사례는 드물다. 이들의 박사학위 학벌은 멤버십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 미국 대학이 한국 대학과 다른 점은 학부 학벌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며, 교수들이 출신 학교를 중심으로 파벌을 형성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즉, 박사학위 학벌이 미국 대학에서도 어느 정도 중요하지만, 교수임용 과정에서 학벌을 둘러싼 파벌 정치는 존재하지 않는다.(p.127) 그러나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면 기껏해야 전문대 교수밖에 할 수 없어요.(p.66)’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에서는 같은 학교 동문을 위주로, 해외 유학 박사를 선호하는 경향으로 폐쇄성이 강하다. 미국 대학의 교수 시장은 매우 개방적이고 경쟁적이다. 그리고 미국 대학의 임용 과정은 한국 대학보다 심도 있고 치밀하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 대학과 대조적으로 임용을 둘러싼 교수들 사이의 알력이나 다툼이 적은 편이다. 미국 대학에서 조교수는 일종의 수습교수로서 완전한 멤버십을 갖지 못한다. 테뉴어를 받고 부교수로 승진해야만 비로소 교수로서 완전한 지위를 획득하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그 학교에서 나가게 된다.(p.241) 한국 교수와 미국 교수가 확연히 다른 점 중의 하나는 테뉴어 제도다, 한국교수는 부교수와 정교수로 승진할 때 연구, 강의, 서비스(봉사) 분야의 업적을 쌓아야 한다. 하지만 통상 중요한 요소는 연구이며,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연구 실적에 대한 정량적인 기준을 정해 놓는다. 대체로 논문 편수로 계산되는 이 정량적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는 교수는 거의 없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한 번 교수로 임용되면 65세까지 정년이 실질적으로 보장된다. 미국 대학에서는 조교수를 임용한 다음 통상 6년 동안의 업적을 평가해서 종신 교수직 수여 여부를 결정한다. 6년의 기간은 일종의 수습기간(프로베이션)으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만 하는 시기다. (p.248) 상당수의 지식인들은 한국으로 돌아와서 주류적인 위치를 점하려고 하는데 이는 트랜스내셔널 기회와 연관된다. 미국에 정착한 한국 지식인들도 미국에 지식 생산 체계의 상층부를 차지하기 힘들기 때문에 중간자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 그친다. 이들이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중간자적 역할은 달라진다. 예컨대 대학에서는 학문적 리더들과 추종자들 사이, 기업에서는 상층부 요직과 하층부 생산직 사이의 중간에 위치하게 된다.(p.26) 한국과 미국 사이의 지식 격차는 시공간의 격차를 의미하며, 이를 메우기 위해 개인적, 조직적 차원의 전략이 요구된다. 소극적인 전략은 미국에서 출판되는 논문을 꾸준히 읽는 것이고, 적극적인 전략은 직접 미국을 방문하여 공동연구를 하는 것이다.(p.177) 글로벌 기업은 직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창의성, 개척정신, 도전정신, 자기 주도성을 강조한다.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주어진 과업을 달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도적으로 시장을 개척하고 확장해 나가는 능력이 필요하다.(p.227) 그래서, 한국의 대기업들은 미국에서 공부한 인재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고, 국내 학위자보다 간소한 취업 절차를 제공하며, 미국 기업과 대등한 연봉을 주기 때문에 많은 유학생들이 한국 기업을 선택하게 된다.(p.210) 한국기업에서 미국 유학파들의 영어 실력은 코즈모폴리턴 문화자본이지만, 미국 기업에서 이들의 불완전한 영어는 능력 부족으로 인식된다. 같은 문화자본일지라도 장소와 사람들과의 관계에 따라 다르게 평가된다는 것이 ‘문화자본의 지정학’개념이 강조하는바다.(p.281) 한국 부자들 가운데 미국의 부동산과 주식을 사고 자녀들을 미국 학교에 보내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한국의 미국 유학파 회사원들은 이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금융, 법률, 문화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있다.(p.289) 요약하자면 이 책은 한국 엘리트 지식인의 탄생을 담론 중심이 아닌 지식 생산의 글로벌 위계 속에서 분석하였다. 곧 미국 유학 현상은 한국 대학과 미국 대학의 글로벌 격차 때문에 발생한다. 이 격차는 크게 구조적, 조직적, 문화적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우리는 큰 그림(거시/글로벌구조), 중간 그림(중시/조직), 작은 그림(미시/문화)을 동시에 보아야만 한다. 세계 최상층을 차지하는 연구 중심 대학 집단, 영어 글로벌 지배력, 세계 최고의 연구 생산성과 영향력, 전 세계로부터 인재를 끌어 모으는 견인력 등은 미국 대학의 글로벌 우위를 구조화 시키는 요소들이다. 조직적 측면에서 미국 대학은 기능적으로 분화되어 있고, 우수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학문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교수진을 끊임없이 검증하고, 우수한 연구진에게 차등적 보상을 제공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적 인정을 부여한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미국 대학은 합리적이고 개방적이며 경쟁적이다. 한국 대학과 달리 학벌 인종주의가 미약하고 파벌이 약하며 업적주의를 청저하게 견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무엇보다 이들은 헤게모니를 쥔 입장에서 유학파/국내파의 위계와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p.298) 미국 학위는 한국 대학과 미국 대학 간의 지위 간극을 이용한 일종의 계급적 전략이다. 이 간극은 무척 중요하며, 이는 유학생이 대학위에 집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 학위를 통한 사회적 지위의 획득이라는 목표는 유학 동기에서 지배적으로 드러난다. 위치 경쟁의 관점에서 특정 미국 대학의 지위는 곧 학위자의 지위와 연결되며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실질적인 무기다.(p.59) 한국 대학의 전방위적 개혁은 멀고, 개인의 당면 현실은 가깝다. 한국 대학의 구조적, 조직적, 문화적 변혁을 기대하는 것은 극히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한국의 공학 분야가 세계 수준에 근접했고, 몇 개 대학은 연구 중심 대학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한국 대학의 상당수 연구진들은 중요한 글로벌 행위자로서 활약하고 있다. 연구 문화를 합리적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실력주의가 점차 자리를 잡고 있다. 물론 한국의 대학이 독수리가 되어 비상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p.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