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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인 ‘묵묵’이라는 단어를 읽으면서 먼저 든 생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었다. 딱 꼬집어 누구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념이 시끄럽게 교차하고 마땅히 제 할 일을 하면서도 생색내기에 바쁜 많은 말들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말 그대로 묵묵하게 제 길을 간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침묵과 빈자리에서 만난 배움의 기록’이란 부제를 가진 책 [묵묵]이 더 눈에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인문학자인 고병권이 노들야학에서 발행하는 노들바람과 신문 칼럼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그가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제목이 ‘묵묵’이었다고 한다. 아직까지 저자의 글을 만나본적이 없는 나로써는 단지 제목과 부제만을 보고서 책을 고르고 읽는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했다. 요즘처럼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시기에 잘못했다가는 책하고 한참동안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불길한 예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책을 읽고서 새삼스레 내가 걸어왔던 길과 앞으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어떤 길인지를 다시금 생각해보지만 오히려 머릿속은 더 복잡해지기만 한다. 그가 프롤로그에 쓴 것처럼 ‘희망으로 부풀다 절망으로 꺼진 자리, 아무 것도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텅 빈 자리와 텅 빈 말이 있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무엇 때문에 걸었던가.’(6쪽) 그의 말 마냥 목적과 이유를 잃고 너무 오랜 시간동안 허둥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광화문거리에서, 수용시설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시간 속에서 얻은 배움에 관한 저자의 기록은 조금은 낯설게 다가왔지만 그것이 오히려 ‘묵묵’이란 단어를 한번쯤 더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저자가 자격증 없는 철학교사로서 장애인들과 함께 읽고 보고 느낀 배움의 기록은 나 자신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든다. ‘책임 있는 행동이란 타자를 대신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자가 목소리를 내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그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할 때만 성립한다.’(50쪽)는 글을 읽으면서는 어쩔 수없이 나의 기억을 소환해보기도 했다. 나도 젊은 시절 노동자야학에 기웃거린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어떤 말을 했을까? 저자의 말처럼 당시 야학은 각성에 가까웠고 그것은 운동의 일환이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나 역시 듣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려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내가 하는 말이 옳은 말이라는 생각에 그 말을 강제로 관철시키려 했을 것이다. 저자의 글을 읽는 지금에서야 그것 역시 폭력이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저자는 어떤 말이 지니고 있는 한계 혹은 목소리와 책임이라는 말에 짓눌러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만들어낸 폭력이 있는지를 묻고 있다. 수많은 인문학 강연들이 고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아마 이런 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일게다. 그는 이처럼 옳음이나 목표, 책임 등을 말하는 이들의 말과 글이 과연 자신에게 얼마나 떳떳한지를 살펴보는 자기반성만이 우리사회에서 길을 잃은 인문학이 나아갈 방향임을 자기반성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묵묵’이란 말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많은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장애인야학에서 만난 학생들, 기초생활수급권자, 후원받는 사람들, 시설 및 수용소에 강제 수용된 사람들,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었고, 특별한 일이 아니면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항상 말을 하고 있었지만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들의 귀가 닫혀있었기에 듣지 못했고, 눈을 감았기에 보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이 섣부르게 품었던 희망과 그리고 절망마저 내려놓자 텅 빈 줄로만 알았던 자리에 누군가가 있었음을 깨달았을 게다.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갈 때 비로소 보이고 들리는 것처럼..
책 제목인 ‘묵묵’에는 두 가지 뜻을 담았다고 한다. 하나는 사전적 정의마냥 ‘말없이 잠잠히 자신의 길을 간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소리 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최대한 써나가겠다’는 다짐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냥 지나쳐왔던 존재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고, 빈자리를 채우기보다는 그대로 둔 채 오랫동안 지켜보고, 그들의 작은 외침일망정 묵묵히 기록하겠다고 한다. 그것은 자신이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을 상대방의 말하지 못하는 무능으로 바꿔치기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깨닫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기록들을 읽으면서 나 역시 ‘묵묵’이란 단어를 나름대로 정의해보는 까닭은 지금까지 듣기보다는 내 말 하기에 더 급급하지 않았는가 하는 자기반성의 하나이다.
그는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생이란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살아내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실험하고 시도할 뿐이다. 우리는 끝을 관통하는 방식으로만 끝에 이를 것이다.’(234쪽)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생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인 게다. 그래서 말없이 자신의 길을 간다는 ‘묵묵’이란 단어를 보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껏 들으려하지 않고 내 목소리로만 말하며 살아왔기에 말이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 걸을 때 보이고 들리는 것들’에 대한 배움의 기록이라는 이 책 [묵묵]. 인문학자인 저자는 자기반성을 통해 이제까지 허둥대며 살아온 우리에게 묵묵히 걸어가는 길이 바로 삶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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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님의 친절함을 참 좋아합니다. 고병권님의 삶 자체도 친절함이 묻어있습니다. 침묵과 빈자리에서 만난 배움의 기록. 말없이 잠잠히 자신의 길을 간다. 저에게 가장 필요한 삶인 것 같습니다. 불평 불만 짜증 제발 좀 묵묵히 헤쳐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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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장, 한문장 묵묵하게 와닿는 글이다. 예전 타사의 책 구독 서비스를 통해 이북으로 다운받아 읽었는데, 앞의 프롤로그를 읽으며 느꼈던 전율을 잊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 어쩌면 요즈음의 나는 묵묵히 걷지를 못하여서, 그의 지혜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종이책으로 다시 읽는 묵묵은 여전히 한문장 한문장 깊게 눌러쓴 작가의 마음처럼 여전히 나에게 무겁다. 어떻게 보면 나 또한 한국에서 말하는 평탄한 길을 마다 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황무지 길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이상과 그렇지 못한 현실과의 간극, 그리고 끝도 없이 걸어가야할 어두운 여정 속에서 불안함과 쓸쓸함을 곁에 두고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에게 귀하다. 책을 들춰 읽지 않아도, 이 책이 내 옆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평온이 찾아온다. 책이 아름다운 점은 책을 쓸 때의 작가의 영혼이 문장으로 새겨져 평생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읽어도 2년전과의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이 덕이다. 자신의 운명과 춤을 출 수 있을 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그에게 나의 이 말이 닿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이토록 무거운 울림을 주는 저작을 남긴 것 만으로도, 이 세계에 이러한 철학적 위안을 남긴 것 만으로도 당신의 길은 더 이상 어둡지 않겠느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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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을 읽었습니다. 얇은 책이었지만 깊이는 얇지 않았습니다.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지어진 에세이 집인 묵묵은 저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저는 특수교육을 대학원에서 공부했습니다. 사실 특수교육을 공부한 가장 큰 목적은 저의 장애인에 대한 편협한 인식을 좀 더 허물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묵묵을 읽으면서 아직도 내 내면에는 편협한 인식이 자리잡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야학을 통해 철학을 공부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정말 인간답게 살고 있을까요? 아니면 인간 흉내만 내며 살고 있을까요? 모든것이 돈에 매몰되어 버린 현재, 인간다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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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책은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때로는 가벼운 농담으로 때로는 준엄한 죽비로 하루하루 기계처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항상 깨어있을 것을 이야기합니다.묵묵히 묵상하고 묵묵히 실천하기란 쉽지 않지요. 묵상마저도 시간을 따로 떼어 놓고 할 정도로 삶은 우리를 지치게 만들지요.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팬데믹의 엄중한 상황에서 이제야 자신을 오롯이 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이 책을 읽고 마음 속 울림을 느끼면 좋겠습니다. 어렵지 않기에 우리 아이들에게도 한번씩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읽는 재미가 있는 책입니다. |
| 친구의 추천으로 만난 책입니다. 고병권 선생님은 노들야학의 선생님이시라고 하네요. 이 책에 소통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저도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는 과연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말하는 바를 잘 듣고 있나? 가족이 말로 때로 말이 아닌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나? 왠지 조금 자신이 없어지네요. 작은 몸짓이나 언어를 알아차리는 나의 민감성에 일단 주목하고 잘 들을 수 있는 귀와 눈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게 정말 감사한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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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님의 저술은 아주 예전의 화폐 관련 내용과 니체 독해에 대한 글 및 최근에 발간하고 계시는 자본 읽기 시리즈를 접해본 것이 저에게는 전부였습니다. 그 와중에 여기 '묵묵'이 발간되어, 과연 자본을 우리네 삶에 더 가깝게 다가가게 해 주신 선생님은 인문학을 하시면서 무슨 고민을 하실까에 대해 엄청 궁금증이 발동하더군요. 지금 3분의 2정도 출퇴근 와중에 짬짬이 읽고 있는 상황인데, 어떤 구절을 읽어도 먹먹한 감동과 슬픔이 절절이 배여있습니다. 인문학은 이 세상을 더욱 살만한 것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책과 삶이 분리되어 살아오는 저에게 뼈아픈 가르침으로 다가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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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 고병권 지음 돌베개 이제는 문헌정보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어 부전공으로 법을 공부하고 있는 큰 딸이 초등학생 시절 독서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할 때, 읽혔던 『생각한다는 것』의 저자인 인문학자 고병권의 에세이집 『묵묵』이 출간되었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는 작가의 이력이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러한 이력과는 다르게 독특하게도 니체, 스피노자, 마르크스 등의 철학을 소개하며 함께 읽어보자고 제안해왔던 학자 고병권이 이번에는 자신의 일상과 강의 현장으로 독자들을 인도하는 수고를 하고 있다. 침묵과 빈자리에서 만난 배움의 기록이라는 부제목을 생각하면, 작가 자신이 오래 몸담았던 노들장애인야학과 광화문 거리, 수용시설 그리고 미술관과 대학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그 시간에서 얻은 배움들을 친절하고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다. 아이의 학교 독서모임인 동치미에서 6월에 함께 읽을 책으로 1학년 학부모가 선별해서 미리 프린트를 해오는 수고까지 하기에 좋은 마음으로 선뜻 책을 구입했다. 추천자가 선택한 부분은 1장에서 「노들야학의 철학 교사」와 2장의 두 번째 부분인 「감히 해외여행을 떠난 기초생활수급권자를 위하여」였으나 그래도 책을 구매한 상황을 감안해서 좀더 많은 부분을 읽었고, 그중 「보는 눈과 보이는 눈」의 내용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아무래도 시각장애인이 된 시동생 생각이 떠올라서 '눈'이 언급될 때마다 이에 무관하게 지나칠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주 금요일에 독서모임이 있었고 그 자리에서 각자의 의견을 충분하게 들었지만, 아무래도 철학에는 알러지 비슷한 것이 있는 나로서는 별다는 소감이나 기억에 남는 내용이 부족하다. 게다가 어쩔수없이 고3맘이고 보니 몇차례나 진행되는 설명회를 쫒아다니다보면 이를 충분하게 즐길 시간적인 정신적인 여유가 없기도 하고……. 2019.6.17.(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