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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신화 기행』 / 공원국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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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12일은 조선일보의 원코리아 뉴라시아One Korea New-eurasia 자전거 평화원정단 24명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항의 귀국선에 오르던 날이었다. 아침부터 눈폭풍이 매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시베리아와 연해주를 뒤로하며 원정단원들은 페리(DBS크루즈)에 탑승했다. 발 아래로 5m가 넘는 파도가 치고 있었다. "드디어 살아서 돌아가는구나!" 각자 얼굴에는 설렘과 기쁨이 가득했다. - '서문' 중에서
통일의 염원을 두 바퀴에 담고
베를린에서 서울까지 15,000km, 100여 일의 긴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평화원정단은 조선일보의 '통일이 미래다' 프로젝트로 기획됐다. '자전거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해보자. 베를린에서 서울로, 대륙을 횡단하며 평화통일의 씨앗을 뿌려보자'는 취지였다.
이 긴 여정은 독일 베를린~폴란드~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모스크바~카자흐스탄~러시아(슬라브고로드, 노보시비르스크, 이르쿠츠크)~몽골~중국(베이징, 선양, 단둥, 백두산, 옌지, 훈춘)~ 러시아(크라스키노, 우수리스크, 블라디보스토크)~한국(동해, 철원, 파주, 임진각, 서울)로 이어지는 1만 5,000km 평화루트였다.
원정단의 정신은 '평화, 통일, 미래, 도전' 네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준비는 많이 부족했다. 준비기간은 4개월은 너무 짧았고, 원정국 9개 나라의 정보는 충분하지 못했다. 여섯 대의 차량과 물자들의 통관부터가 골칫거리였다. 중국 훈춘~러시아 크라스키노 국경을 통과할 때는 차량 3대를 중국 화물차에 실어 수화물이라는 우회 절차를 밟아 통관시켜야 했다.
일곱 명의 풀코스 대원들이 선발되었다. 이들은 1차 서류심사 후, 2차로 와트바이크 테스트와 북한산 둘레길 37km 도보 행군 테스트, 3차 면접심사를 거치며 270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은 철인들이었다. 선발 후 일곱 차례에 걸친 팀워크 훈련과 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인 여정에 나섰다. 대원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옷을 갈아입으며 100일간을 달리고 또 달렸다.
자전거 대장정 경로도
브란덴부르크 문이 새롭게 열리다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은 강대국 반열에 오른 프로이센이 1791년에 세운 성문이다. 베를린이 학문과 예술의 도시, '새로운 아테네'가 됐음을 알리고자 건축한 셈이다. 1814년 프로이센군이 파리 함락과 나폴레옹 폐위를 기념해 '파리' 광장이라고 명명한 문의 동쪽은 여행자들로 붐비며 활기가 넘친다.
이 문에는 영욕이 함께한다. 나폴레옹은 1806년 프로이센 전쟁에서 승리한 뒤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나 베를린에 입성했다. 1933년 집권한 히틀러는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친위대 횃불 퍼레이드를 벌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분단과 함께 브란덴부르크 문은 동베를린의 땅이 됐다.
지난 봄, 베를린 장벽에 러시아 화가 미하일 브루벨이 그린 <형제의 키스> 뒤쪽 강변에 한반도 비무장지대 사진들이 내걸렸다. 노란색의 '통일 기원' 리본에 덮인 철조망과 최전방 초소 사진이 평화로운 슈프레 강 풍경과 잔인하게 대비됐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도 무너지기 위해 존재했다. 장벽은 서베를린 사람들을 물리적으로 가뒀지만 사실 갇힌 건 동독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자유와 번영이라는 가치가 해방시켰다. 독일 통일은 벼락같이 온 것이 아니라 올 수밖에 없는 역사의 필연이었다. 한반도의 허리를 자르고 대한민국을 '유라시아의 서베를린'으로 가둔 휴전선도 그렇게 무너지고 말 것이다.
'원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원정단'은 미지의 길을 간다. 우랄 산맥을 넘고 시베리아 벌판을 지나 고비 사막을 가로지른다. 독일 속담에 "사랑의 말을 타고 달리면 어떤 길도 멀지 않다"고 했다. 원정단이 두 바퀴로 내고 다진 길은 우리 젊은이들이 미래로 통일로 가는 길이 될 것이다.
폴란드 코닌에서의 캠핑
폴란드 중부 소도시 코닌Konin에서 첫 캠핑을 했다. 이날은 폴란드 경찰이 도로주행을 처음으로 에스코트해준 날이기도 하다. 덕분에 안전하고 편안하게 주행할 수 있었지만, 경찰이 길을 잘못 들어 약 20km 이상을 더 돌았기 때문에 원정단은 상당히 지친 상태로 캠핑장에 도착했다.
호수를 끼고 있는 캠핑장은 생각보다 훨씬 쾌적했다. 슬레신 호수다. 나무로 둘러싸인 넓은 잔디밭은 텐트를 치기에 적당했다. 캠핑장 한쪽에 집을 짓고 살고 있는 주인 가족이 따뜻하게 맞아줬다. 인형같이 생긴 5살짜리 딸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원정단의 트럭에 응원 메시지를 남겼다. 원정단은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채 트럭 한구석에 박혀있던 캠핑 장비들을 꺼내느라 고생 좀 했다. 취재팀이나 소구간 멤버 중에는 야외 캠핑이 처음인 대원들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김창호 대장 등 '야외 캠핑 달인'들의 도움으로 순식간에 텐트 치는 작업이 끝났다. 텐트를 치자 물만 보면 수영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는 박영석, 최병화 대원이 웃통을 벗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 우랄 산맥을 넘다
우랄 산맥은 북극해부터 카자흐스탄까지 남북으로 2,000km나 이어져 있다. 이 긴 산맥에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를 가리키는 표지석은 잘 알려진 것만도 40여 개나 된다. 그 중 가장 유명한 표지석은 원정단이 간 길보다 북쪽, 에카테린부르크에서 유럽으로 넘어가는 길에 있다. 우랄 산맥 서쪽 산기슭 도시 우파를 떠나 290km쯤 되는 지점에서 마침내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하나의 표지석을 만났다. 8월 13일, 독일 베를린을 떠난 지 34일 만이었다.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돌로 받침을 쌓고 그 위에 철 구조물을 올린 20m 남짓한 높이의 탑 하나가 도로 옆 꽤 넓은 광장에 우뚝 서 있었다. 탑의 한쪽 면에 러시아어로 '아시아', 맞은편에는 '유럽'이라고 쓴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막내인 이상구 대원이 탑 기단 위에 올라가 태극기를 흔들자 모든 대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그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선에 서니 우리가 정말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고 있다는 게 실감 난다"고 했다. 대륙을 넘는다는 감흥에 너나없이 한쪽 발은 유럽에, 다른 한 발은 아시아에 놓고 기념사진을 찍기 바빴다. 우리는 두 대륙에 서 있는 한국인들이었다.
이상구 대원이 러시아 우랄 산맥 구간에 있는 유럽·아시아의 경계 표지탑에 올라 태극기를 휘날리고 있다. 표지탑 한쪽 편에 '아시아'라고 쓰인 러시아어가 보인다. 우랄 산맥은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선으로, 러시아는 이 산맥을 넘어 시베리아로 진출했다.
고비 사막, 테를지 국립공원
깨진 유리 같은 자갈과 시멘트처럼 굳은 흙 위에 원정단은 섰다. 10월 18일, 몽골의 고비 사막. 마른 잡풀 뭉치들이 삭막한 바람에 굴러 다녔다. 사막 바람이 귓바퀴를 때려 고막이 먹먹해져왔다. '고비'란 몽골어로 '풀이 잘 자라지 않는 거친 땅'이란 뜻이다. 몽골 고원 내부에서도 알타이 산맥 동단부터 싱안링興安嶺 산맥 서쪽 기슭까지 펼쳐져 있다. 동서로만 1,600km, 남북으로는 1,000km에 이른다.
흔히 생각하는 모래 능선이 끝없이 이어진 사막과 달랐다. 키 낮고 억센 풀들이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모래보다 자갈이 더 많았다. 소나기가 내려 패인 뒤 바싹 마른 물길은 대협곡의 축소판이었다. 지평선의 끝은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흡사 낯선 행성의 표면을 지나는 듯했다.
고비 사막의 하늘, 이 자체로도 공원이다 2014년 9월 말, 사전답사 때 찾은 이 지역은 두 시간 동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내리쳤다. 휴대폰 사진으로도 벼락을 잡아낼 수 있을 정도로 하늘은 번개 천지였다. 번개가 칠 때는 사방이 훤하다가 순식간에 암흑에 잠기기를 반복했다. 눈앞에서 벼락이 번쩍하면서 갑자기 자동차 시동이 꺼졌다. 굵은 우박까지 내리쳤다. 차 밖으로 나갔다간 자칫 벼락을 맞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이곳은 6년 전, 황인범 대원이 자전거로 횡단했을 때 길을 잃고 헤매다 죽음의 공포와 맞닥뜨린 장소였다. 당시 황 대원은 나침반이 고장나고 식수까지 떨어진 데다 해마저 저무는 악조건에 처했다. 실의에 빠졌던 황 대원은 우연히 만난 양 떼를 따라가 오아시스를 발견하고 목숨을 지켰다.
동해, 철원, 파주, 임진각, 서울
11월 13일, 원정단이 탄 크루즈는 강원도 동해항에 입성했다. 여름, 가을, 겨울 세 계절을 지나오면서 원정단원들의 얼굴은 검게 그을렸고, 머리는 텁수룩하게 자랐다. 항구에 들어서자 해군 1함대 고적단의 트럼펫, 심벌즈, 북 소리가 귀와 가슴을 두드렸다. 가족들도 마중을 나와 석 달 만에 감격적으로 만났다. 동해 시민과 관계자 300여 명도 나와서 맞아주었다.
입성식을 마치고 지역 자전거 동호회와 함께 7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내달렸다. 그 어떤 외국의 절경보다 아름다운 고국의 산하였다. 국토가 감동으로 다가오는 건 이전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밤늦게야 강원도 고성에 도착했다. 저녁 메뉴로 나온 칼칼한 매운탕이 그동안의 한식 갈증을 씻어줬다.
여의도로 향하는 피날레 라이딩이 장관이다
통일이 미래다
독일의 베를린에서부터 서울로 '평화 통일'의 씨앗을 가져와 뿌려보자는 취지에서 지난해 조선일보가 기획한 '원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 원정단의 기록을 책으로 엮었다. 자신의 아들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딸과 사귄다는 윤종구 예비역 해군 제독 같은 유라시아 전문가들도 이 책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자전거 원정단의 두 바퀴를 따라가다 보면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감동이 몰려옴이 느껴진다. 일독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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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서 시작하여 서울까지 유라시아 15,000km를 자전거로 달린 ‘원코리아 뉴라시아 (One Korea New-eurasia) 자전거 평화원정단’의 도전기는 그들의 열정과 통일에 대한 염원이 어우러져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다만 어둠으로 잠긴 북한 땅을 앞두고, 동북 3성과 러시아 연해주로 우회한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우랄산맥과 시베리아 벌판 그리고 고비사막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남긴 평화통일의 씨앗이 그 길을 결국 열리게 만들 것이라는 기대도 생긴다. 아름다운 사진과 그들의 원정기가 어우러져서 마치 나도 그 곳에 함께하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다. 국경을 넘을 때마다 생기던 에피소드들도 기억에 남고,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이 주는 답답함도 있었지만 말이다. 뜨거운 물, 찬물, 흙탕물, 검은색 물, 그 어떤 물이든 나오기만 하면 된다는 러시아의 수도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한편으로는, 한국인을 ‘무지개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의 솔롱고스로 부르던 몽골인들의 눈에 이제는 적대감이 어리고 있다는 것이 참 아쉽기도 했다. 원정단의 출발점이 독일이라는 것 역시 상당한 의미가 있다. 베를린 장벽 자리에 있는 자전거 길을 달려 서울로 온 것도 그러하지만, 비무장지대처럼 비워져 있던 공간이지만 지금은 최대 번화가가 된 곳에 있는 ‘홀로코스트 추모비’도 인상적이었다. 언젠가 비무장지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통일이 가시적이라는 것이 놀랍기도 했었다. 하지만 베를린 장벽이 정말 순식간에 무너진 것을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나 남의 나라의 일처럼, 아니면 SF소설에서 존재하는 먼 미래에나 있을 법한 일로 통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들의 원정기를 읽는 것이 나에게는 큰 의미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바이칼 호수에서의 이야기이다. 춘원 이광수의 유정에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했는데, 이광수는 그 곳에서 허름하게 차려 입고 기운 없이 사람 눈을 슬슬 피하는 조선인을 보며, 언젠가 ‘나는 조선 사람이오’하며 뽐내고 다닐 날이 있을까 하며 아쉬워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태극기를 꼽고 평화통일한국을 꿈꾸며 자전거로 횡단하며 그의 말을 떠올리고 있지 않은가? 정말 우리나라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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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15,000km라는 거리를 오로지 자전거로만 횡단한 조선일보 원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가 평화원정단에 박수를 보낸다.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음에도 끈기와 열정으로 이들은 그 먼 거리를 100일간 동베를린을 시작으로 러시아와 몽골,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온다는 시나리오인데 20세기 분단이 되었던 독일을 첫 출발지로 삼은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90년대 초 방송으로 베를린의 장벽이 허물어지는 광경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기에 독일의 통일은 아직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우리에겐 꿈과 같은 일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통일 한국을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은 통일을 염원하면서 자전거에 의지하여 자전거 평화대장정에 올라섰다. 처음에는 자전거로 15,000km를 횡단했다는 사실에 앞서 이들이 거쳐간 나라와 도시의 풍경이 부러웠던 것 같다. 아직도 국외를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저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저 넓은 세상에서 이들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책은 마치 여행지에서 주요 역사적인 의미가 담긴 건물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알게되는 지식들을 채워나가는 걸로만 보였다. 하룻동안 이동할 거리가 정해져 있을텐데 시간을 들여가면서 그 건물에 얽힌 역사적인 배경까지는 모두 답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진을 찍는 것도 미리 동선을 파악한 뒤 위치를 선점해서 찍었을 확률이 높다. 항상 여행관련 책을 볼 때마다 궁금한 것은 그 절묘한 순간에 어떻게 사진을 찍었을까라는 점이다. 그 순간을 제대로 포착했다는 건 역시 사진 촬영기술이 남다른 사람일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정말 프로 사진작가가 찍은 것처럼 고퀄리티를 자랑한다. 사진각도가 단조로운 것 없이 매우 역동적이며, 모든 설명을 함축적으로 표현해낸다. 고생스럽긴 해도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것 자체가 매우 설레이고 가슴 벅찬 일이 아닌가? 이들은 오로지 한가지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일행이 일심동체가 되어 완주하였고, 각 지역을 거쳐가면서 많은 에피소드를 쏟아내고 있다. 원정단이 그랬듯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는 몽골의 밤하늘이 참 멋져보였다. 도시의 불빛 속에 가려졌던 밤하늘의 별빛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는 이유는 일부러 빛을 내지 않아도 수많은 별들이 비춰주기 때문에 경이롭게 자연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언제쯤 통일이 올까? 이들이 거쳐간 수많은 지역은 나름 의미를 갖는 곳이고, 평화와 통일에 대해서 일행들이 곰곰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블라디보스크에서 배를 타고 동해항에 입성했을 때 기분은 어땠을까? 눈 앞에 아른거리는 북한 들녘의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 때 가슴이 뭉클했을 것만 같다. 블라디보스크를 거치지 않고 압록강을 지나 평양을 경유하고 서울로 직항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책 말미에는 라이더 가이드가 있는데 자전거 운행시 주의사항부터 국가별 교통 상황과 자전거 정보, 의류 장비, 음식 및 취사용품, 숙소정보, 국가별 의료 현황, 국가별 인덱스, 현지 긴급 연락처까지 여행에 필요한 필수사항들이 꼼꼼하게 기재되어 있다. 긴 여행을 하면서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들로 철저한 정보수집과 준비가 있었기에 큰 사고없이 100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모두 무사귀환할 수 있었을 것이다. 100일간에 걸친 대장정에는 후원 기업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한마음 한 뜻으로 단결한 평화원정단의 팀웍이 좋은 결실을 맺은 것 같다. 이 책은 그들의 도전과 젊음을 느낄 수 있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지만 의미있는 일에 동참해서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나왔으니 여행자 시점에서 읽어도 좋고, 원정일지로 읽어도 좋다. 분명한 것은 통일에 대한 생각들이 모이다보면 한걸음 더 통일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 기대를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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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북스의 <<유라시아 15,000km 두 바퀴의 기적>>은 조선일보의 '통일이 미래다'프로젝트로 자전거로 베를린에서 서울로, 대륙을 횡단하면서 평화통일의 씨앗을 뿌려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그 도전의 여정을 담은 책이다. 24명의 자전거 평화원정단은 독일 베를린을 시작으로 폴란드를 거쳐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카자흐스탄에서 다시 러시아로 그리고 몽골, 중국, 그리고 또다시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이어지는 1만 5,000km 평화루트를 '평화, 통일, 미래, 도전'이라는 정신을 기본으로 삼아 준비기간이 짧아 준비도 제대로 안된 상황에서 불굴의 정신력, 새로운 유라시아와 통일 한국에 대한 열망으로 성공적으로 마쳤다.
원정은 '오해의 사슬'을 헤쳐가는 앞바퀴와 '이해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뒷바퀴가 맞물려 조금씩 조금씩 전진했던 역사적 사건이었다. (본문 6p)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원정단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옷을 갈아입으며 100일간 달리고 또 달렸으며 도전하고 또 극복했다. 사실 나는 이 책이 이러한 도전과 극복, 평화의 메시지 등을 담고 있는 자기계발서라 생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여행에세이로 분류되고 있었다. 이는 이 프로젝트가 단순한 자전거 횡단에 그치지 않고, 독일 베를린, 러시아 모스크바, 중국 베이징 등 주요 나라의 도시에서 경제포럼, 통일음악회, 의료봉사, 한국의 밤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여 문화적 의미를 되새겼으며, 각국의 역사적·사회적 배경과 함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시선을 담은 여행 에세이로서, 가이드북(출판사 서평 中)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에 이 책은 독일, 폴란드, 발트3국, 러시아·카자흐스탄, 몽골·중국 그리고 대한민국으로 나누어 풍부한 사진 자료와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유라시아 대륙의 이모저모와 원정단들의 도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쇼팽의 동상과 심장은 만신창이가 된 폴란드 근현대사 그 자체다. 쇼팽은 심장으로 말한다. 나라가 망해도 민족의 언어와 예술이 살아 있는 한 다시 일어서고야 만다고. (본문 79p)
베를린 장벽 붕괴의 감동적인 장면 하나가 벌어졌던 곳에서 그들은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휴전선 너머 동족이 무엇을 갈구하는지 새삼 돌아보는 기회를 갖으며, 한반도의 허리를 자르고 대한민국을 '유라시아의 서베를린'으로 가둔 휴전선도 그렇게 무너지게 되리라는 것을 느끼며 2014년 8월 13일 오전, 독일 베를린 브란데부르크 문 앞 광장에서 원장대원들의 커다란 함성과 함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출정식 13일은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지 53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쇼팽의 동상을 통해 폴란드의 역사를 되돌아보았고, 원정 중 맞이하게 된 추석날에는 원정단의 안전과 성공, 한반도 통일을 위해 조상의 음덕을 기원하는 차례를 지내기도 했다. 원정단이 지난 니즈니노브고로드는 120년 전 이미 이곳을 지나간 한국인이 있었는데, 바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을 축하하러 당시 러시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왔던 조선의 특명 전권공사였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게 되자 분을 못 참고 자결한 사람, 바로 충정공 민영환으로, 니콜라이 2세 대관식 후 모스크바~니즈니노브고로드~카잔~시베리아를 거쳐 귀국길에 올랐던 이 길은 원정단이 달리는 길과 같은 코스였다.
민영환이 걸었을 니즈니노브고르드 거리를 우리 번호판을 단 한국산 자동차의 선도를 받으며 달렸다. 원정단이 입고 있는 유니폼에 태극기 문양이 선명하다. 러시아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한국산 자동차가 많이 달리고 있다. 민영환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러시아에 갔을 때 그는 상투 틀고 갓 쓰고 도포를 입고 있었다. (본문 180,181p)
1937년 연해주에 살다가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이 가장 먼저 정착한 곳 카자흐스탄에서 찾은 역사의 흔적을 바라보았고, 한반도 남쪽에 섬처럼 살았던 한국인들이 가장 먼저 교류를 시작한 대륙 국가 몽골은 따뜻하고 우호적인 관계였으나 결혼과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와서 외로움과 학대와 임금 착취라는 이중·삼중고를 겪으면서 한국을 향해 보이는 적대감과 경멸을 통해 우리의 대륙 진출 방식과 매너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봐야 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물론 울란우데에서 뜻밖에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부랴트 젊은이들을 만나 즉석 간담회를 열었고, 간담회의 마무리는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부르며 함께 춤추는 것을 마무리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정치·사회 체제의 벽은 높았지만 문화와 민간의 힘으로 넘을 수 있겠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던 중국, 단둥을 통해 북한 진입을 타진해보았지만 응답을 받지 못해 세계적인 사건이 될 뻔한 사건이 끝내 이뤄지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 라이딩까지 원정단은 혹한과 예기치 못한 돌발상황 등을 모두 이겨내고 돌아왔다.
두 바퀴로 미답의 길을 달려왔다. 돌아보면 하룻밤의 꿈같았다. 하지만 페달을 밟은 대원들의 발은 각 나라 땅의 얼굴을 고스란히 기억한다. 바퀴에는 9개국의 흙과 공기와 물이 묻었다. 여기서 원정이 끝나는 건 아니다. 뉴라시아 시대를 앞당길 개척자들의 힘찬 페달질은 현재진행형이다. (본문 312p)
이들의 원정을 두고 누군가는 한민족이 얼마나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인지 세계에 보여줬다 말했고, 누군가는 유라시아가 연결되면 21세기 신실크로드가 펼쳐질 것이라 했다. 그랬다. 이들은 뉴라시아 시대를 앞당길 개척자들이었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법을 배우고 가르쳐줬으며, 각국의 역사적·사회적 배경과 함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면서 독자들에게 미래를, 통일을, 그리고 현재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불굴의 정신력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주었다. 자전거 원정을 통해 세계 곳곳의 다양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여행 에세이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자기계발서보다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것이 정말 두 바퀴의 기적이 아니면 무엇일까. 땀과 눈물로 빚어낸 100일간의 여정은 새로운 유라시아를 여는 발자취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그들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 삶의 미래에 희망을 안겨주는 발자취도 되어주리라는 것 역시 두 말하면 잔소리일테지. 두 바퀴에서 시작된 미래와 통일의 이야기는 우리가 삶을 개척하려는 희망과 미래가 작은 발걸음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점도 시사하고 있다.
비행기로 10시간이면 갈 서울~유럽을 원정단은 왜 굳이 100일씩 걸려 고생하며 자전거로 가는가. 10월 12일, 원정단은 15~20km씩 가다 쉬기를 반복하며 11시간을 달렸다. 저녁 무렵이 되자 허벅지 근육이 딱딱해져 페달을 밟아도 바퀴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중략) 어떤 대원은 길에서 쉬는 동안 땅바닥에 주저앉아 빵을 씹었고 어떤 대원은 지원 차량 보닛에 손을 녹이기도 했다. (중략) 대원들은 이런 도전을 통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법을 얻는다. (본문 220p)
(이미지출처: '유라시아 15,000km 두 바퀴의 기적' 본문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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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서 출발 100일간 15,000km를 달려 서울로 오기까지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삶의 흔적이 남겨져 있는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며 분단의 아픔을 새삼 느끼게 한다. 지구촌 가족이라는 말을 쓰면서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그런 곳이 자본의 흐름과 개방을 통해 하나둘씩 국가 간 고삐가 풀리면서 세상은 한 길로 가고 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길을 통해 우리가 이루어야 할 통일의 필요성을 간절히 표현한다. '통일이 미래다'라는 기치 아래 뭉친 원정단의 원정기를 통해서 각 나라가 안고 있는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유산들을 살펴보면서 사람들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이번 유라시아 자전거 원정을 통해서 국가의 국력이 절실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더불어 진실한 마음이면 어떠한 장벽도 서서히 허물 수 있음을 알게 한다. 가보지 않은, 닥쳐보지 못한 현실에 맞서 무서움과 두려움을 떨치고 자전거 두 바퀴를 무사히 굴린 원정대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독일에서 출발, 폴란드와 발트 3국을 거치고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을 넘고 몽골과 중국을 넘어 한국으로 오는 일정 내내 마음을 놓지 못 했을 원정대의 정신적 피로감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원정을 무사히 마쳐야 한다는 강한 팀워크가 이들을 이끌었음을 각자가 쓴 문장 속에서 느낀다. 1, 2차 세계대전을 비롯 국가 간 곳곳의 상처들이 남아 있는 곳들을 통과하면서 이들 원정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들이 끊임없이 도전한 자전거 원정길을 통해 우리나라의 통일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를 가슴속 깊이 느끼고 돌아왔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한다. 2014년 8월 13일을 시작으로 삶과 죽음이 교차했던 역사적 현장을 지나면서 마주하는 지구촌 사람들의 정을 느끼며 하루의 고단함을 이기고 자전거 바퀴를 계속 굴릴 수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전쟁의 상처로 남아 있는 지역을 통과하면서 기록한 곳곳의 일정을 통해 이 책을 읽는 동안 전쟁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어떤 노력들을 통해서 서로 화해하고 협력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본다.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폴란드와 독일은 지금 어떠한 관계로 지내고 있는 건가. 위기 때마다 지혜롭게 원정 일정을 해결해나간 이들의 모습에서 원정 성공을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접할 수 있었다. 곳곳을 통과하며 기록한 사진들은 원정길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어떠한 제재 없이 국가 간 자유로운 왕래가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이들이 그 길을 열었으니 좀 더 수월해지지는 않았을까. 아직 갈 길이 멀겠지만 말이다. "도시의 상징인 네프스키 프로스펙트(대로)를 접어들자 감회가 남달랐다. 대원들 일부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러시아 경찰이 속도를 내자 라이딩 팀은 바짝 따라붙으며 네프스키 프로스펙트를 가로지르면서 숙소인 노보텔까지 질주했다. 역사적인 라이딩을 한 것이다. 시내 라이딩은 고속도라 일반 도로 라이딩과 달리 아슬아슬한 과정이 워낙 많아 원정단은 사분 오열되다시피 했다. 취재 차량과 지원 차량 6대가 라이딩 팀을 놓지는 상황도 발생했다. 정작 진입하는 순간 사진기자, 다큐멘터리 팀 모두 이 장면을 담지 못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147페이지 이렇듯 예기지 못한 상황들도 벌어지고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결국 이들은 서울에 무사히 골인했다. 그들이 유라시아 원정길에 남긴 발자취들은 머지않은 미래에 맞이할 우리의 통일을 위한 힘찬 전진으로 기록될 것이다. 원정대가 말했듯이 아직 끝나지 않은 원정, 이들의 또 다른 도전을 기대해본다. 책 속 곳곳에는 원정길에서 만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양념처럼 뿌려져 있다. 그 어떤 곳에도 남겨지지 않은 새로운 정보들도 책 뒤편에 잘 정리되어 있어 다른 여행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좋은 지침이 될 것으로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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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 가운데, 지난 8월에는 기차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19박 20일의 일정이 펼쳐지기도 했다. 1만 4400km, 지구 3분의 1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거리를 달려 독일 베를린에 이른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환희가 넘쳤다. 바퀴의 궤가 달라 브레스트에서 대차교환을 해야만 했지만, 아시아의 극동에서 유럽까지의 행보를 가로막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보니 분단만 아니었어도 부산에서부터 끊이지 않고 달릴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크게 느껴졌다. 이번에 읽게 된 책은 그보다 더 극한 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베를린에서 서울로, 기차를 타고 이동한 것과 사람들은 반대로 움직였다. 애초에 참가자를 선발함에 있어 신경을 썼겠지만, 아무래도 체력적인 부담이 가장 큰 문제가 될 거 같았다. 하지만 모두가 완주하겠다는 열의로 똘똘 뭉쳤음을 난 간과했던 듯하다. 대신 미처 생각 못했던 한 가지가 매 순간 발목을 잡았다. 국경을 통과하는 일이 바로 그거였다. 유럽 지역의 경우 모든 게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하지만 러시아부터는 달랐다. ‘이 곳은 유럽이 아님’을 만천하에 선언이라도 하듯 과정은 부드럽게 진행되지 못했다. 체제가 다른 상태에서 수십 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빚어진 정서 탓이 아닐까 한다. 친절이나 효율 등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시되는 것들이 그 곳에서도 중요하리라 믿었던 내 생각이 짧았다. 체제의 붕괴 이후 빠른 속도로 자본주의를 닮아가고 있는 구 소련권 국가들은 그래도 낳았다. 중국의 폐쇄적인 분위기는 현재진행형이어서 어딜 가나 공안이 따라붙었다. 그 곳에선 태극기가, 원 코리아(One Korea)라는 명칭이 정치적인 메시지로 해석되고 금지됐다. 같은 인간이 사는 곳임에도 달라도 너무 다른 각 나라의 모습은 놀라울 지경이었다. 어찌 모든 과정이 마음에 들 수 있겠는가. 부족한 만큼 다른 부분에서 넘치기도 했다. 오랜 기간을 함께 라이딩하면서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만큼 가까워진 단원들이 이번 대장정의 가장 큰 수확일 것이다. 오로지 상상 밖에 할 수 없지만, 노숙을 자처할 정도로 아름다웠을 몽골의 밤하늘도 모두의 기억에 짙게 남았을 것이다. 중국 도처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조선족과 북한 음식들 또한... 묘한 기분이 들었을 듯하다. 이렇게 가까운데, 왜 우리는 그 곳에 닿을 수 없단 말인가. 그 순간 ‘통일이 미래다’라는 이번 대장정의 슬로건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머지않은 훗날, 그 때는 부디 부산에서 출발해 베를린까지 거침없이 달릴 수 있길. 오래도록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자전거 도로가 비교적 잘 조성된 요즘이라지만 한 번 페달에서 손을 놓았더니 다시는 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실 모든 것은 핑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대강 짐작은 가능하겠지만, 자전거 도로의 경우 유럽에 속하는 독일에서 발트3국까지는 상태가 양호한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러시아에 들어서면서부터 모든 것은 달라졌고,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다고는 하나 우리에겐 여전히 낙후된 이미지로 여겨지고 있는 카자흐스탄의 경우 도로 곳곳이 움푹 파여 고생 꽤나 했지 싶다. 그런가하면 몽골과 중국은 운전자들의 험악한 운전습관이 도로 사정보다 더 위험했다. 과속, 끼어들기는 기본이요, 중앙선을 무시한 역주행까지. 모든 국가가 친(親)자전거적이진 않았다. 그래도 한 번 즈음은 도전하고 싶다. 꼭 자전거가 아닐지라도, 기차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보고 싶다. 동서를 오가며 기후가, 자연환경이, 사람들의 모습과 옷차림이, 모든 게 달라지는 과정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 과연 언제 즈음 가능해질까. 통일이 되고, 서울에서 혹은 부산에서 출발해 곧장 유럽까지 달릴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 때는 특별한 용기를 내지 않아도 모든 걸 순탄하게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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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15,000km 두 바퀴의 기적 베를린 - 서울, 100일간의 자전거 평화대장정 여행을 한다는 것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것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여행을 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기차 여행에 대한 로망 같은 것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가 아닌 좀 더 길고 오랜 시간동안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할 수 있는 그런 기차 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가장 체험해 보고 싶었던 기차 여행중의 하나는 러시아를 횡단하는 열차를 타고 유럽을 가보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예전에는 그런 것이 있다는 것만 들었었고, 요즘에는 그런 기차를 타고 왔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아직 체험해 보지 못한 사람의 입장에서 '언젠가는'이라는 단서와 함께 한 번 쯤 체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기차를 타고 달려도 며칠이나 걸린다는 유럽을 자전거를 타고 왔다는 사람들의 이야기 입니다. 사실, 언제인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차를 가지고 실크로드를 횡단한다든지 하는 정도의 다큐나 이야기는 꽤 여러번 들은 것 같습니다. 차로 달려도 기차로 이동해도 며칠씩 걸리는 곳을 자전거로 다녀왔다는 얘기는 사실 만화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평화,통일,도전,미래 라는 의미를 위해 그리고 통일을 염원하는 뜻을 담아 달렸다는 서문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요. 책을 읽다보니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유럽의 베를린에서 부터 출발한 100일간의 여정을 한 권의 책에 담아서 인지 여러 도시의 모습을 차례차례 볼 수 있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폴란드의 바르샤바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폴란드라는 나라는 이름을 많이 알려졌지만, 제가 알고있는 지식이 거의 없었던것 같습니다. 책을 통해 만나본 폴란드의 다양한 도시, 포즈난, 코닌, 특히 바르샤바 역사지구 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 나라와 비슷한 침략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런 것을 극복한 모습을 보면서 여러가지 공통점을 느꼈던것 같습니다. 다양한 나라를 거친 이야기들을 다루다 보니 아주 길지않는 내용들이었지만, 꽤나 자주 나오는 사진들을 통해 유라시아 각국의 모습들을 엿볼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있는 라이더 가이드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정보였는데요. 나도 혹시, 또는 한 번 가볼까라는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좋은 정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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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15,000km 두 바퀴의 기적: 베를린-서울, 100일간의 자전거 평화대장정 책을 읽다보니 자전거를 못타는 저로서는 기적같은 일을 한 사람들 같아 존경스러움이 생겨나네요. 베를린에서 서울까지...그들의 자전거 평화대장정은 또 다른 민족애?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독일 베를린, 폴란드,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몽골,중국 베이징..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서울까지. 놀라운 일정의 일들이 일기를 적듯 상세히 적혀 있는 이 책은 감동입니다. 평화,통일,미래,도전의 네 단어로 정리된 원정단이기에 그들의 도전에 박수를 보내게 되네요. 준비기간이 4개월..원정 9개국...그들이 다녀온 길에 대한 정보와 문화를 읽을수 있어 독자인 저는 좋았지만 준비하면서 자전거로 횡단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거 같으네요. 정말 통일이 되어 자전거로 그들이 달린 길을 가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책에도 그런 말이 있지만 안 해본 일은 두렵고 가보지 않은 나라는 무섭답니다. 설레기도 하겠지만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을 시도하는건 분명 두려움일겁니다.그래서 유라시아 원정단이 대단한거지요. 원코리아 뉴라시아 평화원정단의 체험을 통해....각국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도를 보니 통일이 되면 서울에서 바로 백두산으로 갈수 있을거 같으네요.
주요 나라의 도시에서 경제포럼, 통일음악회, 의료봉사, 한국의 밤 등 다양한 행사들을 개최하며 문화적 의미를 되새겼는 원정단! 사진만 봐도 그 젊음과 열정이 느껴지네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블라기보스톡을 다녀온 사람이라 더 친근하네요. 러시아에서 살아 실정을 알기 때문에 원정단의 고생도 알거 같아요..
태극기를 꽂고 자전거를 타는 사진이 인상 깊어요. 외국에 가면 꼭 태극기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 있거든요..너무 반가워요.. 평화를 깃발....그들의 100일간의 이야기는 너무나 값진 흔적입니다. 땀과 눈물의 유라시아 15,000km ..두 바퀴의 기적이라 말할수 있어요 두발의 자전거로 대륙의 역사를 경험한 그들이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블라디보스톡에 살면서 배를 타고 한국을 오지 못한게 아쉽네요.. 나도 배를 타고 속초로 왔다면 원정단의 그 마음을 조금 공유할수 있었을텐데 싶어서 말이죠. 미래는 유라시아, 소통과 도전의 길이 될거랍니다. 새로운 유라시아, 통일 시대를 여는 선도적 역할을 저 또한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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