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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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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란 무엇일까? 나는 문학이 나로 하여금 다양한 삶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면이 좋다. 내가 알지 못했던 타인의 삶들은 상상하는 것으로 감동과 공감을 가능케 하며 사고를 확장시키고 삶에서의 수많은 다양성을 연상케 한다. 체험할 수 없는 삶을 가능케 한다는 것은 문학의 가장 멋진 일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문학이란 무엇인가 를 물어본다면 쉽게 정의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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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란 무엇일까? 나는 문학이 나로 하여금 다양한 삶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면이 좋다. 내가 알지 못했던 타인의 삶들은 상상하는 것으로 감동과 공감을 가능케 하며 사고를 확장시키고 삶에서의 수많은 다양성을 연상케 한다. 체험할 수 없는 삶을 가능케 한다는 것은 문학의 가장 멋진 일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문학이란 무엇인가 를 물어본다면 쉽게 정의 되지 않는다. 문학이란 그 자체가 상당히 관념적인 용어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내가 문학에 대해 품고 있던 생각들이, 결코 문학 자체의 보편적 정의가 아닌, 단지 내가 하나의 숙주가 되어 키워낸 문학에 대한 무수히 많은 관념들 중의 하나에 불과함을 안다.

 

이 책은 1960년대 푸코의 사유가 구조주의의 강력한 자장 아래 놓여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비평가 김현은 이 시기를 푸코 사유에 있어서 문학 시기라 불렀다.(미셸 푸코의 문학비평/ 문학과지성사/김현) 그 시기의 공개 구두 강연을 모은 것이 바로 《문학의 고고학》이다. 푸코의 사유는 광기의 언어부터 시작하는데 , 광기의 언어란 문학이 근본적으로 하나의 언어적 사실이라는 것이며 광기가 하나의 의미작용현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광기와 문학은 기호들을 가지고 놀이를 하는 것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문학과 광기는 오늘 날, 그러니까 하나의 공통적인 지평, 기호의 그것에 다름 아닌 하나의 집합선을 갖는다. 

 

미셸 푸코는 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문학의 수행자체와 연결 되어 있으며 문학은 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안에 거주한다고 한다. 문학은 우리의 언어 보다 훨씬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문학이라고 부르는 무엇인가는 수천 년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작품이라 부를 때 작품은 오직 자신이 시작되는 순간 자체에서만 문학이 된다. 문학은 단어에 대하여 그 봉헌의 공간을 추구하는 사전적 의례 안에 존재하는 이 표면 위, 이 순간에서만 문학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푸코는 하나의 단어가 백지 위에 쓰이면 그 페이지는 문학의 페이지가 되지만 이 순간부터 이미 그것은 더 이상 문학적인 것이 아니게 된다라고 한다. 따라서 문학의 존재란 존재하지 않다. 다만 하나의 시뮬라크르, 문학의 존재 전체인 하나의 시뮬라크르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가 작품이라 부르며 문학적이라 칭하는 언어는 하나의 작품도 문학도 아니며

마치 우리가 볼 수는 있지만 결코 만져볼 수는 없는 거울 속의 공간처럼, 하나의 잠재적 공간, 매개적 공간의 일종이라는 것, 프루스트의 작품에 참다운 모습을 제공해 주는 것은 바로 이 시뮬라르크의 공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문학이 책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완성한다면, 문학은 책의 본질을 평온하게 맞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책은 자신의 내용 이외에 또 다른 본질을 갖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문학이 언제나 책의 시뮬라크로로 남게 될 이유이다. 문학은 마치 자신이 한 권의 책인 것처럼 굴면서, 자신이 마치 책들에 대한 공격과 폭력에 의해서만, 더 나아가 책의 여성적인, 하찮은 변형 가능한 본질에 대한 공격과 폭력에 의해서만 스스로를 완성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학은 하나의 위반하는 언어이자, 죽을 수밖에 없는, 되풀이하는, 다시금 이중화되는 하나의 언어, 책 자체의 언어입니다. 문학에는 오직 하나의 말하는 주체만이 존재합니다, 이 말하는 하나는 바로 책입니다.-p153

 

다시 말하면 문학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다. 우리가 평소 문학이라 불렀던 문학들은 문학이라 부를 때 하나의 언어로만 존재하지만 우리가 그 문학을 통해 감동과 영감을 얻게 된다면-이른바 시뮬라르크- 그때 문하기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문학을 통해 인간의 기쁨과 슬픔과 곹옹을 확인하고 그것이 자기의 것이 되는 공간이 존재할 때 문학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이다. '문학은 , 문학의 고고학은 결코 문학 자체가 아니라, 이 문학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묻는 일이며, 이 문확과는 다른 또 다른 하나의 문학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자신의 글쓰기 행위를 통해 실현하고 드러내는 일이다.'(마지막 문장은 옮긴이의 말 중에서)

 

YES마니아 : 로얄 k********2 2015.08.12.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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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결산] 미셀 푸코 《문학의 고고학》
"[2015년 결산] 미셀 푸코 《문학의 고고학》" 내용보기
인간사랑에서 출간한 본서는 2013년 프랑스에서 발표된 것으로 미셸 푸코가 방송과 대학에서 강연한 문학강의록입니다. 미셸 푸코의 저작들이 국내에도 꽤 나와있지만 한편 한편 따로 읽으면 상당히 해독하기 어렵다는 생각이었는데 푸코의 육성을 직접 접할 수 있다는 것이 <문학의 고고학>의 큰 매력이었습니다.   미셸 푸코는 천재성이 다분한, 뛰어난 학자였습니다. 프랑스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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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랑에서 출간한 본서는 2013년 프랑스에서 발표된 것으로 미셸 푸코가 방송과 대학에서 강연한 문학강의록입니다. 미셸 푸코의 저작들이 국내에도 꽤 나와있지만 한편 한편 따로 읽으면 상당히 해독하기 어렵다는 생각이었는데 푸코의 육성직접 접할 수 있다는 것이 문학의 고고학의 큰 매력이었습니다.

 

미셸 푸코는 천재성이 다분한, 뛰어난 학자였습니다. 프랑스어 원어로 듣거나 읽는 그의 문체는 대단히 아름답고 정확하다고 하는데, 책으로 읽는 푸코의 말들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이는 책 번역가의 탓이 아니라 불어 비 구사자가 푸코를 이해하려 애쓰려하면 당연하게 겪는 일인 것 같았어요. (제 능력 미달일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만 알 듯 모를 듯 하면서도, 시적이고 지성미 넘치는 말들은 저를 포함해 호기심이 많은 독자들이 왜 푸코를 포기할 수 없는지를 알게끔 합니다.

대표적으로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언어가 사물을 번역하기 위해 사물에 적용되는 것이라는 말은 진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치 바다의 소란 속에 잠긴 채 침묵하며 존재하는 보물처럼 언어 안에 포함되고 감싸 안겨 사물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p.88)

 

문학의 고고학은 총 6편의 미셸 푸코의 강연을 만날 수 있는데 1963년 프랑스 국립방송국에서의 강의, 1964년 벨기에 생루이대학교 강의, 그리고 1970년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강의입니다. 책의 부피도 그리 두꺼운 편은 아니고 불과 여섯편의 강의이니, 어렵기로 소문난 푸코일지라도 술술 읽힐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아서 읽기가 더딘 독서였네요.

 

광기의 언어는 프랑스 라디오방송국에서 5회에 걸쳐 방송했던 강의에서 두 회분을 수록했습니다. 첫 번째 광인들의 침묵, 두 번째 광기안의 언어입니다.

 

푸코는 프랑스 역사에서 광인으로 분류된 사람들, 그래서 정신병원이 탄생하는 일을 얘기하며 지배 주류층이 광인을 타자화했음을 밝힙니다. 권력에 의해 광인들과 그들의 언어는 무가치,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되었음을 꼬집고 있지요. 광인을 수용하는 정신병원은 사실상 감금의 역할을 했고 이렇게 광기를 밀어냄으로써 그 반대인 이성이 서양 정신의 근엄하고 지고한 어떤 것으로 승격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미셀 푸코는 시인 앙토냉 아르토가 병원에서 지인에게 보낸 편지글을 통해서, 이성의 언어로부터 배제되었으나 예술적 가치가 있는 언어(langage)를 옹호하며 강연을 마칩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언어가 봉사해야 하는 유일한 사용법이 있습니다. 사유를 제거하는, 광기의, 단절의 수단으로서의, 비이성의 미로가 그것입니다.’ (p.111)

 

정리하면 첫째, 광기에 내재된 문학성을, 둘째로 문학에 편재되어 있던 광기성의 그 친연(親緣)관계를 1부에서 피력하게 됩니다.

 

미셸 푸코가 보기에 모든 단어는 절대적으로 자의적이지만, 그럼에도 언어는 우리 안에서 마음과 기억 속에서 울림을 불러일으킴을 주지시킵니다.

 

벨기에 브뤼셀의 대학에서 강연한 2문학과 언어에서 푸코는 본격적으로 언어와 작품, 문학의 세 지점을 파고드는데요. 읽다보면 푸코가 문학이라 명명된 고상하고 신성하게까지 불리는 것에 대해 큰 반감을 갖고 있음을 절실히 깨닫게 되요.

 

고전주의 이래 문학으로 위치지워진 영역의 후광효과에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합니다.

 

2부에서 놀라웠던 점은 시뮬라크르란 용어를 푸코가 처음 사용했다는 사실을 안 거였어요. 푸코는 문학의 전반은 이전의 전통을 잇는 구태의연함일 뿐이며 모방작, 즉 시뮬라크르에 가깝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분출로서의 작품은 문학의 되풀이에 다름 아닌 중얼거림 속으로 사라져 해소되어 버린다고 말할 수 있으며, 또 이처럼 문학의 주변에, 앞과 뒤에, 존재하는 어떤 것, 곧 문학의 연속성이 존재하기 때문에만 존재하는 하나의 조각, 하나의 문학적 파편이 되지 않는 작품이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p.130) 

 

파격적이고 저항적인 미셸 푸코에게 인정받는 문학가들은 그렇기에 결코 범상한 작가들이 아니었어요. 대문호인 세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는 예외지만, 샤토브리앙, 디드로에 이어 푸코는 사드 후작(Marquis de Sade)라는 다소 이단적인 작가를 문학의 중심에 놓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드의 작품은 자기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철학, 문학, 언어를 소거시키려는 의도, 이런 과정을 거쳐 하나의 페이지를 백지로 되돌려 타락시켜 버리는 파롤의 위반에 의해 이 모든 문학을 소거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작품이 문학에 신호를 보낸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작품이 문학을 호출한다(appelle), () 문학이 자신과 타인들에게 자신이 분명 문학적임을 증명해주는 일련의 표식을 스스로에게 부과한다는 말입니다.

모든 단어들, 모든 문장들 각각이 문학에 속함을 표시해주는 이 현실적인 기호들은 롤랑 바르트 이래의 최근 비평이 글쓰기(ecriture)라 부른 것입니다.’

(p.135)

 

사드와 더불어 (그 어렵다는) 프루스트도 미셸 푸코에 의해 위반으로서, 금기에 도전하는 문학으로서의 위상을 얻습니다. 제임스 조이스도 그렇구요.

 

구텐베르크를 통해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 문학은 이미 존재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독자들에게 책이란 양식을 통해 문학이 다가온 것은 수 세기나 후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합니다.

푸코가 인정하는 문학이란 위반그 자체였습니다.

 

아마도 문학은, 정확히, 언어가 자신의 사후에 남겨놓은 하나의 덧없는 실존이 아닐까요?’ (p.152) 

 

3부에서 사드에 대한 강의에서 푸코는 앞에서 주목하고 끄집어냈던 사드와 그의 문학을 집중 조명합니다. 푸코는 사드가 근대 문학의 문턱에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글쓰기를 통해 욕망이 문학에서 등장하기 시작했음을 알립니다. ‘어떤 외부로부터의 반박도 불가능한, 무한정하고도 절대적인 전체로서의 진리의 세계 안으로 진입한다는 거에요.

 

푸코에 따르면 사드 문학은 서구 문명에서 욕망이 늘 사로잡혀 있던 진리에의 종속으로부터 욕망을 실제로 해방시킨 인물을 실현한 작품이었죠.

 

문학이란 무언인지를 알고 싶어 읽기 시작했는데

당신이 알아왔던 문학은 문학이 아니었다는 도발적인 담론을 펼쳤던 미셸 푸코.

 

처음에는 독해도 독해지만 논리가 당황스러웠는데, 문학을 말하기 위해 문학 아닌 것을 지속적으로 말하는 푸코의 방법은 분명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푸코 사상의 초반에 해당하는 글들이며 지극히 프랑스 중심적인 사유의 연속이었기에 어떤 부분은 장황하게도 느껴졌지만, 읽고나면 문학의 미래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게 하는 명강연들입니다. 대안으로서의 문학을 처음으로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b********5 2015.08.17. 신고 공감 4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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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가 말하는 '문학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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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먼저 이 책을 소화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두 세 번을 읽고 난 다음 내 나름대로 개념을 정리해 보려고 노력했다.나는 푸코가 쓴 《지식의 고고학》(1969)을 무척 흥미롭게 읽었던 적이 있다. 당시 밤을 새워 가며 말 그대로 밑줄 쫙~ 치면서 읽었다.과연 지식이란 무엇일까? 푸코는 지식의 연원과 연대기를 새로운 개념들(가령 언표와 언설같은)을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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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먼저 이 책을 소화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두 세 번을 읽고 난 다음 내 나름대로 개념을 정리해 보려고 노력했다.

나는 푸코가 쓴 《지식의 고고학》(1969)을 무척 흥미롭게 읽었던 적이 있다. 당시 밤을 새워 가며 말 그대로 밑줄 쫙~ 치면서 읽었다.

과연 지식이란 무엇일까? 푸코는 지식의 연원과 연대기를 새로운 개념들(가령 언표와 언설같은)을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머리에 전구가 켜지는 듯한 희열을 맛보았다.

저자는 《지식의 고고학》에서 푸코가 말하고자 한 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피스테메'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에피스테메'는 특정 시대를 관통하는 인식의 장이다.

가령 푸코는 16세기에서 17세기 중반에 이르는 르네상스의 에피스테메를 '닮음',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에 이르는 고전주의의 경우 '표상 작용', 19세기 이후 근대의 시기는 '역사'와 '인간'으로 규정했다. 푸코는 《지식의 고고학》에서 고고학자들이 화석을 통해 역사를 규명하는 것처럼 문학, 인간, 진리 등 역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의 역사적 맥락을 밝히고자 했다.

자, 이번에는 《문학의 고고학》이다. 과연 문학이란 무엇일까?

푸코 전문가 허경 박사는 <옮긴이 앞글>에서 푸코의 문학관에 대해 상세한 해설을 담았다. 독자들이 이 책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지적 배려이지 싶다.

이에 따르면 문학에 관한 푸코의 글들을 따로 모아 놓은 책은 없다. 대부분 푸코의 사후 연구자들이 취합한 것이다. 이 책은 1963~1964년 그리고 1970년 푸코가 문학에 대해 말하고 쓴 글들, 강연의 수고들, 녹음테이프의 전사본들 중 몇몇을 모은 것이다. 번역에 활용한 원서는 2013년에 프랑스에서 발간되었다.

책은 주제에 따라 I~III부로 나누어 각기 '광기의 언어', '문학과 언어', '사드에 대한 강의'라는 제명을 붙였다. 각 부마다 두 편의 글을 싣고 있다.

1부 '광기의 언어'는 1963년 1~2월에 방송된 두 편의 라디오 방송 분이다. 2부는 1964년 12월 브뤼셀의 생루이대학교에서 이루어진 두 편의 강연이다. 마지막 3부는 1970년 3월 미국 버팔로 뉴욕주립대학교에서 행한 두 편의 강연을 담았다.

푸코는 《광기의 역사》(1961), 《임상의학의 탄생》(1963), 《말과 사물》(1966), 《지식의 고고학》(1969) 그리고 《감시와 처벌(1975)》 등 일련의 저작을 통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서구문명이 그것에 입각해 작동하고 있는 문화인류학적 코드를 일관되게 추적한다. 광기, 언어, 지식 그리고 권력 등 이들이 서로 서로를 형성하며 제어하고 상호작용하며 이루어가고 있는 복합적 그물망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또 작동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푸코는 문학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보편적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에게 문학은 18세기 말 19세기 초 근대에 탄생했다. 그렇기에 그 이전을 소급하여 문학의 일반적, 보편적 특성을 논의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역사를 기술하는 것 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나는 만약 우리가 문학, 문학의 존재 자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이렇게밖에는 대답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의 존재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의 시뮬라크르, 문학의 존재 전체인 하나의 시뮬라크르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 137쪽

여기서 시뮬라크르는 사전적 의미로 '모방, 모방 작품'을 뜻한다. 나는 위 푸코의 말을 온새미로 파악하는 것이 그의 문학관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문학 작품의 텍스트를 분석하기 보다는 문학의 언어와 그 시공간을 탐구한다. 내겐 낯설고 어려운 시도가 아닐 수 없다.

문학의 고고학 역시 푸코가 선뵌 철학적 방법론을 염두에 둔다면 어느 정도 흐름을 따라 잡으며 읽을 수 있다. 내 경우 이는 어디까지나 문학의 연원과 테두리(한계로서의) 혹은 그 비슷한 것들에 대한, 어렴풋한 인식에 머무르고 만다. 여전히 어려운 개념은 해소되지 않는다.

가령 '프로파노숑(profanation)'(130쪽)이 그렇다. 사전적 의미는 '남용, 오용, 타락'이다. 본문에서는 주로 '타락'으로 번역하고 있다. 하지만 내게 필요한 것은 이런 사전적 의미 말고 함축적 의미다. 푸코에게 '타락'은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해진다.

오히려 '시뮬라크르'의 개념적 맥락을 위해 '프로파노숑'을 '반복, 되풀이'로 하면 좋지 않을까? '프로파노숑'은 어떤 의미에서는 '되풀이/되풂 작용(repetition)'과 일맥상통하지 싶다.

나는 최근 사드의 《미덕의 불운》을 읽었다. 그래서 III부를 특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푸코는 사드는 왜 글을 썼는지, 사드에 있어 글쓰기 작업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탐색한다. 이 파트가 가장 읽기 쉬웠는데, 아마도 뉴욕주립대 학생들을 상대로 한 강의다 보니 그러지 않았나 싶다.

"글쓰기는 되풀이된 향락의 원리"(230쪽)라든가, "소설가는 어머니 자연과 근친상간을 행하는 아들"(224쪽)이라는 표현은 너무나 참신해서 밑줄 쫙~ 그었다.

푸코는 강연에서 다양한 원전을 인용하고 있다. 이중에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드니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  사드의 《미덕의 불운》 등 국내에 번역 소개된 것도 있지만,  장피에르 브리세, 미셸 레리스나 장 타르디외의 텍스트 같이 인용문 외에는 접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안개 처럼 피어오르는 영감을 몇 가지 얻을 수 있었다. 낯선 외지를 여행하듯 긴장하고 탄식하며 감탄하여 마지 않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내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는 읽기였다는 점이었다. 과연 나는 푸코가 사유한 문학의 에피스테메에 다가설 수 있을까?

YES마니아 : 로얄 h*******c 2015.09.0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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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고고학/인간사랑/허경/미셸 푸코의 강의, 문학과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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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고고학/인간사랑/허경/미셸 푸코의 강의, 문학과 언어!   고고학이라면 과거의 흔적인 유적과 유물 등 증거를 바탕으로 과거의 문화와 역사, 그 시대의 생활방식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문학의 고고학이라면 과거의 문학을 통해 문학의 생성과 발달, 각각의 문학적 상관관계를 밝히는 연구일 것이다.     문학의 고고학! 들뢰즈, 라캉과 함께 프랑스 현대 철학을 이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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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고고학/인간사랑/허경/미셸 푸코의 강의, 문학과 언어!

 

고고학이라면 과거의 흔적인 유적과 유물 등 증거를 바탕으로 과거의 문화와 역사, 그 시대의 생활방식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문학의 고고학이라면 과거의 문학을 통해 문학의 생성과 발달, 각각의 문학적 상관관계를 밝히는 연구일 것이다.

 

 

문학의 고고학!

들뢰즈, 라캉과 함께 프랑스 현대 철학을 이끈 미셸 푸코의 문학 강의를 접할 수 있다니, 반갑다. 프랑스를 넘어 현대 철학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미셸 푸코의 문학의 고고학강연을 읽을 수 있다니, 어렵지만 참신한 내용들이기에 새로운 세계를 탐험한 기분이다. 비록 그의 목소리가 아니고 강연을 옮긴 글이지만 마치 방송이나 강연을 접한 기분이다. 광기의 언어, 문학과 언어, 사드에 대한 강의 등 3부로 이뤄진 이 책은 1963년 푸코의 방송국 공개 강연, 1964년 벨기에 브뤼셀의 생루이대학교에서 열린 컨퍼런스 문학과 언어에서의 강연, 1970년 미국 버팔로 뉴욕주립대학에서 문학 강연을 모은 것이라고 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1964년 벨기에 브뤼셀의 생루이대학교에서 열린 컨퍼런스 문학과 언어에서의 강연이 가장 인상적이다. 이 강연에서는 중얼거림의 발화인 언어와 단어와 기호의 투명함을 두텁게 만든 작품, 언어와 작품의 정점에 있는 문학의 삼각형 구도에 대한 분석이 특징이다.

 

문학은 수사학의 공간이 우리가 책의 부피라 부를 수 있을 무언가에 의해 대체되었던 순간 시작되었다.(150)

 

나는 문학적 의미의 글쓰기란 작품의 중심 자체에 되풀이를 설정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167)

 

푸코는 하나의 우화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이루어진 문학이 언어-작품-문학의 삼각형 안에서 능동적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푸코는 작품이 문학에 보내는 신호들, 문학의 언어와 수사학, 되풀이와 되풂의 과정을 거쳐 순환되는 문학의 이중/분신의 법칙과 말놀이 전개 과정 등을 통해 과거의 문학이 반복과 이중의 과정 등을 거치며 생존함을 이야기한다. 이중에서도 이중적 참조가 두드러지는 바타유와 블랑쇼, 라신과 코르네유, 보마르쉐, 마리보, 보들레르 등 프랑스 작가들에 대한 소속에 대한 정리 및 관계 짓기는 이들의 작품을 읽어야 이해될 이야기다. 푸코의 문학 강연에는 세르반테스, 프루스트, 조이스의 작품 인용이 자주 등장한다. 19세기 문학에 나타난 역사성과 새로운 문학의 행위인 부정 작용, 거부나 살해의 시도에 대한 문학적 의미들, 인간이 어떻게 앎을 구성해 가는 지, 문학이 어떻게 되풀이되는지, 기존 사유가 재해석되는 상황들에 대한 푸코 특유의 기존 문학의 고고학적 사유가 끌림이 있다.

 

기존 서구적 사유를 넘은 폭넓은 사유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미셸 푸코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라고 한다. 프랑스를 넘어 현대 철학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미셸 푸코는 혁명 전사 같은 철학자다. 그 이유는 철학적인 사유와 저술을 넘어 자신의 생각과 이론을 행동과 실천으로 일관한 그의 삶의 태도 때문 일 것이다.

 

 

책 속에 만나본 프랑스의 구조주의 기수로 알려진 철학자 미셸 푸코의 이중-분신의 사유, 언어의 이중적 존재론, 인식론에 근거한 그의 강의는 매우 논리적이고 달변의 철학 강의 같다. 구조주의와 후기 구조주의를 모두 결합했다는 평가를 받는 푸코의 문학 강의는 해당 작품에 대한 이해가 필수이기에 다소 난해한 강의다. 그래도 이전에 푸코의 지식의 고고학을 만화로 읽었기에, 다소나마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고 할까? 푸코가 말하는 광기, 말과 사물, 지식의 기원 등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었기에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었던 책이다. 어렵지만 푸코의 열정적인 강의의 현란한 문장의 매력 속으로 빨려든 책이다. 언어를 탐지하고, 모든 문학적 실재에 대해서 의심했던 철학자의 깊은 고민과 사유의 결과물인 강연을 들은 기분이다. 마치 문학의 언어로 철학하기 같다.

 

 

a******7 2015.08.1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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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고고학]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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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왕이나 돈키호테와 같은 작품을 읽어 본 적 있는가?그 작품 속에 나오는 주인공의 광기를 접해본 적은? 푸코는, 죽기 전엔 멈추지 않을 광기 속으로 추락하고 있음을 안 리어왕의 고통과는 다른 광기가 돈키호테에게 있다고 했다. 즉, 광기로부터 언제든 돌아설 수 있다는.어렴풋이 기억하던 그 작품 속에 나오는 그들을 다시 만나보고 싶어졌다. 조만간 두 작품을 다시 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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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왕이나 돈키호테와 같은 작품을 읽어 본 적 있는가?
그 작품 속에 나오는 주인공의 광기를 접해본 적은?
푸코는, 죽기 전엔 멈추지 않을 광기 속으로 추락하고 있음을 안 리어왕의 고통과는 다른 광기가 돈키호테에게 있다고 했다. 즉, 광기로부터 언제든 돌아설 수 있다는.
어렴풋이 기억하던 그 작품 속에 나오는 그들을 다시 만나보고 싶어졌다. 조만간 두 작품을 다시 읽어야지.
그러한 고전에 보면, 이를테면 "암흑의 구슬을 품은 황금을 감추고..." 같은 알 수 없는 문장이 나오기도 한다.
무슨 말인가? 푸코는 그 시대를 "유사성의 시대"라고 말했다. 암흑의 구슬은 눈동자이고, 황금은 살빛이 금처럼 누런 사람을 뜻하는 것이었다.
돈키호테에서도 거대한 풍차와 거인을 동일시하는데, 바로 거대함이라는 유사성에 근거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문학작품을 통해 푸코의 철학과 사상을 접하다 보니 그의 생각이 좀 더 궁금해졌다.
하지만 푸코의 철학은 특히나 어려웠다.
이 책의 구조 또한 그의 공개 구두강연을 모아 원본에 준하여 옮겨졌다.
신선하고도 색다른 느낌이었다.
프랑스인인 푸코의 문체가, 정확하면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탁월한 문체로 정평이 나있었기에
한국어로 번역할 때 가독성은 떨어질 수 있다고, 편집자는 설명해놓았다.
하지만 1960년대의 푸코를 직접 만나 강연을 경청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목차는 크게 세가지였다. 광기의 언어, 문학과 언어 그리고 사드에 대한 강의.
예상대로 내가 흥미를 느낀 것은 첫번째, 광기의 언어였다.

 

일단, 푸코가 일생동안 그의 사상을 전개한 것을 찾아보았다.
처음엔 인식론적인 연구에 집중하여 광기와 질병,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역사를 살펴보았다고 한다.
두번째는 언어학의 연구 시기, 즉 사물과 언어의 관계를 특정짓는 "에피스테메"라는 개념을 정립하였고,
마지막으론 훈육과 규율에 대한 분석을 연구하였다고 알고 있다.

 

독창적인 사상가로서 "시대의 진리를 의심하라"는 푸코의 말대로 나의 시각과 발상을 전환하고 싶었다.

 

책을 읽다보니 국어시간에 배웠던 소쉬르의 언어의 자의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광기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도 이야기하였다.
광인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광인인데, 세상이 필요에 따라 다르게 대하였다고 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상과 광기 사이에 대화가 있었다. 광기를 우주적 계시나 이성을 넘어선 자각으로 여겨 광인을 초월적 존재로 생각하던 시대도 있었다.
고전주의 시대에는 광기를 눌러 침묵시켰지만 광인들의 언어는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근대 정신병원은 대화가 아니라, 보상과 차별의 체계 안에서 광인 스스로 알아서 정신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조련만이 있다.

 

아까 언급한 "에피스테메"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였다.
유사성의 시대를 지나 고전주의 시대의 표상의 시대로 바뀌었다. 박민규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표지그림이기도 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보면,
그림의 거울 속 왕과 왕비가 나오는데, 그들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 표상 자체로 가시적이 될 수 있다고나 할까?
그러다 근대에 와서는 실체의 시대가 되었다. 노동, 생명, 언어같은 단어는 표상으로 환원되지는 않지만 객관적 실체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말이라는 것이 결국 담론이고 철저한 힘의 관계에 의해 지배받는 것이라 19세기 초 정신의학은 질병과 맺는 대상적 관계를 광기와 맺음으로 권력관계도 수립되었다.
문학과 광기, 언어를 전방위적으로 다루는 작품등을 통해 푸코는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였는데, 모두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문학과 광기는 하나의 공통적 지평이라고도 했다.
아! 어렵다.

 

덧, "광인들의 배" 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사람들은 광인을 사람의 경계라고 상상한다. 또 물은 이 육지와 저 육지의 경계이므로,  경계인인 광인을 자신이 속하지 않은 두 세계의 경계 위(물 위) 에 떠다니게 한다는 것. 실제 있었던 일이기도 하고.

 

이 책을 통한 푸코의 강의는 소개된 문학작품들을 좀 더 심도있게 읽어본 뒤에 다시 접하고 싶다. 그러면 더 가까워질 수 있겠지. 우리가.

 

l*****3 2015.08.2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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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고고학 - 미셸 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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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의 <문학의 고고학>을 읽어보고 싶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에 대하여 내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이 책의 제목부터가 나에게는 심상치 않게 다가온다. '문학'과 '고고학'의 결합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출발과 미셸 푸코에 대한 나의 호기심으로 촉발된 <문학이 고고학>읽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이 책의 의의는 1960년 ~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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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셸 푸코의 <문학의 고고학>을 읽어보고 싶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에 대하여 내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이 책의 제목부터가 나에게는 심상치 않게 다가온다. '문학'과 '고고학'의 결합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출발과 미셸 푸코에 대한 나의 호기심으로 촉발된 <문학이 고고학>읽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이 책의 의의는 1960년 ~ 1970년에 걸친 기간 동안 미셸 푸코가 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 것과 관련이 있다. 구조주의의 대가라고 불리웠지만, 말기에는 그러한 의견에 선을 그었던 미셸 푸코의 행적이라든지 1970년 이후 문학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아예 언급하지 않는 그의 활동 내역을 본다면 <문학의 고고학>은 1960년 ~ 1970년에 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개진한 푸코의 유일한 흔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왜 이 책의 제목이 <문학의 고고학>인 것일까?


 사실 이전에 우리에게 소개된 미셸 푸코의 저작으로서 <지식의 고고학>이 있었기에 이와 연관지어 이 책의 제목의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사실 미셸 푸코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였고, 그의 저서를 한번도 접하지 못한 나로서는 <문학의 고고학>을 읽기 전에 이 제목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고고학이란 역사적인 흔적이 묻어나는 유적지를 발견하고, 연구하는 학문이라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푸코에게 있어서 고고학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연구 및 탐구라는 고고학의 성격은 아마 학자들에게 있어서는 보편적인 것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보편적인 성격을 배제한다면 과연 푸코에게 있어서 고고학이란 무엇일까? 지층을 보면 우리는 두가지 면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지질학적인 측면을 본다면 분명 지층은 연속적인 의미로 비춰질 수 있다. 각 층의 형성 시기들을 연결한다면 바로 그것이 역사의 연속성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의 층을 놓고 본다면 반대로 단절된 시간 속에서 특정 시간에 대한 의미로 볼 수 있다. 지층을 두고 연속성과 단절성이라는 상호 모순적인 부분을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적어도 푸코에게 있어서는 후자인 단절성과 관련지어 고고학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문학의 고고학>의 첫장은 '광기의 언어'인데 이와 연관지어 생각을 해보았다. 사실 푸코의 또다른 저작인 <광기의 역사>를 간략히 들여다보면서 느낀 점은 광기라는 하나의 소재를 놓고 시간적인 단절성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광기라는 뜻을 생각해보면 정신병 내지는 미쳤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푸코는 이러한 광기에 대해서도 고고학적인 측면으로 받아들여져 본다면 시기별로 광기에 대하여 다른 해석이 존재함을 언급하고 있다. 과거에는 광기를 신내림과 같은 예언자적인 측면으로 해석될 수 있었으며, 이후 치료가 되어야 할 것, 또는 다른 의미로 소통을 해야 하는 것으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음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푸코의 고고학적인 측면은 다양한 해석과 함께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 보다는 정신 질환자를 이해하기 위하여 환자의 살아온 환경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이러한 점을 본다면 '광기의 언어', '문학과 언어' , '사드에 대한 강의'로 이루어진 이 책의 제목이 왜 <문학의 고고학>인지 어렴풋이 이해가 되는 듯 하다. 


 실제 첫 부분에 등장하는 '광기의 언어'는 그의 저작인 <광기의 역사>와 연장선상에 놓인 내용이 아닐까 생각된다.(사실 <광기의 역사>를 읽어보지 않았기에 미루어 추측할 수 밖에 없다.) 미셸 푸코는 '광기의 언어' 강연에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광인들의 언어를 통하여 언어의 이중적 존재론과 이중-분신의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 '광기의 언어'에 대한 개념을 이끌어내고 있는데, 마치 광인의 언어처럼 들려지는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대목은 광기어린 느낌의 언어와는 달리 인간의 나약한 양심을 통하여 인간의 한계와 절망을 표상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중략) 리어 왕은 의심의 여지없이 광기의 비극적 성격을 온전하고도 충실하게 보여주는 아주 드문, 거의 유일한 표현이기 때문이지요. 리어 왕은 유례가 없는 작품인데, 이 유례없음은, 종종 희극적인 찬양을 제외한다면, 늘 정당화되는 먼 시선으로 광기를 바라보고, 근본적으로 광기와 거리를 취하도록 배려하기를 잊지 않는 문화, 곧 우리 것과 닽은 문화에서는 유례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p. 57 -

 "(중략) 돈키호테는 자신의 광기를 의식하기도 의식하지도 못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점점 눈이 멀어, 여하튼, 광기로 돌아서는 순간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런데 돈키호테의 광기가 갖는 비극적 법칙에 의해, 마치 열병에서 빠져나오는 순간과도 같이, 자신의 광기에 대한 돈키호테의 이런 갑작스런 의식, 회귀가 죽음을 향해 나아가게 만들고, 이는 죽음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확실성에 이르게 됩니다." - p. 58 -


 미셸 푸코는 이러한 광인의 언어를 통하여 '문학과 언어'에 대한 두번째 장에 대한 기본적인 사유의 논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 작품, 문학으로 이루어진 삼각형의 틀에서 문학의 능동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푸코의 주장은 언어의 수사학과 작품이 문학에 보내는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문학이 삼각형의 꼭지점에 놓인 위치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보여진다. 사실 이 부분은 바타유와 블랑쇼, 라신과 코르네유, 보들레르의 작품과 사상을 통하여 반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들에 대하여 자세히 알지 못하기에 사실 읽는 동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따라서 <문학의 고고학>은 '문학과 언어'의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세번째 구성을 '사드에 대한 강의'를 실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나폴레옹 시대에 감옥과 정신병원에 갇혀서 기행적인 글들을 쓴 인물로 알려진 사드에 대하여 오히려 인간의 이성이라는 한정적인 테두리를 벗어나서 인간의 광기와 욕망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고 평가를 하고 있는 미셸 푸코는 사드의 문학 작품을 통하여 거세론적 담론(리베르탱적 담론)을 통하여 욕망과 신체를 포기하여(한계를 뛰어넘어) 무한대의 영역에 들어서는 형상을 설명하고 있다.


 <문학의 고고학>은 사실 미셸 푸코의 얼마 되지 않는 문학에 대한 강연을 엮어서 출간된 책이다. 초반에도 언급하였지만, 꽤 힘들게 읽은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책에 실린 강연은 일정 수준 그 분야에 대하여 지식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였기에 나처럼 미셸 푸코에 대하여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읽는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후기 구조주의자로서 칭송받던 미셸 푸코의 문학에 대한 담론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과 이 책을 통하여 미셸 푸코의 사상에 대한 관심을 경주할 수 있었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국내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미셸 푸코에 대한 문학에 대한 구체적인 강연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또다른 매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한권으로 미셸 푸코에 대하여 알지 못했던 내가 미셸 푸코의 담론이라든지 고고학, 인식론을 모두 이해할 수 없지만, 이 책에 실린 그의 논리적인 강연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과 관심이 생겼다는 것은 큰 소득이 아닐까 생각된다.

g*******7 2015.08.3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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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잃어버린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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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 이야기 2015-169   『문학의 고고학』 미셸 푸코 / 인간사랑     이 책의 키워드 중 하나는 ‘광기’이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선 푸코에게 ‘광기’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초기에 출간된 푸코의 글들은 모두 정신의학(Psychiatry)과 정신병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뤘다. 존재론적 현상학의 영향이 컸다. 푸코는 정신질환을 이해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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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2015-169

 

문학의 고고학미셸 푸코 / 인간사랑

 

 

이 책의 키워드 중 하나는 광기이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선 푸코에게 광기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초기에 출간된 푸코의 글들은 모두 정신의학(Psychiatry)과 정신병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뤘다. 존재론적 현상학의 영향이 컸다. 푸코는 정신질환을 이해하기 위해서 환자가 살아온 경험을 고려해야 하며, ‘정신병의 현상학이 필수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푸코는 고전 문학작품 속에서 광기를 어떻게 표출해내고 있는가? 르네상스시대에 광기는 일상적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한 부분으로 이해되었다. 광인들은 도시에서 추방되었지만, 인간 존재와 사회로부터 광기를 완전히 지워 없애려 할 시도는 없었다. 광인들은 배제되기는 했으나, 사회적으로 두려움과 차별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그와는 정반대로, 광기는 인간적 조건에 관한 특별한 종류의 지혜를 지닌 것으로 인정받았다. 이 책 문학의 고고학에서도 등장하지만, 푸코는 다른 작가들보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작품에서 광인 배역들을 다루는 것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그들이 다룬 미친 영웅들은 비극적 양심의 목소리를 통해 인간이 지닌 유한성과 절망적인 비애를 외쳤다는 것이다.

 

 

문학의 고고학으로 들어가 본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푸코의 공개 구두강연을 텍스트로 한 것이다. 라디오 방송녹음, 강연의 녹음테이프, 컨퍼런스 발표 내용을 담았다.

 

 

광기의 언어

 

1963년 푸코는 국립 RTF 프랑스 방송국에서 말의 사용이라는 타이틀로 광기의 언어에 관해 5회 연속 강의를 했다. 푸코는 서양 사회의 역사를 기술하기 위해 특히 광기를 이를 위한 시금석으로 삼았다. 네 개의 큰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로 작가(푸코)는 언어에 있어서의 광기의 분출지점 들을 규정한다. 작가는 병리학적 언어의 다양한 형식들을 분석한다. 이를 위해 작가가 고르고 연극배우들이 낭독하는 환자의 텍스트, 또는 기록된 환자와 의사 사이의 대화가 담겨있다(드라마 형식으로 진행된다). 두 번째로 광기가 언어 안에서 어떻게 재현되어 왔는가를 보여준다. 이를 위해 작가는 셰익스피어에서 코르네유에 이르는 작가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광인의 캐릭터를 예로 든다. 세 번째, 작가는 언어의 내부 자체에 존재하는 비이성의 경험을 다루고, 이를 제라르 드 네르발이나 레몽 루셀과 같은 작가들에게서 나타나는 광기와 문학적 경험 사이의 관계를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인위적으로 불러 일으켜진 광기에 대해 다루고 있다. 문학의 고고학에선 푸코의 다섯 개의 방송 중 두 번째 광인들의 침묵과 마지막 광기의 언어가 담겨있다.

 

 

 

광인들의 침묵

 

리어 왕은 의심의 여지없이 광기의 비극적 성격을 온전하고도 충실하게 보여주는 아주 드문, 거의 유일한 표현이지요. 리어 왕은 유례가 없는 작품인데, 이 유례없음은, 종종 희극적인 찬양을 제외한다면, 늘 정당화하는 먼 시선으로 광기를 바라보고, 근본적으로 광기와 거리를 취하도록 배려하기를 잊지 않는 문화, 곧 우리 것과 같은 문화에서는 유례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돈키호테의 비극성은 그 인물의 광기 자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니며, 그가 사용하는 언어의 심오한 힘도 아닙니다. 돈키호테의 비극성은 독자와 다른 등장인물들에게만이 아니라, 산초와 마지막으로는 돈키호테 자신에게까지도 이 광기에 대한 의식을 가능케 해줄, 때로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이 거리, 작은 빈 공간 안에 놓여 있습니다.”

 

 

 

광인들과 소통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침묵의 광인보다 끊임없이 말을 하는 광인들이 많지 않을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독백조의 말만 하기 때문에 그들을 침묵으로 단정 짓는 것이 아닐까? 푸코의 말을 들어본다. “이제, 우리가 광인들과 소통하는 것이 어렵다면, 물론 그것은 그들이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아마도 분명, 지나치게 많은 것을 담은 언어로, 세계의 모든 길들이 뒤섞이는 기호들의 열대 군집과도 같이, 너무 많이 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학과 언어

 

196412월 미셸 푸코는 벨기에 브뤼셀의 생루이대학교에서 열린 컨퍼런스 문학과 언어에 참여한다. 푸코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간파한 언어, 작품, 문학사이의 기묘한 삼각형에 대한 분석이라는 목적아래 1960년대 초 문학에 관한 자신의 글에서 다뤘던 주제들 전체를 재조명한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푸코는 언어, 작품들, 문학 등의 세 요소로 구분하고 있다. “문학은 모든 언어 작품의 일반적 형식도 아니며, 언어 작품이 위치한 보편적 장소도 아닙니다. 문학은 말하자면 세 번째, 곧 언어에서 작품으로, 작품에서 언어로의 관계가 통과하는 삼각형의 정점(頂點)입니다.”

 

 

문학의 고고학은 푸코의 다른 저술을 읽고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 소중한 책이다.

옮긴이(허경)가 이 책을 푸코 사유의 잃어버린 고리를 드러내주는 귀중한 자료들이라고 언급한 것에 깊이 공감한다.

 

 

 

 

 

 

s******5 2015.08.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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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 문학의 고고학 ★
"[미셸 푸코] 문학의 고고학 ★" 내용보기
미셸 푸코는 정신의학에 흥미를 가지고 연구했으며 서양문명의 핵심인 합리적 이성에 대한 독단적 논리성을 비판하고 소외된 비이성적 사고, 즉 광기(狂氣)의 진정한 의미와 역사적관계를 파헤친 프랑스의 철학자이다. 문학의 고고학의 백미는, 자신만만하면서도 재기 넘치는 아름답고도 정교한 문체로 젊은 거장의 도래를 알리는 1부, 정치하고도 탄탄한 논리적 구조로 독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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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는 정신의학에 흥미를 가지고 연구했으며 서양문명의 핵심인

합리적 이성에 대한 독단적 논리성을 비판하고 소외된 비이성적 사고, 즉 광기()의 진정한 의미와

역사적관계를 파헤친 프랑스의 철학자이다.


문학의 고고학의 백미는, 자신만만하면서도 재기 넘치는 아름답고도 정교한 문체로 젊은 거장의 도래를 알리는 1부,

정치하고도 탄탄한 논리적 구조로 독자를 승복시키며 사드의 문화적 의의를 다루는 2부도 중요하지만,

"문학"에 대한 관념을 단 한 번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스스로의 문학에 대한 "전복적.위반적" 정의를 제출하고 있는 3부라 해야할 것이다.


1부 '광기의 언어'는 푸코가 1963년 1∼2월 국립 RTF 프랑스 Ⅲ 라디오에서 한

5차례 강연 중 2회차 '광인들의 침묵'과 5회차 '광기의 언어'를 수록.

2부 '문학의 언어'는 1964년 12월 벨기에 생루이대 콘퍼런스에서 이틀에 걸쳐 발표한 푸코의 강연.

3부 '사드에 대한 강의'는 1970년 3월 미국 뉴욕주립대 버팔로캠퍼스 프랑스학과에서 이뤄진 두차례의 강연.


문학과 광기, 또 언어와 광기의 상호 관계에서는 깊은 공감은 가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어지러움을 느꼈다.

다소 생소한 언어들과 구성으로 인해, 공감을 벗어난 약간의 이질감이라고 해야할까...

문학에 대한 강의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미셸 푸코의 사고는 늘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감시와 처벌을 읽었을 때는 온통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였고,

5번을 읽고 나서야 권력에 대한 푸코의 철학적 이론을 조금씩 이해했지만,

[문학의 고고학] 은 이미 5번을 읽었는데요...

아직 첫 페이지를 넘기는 기분이 든다.


문학의 고고학은 푸코가 문학에 대해 쓴 글들보다, 정확히는

강연의 수고들, 녹음테이프의 전사본들 중 몇몇을 모은것으로,

'사후 출판'을 금지하는 유언을 남긴 푸코 사유의 '잃어버린 고리'를 드러내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기존에 읽었던 푸코의 다른 책과는 다르게 쉽게 풀어 설명했다고는 하나,

오히려 그 이전의 책들에 대한 이해가 어려웠기에,

[문학의 고고학]이 내겐 더 어려웠던건 아니었나 싶다...

휴가 기간 내내 이 책 한권으로 읽고 또 읽어 지루하진 않았으나,

앞으로 계속 읽고 또 읽어도 손색이 전혀 없는

매우 흥미로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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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7 2015.08.12. 신고 공감 1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광기의 심연 속에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까?
"광기의 심연 속에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까?" 내용보기
가끔 인터넷 등을 통해 심해(深海)의 사진 등을 접할 때가 있다. 파란 바다 한 가운데에 유독 시퍼런 색깔은 원이 그려져 있는 사진이다. 나는 짙은 색은 파란 색깔은 보면서 알수 없는 공포를 느낀다. 깊은 바닷 속을 상상하고 내가 그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이다. 푸코의 책을 읽다보니 이런 느낌을 받았다. 젊은 날에 읽은 몇 권의 책을 통해
"광기의 심연 속에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까?" 내용보기

 

가끔 인터넷 등을 통해 심해(深海)의 사진 등을 접할 때가 있다.

파란 바다 한 가운데에 유독 시퍼런 색깔은 원이 그려져 있는 사진이다.

나는 짙은 색은 파란 색깔은 보면서 알수 없는 공포를 느낀다.

깊은 바닷 속을 상상하고 내가 그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이다.


푸코의 책을 읽다보니 이런 느낌을 받았다.

젊은 날에 읽은 몇 권의 책을 통해 나는 푸코를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었다.

이성으로 역사와 세계를 보는 주류적인 시각에 반해 비이성과 광기를 주장하는 그의 사상을 어느 정도 요약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의 사상을 해변가에서 떨어진 조금 깊은 바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푸코의 사상이 내가 측정할 수 없는 깊은 바다 속의 심해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심해를 들여다 보면서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낀다.

마치 이 책이 나를 그 심해 속으로 빨아 들이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주로 역사에 대해 비이성적인 시각으로 보는 푸코의 철학보다는 푸코의 문학에 대한 강의를 다루고 있다.

푸코는 주로 1960년대에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주로 그 시기에 문학에 대한 글을 쓰거나 강의를 했었다. (이 시기를 푸코의 철학에 있어서 '문학의 시기'라고 부르기도 함)

이 책은 그 동안 알려지지 않은 푸코의 문학에 대한 강의를 편집한 책이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는 '광기의 언어'라는 제목으로 문학에서 인간의 광기가 차지하는 부분을 다루고 있다.

2부는 '광기 안의 언어'라는 제목으로 문학에 대한 푸코의 정의와 시각을 다루고 있다.

3부는 '사드에 대한 강의'라는 제목으로 사드에 대한 문학을 다루고 있다.


책은 프랑스어를 번역했기에 문장이 길고 복잡하며, 문장 중간에 철학과 문학적인 단어들이 반복해서 나오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또한 프랑스 문학, 특히 사드에 대한 문학이 많이 제시되기 때문에 사드에 문학을 접해 보지 않은 나로서는 더욱 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힌 것은 번역자의 배려이다.

이 책의 번역자 역시 독자가 이런 어려움을 겪을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책 초반에 사드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들, 그리고 그가 이야기 하는 몇 가지의 개념들을 아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물론 번역자의 글도 일반인이 읽기에는 조금 난해한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이 책은 푸코의 문학에 대한 여러 가지 강의를 편집했기에 한 가지 주제를 제시하거나, 일관적인 내용을 요약할 수는 없다.

그러나 푸코의 여러 가지 강의를 관통하고 있는 한 가지 개념은 '광기'이다.

이 광기는 이성이 붙여 준 모욕적인 언어일지도 모른다.

마친 일본인이 한국을 식민지한 후 한국인을 '조센징'이라고 부르듯이...

이성이 인간의 무의식의 부분을 점령한 후 이성의 영역 밖에 있는 모든 것을 '광기'라고 부르고, 그것을 억압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광기는 이성에서 배제되고, 금기시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푸코는 광기는 우리 인간 안에 있고, 그것이 언어로 표현되고 있으며, 문학에서 광기의 언어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푸코가 말하는 광기의 언어와 문학을 대표하는 사람은 '마르키드 사드'이다.


푸코는 사드의 문학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의 테두리를 벗어나 광기와 욕망을 자유롭게 표현한 것으로 보았다.

푸코는 이것을 '리베트랭적 담론'이라고 말하고, 이런 문학에 나오는 인간을 '리베트탱'이라고 부른다.

사드의 소설 속에 나오는 '쥘리에트'나 '쥐스틴'같은 인물들이다.

리베르탱적 담론은 네 가지 기본 원칙을 따른다.

신은 없고, 영혼도 없으며, 따라서 비도덕적이거나 범죄가 없으며, 자연(생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리베르탱적 담론의 반대는 근대까지 유지되었던 '종교적담론' 또는 '철학적인 담론'이다.

푸코는 이것을 '거세적 담론'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신에 의해 선택된 완전한 내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세적 담론'에 의하면 나의 욕망과 시간과 신체를 포기해야만 올바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리베르탱적 담론은 이런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자유로워진다는 말보다 한계를 뛰어넘어 무한대의 공간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푸코는 리베르탱적 담론을 '탈거세적 담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사드는 그의 소설을 통해 이런 탈거세적담론을 가진 인물들을 창조해 냈다.

그들은 마음 껏 욕망을 발산하고, 사람을 죽이고, 인육을 먹고,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규범을 뛰어넘는 극단적인 성행위를 한다.

여기까지가 푸코의 문학과 광기와 샤드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다음은....

인간의 이성에서 광기를 풀어서 무한의 영역으로 나간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마치 영화 [그래비티]의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선과의 끈이 끊겨 무한의 우주 속으로 떨어져 나가는 그런 것일까?

그리고 그 우주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과연 끝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 일까?


푸코는 이성이 광기를 누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성으로부터의 자유로운 광기를 말한다.

물론 그것이 사드의 문학에만 국환되는 것인지, 푸코의 사상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푸코의 말처럼 우리가 이성의 끈을 끊어버리고 광기의 무한의 영역으로 들어간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무런 끈없이 심연의 바다 속으로 들어 간 후 그 바다 속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설사 무엇을 본다고 해도 그 무엇을 보는 나조차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했다.

악마가 있어서 내 앞에 모든 허상을 만들어 놓고 이것을 실재하는 것이라고 믿게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데카르트는 미지의 영역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 영역에서 헤매지 않기 위해 생각하는 인간, 코키도 에르고 숨(라틴어: Cogito, ergo sum , 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이라는 끈을 잡았다.


나는 철학자도 아니고, 문학을 하는 사람도 아니며, 그냥 책을 읽는 독자일 뿐이만 푸코나 니체, 사드의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우리가 광기의 영역을 탐험할 때는 끊어지지 않는 분명한 끈을 가지고 그 세계로 들어가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그 세계 속에서 영원히 헤매게 될 것이니까....

그 '끊어지지 않는 끈'이 무엇인지는 각자의 선택에 맡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i*******3 2015.08.04.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