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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적 사관을 가지고 소외된 계층도 바라볼 수 있는 책
"중립적 사관을 가지고 소외된 계층도 바라볼 수 있는 책" 내용보기
지금까지 15권이 발매된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중 총 여덟 권을 사모은 애독자다. 그러나 밑의 분이 지적 하셨듯 '이야기'라고 하기엔 일반인에게 있어 그다지 친근한 책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전문 역사서적이나 논문보다는 훨씬 친근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내가 모은 여덟 권은 전부 조선사와 관련된 부분인데, 일단 다른 책과는 구분
"중립적 사관을 가지고 소외된 계층도 바라볼 수 있는 책" 내용보기
지금까지 15권이 발매된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중 총 여덟 권을 사모은 애독자다. 그러나 밑의 분이 지적 하셨듯 '이야기'라고 하기엔 일반인에게 있어 그다지 친근한 책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전문 역사서적이나 논문보다는 훨씬 친근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내가 모은 여덟 권은 전부 조선사와 관련된 부분인데, 일단 다른 책과는 구분되는 점이 상당히 중립에 가까운 사관을 가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서를 읽는 재미가 떨어진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치우치지 않고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길러준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하다. 그리고 단순히 왕조 중심이었던 이전의 수많은 역사서와는 달리 민중의 삶과 당대의 문화까지도 자세하게 그려내려고 노력하였고, 이 15권 같은 경우에도 문화에 대한 설명으로 상당부분 할애하고 있다. 이런 것은 확실히 생소하고, 왕위쟁탈같은 '재미있는' 이야기에 비해 대중 성이나 흥미성이 떨어진다(그렇지만 신선하다). 그러나 이렇게 느낀다는 자체가 이제껏 얼마나 흥미 위주로만 역사서를 읽어왔다는 증거인가! 나의 경우, 광해군에 관심이 쏠리면 광해군에 대한 책만 돈 생기는 대로 사고, 정조에 관심이 쏠리면 정조에 관한 책만 계속 사는 타입이어서 관심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소소한 것까지 전부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해 서는 지식이 부족한 상태였다. 그리고 연대와 연대간의 연결성에 관심 가질 시간이 부족해 단편적인 지식들이 아직 맞추지 않은 퍼즐처럼 이리저리 따로 떨어져있는 것 같은 상태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를 읽으면서 많이 추스리고 부족한 역사지식을 채울 수가 있었다. 이것 또한 이 책의 매력이다. 연대별로만 쓴 것은 아니지만 많이 구분하여 시간상으로 쓰려고 노력한 책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읽다 보면 이 책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이 '책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내용의 소재가 친근하지 않아서'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바로 나의 '역사 편식' 때문이었음 역시 깨달을 수 있다. 중립적 사관을 가지고 소외된 계층까지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역사책! 물론 이 책이 완벽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신선한 책이라는 것 은 틀림없다. 골고루 역사를 맛보고 싶은신 분께 진정 추천하는 책이다.
j*******r 2002.02.1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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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이루려던 왕국 -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 15
"정조가 이루려던 왕국 -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 15" 내용보기
올 연초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고 난 뒤 저자의 또 다른 대하소설인 아리랑과 한강을 꼭 읽어봐야 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동시에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싶어졌다. 학창시절 국사 시간에 억지로 외우던 교과서의 한국 근현대사 작은 조각 정보들이 내가 알고 있는 그 시대 역사 지식의 전부 인지라, 태백산맥을 읽는 내내 2000년대인 지금까지 거칠게 계속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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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연초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고 난 뒤 저자의 또 다른 대하소설인 아리랑과 한강을 꼭 읽어봐야 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동시에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싶어졌다. 학창시절 국사 시간에 억지로 외우던 교과서의 한국 근현대사 작은 조각 정보들이 내가 알고 있는 그 시대 역사 지식의 전부 인지라, 태백산맥을 읽는 내내 2000년대인 지금까지 거칠게 계속되고 있는 이 나라의 좌우 대립이라는 사회 갈등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가 많이 궁금하였다. 이를 위해 강준만의 한국 근대사 산책과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를 읽어내려가 보기로 하였다. 강준만의 한국 근대사 산책은, 역사학자가 아닌 저자가 메타 기법으로 다양한 사관에 의해 쓰여진 많은 참고서적들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도록 정리한 책이다. 반면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는 총 22권이라는 책의 분량이 말해주듯 대한민국 근현대사 뿐만아니라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고대사부터 시작하여 해방후 대한민국 건국이후까지의 역사를 중립적인 관점을 유지하면서, 역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그 뒷 이야기외 함께 자세히 써내려간 책이다. 특히 이 책이 다른 역사책들과 비교되어 보이는 점은 왕조나 사대부의 역사뿐만 아니라, 한반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오던 민중들의 생활 양식이나 문화까지 세세하게 서술한 점이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우선 읽어보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에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중 제일 처음 선택한 책은 15권 "문화 군주 정조의 나라 만들기" 이다.  책의 제목에도 나타나듯이 이 책은 조선 왕조중 정조가 재위하던 1776년 부터 1800년 까지의 조선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정조가 즉위한 1776년은 미국이 독립선언을 한 해이기도 하다.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있다. 1부에서는 정조의 등장과 집권시 조선 왕조의 정치적 배경과 그 흐름을 이야기 하고, 2부에서는 정조가 관심을 보이고 노력하였던 당시의 인권문제 및 지역 차별 문제를, 3부에서는 당시 청나라와 일본을 비롯한 주변 국가의 정세 변화와 서양 세계의 동양 진출을, 4부에서는 조선 시대를 지배해오던 주자학의 흐름을 새롭게 바꾸려 했던 실학의 등장과 그 흐름을, 5부에서는 사대부 보다도 민중들이 즐길수 있도록 새롭게 나타난 여러 문화 형태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선 각 장에 따라 기술된 주요 내용을 살펴 본다. 1부에서는 정조가 왕위 즉위 후 자신의 아버지(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았던 인사들을 유배나 사사시키고 강력한 친위대을 만들기 시작하는 이야기로 시작을 한다. 정조의 할아버지인 영조의 두번째 왕후인 정순왕후는 당시 대왕대비로 살아있으면서 영조 재위시 득세를 하던 노론의 벽파 무리들과 함께 정조의 왕위 즉위를 방해했으며, 정조 즉위후에는 그가 펴내려가던 탕평책등을 사사건건 반대 하였다. 정조는 대왕대비를 할머니로 깎듯이 모시기는 하였으나 그녀의 정치적 요구는 묵살한 채, 조선 중기 부터 심화되어 오던 당쟁의 피해로부터 조선을 구하고 자신의 강력한 왕권을 지키기 위하여 다양한 조치를 취한다. 즉, 왕의 동정을 엿보고 이리저리 알리는 것으로 의심되는 왕의 궁녀를 없에고, 임금의 최측근 사신들의 국정 토론과 학문 진작을 위한 규장각을 설치하고, 조정의 군부를 왕이 직접 지휘하도록 하는 총융청과 장융영을 설치하고,  반대파의 근거지를 약화시키고 새로운 근거지를 강화하기 위한 수원성을 쌓게 했다. 정조는 꾸준히 당쟁속에 그 세력을 키워온 문벌세력을 견제하면서 왕권을 강화시키고 암행어사제를 대폭 개선하여 활용하고 왕에게 직접 억울한 일을 호소하는 격쟁제도를 활성화하여 백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실로 개혁군주라할 면모를 보인 정조였으나, 그가 49세가 되는 해 갑작스런 죽음을 맞게된다. 이로인한 대왕대비의 독살설이 나라에 퍼지게 되고, 조선왕조는 또 하나의 훌륭한 군주를 잃어버리고 외척들이 득세하는 문벌정치가 시작된다.

 

2부에서는 다른 역사책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왕조시대의 인권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정조는 조선의 계급사회에서 하층민의 부당한 처지에 대한 개선을 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서얼, 중인, 노비등에 대한 처우 개선이 이루어졌다. 서얼의 경우 대대로 벼슬을 할 수 없는 처지였는데, 정조는 그들에게 생원 진사에 들 자격을 부여하고 성균관에 들어온 서얼들에게 차별없이 나이에 따라 동등한 대우를 받도록 하였다. 중인 역시 벼슬을 할 수가 없었는데  이들에게 지방관의 자리를 주기는 하였으나 합법적으로 관직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제도 자체를 개선하지는 않았다. 또한 종의 신분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간 노비들을 찾아내어 그들에게 대대손손 노비의 굴레를 벗지 못하도록 하는 노비추쇄관이란 제도를 폐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소외된 자들의 문제뿐만 아니라 관가에서 죄인들에게 형벌을 내릴때 가해지는 비인간적인 다양한 형벌제도를 규정화하여 남형을 막고 인권을 보장하도록 하였다. 형벌 집행시 이용되는 도구을 규격화하고 형벌의 양들 법률로 규정하고 명시하였다. 또한 억울한 죽음을 막기위한 법의학 서를 편찬하고, 이를 언문으로 번역하여 대중화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반적인 인권 향상을 위한 노력이외에도 당시 인재등용에 있어서 심하게 있어왔던 지역 차별에 대한 해결책을 지시하기도 하였다. 200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의 지역차별은 심각한 문제로 거론되는 만큼 지역차별의 뿌리에 대하여 언급한 부분은 흥미로왔고 내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지역차별은 꽤 뿌리가 깊은 것으로 저자는 그 시작을 조선조 건국초기에 고려 왕조에 충성하고 조선 건국을 반대하던 무리로  함경도, 평안도 및 황해도를 포함하는 서북지방을 지목하고 홀대하였다. 실제 조선 건국시 이성계의 고향인 함경도를 성역화하기도 하였으나, 세조 집권시 이시애가 주도하는 반란이 일어나고 이를 진압한 세조는 함경도를 반역향으로 지목하여 "경국대전"에 갖가지 지역 차별에 관한 조항을 넣도록 하였다. 이런 조항들은 예를 들자면, 과거 응시 합격자수를 지역에 따라 제한하고 지방인사에도 임용 제한을 두었다. 세조 이후 서북 지방의 인재 등용 차별은 심화되고 많은 사대부 인사들이 이러한 사항의 철폐를 요구하였으나 번번히 묵살되었다. 정조는 근본적인 서북 지역 차별 정책 철폐보다는,  지방관리 임용과 같은 개선을 하도록 하는 미온적인 쇄신만을 실시하였다. 서북지방뿐아니라 인조시절 정여립의 변란 사건이후 호남 지방 역시 반역향으로 지목되어 서북 지방과 같은 차별을 받아야했다. 또한 영/정조 시대에 심화된 당쟁의 결과로 영남 지방의 인사 등용도 소외 되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주요 인사는 서울, 경기, 충청 인사가 차지하게 된것이다. 영/정조는 이러한 폐단을 인식하고 고쳐보려하였으나 완강한 기득권세력의 방해로 미온적인 개선에 그치고 말았다.

 

3부에서는 청나라, 일본의 변화와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른 외세 문화 (천주교)의 조선 입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중국은 명이 여진족에 의하여 정복된 후 청나라가 들어서게 되고, 조선의 대부분 인사들은 청국을 오랑케라 나라라 하여 무시하는 움직이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 움직임속에 조선의 몇몇 젊은 학자들은 청나라 문물을 직접 여행하며 경험해 보고 그들의 뛰어난 문물을 사실대로 전하는 저서들을 남기기도 하였다. 홍대용, 박지원, 이승훈 같은 이들이 그들이었다. 홍대용은 "담현연기"를 통해 과학 기술을, 박지원은 "열하일기"를 통해 자세한 청의 문물을 기술하였으며, 이승훈은 천주교를 전파하였다. 일본은 마쓰다이라 사다노부(정조 11년)가 정권을 잡으면서 일본의 주요인사들은 조선의 통신사를 일본의 수도인 에도가 아닌 쓰시마 까지만  들어올 수 있고 조선의 통신사가 조공을 받치러 오는 것이라는 주장을 피웠다. 더이상 일본은 조선보다 뒤쳐질 것이 없으며 오히려 일본쪽이 조선을 속국으로 볼 수 도 있다는 식의 논리가 퍼지기 시작하였다. 이무렵 조선의 해안에는 중국 상선을 비롯한 유럽의 함대가 길을 잃고 표류하기도 하였으나, 정조는 그들을 침략자로 보지않고 표류선으로 생각하여 인도주의적인 조치를 취한다. 옷과 먹거리를 주게하고 돌려보내는 조치를 취한뒤 단지 조정에 알릴것만을 지시한다.

 

이양선의 조선 해안 출몰과 함께 청나라를 통해 들어온 천주교 역시 자생력을 갖고 조선사회에 퍼지기 시작한다.  정조 집권 초반 많은 젊은 학자들은 천주교를 청나라틀 통해 들어온 서구의 새로운 학문이라 생각하고 학문 탐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당신 권철신의 제자인 이승훈, 이벽, 정약용, 정약전, 정약종, 권일신등이 모여 천주교를 비롯한 서학의 탐구에 몰두하였다. 이후 천주교는 약 천여명의 사람에게 포교가 되는데 그중 권상연과 윤지충이 천주교의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규약을 지키기 위해 조상의 신주를 태우고 어머니의 제사를 지내지 않게된다. 이것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주요 권력의 득세 세력으로 알려진 남인들중 천주교에 깊게 심화된 세력들을 제거 (정약용,, 정약전, 이승훈의 아들, 이가환등)하기 위하여  그 반대세력이 이러한 이유를 삼아 천주교를 숭배하는 자들을 잡아들일 것을 왕에게 소한다. 결국 조정은 그 둘을 잡아들이고 배교를 강요하였으나 이를 거부하자 유배를 보내라는 명령을 하지만, 왕의 명령이 도달하기 전 이미 사형을 집행하게 되어 최초의 기독교 순교자가 된다. 이후 천주교는 지하로 숨어들게 되고, 노론 벽파는 기독교도를 금수의 무리로 매도하면서 노론 시파 세력을 공박한다. 정조는 지난친 살육을 막기 위해 온건한 기독교 반대 정책을 펼쳤으나, 정조의 죽음후 일대 박해가 일어나게 된다.

 

4부에서는 정조의 선대인 영조시절부터 청나리의 실사구시학파와 고증학파의 영향을 받아 성리학과 주자학이 시대에 맞지 않는 학문으로 여기는 젊은 선비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대신하여 양명학과 서학을 탐구하면서 허구가 아닌 실질의 학문을 강조한 실학이 태동되고 무르익게되었다. 주자학의 명제보다는 인간의 가치를 이해하고 인간의 개성을 해방하고 인간의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학문으로서의 실학이 등장한것이다. 실학의 선구자인 유형원은 "반계수록"을 저술하였는데, 이책에서 부국강병을 목적으로 토지제도의 개혁, 과거제도 개혁, 노비제도 개혁의 구체적 방법들을 제안하였다. 영조시대에 저술된 이 책은 그 후 18세기의 많은 실학자들에게 영향을 주게되는데 '경세치용 - 세상을 경영하는데 실제로 이바지하는 학문의 실용성을 중시'를 중점으로하는 경세치용학파와 '이용후생 - 도구를 잘 이용하여 국민생활을 윤택하게 해야 함'을 강조하는 이용후생학파로 나뉘어져 활발한 활동을 한다. 경세치용학파는 이익을 선두로 안정복, 권철신, 이벽, 정약용등 남인계열의 학자들이 그 중심인물이었으며며 토지를 중심으로한 개혁에 관심을 두었다. 이용후생학파로는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들로서 상업, 수공업의 유통과 기술 혁신을 주장하는 노론 계열의 인둘들이었다. 이 두파 모두 중화의식의 사대의식의 탈패, 일본의 객관적인 실체 파악을 위한 노력, 서학과 과학기술의 수용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등을 주장하였다. 또한 안정복의 동사강목, 정약용의 아방강역고,요동론에서는 발해사를 기술하면서 조선의 역사가 중국에 예속된 것이 아닌 자주적인 역사가 있음을 증명하는 노력을 보이기도 하였다. 박지원, 박제가, 이익등은 양반과 선비의 폐단을 꼬집는 저술들을 하였고, 지나친 예중심의 풍속을 질타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실학파들의 개혁책은 근본적인 왕정의 모순을 뒤엎기 보다는 기존 제도의 개선이 중심이었고, 그나마 이런한 개선책 마저도 국가의 지배세력들을 제대로 국정에 수용하지는 못하였다.

 

5부에서는 18세기 후기에 나타난 갖가지 다양한 민중문화의 발전상을 이야기한다. 국문소설의 유행, 책을 읽어주는 강독사, 직접 이야기를 해주는 강담사, 창을 들려주는 강창사, 책을 빌려주는 책방의 출현, 음담패설을 주제로 하는 시조의 유행등 다양한 대중문화 형태가 생겨났다. 또한 실학의 중심인물이었던 박지원은 그의 열하일기, 허생전등에서 자유로운 문체를 구사하기도 하였는데 정조는 이것이 모두 중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괴상한 패관문학의 영향이라 생각하며 문체반정을 선언한다. 즉, 중국으로부터 일체의 소설류 수입을 금지하고, 규장각에 보관하고 있던 패관소설을 모두 불살러 버렸다. 또한 실학파의 선비들은 그들이 읊는 시조에서도 중국 풍이 아닌 독자적인 형식과 조선의 실생활속에서 민중의 고난등을 주제로 삼은 시들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또한 여항문학, 즉 서민문학의 큰 흐름이 시작되기도 하였는데 송석원시사라는 모임은 중인들의 모임으로 시를 지어 교류하는 모임으로 차츰 그 모임이 커져 1천여명이 참여하기도 하였다. 사당패, 판소리꾼, 악사, 민요등등 큰 유행을 했으며, 윤두서, 정선, 최북등은 진경산수의 화풍을 구사하는 화가로서 당시 이름을 날렸다. 이와 비교되는 화풍인 사경산수화를 구사하면서 서민의 생활을 그림의 주제로 삼았던 김홍도와 신윤복도 이 시대를 풍미하던 화가들이다.

 

이상의 책의 내용에서 보듯 정조의 시대는 나라의 바깥과 안에서의 변화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그 완성을 보지못한 시대였다. 정조는 그의 왕정의 초창기부터 큰그림을 그리듯, 왕권강화를 서둘렀고 민심을 읽을수 있는 다양한 조치를 취하였다. 또한 그의 주변에는 그동안 권세를 잡고있던 노론 벽파뿐만아니라 남인계열의 선비들과 되도록 다양한 인재들을 등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또한, 민중의 삶의 개선에도 관심을 두고 다양한 개혁 정책을 시행하였다. 따라서, 그의 집권 기간 동안 조선 민중의 삶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24년 이라는 길지않은 집권기간과 의문의 죽음은 그의 개혁을 완성시키지 못하였고, 세계적인 시대 흐름에 대한 무사안일함은 그당시 지식인들인 실학파의 좀더 적극적인 등용의 미흡함, 서학 탐구의 소심함등이 후에 다가올 이나라의 큰 어려움의 대비를 충분히 하지는 못하게 하였다. 이 당시 서구에서는 전세계의 식민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지만당시 조선에서는 그에 대한 지식이나 대비는 아무것도 되어있는 것이 없었다.

 

이책은 역사적인 사건들을 단순 나열이 아니라,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함께 이야기의 형식으로 서술하고,  무엇이 그 역사적 사건을 촉발하게 되었는가와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 후 그로 인한 역사적 파장은 무엇인지에 대한 결과와의 연계에 항상 중점을 두고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점이 다른 낱권 짜리, 짧은 지면을 통해 서술된 역사서와는 차별되는 점이라 생각된다.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시리즈는 하나의 역사적 관계의 인과 관계를 밝히는 것에 많은 지면을 할애함으로써 그 역사적인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책의 내용 서술시 많은 용어의 주석처리가 되어있는데, 그 주석에 번호가 달려있지 않아 어디서 그 용어가 해당 페이지의 어디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인지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시리즈중 처음 읽은 책이었고, 이 시리즈의 나머지 책을 모두 읽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게하는 책이다.

u*****i 2009.11.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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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의 통치와 사회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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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이이화 선생의 한국사 이야기가 조선 후기까지 이르렀다. 서구에선 근대로 개벽천지하던 그 시절 지구의 동쪽 끝 조선에서도 변화의 흐름은 있었다. 세종대왕 다음으로 조선의 훌륭한 군주로 알려진 정조가 통치하던 시대. 할아버지인 영조가 왕권을 회복하고 왕조의 기반을 다시 다지고 손자인 정조가 왕위에 올랐다.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알고 있던 영특한 정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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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이이화 선생의 한국사 이야기가 조선 후기까지 이르렀다. 서구에선 근대로 개벽천지하던 그 시절 지구의 동쪽 끝 조선에서도 변화의 흐름은 있었다. 세종대왕 다음으로 조선의 훌륭한 군주로 알려진 정조가 통치하던 시대. 할아버지인 영조가 왕권을 회복하고 왕조의 기반을 다시 다지고 손자인 정조가 왕위에 올랐다.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알고 있던 영특한 정조는 아주 서서히 자신의 뜻을 펼쳐 나갔다. 일찍부터 처세술에 눈을 뜨고 그것을 통치술에 접목시킨 현명한 군주였던 것이다. 신하들보다 더 많이 일하고 공부하는 군주. 정조의 모습이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한반도 주변에서도 새로운 기운이 싹트기 시작했다. 청나라가 뛰어난 통치자에 의해 안정을 되찾았고 과학기술의 발전에 눈떠갔지만 이미 초강력 세력이 된 서구열감에 의해 조금씩 물어 뜯기고 있었다. 전쟁을 겪었지만 일본은 이제 통일국가로써 조선을 앞서기 시작했다. 이때 조선의 지식인들이 관심을 가졌던 새로운 지식은 실학과 천주학이었다. 주자학만으로는 세상을 바로 다스릴 수 없다는 것과 개국이래 오랫동안 누적된 토지제도와 신분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것은 사회개혁과 기술문명이라고 인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쉽게도 당대의 지식인들은 보수적 관점의 개혁만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한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뜻은 높이 살 만하다. 급속도로 퍼져나간 천주교도 아직까지는 큰 박해는 받지 않았다. 어찌보면 극도의 보수세력이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던 당시 조선에겐 그래도 자신감이 남아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요즘 TV에서 정조대왕을 주인공으로 하는 사극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것도 시대의 반영일게다. 새로운 정부에 대한 기대도 담겨져 있을테고. 하지만 픽션이 많이 포함된 드라마보다는 역사적 사실과 그에 대한 평가와 해석을 담고있는 역사서를 찾아 읽는 것이 더 많은 정보와 더 깊은 지식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y*******0 2008.06.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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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한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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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영조다음의...왕이다...영조도..훌륭한업적을..내고..백성들을..안정시키고..왕권을..강화했다..그리고..그다음왕인...정조는...사도세자의..둘째..아들로..어머니는..혜경궁..홍씨이다...그는..영조의..인격소중과는..약간다른방면인..책읽기를..권장하였다..(물런..인격소중도..당연히여겼겠지..)그리하여..정조가..왕에있는동안..가장크게..업적을..남겼던것은..우리나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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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영조다음의...왕이다...영조도..훌륭한업적을..내고..백성들을..안정시키고..왕권을..강화했다..그리고..그다음왕인...정조는...사도세자의..둘째..아들로..어머니는..혜경궁..홍씨이다...그는..영조의..인격소중과는..약간다른방면인..책읽기를..권장하였다..(물런..인격소중도..당연히여겼겠지..)그리하여..정조가..왕에있는동안..가장크게..업적을..남겼던것은..우리나라의..실학에..큰영향을..끼쳤다는것이다..국조보감..대전통편..등의...책을..편찬하였다..그리고..규장각을..설치하여..인재등용에..힘썼다..어쨋든..훌륭하신분이다..
d******s 2001.06.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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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점수를 주기에는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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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책을 산 이유는 몇년전에 "세계사 이야기"라는 책이 이런 형태로 출판이 되어서 그 중 몇권을 사보았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지금은 영어교사인 여동생의 책꽂이에 있는데 한번 더 읽고 싶다. 저자의 유명세와 "이야기"라는 제목에 혹해서 샀는데 교과서와 크게 차이가 없어서 재미가 없다. 역사관에 대해서는 별도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딱히 나타낸 것도 없는 듯하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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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책을 산 이유는 몇년전에 "세계사 이야기"라는 책이 이런 형태로 출판이 되어서 그 중 몇권을 사보았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지금은 영어교사인 여동생의 책꽂이에 있는데 한번 더 읽고 싶다. 저자의 유명세와 "이야기"라는 제목에 혹해서 샀는데 교과서와 크게 차이가 없어서 재미가 없다. 역사관에 대해서는 별도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딱히 나타낸 것도 없는 듯하다 정조의 경우는 조선의 역사에서 정말 중요한 시점에서 집권했던 왕이지만 아쉽게도 그 뜻을 펼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서 아쉽다. 조선의 자본주의의 맹아가 그로 인해 지연되어 버린 감도 있는듯 하고, 절대왕정 확립이라는 것과 맹아와는 조금 상충되는 듯 하기고 하고 그를 읽으면서 기대했던 역사가 아니어서인지 아니면 책을 재미있게 쓰지 못해서인지 한번에 읽어지는 책은 아닌 듯 싶다 저자에게 제목을 그냥 "역사교과서"라고 바꾸심이 어떨지 말씀드리고 싶다. 관점 유지에 신경을 쓰시다 보니 조금 새나가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곁들이는 이야깃 꾼의 입담을 찾기가 어려운 부분이 아쉬웠다.
9*******1 2002.01.1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영민한 그러나 노력형의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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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한마디로 조선의 르네상스시대를 연 영민한 군주로 묘사된다. 조부인 영조가 기반을 닥은 탓도 있지만 군왕인 그가 평생 부지런히 노력한 결과라고 볼수 잇다. 노비를 다시금 얽매는 추노법을 폐지하고 균역법과 법전을 정비하여 형벌과 세금을 가볍게 하는 등 군주로서는 드물게 서민을 많이 배려한 정치를 햇다고 할 수 있겠다. 가장 획기적인 일은 시파를 등용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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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한마디로 조선의 르네상스시대를 연 영민한 군주로 묘사된다. 조부인 영조가 기반을 닥은 탓도 있지만 군왕인 그가 평생 부지런히 노력한 결과라고 볼수 잇다. 노비를 다시금 얽매는 추노법을 폐지하고 균역법과 법전을 정비하여 형벌과 세금을 가볍게 하는 등 군주로서는 드물게 서민을 많이 배려한 정치를 햇다고 할 수 있겠다. 가장 획기적인 일은 시파를 등용햇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잇겠다. 부친은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비명횡사한 뒤 노론은 그를 정적으로 여기고 왕세손시절 제거하려는 음모를 수도 없이 꾸몄다. 그런 노론의 견제를 받으며 왕세손시절을 보내고 왕위에 올랐을때 정조는 탄식처럼 짐은 사도세장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며 원적을 회복했다고 한다. 벽파는 노론의 중심인물들의 당이었으므로 군주인 그의 입장에서는 남인에서 비롯된 시파를 중용하여 자신의 정권을 안정시킬 수 밖에 없었으리라... 외가인 홍문이 거의 멸문지화를 당하다시피하고 폐문이 된 것도 부친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조시대에는 관직에 진출한 신진세력이 대거 눈에 띈다. 남인출신인 채제공이나 실학자 다수가 혹은 실학의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새로운 기풍을 만들어냇다. 정조시대 실학이 융성한 것도 그의 주위에 정약용같은 실학자가 있엇기 대문이고 수원성을 쌓을 때는 실제로 그가 설계하고 서양식 기중기까지 사용햇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으론 군주자체가 학문을 즐겻으므로 무식한 문벌만 내세우는 노론지지파들은 군주의 눈에띌 수 없었다. 군주가 경연에서 대학을 강의할 정도이니 정조시대에 홍문관을 거치지않고는 출사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정치가 안정되야 문화가 번성하기 마련이다. 정조대에는 저고리길이가 한달마다 변햇다는기록이 있다. 그시대에도 여성들이 얼마나 유행에 민감햇는지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된 것이 아니다. 정조자신이 부단히 노력한 결과이다...노력형의 군주가 성공한다는 건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눈여겨봐야할 대목이다.
t****e 2003.04.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