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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의 추억을 되살린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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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중국의 열대과일 리즈(荔枝, 여지)를 좋아한다. 껍질을 벗길 때 나오는 부드러운 향기, 달콤한 향기가 묻어나오는 과즙은 어느 과일에서도 느낄 수 없는 풍미가 있다. 내가 처음 리즈를 먹은 것은 중국에 가서다. 톈진도 여름이 되면 길거리나 시장에 리즈가 나오기 시작하고, 10위안이면 적지 않은 리즈를 사 먹을 수 있다. 가지채 달려있는 리즈를 너무 많이 먹으면 코피가 나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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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중국의 열대과일 리즈(荔枝, 여지)를 좋아한다. 껍질을 벗길 때 나오는 부드러운 향기, 달콤한 향기가 묻어나오는 과즙은 어느 과일에서도 느낄 수 없는 풍미가 있다.


내가 처음 리즈를 먹은 것은 중국에 가서다. 톈진도 여름이 되면 길거리나 시장에 리즈가 나오기 시작하고, 10위안이면 적지 않은 리즈를 사 먹을 수 있다. 가지채 달려있는 리즈를 너무 많이 먹으면 코피가 나온다면서 말리곤 했다. 리즈는 상온에서 오래두면 안되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껍질을 까서 먹었다. 그래도 맛있었다.


진짜 리즈를 본 것은 2002년 여름 김형찬 기자(지금은 고대 철학과 교수)랑 30여일간 중국철학기행을 다니면서 푸젠에 갔을 때다. 푸젠성 추안저우(泉州)나 샤먼(厦门)은 중국에서 서구 문물을 가장 먼저 받은 곳 중 하나다.


푸젠은 주희(朱熹)의 활동 무대이기도 하지만, 추안저우에 탁오 이지의 옛집(李贽故居)도 있고, 샤먼 등에는 다양한 천후궁이 있어, 중국 도교 문화를 깊게 볼 수 있어서다.

푸젠에서 리즈는 우리나라에서 감나무나 대추나무 보는 것 만큼이나 흔한 일이었다. 여느 집 너머로 리즈가 담을 넘쳐서 넘어올 만큼 풍성하게 열렸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감귤이 그렇듯 지나가는 행인조차 손을 대지 않을 만큼 흔한 게 리즈였다.


사실 추안저우는 조선시대가 시작된 후 가볼 일이 없는 지역이었지만, 고려시대에는 우리나라 벽란도와 가장 왕래가 많았던 중국 항구 중 하나다. 송나라의 해상 실크로드 중심지였던 추안저우는 대식국(아라비아) 상인들이 와서 향료, 산호, 상아를 팔고, 고려의 인삼이나 은, 종이가 왔던 곳이다. 추안저우도 고려촌이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문화적으로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 아쉽다.


한국에 들어와서는 결혼식에 가면 후식으로 리즈가 나온다는 게 즐거웠다. 결혼식 피로연장 과일 코너에 리즈가 없는 경우는 드물다. 맨들맨들한 껍질의 리즈는 붉은 바탕에 털이 있는 룡옌(龍眼)과 쉽게 구별된다. 사촌 간 같은 같은 과일이지만 과육의 맛에서는 리즈가 압도적이다.

아쉬운 것은 이 리즈가 모두 냉동이라는 것이다. 당연한 것이 리즈는 과거부터 사흘이 지나면 맛이 변하고, 닷새가 지나면 먹을 수 없는 보관하기 어려운 과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전 나에게 신기한 장면이 목격됐다. 바로 내가 자주가는 부평시장에 생 리즈를 파는 곳이 생긴 것이다. 사실 아직 사 먹어보지는 못했다. 지도 앱에서 찾으니 ‘주리네 과일전문점’이 맞을 것이다. 진흥상가에서 깡시장 쪽으로 가는 이 집에서 얼마전부터 생 리즈가 전시되기 시작했다.

내 기억에 리즈가 다시 우리 문헌에 등장한 것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다. 1780년 연암 일행은 황제가 하사한 밥상을 받는다. 그 중에 생전 듣도보도 못한 술이 있다. 이것의 실체를 두고 말이 오가는데, 결국 이 술이 리즈로 만든 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이야기는 ‘태학관에 머물면서’(太學留館錄)에 나온다. 만수절 행사의 황제의 하사품이 하나 내려오는데, 네모난 주석병 한 개가 내려온다. 서장관은 이 술을 황봉주黃封酒라 하면서, “맛은 달아도 아무런 향기가 없고 조금도 술기가 없다”고 평한다. 때문에 어떤 사람은 취할까, 맛이 없을 까 쉽게 먹지 못한다. 하지만 얼마 후 일행은 맛좋게 이 술을 먹기 시작하는데, 연암은 기공을 찾아가 이게 술이 아니라 여지즙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리즈는 양귀비가 가장 좋아하던 과일로도 명성이 높다. 하지만 당시의 수도는 장안(長安. 지금이 시안(西安))이다. 문제는 이 과일이 신선한 상태로 닷새를 넘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당나라 시기 리즈가 생산되는 곳은 지금의 청두(成道)에 해당하는 유주(幽州)도 있지만, 가장 맛있는 곳은 광저우(廣州) 등 광둥성 지역이다. 발달한 고속도로로 가도 청두에서 시안은 800킬로미터, 광주에서 시안은 1700킬로미터다. 거기에 수많은 산들이 막고 있는 이 길을 닷새 안에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양귀비가 신선한 여지를 먹기 위해서는 이 길을 가능한 빨리와야 했다. 결국 말은 천길 벼랑길을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려야만 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운송길에 목숨을 던졌다. 이런 불합리한 물류 시스템의 애환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 803~852)은 ‘과화궁절구삼수(過華宮絶句三首)’에서 읊을 수밖에 없었다.

“長安廻望繡成堆 山頂千門次第開 一騎紅塵妃子笑 無人知是荔枝來”(장안에서 驪山(여산) 바라보니 비단을 쌓아올린 듯한 명산 산정에 천 개나 있는 문 차례로 열리더니 먼지 날리며 오는 말 탄 사람 하나, 왕비 그것보고 웃는데 사람들은 몰라도 왕비가 좋아하는 荔枝(여지) 갖고 오는 거라네.“라 썼다.


<장안 25시>로 인상적이었던 마보융의 소설 <장안의 여지>가 출간됐다는 말에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김택규 선생이 번역한 <암호 해독자>와 같이 주문했더니, 어제야 도착했다.

사실 드라마 소재용 스토리텔러 같아서 읽기는 편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배경이 꼭 그때라 재밌게 볼 수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상림서 종구품 관원인 이선덕이다. 당현종이 현명한 시절(개원)을 다보내고, 혼군으로 바뀌던 시절(천보)에 하급관리인 이선덕은 사무실까지 한 참이지만, 장안에 집을 계약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사무실로 복귀한다.


그런데 사무실에서는 갑자기 그에게 ‘여지사’라는 직위를 맡긴다. 한가지 물품을 책임해 운송하는 사절직은 뒷돈도 적지 않게 생기는 일인데, 크게 의심하지 않고, 그 일을 받겠다는 지장을 찍는다. 문제는 이 일이 앞에서 말한 여지즙을 밀랍으로 밀봉해 가져오는 전(煎)이 아니라 신선한 과일(鮮)을 운송하는 것이다.

결국 양귀비에 생일에 맞추어 생 여지를 광저우(유주도 아니고)에서 가져오지 않으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당연히 죽는 일을 맡은 것이다.


더 이상 이 일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안 이선덕은 말과 노새를 바꾸어 타고, 수천리 광저우로 내려가 리즈를 신선한 방법으로 장안까지 이동시킬 궁리를 찾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푸전 사극답게 재미있게 구성된다. 이선덕이 만나는 관료, 상인, 리즈 농사꾼 등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융통성 있는 관리가 어떻게 한가지 문제를 풀어가는 지에 대한 노력을 보인다. 물론 그에 앞서서 한 사람이 인생에서 곤란을 극복해가는 여정을 담은 게 이 소설이다.


작가는 이선덕의 친구로 당시 하급 관료 생활을 하던 두보를 설정하는 등 재미도 더했다. 시성 두보는 안록산의 난으로 인해 인생의 대부분을 피난 길에서 보내다가 마안산에 묻혔다.

나도 살아보니, 직책이나 돈보다 사람이나 내 스스로의 자존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YES마니아 : 로얄 c*****i 2026.07.0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