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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2022.6.9. 그림책시렁 972
《키아바의 미소》 칼 느락 글 루이 조스 그림 곽노경 옮김 미래M&B 2001.2.20.
우리 집 큰아이가 열 살 무렵 “아버지가 웃으면 모두 웃고, 아버지가 찡그리면 모두 찡그리고, 아버지가 울면 모두 울어요.” 하고 속삭였습니다. “내가 웃으면 나비도 웃고, 내가 웃으니 나무도 웃고, 내가 웃으니 구름도 웃어요.” 하고 얘기하더군요. 아이가 노래하는 말을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들려주는 말을 마음에 사랑씨앗으로 담았습니다. 남이 익살스레 말하기에 웃지 않습니다. 남이 뭘 해주기에 웃지 않아요.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피어나기에 웃어요. 스스로 하루를 즐겁게 지으려고 한 걸음 나서기에 웃습니다. 《키아바의 미소》는 “웃는 키아바” 삶길을 보여줍니다. 키아바는 늘 웃음꽃 곁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낚시를 하다가 잡은 커다란 헤엄이가 빙그레 웃으니 “웃는 아이를 어떻게 잡아먹어!” 하면서 놓아준다지요. 무시무시하게 구는 이들을 보면서도 웃어요. 사납게 몰아치는 바람을 보면서도 웃어요. 참말로 우리는 하루 내내 웃을 일이 가득합니다. 네가 날 때리니까 찡그려야 하지 않아요. 네가 날 치건 넘어뜨리건 빙그레 웃을 만합니다. 언제나 미움은 미움을 낳고, 사랑은 사랑을 낳습니다. 주먹질은 주먹질을 낳고, 밉말은 밉말을 낳아요. 우리가 어른이라면 오직 웃음꽃을 사랑으로 터뜨릴 일입니다.
ㅅㄴㄹ #LouisJoos #CarlNorac #LesouriredeKiawak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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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바의 미소
아이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춰질지 모르겠지만 꽤나 감동적인 그림동화책이다. 힘과 무력이 아닌 미소 하나로 마을을 구한 어느 소년의 이야기. 어쩌면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거대한 힘이 아닌 작은 미소에 있음을 소중한 가치를 보여주는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다. 위험에 닥쳤을 때 미소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비현실적이고 말도 안되는 것일수도 있지만 어찌보면 아주 중요한 가치를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일상속에서 깨닫게 되는 소중한 깨달음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마치 어린 아이의 순수함을 통해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가끔은 나도 그런 순수한 어린 아이의 미소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솔직하게 순수함으로 다가설 수 있는 용기를 이 책은 보여주는 감동적인 그림동화책이다.
지은이: 칼 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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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아이에게 커서도 꼭 잊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말이 있었지요. 그것은 '미소'를 잊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는 속담이 있듯, 미소를 잃지 않고 있으면 그것이 언젠가는 우리아이에게 가장 큰 무기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지요. 하지만 그것을 직접 말로 해줘도 알아 듣기 힘든 나이이니 그것을 알려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딱 맞는 책을 만난 것 같네요.
아빠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오히려 더 크게 으르렁 거리던 곰을 키아바가 미소로 물러가게 만든다던가... 폭풍을 웃게 만들어 마을로 다가오지 못하게 한다던가... 재미있는 상상력과 함께 '미소'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책인 것 같아요.
키아바의 귀여운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져가는 것을 느꼈답니다.^^ 그 어떤 것보다 강한 '미소'의 힘을 우리아이도 느꼈으면... 하는 생각에 책을 읽어주었지요. 꽤나 집중 해서 책을 읽고 난 우리아이가 말하길.. "쭝아도 이렇게 웃으면 폭풍이 안올까? 쭝아는 폭풍 안좋아하는데." 라더군요.ㅎㅎ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못해도 우리아이가 '미소의 힘'을 조금이나가 느꼈던가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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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바는 북극에 사는 에스키모 이겠죠? ^^ 다소 커친 느낌의 분위기. 하지만 눈에 매우 선명하게 들어오는 강한 인상을 남기는 책입니다. 근데 이게 웬일일까요? 잡은 물고기가 키아바를 보고 웃고있는 겁니다~~ 순수한 키아바는 결국 물고기를 놓아주며 소리칩니다. "나는 미소 짓는 물고기를 먹을 수가 없어!" 키아바는 아빠에게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키아바는 물고기를 떠올리며 곰에게 용감하게 다가가 미소를 짓습니다. 이런 키아바를 보고 곰은 당황해하며 사라지죠 ^^ 이런 키아바의 행동에 아빠와 마을 사람들은 크게 칭찬을 해줍니다. 얼마 후 큰 폭풍이 오고있다는 소식에 키아바는 용기를 내어 폭풍을 찾아갑니다. 폭풍은 어이가 없어 웃고 맙니다. 마을로 돌아온 키아바는 마을이 안전한 것을 확인하고 편안하게 잠에 빠져듭니다.
북극이라는 독특한 환경을 배경으로 이뤄지는 순수한 소년의 멋진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순수한 어린이의 마음을 그리고 있는 매우 따뜻한 이야기, 용감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이야기, 정말 강한게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이야기 입니다. 우리 아기도 이 책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강해질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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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구성은 무척이나 단순하다. 각 면마다 정사각형 그림을 똑 같은 크기로 싣고, 그 밑에 2-4줄씩 글을 싣고 있다. 책은 단순함과 반복의 효과를 통해 아이들을 책에 집중하게 만들고 있다 ‘미소’, ‘미소 짓다’가 ‘우리 말을 병들게 하는 일본말’이니 쓰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오덕)이 있다. 글쓴이(옮긴이)와 편집자들이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어린이들은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통해 우리 말과 우리 글을 하나하나 배워나간다. 창작(이야기의 구성)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이 바른 말․글살이를 할 수 있도록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종이학>에는 지은이와 옮긴이를 모두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옮긴이만 소개하고 있다. 글쓴이와 그림 그린 이의 ‘정보’를 제공해 독자들이 책을 선택할 때 도움을 주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주인공 키아바는“얘야, 오늘은 네 손가락보다 굵은 물고기를 잡도록 해라”에서 알 수 있듯 에스키모의 중요한 생존수단인 ‘낚시’에는 영 소질이 없다. “키아바는 멀리서 춤을 추고 있는 바다코끼리를 보면서 생각했어요. ‘사냥을 갔더라면 이보다는 운이 좋았을 텐데.’” 생존 수단을 ‘실력(능력)’이 아닌 ‘운’에 맞기는 것으로 보아 ‘사냥’에 소질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키아바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웃고 있는 책 첫 장의 그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키아바는 ‘에스키모의 아들’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가족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자신이 미소 짓는 물고기를 잡은 일을 아빠에게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키아바는 소심한 아이기도 하다. 키아바는 난생 처음 커다란 물고기를 잡고 “우쭐해”진다. 그러나 “따뜻한 숨결”로 물고기가 “아주 다정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는 키아바는 고민 끝에 물고기를 놓아준다. 그러나 곧 자신이 한 일을 뉘우친다. 이 모습들은 자신의 행동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 지 모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들이다. 반전에 반전을 배치함으로써 극적 재미를 주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미덕은 아이가 물고기를 잡고 다시 놓아주는 행동의 전개를 심리변화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냥을 갔더라면 운이 좋았을 텐데.’, ‘내가 이 물고기를 잘게 잘라서 먹으려고 하는데, 이 물고기는 어떻게 나에게 미소를 지을 수 있지?’, ‘곧 아빠가 오실 텐데 뭐라고 말을 하지?’ 등 아이의 독백을 통해서 행동의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설정은 책을 읽는 아이들이 자신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여기게 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따라서 키아바의 독백은 아이들을 쉽게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게 하고 공감하게 하는 ‘눈높이’ 장치가 되고 있다. 키아바에게 큰 곰이 나타난다. 하지만 옆에 아빠가 있어 다행이다. 그러나 아빠는 총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아빠는 “겁을 주어 곰을 쫓으려고 한”다. 아빠가 곰에게 겁을 주는 행동은 용기 있는 행동은 아니다. 아빠가 곰을 보고 먼저 겁을 집어먹고 그 반작용으로 나온 행동이다. 그림에서 실제로는 아빠가 곰보다 더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다. 선제공격을 한다고 해서 항상 힘이 세거나 강한 것은 아니다. 아빠가 위험에 처하자 이번에는 물고기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키아바가 나선다. 도대체 어쩌려고? 키아바가 곰에게 다가서서 미소를 짓자 곰은 놀란다. “이런 일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감히 인간이, 더구나 화가 나 있는 곰에게 미소를 짓다니…….” 그 동안 곰은 항상 인간에게 먼저 공격을 당하는 대상이자 사냥감이었다. 그래서 키아바가 ‘위협’이 아닌 ‘미소’로 자신을 대하자, 곰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서더니, 킁킁거리며 어디론가 가버”린다. “네가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라는 황금률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상호교감’을 이루는 것이 남을 진정으로 설복하는 길이다. 아빠가 총을 갖고 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총을 쏘아 곰을 잡던가 쫓아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아빠(어른)의 용감함은 아빠의 그 자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총’에 의지한 것이다. 그래서 아빠의 용감성은 언제 어디서나 보여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 그 자체에서 나오지 않는 용감함이란 보편성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먼 곳에서 온 사냥꾼들이 큰 폭풍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이야기는 한층 고조된다. 저자는 곰과 아이의 대결이 끝나자마자 폭풍과 아이의 대결을 계속 보여주며 책을 읽는 아이들을 책에 점점 더 빨려 들게 하고 있다. 또한 이 대목은 거짓 없는 용기의 실체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어른들은 폭풍이 온다는 이야기를 하자 아빠(어른)는 “얼음집을 두껍게 쌓아야 해요. 시간이 없어요!”라고 ‘방어’에 여념이 없다. 곰을 보고 선제공격을 하던 것과는 대조를 보인다. 어른들은 곰보다 힘이 센 폭풍을 만나자 약해지는 반면 아이는 마을을 떠나 “폭풍을 만나러” 간다. 어른의 용감함은 총에 의지한 것이기 때문에 총이 없는 경우나 총으로 해결을 하지 못하는 대상을 만났을 때는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 약한 것(미소 짓는 물고기)에는 약하고, 강한 것(어마어마한 폭풍)에는 강한 키아바야 말로 용기의 실체를 잘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역시 폭풍은 만만하지 않다. 키아바의 미소를 보고 아무 말 없이 물러난 곰과는 다른 행동을 보인다. 폭풍은 “너 같은 어린애의 미소가 나를 멈추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며 고함을 친다. 키아바는 “안 된다는 것은 나도 잘 알아요. 그래도 노력은 해 볼 수 있잖아요?”라고 말하고 있다. 폭풍을 “어이가 없어 웃”게 할 정도로 “너무나 대담한” 말이다. 최선을 다한 키아바는 “폭풍이 웃고 있는 동안은 바람을 불게 하는 걸 잊어버릴 거야”라고 생각한다. 결국 폭풍도 키아바의 미소에 무릎을 꿇고 만다. “키아바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편안하게 잠 속으로 빠져듭니다.” ‘폭풍’은 이제 ‘바람’으로 변해 키아바를 잠들게 하는 자장가가 되고 만다. 진정한 용기는 ‘상대가 만만치 않아 대결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보는 것’이다. 최소한의 노력(용기)이 때로는 최선의 방법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그래도 노력은 해 볼 수 있잖아요”라는 말은 “한 사람을 구한 자가 전 세계를 구한다”는 탈무드의 전언과 맞닿아 있다. 역시 키아바는 용기의 실체를 잘 알고 있다. 키아바가 보여준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동화는 ‘어른’(용감했던 아빠)과 ‘아이’(소심했던 키아바), ‘새끼손가락보다 굵은 물고기’와 ‘미소를 짓는 물고기’의 대비를 통해서 그 대답을 보여 주고 있다. 아빠가 물고기를 판단하는 기준은 오직 눈에 보이는 크기다. 그래서 아빠는 키아바가 잡은 물고기가 “새끼손가락보다 굵은” 것인지 아니면 “너무 작아서 입 속에 감추”어 둘 수 있는 보잘것없는 것인 지에만 관심이 있다. 그런 어른인 아빠에게 “따뜻한 숨결”을 느끼게 하는 ‘미소 짓는 물고기’는 웃음거리밖에는 되지 않는다. 반면 키아바는 새끼손가락만한 물고기를 잡다가 “손가락 스무 개를 합한 것만큼 커다란 물고기”를 낚게 되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놀리던 아빠와 가족들에게 그 동안 잃었던 점수를 만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러나 키아바는 물고기를 다시 놓아준다. 키아바는 “미소 짓는 물고기는 절대 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키아바가 ‘사물’(물고기)을 ‘눈’(커다란 물고기)이 아니라 ‘마음’(미소 짓는 물고기)으로 보고 있음을 말해 준다. “내 아들은 뛰어난 낚시꾼은 아니지만 훌륭한 마법사가 될 거예요. 키아바가 마법으로 곰을 쫓았답니다!” 아이가 곰을 물리치기 위해 한 일이라고는 “미소 지은 것” 밖에는 없지만, 어른에게 키아바의 미소는 말로는 설명을 할 수 없는 ‘마법’이 되고 만다. 설명을 해준다 해도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순수함과 상상력을 잃은 어른에게 “말은 오해의 근원”이 될 뿐이다. ‘어른’과 ‘아이’의 차이다. “새끼손가락보다 굵은 물고기”만을 볼 줄 아는 어른은 외형만을 중요시 여겨 ‘상자 안의 양’을 볼 줄 모른다. 어른들은 ‘모자’와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 구렁이’ 또한 알아보지 못한다. 미소 짓는 물고기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는 어린왕자 뿐이다. 오로지 마음으로 볼 줄 아는 어린왕자만이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임을 간파할 수 있는 것이다. 키아바가 곰과 폭풍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미소 짓는 물고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고기는 ‘모자’와 ‘보아 구렁이’처럼 실체가 둘이 아니라,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키아바는 눈이 아닌 마음으로 ‘미소의 힘’을 보았다. 키아바의 용기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어린왕자의 순수함, 상상력의 힘에서 나온 것이다. |
| 소년이 커다란 물고기를 안고 있는 표지 그림이 강렬하다. 우리 아이는 소년을 보고 얼른 아툭을 떠올린다. 같은 에스키모 소년이기 때문이겠지. 에스키모는 '날고기를 먹는 사람'이란 뜻이다. 약간의 멸시와 냉소가 어린 이 말은 물론 자신들이 직접 붙인 것이 아니라 이른바 이들의 풍습을 야만스럽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그들은 이제 에스키모가 아니라 '이누이트'(인간)로 불리길 원한다. 무심코 습관처럼 부르던 것을 이제 좀더 의식적으로 바꾸어야지. 키아바는 이누이트 소년이다. 이제 막 낚시와 사냥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서 보란듯이 한몫을 하고 싶지만 이때까지의 성과는 별볼일 없는 듯하다. 낚시를 하러 떠나는 키아바의 등 뒤로 보이는 아빠와 주변 사람들의 표정에 장난기어린 놀림과 비웃음이 들어 있다. "오늘은 네 새끼손가락보다 굵은 물고기를 잡도록 해라" 아빠의 말씀을 뒤로 하며 키아바는 입을 굳게 다물고 결연한 의지로 낚시를 하러 간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손가락 스무 개를 합한 것만큼 커다란 물고기를 잡은 키아바, 나도 해냈다는 자부심으로 우쭐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키아바는 잡은 물고기를 바라보며 당황하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물고기가 키아바를 바라보며 살짝 웃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를 보고 웃다니, 내가 너를 잡았는데, 이제 곧 너를 잘라서 먹을 건데 어떻게 웃을 수가 있지? 영 마음이 편치 않다. 이 어린 낚시꾼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결국 물고기를 얼음 구멍에 다시 넣어 준다. 이제 아빠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의 비웃음을 감당할 차례이다. 물고기가 웃는 바람에 놓아 주었다는 이야기를 하면 더 웃음거리가 될 게 뻔하다. 그런데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큰 사건이 일어났다.사나운 곰 한 마리가 아빠와 키아바의 앞을 막아선 것이다. 아빠가 소리를 지르며 위협할수록 곰도 더 화가 나서 달려든다. 그때 키아바에게 떠오른 생각 하나, 키아바는 곰에게 다가서며 살짝 웃었다. 이럴 수가, 곰은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슬며시 어디론가 사라진다. 마을에 폭풍이 몰려온다는 소문이 돌자 키아바는 폭풍을 찾아나선다. 그리고 역시 웃음으로 폭풍을 잠재운다. 폭력을 이기는 힘은 더 큰 폭력이 아니라 부드러운 사랑이다. 키아바가 그걸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물고기의 웃음을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의 힘으로 결국 마을을 구하게 된다. 수채화풍의 그림이 맑고 깨끗하면서도 강렬하다. 한 가지, 미소를 지었다는 표현보다는 살짝 웃었다는 표현이 낫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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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림을 잘 모른다. 그렇지만 예쁜 그림을 좋아한다. 특히나 아이들이 읽는 책이라면 색감부터 좀더 화사하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도 낯설지 않고 딱 봐도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그런 포근함이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미래그림책들은 그림에는 그닥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소년 키아바의 모습도 표정이 한결같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키아바의 씩 웃는 웃음은 솔직히 반갑지 않았다. 진짜 그게 웃는 모습인가 싶을 정도였으니까. 그렇지만 역시나 내용은 또 읽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진정 강한것은 결코 상대를 억누르는 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솝동화에 나오는 나그네의 옷을 벗겨낸것은 쌩쌩 부는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빛이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을수 있는 동화가 아니었나 싶다.
낚시를 하러 나온 키아바는 사냥보다 더 못한 낚시일이 그다지 반갑지 않다. 그리고 행여 물고기를 못잡거나, 작은 것을 잡게 되면 자존심도 상할것 같은 심정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아주 커다란 물고기 한마리를 잡게 된다. 의기양양해서 돌아가려는데, 그 물고기가 따뜻한 미소를 키아바에게 짓는다. 처음에는 그 웃음을 무시하려 했던 키아바가 결국은 미소짓는 물고기는 먹을수 없다고 다시 놓아주게 된다. 그때부터 키아바의 고민은 시작된다. 물고기를 잡았다고 해야 할지, 아님 애초부터 못잡은것으로 해야할지에 대한 갈등이었다. 그렇지만 아버지와 키아바에게 닥친 위험은 단순히 물고기를 잡았냐 못잡았냐가 아니다. 그 둘앞을 가로막은 곰을 물리쳐야 하는 것이다. 으르렁 대는 곰에게 무섭게 소리를 지르고 대항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쌩쌩 부는 바람과 같았고, 조금전 부드러움이 최고로 강할수 있다는 것을 느낀 키아바의 곰에게 향한 미소는 따뜻한 햇살을 방불케 한다. 곰 역시 자신에게 미소짓는 키아바를 해칠수 없어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서게 되고 아버지는 키아바의 활약상을 마을사람들에게 알린다. 산넘어산이라고 했던가. 이번에는 마을에 엄청난 폭풍이 몰아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모두들 허둥대며 얼음집을 폭풍에 훼손되지 않게 두껍게 쌓아야 한다고 바쁜 손놀림을 하는데, 키아바는 폭풍을 만나러 나선다. 처음에는 무서워 움찔하기도 했지만 다리에 힘을 딱 주고 버티는 키아바. 키아바의 미소에 폭풍은 어이없어 웃기 시작하고, 그로 인해 마을은 다시 평화를 찾게 된다. 키아바의 행동이 어쩜 무모하다 할수도 있으나, 여기서 들려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부드러움이 어떤 총칼보다 더 강한 위력을 지닐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항상 강하게만을 외칠것이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과 부드러움도 생각해야 할것 같다. |
| 여느 에스키모 소년처럼 얼음낚시를 하였는데. 잡힌 물고기는 미소를 보냅니다. 아..그러면 안되는데.. 키아바는 맘에 갈등을 느낍니다. 잘게 잡혀먹힐걸 뻔히 아는 물고기는 그래도 미소를 보냅니다. 어린 낚싯꾼은 도저히 참을수가 없죠. 그만!소리를 지르고 놓아줍니다.. 그러면서 키아바는 미소의 위력을 스스로 깨우치게 됩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살인미소의 이야기는 이책을 어제 받아서 읽는 내내 아이의 함께 많이 웃었습니다. 단연 압권인것은 폭풍을 향해 미소를 보내는 기특,보낼줄 아는 한 키아바의 행동입니다. 천마디 말보다 천가지 행동보다 미소로 압축되어지는 놀라운 이야기. 정말 강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