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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한국 SF문학의 독보적 존재 매혹되기에 도리어 불안한 단요라는 속삭임” #존재의대연쇄 #단요소설집 #사계절출판사 #일파만파서평단 #SF문학 독창적인 이야기를 쓰는 단요 작가님. 혹시… 천재이신가요? 책에는 <사랑하는 신의 생일>, <세상의 이름은 기린>,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 <빛 속에>, <존재의 대연쇄>, 5편의 소설과 <격자 공잔 제어 지침서>가 담겨 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읽는 내내 조금 당황스러웠다. 알 듯 말 듯한 광대한 세계관과 방대한 배경지식을 요구하는 이야기들. 누가 옆에서 “이건 이런 뜻이에요” 하고 해설을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종교도, 역사도, 프로그래밍도 아는 게 너무 없어서요. 🥹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는 꽤나 ‘도전’에 가까운 독서였다. 종교와 과학, 역사까지 이어지는 단요 작가님의 세계관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읽으며 유독 오래 머물게 된 단어는 ‘구원’이었다. . 우리는 무엇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까. 구원은 정말 충분할 수 있을까. 단요 작가님의 세계관을 이미 이해하고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보다 더 매력적인 작품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아직 나에게 단요 작가님은 조금 멀고 먼 세계의 작가님. 언젠가 다시 읽으면 지금은 지나쳤던 것들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일까? 그때는 이 책이 조금 덜 어렵고, 조금 더 가까워져 있기를. 📚 사사로운 문장 수집 “괜찮다고 믿으면 정말로 괜찮은 일이 있고, 나는 괜찮아야만 한다.” _12쪽 “세상에는 그냥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죽으려는 부류도 있다.” _15쪽 “어떤 이야기를 하든 변함없을 관계, 책임질 것도 없고 기대할 것도 없어서 홀가분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건 무척이나 좋은 일이다.” _56쪽 “기적은 이 시대에 너무나 흔하고, 우리는 너무 많은 빛을 알고 있으며, 열화상 카메라조차 특별하지 않다. 따라서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 _147쪽 “그는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수익률을 다투는 건 증권사의 인공지능들이지만 돈을 벌어들이고 쓰는 건 사람이라고, 결국엔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_163쪽 “저장 버튼을 눌러야만 그 모든 변화가 비로소 디스크로 내려보내진다.” _224쪽 . 이해보다 질문이 오래 남는 단요의 소설집 <존재의 대연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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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세계가 어떻게 이렇게 물 흐르듯 읽힐 수 있을까. 낯선 설정과 새로운 세계가 등장하는데도 이상하게 한 번 발을 들이자 선명한 지도가 펼쳐진다. 그것은 이 이야기가 단순한 판타지에 머무르지 않고, 익숙한 현재성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기이한 세계라도 결국 인간을 비추는 방식으로 존재하며, 그 안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맞닿은 욕망과 감정, 두려움과 선택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이 작품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능숙하게 다루는 듯하다. 전에 없던 상상력을 펼쳐 보이면서도 그것을 낯설기만 한 대상으로 밀어두지 않는다. 오히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 어쩌면 정말 어딘가에서는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묘한 설득력을 만든다. 그 힘은 설정의 기발함과 세계를 구축하는 디테일, 과장 없이 흘러가는 문장의 리듬에서 드러난다. 독자는 어느새 망설임 없이 상상의 세계 안으로 들어간다. 이 세계는 끊임없이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낸다. 읽는 동안 머릿속에는 이전에 없던 지도가 그려지고, 낯선 역사와 질서가 생겨난다. 그런데 그 모든 새로움 속에서도 낯설지 않은 인간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가장 낯선 이야기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공감하고 마음을 건네게 된다. 가제본으로 약 100페이지 남짓 읽은 단계임에도 이미 작가만의 고유한 세계가 선명하게 읽혔다. 기묘하면서도 현실적인 감각이 더해진 세계는 내내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후 펼쳐질 이야기가 더욱 기대되는 작품이다. #사계절출판사 #블라인드서평단 #서울국제도서전 #단요 #존재의대연쇄 *도서증정 @sakyejul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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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대연쇄 #단요 #사계절 #서평 #일파만파독서모임 이성적 과학 기술과 기묘한 신화를 섞어 놓은 디스토피아 느낌이 난다. 책에 담긴 여섯 편의 이야기는 기괴하면서도 낯익다. 과거와 통화하는 유선전화기, 뇌에 칩을 심은 아이, 신의 계시로 세상을 프로그래밍하려는 사람 등 기발한 설정들이다. 소설 속 상상은 엉뚱해 보이지만 이상하게 현실과 닮은 것 같다. 기술을 다루는 듯해도, 그 안에는 인간의 고통과 집착이 그득하다. 그래서 이야기를 읽다 보면 머지않은 미래에 실제로 일어날 일처럼 느껴진다. 멀쩡해 보이는 현실 밑바닥에 감춰진 섬뜩함이 서서히 드러나고, 섬뜩한 미래의 한 장면을 직접 목격한 듯한 묘한 소름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은 친절하게 모든 문맥을 설명하지 않는다. 작가가 짜놓은 낯선 문장 사이를 헤매며 스스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완벽히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문장 자체를 감각하는 편이 좋다는 책소개가 뭔가 이해되는 것 같다. 차가운 미래에 던져진 인간의 외로움을 서늘하게 담아낸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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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환난으로 가득한 현실에 혼란으로 가득한 미래투시를 폭탄처럼 투하하는 소설 “존재의 대연쇄”도서제공 사계절에서 에서 보내주셨습니다.
“물론 이건 모두 꿈이다. 나도 안다.”
디스토피아SF하면 세상을 구하는 영웅서사, 혼자서 살아남아 이어지는 인류 설정이 많은데 이 책은 ‘인간의 가치를 재 탐구‘하는 내용에 가깝습니다. 설정이 기발해서 재미있지만, 철학적인 소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규정하는 ’나‘는 무엇인가요.
이 책은 아서러브조이의 동명의 책 ‘존재의 대연쇄 1936’의 세계관을 가져왔습니다. 모든 존재가 신성한 위계로 이어져 있다니... 인간 위주의 철학과 삶에 익숙한 우리에게 물음표를 던지는 작품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6개의 단편 중 표제작인 “존재의 대연쇄”가 그나마 익숙한 설정이었는데요. 매트릭스와 성경을 조합한 느낌이면서 절대자가 없는 세계가 존재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고 적어둡니다. 이 작품과 동일한 세계관을 가진 “격자 공간 제어 지침서”의 경우는 좀 더 인간의 선택의 무게를 강조합니다. 대연쇄가 혼돈 속에서 선택을 ‘내’가 해야 할 때를 다룬다면 다음은 그 선택의 ‘결과’를 내가 책임져야 할 때 어떤 행동을 할지 질문합니다.
여섯 개의 단편이 순서대로 의식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사랑하는 신의 생일은 ‘신과 이어져 있는 나’ 세상의 이름은 기린은 ‘신을 존재하게 하는 나’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는 ‘신에게 구원받지 못하는 인간’을 빛 속에는 ‘인간의 의미’를 존재의 대연쇄는 ‘인간이 깨달아야 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격자 공간 제어 지침서는 ‘그리하여 인간의 마지막선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책을 덮었습니다.
흥미롭고 혼란스럽고 철학적이고 신기한 소설입니다. SF매니아들을 즐겁게 할 소설이라고 적어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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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대연쇄》 | 단요 지음 이전에 아서 O. 러브조이의 《존재의 대연쇄》에 대해 누군가 자세히 요약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같은 제목이기도 하고, 두 책이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책을 읽으면서 러브조이의 책을 많이 떠올렸다. 러브조이가 신에서 인간, 동물, 식물,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모든 존재가 하나의 위계적 연쇄를 이룬다는 오래된 사유를 추적했다면, 단요의 《존재의 대연쇄》는 그 연쇄를 현대의 SF 안으로 가져온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러브조이의 책에 대한 정보가 이미 있었기 때문에 여섯 편의 이야기를 읽으며 두 책 사이를 오가는 듯한 순간이 자주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랑하는 신의 생일」에서 그 연결이 가장 선명하게 느껴졌다. 유선전화 너머의 유하는 칼리굴라에게 신처럼 인식되지만, 유하에게 칼리굴라는 역사 속 한 인간일 뿐이다. 같은 존재가 누구의 위치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신이 되기도, 인간이 되기도 한다. 러브조이가 이야기한 존재의 위계가 이 작품에서는 관점과 관계에 따라 끊임없이 뒤집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 나아가 단요의 상상력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신과 인간뿐 아니라 인간과 동물, 생명과 기계, 자연과 인공, 현실과 코드까지 서로 다른 것들을 한자리에 불러온다. 오래된 신화와 종교적 세계관에 컴퓨터과학과 미래 기술을 겹쳐 놓으면서 ‘존재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여러 방향에서 던진다. 그래서 여섯 편의 이야기가 각각 다른 모습으로 보이면서도 어딘가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전에 단요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느꼈던 것도 비슷했다. 한 가지 세계관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 다른 분야와 소재를 끌어와 자기만의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작가라는 인상이었는데, 이번 책에서는 그 스펙트럼이 특히 넓게 느껴졌다. 친구들과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으니 서로의 최애 단편이 다르기도 하고, 같은 작품에서도 각자가 발견한 연결점이 달라 더 재미있었다.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순간마저도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 그것이 굳이 같은 책을 읽고 독서모임을 하는 이유가 아닐까? *위 도서는 사계절로부터 제공받아 독서모임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사계절 #단요 #존재의대연쇄 #서평단 #독서모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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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요 작가가 그리는 디스토피아 SF 세계 여행” 단요 작가의 <존재의 대연쇄> 을 읽고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는 어떨까? 많은 작가들이 SF 요소가 가득한 디스토피아 미래 사회를 예감한다. 인공지능에 의해 점령당한 사회, 지구 종말 후의 폐허가 된 사회 등 다양한 디스토피아 사회를 그려낸다. 단요 작가 또한 그동안 과학기술이 발전되고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 속에서 거대한 시스템에 의해 소외되는 인간, 인간성이 상실된 서늘하고 건조한 세계를 주로 그려왔다. 이 책 「존재의 대연쇄」에 수록된 6편의 단편들 속에서 작가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앞으로 다가올 디스토피아 사회들을 형상화하였다. 특히 신학, 철학과 컴퓨터 공학 등의 내용을 접목하여 우리 앞에 다가올 사회를 보여준다. 1️⃣ 사랑하는 신의 생일 만약 우연히 발견한 아버지의 유품 속 전화기에서 고대 로마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면 어떨까? 마치 타임머신처람 전화기가 고대 로마시대 황제와 미래의 한 남자를 연결해준다. 그런데 그 황제는 로마제국의 3대 황제인 '칼리굴라'이다. 그리고 미래의 한 남자인 '유하'는 칼리굴라에게 이런저런 현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벤트성 자동응답기 기능이라 생각했지만 자신이 말한 내용이 칼리굴라에게 정체불명의 악령의 목소리의 형태로 전해지개 됨을 알게 된다. 미래가 과거를 바꿔서는 안 되지만, 유하는칼리굴라가 반역자들에게 암살 당하기 이틀 전에, 그의 억울한 죽음을 두고볼 수 없어 그의 죽음에 대해 경고한다. 과연 유하는 칼리굴라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까? 그 경고로 인해 역사는 어떻게 바뀌게 되었을까? 과거와 미래의 조우, 과거 역사적 진실의 변화 이 모든 것들이 우연히 아버지 유품에서 발견된 전화기에서 모두 비롯된다는 이야기 설정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칼리굴라를 살리기 위해, 다른 사람의 삶에 개입하고 역사적 흐름을 바꿔 놓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뛰어든 유하의 행동을 통해 칼리굴라에 대한 그의 애정과 연민을 느끼게 된다. 그 아픔이란, 윤리도 원칙도 없이 의무가 되는 것. 어쩌지 못할 상황을 어떻게든 현실로 이끄는 것. 역할과 상황과 거리를 뛰어넘어 누군가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는 것, 그 누군가가 나의 삶을 뒤집어놓도록 허락하는 것. 그럼으로써 하나의 세계를 산산이 잃어버리고 다시 만드는 것. 그 하나를 위해 모든것을 바치므로 철저히 격렬하고 이기적인 것 -p.73 2️⃣ 세상의 이름은 기린 우주의 기원이 사자와 기린의 관계로 인한 것이라는 설정이 인상적이었다. 포식자인 사자와 피식자인 기린의 관계성이 낮과 밤을 만들고 계절을 만들었다는 우화적 설정이 독특했다. 세계 질서는 사자의 탐욕과 고독, 새끼를 잃은 어미 기린의 분노와 상실감에 빚지고 있다는 서늘한 진실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작가는 세상이 각자의 죽음과 괴로움 그리고 씻을 수 없는 고통에 의해 굴러가고 있다는 냉혹한 메시지를 전해 준다. 3️⃣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 만약 빙하 속에서 원시인이 발견되었고 유전자 분석을 통해 열화상카메라처럼 적외선을 감지하는 생물학적 돌연변이의 인간이라는 설정이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다. 종교역사학과 과학을 작가 특유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엮어낸 작품이다. 작가는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질병을 꿰뚫어보던 고대의 존재들도, 전압으로 연결된 첨단 시스템을 통제하는 현대의 사무관도 인류를 구원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완벽한 구원은 없으며, 고도화된 현대 사회 속에서 채워지지 않는 결핍과 현대인의 피곤을 아울러 보여준다. 4️⃣ 존재의 대연쇄 만약 이 세계가 거대한 프로그래밍 코드나 데이터베이스에 불과하다면,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신학과 컴퓨터공학이 결합한 독특한 SF 소설 작품이다. 신과 우주 질서를 다루는 고전적인 철학과 창세기와 계시록을 포함한 성경 및 신학 그리고 현대의 컴퓨터 공학이 만나 한 편의 매혹적인 작품이 탄생하였다. 20년전 노트북을 고치다가 감전사고를 당한 한 남자의 이야기로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감전되어 기절한 주인공은 사후세계처럼 하얗고 타일이 격자무늬를 이루는 공간에서 눈을 뜨게 된다. 그것에서 '테리 데이비스"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서 프로그래밍화된 알 수 없는 계시와 명령어를 받게 된다. 시간이 흐른 후 주인공은 꿈에서 각인괸 코드를 바탕으로 성경을 파헤치게 되고 성경 프로그래밍 시물레이터를 만들게 된다. 그 시뮬레이션 과정을 통해 마침내 빛나는 겨자무늬 공간을 찾아나서게 되는데 과연 그는 그 공간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적품를 통해 우리는 신과 인간의 관계, 보이지 않는 신의 존재와 신의 섭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명확히 보이지 않는 세계 이면에는 아직은 알 수 없는 것이 존재함을,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현실 이면에 거대한 시스템이 존재할 지 모른다는 의문점을 가지게 힌다. 이 책의 6편의 단편들을 통해 SF 디스토피아 여행을 다녀왔다. 신학, 종교, 역사와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이 어우러져 작가 특유의 상상력으로 독특한 이야기들이 탄생하였고 그 덕분에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존재의대연쇄 #단요 #사계절 #일파만파독서모임 #도서협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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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의 대연쇄> 단요, 사계절 ☎️ 단요 작가의 소설을 읽다 보면 늘 묘한 혼란에 빠지곤 한다. 지금 내가 잘 짜인 서사를 읽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한 작가의 머릿속에서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정교하게 돌아가는 거대한 지적 사고실험을 몰래 훔쳐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스케일도 거대하고 이야기의 복잡성도 엄청나다. 단요 작가의 소설집 『존재의 대연쇄』는 그 과감한 실험이 꽤나 멀리까지 뻗어나간 결과물이 아닌가 한다. 로마사와 고대 신화에서 출발해 생물의 감각과 진화, 인공지능, 그리고 신학과 컴퓨터공학의 영역까지 거침없이 가로지르는 책이라니... 수록된 여섯 편의 이야기는 소재와 질감이 저마다 판이하지만, 결국 다음과 질문으로 수렴되는 것 같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되게 하며, 신은 누구에게나 신일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구원은 정말로 우리를 구할 수 있는가?" 🦒 가장 매력적인 작품은 단연 「사랑하는 신의 생일」이었다. 오래된 유선전화기로 2천 년 전의 로마의 폭군 칼리굴라와 통화한다는 기발한 시간여행 설정이다. 심지어 그것을 통해 이 작품은 관계의 본질을 짚어내려 시도한다. 미래를 아는 현대인의 목소리가 고대의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인 신의 음성이 되고 반대로 폭군인 자신을 오롯이 믿어주는 한 존재를 통해 비로소 세계와 연결된다. 누군가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는 것으로 사랑을 정의하는 결말은, 거대한 역사와 구원의 담론 속에서도 결국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미치는 파동으로 돌아와 긴 여운을 남긴다. 사자와 기린의 우화로 낮과 밤, 계절의 기원을 빚어낸 「세상의 이름은 기린」 역시 오래된 신화의 숨결 속에 상실과 분노, 이해와 용서의 간극을 밀어 넣으며 독특한 서정성을 뿜어내는 작품이었다. 🫧 이 소설집 속 작품들은 인간이 품어온 환상을 과감하게 해체하기도 한다.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에서는 고대의 마술사와 예언자를 온도를 시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던 돌연변이라는 과학적 가설로 재해석한다. 한때 기적이라 숭배받던 능력이 기술의 진보로 평범한 일상이 되었을 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허무에 불과하다. 기적의 메커니즘을 밝혀냈다고 해서 삶에 내재된 고통까지 납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인 것일지도... 「빛 속에」에서는 끝없는 수술을 견뎌야 하는 인간 아이와, 명령에 지쳐 스스로 소멸을 택하려는 인공지능을 나란히 배치한다. 목숨을 살려두고자 하는 선택이 언제나 선한 것인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고통을 대신 결정할 권리가 있는지를 묻는 이 작품은 기술의 미래보다 고통을 느끼는 존재를 대하는 윤리적 태도에 집중해 단단한 질문을 던진다. 🕹️ 반면 표제작 「존재의 대연쇄」와 부록 성격의 「격자 공간 제어 지침서」는 독서의 즐거움과 지적 피로가 팽팽하게 맞서는 지점이다. 성경의 신학적 도그마를 프로그래밍 언어로 치환하고, 시뮬레이션 우주론과 자유의지, 종말론을 한데 엮어낸 작가의 야심만만한 서사와 구조는 정말 감탄스럽다. 인간이 만든 가상 세계 속 존재에게 인간이 신이라면, 인간 역시 상위 차원의 피조물일 수 있다는 발상 또한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중반 이후 이어지는 피에르와의 긴 신학적 논쟁과 프로그래밍 시스템 설명은 이야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보다, 독자가 방대한 설정을 학습하고 해독해야 하는 영역으로 넘어가며 서사의 탄력을 다소 떨어뜨리는 면도 있었다. 완벽한 가상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작가의 집념은 돋보이지만, 문학적 여운보다는 세밀한 설정 노트를 들여다봐야 하는 피로감을 짙게 남기기도 한다. 🧬 표제작이 서사보다 설정의 부피가 앞서며 독자에게 과도한 해석의 노동을 요구하기도 해서 조금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좋았던 책이었다. 이 책이 한국 SF 지형에서 대단히 희귀하고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는 사실만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책을 덮고 나면 존재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결코 쉽게 풀리지 않는 성가시고도 매혹적인 질문이 머릿속을 오래도록 맴돈다. 그리고 지적인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독자에게 이 책은 바로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펼쳐볼 가치가 있을 것 같다. * 이 책은 사계절출판사(@sakyejul)에서 제공받아 독서모임 진행을 했습니다. at @yamongyamong_ss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chiwonna_bier @apureumdite @i_am_what_i_read #존재의대연쇄 #단요 #사계절 #독서모임 #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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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독서모임의 한 분이 단요 작가의 신간에 반색을 표하셔서, 마침 도서 지원 기회가 있어 받아 읽어보게 됐다. 검색해보니 단요 작가는 이미 여러 편의 소설을 출간했고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작가인 듯하다. 내게는 이 책이 단요 작가와의 초면이었고 결과적으로 내가 생각했던, 기대했던, 그리고 지금까지 읽어왔던 SF와는 많이 달랐다. 굉장히 신선했다. 몇 편의 단편을 엮은 소설집인데, 컴퓨터 과학부터 신학, 중세 철학, 로마사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소설가 이전에 뭐하시던 분일까가 궁금해질 정도로 다양한 학문에 박식함이 보였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이야기들이었다. 또 각각의 이야기는 그 분위기와 형식마저 모두 달랐다. 거침없고 재치 있는 문체, 시적이고 아름답고 유려한 문체, 지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문체를 구사하며 각각 다른 결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나는 이 중 <사랑하는 신의 생일>,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 <존재의 대연쇄>를 가장 재밌게 읽었다. (이하 스포 있습니다.) 아버지의 유품으로 남은 오래된 유선 전화기를 통해 로마 제국의 제3대 황제 칼리굴라와 연결된다. 칼리굴라에게 죽음을 예고하여 피하도록 돕고 그렇게 과거 인물의 생애를 바꾼다. 또 그렇게 자신은 칼리굴라에게 신과 같은 존재가 된다.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 에서는 고대의 마술사와 예언자들이 사실은 열화상 카메라처럼 장파장 적외선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가설을 세우고, 빙하 속에 얼어 있던 원시인의 유전자 분석을 그 근거로 설명한다. 정말 기발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표제작인 <존재의 대연쇄> 또한 그러한데, 사실 이해하기 많이 어려웠다. 두 번 읽었고 내가 요약한 이 줄거리가 맞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노트북을 고치다가 감전 사고를 겪은 17살의 김규현은 꿈속에서 테리 데이비스를 만나고 선지자로 지목받는다. 이후 20년이 흐르고 김규현은 원주에 마련한 자가에 16색의 640×480 해상도의 세계를 프로그래밍하고 시뮬레이터를 실행하며 그 안에 작은 인간들을 관찰한다. 한편으로는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격자 공간(원주 시외버스터미널 7층)을 찾아 세상을 해킹하고 신적 주권을 얻으려고 한다. 피에르라는 친구와 종말 코드를 찾아 실행하나 격자 공간은 닫히고 세상은 원래 그랬던 것처럼 변함없이 움직인다. 이 가운데 김규현과 피에르의 대화에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 죽음 이후의 영혼의 존재, 신과 자유의지의 존재 등 심오한 이야기가 오가는데... 📚"아까 돌에 맞아 죽은 난쟁이 예언자가 시스템을 해킹해서 모니터 너머로 말을 걸어오면 어떻게 할래? (...) 그게 온갖 부조리를 따져 묻기 시작하네. 내 삶이 왜 그랬나, 왜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을 만들었나? 어째서 어떤 사람들은 그토록 악하고 잔인한가 궁금해 하는 거지. 따지는 것조차 아니고 정말로 궁금해서. 자, 잘 생각해야 돼. 이 예언자는 너를 정말로 사랑해. 물론 원망하는 마음도 약간 있지만 그래도 네가 피조물을 사랑으로 돌보는 좋은 신이라 믿으려는 마음이 여전해. 거꾸로 말해 이 예언자는 신을 사랑할 수 있기를 절실히 소망하는 상태고, 그게 바로 믿음이야. 너는 어쩔래?" (255쪽) 작가는 인간과 신의 존재라는 주제에 천착하고 이를 각기 다른 이야기에 녹여낸 것 같다. 일견, 황당무계한 상상인 것 같아보이지만 그 상상을 튼튼한 집처럼 쌓아올렸다는 점에서 단연 독보적인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그의 장편소설도 읽어보고 싶다. 조금 더 긴 호흡의 이야기 또한 만나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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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존재의 대연쇄 단요 | 사계절 단요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면 늘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도대체 이런 이야기는 어떻게 생각해내는 걸까. 『존재의 대연쇄』 역시 그랬다. 처음에는 낯설고 기묘한 설정을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이야기 속에 깊이 들어가게 되고, 책을 덮은 뒤에는 소설 속에서 던진 질문이 현실까지 따라온다. 인간과 기계, 신과 인간, 생명과 비생명,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흔들어놓으며 결국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독자를 세운다. SF를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좋은 SF의 의미를 떠올렸을 때 단순히 미래의 기술을 상상하는 소설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계의 질서를 한 번 뒤집어 보여주는 장르가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존재의 대연쇄』는 꽤나 지적인 독서였다. 여러 작품 가운데 특히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세상의 이름은 기린」이다. 첫 묘사부터 색다르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의 질서가 조금씩 비틀어진다. 별과 달의 색이 왜 창백해졌는지, 밤과 낮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리고 그것이 숨결과 시간과 갈증과 열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읽고 있으면 단순한 SF 단편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 문장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별과 달의 색이 창백해진 이유, 밤과 낮이 생긴 이유를 이야기하면서 숨결과 시간과 갈증과 열망이라는 단어를 가져오는 순간, 우주적인 이야기가 갑자기 아주 인간적인 감각으로 느껴지는 따뜻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계의 풍경 하나하나에 기원과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 신화 같기도 하고, 아주 오래된 우화를 읽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읽는 내내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여기서 화자는 누구일까? 이 질문 하나 때문에 이야기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화자가 바라보는 세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와 어딘가 다르고, 그가 말하는 '세상'의 기원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설명과는 다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낯선 이야기가 어느 순간 너무 아름답게 느껴진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SF가 반드시 미래의 우주선이나 인공지능, 새로운 문명만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세계의 기원을 새롭게 상상하는 것,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에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것 역시 SF일 수 있겠구나. 특히 '세상의 이름은 기린'이라는 제목도 마지막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어떤 존재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존재를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는 일일까. 아니면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규정하는 일일까. 이 작품은 아름다운데, 그 아름다움이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다. 아름다운 문장 뒤에 질문이 있고, 그 질문 뒤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 그리고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를 읽을 때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감탄했다. 정말이지 이런 작품을 읽고 있으면 'SF 작가란 도대체 얼마나 똑똑해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아이디어만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와 철학적 질문, 인간의 감정과 세계의 구조를 한꺼번에 설계해야 한다. 독자는 그 복잡한 구조를 모두 이해하지 못해도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며 무언가를 느끼게 되는데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짧지만 강렬했던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구원'이라는 단어를 바라보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흔히 구원이란 마지막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구하고, 무언가를 되돌리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면 이야기가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목부터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 문장이 작품을 읽고 난 뒤에는 더 무겁게 다가온다. 무엇을 구한다는 것은 동시에 무엇을 포기하는 일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구원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완벽하게 모두를 만족시키는 구원이란 애초에 가능한 것일까. 이런 질문을 SF의 설정 안에 밀어 넣는 작가의 사고가 놀라웠다. 책에 실린 작품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읽다 보면 서로 연결된다. 신과 인간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기술과 인간의 경계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기원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는 작품도 있다. 그런데 결국 계속해서 돌아오는 것은 존재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인간을 기준으로 생명과 비생명을 나누고, 자연과 문명을 구분하고, 현실과 가상을 나눈다. 하지만 그 경계가 정말 절대적인 것인지 묻는 순간 모든 것이 조금씩 불안해진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때문에 이런 질문이 더욱 가까워졌다.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대화를 나누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기억일까, 감정일까, 몸일까, 의식일까. 책을 덮고 나서 생각했다. 기묘하고, 지적이고, 때로는 아름답고, 무엇보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세계를 조금 낯설게 만드는 소설집. 읽은 뒤 질문이 시작되는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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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대연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은
소설집이다. 표제작 <존재의 대연쇄>를 포함하여 모두 6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이 책에 실린 여섯 편 모두 나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든 작품이다. 다시 말하자면 여섯 편 모두가 나에게는 문제작이다. 좋다는 말이다.
<사랑하는 신의 생일>
어떤 점이 좋았을까? 일단 이 소설의 ‘화자’가 마음에 든다. 보통, 진짜 보통의 남자가 화자로 등장한다, 연애도 잘 하지 못하는 찌질이(?) 로 보이는 현대 우리나라의 그저 평범한 인생이다. 그런데 그가 가진 지식의 범위와 양은, 그야말로 한 편의 소설을 이끌고갈만하다. 하나의 세계관을 가슴 속에 품고 있다.
화자가 현시점의 세계와 로마제국의 세 번째 황제인 칼리굴라를 엮어내는 그 솜씨, 그래서 만들어지는 세계가 자못 흥미롭다. 화자의 이름이 그래서 기억해야할 이름이 되었다. 유하. 게다가 그 이름 유하는 유대교의 유일신인 YHWH 와 동일한 신격으로 간주되었다는 설정도 이 소설의 격을 높인다. 그냥 시간때우기 용 소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해서 이 소설 <사랑하는 신의 생일>을 읽을 때에는 가지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읽어야 한다, 행간까지 살펴보면서, 화자가 말하는 바를 잘 따라가야 한다.
로마 제국의 역사 : 제 3대 황제 칼리굴라와 그 주변의 인물들 그리스, 로마의 신들 : 유피테르, 넵투누스, 아폴로, 풀루토, 베스타 서기 38년과 40년 경의 알렉산드리아 상황, 특히 종교문제와 관련하여.
문제적 소설 <존재의 대연쇄>
이 소설은 정말 문제적이다. 먼저 소설가란 직업이 상상력을 얼마까지 발휘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은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는 머리를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어떻게 이런 작품을 구상할 수 있을까?
신의 말씀을 컴퓨터 명령어로 치환할 생각을 하다니. 이건 희대의 발명이다.
컴퓨터과학과 신학을 연결하여, 독자들을 다른 세계로 인도해나간다. 그럴듯한 설정이다. 컴퓨터 관련 지식에 무지한 관계로 그런 서술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게 유감일 정도다. 해서 그 다음에 이어지는 <격자 공간 제어 지침서>는 꼭 읽어야만 한다. 컴퓨터 관련 지식도 넓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화자들에 대하여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와 <존재의 대연쇄>는 두 사람의 대화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에서는 송전망을 관리하는 기술직 사무관과 그의 친구간에 전화 대화가 이루어지면서 소설이 진행된다. 화자의 친구 또한 종교역사학 연구자다. 따라서 둘 간의 대화는 형이상학이 될 수밖에 없고 대화는 간학문적 연구(118쪽) 보고서와 다름이 없을 정도다.
<존재의 대연쇄>에서는 화자와 화자의 친구 피에르 간에 대화가 소설을 이끌어간다. 피에르는 가톨릭 신학대에서 3년을, 총신대 신학과에서 3년을 수학하고 그만둔 종교인(?)이다. 현재는 건설현장에서 타국의 전문가들과 비정기적으로 협업을 하고 있다. (216쪽)
그런 친구와의 대화가 경계없이 지상과 천상을 넘나들며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걸 글로 읽는 독자들은 그들이 그려내는 세계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피에르의 말을 조금만 인용하자.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라, 기록하고 싶어진다. 220쪽에서 221쪽에 있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근본적인 이질성에 관한 기록이다.
구약의 유대인들이 이해했던 영혼은 기독교인들이 아는 영혼과 다르다. 영혼을 의미하는 히브리 단어는 총체적인 생명력과 영적 관계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몸과 독립된 실체는 아니다. (221쪽) 그런데 기독교의 영혼관은 정반대다. 죽음 이후에도 영혼은 남는다, 그 영혼은 몸과 별개이다, (221쪽)
이런 이야기. 흥미롭지 않은가?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어가면서 좀더 깊은 영적인 세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해서 이 책에는 생각할 거리가 도처에 있다 그 중 몇 개 간추려본다.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손바닥 한 뼘 크기로 줄어든 나폴리를 보자니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신의 눈에는 이토록 하찮겠구나 싶었다. (28쪽)
삶을 매 순간 의식할 만큼 죽음에 가까워진 상태로.....(32쪽)
금방 녹아내릴 물건들, 대장장이의 솜씨에 따라 반지도 귀걸이도 될 수 있는 것들이 지금 여기에서만큼은 신의 위광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 기묘하게만 느껴졌다. (47쪽)
심지어 세상에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신을 만들어내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47쪽)
믿음은 실체가 없으므로 공허했고, 공허를 메우기 위해서는 더많은 믿음을 만들어내야만 했다. (91쪽)
기린은 멀리서 보면 뿌리로 땅을 딛고 선 나무 같다. 날카로운 송곳니도 거대한 상아도 매달지 않고 그 높이만으로 모두를 고고하게 굽어보는 나무, (100쪽)
대기 순환 패턴을 조작함으로써 상대국의 영토를 사막으로 바꾸어놓는 전략무기가 있었다. (121쪽)
다시, 이 책은
이 책 첫 번째 소설, <사랑하는 신의 생일>을 읽고 나는 이 책의 저자 단요를 좋아하게 되었다. 내 독서의 범위가 그동안 형편이 좋지 않았던 모양으로, 이런 소설을 쓴 작가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이제부터 작가 단요를 관심 작가로, 애정하는 작가의 반열에 두기로 한다!
이 책, 단요의 소설집은 줄거리를 통해서 독자들을 매혹하는 것이 아니라, 줄거리를 생성해가는 과정에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그러므로 이 책은 생각하면서 읽어야 한다. 그래서 이 책, 묵직하다. 생각으로 묵직하다. 독자들은 이 책으로 인해 분명 ‘생각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