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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시차의 낯선 문명의 과거로부터 불변하는 인간본성의 반영을 발견한다. 그 발견은 아마 이런 것이 될 것이다. 야만의 세계는 어떻게 출현하는가, 그 원인 행위들은 무엇인가?
[요약 감상글; summary]
감상글의 요약을 앞세우는 이유는 책의 방대함, 이를테면 ‘중세 백과사전’이라할 만큼 당대의 다채로운 생활상을 비롯한 정치, 종교, 문화의 모든 것이 망라되어 있어 내 누추한 소회가 산만한 감상이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한 마디로 이 걸출한 역사저술은 타락해가는 교회와 전장의 참상, 궁정과 귀족들의 흥청만청 풍요와 대비되어 절규하는 농민 모두를 목격한 대영주 앙게랑 드 쿠시 7세라는 인물의 삶을 중심으로 14세기 파국의 유럽을 들여다보는 역사 서사(敍事)이다.
1303년 훗날 소빙하기로 불릴 혹한과 냉해가 유럽대륙 전체를 휩쓸며 대기근으로 14세기를 맞는 당대인들은 이 세기가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인간 퇴행의 시대로 기록될 것임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한 세기 내내 유럽 전역을 휩쓴 흑사병, 끝나지 않고 지속되며 점점 확산되어가는 전쟁, 교회의 탐욕과 문란함의 극성 등 모든 것의 부패를 향해 마치 의도적으로 미친 듯 질주해나가는 듯한 재앙의 시대를 통해 이 독특한 역사저술은 600년 시차의 먼 역사의 시간을 오늘의 세계에 비춘다. 그것은 먼 거울, 즉 낯선 문명의 과거에 맺힌 상(像)으로부터 불변하는 인간본성의 반영을 발견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 발견을 위한 물음은 아마 이런 것이 될 것이다. 야만의 세계는 어떻게 출현하는가, 그 원인 행위들은 무엇인가?
야만과 폭력의 끝을 향하기라도 한 듯 지옥의 구렁텅이로 질주하는 14세기라는 과거는 오늘 우리들의 행동에 여전히 남아있는 인간 본성의 거울이 된다. 변화없이 무한 반복하는 인간의 그 어리석은 행동들을 무엇보다 ‘읽히는 역사(narrative history)’를 통해 모든 대중들이 ‘인간은 역사를 통해 무엇이 되는가?’라는 물음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 이 위대한 저술에서 바로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직시하게 된다. 이 책의 국역본 출간에 앞서 거듭 두 차례 읽으며, 오래 펼쳐볼 소장본의 필요성을 느낀 책이었다. 가족들 모두 돌아가며 읽어 보고 서로 그 소회를 나누기에 좋은 저작이다. 터크먼은 14세기 이 야만의 인간 양상이 20세기 나치의 잔혹상으로 반복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다시금 오늘 신파시즘과 극우화되어가는 이 세계의 양상의 거울이 되어 인류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볼 것을 제안하는 듯하다. 우리들은 이 책으로부터 무수한 인간 반영(反映)들을 발견하고 현실 통찰의 지혜를 거둬 올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본 감상글]
1. 역사는 인간 진보(발전)의 문명 서사가 아니다.
역사철학자로서의 헤겔은 역사는 하나의 방향으로 발전하는, 특히 인간 정신이 자기 자신을 인식해 가는 과정으로서 세계사는 자유의식의 진보라고, 즉 ‘자유의 진보’라는 통일적 의미의 존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20세기의 대표 역사저술가인 바바라 터크먼(Barbara W. Tuchman)은 이 주장의 빈틈을 쫓기라도 하듯 진보의 대척에 있는 퇴행의 역사로, 오직 폭력과 야만의 지배로 규칙이 무너져 내리며 그 바닥의 한계로 빠져드는 ‘속박의 진보(?)’가 인간 정신을 휩쓸던 14세기 중세 100년의 재앙적 시기를 다루고 있다. 헤겔의 역사관을 조롱하듯 자유의 보편원리가 이성의 운동으로 진전해가기는커녕 이 시대는 인간의 오판과 우연, 모순과 정신적 지체를 넘어 퇴행으로 치달으며 역사의 시간 속에서 인간 본성의 항구적 변화 불능성을 입증한다. “사학자들은 이 시기를 싫어하고 회피하는데, 인류의 진보라는 패턴에 끼워 맞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라는 저자 서문의 글은 곧 헤겔 부류의 철학에 대한 반박의 의지표명일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터크먼은 이러한 반(反)헤겔주의 역사관으로서,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복원하는 문헌과 사료 중심의 객관적 역사를 강조하여 역사의 정확성을 기술하는 실증주의 역사학에 기초한 연대기적 서사형식으로 독자적인 역사서술방식을 선택하였을 것만 같다. 이처럼 전통적 역사학자와 다른 걸음으로 자유로운 문체와 극적(劇的) 역사서술을 채택하는, 다시 말해 학술적 엄밀성과 문학적 서사를 결합하여 일반 독자도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로 바꾸어 놓았다. 14세기 내내 유럽 전역을 휩쓴 흑사병, 끝나지 않고 지속되며 점점 확산되어가는 전쟁, 교회의 탐욕과 문란함의 극성 등 모든 것의 부패를 향해 마치 의도적으로 미친 듯 질주해나가는 듯한 재앙의 시대를 통해 오늘의 세계를 비춘다. 종말로 치닫는 14세기라는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무엇보다 ‘읽히는 역사(narrative history)’로서 모든 대중들이 ‘인간은 역사를 통해 무엇이 되는가?’라는 물음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 《먼 거울 (A distant mirror)》은 역사 속 인간의 행위로부터 윤리적, 정치적 반성의 사유를 추출하고자 하는 치밀한 노고의 과실이다. 대체 인간과 인간사회의 반복되는 재앙의 뿌리에 있는 근원 혹은 요인들은 무엇인지 역사적 시간을 따라 밀도 높고 긴장감 있는 전개로 마치 소설처럼 몰입하게 한다. 터크먼 역사서술의 한 특징인데 저자는 추상적 구조보다 시대를 대표할 만한 특정인물의 삶을 서사의 도구로 삼아 그들의 판단, 오판, 성격, 감정에 주목하게 하여 역사를 인간적 드라마로 만들어낸다. 어쩌면 이것이 이 독특한 역사서를 흥미로운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하는 요인일지도 모르겠다. 해서 이 책의 중심인물은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 지역의 대(大)영주 앙게랑 드 쿠시 7세(1340-1397)의 행적과 관련하여 전개된다.
“공감의 어려움, 즉 중세의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가치에 진정으로 들어가기의 어려움이야말로 마지막 장애물이었다. 여기서의 주된 장벽은 바로 당시의 기독교인 것 같다. (...) 중세 기독교의 지배원리와 일상생활 사이의 간극은 중세의 거대한 함정이었다.” -저자 〈서문〉 에서
이 파국의 시대를 둘러보며 “인간이라는 종이 이전에 오늘보다 더 나쁜 일도 견디고 살아남았음을 알게 됨으로써” 오늘의 삶을 안심하게 될 거라는 저자의 조크의 목소리에 독서 내내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대체 14세기가 왜 치명적 재앙의 시기였는지, 역사의 진보라는 이해에 파열음을 내게 하는지, 그 영향의 요인들을 찾는 대항해(총 1,200여쪽에 이르는)는 그야말로 흥미진진한 시간이 된다. 14세기 100년의 시간 동안 인간을 더할 나위 없는 야만과 폭력의 심화상태로 몰아넣은 현상들을 시시콜콜 열거하려면 아마 이 책의 내용을 모두 쏟아 내놓아야 할 만큼 무수하게 복잡한 사안들의 상호 얽힘을 일일이 기술해야 할 터일 것이다.
2. 세계의 질서와 규칙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그것은 14세기가 시작되자 몰아치기 시작한 기후변동으로 인한 대기근, 교회의 극단적인 부패와 타락을 비롯한 교권의 분열, 14세기 내내 시차를 두고 6차례나 유럽 인구를 몰살시킨 흑사병의 창궐, 프랑스의 왕위 계승을 빌미로 삼아 영지를 두고 벌어진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전쟁으로 시작되어 이후 100년간 이해관계망의 복잡한 얽힘으로 심화 확장되어간 백년전쟁, 이 전쟁의 부산물인 유럽대륙 전체를 약탈 유린, 방화, 살해가 무법적으로 자행되는 예외없는 유럽전역으로의 귀족과 기사계급들로 구성된 산적단과 용병 무리의 확산, 기사도라는 모순으로 점철된 영예와 관능이 뒤섞인 허위의 정신이 야기한 폭력성의 파급으로서 이식된 파국적 발현들, 여전히 기독교 아마겟돈, 예수 재림이라는 유한 역사성에 매몰된 어리석은 도시평민과 농민들의 노예근성 등이 상호 최악의 상태를 향한 암흑, 즉 적대적이고 폭력적인 사건들의 압력으로 질서와 규칙이 남김없이 무너져내린 무법의 시대를 목격하게 한다.
정말이지 스위스 역사학자 시스몽디(J.C.LS. de Sismondi)의 말처럼 “14세기는 인류에게 좋지 않았던 시기였다.” 한꺼번에 이러한 동시다발의 재앙적 사건들이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인간과 그들의 사회가 야만으로 복귀하는 것일까? 물론 그럴 수 있겠다. 대량운송 역량이 없던 시대에 기근은 지역자원에 의존해야만 하던 사람들을 굶주림에 시달리게 했을 것이고, 거기에 교회의 사악하기 그지없는 약탈적 세금 징수, 전쟁으로 인한 자원 강탈, 흑사병과 전쟁으로 인한 인구감소가 불러온 노동력의 가공할 감소, 여기에 일 없는 귀족들이 벌이는 산적단의 약탈과 파괴, 살인 등이 쉴 새 없이 몰아닥치는 세상이라면 그 누가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사실 오늘의 시선으로 보면 정말 낯선 문명, 아니 문명이랄 수 없는 세계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14세기의 헤픈 정서의 이면에는 고통과 죽음의 장관에 대한 전반적인 무감각이 있었다.”
이러한 시대에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품게 될까? 그 어디에서도 그 누구에게도 하물며 교회에서도 보증된 미래에 대한 느낌은커녕 하루를 견딜 구원조차도 전혀 찾을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도덕성이란 어쩌면 낯선 언어였을지도 모른다. 거듭되는 국왕 등 귀족세력의 오판과 실정(失政)은 체포된 귀족과 국왕을 석방하기 위한 몸값이라는 납세의 부담 증가로 돌아오고,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이 휩쓰는 흑사병은 무의식적으로 인명(人命)에 대한 경시를 조장했을 것이다. 더구나 끊임없이 벌어지는 약탈전쟁과 산적단의 싹쓸이식 집단 학살에 노출되면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릿해졌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교회는 “삶이란 기껏해야 영원한 고향을 향한 힘들고 지치는 여행”일 뿐이며, “내세인 하느님에게로 나아가는 중에 겪는 유배의 한 단계라는 의식”이라고 떠들어대고 있었으니, 지상의 삶에서 겪는 잔인하고 참혹한 헤어날 수 없는 형편은 더더욱 축적된 인류의 지식들인 규칙들의 가치를 상실토록 하는 요소였을 것이다.
영토의 지배를 통한 권력의 확보는 필연적으로 전쟁이라는 폭력을 요구한다. 14세기 내내 유럽 전역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백년전쟁은 프랑스 국왕 필리프4세의 손자인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3세가 프랑스왕위 계승권의 주장을 빌미로 시작한 영토 야욕, 즉 교역로의 안정적 확보와 생산물 거점의 확보를 위한 침략전쟁이 발단이다. 이것을 오늘날 형성된 국가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 부계와 모계의 가문들, 결혼으로 인해 얽힌 가문들, 조약과 동맹으로 결합된 관계들로 인해 유럽 대륙 전체에 흩뿌려져 있는 그들의 영지로 인해 발생하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국가이전의 봉건체제 결과이기 때문이다. 바바라 터크먼이 서사의 중심인물로 내세운 대영주 쿠시가문의 앙게랑 7세는 이러한 양상을 보여주는 전형적 귀족이자, 기사이며, 소위 산적단으로 불리는 세력과의 그 경계가 모호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앙게랑 7세의 아버지인 앙게랑 6세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공국 카타리나 공주와의 결합은 프랑스 국왕과 오스트리아 공작 사이에 두 번의 조약 체결을 통해서 이루어진 이미 영토와 부와 정치적 거래를 함유하고 있다. 이것은 카타리나를 통한 새로운 영지를 포함하고 막대한 결혼 지참금과 상호 전쟁동맹을 의미한다. 또한 앙게랑 7세는 잉글랜드 에드워드 3세 국왕의 장녀 이자벨라와 결혼함으로써 프랑스, 잉글랜드,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에 산재한 그의 영지는 유럽 대륙 곳곳에 이해관계를 갖게 된다. 이것이 실체화되는 과정으로서 교황령 회복을 위해 이탈리아 지역을 통과하며 벌이는 전쟁의 양상에서 드러나는 데, 경로의 도처에서 이해관계자들과 마주치게 되고, 분명 적대적 전쟁이지만 혈연으로 맺어진 영주의 지역을 지나갈 때면 상호 양해 아래 공격 없이 그저 통과한다거나, 어제의 우호관계가 돌연 상대의 이해관계의 변화로 인해 배신을 당하는 낭패를 당하는 등 그야말로 정상적 전쟁이라 할 수 없는 혼전의 양태를 드러낸다.
게다가 교황은 이를 자기 권력의 보호를 위한 대리전으로 삼음으로써 그 혼전의 양상은 더욱 복잡해진다. 교황파(그 속에서도 또 여러 분파들), 국왕파(잉글랜드 국왕파 프랑스 국왕파 등), 그리고 개별 영주의 이해득실의 판단에 따른 내편과 네편의 규정 불가능성은 더욱 전쟁을 난감하게 바라보게 한다. 이러한 난맥상이 역사의 유래가 없는 100년 전쟁을 만들어내고 확대시킨다. 이에 대한 피해는 누가 안아야 할까. 고스란히 피지배자들인 농민과 상인 등 평민들이다. 더구나 공식 전쟁이 아닌 지역약탈 전쟁도 쉴 새 없이 발생되는데, 이것의 토대인 당대 기사귀족계급의 정신인 기사도 정신이라는 허무맹랑하고 모순으로 점철된 폭력성과 예절이 결합된 기이함의 발로가 중대하게 작용한다.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공식 전쟁이 일시적 휴전 상태에 들어가면 병력은 갑자기 주 수입원인 약탈수입이 사라진다. 이를 벌충하기 위해 약탈을 지속하는 소위 산적단이라는 집단이다. 이것의 세력이 어찌나 강력한지, 그 수장들이 귀족의 이름을 하고 역사 기록에 남아있는 이유이다. 전쟁으로 이미 손상이 극심한 지역의 살아남은 곳을 이들이 다시금 유린한다. 이들 폭력성의 궁극적 배경과 관련해서 눈에 띄게 유치하고 잔인했던 중세 행동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억제되지 못한 충동으로 인한 두드러진 무능력”의 원천을 주목하게 된다.
인구의 절반이 21세 미만이었고, 3분의 1인 14세 미만이었다는 사실이다. 각종의 전쟁 지휘자들과 기사들이 대개 20세 전후였다는 사실에서 전장의 잔인한 야수성이 그들의 격렬한 충동의 배설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강간, 약탈, 파괴, 방화, 살인. 한 세기 내내 인구를 절멸하다시피 생명을 반복적으로 습격한 흑사병과 이러한 참혹한 야만적 전쟁은 서로 지옥의 형상을 더욱 재촉했을 것이다. 넘쳐나는 시체들과 악화된 생활환경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원인을 모호하게 하며 삶을 더욱 황폐시켰을 것이다. 중세의 심리란 어쩌면 성장하지 못한 유아성 탈피에 실패한 시대성의 한계였는지도 모른다. 교회를 위시한 국왕과 귀족 지배세력의 총체적 부패와 타락이라는 정신적 부패의 기반위에 전염병과 전쟁으로 넘쳐나는 시체와 굶주림은 끊임없이 서로 순환하며 그 부정성의 끝으로 치달았다.
3. 파괴되는 인간의 삶 - 성숙하지 못한 시민 의식
앞서 언급했듯 프랑스 국왕 필리프4세와 교황 보니파시오와의 싸움으로 비롯된 ‘아비뇽 유수(-幽囚, Avignon Papacy)’라고 칭하기도 하는 교황청 이전의 배경도 “어떤 세속 군주에게도 어떠한 형태의 세금도 내지 말라고 금지”하며 국왕의 조세 부과권은 교황 자신의 승인 하에서만 가능하다는 황금 독점의 탐욕이 불러온 결과이다. “권원을 받기 위해서는 모든 피조물은 유일한 거룩한 자인 (자신인)교황에게만 복종하는 것이 필수”라는 이 황당무계(荒唐無稽)한 선언은 프랑스가 지배하고 있던 나폴리와 시칠리아 왕국의 영지가 있던 프랑스 영토 내 아비뇽으로 교황청의 이전을 초래한다. “세입과 모든 통치 조직을 중앙집중화하여 위신과 권력 벌충에 혈안이 되어있던 교황의 무차별적 조세 약취(略取)와 기만적 성물거래 판매 수익, 사면권 판매, 죽어가는 자의 유증 몰수”에 이르기까지 그악한 부에 대한 탐닉이 만들어낸 결과다. 조세 부과를 두고 벌어진 싸움의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의 부담이었다.
“아아, 단 하루도 쉬지 못하는 나는 장차 어떻게 될까? (...) 촌민으로 태어난 바로 그 순간부터 힘들구나. 태어날 때에 고통도 함께 태어나는 구나 (...) 너희 귀족들은 마치 먹이를 찾는 늑대와도 같다. 너희는 지옥에서 울부짖게 될 것이니...“
이렇게 요구되는 것이란 인내, 고통, 체념뿐이었던 농민의 비참은 절정에 이르렀다. 끊임없는 전쟁 자원의 강제부담과 대기근의 굶주림, 흑사병의 반복적 강타. 교회와 귀족 계급의 폭력적 강탈이 그 어떤 제약도 없이 오직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자행되는 사회는 사실 그리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홉스가 말한 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라는 말이 여지없이 들어맞는 사회, 오늘의 독자인 내게는 하나의 폭력을 야기했던 극히 사적 탐욕의 추구를 모두가 개별적으로 자행할 경우, 그것들이 지속적으로 쌓이면 규칙파괴의 압력은 자동적으로 작동된다는 실증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시민이나 농촌 빈민의 저항이 왜 없었겠는가. 1358년 우아즈 강변 생뢰마을에서 시작되어 10만 명에 달하는 농민조직이 교회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으며, 소부르주아와 연합한 이 비(非)귀족 공동전쟁은 기사귀족, 혹은 산적단에 의해 무참하게 도륙되어 한 달 만에 절멸되기도 한다. “젊은 쿠시 영주 앙게랑 7세가 자기 영지의 신사계급의 선두에 나서서 자크들의 절멸을 완수했다.” 이 기록처럼 쿠시의 영주는 자크들이 집결한 클레르몽으로 진격하여 3000명 이상의 농민을 학살하여 저항운동을 압살하는 공(?)을 세우기도 한다. (자크(Jacques)는 귀족계급이 농민을 비하하여 부르던 호칭이다) 사실 이 농민봉기는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며 변화도 전무했다는 점에서 이미 누적된 죽음만을 더 늘렸다는 사가(史家)들의 평처럼 농민저항자들은 스스로의 심리적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했음을 보여줄 뿐이다. 아직 그들의 정신이 숙성되려면 역사의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이리라. 이와 더불어 1358년 삼부회의를 소집하여 국왕의 실정과 추밀관 등 왕의 측근들의 부패 척결을 요구하는 상인들로 이루어진 제3계급의 개혁운동도 있었다. 시민지도자인 마르셀의 도시 파리 성벽의 수호를 통해 국왕을 비롯한 귀족과 성직자 계급의 실정과 부패의 시정에 접근했지만 내부 지지자들에 의해 피살됨으로써 좋은 정부를 향한 꿈도 일장춘몽으로 끝나버린다.
바라바 터크먼은 이에 대해 짧은 논평을 하는데, “프랑스 국민은 군주제를 제한하려는 시도를 지지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시민대중의 인식능력은 시대의 문화를 호령하고 사회구조 깊이 뿌리내린 제도 종교인 기독교 천년 지배가 만들어놓은 수동적 삶을 떠날 수 없었을 게다. 삼부회의 권리가 사라지고, 이들이 결의했던 개혁법 조항들은 페기 되었다. 이로써 프랑스 왕실은 절대왕정 시대를 누리며 더욱 왕권이 방치되는 것을 우리들은 안다. 시민대중은 “모든 문제, 즉 과도한 세금, 부정직한 정부, 변조된 주화, 군사적 패배. 산적단의 도적질, 자국의 영락한 상황 등을 황실의 사악한 추밀관과 비겁한 귀족 탓으로 돌렸으며. 국왕이나 왕세자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이러한 역사들을 읽을 때마다 항상 역사의 발목을 잡는 시민적 몽매성이라는 수구성의 본질을 보는듯해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4. 결어 - 파국의 역사에서 우리가 읽어야 하는 것
이 600년 시차의 먼 거울인 14세기 보증된 미래에 대한 느낌을 전혀 갖지 못했던 고통의 시대로부터 무엇을 볼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시민 개혁운동의 실패의 과정에 주목했는데, 오늘 우리들이 경계해야하는 것은 실정에 대한 개혁을 주도했던 삼부회의 지도자 마르셀이 자신의 지지토대인 시민집단에 의한 피살로 끝났다는 이면의 실체이다. 이러한 살해집단의 심리적 본성은 오늘날 파시즘으로 지칭되는 것의 특징 중 하나인 강자 동일시의 유해한 감정이다. 자신들은 분명 피지배 계급임에도 왕족과 귀족, 성직자 계급의 그 약탈적 폭력성과 진실을 호도하는 은폐된 탐욕에 자신들의 권한을 떠넘기는 노예근성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떠도는 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취약한 본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은 쾌락을 금지하면서 실제로는 단념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교회가 그 금지를 파열시키는 주체였기에. 금전과 소유에 대해서라면 14세기보다 더 관심을 쏟았던 시대가 없었으며, 이른바 육(肉)에 대한 관심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또한 타락의 극한 지점까지 치달은 그들만의 폐쇄된 카르텔을 형성하여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서로 결탁하여 사회를 밑바닥까지 좀먹었던 중세 교회는 오늘의 한국 개신교마피아나, 사법카르텔, 언론 카르텔 등 기득권으로 결탁한 세력처럼 이 사회가 오랜시간 축적한 민주주의 제도와 관행들을 무너뜨리는 중대한 악성 요인의 실체를 보여준다. 혼인과 동맹과 이해거래로 혼란스럽게 엮인 14세기 유럽의 귀족들이 보인 양태는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 결과 세계의 파국을 만들어내는 대표적 원인임을 증거 한다. 혈연과 이해로 얽힌 관계에는 정의(正義)의 윤리가 들어서지 못한다. 즉 규칙과 질서를 무력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러한 세계에서 대중의 삶을 실종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침몰을 맞이하게 될 때, 중세의 사람들처럼 아마겟돈이라는 최후의 전쟁 승리로 새로운 세계가 올 것이라는 망상의 기다림 같은 것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힘겨운 고통의 나락에 젖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프랑스와 잉글랜드, 스페인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공국의 왕과 대영주 귀족들이 그네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벌이는 전쟁이 초래한 것은 무엇인가? 수많은 평민들의 무고한 죽음과 삶의 기반 상실 아닌가. 그런데 그들에게 전쟁을 야기한 지배계급은 어떻게 행동했나? 끊임없는 강탈과 협박, 살해의 위협 아닌가 말이다. 그들 지배계급은 그 오랜 소모적 전쟁에도 불구하고 이 역사의 기록에는 휘황찬란한 궁중과 금을 입힌 산해진미의 성찬 아닌가. 죽을 때까지 쥐어짜여지는 평민과 농민의 한탄이 무얼 말하고 있는가. 전쟁의 폭력을 미화하고 그 야만적 폭력에 환호하는 심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함을 돌아보아야 한다.
이 저술의 제목이 "A Distant Mirror"인 것은 이 야만과 파국의 역사를 오늘의 우리들의 본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읽기를 바라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이 역사 속 인간의 행위는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역사는 결코 반복되지 않지만, 인간은 항상 반복한다.’는 볼테르의 말은 인간행위의 그 반복성에 대한 경고의 선언인 것이다. 역사는 우리들의 거울이다. 우리는 그 거울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하며, 그 발견된 모습으로부터 자기 인식의 지평을 돌보아야 할 것이라 믿는다. 세세하게 서술된 방대한 이 역사저술의 미흡한 감상에 머문 것이 유감스러울 뿐이다. 내 능력의 한계이다. 독자들은 흑사병, 십자군 전쟁, 교회의 타락, 세금, 노역, 노예제(봉건제)등 사회구조의 붕괴와 함께 결혼, 출산, 노동, 성 역할 등 개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재구성하여 역사의 시간이라는 흐름 속에 인간의 심리와 정치적 긴장을 극적으로 직조해낸 이 저술로부터 무한한 영감과 반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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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터크먼 #먼거울#바바라터크먼 #원더박스 #북스타그램 ‘파국의 14세기 흑사병, 백년전쟁, 그리고 움트는 혁명’ 나는 역사에 약하다. 애국심을 쥐어 짜내서 국사는 성실하게 공부했지만, 세계사에 대해서는 솔직히 관심도 없었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원더박스의 ‘팀 터크먼’ 서평단의 기회는 놓칠 수 없는 책이었다. 1부 가제본이 집에 배달 되어 왔는데 1부만 해도 6백페이지에 달하는 두께 ㅎㅎ…… 하지만!!! 저자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잠시 광고를 해보자면, 퓰리처상 2회 수상 작가 전미도서상 수상작 15개국 이상 언어로 번역 중세 유럽사 최고의 스테디셀러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 14세기 유럽은 그야말로 대혼란의 시대였다. 이를 배경으로 하는 문학 작품도 상당하다. 누구나 상식으로 알고 있는 ‘흑사병’으로 인구 절반이 목숨을 잃었고, 백년 전쟁과 십자군 전쟁으로 유럽 대륙 전체는 피바람이 부는 격동의 시절이었다. 이렇게 거대한 역사 앞에서는 왕이 어느 나라 왕인지도 헷갈리고, 어느 나라가 어느 나라랑 싸웠다는 건지, 그래서 어떻게 됐다는 것인지~ 그로 인해 세계에 미친 영향이 뭔지 파악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역사 저술가 바바라 터크먼은 실존한 귀족 앙게랑 드 쿠시 7세를 길잡이 삼아 독자에게 등불이 되어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겠다. 1부에서도 앙게랑 드 쿠시 7세는 상당히 뒷부분부터 나온다 껄껄껄) 그는 프랑스에 영지를 두고 잉글랜드 국왕의 딸과 결혼한 독특한 위치에 있던 인물이다. 또한 14세기의 대혼란을 목격한 목격자이기도 하다. 역사서를 읽는데 있어서 길잡이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상당하다. 사실 1부를 읽어나가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흑사병’ 부분이었다. 인구의 절반을 쓸어버린 이 가혹한 현실에 대해 묵묵히 기록한 사람들과, 그 남은 기록을 정리해 책으로 낸 저자의 마음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 그 다음 기억에 남는 부분은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전쟁 부분이었다. 프랑스가 수적으로 우세하여 잉글랜드가 질 것이 뻔한 전쟁에서 난데없이 잉글랜드가 승리하는 장면에서는 누군가가 장난이라도 친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후반부에 14세기 유럽 여성의 지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다. 또한 잉글랜드 국왕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엿보며 대리만족(?)도 느꼈다. 이 책을 정말 한달을 꽉 채워서 조금씩 조금씩 읽어나갔다. 사실 그래서 전체적인 맥락을 많이 망각하게 되기도 했다. 한번만 더 읽으면 14세기가 손에 들어올 것도 같은데!!!!!!!!!!!!! 1부 가제본을 읽고 <먼 거울> 책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책은 그만한 값어치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먼 거울>을 2부까지 읽게 된다면, 얼마나 많은 책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될지 기대가 크다. 가제본을 제공해 주신 원더박스에 감사의 말을 전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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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박스에서 가제본을 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먼 거울 : 파국의 14세기, 흑사병, 백년전쟁, 그리고 움트는 혁명> 바바라 터크먼 / 박중서 / 원더박스 (2026) [원제 : A Distant Mirror(1978)] [My Review MMCCCV / 원더박스 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서른네 번째 리뷰는 20세기 독보적인 역사서술가 '바바라 터크먼'이 쓴 <먼 거울>이다. 그녀를 독보적인 역사서술가로 지칭하는 까닭은 그녀가 평생 쓴 저서의 수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우리 나라에 뒤쳐진 책(번역본)만 다섯 권으로 이 책 <먼 거울>은 그 다섯 번째 책이다. 또한 62년과 71년에 걸쳐 두 차례나 '퓰리쳐 상'을 수상했고, 그 가운데 우리에게 소개된 책이 1차 세계대전 연구서인 <8월의 포성>(The Guns of August)다. 이렇듯 그녀가 집필한 책들은 '역사적 사건'에 포커스를 맞추거나 '특별한 인물'을 집중 조명한 책들이 많다. 이 책 <먼 거울>도 유럽의 중세 1000년의 역사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쿠시 가문'을 집중적으로 쫓아가며 연대기 형식으로 서술하였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먼 거울> 관점 포인트 : 이 책을 처음 받아들고 나면 깜짝 놀랄 것이다. 물론 1000쪽이 훌쩍 넘는 '벽돌책'에 놀라는 것은 너무 식상할 것이다. 정말 놀랄만한 것은 다름 아닌 '책 내용'이다. 읽어도 읽어도 도대체 뭔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다는데 있다. 세계사 책 좀 읽어봤다는 분들도 이 책의 진면목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망원경'과 '현미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게 진짜 힘든 대목이다. 1000쪽이 넘는 책 내용을 '망원경'으로 멀리 내다보고, 또다시 1000쪽이 넘는 책 내용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하는 작업을 번갈아가며 해내야 하는 일이 말이다. 그 요즘 내용이 이 책의 서문에 잘 적혀 있는데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꼭 읽어야할 요점 정리'이므로 반드시 읽은 뒤에 본격적인 독서를 하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책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기 딱 좋으니까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중세 1000년의 역사를 관통한 '한 가문'에 대한 연대기다. 바로 '쿠시 가문' 말이다. 서양인도 아닌 우리에게 너무 생소한 인물이라 몰라도 상관 없다.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그 인물'이 아니라 그 인물이 살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에 살던 '한 가문이 남긴 기록'이었다. 우리 나라로 치면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기록이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터크먼이 굳이 '쿠시 가문의 기록'을 연구대상으로 삼은 까닭은 그 당시를 묘사하고 적어놓은 기록은 많지만, 한 가문에 전해져내려오는 기록물이라면 뭔가 '일관성'과 그로 인해 얻게 되는 '객관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동시대의 여러 기록물을 통해 '다각도'로 접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렇게 되면 각각의 기록이 갖는 '주관적인 판단' 때문에 자칫 너무 혼란스럽고 산만하고 난삽한 역사서술이 될 우려가 있어서 '한 가지로 통일된 시각'이 담긴 기록이 터크만은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선별기준을 잡으니 딱 한 가문이 눈에 들어오더라는 것이다. 바로 '쿠시 가문' 말이다. 이제 그 방대한 기록을 읽을 차례다. 그럼에도 읽다보면 너무 세세하고 개별적인 내용들이 나열되어 있어 '집중'하기 힘든 점이 많았다. 더구나 유럽의 중세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더욱더 그럴 것이다. 솔직히 나도 그런 편이었다. 그럼에도 읽어야 할 이유(!)가 있었기에 꾹 참고 읽어나갔지만 정말 힘들었다. 그렇게 꾹 참고 읽은 책 내용은 앞서 책 제목 옆에 나열된 '부제'의 내용으로 귀결된다. 14세기 중세 유럽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전염병이 대유행했으며, 그로 인해 사회는 매우 혼란했고, 철썩 같이 믿고 있던 종교관(가치관)은 무너져 내렸다. 그 결과는 숙명적으로 엄청난 피를 부르는 혁명이었다. 아니 파멸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내용으로 점철 되어 있다. 그럼 이걸 왜 수많은 사람들이 읽었던 것일까? 다시 제목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먼 거울>. 600여년 전이라는 머나먼 곳에 '지금, 바로 여기,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이 미국에서 첫 출간을 한 해가 1978년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을 위시한 전세계가 냉전이 한창이었고, 20년 간 질질 끌던 베트남전쟁이 막 끝난 시점이었다. 그리고 미국은 이 전쟁에 참전했다가 승리를 하지 못한 비참한 결과를 맞았고 말이다. 미국은 맘대로 끝내지도 못할 전쟁에 참전해서 허우적거렸고, 그로 인해 수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희생을 당하거나 살아돌아와도 전쟁의 상처와 마약에 중독되어 비참한 생을 살아야했고, 파병을 거부하고 투쟁을 했던 젊은이들도 전쟁의 끔찍한 참상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사회는 매우 혼란했고, 그로 인해 '가치관'은 무너져내렸다.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면 승승장구하던 시절은 다 지나고 잔인하고 참혹한 전쟁을 겪고 나니 도대체 어떤 가치관으로 삶을 살아가야할지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그때 미국 사회에 이 책 <먼 거울>이 출간되었다. 머나먼 옛날이야기 속에서 뭔가 발견을 한 것이다. 그 당시 중세인들도 참으로 끔찍한 경험을 하며 살고 있었구나.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어떻게 살아갔을까? <먼 거울>을 보면서 미국 사회는 성찰할 수 있는 뭔가를 느낀 것이다. 비단 미국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전쟁의 광기'로 물들었던 20세기 서구사회를 '거울'을 들여다보는 효과를 톡톡히 봤던 것이다. 그리고 그 비참하고 열악함 속에서도 '중세인'들은 슬기롭게 헤쳐나가고 살아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엿봤던 것이다. 나가는 글 : 개인적으로는 끔찍한 경험을 극복하고 살아갈 용기를 얻는 '인간의 의지'가 대단하다고 느끼기 이전에 이 책을 '완독'한 독자들이 그토록 많다는 것에 훨씬 더 대단하다고 느꼈다. 현대인에게는 너무 낯선 '중세인들의 삶'을 핀셋으로 집어낼 수 있을 정도로 낱낱이 서술하고 있는데 어쩌란 말인가? 더구나 동양인 독자에게는 '서양 중세인의 일상'은 말로 설명한다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날것'이 아니라는 게 더 문제였다. 21세기 현대인이 읽기에는 너무 비현실적인 내용이기도 했고, 지금과 비교하면 '비윤리적인 내용'도 많아서 읽기에 거슬리는 내용도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중반 넘어서 다루는 '끔찍한 전쟁의 공포와 사선을 넘나드는 죽음(전염병)의 공포'와 맞닥뜨릴 때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는 '빌드 업'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왜 이 책 <먼 거울>을 읽어야 할까? 단순히 인문학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면 다른 책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지혜'를 배울 수 있어야 할텐데, 그건 바로 '비관주의에서 극복하는 힘'이다. 현대인들은 '끈기'가 부족하다. 이 책을 읽어라. 완독을 목표하라. '끈기'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이 무엇인지 톡톡히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현대인들은 '체념'이 빠르다. 비관주의 때문에 체념에 빠르게 도달하는 것이다. 무엇인가 현실에서 얻을 이익이 눈앞에 보이지 않기에 더욱 빠르게 체념하고 만다. 그런데 그렇게 비관하고 체념하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다. 책 속에서 중세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들여다보면 현대인은 감히 살아남을 자신을 잃어버릴 것이다. 더구나 중세인이 유일하게 버틸 수 있었던 생존희망은 '믿음'이었다. 그런데 전쟁과 전염병 앞에 '믿음'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한 중세인들이 어떤 절망감을 느꼈겠냔 말이다. 비관하고 체념했을 것이다. 그런데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불굴의 의지'로 홀로서기를 하며 꿋꿋하게 살아남았다. 그 지혜를 엿봐야 한다. 100년이 훌쩍 넘도록 지긋지긋하게 싸운 '백년전쟁'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다. 유럽 전역 인구의 3/4을 죽음으로 내몬 '흑사병'에서도 생존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초강대국 미군이 참전한 '베트남 전쟁'에서 살아돌아와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이들의 공통점을 무엇으로 봐야하는가? 이 책 <먼 거울>에서는 '인간의 의지'를 꼽았다. 21세기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에게도 '같은 결론'인가? 청년들의 실업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국가가 먹여 살려주는 것은 '공산주의'라서 싫다고 한다. 청년들은 기성세대들처럼 부지런히 성실하게 살면 먹고 살 수 있는 부를 얻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허나 세상은 AI 인공지능로봇을 내놓으려 한다. 인간을 '대신'해서 힘든 일을 해주니 좋은 일이 많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에 청년들이 비관주의에 빠지고 체념을 빨리 습득한다. 과연 이 책 <먼 거울>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지혜가 있을까? 우리 청년들에게 놓인 현실은 전쟁과 전염병의 주는 공포가 아니다. 일자리를 잃어버리고 뺏겨버려 뼛속까지 추운 겨울, 아주 기나긴 겨울의 맹추위가 앞을 가로막고 있을 거라는 비관주의가 팽배하다. 이를 이겨낼 지혜를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을까? AI 인공지능로봇은 '넘사벽'이라서 '인간의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피할 수 없는 공포라면 즐길 줄 아는 용기를 내서 위기를 극복해보는 것으로 말이다. 중세인들도 전쟁의 공포와 죽음의 공포를 피할 수 없으니 곁에다 '킵'해두고 살아남을 때까지 받아들였다. 청년실업 문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전세계가 함께 겪고 있는 현실문제이기도 하다. AI 인공지능로봇이 다 빼앗아갈 것 같다고해서 개발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AI 인공지능을 이길 생각이 아닌 '이용'해서 '유용'하게 써먹을 발상의 전환도 필요할 것이다. AI와 싸우지 말고 AI와 협업해서 더 잘하는 재능을 살려보는 것은 어떤가? 이 책이 출간된 지 꽤 오래 되었기 때문에 '책 속의 내용'에 감동하는 것만으로 이 책의 '쓸모'를 찾아내기는 힘들 것이다. 딴에는 너무 먼 거울이라 비춰진 모습도 너무 작게 보여 '쓸모'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땐 현미경이 아닌 망원경이 필요할 것이다. 저멀리 먼 거울에 비췬 내 모습을 보려는 게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비전(지혜)'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리뷰 #에세이 #먼거울 #바바라터크먼 #원더박스 #현미경과망원경 #중세1000년 #과거에서얻은지혜 #퓰리쳐상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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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200페이지가 넘는 진짜 벽돌 책 중에 벽돌 책. <먼 거울>의 1부를 가제본으로 읽어보았다. 잘 몰랐는데 작가는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고, 20세기 최고의 역사 스토리텔러로 알려져 있었다. 이미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네덜란드어 등 15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이번에 한국어판이 새롭게 출간되었다. 우리나라나 동아시아 역사면 몰라도 14세기 유럽의 역사를 담은 책이니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소설은 아니었지만 실존 인물인 앙게랑 드 쿠시 7세를 바탕으로 이 혼란스러운 시대를 말하고 있어서 조금 딱딱한 소설? 같은 느낌이었다. 여기서 나오는 앙게랑은 실존 인물이지만 <먼 거울>을 위해 태어났다고 할 수 있을 만큼 14세기 유럽을 설명하기에 완벽한 인물이었다. 프랑스에 큰 영지를 가지고 있던 그는 잉글랜드 국왕의 딸인 이사벨라와 결혼한다. 잉글랜드 국왕의 딸과 결혼을 했기 때문에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백년전쟁에서도 처음에는 중립을 고수했다. 그리고 장인이 죽고 난 뒤에야 백년전쟁에 참여하였다. “프랑스와 잉글랜드 간의 전쟁 재개로 상황이 흘러가면서, 앙게랑은 잉글랜드인과의 결혼으로 인해 끄트머리가 둘로 갈라진 충성의 날 끝에 서게 되었다.” 이 문장은 장인과 국가 사이에서 고뇌하는 앙게랑의 모습을 잘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앙게랑은 이후에 십자군 전쟁까지 참여했으니, 그야말로 14세기 중요한 역사적인 사건에 모두 그가 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하지만 이 책이 앙게랑의 이야기만을 얘기하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앙게랑은 그저 14세기 유럽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인물일 뿐이고, 작가는 그를 통해 혼란스러웠던 격변의 14세기를 들여다보고자 했던 것이다. ‘먼 거울’ 책의 제목이 왜 먼 거울일까 생각해 보았다. 책에 나온 흑사병과 백년전쟁, 십자군 전쟁이 지금 우리 현실에서 일어날 리는 없겠지만 그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인간 사회의 본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먼 과거를 되돌아보면 신기하게도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걱정과 고민의 해답이 보이기도 한다. 마치 거울처럼 비슷한, 혹은 똑같은 상황에 대입해 보며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지금 현재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된다. |
무너진 잿더미 속에서도 기어코 찬란한 르네상스를 피워낸 인류의 기록
우리는 종종 뉴스를 가득 채우는 전 지구적 위기 앞에서 깊은 무력감을 느끼곤 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의 기억, 곳곳에서 발발하는 크고 작은 전쟁, 그리고 기후 위기와 경제적 불확실성까지. 바야흐로 혼돈의 시대라 부를 만합니다. 하지만 역사는 시대를 건너뛰어 우리에게 조용한 위로와 단단한 통찰을 건넵니다. 인류는 이미 이보다 더 캄캄하고 절망적인 터널을 통과해 온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탁월한 역사가 바바라 터크먼의 역작, 『먼 거울(A Distant Mirror)』은 바로 그 가장 어두웠던 시대, 14세기 유럽이 겪었던 거대한 시련을 탐구하는 책입니다. 저자는 14세기의 참상을 단순히 과거의 비극으로 남겨두지 않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스스로를 비춰볼 수 있는 명징한 '거울'로 제시합니다. 극심한 기후 변화와 팬데믹, 그리고 기존 사회 시스템의 붕괴까지. 14세기가 지나온 고단한 궤적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놀랍게도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시대적 과제들이 고스란히 겹쳐 보입니다.
1. 14세기, 인류가 마주했던 다발적인 위기의 시대 바바라 터크먼이 14세기를 주목한 이유는 이 시기가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복합적인 위기가 겹친 세기였기 때문입니다. 이전 시대까지 유럽은 농업 생산력의 증대와 인구 증가를 바탕으로 꽤 안정적인 중세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4세기에 접어들며 영원할 것 같았던 일상의 뼈대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기사도와 영주제로 대표되는 봉건 체제는 극심한 모순을 드러냈고, 정신적 지주였던 교회의 권위는 서서히 힘을 잃어갔습니다. 이 책은 '앙게랑 7세 드 쿠시'라는 한 귀족의 일대기를 중심축으로 삼아, 화려한 귀족 사회의 이면에 숨겨진 민중의 척박한 현실을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복원해 냅니다. 책장을 넘길수록 독자들은 거대한 시련 앞에서 흔들리면서도 끝내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인간 군상의 씁쓸하고도 경이로운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2.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재난과 제도의 한계 14세기의 붕괴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에서 출발했습니다. 중세 온난기가 끝나고 이른바 '소빙하기'가 찾아오면서 유럽 전역에 기상이변이 속출했습니다. 1315년경부터 시작된 대기근은 수많은 사람을 굶주림으로 몰아넣으며 유럽 인구의 기초 체력을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취약해진 틈을 타고 인류 역사상 가장 널리 알려진 팬데믹, '흑사병(페스트)'이 덮칩니다. 자연의 거대한 위력 앞에서 인간이 쌓아 올린 사회적 신뢰와 시스템이 얼마나 쉽게 허물어질 수 있는지, 책은 대단히 사실적이고 담백한 묘사로 증언합니다. 여기에 더해 영토와 권력을 둘러싼 '백년전쟁'은 평범한 농민들의 터전을 앗아갔고, 교황청마저 아비뇽과 로마로 나뉘며 대중은 기존의 종교와 권위 체제에 깊은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
3. 위기가 잉태한 새로운 문명, 그리고 2부를 향한 갈망 이번에 제가 먼저 받아본 원더박스의 가제본은 전체의 절반인 '제1부'까지만을 수록하고 있었습니다. 1부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낡고 부조리한 질서가 한계에 달해 서서히 해체되는 그 무거운 시대적 공기가 책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중세의 붕괴는 분명 당대 사람들에게는 가혹한 시련이었으나, 역사의 큰 흐름에서 볼 때 이는 완전히 새로운 도약을 위한 필연적인 발판이기도 했습니다. 흑사병으로 인한 급격한 인구 감소는 살아남은 노동자들의 사회적 가치를 상승시켰고, 이는 견고했던 농노제를 무너뜨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맹목적인 믿음이 흔들린 자리에는 '인간' 그 자체를 탐구하는 이성의 빛이 스며들었습니다. 낡은 틀이 무너진 바로 그 틈새에서 찬란한 '르네상스'가 피어났으며, 무너진 상권을 극복하기 위해 바다로 나아간 발걸음은 '대항해시대'라는 역사의 지평을 열었습니다. 극심한 혼란이 역설적으로 낡은 시스템을 해체하고 문명의 발전을 이끌어낸 셈입니다. 그렇기에 1부 가제본이 남긴 여운은 아직 제 손에 닿지 않은 '제2부'의 서사, 나아가 이 완전한 책을 온전히 소장하고 싶다는 강렬한 지적 호기심으로 이어집니다. 무너진 잿더미 위에서 인류가 어떻게 일상을 복구하고 새로운 시대의 씨앗을 피워내는지, 그 경이로운 회복의 과정을 어서 완간된 정식 도서를 통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집니다.
4. 거울에 비친 우리의 현재, 내일을 준비하는 지혜 바바라 터크먼이 건네는 이 '먼 거울'은 현대인들에게 단단한 나침반이 되어줍니다. 인류는 지난 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고도 유엔(UN)이라는 새로운 연대와 세계화의 시대를 구축해 냈습니다. 체제의 모순이 누적되어 발생하는 균열은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기 위한 전환점입니다. 재난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어떤 희망을 심고 다음 문명을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 그것은 결국 그 시대를 묵묵히 견뎌내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몫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차분하게 일러줍니다. 마치며 : 서재에 반드시 꽂아두어야 할 역사적 나침반 『먼 거울』은 단순한 중세 역사서를 넘어, 복잡하고 불확실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위로와 통찰을 주는 텍스트입니다. 반복되는 위기 속에서 불안감을 느끼고 계신 분들,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과 생존의 지혜를 확인하고 싶으신 모든 분들께 이 위대한 저작의 일독을, 그리고 소장을 강력히 권해 드립니다. 14세기의 잿더미 속에서 인류가 르네상스의 아침을 맞이했듯, 이 두꺼운 책장을 덮고 나면 우리의 내일을 마주할 단단한 용기를 얻게 되실 것입니다.
#태그 #먼거울 #바바라터크먼 #원더박스 #역사책추천 #세계사 #중세유럽 #흑사병 #백년전쟁 #르네상스 #인문교양 #필독서 #도서리뷰 "본 서평은 원더박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제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machiaho)를 방문하시면, 본 도서의 리뷰 외에도 과학, 역사, 철학, 고전을 아우르는 저의 또 다른 다양한 독서 기록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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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팀터크먼 중세 유럽에 불어닥친 지옥. 전쟁과 전염병, 그 시대를 휩쓴 거대한 돌풍 속에서 인간 본질의 민낯을 마주한다. 📔『먼 거울』_바바라 터크먼 퓰리처상 수상자 바바라 터크먼의 유일한 중세 역사서. 전쟁과 전염병으로 쑥대밭이 된 14세기, 그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 인간들의 삶과 절망을 섬세히 보여준다. 🪞왜 책의 이름은 먼 거울일까? 말 그대로 ‘먼 거울’이라 생각하면 될 듯하다. 14세기는 아주 먼 과거지만, 그 시대에 내몰린 인간의 모습은 지금도 낯설지 않다. 전쟁과 전염병, 권력욕과 탐욕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질은 언제든 우리의 현실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극단의 시대를 거울 삼아 오늘의 우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 💭 중세의 실존 인물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책이기에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오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특히 종교를 기둥 삼아 발전한 유럽의 세계관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종교의 목적이 전치되고 타락하는 모습, 명망 있던 가문의 몰락, 철저한 계급 사회까지. 이 모든 것을 한 인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폭력적이고 무겁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비현실적이고 비인간적인 사회다. 한 권력자의 욕망과 실수는 나라를 뒤흔들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백성들에게 향한다. 시대는 언제나 사람의 편이지 않기에 절망은 끝도 없이 몰아치고 사람들은 끝도 없이 쓰러진다. 사치의 끝에는 백성들의 몸부림과 가난이 남는다. 이 책은 그 과정과 영향을 낱낱이 보여주기에, 그 잔인함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와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워진다. 📋 앞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당장 거창하고 의로운 몸가짐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답게 살자는 당연한 본질을 마주하는 것. 그것에서부터 이 책의 의미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먼 거울 속에서 오늘을 자신을 한 번쯤 비춰보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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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거울 서평 바바라 터크먼의 <먼 거울>은 14세기 유럽의 역사가 중심이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오히려 역사적 사실보다도 마치 어제 뉴스에서 본 듯한 기시감이었다. 처음에는 흑사병과 백년전쟁, 교황권의 분열 같은 굵직한 사건들을 쉽게 정리할 수 있겠구나 싶었지만 신기하게도 600여 년 전 사람들이 살아가던 방식과 고민이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인 '먼 거울'은 단순히 먼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저자 바바라 터크먼은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14세기 유럽을 복원하지만, 연대기식 역사 서술에 머무르지 않는다. 실존 인물인 앙게랑 드 쿠시 7세를 중심축으로 전쟁과 정치, 종교, 귀족 사회와 민중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처럼 풀어낸다. 덕분에 푸아티에 전투나 흑사병, 아비뇽 유수와 같은 역사적 사건들이 시험을 위해 외워야 하는 연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들의 선택과 갈등으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는 흑사병 이후 노동력을 둘러싼 사회의 변화가 인상적이었다. 전염병으로 노동자가 부족해지자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법으로 막고, 기존 임금을 유지하도록 강제하며, 심지어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직장을 옮기는 일까지 처벌했다는 기록은 놀라웠다. 노동자의 권리보다 사회 질서와 경제 안정을 우선하려는 국가의 모습은 시대가 달라져도 반복되는 현실처럼 느껴졌다. 또한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보다 구걸을 선택한 사람들'을 비난하는 기록 역시 오늘날 복지와 노동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대는 달라도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1349년 잉글랜드에서 모든 사람에게 1347년과 똑같은 봉급을 받고 일하도록 의무화하는 법령을 공표했다. 일하기를 거부하는 경우를 대비해 처벌도 마련되었고, 고용자가 더 높은 봉급을 찾아 현재 고용 장소를 떠나는 것이나 고용주가 더 높은 봉급을 제안하는 것 역시 처벌 대상이었다. (…) 여기서는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는 노동자만이 아니라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보다는 차라리 게으르게 구걸하는 편을” 선택한 사람들을 특히 비판했다. 273쪽 흑사병 이후 죄의식을 씻기 위해 수많은 순례자가 로마로 몰려들었다는 부분도 기억에 남는데 실제 희년마다 전대사를 받으려고 신자들이 성지를 찾아다니는 모습이 바로 떠올라서 ‘예나 지금이나’라는 표현이 바로 떠올랐다. 다만 당시에는 신앙과 희망을 찾아 수천 명이 이동했지만, 정작 도시에는 식량과 자원이 부족했고 폐허가 된 성당들이 남아 있었다는 부분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런가하면 현실과 다른 기록된 내용만으로는 농민들의 삶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까닭도 등장한다. 기록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역사란 결국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역사가 완전한 진실이라기보다 남겨진 흔적을 통해 재구성되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특히 다시 찾아온 제2차 페스트는 사람들에게 더 큰 공포를 느끼게 하여 그야말로 ‘흉흉한 사회 분위기’가 야기할 수 있는 여러가지 의심과 허황된 일련의 문제들은 최근 우리가 경험했던 감염병의 기억과도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전염병은 끝났지만 사회가 곧바로 정상으로 돌아오지는 않았고, 사람들은 불안과 갈등을 안은 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교회 통합 시도나 정치적 개혁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가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이해관계와 권력 다툼 때문에 번번이 좌절되는 모습은 오늘날 국제정치나 사회 개혁을 떠올리게 한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협력보다 경쟁이 앞서고, 공동의 이익보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우선되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익숙했다.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인간 사회의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그래서 과거를 이해하는 일은 결국 현재를 이해하는 일이라는 가정하에 중세의 주요 사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서인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거울처럼 다가왔다. #먼거울 #바바라터크먼 @wonderbox_pu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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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처음에 책 소개를 봤을 때 "먼 거울"이라는 게 무슨 뜻일까 고민했다. 그리고 이 주인공으로 선택된 프랑스의 기사이자 영국왕의 사위이며 위대한 쿠시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인 앙게랑 드 쿠시 7세의 일생이 어떤 의미일지 생각했다. 마치 펜데믹을 보는 듯한 흑사병의 맹위... 개인과 국가의 이익과 이념을 위해 오늘도 피 흘리는 나라들과 똑 닮은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인간은 항상 반복된다." 무수한 시간이 지났지만 같은 모습을 비추는 먼 거울. 저자는 주인공의 발자취와 함께 인간의 본성을 서술한다. 기사도와 영웅, 야만과 폭력, 종교와 과학이 공존했던 그 때의 기록이 궁금하다면 이 엄청난 기록물에 도전해보자. #먼거울 #바바라터크만 #원더박스 #앙게랑드쿠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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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서평을 썼습니다. 흔히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로마는 유럽 대부분과 중동,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지배하면서 유럽 문명의 뿌리를 형성하였습니다. 정치, 경제, 예술, 문화, 건축, 법률, 군사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발전을 이루었지만 동과 서로 나눠진 이후 서로마 제국은 서서히 몰락하면서 결국 게르만족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이후 천년 가까운 시간 동안 중세가 시작되었네요. 중세는 암흑의 시대로 알려졌지만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전 못지 않은 발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고대와 르네상스를 잇는 중세가 재조명을 받으면서 실제로 중세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궁금하였네요. 이번에 읽은 '먼 거울' 은 중세에 실존했던 인물인 쿠쉬를 중심으로 중세를 다각도로 살펴보는, 역사에 기반한 책입니다. 중세를 뒤흔든 대표적인 사건으로 흑사병을 들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쳤던 것처럼 흑사병 역시 중앙아시아에서 시작해 빠른 속도로 유럽에 전파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네요. 지금과는 달리 의학이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병의 원인을 알 수 없었는데 교회가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만큼 신의 분노나 저주로 생각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한번 흑사병이 퍼지면 도시 전체를 마비시킬 정도여서 흑사병이 지나간 자리에는 살아남은 생명체가 거의 없었네요. 책에서 표현한대로 당시 사람들은 이것이야말로 세상의 종말이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동력이 사라지면서 살아남은 농민이나 상인, 장인들은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으니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로마 황제는 무척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지만 제국이 무너진 이후에는 크고 작은 나라들이 나타나 경쟁을 벌이면서 이전보다는 왕의 권위가 훨씬 줄어들었네요. 이러한 빈자리를 채운 것은 교회였습니다. 기독교는 처음에 박해를 받았으나 로마 유일의 종교로 공인을 받으면서 제국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고, 나중에는 국가가 하던 역할의 상당 부분도 교회가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권력이 강해질수록 서서히 부패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지 책에 언급된 내용을 보면 교회의 부패가 상당히 심각하였네요. 교황을 정점으로 한 위계질서에 따라 가격을 달리 매겨 성직을 사고 팔았으며, 일반 사람들에게서는 죄를 없애준다는 면벌부로 막대한 이득을 얻었습니다. 재물 뿐만 아니라 성적으로도 문제가 있어서 많은 성직자들이 스캔들에 연루되었습니다. 급기야는 여러명의 교황이 나타나 각자가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심각하였을지 상상이 잘 되지 않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국가 사이에 전쟁은 자주 일어났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이기도 한 쿠쉬는 프랑스에 영지가 있으면서 잉글랜드 국왕의 사위입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누구에게 충성을 바치느냐가 중요했고, 지역별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영주들이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동맹을 맺기도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던 만큼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는 일도 흔했네요. 이 책의 내용은 어느 한 나라가 중심이라기 보다는 전반적으로 시대를 조망하고 있기 때문에 잉글랜드와 프랑스 모두에 발을 걸치면서 잉글랜드와 싸우기도 했고 프랑스와 싸우기도 했던 쿠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게 잘 어울리는것 같아요. 처음 책을 보면서 무척 두껍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거시적인 관점에서 중세를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귀족이나 일반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도 저자의 작가로서의 능력이 더해지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파국의14세기 #흑사병 #백년전쟁 #움트는혁명 #먼거울 #바바라터크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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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라 터크먼이라는 역사 스토리텔러는 먼 거울이라는 책의 제목을 접할 독자들이 어떤 선입견으로 이 책을 접근하고 이 책을 읽고 난 후 얻길 바라는건 무엇일까? 최근에 보기 드물게 두꺼운 이 책을 마주하는 순간 묘한 경쟁심이 든다. 이런 책을 읽은 자와 안 읽은 자. 절대 이 책은 y튜브의 짧은 서평으로 스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과를 나와 세계사에 문외한이 내가 버겁지만 꾸역꾸역 읽게 만드는 저자의 힘의 있다. 이 책, 먼 거울이 비추는 것은 아주 먼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역사를 비추고 있다.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스토리를 풀어가는 힘은 인간이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실수를 여전히 되풀이하는 무능력을 적나라하게 느끼게 한다. 세계는 14세기 중세라 불리던 유럽과 별 다르지 않다. 백신도 없는 전염병들과 , 명분없는 전쟁... 우리가 알아야되는 것은 먼 거울에 비치는 과거와 현재의 역사이다. 역사 매니아뿐 아니라 현재 세계 상황이 답답한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