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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 이 소설은 읽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감정이라는 영역이 유독발달한 인간이라는 종이기에 더더욱 읽지 말아야 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멈추지 않는다. 머릿속이 너무 많은 이야기들로 복잡해져 버렸다.
※다량의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하며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소설에는 몇 종류의 생명체들이 나온다. 이 생명체들을 간략히 이해해야 소설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
①인간 : 지구라는 외계행성에 살았던 멸종한 종으로 크기는 ‘우리’의 손바닥만 한 작은 사이즈다. ‘감정’이라는 영역이 발달하여 환경변화에 민감한 하등 한 종이다. ②우리 : ‘나’ 그리고 ‘선배’가 속하는 우리는 지금 이 행성에 주인으로 살고 있는 고등한 종이다. 특별히 우리라는 종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인간과 생김새는 유사하지만 크기는 훨씬 큰 것으로 보인다. 감정이라는 불필요한 부분이 발달하지 않은 우수한 종이다. ③저니 : 소멸한 행성에서 최근 이주해 온 생명체다. ‘우리’ 또는 ‘인간’과 비슷한 듯 다른 힘없는 외계인의 느낌이다. ④핀 : 실험용 쥐 같은 존재, 아니 ‘같은’이라기보다는 딱 실험용 쥐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건 독자들마다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다양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내가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이해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 또한 소설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 나온 생명체를 정리한 데는 이유가 있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어나가면서 혼란스러웠다. 소설 속 ‘우리 또는 나’는 인간이고, 저니는 외계인이라는 거지? 아니 잠깐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는 거야? 잠깐 그러면 ‘인간’은 뭐고 ‘우리’는 뭐지? 그런데 결국 이 혼란이 소설 ‘종’의 핵심인지도 모르겠다.
첫 몇 페이지를 여러 번 되돌아 다시 읽으며 느꼈던 혼란을 정리하고 나니 다양한 의미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머릿속이 많은 이야기들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저니를 보면서 쓰레기통이나 뒤지고 음식이나 훔쳐먹는다고 생각하는 길 고양이도 떠올랐고, 실험실에서 죽어가는 동물들이 소설에서는 나오는 실험용 동물 ‘인간’과 오버랩되기도 했다.
핀이 실험용으로 이용되는 이유는 감정이 단절되어 있어서 실험에서 일정한 결과치를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단절’ 그 단어가 섬뜩하게 다가오는 대목이었다. 재미있는 건 결국 소설 속 ‘우리’가 인간보다 우등한 이유인 감정의 단절은 실험용 쥐 같은 핀과 같은 요소인 것이다. 우등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오히려 열등한 요소인 것이다.
보통 인간이 멸망하거나 지구나 망가진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문학을 보면 그 문제의 원인이 인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 소설도 지구라는 행성을 망가뜨린 인간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가능성과 희망을 아주 조용히... 이야기하고 있다.
서평의 시작에 내가 했던 말. 망했다. 맞다. 망했다. 생각을 정리할 수 없다. 일단, 다시 한번 더 읽어야겠다. 아니면 여러 번. 나의 호기심과 이해가 완료될 때까지 다시 또 읽어도 지루하지는 않을 것 같아 다행이다. #종 #그늘 #그늘소설책 #그늘중편선 #한국소설
※이 서평은 출판사(그늘)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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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는 후기입니다.) ✖️인간이 멸종한 세계관에서 타자가, 아니 타종(他種)이 바라보는 인간은 어떻게 정의될까? ✖️인간이 사라진 세계에서 여전히 유효한 가치는 무엇일까. 가장 흥미로웠던 파트는 실험보고서. 누군가는 나처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인간 ABCD는 어느 순간부터(p.96) 내가 아는 인간이 아닌 갓 같다는 생각. 책 속의 관찰자 입장으로 사고하는 나를 자각할때, ‘이성이 제거된 존재’와 나를 저울질 해본다. 기분이 이상하다. 나도 어느정도 감정을 지워가며 살아왔던걸까? 좁은 스펙트럼으로 보면 ‘종(species)’은 타인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다시말해 책에서는 ‘행성의 원주민-인간‘이 ‘나-선배’의 관계로도 읽힌다. 불이해에서 오는 다름이라는 격차가 그들의 종을 나눈다. 감정의 거세가 극단의 효율을 추구할 순 있지만 ‘그것이 옳은 방향인가?’에 대해선 다시 생각해봐야한다. 지나치게 마른 감정은 어쩌면 아주 무서운 세상을 불러올 거다. 책을 읽고 그 해결의 실마리는 아주 작은 호기심에서 출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나’가 결국 ‘선배’가 되어 행동하게된 결과에는 그 호기심이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과 다름 없으니까. - 120페이지 남짓되는 분량에 여느 sf와 다르게 방대한 세계관을 자랑하기보단, 미래의 가치를 생각해보게끔 하는 새로운 관점을 조명하는 책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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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너무 감정적이에요." (p.22)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종'은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존재다. 때로는 감정이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과연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감정이 인간을 약하게 만드는지, 아니면 인간답게 만드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책 속에서 인간이 살던 지구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으로 멸망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인간이 실험 대상이 된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가 다른 생명들을 너무도 쉽게 대상화하고, 인간의 기준에서만 바라봐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라는 종을 가장 낯설게 바라보게 만드는 책.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인간이라는 종은 어떤 존재인지 여러모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효율만을 추구하는 존재의 눈에는 이해되지 않는 선택들이, 인간에게는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책 속에서 인간이 살던 지구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으로 멸망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인간이 실험 대상이 된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가 다른 생명들을 너무도 쉽게 대상화하고, 인간의 기준에서만 바라봐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라는 종을 가장 낯설게 바라보게 만드는 책.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인간이라는 종은 어떤 존재인지 여러모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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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그늘)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간이 멸종한 세계에서 인간다움은 어떻게 증명될까? 테이블 위에 『종』을 내려놓고 표지를 한참 바라봤다. 거대한 손과 그 앞에 앉은 작은 사람. 구해 주려는 손인지, 밀어내려는 손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인간이요? 인간은 멸종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인간이 이미 사라졌다고 알려진 세계에 살아 있는 인간이 나타난다. 인간과 다른 종의 충돌을 다룬 장르적 SF일 줄 알았는데 전혀 달랐다. 이 소설이 묻는 것은 누가 더 강한가가 아니라, 누가 다른 존재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가였다. 존재하고 있는데 존재를 의심받고, 말을 하고 있는데 목소리는 도착하지 않는다. 낯선 세계의 이야기인데도 현실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자꾸 겹쳤다. 다수의 의견 뒤에서 조용히 지워진 목소리 같은 것들. 아, 인간이 살아 있는데 인간다움은 먼저 사라진 세계라니…. 『종』 속 차별은 거대한 악인의 얼굴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공동체를 지켜야 한다는 말과 효율적인 선택이라는 설명 속에 숨어 있다. 누군가를 직접 해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른 척하는 순간에도 배제는 계속된다. 중편의 압축된 전개는 이야기의 긴장을 놓치지 않게 한다. 다만 몇몇 존재의 두려움과 선택을 조금 더 오래 보고 싶었다. 마지막 장을 덮고도 세계가 더 이어질 것 같아서 책 가장자리를 몇 번 만졌다. 인간다움은 특별한 능력보다 약한 존재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공존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해도 살아갈 자리를 남겨 두는 일일 테고. 표지 속 작은 사람을 다시 본다. 나는 지금 누구의 손바닥 위에 서 있을까. 내 손 위에는 또 누가 앉아 있을까. #종 #이서도 #그늘중편선 #그늘출판사 #한국소설 #중편소설 #SF소설 #디스토피아소설 #인간다움 #책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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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 이서도, 그늘 🔔 초반부를 읽는 동안 묘한 낯섦과 이질감이 잔뜩 밀려온다. 무심하고 건조한 문장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알고 있던 자연스러운 관계와 세계의 좌표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함을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은 독자에게 세계관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읽어가다 보면 점차 감춰진 단서들을 점점 펼쳐지기 시작한다. 덕분에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인간을 모든 서사의 중심에 놓아두었던 오만한 시선부터 내려놓으며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 작품 속 세계는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인 곳이다. 감정이란 그저 논리적, 이성적 판단을 흐리는 불필요한 오류에 불과하며 타인의 사정이나 고통을 고려하는 일은 시스템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결함쯤으로 취급된다. 주인공이 다루는 생명들은 필요에 따라 입고되고, 관찰된다. 그리고 목적을 다하면 곧 폐기되고 만다. 생명을 오직 표본이나 개체 수로만 다루는 담담한 문장들은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믿는 고등 존재의 조건이, 실은 무감각하고 예측 가능한 반응만 보이는 실험실의 표본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책 전체의 분위기 속에 아이러니로 작동한다. 🔔 소설은 감정을 지닌 존재들의 이기적이고 충동적인 면모를 특별히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환경을 파괴하고 잔혹한 선택을 반복해 온 역사를, 정말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다만 그들에게는 한 가지 기묘한 능력이 있다. 자신의 감각과 마음을 타인에게까지 확장하고 전달하는 능력이다. 내가 느낀 것을 다른 존재와 나누고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생명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무모함을 보인다. 모두가 무심하게 지나쳐 버리는 존재 앞에서 혼자서라도 잠시 멈춰 서게 되는 것. 견고하고 냉정한 세계의 규칙에, 작지만 깊은 균열을 내는 것은 언제나 그 머뭇거림이다. 🪐 타인의 삶을 두고 손쉽게 "이해한다"라고 말하는 일은 때로는 아주 크나큰 오만이 되곤 한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타인의 삶을 내 경험의 틀 안으로 끌어와 함부로 정의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와 전혀 다른 존재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지 모른다. 그러나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외면해서는 안될 것 같다. 그 존재 역시 자신만의 감각과 선택을 지닌 독립된 생명임을 인정하는 일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 중편소설이라는 분량 특성상 독특한 세계관의 레이어가 더 깊게 확장되기 전에 작품이 끝난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그 짧은 길이 덕분에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오히려 더 잘 벼려진 칼날처럼 선명할 수 있는 것 같다. 책을 덮고 나면 책의 제목인 『종』이 생물학적 분류에 쓰이는 종(種)을 뜻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뒤늦게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작은 종(鍾)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문장 자체의 서늘한 분위기와 철학적인 화두를 느낄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 이 책은 그늘(@geuneul_book)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종 #이서도 #그늘 #그늘중편선 #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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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는 도서 제공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선배는 너무 감정적이에요.” -p.22 오로지 실리만을 바라보며 감정은 판단의 장애물일 뿐인 외계의 사회. 모두가 비슷한 표정을 짓는 사회에서 혼자 감정이라는 보색을 지닌 ‘선배’ 선배가 사라졌다. 돌아오지 않는 직장 선배 대신 그의 자리를 정리하다가 발견한 하얀색 노트. ··· 실험보고서? “인간이요? 인간은 멸종됐다고 알고 있는데요.” -p.39 인간의 멸종이라는 설정과 sf라는 장르. 책을 펼치기 전, 인간에 대한 비판을 다룬 책이겠거니하고 멋대로 정의 내렸다. 나의 정의는 완벽히 오답이었다. 이서도 작가님의 『종』은 담담하게 써내려간 인간이라는 ‘종’을 향한 애정이었다. 모두와 달리 ‘선배’는 ‘저니’를 뿌리치지도 무시하지도 않았다. 종종 지나가는 동물들을 보며 미소 짓고, 거울을 보며 표정을 찡그리기도 했다. ‘나‘는 사라진 ‘선배’의 흔적을 쫓으며 자신들과 전혀 다른 ‘종’인 인간을 통해 선배를 닮아간다. 소설을 읽으며 두 가지 질문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1. 감정은 생존을 방해하는 열등한 성질인가? 2. 우리는 다른 존재를 포용할 수 있는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분명하지 않다. 소설 속 인간은 교류 때문에 멸종했지만 그 덕분에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과 ‘선배’를 통해 감정이 열등하지 않다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때로 감정이라는 비효율은 이후에 효율을 만들어내고, 우리에게 동력을 주기도 한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다름을 포용하는 것은 두렵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가 ‘선배’를 받아들였듯, 우리는 조금씩 그 다름의 이유를 헤아리고 포용할 수 있다. 작가님이 전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이성이 강조되며 서로에게 엄격한 요즘, 차가운 외계 행성에서 고요하게 따뜻함을 전하는 『종』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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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제목의 의미를 단순하게 생각했다. '종(鐘)'처럼 인간에게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종(種)'처럼 인간과 다른 존재를 이야기하는 SF일까 궁금했다. 책을 덮고 나니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고 있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인간이 신의 창조물이라는 익숙한 관점을 뒤집는다. 만약 인간 역시 더 높은 존재가 만든 실험체라면 어떨까? 인간이 동물을 실험 대상으로 바라보듯,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관찰당하는 존재일 수 있다는 설정은 SF다운 상상력이 돋보였다. 특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뒤집어 보는 시선은 꽤 흥미로웠다. 인간이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가 믿고 있는 세계는 정말 진실인지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만든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초반에 등장했던 다른 행성 사람들이 지구로 이주해 온다는 설정이 후반으로 갈수록 비중이 줄어든 점이 아쉬웠다. 그 설정만으로도 장편 소설을 만들 만큼 흥미로운 세계관이라고 느꼈는데, 철학적인 메시지에 집중하면서 충분히 확장되지 못한 느낌이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장면은 실험이 끝난 동물을 처리하는 장면이다. 작품의 메시지를 위해 필요한 장면이라는 것은 이해했지만, 동물을 좋아하는 독자로서는 가장 마음이 무거웠던 부분이었다. 인간이 생명을 얼마나 쉽게 대상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지만, 읽는 내내 불편함이 오래 남았다. 이 작품은 명확한 답을 주는 소설이라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소설에 가깝다. '인간은 정말 특별한 존재인가?',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가치들은 어디에서 오는가?' 같은 질문을 독자에게 남긴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세계관을 확장했다면 더욱 인상적인 작품이 되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정 자체는 매우 흥미로웠고, 짧은 분량 안에서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져준 작품이었다. '설정보다 질문이 더 오래 남는 SF.' 이 한 문장이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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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 _이서도
📝 인간이라는 동물은 하등하다. 어려서부터 배운 사실 중에 하나다. 인간을 하등하게 생각하면서 실험하는게 신기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인간다움이라는게 뭘까.. 누군가를 이해한다는건? 여러가지 질문이 생기는 책이었지만 설정만큼 책이 전하려는게 이해되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그늘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작성했습니다 #종 #그늘 #그늘소설책 #그늘중편선 #한국소설 #북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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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우리는 종종 나만의 정답을 손에 쥐고 세상을 본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행동만이 안전한 '정답'이 되고, 그 울타리를 벗어난 타인의 삶은 너무나 쉽게 틀린 것이 되어버린다. 이서도 작가의 《종》을 읽는 동안, 나는 줄곧 타인을 내 멋대로 오답이라 규정하고 눈을 돌려버렸던 닫힌 세계와 마주해야 했다. 작품 속 '선배의 실험 일지'는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의 경계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1차원적인 감각에 갇힌 존재들과 달리, 인간은 나의 감각을 '타인'에게 확장하는 존재다. 소설은 실험실 속 개체들의 기묘한 생존 방식을 보여주며 진화의 미스터리를 던진다. 뛰어난 인지능력으로 권력을 쥐고 아픈 동료를 죽이려 했던 B. 그리고 그 B를 처단하는 대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공존의 규칙을 만들어 그를 품어 안은 A, C, D. 이 보고서 쓴 선배는 왜 죄와 벌의 논리로 B를 단죄하지 않느냐며 괴로워한다. 나 역시 선배와 같은 마음으로 분노한다. 그것이 내가 아는 정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배는 그 실험을 통해 한 가지 본질을 깨닫는다. 인간이란 종과 달리, '우리'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철저히 억누른 채 살아가는 존재들이라는 점을. 효율과 통제, 억압된 감정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눈에, 감정을 확장하고 적대자마저 품어내는 인간의 정서적 메커니즘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대체 감각이란 무엇일까. '저니'를 살렸던 선택처럼, 이 서사의 가장 거대한 반전은 관찰자라 믿었던 '나'의 내면에서 일어난다. 보고, 듣고, 느끼는 감각의 영역을 넘어선 곳. 감정을 누르고 지워왔던 '우리'의 세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에게 의미를 가늠할 수 없는 오답 같았던 존재, 걸음걸이마다 시선에 걸려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었던 그 특이한 생명체인 '인간'을 향해, 마침내 '나'의 감각이 확장된다. "이 지지대를 밟고 올라와도 된다고 전하고 싶었다" 이 묵직한 한 문장은 소설의 모든 세계관을 뒤흔든다. 인간을 풀어준 행위는 단순히 피실험체를 해방한 것이 아니다. '우리'라는 종의 억눌린 굴레를 벗어던지고, 마침내 타인의 세계를 받아들이겠다는 거대하고 감각적인 선언이다. 《종》은 책장을 덮은 후에도 마음속에 묵직하고 서늘한 여운의 종소리를 울린다. 타인을 단죄하고 배제함으로써 얻는 명쾌한 안전지대 대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향해 내 감각을 기꺼이 확장하고 그들을 우리 세계에 '풀어놓을' 용기가 있는지, 소설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이 책 읽을 수록 다르게 느껴진다, #종 #그늘 #그늘소설책 #그늘중편선 #한국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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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소설 속 배경은 지구가 아닌 먼 우주 저편 어딘가에 있는 이름 모를 행성입니다. 하지만 갈 곳 없는 이주민들을 향한 무관심과 효율만을 쫓는 삭막한 세계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정교하고 냉정한 세계를 차분하고 건조한 어조로 관찰해 나갑니다. 감정이 배제된 세상 속에서 묘한 긴장감을 따라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실종된 '선배'와의 과거 기억과 마주하게 됩니다. 특히 선배와의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을 통해 그 행성에 존재하는 이들의 실상과 관계가 꼬리를 물고 의문으로 이어지는 지점이 소설의 가장 독보적인 묘미입니다. 일부 내용을 알고 봤음에도 작가가 심어둔 촘촘한 서사적 트릭 속에서 마침내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다른 존재를 애완동물처럼 다루던 애니메이션《판타스틱 플래닛》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생명보다 시스템이 먼저인 세계의 쓸쓸한 단면이 날카롭게 와닿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정서가 배제된 삭막한 시스템 속에서, 도리어 무모할 정도로 '정서적 요소'가 높은 존재들이 관계의 단단한 연결고리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작가는 이 기묘한 생태계를 통해, 세상이 아무리 차가워도 사람에겐 여전히 희망이 있고, 결국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일만이 그 삭막함을 버텨내게 만든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주인공과 선배가 만들어낸 작은 균열이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남들과 다른 스스로가 정답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세상 속에서도, 기어코 의문스러운 선택을 내린 그들의 무모한 행동과 흔적이 자꾸만 눈에 밟힙니다. 정답을 내리기보다 질문을 남기는 결말이라, 책을 덮은 뒤에도 자연스레 다시 떠올리게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