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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위복(電話為福) <아무튼, 전화영어>를 읽고 이미 아무튼 시리즈에는 외국어를 주제로 한 『아무튼, 외국어』가 있다. 그러나 단일 과목(?)으로 '영어'에 관한 이야기로는 <아무튼, 전화영어>가 처음이다. 책표지에서 저자명과 책 제목을 번갈아 보며 피식 웃게 된다. ‘보영’과 ‘영어’. 끝말잇기는 아니지만 떼려야 뗄 수 없는 어떤 관계가 생각나서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내게는 이보영 강사와 영어회화가 그러했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영어를 잘 하기 위한 요령 혹은 비법을 공개하는 건가 싶었지만, 글쓴이는 문보영 시인이다. 책날개에서 저자 소개를 보니 십 년간 전화영어를 했고 현재는 영어로 시를 쓰고 있다고 한다. 불현듯 예전에 읽었던 시집 한 권이 떠올라 시인이 낯설진 않다. 당시 시집인지 게임 공략집인지 모를 제목인 『배틀그라운드』를 보자마자 실제로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을 해 보진 않았으나 워낙 유명한 게임인지라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었다. ‘고립된 지역에서 마지막 1인(1팀)이 되기 위해 다른 플레이어들과 경쟁하는 서바이벌 슈팅 게임(출처:네이버 지식백과)’을 모티프로 지은이만의 상상력과 구성력으로 쓰여진 연작시가 다소 난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전장맵은 지금 우리의 현실을 비추고 등장인물들은 그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우리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겠거니 짐작했더랬다. 다시 <아무튼, 전화영어>로 돌아가 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영어를 배우고 익히는 데 다양한 방식이 있기 마련이다. 그가 ‘전화’라는 매체를 선택한 까닭은 아침을 깨우거나 밤을 달래기 위함이다. 깨지 않는 잠과 달아난 잠이 남긴 외로움은 아침형 인간과 거리가 먼 자의 숙명과도 같으리라. 한 발짝 나아가 전화영어 말고 화상영어도 가능하나, 타인의 얼굴을 마주하기가 쉽지 않은 그에게 목소리만 들리는 전화가 안성맞춤이라고 말할 수 있다. 흡사 사람들과 직접 대면하기는 꺼렸으나 편지로 끊임없이 관계맺기를 시도했던 에밀리 디킨슨처럼 말이다. 보통 전화는 혼자서는 성립하지 않는 행위로서 상대방이 전제된다. 그는 전화기 너머의 사람(들)을 ‘수잔(들)’이라고 부른다. 주로 수잔과 영자신문을 낭독하고 기사에 대해 얘기 나누기를 선호한 그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독자에게는 평행우주론에 등장하는 다양한 변종으로 여겨지기도 한) 수잔들에게서 닮은점을 찾아낸다. 바로 여러 직업을 가지며(라고 쓰면서도 거듭 ‘자신의 꿈을 포기했다’라고 읽힌다) 자기와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제3세계 여성들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저자는 수화기를 마치 마이크 쥐듯 들고서 듣기보단 무언가를 계속 말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수잔(앤 무어)의 삶을 인터뷰하기에 이른다. 책을 덮으며 말(언어)이 전화선을 타고 두 사람의 입과 귀에 맴돌며 서로의 생각을 이어주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비록 모(국)어가 아니라서 다루기에 설지만, 저자의 말처럼 오히려 “단순한 진심을 단순한 어휘를 사용해 말하는 게 좋(19쪽)”을 수 있을 테다. 전화(電話)란 통화(通話)이자 대화(對話)이기도 하다. 어느 날은 내가, 또 어느 날은 당신이 상대보다 더 많이 발화하고, 그 이야기가 통할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생길 것이다. 저자 역시 이런 점들을 깨닫고서 ‘영어로 말하고 듣기’보다 ‘전화하기’에 더 몸과 마음을 기울이기로, 그렇게 살아가기로 마음먹지 않았을까. 전화위복(電話為福), 어쩌면 전화를 걸고 또 받음으로써 각자의 삶이 아주 조금씩 나아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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