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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은 대개 피해 면적과 이재민 수, 복구 예산 같은 숫자로 기록된다. 그러나 『재난을 살아내는 중입니다』는 그 숫자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시간을 보여준다. 2025년 영덕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신안리 주민 12명의 증언을 통해, 불이 꺼진 뒤에도 재난은 오랫동안 계속된다는 사실을 들려준다. 산불이 발생한 날에도 주민들은 밥을 먹고 세수를 하며 평범한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사이렌은 울리지 않았고, 누군가는 이웃의 전화와 고함을 듣고서야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행정 기록의 ‘대피’라는 두 글자만으로는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 채 달아나고 가족을 찾아 헤맨 사람들의 밤을 설명할 수 없다. 임시주택과 지원금이 마련되었지만 주민들의 삶이 곧바로 회복된 것도 아니었다. 잠들지 못하고, 불타는 꿈을 꾸고, 혼자 있는 밤을 두려워하는 시간은 복구 항목에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 집뿐 아니라 함께 밥을 먹던 관계와 서로의 안부를 묻던 일상까지 되찾아야 진정한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주민들을 무력한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는다. 이들은 도움을 받으면서도 찾아온 사람들에게 음식을 내어주고, 다시 밭으로 나가 다음 계절에 심을 작물을 이야기한다. 모든 상처를 이겨냈기 때문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제목이 ‘재난을 이겨냈습니다’가 아니라 ‘재난을 살아내는 중입니다’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시민대응단은 여러 달 동안 주민들을 다시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사라진 집과 마을의 기억을 기록했다. 무엇을 해결해 주겠다고 앞세우기보다 “어떻게 지내시느냐”고 묻고 곁에 머물렀다. 뉴스가 떠난 자리에 남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사회가 잊지 않도록 전하는 일 역시 중요한 재난 대응임을 보여준다. 이 책은 영덕 산불에 관한 기록이지만 영덕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기후재난의 시대에 우리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동시에 누군가의 삶을 기억하는 증인이 될 수도 있다. 재난 대응은 불을 끄고 예산을 지급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사람이 다시 자신의 삶과 관계 속으로 돌아갈 때까지 이어져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