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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비평이 아니라 속도 그 자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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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넘게 떠나있다 돌아온 서울은 익숙한 듯 낯선 것뿐이었다. 그래도 매년 휴가를 다녀가서 변해가는 모습을 맛보기는 했다. 그때도 아침 출근길은 따라가기 벅찼다. 바쁘게 걷는다고 걷는데 매번 뒤처지고, 그러다 보니 다른 이들의 걸음을 방해하는 모양이 되곤 했다. 하지만 휴가로 머무는 서울과 서울에 사는 건 아주 다른 일이었다. 소포 하나 받자면 며칠을 애먹어야 했던 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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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넘게 떠나있다 돌아온 서울은 익숙한 듯 낯선 것뿐이었다. 그래도 매년 휴가를 다녀가서 변해가는 모습을 맛보기는 했다. 그때도 아침 출근길은 따라가기 벅찼다. 바쁘게 걷는다고 걷는데 매번 뒤처지고, 그러다 보니 다른 이들의 걸음을 방해하는 모양이 되곤 했다. 하지만 휴가로 머무는 서울과 서울에 사는 건 아주 다른 일이었다.


소포 하나 받자면 며칠을 애먹어야 했던 리야드에도 코로나가 기승을 부면서 배달이 일상이 되었다. 24시간 통행금지 상태에서 배달 아니고는 꼼짝없이 앉아서 굶어야 했기 때문이다. 서울에 돌아오니 물건 주문하고 손에 들어오기까지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한 번은 자려다 문득 생각이 나서 책을 주문하는데, 다음 날 새벽에 배달 된다고 했다. 불과 몇 시간 사이에. 물론 급하게 책을 봐야 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겠으나, 지나치다 싶었다. 거기에 덜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그게 지나치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신간을 살피다 ‘속도 비평’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 그대로 문학작품을 다루는 ‘문학동네’에서 펴낸 책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속도’가 아닌 ‘비평’에 초점을 맞춘 책이 아닐까 싶었다. 이렇게 빨라도 되는 걸까 생각한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그동안 마땅히 읽을만한 책을 찾지 못했던 터라 현장에서 읽을 책 목록 첫 번에 올려놓았다.


“면허시험장에서 국제면허증 만드는데 3분 56초가 걸렸다. 무서울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직원은 여유 있고 친절했으며, 전혀 서두르지 않고 일을 처리했는데 그렇게 걸린 것이다. 하도 궁금해 면허시험장에 물어보니 전산화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기는 해도 업무 처리 절차가 조금씩 간소화되고 효율화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했다.”


기대했던 글로 책을 시작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싶어 서둘러 읽어나갔다.


“식사하고 나서 식사비를 치를 때, 서구에서는 계산서를 갖다 달라고 하고, 가져오면 금액을 확인하고, 카드나 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그걸 종업원이 가져가고 영수증과 거스름돈을 가져오면 그제야 밥 먹는 길고 복잡한 과정이 끝난다. 성질 급한 한국 사람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그들은 음식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생각해서 주문하고, 다양한 절차에 걸리는 시간을 즐기며 신중하게 먹어야 하는, 그 와중에 친한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하면 충분한 시간을 가지는 것이라고 본다.”


글쎄, 그건 알겠고,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게 뭔가 싶어 짜증스러워질 때쯤, 이런 말이 이어진다.


“속도를 비판하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느리게 하자는 게 아니다. 속도가 우리의 피와 살에 얼마나 세세하게 침착되어 있는지 알자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속도가 국내외적으로, 사회적으로, 모든 분야에 걸쳐 얼마나 빨라졌는지 하는 사례를 끝없이 열거한다. 그런데 정작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속도에 대한 비평이라지 않았나. 그러면 속도가 빨라진 이유는 무엇이고, 그게 우리 생활과 사고방식을 어떻게 바꿔놨으며, 그로 인해 얻은 득실은 무엇인지, 그것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뭐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저자는 이런 우매한 독자의 바람에는 초연하게 과거에, 현재에, 강과 산에서, 바다에서 속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열거할 뿐이다.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니라고 생각해 구독 서비스가 아니라 굳이 구매했는데. 책값이 아까워서라도 뭐 하나 건져보겠다고 불을 켜고 읽다가 이런 내용을 찾았다.


“KTX는 물리적으로만 빠른 게 아니라 경제, 산업, 도시 발전과 같이 여러 면으로 퍼진 다층적인 효과를 냈다. 지방 도시에 대한 이미지가 높아지고, 지역 문화 활동이 늘어나며, 부부가 다른 도시에서 일할 수 있게 되고, 지역 균형 발전에 도움이 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동시에 빨대효과로 인해 KTX를 타고 의료 쇼핑, 문화시설을 다니느라 오히려 지방 경제가 망한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쇼핑이나 문화시설 사용을 위해 KTX를 이용하는 비율이 5% 미만이어서 효과가 그리 크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옳거니. 속도가 우리 삶을 바꿔놓았으니 사고방식도 정신세계도 바뀌었을 테고, 그에 대한 저자의 평가가 곧 이어지겠거니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물론 이는 책의 내용과는 무관한 오해로 인한 내 기대, 주제에 맞지 않는 엉뚱한 기대로 인한 실망스러운 결과에 대한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 탓이 아니라는 말이다.


뒤에서 속도와 무관한 사례를 속도에 연결해 비평한 것으로 보이는 글이 눈길을 붙잡았다. (물론 내 기준이다)


“경부고속도로는 계획부터 날림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박 대통령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빨리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려는 방편이었다. 그래서 일단 짓고 나중에 고쳐가면서 쓰기로 한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짓고 보자는 것이다. 개통 1년 만에 보수비가 건설비의 10%에 이르렀고, 개통 10년 후엔 건설비를 초과했다. 오로지 공사 기간을 줄이기 위해 도로 폭을 줄이고 노면을 얇게 하고 중앙분리대나 가로등 같은 안전시설을 거의 갖추지 않은 채 고속도로로서 최소한의 형식만 지켰다. 경부고속도로를 2년 반 만에 완공한 박정희의 속도는 민주적 의견수렴 없이 독재식으로 밀어붙인 결과다.”


세상 이치를 채 깨닫지 못한 젊은이의 글이라면 이해라도 하겠다. 찾아보니 나이도 적지 않은 분이던데, 세상 살 만큼 산 분이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이 분은 집 살 돈 다 모으고 나서 집 사야 하는 걸로 생각하는가? 그러면 좋은 거 누가 모르나? 이 생각대로라면 빚내서 집 살 생각하는 가장은 독재자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겠다.


저자는 이런 말도 인용했다.


“청계고가도로는 박 대통령이 워커힐 편하게 가려고 만들었고, 강변도로는 김포공항 편하게 가기 위해 놓았다.”


하고 싶은 말 하면서 인용이라는 모양으로 한 발 빼기는 했지만 그래도 켕기는지 “지금은 믿기 힘든 얘기들이지만”이라고 토를 달기는 했다. 학자라는 양반이 말이지.


양반이라, 과공비례라니 내가 저자에게 결례나 저지른 건 아닌지 모르겠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b*****3 2026.10.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