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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소장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내게 소장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하나는 읽지 않고 사두는 걸 말하고 다른 하나는 재독을 하기 위해 내치지(?) 않는 걸 뜻한다. 서점에서 간혹, '이건 꼭 소장해야해'하며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책을 사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손에 들어오는 순간 나른한 안도감이 생기면서 그 책을 읽지 않게 된다. 책을 읽지 않으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람! 그래서 나는 소장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또 하나는 재독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다. 재독을 하기에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좋은 책들이 어마하게 많고 내 삶은 그것에 비하면 초라할정도로 짧다. 그래서 나는 재독을 기피하며 정독을 추구한다. 한번 제대로 읽으면 재독의 새록새록보다는 더 강렬한 정수가 마음 속에 생기는 기분이다. 그런 내가 애플북스의 <한국 문학을 권하다 시리즈>를 보면서 처음으로 기존의 굳은 가치관이 얼마나 무색했던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을 좌우명처럼 옆에 끼고 있으면 한국문학을...... 더 나아가 우리 나라의 근,현대사의 솔직한 풍경을 가슴에 담아 두는 기분이다.
이 책은 나도향의 주옥같은 작품 스물 한 편을 알차게 담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지문을 현대어로 고치고 작가가 의도적으로 표현 한 것은 고스란히 보여줬다. 시대 상황을 드러내는 용어도 원문 그대로 살리되 독자에게 생소하다 싶은 어휘는 각주를 달아주는 세심한 배려를 보였다.
기억에 남는 몇 작품을 열거하자면, 일단 <벙어리 삼룡이>를 말하고 싶다. 삼룡이는 선한 마음에 성실하기도 한 하인이지만 불행하게도 벙어리라는 장애때문에 다른 하인들처럼 가정을 꾸려가며 살지를 못한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망나니 같은 주인집 아들의 횡포에 몸이 성할 날이 없다. 주인나리는 자신의 아들을 사람구실 시킬려고 어느 과부댁의 얌전한 처자를 며느리로 받아 결혼을 시켜주지만 아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전보다 더 악랄한 짓을 일삼는다. 자기가 대신 맞으면 좋으련만, 새아씨는 매번 남편의 폭력에 지쳐 간다. 그리고 그럴수록 삼룡이의 마음엔 뭔가 불을 확 당긴 것처럼 뜨거운게 치밀이 오른다. 인간의 순수한 심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화마를 뚫은 순수함의 마지막 평안한 모습은 아직도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아편쟁이 김삼보의 뇌쇄적인 아내인 '안협집'과 그녀를 어떻게든 품에 안아보려는 상남자 '삼돌이'의 욕망의 협주곡인 <뽕>은 제목부터 왠지 야시시하다. 그도 그럴것이 에로영화하면 딱 떠오르는 제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튼, 남녀의 쫓고 쫓기는 행각이 아슬아슬하며 누에가 뽕잎을 먹듯 꾸준히 진행된다. 그리고는 예정된 파국의 결말이 이어지는데, 이 작품과 쌍둥이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또 다른 작품이 바로 <물레방아>다. 여기서도 무능력한 남편 대신 부잣집 늙은이에게 몸과 마음을 주는 여자가 등장한다.
어쩌면 이런 부도덕과 타락은 식민지 시대의 억압된 삶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심리 또는 부작용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에서 극단에 몰리면 과연 당신은 선택은 책의 주인공과 어떻게 다른지, 작가는 냉철하고 예리한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집은 능수능란한 얘기들과 입에 착착 감기는 향긋한 토속어의 잔치를 보는 듯한 책이었다. 외국문학의 강세 속에서 한국문학은 따분하다는 오명으로 자꾸만 멀어졌는데, 이번 기회에 그것이 확실히 착각이었음을 잘 알게 되었다. 벙어리 삼룡이의 투박한 이름처럼 우리문학의 순수한 얼과 기쁨을 맘껏 즐길 수 있던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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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과 신체의 제약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순결한 사랑을 그려낸 작품이다. 삼룡이라는 벙어리 하인의 충직함과 새색시에 대한 연민이 점차 연정으로 발전하는 과정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작품은 일상적 현실의 냉정함과 마지막의 낭만적, 상징적 결말이 긴장감 있게 대비되어 독자에게 강한 여운을 남긴다. 불은 파괴이자 해방의 상징으로서 삼룡의 내적 열정과 사회적 억압에 대한 저항을 동시에 드러낸다. #연말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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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부터 읽고 싶어햇던 [한국문학을 권하다] 시리즈의 [나도향중단편전집]을 읽었다. 나도향작가와 그의 작품 [벙어리 삼룡이]나 [뽕], [물레방아] 등은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이고, 나 역시 오래 전부터 그의 작품들을 접했었다. [벙어리 삼룡이]이 마지막 장면은 내 생애의 중요한 시험에서 마지막 내용이 시험에 나왔던 기억이 난다. 삼룡이가 불길에서 주인집 아씨를 구해내고 죽는 장면을 제시하면서 '이 소설의 제목은?'이라고 묻는 문제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도향 작가의 작품은 직접 책으로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책에는 나도향 작가의 초기 작품부터 24살의 짧은 나이로 단명할 때까지의 작품이 거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1922년 작품부터 순서대로 수록되어 있어서 나도향의 문학이 짧은 시간에 어떻게 성숙해졌는지를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이 책에 처음 실린 작품은 [젊은이의 시절]이라는 작품으로 작가가 1922년 백조라는 동인지를 창간하면서 실은 작품이다. 그리고 그 다음 작품은 백조 2호에 실린 [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이란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초기작품부터 읽으면서 조금은 실망했다. 그의 명성에 비해서 작품의 완성도가 조금 떨어진다고 생각을 했다. 거이 젊은이의 사랑 이야기이거나, 가난으로 인해 힘들어 하는 지식인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런 소설들의 구성이 조금 엉성한 느낌이 나고, 인물 역시 영어 이니셜로 부르기도 하는 조금은 미숙한 묘사로 느껴졌다. 그러다가 점점 그의 작품이 성숙 되어 가더니 중반부에 실린 작품부터는 천재작가의 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주로 죽기 1년 전이 1925년에 쓴 작품들에서 작가의 완숙함이 드러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나도향 작가의 작품들에서는 제일 먼저 그의 뛰어난 묘사력이 눈에 띈다. 주변의 환경, 등장인물의 모습, 주인공의 심리, 식민지의 가난한 현실 등에 대한 묘사들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의 모습이다. 아마 주인공 자신의 자아상이기도 지식인의 모습은 가난하고, 병약하며, 소심하기까지 하다. 한 때 누렸던 부와 지위로 인해 허세만 남았지만 가난한 현실 앞에서 작은 돈에 전전긍긍한다. 그럼에도 자존심으로 인해 조금 있는 돈을 친구들 술값으로 사용하거나 어려운 처지에 빠진 여성을 돕는데 사용한다. [여이발사]란 작품에서는 궁핍함으로 자신의 옷을 전당잡힌 일본 유학생이 여이발사에게 호기를 부리며 남은 돈을 모두 주는 허세를 부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주인공에 대한 묘사는 [피묻은 편지 몇 쪽]과 [지형근]이란 작품 속에서 가장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한다. [피묻은 편지 몇 쪽]에서는 패병에 걸려 죽음의 그림자에 덮혀 있는 주인공이 한 여인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갈등하다가, 그 여인을 포기하는 마음의 변화를 잘 표현하고 있다. 마치 도스트옙스키의 소설의 주인공들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지형근]이란 소설의 주인공은 요즘 말로 하면 '찌질남'이다. 주인공은 한때는 도련님 소리를 듣는 지주의 아들이었으나 가나한 형편으로 인해 강원도의 한 마을로 막노동을 하러 온다. 그리고 그 곳에서 사귄 사람들에게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고, 이화라는 기생을 만나러 가기 위해 친구의 돈까지 훔친다. 마치 홍상수 감독의 영화의 찌질한 남자 주인공들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면서도 연민의 모습과 자조의 모습으로 주인공을 묘사하는 것은 그 주인공의 모습에 나도향 작가 자신의 모습이 담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식민지 시대를 살았을 소심하고 나약한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읽는 내내 기분이 씁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