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협 신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병원에서 초진 외래환자의 평균 진료 시간은 11.8분이라고 한다.(도저히 믿을 수 없다. 나는 의사 앞에서 5분을 넘어본 적이 없다. 심지어 전신마취 수술을 결정할 때도 5분은 안 되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평균치다. 평균치의 함정이 있지 않나. 환자 10명중에 9명이 1분 진료, 1명이 20분 진료를 보면 대부분이 1분의 진료를 보았지만 평균은 3분에 가까우니. 가난한 경제력에 더해 건강보험이 없으며, 삶의 고단함이 묻어 흐르는 행색으로 의사소통이 어려워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정확히 말하기 어려운 환자들만 오는 병원의 의사는 어떻게 진단하고 치료 해야할까.
의사로서는 극한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 현장에서 3년을 일한(물론 군복무 대신) 의사가 있다. 이 의사는 고단함의 무게가 가장 큰 집단의 사람들을 진료하며 그들이 다 꺼내지 못한 고통의 서사를 이해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한 의사 이기병이다. 지금은 폐업한 3년간 외노자들을 진료하는 병원에서 근무한 이 내과 의사는 더없이 인간적이다.
그는 환자들이 가진 몸의 고통을 넘어 그 뒤에 있는 마음의 고통에서 비롯된 삶의 고통을 더 이해할 수 없어 안타까워했고, 현대 의학의 분절적이면서도 전문화된 생의학의 관점에 더해 자본주의와 결합한 의학의 맹점을 자신의 노동 현장에서 겪은 경험을 통해 겸손하게 이야기한다. 그의 태도가 겸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삶을 이해하기 위해 의사이면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의료인류학이라는 분야를 다시 공부하면서 이분법적 잣대로 쉽게 진단하고, 빨리 결정해서 치료로 바로 접근했던 자신의 태도를 반성하며 환자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돈 되는 일도 아닌, 의사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진 훌륭한 또 다른 두 명의 의사를 안다. 김현지 의사와 김승섭 의사)
또한 자신의 잘못을 빨리 인정하고 환자들을 더 옳고 바르게 진단하려고 애썼으며(사실 내과를 전공했다는 것부터가 보통의 의사는 아니지 않나. 전문의 과정에 피부과-성형외과-이비인후과 몰리는 것을 보라. 누가 공부할 거 많고, 힘든 수련 과정을 겪어어야 하는데 돈을 적게 버는 내과를 전공하겠는가.) 매일 꾸역꾸역 밀려드는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점심 시간을 줄이고, 퇴근 후에도 남아서 환자들 기록을 정리하고, 그들의 고단한 삶만큼 초초하게 부정적인 소견이 드러날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환자들이 의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기까지도 힘들거니와 우리의 의료 환경은 부족한 의사수, 경쟁적인 의료 기관 구조에 의해 총알 진료를 할 수 밖에 없는 정책아래 있다.(그럼에도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의사들을 보면 기가 찬다. 우리나라는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 2.3명으로 OECD국가중 가장 적은 의사가 있는 나라이다.) 원인과 결과를 진단하고 원인만 제거하면 끝난다고 생각하는 생의학적인 관점의 분절적 진료는 환자의 고통을 총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며 그들의 고통은 몸의 어떤 한 부분만이 섬처럼 고립되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다. 의사 이기병은 그런 의료를 '돌봄'의료라고 칭하고 있다.
돌봄의료는 의사 이기병같은 인류가 철철 넘치는 의사 혼자 고군분투 한다고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분히 정책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임에도 정책입안자들(국민의 삶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주로 정책입안자들이 되는 이 모순되는 정치도 문제다.)의 무관심과 그것을 막는 세력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언젠가 나왔던 '동네 주치의' 사업도 국민적 불신과 의협에 의해 막혔다. 그 결과 우리는 의료 쇼핑을 하게 되고, 의료진은 더 많은 환자를 더 빨리 봐야만 하는 구조속에서 전 국민이 살게 되었다.
나는 시민단체도 아니고, 정책 입안자도 아니고, 철저히 기득권일 수 있는 의사가 <연결된 고통>이라는 책을 통해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 너무 반갑고 기쁘다. 의료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할 사람이 스스로 변화의 방향을 의료 현장에서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 이기병의 연결된 고통에서 나오지만 오늘 새로 읽기 시작한 책에서도 인용된 말이 있다. 삶은 고통이다. 삶은 쉬울 수 없으며, 쉽기를 바래서도 안 된다. 고통의 최일선에서 우리 모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아닌가.
나의 고통은 몸 어느 한 부분에 국한된 원인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나아가 나의 고통은 나만의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나의 고통은 너의 고통으로, 너와 나의 고통은 우리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유발 하라리는 과거 인류가 무형의 신화와 윤리, 공동체 의식을 통해 진화 발전되어 왔다면 다음 인류는 실재하는 고통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세계를 내다봤다. 즉 우리 모두의 고통은 홀로된 섬에서 일어나고 섬에서만 존재하다 사라지지 않는다. 의사 이기병은 이 점을 의학과 인류학을 통해서 깨달은 사람이다. (세월호 트라우마를 함께 겪어내고 고통을 분담한 일기 "고잔동 일기"를 펴낸 서울대 인류학과 이현정 교수가 그의 인류학 스승이다. 좋은 사람들은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그의 깨달음을 의술로 실천하고 있는 이 사람의 진료실에서 5분 앉아 이야기 나눠보고 싶다. <연결된 고통>을 누가 읽었으면 좋겠냐는 물음에 의사 이기병은 이렇게 대답한다. "큰 고통으로 아파 본 적이 있는 사람." 나 역시 그런 고통이 있다. 거의 소실되고 휘발된 기억이지만 오랫동안 그 병에 시달렸다는 것만은 또렷하게 내 몸에 새겨져있다. 나의 고통은 나만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았고, 완치된 그 병과 함께 만들어진 서사는 고통과 함께 내 삶에 지금도 녹아서 나를 만들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율곡의 '이기일원론'이 생각났다. 몸과 마음의 고통은 하나가 되어 흐르지 둘일 수 없지 않겠는가.)
시간에 쫓기지 않고, 충분히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들으며, 정확하고 올바른 진단과 치료를 통해 모두의 고통을 줄이고자 하는 바람. 이것이 어려운 세상에서 그의 인류애 가득한 의사로서의 이야기를 담은 <연결된 고통>을 통해 내가 의사 이기병처럼 할 수 있는 반인류애적 행동과 말은 없는지 돌아본다. 우리 뇌는 연결로 성장한다. 지구와 달도 인력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주의 별들도 모두 연결을 통해 움직인다. 우리는 나로서만 존재할 수 없다.오늘 나의 아픈 무릎 치료를 위해 병원에 다녀오면서 나도 알고 너도 알지만 우리는 외면하고 있는 이 진실을 외면하고 있지 않는 의사 이기병의 진료실 풍경을 떠올려본다.
|
|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책 내과 전문의이지 의료인류학 연구자인 저자. 공중보건의로 가리봉동의 외국인 노동자 전문병원에서 근무한 경험을 책으로 써냈다. 아픈 외국인 노동자의 이야기. 말이 안 통하고 불법 체류중이라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어려운 사람들. 그런 병원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 그나마 있던 병원이 지금은 사라졌다니 그 사람들은 어디서 진료를 받을 수 있을까? 몰랐던 사실을 알게 해 준 책.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있어 희망은 있다. |
|
한번쯤 꼭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건강에 대해서 그렇게 깊게 다루진 않지만 흔하게 발생하는 다양한 질병에 대해서 조금의 지식과 이야기를 전달해줍니다. 그리고 의학적인 내용에 저자가 전공한 인류학을 접목하여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개인적으로 의사로서의 저자의 태도나 생각이 너무나 존경스러웠고 이런 의사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