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라는 ‘유사과학’을 만든 것은 무엇일까? 시각과 관념이라는 모호함으로 점철된 미술사를 만들어 온 것은 자명한 진실들이 아니었다. 그것을 향해 가고 싶은 열망에 날카로운 직관과 치열한 논쟁이 더해진 결과였다. 「벌링턴 매거진(Burlington Magazine)」의 리처드 숀(Richard Shone)과 존-폴 스토나드(John-Paul Stonard)가 엮은 「미술사를 만든 책들(The Books that Shaped Art History)」은 미술사에서 가장 논쟁적이었던 책들의 서평을 모은 것이다. 책에 대한 책, 서평을 엮은 것이니 일종의 ‘메타미술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세로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 형식에서부터 지각심리학을 거쳐 후기구조주의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방법론을 아우르는 16권의 명저를 평론한 결과물이다. 16권의 저자를 16명의 평론가(서평을 쓴 저자들은 큐레이터, 미술사가, 평론가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니고 있지만 일단은 평론가로 통칭한다)가 논했으므로 이 책을 관통하는 단일한 관점이나 주제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예를 들어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나 E. H. 곰브리치(Gombrich)에 대한 서술은 미술사 외부자에게 비추어 다소 불친절한 반면, 에밀 말(Émile Mâle)이나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에 대해서는 보다 친절하고 꼼꼼한 저자가 서평을 맡았다. 어떤 평론가는 내용의 참된 의미에 주목하고, 어떤 평론가는 학문적 파급과 후속 세대에 미친 영향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관점의 충돌 속에서도 ‘미술사를 만든 책들’이라는 명예로운 칭호의 조건만큼은 여실히 드러난다. 그것은 ‘진리’ 보다 ‘논쟁’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특히 「초기 네덜란드 회화의 기원과 성격」에 대한 서평에서 드러나는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의 태도는 무언가를 공부하는 모든 사람들이 존경할만한 것이다.
겸손하기는 차라리 쉽다. 겸손하면서도 연구자로서의 직관과 통찰력을 놓치지 않고 담아내는 것이 어렵다. 그런데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스스로가 내어 놓는 것이 ‘진리’가 아닌 하나의 유용한 ‘관점’임을 인정하는 일이다. 파노프스키의 편지는 이토록 어려운 태도를 그가 확실히 체화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연구자로서의 당당한 자긍심도 드러내고 있기에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도상학과 도상해석학을 미술사에 소개하면서 이미지에 얽힌 문헌의 가치를 깨닫게 했던 거장도 이러할진대, 우리는 얼마나 작은 논박에도 성내고 불안해하는 것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불안과 화는 결국 자신의 부족함을 정확히 알고 있는 자들의 방어기제일뿐이라는 진리도 되새기게 된다.
그 밖에 서평 자체를 평가하자면(서평에 대한 서평, 일종의 ‘메타서평’),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d Krauss)의 저술에 대한 안나 로바트(Anna Lovatt)의 서술이 유용했다. 클레멘트 그린버그식 모더니즘의 끝자락에서, 그간 미술계에서 볼 수 없었던 참신한 시각들을 도입한 크라우스의 가치를 적절히 평가했다. 미술사 내부에서는 고갈되어버린 비평적 관점들을 포스트모더니스트와 후기구조주의자 들에게서 새롭게 끌어왔던 크라우스의 비평가적/’신’미술사가적 면모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의 이론을 잘 모르더라도, 그녀를 중심으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가, 미술사가와 평론가가 격돌했던 6, 70년대의 미국 미술계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비평이 방향을 제시하고 심미안을 결정지었던, 비평의 마지막 황금기에 다양한 주체들의 입장에 주목하게 된다. 서평이 실린 16권의 책 중 4권이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 그마저도 지금은 절판되어 구하기 어려워진 것도 있지만, 시각과 관념으로 응집된 미술사의 모호한 여정을 밟아가는 사람이라면 꼭 구해서 읽어보아야 할 것들이다. 나에게도 아직 숙제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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