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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 저기서 부흥이라는 단어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부흥이라는 말이 식상한 느낌까지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 이안 머레이는 [성경적 부흥관 바로 세우기]라는 책을 통해 바로 이러한 시대의 물음에 대한 답변을 명쾌하게 던져주고 있다. 저자는 부흥에 대한 세 가지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책의 결론을 이야기 하자면 이렇다. 참된 부흥의 진위를 구별하는 기준은 방언이나, 계시, 공적인 죄의 고백, 영적인 흥분의 상태 등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거룩한 삶의 모습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눈에 드러나는 이러한 현상들이 부흥의 결과가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참된 부흥의 기준이 없이 드러나는 현상들만 추구하게 되면 그것은 참된 부흥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어서 등장하는 찰스 피니의 부흥관 비판과 인간의 책임과 하나님의 주권, 성령과 설교에 대한 저자의 글은 참된 부흥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분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좋은 지침이 되고 있다. 부흥에 대한 무분별한 남용이 넘처나는 시대에 꼭 필요한 책이다. 다만 이러한 부흥의 과정 속에서 나타났던 다양한 성령의 역사와 체험적이 요소들이 부차적이라는 이유로 경시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균형이 중요하다. 그리스도를 닮아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신앙의 여정과 참 부흥의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바로 그것이 회개와 눈물 감격~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삶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균형만 잡는다면 참된 부흥관을 바로 세우는데 큰 도움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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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이란 뭐지? 오늘날에도부흥이가능한건가? 아니면,오순절부흥이외는없는건가? 우리의 기도로 부흥을 일으킬 수있나, 아니면 오직 하나님의 주권으로만 되는것인지? 그렇다면 우리가 부흥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건가?
참으로 많이 불확실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이제까지 주장되어온 몇가지 부흥에 대한 것들을
추신: 개인적으로는 예전의 표지가 훨씬 이뻐 보이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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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이안 머레이는 방대한 분량으로 로이드 존스, 아더 핑크, 조나단 에드워즈의 전기를 집필한 금세기 최고의 전기 작가로 손꼽히고 있으며, 영국 <진리의 깃발> 대표로 사역하고 있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교회에서 로이드 존스와 더불어 사역한 출중한 목회자이며, 청교도와 부흥신학에 대해 정통하여 그와 관련된 좋은 책을 출판하고 있다. 이 책은 그의 저서 중 우리 나라에 처음 번역된 책이고, 곧이어 <부흥과 부흥주의> 라는 제목의 책이 나온다고 한다.
이 책은 부흥에 관한 3가지 견해를 서두에 제시하며 시작하고 있다. 부흥에 관한 어느 책을 봐도 이 세 가지로 압축된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는 부흥은 반복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부흥의 단회성'을 강조한 것으로 아브라함 카이퍼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둘째는 부흥이 사람의 노력에 의해서 반복될 수 있다는 견해인데
찰스 피니에 의해 주창되어 많은 영향을 주었다. 여기서는 이 두 가지 모두 기각시키고 있는데, 특별히 찰스 피니의 부흥관을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이 채택한 성경적 부흥관은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반복될 수 있다"는 견해이다. 이 관점을 요약하면 부흥은 성령의 부으심이며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으로 말미암고 교회의 삶을 새롭게 바꾸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며 불신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 나가는 은혜의 물결이라 할 수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든든하게 이 기초를 세워두었고,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이와 같은 부흥을 사모하고 있다.
이 견해에는 인간의 책임과 하나님의 주권 사이의 부조화라는 비판이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지만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식의 결여에서 오는 오해일 뿐이며 논리적으로 충분히 논박될 수 있는 문제이다.
여기서는 인간 책임의 3가지 주요 영역으로 순종, 진리, 믿음에 대해 설명하며 기도의 위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더 자세한 내용은 조나단 에드워즈의 <기도 합주회>에 잘 소개되어 있다.
또한 부흥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설교 사역과 성령세례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열광주의에 대한 경계와 마지막으로 부흥의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부흥에 관해 논하지 말고 부흥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한쪽 측면을 간과하지 않았나 싶다.
올바른 부흥신학, 곧 성경적 부흥관을 확립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건전한 교리가 성도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믿는다. 부흥이라는 위대한 주제에 관한 훌륭한 교과서를 놓치지 않기를 바라며, 아울러 이 주제에 대해 감명 깊은 설교를 남긴 <스펄젼의 부흥열망>과 <로이드존스의 부흥>을 추천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사랑이 빠져버린 설교는 단지 가르치고 교훈하는데 그치는 설교 사역일 뿐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설교는 그 이상의 것입니다. 진정한 설교에는 간절히 권면하고 증거하고 간청하고 설득하고 탄원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에서 했던 바울의 설교가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워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 절박함과 열정이 결여된 설교는 가장 근본적인 것을 잃어버린 설교입니다. '설교자는 먼저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한 휫필드의 말은 옳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