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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행본에는 총 여섯 편의 작품이 실렸는데, 읽는 재미로만 따지자면 마지막 여섯 번째 작품을 뺀 나머지 다섯 편의 작품이 좋다.
마지막 작품인 『어느 낯선 별에서』는 이전 다섯 편의 작품 저변에 흐르는 작가의 기본 정서를 직접적으로 드러냈는데, 그러다 보니 읽는 재미는 줄어들었다.
암튼 『어느 낯선 별에서』는 여러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지만, 그 나머지 작품들은 모두 참신하다. 이제하 작가는 1937년생이다. 그리고 이 단행본은 2001년에 출판됐다. 즉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작가가 예순 즈음에 쓴 것들이라는 건데, '노작가'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술술 잘 읽힌다(물론 출판된 시대를 고려할 때 고어스러운 표현이 많은 건 있지만, 내가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그런 것들이 독서를 하는 데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오랜만에 보는 어휘들이 반갑기까지 한데, 예를 들면 '던적스럽다'나 흔히 '캄푸라지'라고 많이 썼던 카무풀라주(camouflage) 같은 단어들 말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깐깐하고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노교수를 연상하면 될 것 같다. 하나같이 작가의 분신인 것처럼 그와 흡사해보인다.
예를 들어 『견인(牽引)』이라는 작품의 남자주인공은 우연히 만난 세칭 '도사노바'인 고교시절 친구와 고교시절 만인의 로망이었던 그의 여자를 만두속으로 만들어버린다. 기실 참 뜬금없고 엽기적인 결말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평범하고 점잖아 보이는, 어느 정도의 사회적 명망도 있는 남자의 일상의 어느 하루를 통해, 남자들의 수컷 본능이랄까? 그런 걸 여실히 보여준다. 뭐 이런 것도 있다. 역시나 『견인(牽引)』의 일부이다.
명치끝이 아리고 숨이 막혀와 목줄기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실컷 빈정거리고 싶은 충동을 틀어막을 수가 없어 나는 정신없이 주워섬겼다. -노차영, 방민근, 정지석, 심승욱, 최민호, 민달자, 지안율, 곽지영...... <광복 50년, 대표작가 50인>에 널 올려놓은 게 누군데? 그게 그렇게도 못마땅해? 그게 그렇게도 자존심 상했어? 요시모도 바나나 찾아가 바나나나 핥아! -엿먹어, 이 자식아......!(77쪽)
충분히 유추 가능한 사람들의 이름을 살짝 비튼 건데, 시니컬한 표정을 한 양반이 떠는 이런 너스레는 충분히 재미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비트는 방식은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 일상을 관통하는 허위의식을 잘 부각시킨다.
영북대(嶺北大) 음대 강사 강금자(康錦子)가 지철우(池澈宇) 화백의 혼에 감응된 사건을 두고 로코코 지성과 바로크 감성의 격돌이라고 단정을 내린 인물은, 내가 알기로는 시(市)에서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중략) 그런 현학적인 소리를 시작한 예의 <동서일보> 주필 B씨는, 그러므로 그의 화력상(畵曆上)의 경계가 그 부근에서 다시 한 번 재고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127쪽).
『금자의 산』의 첫 부분인데, 예술가나 예술 행위를 통해 사람들의 속물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실린 여섯 개의 작품들에서 작가가 일관되게 숨막혀 하는 것 중 하나가 소위 말하는 기성세대, 칠십년대 식 사고 방식 같은 거다.
"이것 아니면 저것 하던 시대...... 찬란한 민주화 쟁취의 시대...... 독재 아니면 민주, 부패 아니면 정의...... 그 어처구니없는 허풍과 기고만장이라니......"(120쪽)
『뻐꾹아씨, 뻐꾹귀신』의 일부인데 기실 작가는 '이념의 시대'를 부조리와 불합리의 시대로 보고 있다. 오로지 작가는 자기 욕망에만 충실하다.
그런데 이념의 시대를 이념 없이, 비정치적으로, 순전히 개인의 자유만을 추구하며, 개인의 욕망에만 충실하며 살았다는 거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었구나.', '이런 삶의 방식도 존재했구나.' 싶다.
어쨌거나 예술가에게 그 시대는 부조리와 불합리의 시대였을 거고, 그래서 결국 기애는 순태의 머리를 이홉들이 소주병으로 내리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뫼르소가 그랬던 것처럼.
이것 아니면 저것을 강요하는 사회에, 그들의 허위를 까발리면서 말이다.
어쨌든 모든 것을 차치하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이념의 시대를 홀로 이념없이 산 이 작가, 참 독특하다. 예술가로서의 꼬장꼬장함도 느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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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이제하씨의 두 번째 소설이다. 그 처음은 <능라도에서 생긴 일> 이었는데 상당히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그 때, 이제하씨를 처음 알게 되었고 <독충> 역시 그런 감흥으로 읽게 된 소설이다. 나는 지금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어떻게 써야할지 염려스럽다. 정확히 말하면, 책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 어렵다. 너무 어려워. 작가의 의도는 뒤로하고라도 무슨 내용인지 알아내기도 힘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 한숨을 쉬었고 좌절했던가. 아, 이 지리멸렬함을 간파하기 위해서라면 소위 말하는 '내공'을 더 쌓은 후 재도전해보아야 할 책이다. 먼저 읽었던 <능라도에서 생긴 일>도 그리 쉽지 않았는데 <독충>에 비하면 너무나도 쉬운 소설이다. 그래도 이 책에 대해 간략하게라도 한 번 정리를 해보자.
이 책은 단편소설집이다. 담배의 해독, 독충, 견인, 버꾹아씨 뻐국귀신, 금자의 산, 어느 낯선 별에서 이렇게 6편이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단편들이 었으니 무어를 더 말 할수 있겠는가? 명확한 것은 모호하는 것일뿐. 음.... 내용과 제목이 별 상관없어 보이는 듯한 단편들이었다. 이 때문에 더 혼란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담배의 해독' 이라는 제목 아래 쓰여진 글들에는 담배가 등장하지 않는다거나 의미로서도 별 관련이 없어 보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하씨는 제목은 글의 내용과 상관없이 하나의 상징으로 부여했다는 뜻이다. 이제하씨가 시인이기도 해서일까? 어쩌면 그는 글의 제목에 '메타포'를(시가 대개 그러하듯) 부여했을런지도. 그리고 6편의 단편들의 내용이 모두 기이했다. 현실적이지 못한 무정형, 허상의 세계들을 담아놓은 듯 하다. '담배의 해독'은 모파상의 괴기소설과 비슷한 느낌을 자아냈다. 연이어 '담배의 해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책의 처음에 위치한 단편이라 비교적 집중력을 갖고 읽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독충>에서 그의 소설보다 더 반가웠고 후련했던 것은 바로 박혜경씨의 작품해설이었다. 등의 가려운 곳을 정확히 긁어주는 시원함이랄까? 소설을 읽는 내내 혼잡하고 정리안된 그 무엇들을 차곡 차곡 정리해주는 듯한 느낌이었고 확실히 밝혀후려내 줌으로 속이 다 시원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내 기분과 느낌을 정확히 진단하여 명료하게 해설해준 작품해설은 여지껏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슬슬 이제하씨의 색깔을 알 것 같다. 그의 책이 담고 있는 내용들은 자극적이다. 이 자극이라 함은 선정적이거나 극적이라기 보다는 약간은 위험천만한 발상들이라고 해야하나? 이제하씨는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작가인 것 같다. 나는 작가건 화가건 영화감독이건 음악가건, 민족주의를 겨냥하거나 정치적인 발상을 그들의 창작물에 주된 골자로 사용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내가 읽기로는 <능라도에서 생긴 일> <독충> 단 두 권이었지만 이제하씨가 그러한 작가인 것 같다. <독충>을 낸지 6년만에 <능라도에서 생긴 일>을 냈다지? 이 소설 <독충>은 이전 작이 나오고 15년이나 뒤에 나온 작품이다. 왜 작품과 작품사이에 이토록 오랜 기간의 공백이 필요한 것일까? 내가 짐작하기로는, 그가 너무 많은 것들을 글 속에 담으려는 욕심에서 비롯되지 않나 싶다. 개인적인 바램이기도 하거니와 경솔할지도 모를 뜻을 살포시 전해보자면, 나는 당신의 작품안에 담아 놓은 그 응어리들의 무게를 조금 덜어내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말이다.
이거 뭐, <독충>에 대한 서평이라고 보기 힘든 글이 되어버렸네. 아쉽지만 영리하지 못한 독자의 몰이해가 빚어낸 일이니 어찌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는 분명 내게 매력 있는 작가다. 그의 문체가 좋다. 이지적이면서도 냉소적인 문장들. 그리고 그 대상이 사회나 독자인지, 혹은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일런지 모르겠으나 '거침없이 하이킥' 을 올려대는 그의 글이 좋다. 여전히 그의 다른 작품을 읽어 볼 작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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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문학적 소양이 깊지 않아서 이제하의 소설은 읽기는 물론이요 이름을 들어보기조차 처음이었다. 내가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이상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표지에 있는 "환상적 리얼리즘", "광기의 미학"이라는 PR문구와 책 날개의 간단한 약력정도였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인지는 모르나, 아무런 선입견 없이 소설을 대하는 편이 작품자체를 볼 수 있어 오히려 좋았던 면도 있다.
전체적으로, 독자가 예기치 못하는 반전과, 자연스럽지 않고 부조리한 인간 군상들, 그리고 실세계와허상을 오가는 상황설정들이 인상적이다. 책 표지의 광고문구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좀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신선한 충격이었다. 단편들은 흡사 30대의 시대의 흐름에 맞춰나가는 중견작가가 썼으리라고 짐작할 수도 있을만큼 젊게 보였다. 필치는 간결하게 약동했고,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비유와 소재는 60대중반의 작가의 그것이라고 보기에는 힘들 정도였다. 나이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풍부한 어휘들은 금상첨화.
작품들이 주던 느낌들은 조금 들쭉날쭉하다. 6편의 단편들 중에서 내게 많은 느낌을 준 녀석들은 <담배의 해독="">,<견인>, 그리고 <뻐꾹아씨, 뻐꾹귀신="">이었다. 저승사자가 버젓이 사람행세를 하고 자신의 역할에 맞게 살인을 일삼으며 장례식장에 꾸준히 참석하는 <담배의 해독="">이나 죽은 강아지 '꽃례'가 여인으로 등장해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뻐꾹아씨, 뻐꾹귀신="">과 같이 허상적 존재가 실재처럼 행동하는 것이나, 급격한 반전으로 결론을 맺는 <담배의 해독="">과 차량 견인을 위해 동행자를 외딴 곳의 만두집에 인육으로 넘기는 <견인>도 인상적이었다. 이밖에도 유일하게 중편에 끼일법한 <어느 낯선="" 별에서="">는 탄탄한 심리묘사를 바탕으로 70~80년대의 이야기를 이념과 노동운동, 남녀간의 사랑, 그리고 아버지에의 심리적 강박과 얽어내어 풀어내는데, 연륜을 느끼게 하는 작가의 상황조망능력이 돋보였던 것 같다. 타이틀로 붙은 <독충>은 오히려 내 눈길을 끌지 못했다. 이는 다른 단편집에 비춰보았을 때 흔치 않은 일인데, 단편집의 제목으로 뽑아져 나오는 소설은 대개 준수한 것이 상궤였기 때문이리라.
분명, 이제하는 삶을 젊게 살고 있다. 나이가 많고 적음에 젊음의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얼마만큼 시대의 감성을 받아들이는가의 여부가 결정짓는 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의 능력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시류와도 담을 쌓지 않는 도들은 분명 읽을 가치가 있는 소설들을 만들어내는 듯 하다. [인상깊은구절] 그쪽이 강아지의 현신인 줄 알고 따라왓던 거요...... 하는 소리는 그렇게 이번에는 여자 쪽에서 좌석 옆으로 고개를 꼰 채 한식경이나 졸고 난 연후에 나왔던 수작이다. 어쩐지 귀여운 구석이 많아 보이던 여자의 인상이 그 코의 생김새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눈치챘다. 아슬아슬하게 들창코를 면하고 있는 그런 유형의 코는 동물로 치면 개의 것에 가깝다. 기린의 코는 코미디언 같고, 돼지의 그것은 한계를 넘어서고, 사자의 그것은 귀엽기는 해도 뭐랄까, 너무 근엄한 쪽에 가까우리라.독충>어느>견인>담배의>뻐꾹아씨,>담배의>뻐꾹아씨,>견인>담배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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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동안 노트에 아무런 맥락을 갖지 않는 단어들 또는 문구들을 메모하고는 한다. 들여다보니 필사의 예감, 잠이 든 고슴도치, 추체험, 기억의 합 또는 곱, 이라는 문구들이 써 있다.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머리가 아니라 손가락이 제 유연함만으로 지껄인 듯한 문구들이다. 이제하의 단편들 중에도 간혹 이런 맥락없는 이야기들이 보이고는 한다. 그러니까 어떤 필연적이고 논리적인 연결없이 그저 작가의 내심이 요구하는 바를 향한 충실함만으로 요술공처럼 튀기는 이야기들. 「담배의 해독」. 어느 계간지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F2로 찾아보니 올해에 읽은 단편은 아니다. 장례식장에서 마주치는 중년의 남과 여. 끊을 수 없는 담배처럼 모질게 그들을 이끄는, 그 죽음에의 애도와 기록으로서의 소설 공간. 익숙하지 않은 이제하식(작가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내러티브 방식은 젊은 작가와 비슷하다)소설로의 초대장 구실을 하는 소설이라 고 여겨본다. 「독충」. 초등학교 은사. 해방 전후를 즈음한 그 은사와의 하룻밤. 그 저녁에 그 은사가 잡아 죽였던 지네 한 마리. 그리고 죽은 대학 총장의 명망을 기리는 기념상의 제막식날 만나게 된 해순. 그 해순과의 하룻밤. 등장인물들의 사이가 거미줄처럼 여릿하게 얽혀 제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 「견인」. 고등학교 동창 서중식과 그의 기이한 행적.그리고 그 시절 퀸카로 이름을 날리던 지선희의 세월을 뛰어넘은 현재로의 침범.서중식과 지선희, 나 소영규와 아내 신은영이라는 두 커플의 과거와 현재를 사실적으로 짚어 나가는 것이 소설의 진행 방법. 그러나 마지막 순간 네 사람이 타고 있는 자동차의 바퀴 네 개가 모조리 펑크난 것을 빌미로 지선희와 서중식을 북악 스카이웨이 한켠 양산박이라는 만두집의 만두속으로 만들어버린다.독자가 어이없기를 바라고 있는 듯해 어이없어 하지 않으려 잠시 노력. 「뻐꾹아씨 뻐꾹귀신」. 꽃례라는 이름의 강아지.세파트에게 물려 죽은 강아지의 환생, 그리고 그 환생의 현재 지점에 서 있는 여자. 그 여자로 인해, 아니 꽃례로 인해 교통 사고 중 목숨을 건지는 나. 하지만 이 소설의 마지막에도 갑작스레 그런 내가 죽은 아내의 여동생과 정분을 나누는 사이라는 엉뚱한 이야기가 튀어나와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금자의 산」. 화가 지철우와 그가 그린 수없이 많은 산 그림.그 모든 산 그림에는 일련번호도 제목도 없는데, 그중 유일하게 금자의 산이라는 작품에만 유독 이름이 붙어 있다는 사실. 사람살이의 여러 방편을 딱 그만큼 이리저리 그려나가고 있다. 「어느 낯선 별에서」. 어느 저녁 나이트에서 춤을 추다 몇 명의 중년사내들에게 납치 아닌 납치를 당하는 한기애. 그렇게 사로잡혀 밤새 끌려다니다 병원 신세까지 진 그녀가 남자 친구와 성교를 마친 후 싸움을 하게 되고, 그를 병으로 내리쳐 살해한다. 그리고 한기애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그녀를 알게 되고, 그녀가 집행유예로 나온 이후 섹스를 하게 되는 나. 노동 운동가였던 그녀의 남자 친구의 이율배반, 살인죄로 사형을 당한 아버지를 가진 그녀의 충동적인 언행, 이들을 제3자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나의 소설가적 우유부단 등등... 성, 세대, 노동운동을 비롯해 다양한 시대의 코드들을 등장시키는데 역시 오리무중이다. 독자에 대한 팬서비스 차원의 쉽고 명확한 글쓰기를 할 나이는 지나지 않았는가, 하는 노작가 특유의 거만함이 배어 있는 작품집이라고 한다면 좀 심하려나. 하지만 소설을 읽어내는 동안 하품이나 내지르게 되고, 집중하지 못해 산만해지려는 눈동자를 가운데로 모으느라 관자놀이를 엄지손가락으로 찍어 눌러야 하고, 침대에서 식탁으로 앉은뱅이 밥상에서 컴퓨터 책상으로 사방팔방 옮겨 다녀 지루함을 달래가며 책을 보게 만드는 데에는 심기가 편치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