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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비평가로 아니 젊은 비평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 시대에 후배가 선배를 비판한다는 것은 그것도 학연과, 지연으로 얽혀져있는 거미줄같은 평론계에서 말이다. 그것은 자신의 밥통과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런 기대(?)는 어김없이 맞아떨어지는 평론계에서 이명원의 존재는 고맙기까지 하다.
김원식 교수의 표절 의혹을 이야기해 이명원은 젊은 비평가에서 선배를 무시한 패륜아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 평론계 아니 교수와 제자 관계는 군대의 상하관계보다 더한 주종관계가 있다. 이런 룰 아닌 룰을 깬 젊은 이명원은 자신이 몸담고 있던 학교와 동료 그리고 교수로부터도 배척을 당했다.
하지만 이명원은 말한다. "다른 세계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는 말로 그 사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젊은 비평가 이명원은 독자 아니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테두리를 벗어나자 그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그 세계를 맛보기 위해서 치뤄야 했던 큰 고통도 있었지만...
<해독>은 그동안 <불타는 혀>로 인한 여러가지 사건들 이후 이명원이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은 재미있는 수필집이면서 평론집이다.
'소금을 찾아서'는 김윤식 교수 표절 의혹 이후 변화한 자신의 삶을 담담하고 나즈막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자신이 주장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변함없는 강직함을 보여준다. 이문구씨의 동인문학상 수상, 황석영씨의 동인문학상 거부, 제자와 교수의 상하종속 관계, 출판계의 게으른 비평문화 등 젊은 비평가인 이명원은 거침없이 옳고 그름을 이야기한다. 독자는 이명원의 글 속에서 상쾌함과 통쾌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록 간명하고 솔직하게 상황을 판단할 수 있다.
'길 위에서 낯선'은 젊은 비평가가 평론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진실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김현이라는 신화에 대해서 이명원 자신은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다. 신화가 되어버리고 박제화 되어버린 김현의 평론에 대해서 독자는 이명원의 글을 통해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방부처리된 사랑의 기록'부분에서는 이명원의 본래 직업(?)인 평론의 날카로움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그에게는 어떠한 권위와 신화를 거부하는 평론가의 자질을 보여준다. 신경숙과 나희덕 등에 대한 여류작가에 대한 솔직한 비평은 독자와의 소통을 중시하는 이명원의 생각을 잘 나타내준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한 평론계에 이명원의 솔직한 대중적 비평은 빛을 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젊은 비평가가 독설만이 아닌 부드러움을 이야기하는 '독기서린, 부드러운 해독'은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함축해놓고 있다. "우리의 문학인들이 미학적 예능집단으로 자신을 특수화하기보다는, 지식인으로서의 책임감을 에민하게 자각했으면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라는 이명원 자신의 약속은 이 책을 집어든 독자를 배신하지 않는다. 젊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 아닌 지식인이기 때문에 비판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말이다.
지식인으로 이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학연과 지연 그리고 자신의 기득권마저도 포기하고, 사회에 대한 발언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이명원은 이야기한다. 나즈막하게 하지만 진실되고 강단있게... <해독>은 젊은 비평가가 어떻게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게되었고,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를 솔직하게 말하고 있는 책이다. 아주 보기 힘든 솔직함으로 무장된 <해독>을 감히 권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바로 이 부분에서 나는 이른바 '비판적 지식인'의 실존이라는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비판적 지식인은 존재하고 있는 현실의 모순에 능동적으로 개입하여 그것을 변화시키기를 꿈꾸는 자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그가 속해 있는 제도와의 갈등과 대립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이 심해질 때, 그는 제도로부터의 축출까지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서울대 김민수 교수와 서강대 이정우 교수의 경우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비판적 지식인은 제도의 내부에서 싸우면서, 제도의 외부와의 연대를 도모해야 한다. 학문의 내부에서 싸우면서, 학문의 외부까지를 응시하는 넓은 시야를 갖고 있어야 한다. 때로 자신이 제도적 폭력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서도, 자신의 이후 세대들이 그 희생을 통해 보다 바람직한 조건과 토대 속에서, 자유로운 발언을 할 수 있을 상황을 구조화해야 한다. |
| 이 책을 덮으며 느낀 것은 시원하다, 젊다, 패기 있다, 신선하다, 반갑다 등이다. 이 시대에 지식인으로, 그리고 비평가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 의미를 말하고 있다. 세상을 향해 들이대는 그의 더듬이는 문학뿐만 아니라 언론, 학계, 문학권력 등 곳곳으로 뻗어 있다. 그리고 그는 두려움없이, 주저하지도 않고 부패의 냄새가 나는 곳에 메스를 들이댄다. 그러나 마땅히 칭찬할 곳은 과감하게 칭찬할 줄 아는 진정한 비평가이다. 어쩜 그는 이 시대의 불온한 탕아인지도 모른다. 상하관계, 주종관계가 그 어느 단체보다도 뚜렷한 문단이란 사회에서 감히(?) 비평계의 거목인 김윤식, 김현을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비판은 논리적이고 타당성있는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해독에서의 이명원은 삶의 독기를 풀어가고 싶다고 했으나 실상은 문학권력의 독기, 언론권력의 독기, 진실(/진리)은 방치된 채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학계의 봉건적 권위주의에 대한 독기를 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의 독기는 오히려 훈훈하고 신선하다. 혜성처럼 떠오른 이 비평가의 출현이 거품이 아니길 바란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적극적인 옹호를 추구한다고 했듯이 그의 행보를 지켜보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시대의 논객으로, 깨어있는 지식인으로 그의 펜대가 항상 날카롭게 독이 서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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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끝까지 읽게 된 평론집. 이명원의 『해독』. 해독이란 말에는 두 가지의 시니피에가 들었다. 문학의 해독 작업을 일컫는 해독과, 독을 제거한다는 의미의 해독. 이명원은 두 가지 모두를 의식하면서 썼다. 에크리티시즘이란 말처럼 이 평론집은 에세이 더하기 크리티시즘이다. 책의 가장 앞선 글에서 밝혔던 이명원의 잡문에 대한 사랑을 이 책이 나오게 된 변명으로 읽어도 무방할 듯 하다. 온갖 현학과 전문용어로 그들만의 은어의 말 잔치가 되어버린 평론과는 다르게 이 평론집의 글들은 술술 잘 읽힌다. 그리고 이전의 평론가들과는 말하기 방식이 다르다. 그는 평론계의 이방인이거나 새로운 세대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여러 주제의 여러 방식의 글들이 있어 책의 가치의 두께를 살찌우고 있다. 「나는 왜 하필 비평가가 되었을까?」(이 글에서는 그가 재수시절, 채광석의 『민족문학의 흐름』과 읽은 것과 집안 상황과 관련해서 어머니를 통한 성경과 교리 해석을 들고 있으나, 그 전모를 밝혀주지 못한다고 말한다.)의 와 같은 가벼운 에세이에서부터 기존 평론계의 문제점을 제기한 글들, 문학권력에 대한 글들과 같이 무게감이 느껴지는 글들도 있다. 에세이집이나 칼럼집을 읽는 느낌으로 유용한 글들을 섭취할 수 있었다.
강준만의 문학평론가 버전인 듯한 이명원의 비판적인 글들. 평론가가 당연히 비판적인 것이지 않겠느냐고?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는 비판적인 메타평론을 하고 문학권력 논쟁에 뛰어든다. 노장 문학평론가의 표절의혹을 밝혀냈다는 이유로 대학원을 그만 둬야했던 그 체험으로부터, 대학원 나아가 대학 사회의 부조리하고 권위주의를 비판하기도 한다. 젊은 비평가인 이명원으로부터 이제 문학평론이 해야할 목록을 생각해본다. 예를 들면, "지금껏 조명받지 못한 시인이나 작가, 비평가들을 찾아내고 그들에게 발언의 장을 열어주자."라든가, '전작평론집'이나 '주제비평집'의 제안(313쪽)이 그렇다. 인터넷 게시판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는 모습이나 그 자료들을 적극 활용하는 것, 또 만화의 위상을 높이 평가하는 점, 문학 이외의 문화에 대해서도 자주 언급하는 점, 문예지 등의 담론 공간으로서의 매체를 중시하는 태도, 평론이 나아가야 할 현실적 대안을 실천적으로 내보이는 등, 그의 젊은 비평가로서의 패기와 참신함을 가득 담고 있다.
이 한 권으로 나는 이명원의 팬이 되어버릴 느낌이다. 또, 이명원에게 채광석의 평론집이 그러하였듯, 동기부여의 책으로 삼을 만 하다. 그래서 이 책은 내게는, 해독보다는 해갈이다. [인상깊은구절] - (…「원령공주」, 「신세기 에반겔리온」를 예로 들면서…) 만화는 유아기적인 장르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오락성과 무거운 철학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일본만화는 증명한다. 적어도 다음 세기는 문학보다는 만화의 영향력이 강렬해지는 세기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다음 세기는 영화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인간은 시각적인 것에만 집착할 수는 없는 동물이다. 하루 종일 케이블 티브이를 보고 있을 때의 지루함을 아시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오락성 말고도 무거운 인식에의 갈망을 요구한다. 그것은 문자문화가 갖고 있는 힘이다. 만화는 문학의 무거운 서사성과 영화의 오락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병치시키면서 전개시킬 수 있다. 얼마나 매력적인 장르인가. |
| 저자 이명원의 얘기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이전에 발행한 평론집에서 우리 문학평론계의 신화적 존재인 김현의 비평을 비판하고, 김윤식의 비평에 대해서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이단적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비평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지느냐가 될 텐데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많은 권위와 위선에 대해서 거부하고 있으며 특히 대학원 사회에 대해서 많은 비판을 가하고 있다. 본인이 대학원 과정을 다 끝마치지 못한 경험에서 우러난 대학원 사회에 대한 비판은 우리의 대학원 사회에 대해서 각성을 요청하고 있다. 문학평론과 에세이가 결합된 형식의 책으로서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라 여겨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