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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속삭인다』 by 타티아나 드 로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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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작가의 가족은 연쇄살인범이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른 옆 건물에 이사를 했었다. 당시 피로 얼룩진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기분 상태가 어떨지를 상상했던 그녀는 소설 『벽은 속삭인다』를 누아르 형태로 불러냈다. 소설 속의 파스칼린 말롱처럼 작가 역시 피로 얼룩진 집의 존재를 깨달은 뒤로 폭력과 고통으로 점철된 여행을 시작했다. 작가는 파스칼린의 시선을 통해 연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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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작가의 가족은 연쇄살인범이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른 옆 건물에 이사를 했었다. 당시 피로 얼룩진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기분 상태가 어떨지를 상상했던 그녀는 소설 『벽은 속삭인다』를 누아르 형태로 불러냈다. 소설 속의 파스칼린 말롱처럼 작가 역시 피로 얼룩진 집의 존재를 깨달은 뒤로 폭력과 고통으로 점철된 여행을 시작했다. 작가는 파스칼린의 시선을 통해 연쇄 살인을 추모하는 과정에서 2차 대전의 상흔까지 불러온다.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금기시되고 수치스러운 날로 기억되고 있는 1942년 7월 16일 '검은 목요일'이라는 잔인한 대학살이 자행되었던 넬라통 가의 진실이다. 당시 그 자리에 있던 벨디브(동계경륜장)에서 8천 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무자비한 학살의 희생자가 되었다. 작가나 파스칼린 말롱처럼 그녀들의 여행은 우리 모두에게 끝나지 않은 숙제인지도 모른다.



프레데릭과 이혼한 뒤 새 집에서 새 삶을 시작하고 싶었던 파스칼린은 당브르 가에서 마음에 쏙 드는 집을 계약한다. 하지만 이사온 첫 날부터 속이 울렁거리는 구토 증세와 현기증을 수반하며 불면증까지 동반한다. 그리고 며칠 뒤, 이웃집 부인으로부터 주인공의 집에서 살인사건이 있었음을 알게 되고 그녀는 '당브르 가 살인사건'으로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한다. 희생자는 열여덟 살의 안나라는 여인이었고 강간된 뒤 살해된 연쇄살인사건의 모태가 된 최초의 사건, 첫 번째 희생자였다. 벽은 잔악한 범죄 현장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일곱 명의 젊은 여성들이 희생된 연쇄살인사건에 관한 기사들을 모조리 찾아 읽었고 범인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상태였다.


파스칼린은 도저히 안나가 죽었던 방에서 잠을 잘 수 없었고 서둘러 당브르 가를 떠난다. 하지만 안나의 존재를 알고난 뒤부터 그녀는 새로운 감수성이 움터 왔다. 그리고 엄마를 통해, 그녀가 다섯 살 때 살던 집에서 매일 같은 악몽에 시달렸던 얘기를 듣게 된다. 어린 파스칼린은 검은 그림자가 아이들을 찢어 죽인다고 했고 끔찍한 꿈 때문에 고통스러워 했다. 그리고 우연히 이웃집 아줌마를 통해 옆 건물에서 일어난 끔찍한 살인사건을 전해 듣는다. 한 남자가 세 아이의 신체를 절단해 죽인 사건이었다. 암에 걸린 아빠를 위해 시골로 떠난 뒤부터 더이상 어린 파스칼린은 악몽을 꾸지 않았다. 낯설던 이 감수성은, 실은 오래전부터 그녀에게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집에서 일어난 일들을 초자연적인 힘으로 포착하는 안테나를 몸에 단 기분이었다.


파스칼린은 눈을 감아도 죽은 안나의 얼굴부터 연쇄살인범에 의해 청춘을 빼앗긴 다른 여섯 명의 여인들의 모습까지 보인다. 마치 내 딸처럼 느껴진다. 이사를 해도 불면의 밤은 끝이 없었고 피비린내 나는 잔인한 악몽에 시달렸다. 회사에서 완벽주의자로 통했던 그녀였지만 왕초보적인 실수까지 반복된다. 이 도시에서 한 남자가 피를 부린 일곱 집, 살해당한 장소에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서 그녀들을 추모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살아있었더라면, 그녀들과 불과 몇 살 차이나지 않는 자신의 딸 엘레나를 그리워하며 고통스러워 한다. 과거 스물 다섯 살의 그녀에겐 엘레나라는 여자아이를 낳았다. 6개월 된 아이를 잃은 슬픔은 부부의 관계를 파멸로 이끌었고 급기야 15년의 결혼생활을 청산한 남편은 약혼자 뮈리엘을 임신시켰다. 어느 순간, 파스칼린은 연쇄살인범과 전남편을 동일시하기 시작한다. 

 

d******7 2015.12.22. 신고 공감 1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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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속삭인다』기억해, 벽이 속삭이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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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았을때 주택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한 첫 날, 신랑은 이삿짐만 정리하고 교육이 있어 인천으로 떠나고 만삭인 나 혼자서 잠든 밤에 꿈을 꾸었다. 밤새내내 묘지 속을 돌아다니는 꿈이었다. 무덤 속에서 누군가와 말하고 했던 게 지금도 생각이 날 정도로 너무도 선명한 꿈이었다. 그 다음 날 출근해서 꿈 이야기를 했더니 그 곳이 원래는 공동묘지 였다는 말을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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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았을때 주택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한 첫 날,

신랑은 이삿짐만 정리하고 교육이 있어 인천으로 떠나고 만삭인 나 혼자서 잠든 밤에 꿈을 꾸었다. 밤새내내 묘지 속을 돌아다니는 꿈이었다. 무덤 속에서 누군가와 말하고 했던 게 지금도 생각이 날 정도로 너무도 선명한 꿈이었다. 그 다음 날 출근해서 꿈 이야기를 했더니 그 곳이 원래는 공동묘지 였다는 말을 했다. 그 소름끼침이라니. 내가 밤에 잠을 자고 있었던게 누군가의 무덤 위에서 자고 있었다는 것이 생각나 한동안 잠자는 게 힘들었었던 기억이 있었다. 원래도 약간 예민해 잠자리를 옮기면 쉽게 잠들지 못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말이다. 

 

벨디브 사건을 취재 하던중 남편의 가족이 살았던 집, 지금은 자신의 집이 벨디브 사건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그 유대인의 흔적을 쫓기 시작하는 줄리아의 이야기를 그린 작가의 작품 『사라의 열쇠』를 읽으며 작가를 알게 되었다.  작가는 어떤 공간에 간직한 비밀과 신비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사라의 열쇠』도 그렇고『벽은 속삭인다』도 어떤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혼한 40대의 파스칼린은 좁지만 아주 마음에 든 집을 발견했다. 이사한 첫 날, 어쩐지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운 느낌이 든다. 피곤해서 그럴거라며 애써 참으며 잠을 자려고 하지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아침 출근 길에 아래층에 산 여자로부터 과거에 연쇄살인이 일어났던 곳이며, 자신의 방이 첫 번째 희생자인 안나의 방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뒤 파스칼린은 그곳 당브르 가에서 살수 없어 집을 나오게 되며 연쇄살인의 희생자들을 찾아다니게 된다. 모든 일에 정확했던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파스칼린은 점점 실수를 하게 되고 정신적으로도 피폐해 진다. 그리고 어렸을 적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엄마로부터 듣게 된다. 누구보다 공간이 주는 감각과 느낌에 예민한 파스칼린의 이야기이다.

 

『사라의 열쇠』의 모태가 된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연쇄살인범의 희생자들에게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찾아가는 파스칼린과 유대인 소녀 사라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줄리아가 동일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희생자들에 대한 안타까움, 열일곱에서 스무살 가량의 희생자들이 육개월 살다 죽은 자신의 딸처럼 느껴져 희생자들을 찾지 않고는 못 배긴, 그 희생자 들과 자신의 죽은 딸과 동일시되어 마음을 잡을 수 없었던 파스칼린의 안타까움이 나타나 있다.  

 

줄리아와 파스칼린의 생각을 빌어 작가는 아무 이유없이 희생당한 연쇄살인범들의 희생자들과 유대인 희생자 들을 추모하고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해 글을 쓰고 있다. 우리 곁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때는 가슴아파 했다가도 금방 잊어버리는데 작가는 이러한 일들을 잊지말자고 말한다. 이 작품을 먼저 읽고『사라의 열쇠』를 연계하여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심장이 사랑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듯이 공간도 그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는가 보다. 앞으로 어떤 느낌이 생길 때 벽이 속삭이는 소리일까 귀 기울일것 같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2.01.06. 신고 공감 10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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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의 속삭임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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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가끔 혼자  방안에 누워 벽들에게 속삭인다. 그날들의 기분나빳던 일들, 행복했던 일들, 슬퍼던 일들을 주저리 주저리 흚조리고 나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었던 것처럼 편안함을 느끼곤 한다. 그래 우리집 , 내방의 벽들도 내기억들 , 내일상들을 다 간직하고 있겠지. 이 소설의 주인공 파스칼린은 시작도 벽들에 대한 기억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흔살의 이혼녀 파스칼린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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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가끔 혼자  방안에 누워 벽들에게 속삭인다. 그날들의 기분나빳던 일들, 행복했던 일들, 슬퍼던 일들을 주저리 주저리 흚조리고 나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었던 것처럼 편안함을 느끼곤 한다.

그래 우리집 , 내방의 벽들도 내기억들 , 내일상들을 다 간직하고 있겠지.

이 소설의 주인공 파스칼린은 시작도 벽들에 대한 기억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흔살의 이혼녀 파스칼린은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그러나 첫날부터 벽들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웅얼거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면서 불안하고 밤에 잠들지 못한다. 그저 단순한 새집증후군으로 치부할때 쯤 이웃아주머니가 몇년전 연쇄 살인 사건의 첫희생자가 죽은 집이라는 이야기를 해준다.

그때부터 연쇄 살인마와 그연쇄살인의 희생자 일곱명의 인적사항과 가족 ,살았던곳을 배회하며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한다. 그녀가 찾으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한 궁금증이 들면서 계속 따라가게 된다.

정말 희생자의 집 벽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던 것일까?  자기가 살고 있던 집에서 건네는 벽의 대화는 그자신이 끌어내는 것인데 파스칼린 그녀가 끄집어 냈던 희생자의 목소리는 아니였을까? 그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희생자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는 그녀가 밉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남들의 고통에서 쉽게 우리의 고통을 보려고 하고 그고통을 끄집어 내려고 한다. 저마다의 고통이 제각기 다름을 우리는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일까?

 

벽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쫒아가다가 결국 그녀는 자기의 고통과 마주하게 된다. 결혼해서 처음 얻게된 딸아이를 돌연사로 인해 떠나보낸 아픔이 있다. 그녀는 그아픔을 벽속에 정체시키고 자기의 영혼도 그벽속에 가둬버린다.

에드가 앨런 포우 ( 검은 고양이)에 포우가 자신의 부끄럼움 알고 있는 고양이를 부지 불식간에 벽속에 묻어버린것 처럼 , 자신의 자아도 거기에 묻어버렸다.

검은 고양이를 꺼낸것은 경찰이지만 이책에서 파스칼린의 검은 고양이를 꺼내어 줄수 있는 사람은 진정 없는 것인가?

사실 그녀를 끝까지 꺼내주려 한 이는 회사동료 엘리자베트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다가가기에는 파스칼린은 그이전에 벌써 그녀의 자아를 어린딸이 죽었던 그집에 벽속에 가두어버린 후였다.

 

그래서 슬프다. 벽과의 대화를 가끔 시도하는 나는 그녀 파스칼린이 안쓰럽다. 고통속에서 자신을 가둬버린 그녀가 , 우리 모두는 매일 조금씩 고통과 마주하고 그고통을 지켜보는 수 많은 벽들과 마주한다. 그벽들에게 잠식 당하고 안당하고는 결국 내주위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책말미에서 애매모호한 결과를 남긴것은 어쩌면 우리 자아의 인식대로 결정되길 바라는 작가의 또다른 벽의 속삭임  이라고 생각한다.

그녀 파스칼린을 놓아주는 않은 예전벽의 승리인지, 아님 그녀를 계속 그 벽속에서 끄집어내려는 엘리자베트처럼 주위 사람들의 노력의 결실이 될지는 말이다.

아 수많은 나의 고통을 바라본 벽들아 ! 내자신에게 소리쳐줘 고통은 결국  끝난다고 말이다.



m******6 2012.01.15. 신고 공감 5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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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기억한다, '있었던' 모든 것을 : 타티아나 드 로즈네 - 벽은 속삭인다
"벽은 기억한다, '있었던' 모든 것을 : 타티아나 드 로즈네 - 벽은 속삭인다" 내용보기
"거긴 저주받은 곳이야. 가면 안 돼."  누구나 살아오면서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 저주라는 곳이 구체적으로 어떤 걸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람들이 '다가가고 싶어 하지 않는' 장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사람의 생과 사가 결정되었던 곳이라면, 그것도 자의든 타의든 누군가가 목숨을 잃었던 곳이라면 그곳은 '다가가서는 안 되는' 장
"벽은 기억한다, '있었던' 모든 것을 : 타티아나 드 로즈네 - 벽은 속삭인다" 내용보기

 "거긴 저주받은 곳이야. 가면 안 돼."

 누구나 살아오면서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 저주라는 곳이 구체적으로 어떤 걸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람들이 '다가가고 싶어 하지 않는' 장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사람의 생과 사가 결정되었던 곳이라면, 그것도 자의든 타의든 누군가가 목숨을 잃었던 곳이라면 그곳은 '다가가서는 안 되는' 장소로 변합니다.

 

 첫 번째 살인사건이 일어난 곳이 바로 내 집이었다. 후에 일어난 사건들의 모태가 된 최초의 사건이었다. 일종의 모델이랄까. 내 방을 둘러싼 벽들은 참혹한 연쇄살인사건의 시초를 목격한 것이었다. 내 벽들은 잔악한 범죄 현장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29p

 

 남편과 이혼한 후, 홀로 살 집을 구한 파스칼린은 이삿짐을 옮기던 순간부터 몸의 고통을 인지합니다. 속이 좋지 않고 밤에 잠을 잘 수 없으며 자꾸만 춥고 현기증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집을 나오면 이와 같은 증상은 곧 사라졌기에 파스칼린으로서는 그게 이성적이든 비이성적이든 자신의 집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이웃으로부터 자신의 방에서 연쇄살인사건의 첫 피해자가 발견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안나가 잔혹하게 강간당하고 목이 도려나갔던 것을 그녀의 방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고스란히 파스칼린의 온몸으로 전송되었습니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나는 숨이 멎을 것 같은 심정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안나도 죽기 직전, 남자에게 생의 마지막 시간을 강탈당하는 순간 이 천장을 바라보았으리라. 그녀가 비명을 질렀는지 모르겠지만 이 방에서는 아직도 생생한 공포가 느껴진다. 고막을 찢어놓는 날카로운 비명이, 영원한 울부짖음이 들린다. -40p

 

 파스칼린은 안나가 살해당했던 그 방에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도 그녀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감정은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파스칼린은 안나를 비롯한 다른 여섯 명의 피해자들과 전혀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불운한 사건으로 짧은 생을 마감해야만 했던 일곱 명의 피해자들이 불쌍하고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 정도를 지나친 고통에 그녀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대체 왜 파스칼린은 이토록 이 연쇄살인에 강한 반응을 보이는 걸까요?

 

 이 도시에는 남자가 피를 뿌린 집이 일곱이었다. 등 뒤로 손목이 묶인 채 흉기로 살해당한 처녀들이 발견된 방이 일곱이었다. 잔혹한 범죄의 낙인이 찍힌 일곱 채의 집. 출입금지 띠가 둘린 일곱 개의 문. 부모의 절망적인 시선 속에서 거두어진 일곱 구의 시신.

 …중략… 그러나 지금 그 집에는 분명 사람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먹고 자고 사랑을 나누었다. 죽음이 가장 참혹한 모습으로 찾아온 그곳에서. 그들이 자기들이 사는 집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곳을 뛰쳐나온 사람이, 이런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등골이 오싹한 사람이 나뿐이라는 게. -65p

 

 사실 이 책에는 '또 다른 사건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사건들이 서로 결합함으로써 이 이야기는 매끈하게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난 후 저 먼 곳으로 일찍 떠나버린 생명들이 안타까우면서도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과 비통함이 너무나도 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죽음은 그 존재가 이 세상에 태어나 죽기 직전까지의 순간만을 앗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펼쳐져야 했을, 무수한 가능성과 많은 미래와 넘치는 기회까지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죽지 않았다면 부끄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결혼할 사람이라며 남자친구를 소개해주었을지도 모릅니다. 죽지 않았다면 자신을 쏙 빼닮은 아이를 낳아 행복한 엄마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죽지 않았다면 손자손녀들에게 둘러싸여 편안한 노후를 보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것이 개입된 순간 모든 확률은 잔혹하게 0으로 바뀌었고 미래는 사라졌습니다.

 

 파스칼린은 끝내 파멸하고 말지만 이 책을 통해 많은 분들이 슬픔 속에서도 솟아나는 빛을 보았으면 합니다. 연쇄살인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인 레베카는 조아킴 G.의 딸이었습니다. 조아킴 G.는 딸인 레베카뿐만이 아니라 그의 조부모, 고모 등 많은 가족을 역사 속에서 잔혹하게 잃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낸 후에도 정신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그의 등을 향해 존경 어린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느꼈던 건 결코 저만의 감정이 아니었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서 작성된 것임을 밟힙니다.

 

k*******3 2012.01.13. 신고 공감 4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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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지 않는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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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문이라 생각하고 박차고 나가는 거야 ~!』 출근길에 안 보이던 플랜카드 한 장이 건물 벽에 걸려 있습니다. 야권 M당 한 후보의 이름으로 내걸린 슬로건입니다. 이 벽은 넘어야할 장벽, 부셔야 할 장애물, 제도, 생각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야겠습니다. 단지 벽을 박차고 나가는 사람의 발이 염려가 됩니다. 제대로 붙어 있을는지.. 그리고 그냥 내버려둬도 될 벽도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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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문이라 생각하고 박차고 나가는 거야 ~!』

출근길에 안 보이던 플랜카드 한 장이 건물 벽에 걸려 있습니다.

야권 M당 한 후보의 이름으로 내걸린 슬로건입니다.

이 벽은 넘어야할 장벽, 부셔야 할 장애물, 제도, 생각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야겠습니다.

단지 벽을 박차고 나가는 사람의 발이 염려가 됩니다. 제대로 붙어 있을는지..

그리고 그냥 내버려둬도 될 벽도 부셔버리지나 않는지..


몽마르트의 벽을 뚫는 사나이 / 파리, 프랑스


또 때로는 벽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도 오래 되어서 제목과 저자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단편소설 속에 등장하는 젊은 연인들이 있습니다. 전쟁의 상흔으로 폐허가 된 어느 거리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이 연인들은 사방이 막힌, 아니 한 두 군데라도 막힌 공간을 필요로 하나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부서진 건물의 잔해와 허허 벌판뿐입니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벽의 이미지는 또 다릅니다.

“샤르므는 벽이 고통을 느낀다고 믿었다. 그녀는 돌이 인간의 불행을 빨아들이고 그 속에 빠져 든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감수성 예민한 사람이 이사를 오면 돌은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벗어서 되돌려주는 것이다.” - 자크 란츠만, 《로지에 거리》

 

이 문장이 책의 내용을 함축시켜줍니다.

여기서 ‘감수성 예민한 사람’이라는 표현에 시선이 머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파스칼린 말롱이라는 여인이 너무 감수성이 예민하군요.


짧은 소설입니다. 책도 핸디합니다. 그래서 진도가 잘 나갑니다. 책을 손에 잡고 단숨에 읽었습니다. 

저자 타티아나 드 로즈네는 이 소설을 스스로 누아르 소설이라고 칭합니다. 범죄소설에 이상심리까지 더합니다. 자식 없는 40대 이혼녀인 주인공이 혼자 거처할 집을 찾는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시작은 순조롭습니다. 그 집에 대한 내력을 듣기 전까지는 마음에 쏙 든 집이었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군요. 그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전에 예민한 주인공에게 벌써 증상이 나타납니다. 회사 동료와 함께 이삿짐을 정리하던 중에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운 느낌이 듭니다. 이사 후 첫날밤을 뜬눈으로 지새웁니다. 며칠째 계속 됩니다. 그러나 출근하면, 집을 떠나면 속이 더부룩하고 귀에서 윙윙 거리는 소리가 사라집니다.

드디어 주인공은 집의 내력을 듣게 됩니다. 한 건물 3층에 사는 이웃입니다.


“잠은 잘 자요?” “무슨 말씀이시죠?” “살인사건 말이에요……댁의 집에서 일어났는데……

얘기 안 해주던가요?”


주인공 파스칼린의 길고도 험한 정신적, 육체적 여정이 시작됩니다. 살인사건도 단순 살인이 아닌, 연쇄살인 사건입니다. ‘당브르 가 살인사건’ 자그마치 8건의 살인사건 관련 기사가 인터넷 검색에 뜹니다. 피해자들은 7명의 젊은 여성들입니다. 이젠 본격적으로 집에 들어설 때마다 살인사건과 관련된 이야기와 이미지들이 떠오릅니다. 불을 켜면 벽에 영상이 떠오릅나다. 살인의 과정이 그대로 실현됩니다. 물론 파스칼린의 생각속에 나타나는 이미지입니다.

파스칼린의 생각은 확고합니다. “벽은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상상한다.”

결국 회사 근처 저렴한 호텔로 거처를 옮기게 됩니다. 그러던 중 역시 혼자 살고 있는 엄마를 만납니다. 파스칼린의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후 엄마는 30년째 혼자 살고 있습니다. 딸의 상태가 염려된 엄마는 대화를 나누다가 파스칼린이 다섯 살 때 일어난 이야기를 꺼냅니다. 일 년을 산 집에서 주인공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립니다. 다섯 살 때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분노와 고통. 그 집에서도 살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남자가 세 아이의 신체를 절단해 죽인 사건이 있었지만, 모르고 이사를 했던 것이지요.

 

“두려웠다. 이제는 장소마다 사연이, 자기만의 사연이, 고통과 아픔이 있었다. 나는 두려웠다. 전신이 옥죄어오는 공포를 느꼈다. 나는 삶의 공간에 스며들어 있는 감정들이 두려웠다. 벽의 속삭임이 두려웠다. 갑자기 내 몸이 일종의 스펀지나 압지(押紙)로 변해버린 것 같았다. 집에서 일어난 일들을 초자연적인 힘으로 포착하는 안테나를 몸에 단 기분이었다. 나는 낯선 집을 방문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코가 예민해진 것이었다.” (p.60~61)

 

파스칼린의 이상 행동은 멈추지 않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낸 연쇄 살인 희생자들이 살던 집을 찾아가서 문 앞이나, 계단에 장미 놓아두기, 살인자가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를 찾아가 살인범을 영원히 가둬놓기 위한 담벼락 돌기.

직장 업무와 동료들과의 교통이 두절되기 시작합니다. 반복되는 업무 실수, 동료들과의 갈등. 이를 바라보는 독자의 마음은 안타깝습니다. 혼자 못하면 누군가가 도와주어야 할 텐데, 대부분의 이런 경우처럼 도움의 손길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본인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 합니다. 바로 이런 점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직장 동료의 소개로 남자도 만나지만, 오히려 문제만 발생시킵니다. 더욱 비정상적인 사람으로만 그려집니다.

 

파스칼린에겐 직접적인 상처가 있습니다. 육 개월밖에 못살고 세상을 떠난 딸아이의 죽음을 아직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진실여부는 확인할 길 없지만, 심지어 이혼한 전 남편이 딸을 죽였을 것이라는 강한 의심을 품고 있습니다. 급기야 본인의 사정을 잘 모르는 주위사람들에게 딸아이가 열다섯 살이라는 이야기까지 합니다. 지금 같이 살고 있다고 말입니다. 의사를 찾아가긴 합니다. 동네 의사에게 악몽과 불면에 대한 상담을 하면서 그간의 마음 상태를 털어 놓습니다. 범죄 현장에 가보고 싶은 욕구까지 이야기 합니다. 의사는 파스칼린에게 왜 범죄 현장에 가보고 싶은지 물으나 대답을 못합니다. 역시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라는 충고를 받으나, 파스칼린은 스스로 ‘나는 아무 문제도 없어. 조금 피곤한 것뿐이야.’하고 그냥 넘깁니다.

 

보통은 어렸을 때 받은 심각한 심리적, 육체적 외상이 성인이 되어서도 치유되지 않은 상태라면 일상생활에 많은 지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즉, 내적 치유 과정을 거쳐야하는데 대부분 소홀히 넘기기 쉬운 부분입니다. 몰라서 못할 수가 있고, 치료시기를 놓치고 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가 그려낸 파스칼린의 경우는 좀 독특합니다. 어렸을 때의 외상의 이야기는 없습니다. 단지, 어려서부터 예민한 성격입니다. 특히 장소와 냄새 등에서 연상하는 범위가 다른 사람에 비해서 넓고 깊습니다. 그러다보니, 벽이 속삭이는 이야기를 안 들으려고 해도 안 들을 수가 없습니다. 파스칼린의 불행이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딸아이를 일찍 잃게 된 충격과 연쇄살인범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된 젊은 여성들의 모습이 오버랩 됩니다.

 

책을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서로 내색을 하지 않고 살뿐 누구나 아주 성격이 무딘 사람이 아니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그곳을 향하는 경우가 있다거나, 사소한 단서에서 장편의 소설을 쓰듯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상념이라든가 말입니다.

 

소설의 결말이 궁금 하시다구요?

추리 소설, 범죄 소설에서 범인을 미리 알려주거나, 결말을 알려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요. 

 끝 이야기는 아끼겠습니다. 앞으로 이 책을 읽어 보시게 될 분들을 위해 참겠습니다.

 

 [밸디브의 유대인 - 기록사진]


사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 소설이 모티브가 되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사라의 열쇠》가 탄생하게 됩니다. 밸디브(동계경륜장, 벨로드롬 디베르의 약칭)유대인 검거사건. 1942년 7월 16일. 나치 치하의 프랑스입니다. 프랑스 정부가 유대계 프랑스인 만 여명(13,000명이라는 통계도 있습니다)을 기습 검거해 밸디브에 가둬두었다가, 아유슈비츠 수용소로 보낸 일을 말합니다. 이 사건이 더욱 충격적인 것은 4천명이 넘는 어린아이들도 검거 대상에 포함시켰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의 작가 타티아나 드 로즈네는 프랑스인들이 언급조차 꺼려하는 이 사건에 주목해서 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이 소설은 2010년 프랑스에서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영화/사라의 열쇠 중 한 컷]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파스칼린은 어쩌면 작가 자신의 분신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사람이 죽었건, 살았건 상관없이 무딘 감각으로 지내는 사람이 있지만, 기억해야 할 일은 누군가 기억하고, 그 순간의 고통을 함께 나누길 바란다는 작가의 마음을 또한 느낍니다. 어쩌면 평범한 이웃 사람의 이미지를 지닌 연쇄살인범이나 수치스러운 역사의 현장에 서있었던 프랑스인들의 내면은 우리의 마음속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단지 우리 살아가며 그 거칠고 냉혹한 면모들을 다독여가며 유순함으로 길들여가고 있겠지요.  그런 부드러운 면들만 서로 대하며 살아갔으면 참 좋겠습니다. 

 

 




s******5 2012.01.12. 신고 공감 3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공간에 스며든 시간의 흔적. 『벽은 속삭인다』
"공간에 스며든 시간의 흔적. 『벽은 속삭인다』" 내용보기
마흔 살의 이혼녀 파스칼린은 마음에 드는 아파트를 계약하고 입주한다. 자신의 인생에서 새로운 시작을 같이 하게 될 공간이다. 하지만 그런 호의적인 다짐도 잠시, 그 집에서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게 되며 구토와 현기증을 일으킨다. 그런 증상의 원인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새로 입주한 자신의 집에서 오래전에 일어난 살인사건을 알게 된다. 곧 그녀는 그 살인사건(연쇄살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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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의 이혼녀 파스칼린은 마음에 드는 아파트를 계약하고 입주한다. 자신의 인생에서 새로운 시작을 같이 하게 될 공간이다. 하지만 그런 호의적인 다짐도 잠시, 그 집에서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게 되며 구토와 현기증을 일으킨다. 그런 증상의 원인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새로 입주한 자신의 집에서 오래전에 일어난 살인사건을 알게 된다. 곧 그녀는 그 살인사건(연쇄살인)과 관련된 정보를 찾기 시작하면서 그 잔혹한 현장을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 열여덟 살의 처녀가 강간당하고 살해된 그 방에서 어떻게 멀쩡하게 생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아파트를 나오게 된지만 그녀가 갖게 된 두려움과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는 어떤 끌림처럼 희생자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그건 아마도 두려움을 좇기 위한 그녀 나름의 의식이었는지도 모른다.

 

희생자들을 떠올리고 추모하면서 찾아오는 슬픔은 그녀의 지나간 시간 속의 아픔을 들춰내고 있었다. 집착처럼 희생자들을 찾아다니는 그녀의 모습은 위태로워 보인다. 타인의 고통이 그녀에게 스며든 것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가 싶은 의문점이 들 무렵, 그녀의 집착 같은 행동에 이유를 댈 수 있는 시간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잊은 듯 했지만 잊지 못한, 십오 년 전에 사랑하는 딸 엘레나를 잃은 일이 선명해진 것이다. 아마도 엘레나가 살아있었다면 죽은 희생자들의 나이와 비슷했을 것이라는 점은 그녀의 슬픔과 아픔을 더욱 깊게 만들고, 남편 프레데릭에 대한 원망을 한층 더한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집을 비운 사이 죽어버린 아이. 아이의 죽음 이후 평온을 유지하는 것 같았지만 회복되지 않았던 부부 사이. 결국 이혼으로 이어진 그녀의 삶의 흐름이 그녀에게 가져온 것은 무엇일까.

 

처음 그녀가 희생자들에게 너무 집착하고 그 공간의 스산함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일 때는, 어쩌면 그 많은 원망과 슬픔을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던 던 아닐까 생각도 했다. 희생자들이 당한 아픔에 그녀의 기억 속 슬픔을 덧대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행보를 지켜볼수록, 그녀의 감수성이 새로운 공간에서 조우한 지독한 아픔과 함께 회복할 수 없는 절망을 불러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 이상처럼 보일 정도로 죽은 사람을 떠올리는 것과 그 과정에서 보이는 그녀의 행동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어떤 것에 스며든 고통을 보게 한다. 매일 생활하고 마주하는 그 공간에서 나도 모르게 흐르는 공기의 냄새를 맡게 한다. 작게는 한 개인의 과거 속에서 잠자고 있는 기억을, 크게는 역사의 한 시대를 피로 물들였던 잘못들을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의 아픔과 슬픔, 행복과 기쁨, 그 이상의 감정들이 그 벽 틈새에 미세하게 발라져 있을지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면 섬뜩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내가 잊고 있었던 어떤 기억을 저장하는 누군가(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 고통을 온전하게 떨쳐내지 못한 사람에게는 지나간 아픔과 이별할 시간을, 그 고통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공감의 위로를 건넨다고 생각해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이 소설의 결말은 그 고통의 끝을 보려하는 파스칼린의 선택으로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지만...

 

“공간은 시간을 기억한다. 과거를 기억한다. 벽은 속삭인다. 타인의 삶을. 그리고 때로는 ‘나’의 삶을…….” (옮긴이의 말 중에서)

 

공간이 간직한 비밀과 신비로움이 언제나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말을 들으니, 이 소설이 그 ‘공간’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가진 의미를 알 것도 같다. 공간은 때로는 신비로움으로, 때로는 기억저장소 같은 느낌으로 소설을 끌어가는 역할을 하는 매개체가 된다. 이 소설은 타티아나 드 로즈네의 이름과 함께 떠오르는 《사라의 열쇠》의 모티브가 된 작품이라고 한다. 공간에 대한 또 다른 사연과 역사까지 함께 보게 한다는 다음 작품까지 기대되게 한다.

 

 



n******i 2014.06.20. 신고 공감 3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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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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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는 순간 내 방의 벽을 쭉 둘러보게 되었다. 과연 이 집으로 이사오기전의 사람들의 생각과 모습들을 이 공간은 기억하고 있는지, 그리고 오싹 했다.    이혼 후 새롭게 삶을 시작하고자 이사한 집에서 자신을 덮쳐오는 알 수 없는 공포의 그림자를 느끼게 되고, 그 집에서 과거에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을 알게 된 후 주인공 파스칼린은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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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는 순간 내 방의 벽을 쭉 둘러보게 되었다. 과연 이 집으로 이사오기전의 사람들의 생각과 모습들을 이 공간은 기억하고 있는지, 그리고 오싹 했다.

 

 이혼 후 새롭게 삶을 시작하고자 이사한 집에서 자신을 덮쳐오는 알 수 없는 공포의 그림자를 느끼게 되고, 그 집에서 과거에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을 알게 된 후 주인공 파스칼린은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 결국 그 집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게 된다. 그래도 파스칼린은 살인자에게 피해를 당한 일곱 명의 여성들을 계속 떠올리고, 그 여성들을 살인한 범인이 갇힌 감옥을 둘러보면서 그를 자신안에 가두려고 한다.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여성들이 살해 된 장소들을 찾아가 그 여성들을 떠올려 보며, 이미 죽은 자신의 딸 엘레나를 그리워하고 슬퍼하게 된다. 점점 살인의 그림자에 몰입하는 파스칼린을 직장 동료인 엘리자베트는 도와 주려 하지만 그럴수록 파스칼린은 그러한 호의가 자신을 옥죄어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일곱 명의 여성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이 감옥에서 탈옥을 시도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파스칼린은 생존자와, 분노하는 그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상처와 그들이 느꼈을 공포를 떠올리면 자신의 상처와 동일시한다. 급기야 파스칼린은 전남편 프레데릭이 자신의 딸 엘레나가 죽을 당시 옆방에서 축구 경기를 관람하고 있는 비정한 아버지로 생각하고 딸의 죽음을 방치한 아버지로서 지금의 새가정을 꾸민 전남편을 급기야 범죄자로 생각하게 된다. 그순간 파스칼린은  자신에게 전해지는 알 수 없는 공포와 전율을 느끼고 그 집을 방문하게 된다.

 

간결하고, 깔끔한 소설이다. 살인 이라는 소재를 그리고 있지만, 소설의 구성이 장황한 어떠한 설명보다도 더욱더 제대로 살인의 끔찍함을 전달해 주고 있다.

 

궁금하다. 과연 파스칼린은 자신의 딸, 엘레나의 죽음을 방치하고  범죄자로 생각한 전남편 프레데릭을 어떻게 처단할지 자못 궁금하다.  일에 있어 철저하고, 자신의 죽은 딸 엘레나를 더없이 그리워하는  예민한 정신적 소유자인 파스칼린이라면 좀 더 잔인하고 치밀하게 접근하지 않았을까......

 

늘 사람들은 어떻한 공간에 있게된다.  물론 내가 그 공간의 최초로 방문한 자가 될 수도 있지만, 그러기는 희박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가기전에 그 공간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생각들을 벽은 어떻게담고 있을까?  이 소설을 읽고 난 뒤에는 내가 머문 공간에 이전의 시간들은 부디 좋은 추억의 공간이었음 하는 소박한 생각을 가져보게 한다.

 

그리고 벽 속에 감추어진 살인을 소재로 한 작가의 또따른 소설인 '사라의 열쇠' 를 자연스레 떠올리고 읽어 보고 싶게 만든다.

 

 

m******9 2012.02.1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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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속삭인다, '고통에 참여하고 기억으로 연대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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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스칼린, 그녀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최근에 커다란 상실을 겪었고 그 때문에 정말 사랑해서 결혼까지 한 남편 프레데릭과 이혼을 했다. 그렇게 그녀는 삶의 전환기에 서 있다. 그 시간이 도래했음을 상징하기라도 하듯 그녀는 자신이 거주할 공간을 새로이 구하는 중이다.     프레데릭은 이제 과거였다. 새 인생 새 집...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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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스칼린, 그녀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최근에 커다란 상실을 겪었고 그 때문에 정말 사랑해서 결혼까지 한 남편 프레데릭과 이혼을 했다. 그렇게 그녀는 삶의 전환기에 서 있다. 그 시간이 도래했음을 상징하기라도 하듯 그녀는 자신이 거주할 공간을 새로이 구하는 중이다.

 

  프레데릭은 이제 과거였다. 새 인생 새 집... (p.16)

 

 

   

  프랑스의 여류작가 타티아나 드 로즈네의 소설 '벽은 속삭인다'는 막상 보면 저렇게 이제 막 변화를 앞두고 있는 자에 대한 소설 같지만 사실 알고보면 우리에게 일종의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왜냐하면 그 변화라는 것이 사실은 '사랑했던 자'와의 영원한 결별(정확히는 그녀의 하나밖에 없는 6개월 된 딸의 죽음)이라는 고통이 출산한 변화이기 때문이다. 즉, 삶이 껴안아버린 그러한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을 그저 지나간 과거이기 때문에, 살기위해서는 지속해야 할 현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단순히 망각해 버리는 것이 정녕 옳으냐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과거를 잊고 새롭게 출발하라!'는 것은 우리가 늘 건네곤 하는 속편한 위로의 말이기도 하다. 더러 우리들 역시도 그런 말을 듣기도 했다. 실연의 상처를 연거푸 들이키는 술로 덜어내려는 듯 모여든 친구들이 후크송의 후렴구 처럼 반복했던 말이기도 했다. "어떡하겠니? 산 사람은 살아야지..." 지극히 상투적이지만 그래서 더 묘하게 설득이 되는 이 말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아픔들을 억지로 삼켜왔던가... 삶은 그저 앞으로만 앞으로만 쉬임없이 나아가는 콘베이어 벨트와 같아서 나의 과거가 그 어떤 상흔을 남겼든 다시 툭툭 털고 걸어가야만 한다고 얼마나 스스로를 납득시켰던가...

 

  하지만 '벽은 속삭인다'의 로즈네는 그런 우리들의 체념 앞에서 반문한다. "과연 그렇게 잊는 것만이 최선일까?"라고... '오히려 우리는 잊기보다 더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2.

 

   이 소설은 짧다. 185페이지 정도의 분량이다. 문장이 간결하고 꾸밈과 군더더기가 없이 담백해서 언뜻 레이먼드 챈들러의 하드보일드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가지게 하는 이 소설은 그 쉽고 짧은 문장 만큼이나 수월하게 읽히지만 사실은 '고통을 기억한다'를 테마로 해서 그 주제가 선명하게 부각될 수 있도록 작가가 꽤 세심하고 정교하게 설계한 소설이다.

 

  '벽은 속삭인다'라는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파스칼린 그녀는 공간의 대한 감수성이 강하다. 그녀 엄마의 말에 따르면 어릴 때 부터 그녀는 유달리 남들은 느끼지 못하는 공간에 간직된 기억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공간에 대한 일종의 사이코 메트리 능력 같은 것이 있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삶을 위해 새로운 공간을 찾았던 그녀는 그러나 그 예민한 감각으로 인해 그만 그 공간이 가진 비밀을 알게 되고야 만다. 그러니까 자기 이전에 그 공간에 살았던 사람이 연쇄살인마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바로 여기서 로즈네가 이 소설에서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단적으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한 공간의 거주자가 바뀌는 것은 곧 그 공간에 깃들었던 과거의 역사가 지워지고 다시 새롭게 쓰여지는 것을 비유할 수 있다. 그렇게 파스칼린이 옴으로써 원래 그 공간에 있었던 모든 일들은 이제 망각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 사라지는 역사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한 여자가 아무 이유도 없이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당한 역사이다. 무자비한 폭력이 초래한 커다란 고통과 끝모를 상실의 역사이다. 과연 이런 역사가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지워지는 것이 옳은 일일까? 당신의 마음은 여기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제목의 '벽은 속삭인다'는 바로 이런 질문을 당신에게 던지는 것이다. 그렇다. 오로지 '벽'만이, 그 역사가 새겨진 공간만이 그런 질문을 한다. 왜냐하면 그 공간이 새로이 사람을 받을 준비가 다 되었듯이 이미 그 역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지워져 버렸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로즈네의 질문은 사회적 차원까지 나아가게 된다. 우리는 왜 그 아픔을 기억하기도 전에 망각부터 하려드는 것일까? 어쩌다 그 망각을 지울 수 없는 과거에 대한 보편적 치료제로 가지게 되었나? 그것은 개인적 차원에서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나 아니면 사회가 그렇게 하도록 개인을 길들인 결과일까? 이렇게 말이다.

 

 

  벽의 속삭임은 그렇게 깊고 포괄적이다. 그리고 파스칼린은 그 질문을 그녀 특유의 감수성을 통해 듣는다. 벽은 누구에게나 속삭이지만 들을 수 있는 자는 파스칼린 뿐이다. 하지만 그건 그녀가 가진 특유의 감수성 탓이 아니었다. 그녀가 누구보다도 그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자신의 아픔으로 간직할 수 있는 것은 그녀 역시 똑같은 고통 그러니까 사랑하는 딸을 속절없이 잃어버린, 커다란 상실을 가진 자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기와 무관하지 않은, 어쩌면 바로 자기에 대한 얘기이기도 한 속삭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파스칼린 그녀에게 있어 희생자들은 모두 그녀의 '딸'과 같은 존재가 된다. 그래서 파스칼린이 연쇄살인마에 희생당한 이들이 죽은 곳을 찾아다니며 애도하는 여정은 사실 남편 프레데릭과 그녀의 동료 엘리자베트의 행위로 대표되듯이 모두가 그녀에게 '잊으라', '잊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강요하는 가운데 그것에 저항하여 어떻게든 끝끝내 자신의 '딸'을 기억하고자 하는 애절하면서도 절박한 여정이자 아무리 그 기억이 자신에게 끔찍한 고통이자 커다란 상실감을 안겨주더라도 단순히 잘 살기 위해 그것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오히려 끝까지 그 고통을 껴 안고 당당히 살아가겠다는 선언의 여정인 것이다.

 

 

  고통은 언제나 대체불가능하다. 따라서 파스칼린의 이러한 저항 역시 고독할 수 밖에 없지만 바로 이 저항의 고립성을 통해 로즈네는 사회가 전반적으로 개인에게 강박적으로 행하고 있는 망각 전략으로 확장시킨다. 소설에서 파스칼린의 전남편 프레데릭과 그녀의 동료 엘리자베트는 그러한 사회를 상징하고 있는데 이와같은 상징성은 프레데릭으로 보자면 그와 연쇄살인마가 가지는 유사성에서 드러난다. 즉, 딸아이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프레데릭은 어느새 재혼하여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느데 이와 마찬가지로 사회 역시 죽음을 야기한 연쇄살인마를 그저 감옥에 유폐하는 것으로 간단히 그 모든 죽음과 그것이 야기한 고통들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프레데릭이 보이지 않게 치워버림으로 개인들을 망각하게 만드는 사회의 전략을 의미한다면 파스칼린의 동료로서 누구보다 사교적이며 흠잡을 데 없는 여성으로 나오는 엘리자베트는 치워버린 뒤 사회가 가하는 망각의 후속 조치들을 의미한다. 그러한 사회의 후속조치들은 특히 두 단계에 걸쳐 행해지는데 첫번째 단계는 삶에 아무 도움이 안되니 잊으라고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것이며 그 다음에는 보다 쉽게 잊을 수 있도록 다른 볼거리, 쾌락거리들을 공급하는 것이다. 소설속에서 엘리자베트는 정확히 그와 일치하여 행동한다. 우선은 자신의 방에서 연쇄살인마에 의해 한 여자가 죽은 것 때문에 파스칼린이 불안을 호소하며 엘리자베트에게 상담을 해 오는 장면이다. 그 파스칼린에게 엘리자베트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 역시 파스칼린 처럼 이전 사람이 자살한 방에서 살았던 적이 있는데 자기는 거기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나 같으면 아무렇지 않을 거에요.   옛날에 내가 이사한 원룸 욕실에서 어떤 남자가 자살을 했어요. 하지만 난 까맣게 잊고 살았어요.(p. 30)

 

 

   사실 엘리자베트의 이 말은 우리가 늘 하곤하는 말이기도 하다. 일종의 보편적 행태다. 그렇게 그녀는 파스칼린이 왜 과거의 고통을 잊고 새롭게 다시 출발하는데 그토록 힘들어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어차피 지나간 과거이지 않은가? 하지만 산 사람은 또 계속 살아야 하지 않는가? 과거의 고통에만 얽매이면 제대로 살지 못할 것이 아닌가? 그러니 삶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기억일랑 빨리 잊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더 좋지 않나? 새 술은 새 부대에... 실연이든 실패이든 아무튼 어떤 식으로든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자들이 가장 많이 듣는 이런 말을 우리는 똑같이 사회로 부터도 참 많이 듣는다. 이를테면 각종 천재지변이나 인재가 일어났을 때 사회는 늘 그 재난과 사고가 가져온 아픔을 헤아리기 보다는 일단 복구로써 먼저 지우고 본다. 그리고 그렇게 덮어둔 다음 그 위에 서서 외친다. '오늘의 이 아픔을 딛고 새롭게 시작하자!'고. 혹은 광복절날 우리나라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연설했듯 '이제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이 화합' 운운 하듯이. 늘 그렇게 사회는 '새로운'에 방점을 찍어 뭔가 밝고 희망찬 이미지로 사람들의 눈을 돌리고 그렇게 밝은 내일로 나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하지만 여기에 이런 반문이 있을 수 있다. '정말 그러냐고? 너무나 커다란 아픔은 사회가 잊지 않기 위해 기념관이나 기념물 같은 것을 만들지 않느냐?'고. 사회도 그렇게 말하고 우리의 상식 또한 잊지않기 위해 기념관을 만드는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 이면의 진실은 다르다. 사회가 그런 기념물이나 기념관을 만드는 보다 진정한 이유는 그렇게 기념물이나 기념관 같은 대표적인 상징을 만들어 거기에 모든 집단의 기억을 집중 투사해서 오히려 개인들 각자가 나눠 가지고 있는 기억들을 지워버리기 위함이다.

 

  행여 이 말이 얼른 이해되지 않는다면 당신의 핸드폰을 한 번 떠올려 보라. 전화번호를 손쉽게 저장시킬 수 있으니까 오히려 머리로 전화번호 외우는 것은 더욱 힘들어지지 않았나?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나 일리아드 같은 대하 서사시도 통째로 암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그러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아무 때나 이용할 수 있는 저장매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런 이치이다. 사회가 흔히 기념한다면서 세우곤 하는 각종 기념물 혹은 동상들은 이러한 저장매체와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언제든 가서 되새길 수 있는 대상이 있음으로 개인들이 기억함에 대해 별도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념관, 기념물은 사회가 이런 말을 하는 것과도 같다. "야, 언제든 가서 볼 수 있는데 뭐하러 머리 아프게 기억하려 애쓰냐?" 이렇게. 어쩌면 여기에서도 '뭐, 틀린말은 아니잖아' 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 기념관이나 기념물이 사라진다면? 그 사라짐은 단지 사물의 사라짐만은 아니다. 그것은 거기에 집약된 우리 모두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하나의 사물로 인해 우리는 더이상 개인별로 기억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사회로서도 이득인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의 기억을 지우는 것보다 그냥 기념물 기념관 하나를 없애는 게 나으니까 말이다. 듣기에 우리나라의 독립기념관과는 달리 동유럽에 산재한 아우슈비츠 같은 유태인 수용소는 그 어떤 복원과 복구도, 기념물 조차 없이 원래 있었던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그것은 그렇게 그 어떤 후대의 덧칠이나 수식없이 단순히 '존재'한다. 마치 치유가 영원히 불가능한 '영원한 현재'로써... 일종의 트라우마 처럼... 그래서 사실은 지우기 힘든 기억이 된다.

  

 

  그런데 사회가 그렇게 해도 안 넘어가는 이들이 있다.

 

  엘리자베트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파스칼린 처럼. 그럴 때 사회는 어떻게 하는가? 로즈네가 무서운 것은 이 역시도 소설에 정교하게 새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파스칼린의 어머니와 엘리자베트에게서 나타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파스칼린의 어머니는 공간이 간직한 기억에 대해 느끼는 기묘한 능력이 이미 파스칼린에게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부분은 파스칼린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능력으로 인해 파스칼린의 어머니가 지적하고 싶었던 사실이 정말은 파스칼린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즉 그녀의 어머니가 정말 뜻하고 싶었던 걸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해보면 파스칼린이 '비정상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파스칼린 어머니의 말은 언뜻보면 파스칼린을 위해서 하는 말 같지만 사실은 그렇게 말함으로써 과거의 고통에 집착하는 자신을 파스칼린 스스로 '내가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때문에 이러는 것이로구나' 여기게끔 만드는데 있다. 파스칼린의 어머니는 상실과 고통을 기억하려는 그녀를 고통과 상실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 문제라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실은 고통과 상실을 기억함이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정상인이 되려면 그것을 지워야 한다고 은연중에 설득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사회가 행하는 망각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과거의 고통과 상실을 기억함이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것. 과거의 고통을 기억함이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병적인 집착'이라는 레떼르를 붙이는 것.  더구나 로즈네는 엘리자베트가 파스칼린에게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유하는 장면을 내내 자주 반복하는데 이 역시 이러한 사회의 망각 전략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회는 과거에 매달리는 것은 병적인 집착이며 현재에 천착하는 것만이 정상적인 것이라  유포한다. 개인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아픈 과거는 재빨리 지워야 할 것, 도려내야 할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아래의 인용문은 여기에 더하여 엘리자베트가 사실은 '사회' 그 자체를 나타내는 기표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엘리자베트는 내 말을 끝까지 듣더니 믿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당브르 가에서 시작되었다고. 그 때부터 내가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고. 다른 세상으로 떠나버린 사람처럼. 그녀는 위험한 일이라며 나에게는 그녀의 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로베르도 있지 않은가. 로베르도 나를 걱정한다고 했다. 그도 나를 돕고 싶어한다고 했다. 모두들 나를 돕고 싶은 것이었다. (p.132)

 

 

 

   그리고 또 다른 전략의 하나는 얼른 다른 '쾌락거리'를 가져다 줌으로써 잊게 하는 것이다.

바로 소설 속에서 엘리자베트가 혼자가 된 파스칼린을 위해 소개시켜 주는 새로운 남자인 '로베르'라는 존재가 그것이다.

 

   내 존재의 가장 은밀한 곳에 들어와 있는 사람은 더 이상 로베르가 아니었다. 다른 여자를 위해 나를 떠난 프레데릭도 아니었다. 한 남자였다. 살인범과 같은 남자. 살인범과 똑같은 몸짓과 똑같은 움직임을 하는 남자. (p.95)

 

 

 

   이렇게 엘리자베트는 새로운 연애의 기쁨으로 파스칼린이 가진 과거의 아픔을 대체하려 한다. 사회가 대중문화와 유행으로 늘 새로운 관심거리을 창출하여 현실의 아픔에서 눈을 돌리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래서 로즈네는 그런 로베르에게 파스칼린이 거의 넘어갈 뻔 했을 때 파스칼린으로 하여금 프레데릭을 떠올리게 만들고 끝내는 로베르의 목을 조르게 한다. 그렇게 파스칼린 개인의 '이대로 망각하지 않겠다'는, '지금 그대로 고통과 상실을 기억을 통해 껴안겠다'는 의지의 폭발적 분출로 만든다. 그리하여 오로지 그와 같은 개인의 강력한 저항 의지만이 사회가 강요하는 이러한 망각 전략을 끊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렇게 '벽은 속삭인다'는 제인 오스틴의 '엠마' 처럼 표면과 이면이 사실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 소설이다. 표면에서는 상실의 아픔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해 급기야는 광기로까지 발전해 버린 한 여인의 여정으로 읽히지만 그 이면에 흐르는 보다 더 진실된 얘기는 사회가 강요하는 망각에 맞서 비록 그것이 끔찍한 고통이라 할지라도 기억함으로 당당히 삶의 일부로 껴안으려 하는 한 여인의 절박하면서도 고독한 투쟁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로즈네에게 물어야 한다. 왜 이토록 정교하게 세공하면서까지 집요하게 기억함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인가?

 

   여기에 대해 그녀는 단적으로 대답한다. 망각은 반복가능성의 또다른 이름이라고...

 

바로 이를 위해서 로즈네는 파스칼린의 전남편 프레데릭이 재혼하여 다시 딸을 가짐과 동시에 감옥에 갇힌 연쇄살인마가 탈출하는 것을 그리는 것이다. 다시 임신된 딸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를 가지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연쇄살인마가 다시금 탈출함으로써 섣부른 망각의 강요는 결국 비극을 되풀이할 뿐이라는 암시를 가지게 된다. 즉 쉽사리 잊혀진 것은 쉽사리 다시 돌아온다. 그것이 로즈네의 결론이며 그래서 그 반복가능성을 끊기 위해 이토록 기억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프레데릭이 재혼한 아내가 딸을 임신했다는 말을 듣고 죽은 딸의 기억을 전해주려 그들의 집 문 앞에 파스칼린이 서 있는 마지막 장면은 광기의 행동이 아니라 고통을 환기시켜 같은 기억의 연대로써 비극의 반복적 연쇄를 끊고 싶은 로즈네의 진심어린 최후의 '말'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로즈네의 절절한 호소 아래엔, 저자 자신 서문에서 직접 밝히기도 하고 소설에서마저 삽입하고 있지만, 1942년 7월 16일. 그 검은 목요일의 '벨디브 사건'이 있다. 그건 16일과 17일 양 이틀간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의 어용정부 비시정권 아래에서 자행된 13,152명의 유태인 체포 사건으로 그렇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마구잡이로 잡아들인 유태인들은 모두 아우슈비츠로 직행하여 학살당했다. 그러한 끔찍한 사건이 있었는데도 로즈네가 직접 다시 찾아간 사건이 일어난 넬리통 가에는 그 어떤 벨디브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있는 건 다만 기념비 하나 뿐. 그걸로 벨디브의 비극은 깨끗하게 잊혀졌던 것이다. 세상에 이럴수가! 로즈네는 그 때의 느낌을 파스칼린의 말을 빌어 말한다.

 

 '60년 전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그럴수가!' (p.147)

 

 '슬프고 당황스러웠다(p.148)'

 

 

 

  그러니까 '벽은 속삭인다'는 로즈네의 그 때 느꼈던 슬픔, 그 당황스러움에서 나왔다. 어떤 비극이라도 표백시켜 버릴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울분이 연쇄살인마에 의해 딸을 잃어버린 가족들의 분노로, 다시는 벨디브와 같은 비극을 반복하고 싶지 않은 절박함이 딸을 잊지 않으려 애쓰는 파스칼린의 절박함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었다.

 

  얇지만, '벽은 속삭인다'는 그런 소설이다. '제발 잊지말아달라'는 그 호소가 너무나 절박해서 어쩐지 책장을 만진 손끝으로도 묻어나올 지경이다. 그 모든 절박함으로 그녀는 이 한 문장을 알리기 위해 소설을 썼다.

 

 

'고통에 기꺼이 참여하고 그 기억으로 연대하라!'

 

  쉽사리 잊혀진 것은 다시 쉽사리 돌아온다. 요 몇 년간 우리 역시 많이 보지 않았는가? 단적으로 이 사회가 다시 80년대로의 회귀했다는 말에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서 그걸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우리에겐 잊지말아야 할 것이 이제 너무나 많아졌다. 용산 참사, 쌍용자동차의 무자비한 정리해고(이와 관련해 이미 2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강정마을 등등... 로즈네의 절박함은 그리 먼 얘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의 절박함이기도 하다. 쉽사리 눈 감고 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면서 고개를 돌리면 언젠가 또 반복된다. 그렇게 이 비극을 또 물려주게 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기울여야 할 진짜 이유이다.

 

   오래도록 울리는 그 트라우마적 이명(耳鳴)에 말이다...

 

  



l****1 2012.02.03. 신고 공감 1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벽이 고통을 느낀다, 쉿! 정신 착란 주의!
"벽이 고통을 느낀다, 쉿! 정신 착란 주의!" 내용보기
대개 역사적으로 민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장소를 오늘날 발견하기란 수월치 않은 일이다. 참지 못하고 흔적을 아예 지워버리는 일을 선택하곤 하기 때문인데, “공간들이란 희미하게나마 그곳에 머물렀던 이들의 흔적을 간직”한다는 경외의 발로일 것이다. 이러한 공간의 기억이 모티브가 되어 한 여인의 의식을 완벽하게 허물어뜨리는 여정을 쫓는 것이 이 소설이다. 아마 이 작
"벽이 고통을 느낀다, 쉿! 정신 착란 주의!" 내용보기

대개 역사적으로 민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장소를 오늘날 발견하기란 수월치 않은 일이다. 참지 못하고 흔적을 아예 지워버리는 일을 선택하곤 하기 때문인데, “공간들이란 희미하게나마 그곳에 머물렀던 이들의 흔적을 간직”한다는 경외의 발로일 것이다.

이러한 공간의 기억이 모티브가 되어 한 여인의 의식을 완벽하게 허물어뜨리는 여정을 쫓는 것이 이 소설이다. 아마 이 작업이 후일 유태인 처형에 동조한‘벨디브(유태인 강제수용 벨로드롬 경기장) 사건’을 소재로 한 『사라의 열쇠』 집필로 연결되었던 모양이다. “돌이 인간의 불행을 빨아들이고”, “벽이 고통을 느낀다고 믿었던” 것처럼 특정 공간을 만들어내는 벽, 집, 건물 등에 스며들어 있는 과거 사람들의 감정을 예민하게 불러내고 그 고통을 위로하려는 의지의 투영이었을 것이다.

 

마흔 살의 이혼녀,‘파스칼린 말롱’은 새 출발을 다짐하며 자기만의 거주공간을 마련한다. 첫 눈에 자신의 이러한 상황과 기분에 걸 맞는 집의 입주는 부푼 기대와 충일한 만족감으로 가득하게 한다. 그러나 이사하는 날, 현기증과 구토 증세, 오한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지만, 사무실에 출근하면 이 증세는 말끔히 사라진다. 왠지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는 것이 두렵기만 한데, 이 집에서 일곱 명의 여성을 살해한 연쇄살인 사건의 첫 번째 여성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죽고 있으며, 그 장소의 예외가 어디 있겠느냐고 자위하지만 구토와 어지럼증, 악몽은 점점 심화되기만 한다.

“어떤 장소에서 무의식적으로 느껴지는 강렬한 느낌”, 이 낯설고 거북한 기운, 그녀는 사건의 기록을 검색하곤 피살자가 열여덟 앳된 여성임을 알게 되고, 나머지 여섯 명의 연쇄살인 희생자가 된 여성들 또한 열다섯, 열일곱의 어린 여자들이었음에 살인자에 대한 증오와 두려움, 피살자들에 대한 연민이란 양가적 감정에 시달린다. 죽은 이들의 피살 현장을 한 곳씩 찾아 장미 한 송이에 애틋함을 담아 두고 오는 발길을 반복한다. 그 공간들에 그네들의 응어리진 고통이 숨 쉬고 있다는 믿음으로.

이 괴이한 장소에 대한 연민의 집착은 그녀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데, 회사에 손실을 가하는 결정적인 업무실수의 반복으로 나타나고, 소개받은 남자와의 섹스는 그의 목을 졸라댐으로써 피폐화되어가는 정신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이것은 자신의 죽은 아이, ‘엘레나’에 대한 지울 수 없는 여인으로서의 고통스런 기억이 잠재의식 속에서 피살된 일곱 명의 여성들에 투사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생후 육개월 만에 죽어간 아이에 대한 애통함은 이혼의 상처로 더 깊숙한 의식에 자리하고, 전 남편의 새로운 여자의 불룩한 배는 절망의 극한으로 치달아 정신착란의 상태에 이르게 한다. 깊은 상실감에 허우적거릴 때 위로 받기는커녕 무관심과 배신이 돌아오고, 공간에 스민 영혼의 교감이란 비의적 감수성을 지닌 여인으로서는 감당 할 수 없는 정신의 무게이다. 마침내 이 착란적 고통을 해결하려는 듯이 달려가는 장소는 섬뜩하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녀가 찾아간 그 장소적 공간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공간적 장소가 간직하고 있는 감정과 기억들이란 모티브는 자연스레 인간의 정신, 그 내적 심리의 반영으로 연결된다. 내 손길과 시선이 익숙하게 묻어있는 가구들, 그리고 내 몸처럼 안락한 느낌을 주는 나의 집처럼, 사랑의 기억과 같이 떠오르는 마로니에 공원과 가로수가 있던 붉은 벽돌의 카페처럼, 담과 벽들, 집과 건물들은 어떤 감정의 흔적들을 분명 담고 있다. 아니 내 내면의 정신작용이 그 감정의 흔적들을 입히고 불러내는 것일지도. 간결하면서도 풍부한 정서와 치밀한 심리적 묘사를 담아 슬픔과 그리움, 원망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알 수 없는 기운에 매료되게 하는 이 소설을 읽다보면 어느새 우리도 소름끼치는 착란의 세계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음침한데 아름답고, 불안한데 명쾌한 낯선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