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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교수님 1주기 기념으로 발간된 대담집이다. 1989년부터 2015년까지 총10개의 대담이 실려 있었다. 내용을 모두 읽고 <대담집 발간에 부쳐>라는 김명인 교수의 글을 읽었다.
내가 생각하는 사상은 독창적이면서도 보편적 공감과 설득력, 그리고 쓸모를 지니되, 그것을 숙성시켜낸 사람의 삶속에서 실천적으로 검증되어 그 삶과 일체가 된 것,즉 그럴만힌 절실함 속에서 자신의 삶과 불가분의 일체가 된 것, 즉 그럴만한 절실함 속에서 자신의 삶과 불가분의 일체가 된 생각이어야만 한다. 그것은 그 완성도나 세련성과는 무관하다.-p 8
이런 의미에서의 사상가 반열에 신영복 교수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올려놓는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었다. 1994년 친구로 선물받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책은 색이 바랜 채 내 책장에 잠자고 있었고, <더불어 숲>,<나무야 나무야>,<처음처럼>으로 먼저 그를 만났다. 그 책들을 읽으면서 그를 일찍 만나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 20년간의 감옥 생활을 거치면서 깊게 다져진 그의 내면의 모습과 후세의 우리에게 들려주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짠하게 박혔다. 이 대담집은 여렴풋이 알고 있던 그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김명인 교수의 의견에 공감을 표할 수 있을만큼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내 지식이 얕아 그의 생각을 모두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경제학도이기에 국내외 경제에 대한 부분을 피력하고, 마르크스 주의를 비롯한 많은 사상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귀를 쫑긋 세웠지만 완벽한 이해보다는 공감정도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많은 공부가 내 앞에 남아있구나를 실감했고, 그러한 부분들은 한번더 정독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10개의 대담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대담에 대한 이야기를해보고 싶다.
1. 모든 변혁 운동의 뿌리는 그 사회의 모순 구조 속에 있다. 대담자 : 정운영 (1944~ 2005, 언론인, 경제학자) 1992년
앞서 읽었던 그의 책을 통해서는 알 수 없었던 그의 어린시절부터 중,고등,대학시절의 이야기와 통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하게된 20년 감옥생활, 출소한 후 결혼 과정과 성공회 신학대학에서의 교수 생활의 시작까지 전반적인 그의 인생 여정을 볼 수 있었다. 운명이란 것이 있는 걸까? 그렇게 몰고간 듯한 여러 상황들을 만나면서 안타까운 맘이 들었었다. 20년을 감옥에서 보낸 동안 얻은것과 잃은 것에 대해 어떻게 정리하시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러했다.
저는 20여년의 수형 생활을 통하여 크게 두가지 점에서 배운 바가 많습니다. 첫째는 해방 전후의 역사를 역사로서 이해해 오던 관념성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중략) 둘째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과 나눈 이해와 공감입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를 그 모순 구조 속에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확실한 토대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와 현실에 대한 이해,이것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p101~102
결코 짧지 않은 20년 간의 수형 생활을 '인생대학'이라고 표현하며 배운 것에 대해 담담히 얘기하는 모습을 보며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똑 같은 시간, 똑 같은 상황이 주어진다고 했을때 그 삶을 살아내는 방식에 따라 얼마나 다른 삶이 될것인가 ?
2. 이라크 전쟁 이후의 세계와 한반도발(發) 대안의 모색 대담자 : 김명인 (황해문화 편집주간,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 2003년
2017년 우리가 처한 현실을 생각하면서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던 대담이었다. 우리나라가 제 2의 이라크가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이 들었다. 주변 국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이라크 침공을 감행했던 미국이었다. 신영복 교수의 말씀처럼 미국이 평화체제를 위한 협상용으로 핵을 이용하고 있는 북한과의 대화는 회피하고, 대(對) 중국 또는 동북아에 대한 전략 구상의 축으로 북한을 바라보고 있다면 자국이 의도하는 대로 하기 위해서 언제든 한반도는 제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이번에 이라크 침공, 한반도의 핵 위기 그리고 여중생 사망에 항의하는 집회를 통해서도 한반도의 전쟁 위험이라는 것이 북한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으로부터 올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나타나고 있지요.-p180
요즘 미국,중국,북한,우리나라의 정세를 보면서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국이 북한을 자극하고 있고, 우리 정부는 사드배치에 대한 보복조치를 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서도, 북에 위협을 가하는 미국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의견 하나 내지 못하고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하고 있다는 생각. 2003년 이라크 침공 후 우리 정부도 분명 많은 생각을 했을터인데, 전혀 변한 것 없이 위기상황을 지속 시키고만 있는 것이 답답할 따름이다.
그래서<논어>에서도 '곤이부지'(困而不知), 곤경을 겪고서도 알지 못하는 걸 하지하(下之下)로 보잖아요. 한 개인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만 인류사의 도처에서 그러한 현상이 번번히 목격 되지요. 그런 점에서 한반도 사태도 바로 그런 곤경의 극점까지 가기 전에 해결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봐요. -p200
옳으신 말씀이에요 싶으면서도 두려운 말씀이다.
3. 여럿이 함께하면 길은 뒤에 생겨난다. 대담자 : 정재승 (KAIST) , 2011년
20년 간의 감옥생활에 대한 얘기들을 나누고, 청중들의 질문과 답변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이 대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이 있다. '길의 정서를 갖자'
삶이란 무엇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거죠. 긴 호흡이 필요합니다. 하는 일 자체가 아름답고 보람 있는 자세로 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제가 길의 정서로 가자고 말하는 이유는 이때문입니다. 가다가 코스모스도 보고, 사람도 만나고, 발자국도 남기며, 그 자체를 동력 삼아 이끌어 가는 거죠. 그런 일하는 자세를 갖는게 필요하겠죠. 커다란 과제이기도 합니다.-p305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할 때 참 많은 것을 따진다. 결과가 없는 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다보니 생각만 할 뿐 시작 자체를 못하고 시간을 흘려 보냈다. 그런 나에게 이 말씀은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과정이 중요하다' 라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하기에 참 많이 들어왔던 말일 수도 있는데, 이 문장이 나에게로 쏙 들어왔다. 결과는 시도해보지 않은 이상은 알 수 없는 것 아닐까? 일단 시작하고 보자.
대담집이라 하기에 크게 기대하지 않고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읽어왔던 책들보다 좋았다고 말하고싶다. 신영복 교수라는 사람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던 사람인지 가장 많이 알 수 있었으니까... 정말 되새기고 싶은 좋은 말씀들이 많았지만,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적어본다면
그 사람이 세속적 가치에서 얼마나 뭘 이뤄 냈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인생에 시대가 얼마나 들어와 있는가도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시대를 정직하게 호흡하고,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는 삶,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삶이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그런 생각이 드네요. -p 334
진정한 의미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생각할 수 있는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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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개봉한 영화 중 한국형 좀비 영화인 [부산행]이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석우(공유)는 성공한 펀드매니저로 오로지 성공만을 위해 달려 온 인물이다. 영화는 석우가 딸과 함께 딸 부산행 기차를 타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이미
도심에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졌고, 기차 내에도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다. 항상 상위 계급에서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음의 궁지를 몰아 붙였던 석우는 이제는 반대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딸을 포함한 일행들과 함께 좀비가 있는 뒤 칸에 낙오되었던 석우는 좀비들과 사투를 벌이며 겨우 생존한 사람들이
피신해 있던 앞 칸으로 이동해 온다. 그런데 정작 앞 칸에 있는 사람들은 석우 일행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바이러스에 감염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니,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들만 살기 위해
이들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겨우 들어온 석우와 몇 명의 생존자들에게도 감염의 위험이 있으니 자신들이
있는 칸을 떠나라고 말한다.
이 영화는 위기와 공포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함께 살 수는 없는 것일까?’ ‘함께 같은 기차 칸에서 서로를 도우며 부산까지 갈 수는 없었던 것일까?’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이와 비슷한 생각이 든다. 작은 땅
덩어리에서 보수와 진보로 나뉘고, 동과 서로 나뉘고, 노년층과
청년층으로 나뉘고,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나뉜다. 그리고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상대가 죽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의 사상이나 생각은 우리 공동체를 오염시키기에
그 생각을 격리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는 해방 후 70년
가까이를 편을 나뉘고 상대를 격리시키며 살아왔다. 또 얼마를 이렇게 살아갈까? 또 얼마큼 상대방을 증오하고, 상대방을 죽이려 할까?
내가 처음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접한 시기는 외환위기로 인해 IMF 구제금융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우리나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업을 도태시키고, 근로자를
해고하며,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던 시기였다.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한껏 잔인해져도 용납되는 시기였다.
그때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 사색]이라는 책을 읽었다. 통역당 사건으로 사형을 언도 받고, 다시 무기징역으로 감영 받고, 20년만에 출소하여 자신의 감옥 생활
때 보내었던 편지를 엮은 책이었다. 이 책을 보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20년간 옥살이를 한 사람의 편지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람에 대한 따스함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며 세상과 사람에 대한 증오가 가득 차게 된다.
그래서 말과 행동에서 그 증오가 묻어 있기 마련이다. 또한 감옥과 같은 극단적인 환경에서 20년 가까이를 생활하다 보면 내가 살기 위해서 타인을 증오하고 미워하게 된다.
그런데 신영복 선생의 글에는 그런 증오와 미움이 없었다. 오히려 사람을 향한 따스함이 있었다. 혹시나 환경으로 인해 사람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중략-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P 93
이제 또 20년이 지난 후에 신영복 선생님의 대담집인 [손잡고 더불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출소 다음 해인 1989년부터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인 2015년까지 여러 저명 인사들과 대담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살아 온 생애와 사상, 그리고 한반도와 세계 정세까지 다양한 분야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내용의 중심 키워드는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손잡고
더불어’이다. 서로를 미워하고 서로를 증오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는 없느냐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우리 사회가 서로를
증오하게 된 이유를 근대이성과 산업화가 만든 타인에 대한 ‘공포’라고
말한다.
“사회적 공포의 발생은 인간관계가 피괴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인간관계가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질서가 바로 사회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이 인간관계 자체가 없다는 것, 특히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삶의 구조인 도시는 사실 인간 관계의 황무지입니다. 공간 공동체, 마을이
갖고 있는 공간 공동체는 완벽하게 해체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P 208)
“그리고 또 과학의 발전이라는 것도 공포의 생산이지요, 이른바 상품으로서의 과학은 상품사회 고유의 자본축적의 과정을 충실히 따릅니다.
인간의 복지를 만들어 내기보다 공포를 양산하는 구조로 발전하는 것이지요.” (P 209)
이런 공포를 특정한 세력들이 이용함으로써 사람들은 공포에 감염된다. 내가
올라서기 위해서는 남을 밟고 일어서야 하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야 한다는 공포가 사람들을
마음을 감염시킨다. 공포는 애당초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존재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게 한다.
신영복 선생님은 이런 현대문명과 자본주의 사회가 만든 공포 속에서 함께 사는 삶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함께 사는 삶의 이미지는 ‘숲’이라는 공동체로 형상화 한다.
“전 삶의 현장으로서의 숲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숲은 다양성입니다. 화폐적 가치라는 단일한 가치 중심으로 모든 것을
질적으로 동질화하는 근대성에 대한 성찰의 화두로 숲을 내세웠습니다.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고,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 전(煎)자본주의와 비(非)자본주의도
공존하는 질서가 진보한 문명의 형태입니다.” (P 229)
“숲은 그냥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합이 아니에요. 작은 나무, 큰 나무, 늘
푸른 나무, 낙엽 지는 나무가 서로 거름도 하고 의지도 하면서 땅을 지키고 바람을 잠재우고 생명을 품어
나갑니다.” (P 333)
신영복 선생님이 꿈꾸던 더불어 함께 사는 숲이라는 개념은 아직 현실에선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니, 현실적으로 볼 때 점점 그 꿈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이 되어가는
것 같다. 세상은 점점 더 양극단으로 갈라져서 싸우고 있다. 상대에
대한 증오와 미움이 극단으로 향해 가고 있다. 우리가 함께 살 수는 없는 걸까? 이것이 신영복 선생님이 후세에 남긴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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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고 더불어 - 신영복 지음 / 돌베개 부제 : 신영복과의 대화 꼭 읽어야 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꼭 읽고 싶은 책이 있다. 물론 거기다 책을 보고 난 뒤 꼭 강좌도 듣고 싶은 저자도 있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만나는 곳에 있는 책과 저자들 중에 단연 으뜸은 바로 신영복 선생인데... 지난해에 세상을 등지셔서 유고집으로만 만날 수밖에 없는 데 그 유고집 두 권 중 한 권이 『손잡고 더불어』 이다. 선생을 당대의 스승이자 사표로 삼고자 했던 나는 신영복 선생의 책 들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물론 『담론』까지 출간된 선생의 책은 거의 다 본듯하다. 물론, 참석 가능한 웬만한 강좌는 꼭 참석도 했었고... 그렇게 그분의 그림자라도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뒤를 따르다 선생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암으로 인해 세상과 등지셨고 벌써 일 년이 훌쩍 지나갔다. 나도 세상도 진정하고 참된 사표를 잃었다. 선생의 소식을 듣던 당시 강원도에 일정이 있어서 외지를 향하던 우리 일행은 각자 개인적으로 선생을 조금씩은 알고 평소에 존경하는 마음을 공통으로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신영복 선생의 부음을 듣자마자 곧장 차를 돌려서 각자 집을 향했고, 나 또한 집에 연락을 해서 배우자와 함께 성공회대에 마련된 빈소를 향했었다. 이미 그전부터 암으로 투병 중이시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병세가 호전되시길 많은 사람들이 두 손 모아 기원했지만, 그렇게 빠르게 진행될 줄은 아무도 몰랐었다....ㅠ.ㅠ 시대의 지성이자 당대의 진정한 사표인 신영복 선생을 생전에 만나 뵙고 개인적으로는 딱 두 마디 대화를 했었다. 서울에서의 직장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낙향해서 인문학 강좌를 하는 집안 형님께서 고향에 한 번 모셔서 강의를 꼭 한 번 열고 싶은데 일정이 바쁘셔서 힘든 모양이라고 하면서, 다음에 만나면 꼭 인사를 드리고 특히나 선생께서 아주 가까이 지내시던 한 분이 우리 집안 어른이시고 나는 그분의 조카뻘 된다고 꼭 인사를 드리라고 해서 안부 인사를 겸해서 말씀 드렸었고.... 역시나 선생의 기억은 정확하고 대답 또한 냉철했다. 선생께서 아는 그분의 조카들은 내가 대부분 기억하는데 그 중에 내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고 하셨고, 나 또한 당연히 잘 모르실 거라고 말씀드리면서 나도 먼 친척 된다고 인사를 드렸었다. 두 번째 마디는 내가 다른일로 자주 뵙는분과 다른 일로 만나 말씀을 나누다가 선생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와서 평소 자주 연락하지 못하고 있으니 강의를 청강하러 간 김에 그분의 이름으로 안부를 꼭 전해달라고 해서 여쭈었던 기억이 어제일처럼 생생한데.... 그나저나 안타까운 심정으로 성공회대 빈소를 뒤로하고 나온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훌쩍 지나고 유고집인 『손잡고 더불어』와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두 권이 나왔다. 1988년 출소 이후 2015년까지 나눈 대담들을 모아서 책으로 냈다. 선생께서 평소에 말씀하시던 '찬 이성'과 '더운 가슴'을 나를 옆에 앉혀놓고 옆에서 말씀 하시는 것 처럼 글이 살갑게 다가온다. 웬만한 선생의 글은 다 읽었지만. 선생의 글은.....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며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
***** 때가 때인지라 여러가지 글귀가 날 붙드는데... 가슴에 확 다가와서 나의 마음을 딱 붙들어 세우는 책 후반부의 마지막 글귀.....
그 사람의 인생에 시대가 얼마나 들어왔는지.... 내 인생에는 지금의 시대가 얼마나 들어왔나... 돌아본다. 양심을 지키려면 행동해야 한다.... 손잡고 더불어 -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시대의 스승이자 사표였던 신영복 선생의 1주기를 추모하며 1989년부터 2015년까지 선생께서 여러 매체들과 인터뷰한 글을 모은 책으로, 그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냉철하게 바라보는 시각과 힘을 기르라고 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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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고 더불어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내 자신이 작아지는 지 생각이 얼마나 편협하게 살고 있지 않았는 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책 속에 나와있던 사람들이 자기 경험 속에 내 얘기를 앉힐 수 있는 시간을 주거나, 자기의 경험을 포기하고 내 그림 속으로 들어오게 하거나 해야죠,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배려해야 대화가 가능한 거예요 라는 글귀가 저에게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생활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만 언뜻 되돌아보며 누군가에게 나의 얘기만을 들어주기를 바라며 타인의 말을 듣기보다는 내 얘기를 하는 데에 급급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인정하거나 수긍하지 않고 우리는 대화를 하고 있지는 않았나 하고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아주 가까운 경우를 보더라도 자녀와 부모간의 대화에서조차 아이에게 일방적인 어른들의 잣대로 얘기를 하고 강요하며 우리는 살고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동안 살아온 연륜이나 경험으로 미리 결정내려버린 어른들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는 생각하에 진정한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강요를 무의식중에 하고 살고 있는 게 현재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 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나와 사는 삶의 방식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과의 진정한 대화를 위해 그 사람들의 얘기를 가슴 깊이 들어주는 자세를 이제부터라도 키워야 하지 않을 까 싶습니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왠지 모를 고집인 지 타인의 이야기나 가족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내 자신의 생각으로만 말하고 강요하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부쩍 들어지는 데 이제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더 넓은 시야와 더 폭넓은 사고를 키우는 생활태도를 억지로라도 실천하다보면 어느순간 내 자신도 더 발전되어 있지 않을 까 기대도 해집니다. 우선 가장 기본적인 가족간의 대화에서도 내 얘기를 무턱대고 강요하고 고집피우기보다는 가족 개개인의 이야기에 더 귀기울이고 배려하는 생활습관을 키우려고 합니다. 그럼으로써 내 자신도 조금 더 마음이 넓어지고 마음도 더 너그러워지는 자아가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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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통령 선거 때문에 언론에서 좌파, 우파 나뉘어서 이념논쟁 하는 것을 보니 훌륭한 좌파 지식인 이었던 신영복 선생님이 더욱 생각 납니다. 얼마 전 출판된 손잡고 더불어 책에 신영복 선생님 생전의 인터뷰나 대담이 수록되어 있어서 마치 생전의 육성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위안이 됩니다. 여러 지식인들이 TV나 신문에서 의견을 피력할 때마다 신영복 선생님이 그리워 지지만 이렇게 책으로나마 선생님의 흔적을 느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좌파, 우파 모두 손잡고 더불어 나아가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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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신영복 선생님은 어쩌면 지금의 현 시국 상황을 예측하고 계셨던 것일까? 책의 첫 서문에 발췌된 "정치란 무엇인가. 평화와 소통과 변화의 길이다. 광화문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길이다." 우리의 마음속 영원한 참스승이고 영원한 숲이었던 그 스승은 이 나라가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서 촛불을 든 광화문 광장의 시민들의 함성으로 정치가 새로 시작될것을 예견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스승의 말씀대로 소통과 관계의 진리를 무시한 정치를 "천지인(天地人)"이 용납치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건 저만의 오판일까요?. 지난날의 스승의 진정성과 진솔함이 담겨있는 대담집 [손잡고 더불어]를 읽고나서 후회한 건 좀더 일찍 스승의 책들을 읽고 스승의 가르침을 깨닫치 못한 지난날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시간이라는 것이 영속성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지나간 시간 또한 귀중하고 소중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지나간 시간들이 어떤이에겐 추억과 회상이 되어 단순한 과거의 시간이 아닌 스승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자기 성찰의 시간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승의 책을 읽기 전까진 시간이 나에게 당연히 오는 과거와 현재,미래의 시공간으로만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단지 스승의 20여년 영어(囹圄)의 삶에 비춰 제 자신에 대한 시간을 허비했다는 자책보다는 너무나 옅은 지식을 갖고서 타인에게 엄격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을 하게 됩니다. 스승이 말씀하셨던 춘풍추상(春風秋霜)처럼 인격이 되있는 사람이라면 타인을 대할때 그 사람을 이해하려 하고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더불어 남을 배려할줄 아는 사람이 진정 삶의 가치를 높이는 사람이 아닌가 싶어 저의 못났던 시간의 순간들이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수많은 대담들을 접하며 스승이 말씀하셨던 참된 공부 "머리에서 가슴,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 제가 살아가는 인생동안 실천하고 실행하기엔 제 자신이 많이 부족하고 버겹게 느껴지겠지만 노력해 볼려고 합니다. 인생의 발걸음에 도중에라도 포기할라치면 스승의 가르침을 되뇌이고 곱씹으며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보기도 하면서,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하는 공동체속의 삶, 더불어 삶을 살고자 합니다. 스승이 염려하셨듯 현재 우리 사회는 극단적 집단 이기주의와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대결로 편가르기를 하며 "결집"보다는 민족적 분열로 파행의 급변을 맞고있는 시기로 보입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그릇된 판단으로 이 지경으로까지 국론을 만들어 놨다고는 하지만 꼭 그것만이 총체적인 분열과 파행이라 단정짓기엔 뭔가 석연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승이 언급하셨듯 우리 역사엔 항상 노론 세력이 권력을 지배해왔듯 권력의 상층부, 즉 보수세력에서 부패정치와 패거리정치를 일삼으며 오랜 역사를 이어온 잘못된 관행이 작금의 사태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 이후 세력들이 친일,친미를 도모하며 쌓아온 무소불위 권력을 이제는 국민들이 나서서 적폐청산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 결과물이 선거로 나오기만을 모든 국민들은,민초들은 염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의 MD(Missile Defense)미사일 방어 체계, 사드는 한반도를 위한 방어체계가 아닌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경북 성주에 사드를 강제로 배치하는 트럼프의 정책은 결국은 자국의 미사일 방어체계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정책임이 드러났지만 한미군사협정이라는 명목하에 정권이 바뀌기 전 국내에 이미 들여왔고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힘의 논리로 1조원이라는 사드 비용을 우리에게 전가하는 패권주의를 일삼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이런 미국의 패권주의적 MD체계를 2003년도에 대담에서 스승이 언급했던 사실은 우리에게 크나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스승의 미래지향적 국가관에 다시한번 감탄사를 자아내게 만듭니다. 사상가를 뛰어넘어 한반도 미래 정세를 정확하게 분석하는 능력에 우리의 군사 전략가들은 스승에게 자문을 일찍이 구해야 되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제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이라크 침공이 유전과 석유의 역학관계에서 단순히 석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이 아니었슴을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언론을 통해 대다수 분들도 그렇게들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대담자로 나오는 김명인 교수마저도 그렇게 알고 있는것으로 질의를 한 것을 보면 말이죠. 허나 그것이 전부가 아닌 석유의 결제 화폐가 미국의 달러화가 아닌 EU(유로화)로 바뀌는 것에 대한 위기를 막고자 이라크의 침공을 강행했던 것으로 스승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초강대국인 미국의 달러화가 유로화로 석유결제화폐가 바뀐다면 세계경제의 흐름은 또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미국의 패권주의가 내심 무섭기까지 합니다. 이렇듯 스승의 국제정세나 세계관, 역사의 흐름을 읽는 분석력에 얼마나 많은 공부와 연구를 하셨는지 알게 해주는 대담이기도 합니다.
스승은 노래를 합니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강물 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영어(囹圄)의 20년 세월동안 스승의 18번 노래였던 <시냇물>처럼 작은 냇물들이 흘러서 바다에서 만나듯 현재 우리사는 세상도 작은 희망들이 하나로 뭉쳐 보다 밝은 세상으로 다시 만날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이 책을 통해 인생의 스승을 만날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스승의 말씀을 통해 나 자신을 성찰해 볼수 있는 시간을 가질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닌 사람들과 부대끼며 손잡고 더불어 사는 세상이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스승이 가신지 1년이 지났지만 나의 마음속에 참스승으로 남아있는 故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은 영원히 잊혀지질 않을 울림의 가르침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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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러보는 이름,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돌베개, 1998년) 이후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놓치지 않고 보아오다 '강의'와 '담론'에서 머뭇거렸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이제야 짐작이 간다. 짐작이 간다는 것은 그간 신영복 선생님을 이해하는 바가 단편적이었다는 것과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많은 배움을 받으며 혼자 따르게 되었던 것 역시 무관하지 않다. 또한 발간되는 책을 중심으로 언론에 등장하는 글을 통해 선생님의 가치관과 지향점을 알게 되며 이를 바탕으로 선생님의 일상에서 앎과 삶의 조화를 떠올렸던 것이 사실상 전부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편견은 신영복 선생님의 1주기를 맞아 기획된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 신영복 1주기 특별기획”에 포함된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와 ‘손잡고 더불어’를 통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보여 진다. 우선 신영복 선생님을 떠올리면 바른 가치관과 바른 삶의 태도로 곧은 선비라는 인상을 떠올리며 그 틀 속에 갇혀 동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가 아닌 시대의 스승으로만 바라본 시각에서 보다 확장된 이해의 폭을 바탕으로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제시된 것으로 볼 때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은 의미가 크게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신영복과의 대화라는 부제를 건 ‘손잡고 더불어’는 선생님이 20년 20일의 수형 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이듬해인 1989년부터 타계하기 직전인 2015년까지 나눈 대담 중 선생의 사상적 편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대담 10편을 가려 뽑아 수록한 대담집이다. 25년 동안 김정수, 정운영, 홍윤기, 김명인, 이대근, 탁현민, 지강유철, 정재승, 이진순, 김영철 등 가톨릭 사제, 경제학자, 철학자, 문학평론가, 언론인, 문화기획자, 과학자 등의 인터뷰어들과 나눈 이야기들이 연대순으로 실려 있다. 신영복 선생님의 수많은 인터뷰 가운데 선생의 육성과 사유가 오롯이 담긴 대담을 선별하여 수록하였다. 대담 당시의 사진이 기록의 생생함을 더했다. “한 사람의 일생이 정직한가 정직하지 않은가를 준별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일생에 담겨 있는 시대의 양(量)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대의 아픔을 비켜 간 삶을 정직한 삶이라고 할 수 없으며 더구나 민족의 고통을 역이용하여 자신을 높여 간 삶을 정직하다고 할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시점을 달리한 대담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는 신영복 선생님의 일생이 담겼다. 어린 시절로부터 중고등학교를 포함한 학창시절, 4.19이후 정치정세와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감옥 그리고 출소 후 생활에 이르기까지 선생님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양심적으로 시대를 살아간 정직한 어른 신영복, 시대의 어른을 그리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보여 진다.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길게 보면서, 먼 길을 함께 걸었으면 합니다. 저도 그 길에 동행할 것을 약속드리지요.” 선생님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손잡고 더불어 함께할 우리 모두가 걸어 가야할 길임을 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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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손잡고 더불어: 신영복과의 대화 - 지은이 : 신영복 - 옮긴이 : - BINDING/Edition : 통혁당사건(재심으로 무죄판결됨)으로 20년을 감옥에서 보낸사람의 편안하고 날까로운 대화를 볼수 있다. 여러가지 이야기 들이 나오지만 일반적인 사람으로서 20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된 시대적 아픔이 마음속에 느껴진다.그리고 선생이 하신 애기중에서 존재론적 패러다임에서 관계론적 패러다임으로 변화하여 한다는 이야기는 가장 마음속에 와 닿는 이야기인것 같다.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그사람의 입장에서 내가 그사람 입장이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관계적 입장에서 사람들을 생각하고 사람들을 대하여야 할것 같다. 그럴때 진정한 관계를 통해서 사람들을 알게 되고 사람들과 진정한 관계를 이룰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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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고 더불어
신영복
경제적 풍요속에 있어도 사실은 자기의 이유를 갖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궁핍함 문명 이전의 원시적 삶의 조건에 있으면서도 아주 자족적이고 자유로운, 한마디로 자기의 이유를 갖고 사는 사람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유라는 문제를 양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123쪽)
큰아픔을 같이 짊어지고, 소소한 기쁨을 같이 나눌, 그게 신영복이 주장해온 ' 더불어 숲'의 정신이다. 그 숲속, 그의 너른 나무 그늘 안에 우리 모두 오래오래 머물 수 있기를!
신영복 선생님이 1968년 6월 통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다시 감형이 되어 20년간 감옥살이를 했다는 사실을 피상적으로만 알았다. 조선시대에는 연산군 때부터 노론들은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로 정적들을 제거하고 밥그릇을 챙겼다.
해방 후에는 노론 후손들이 빨갱이라는 올가미를 씌워서 모두 학살을 했다. 이승만은 제주 4.3 사건. 보도연맹으로 엮어 민중을 대량학살 했다. 박정희는 통혁당, 인혁당, 인혁당 재건위를 조작해서 사법살인을 했다. 전두환도 학림사건(배석판사 황우여)을 왜곡조작해서 전민련 학생들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를 했다. 그러나 모두 재심으로 무죄 판결이 났다. 간첩조작에 이용되는 일제 잔재인 국가보안법은 폐기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과정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 절망속에서도 선생님은 한줌의 햇빛으로도 행복을 느끼며 재소자들의 사연을 들어주며 공감하셨다. 계속해서 책들을 읽고 형수와 계수에게 엽서를 보내며 세상과 소통을 하셨다. 드디어 출감 교수로 재직하시며 제자들을 길러내고 책들을 출판해서 우리와 영혼의 대화를 나누셨다. 니체가 우리에게 요구한 초인의 모습이 아닌가?
이분의 모습에서 백범 김구와 장준하 김대중의 치열한 인생을 보게 된다. 우리의 역사에서 학살자들을 제대로 심판하였는가? 광주시민들에 무차별 발포명령을 한 전두환에게 통합이라는 이유로 김영삼이 사면을 해주자 이제와 또다시 폭도설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제 제대로 국제법상 반인륜범죄자로 처벌해서 또다시 선량한 시민이 대량학살 당하는 시대를 완전히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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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이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해서 포스트를 공유하였지만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인께서 답글을 달아 잊고 있던 기억을 깨워 주셨습니다. 바로 구입하여 읽었습니다. 대화 형식의 구성이라 인터뷰를 보듯 편하게 읽어 가지만 그 내용이 어렵습니다. 그 분의 평소 생각과 우리에게 제시하려는 메시지를 생각하며 어렵게? 읽고 있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정독하며 읽어봐야 할듯하고 그냥 가볍게 쑥쑥 읽어내려도 될 것 같습니다. 가까이 두고 몇번씩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