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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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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숲 신영복 돌베개/2022.2.21. sanbaram   여행 자유화가 시행된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세계여행을 책으로 엮어낸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 자기들의 경험이나 풍경, 세속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더불어 숲>은 세계 여러 나라 여행기임에는 틀림없지만 각 지역의 풍광보다는 역사적 의미를 짚어보고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점을 생각하게 하는지 짚어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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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숲

신영복

돌베개/2022.2.21.

sanbaram

 

여행 자유화가 시행된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세계여행을 책으로 엮어낸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 자기들의 경험이나 풍경, 세속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더불어 숲은 세계 여러 나라 여행기임에는 틀림없지만 각 지역의 풍광보다는 역사적 의미를 짚어보고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점을 생각하게 하는지 짚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내용으로 엮어졌다. 특히 세계의 각 지역을 고르게 여행하고 역사적 의미를 정리해 보려고 한 것이 보통의 여행기와 다른 점이라 생각된다. 또한 서간체로 되어 있는 것 또한 특징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저자 신영복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및 동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1988815일 가석방되어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 했으며 2016년 사망했다. 저서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신영복의 엽서>, <강의-나의 동양 고전 독법>, <처음처럼등 여러 권이 있다.

 

더불어 숲에 실린 글은 19971년 동안 중앙일보새로운 세기를 찾아서라는 기획으로 연재된 글이라고 한다. 세계의 역사 현장을 찾아서 20세기를 되돌아보고 21세기를 전망하는 기획이었습니다. 1, 2권으로 나뉘어 있던 것을 한 권으로 묶었습니다.(p.8)”라고 재출간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있다. 나무는 저마다의 발밑에서 물을 길어 올려야 하며 그러한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듯, 각 지역의 역사가 더불어 우람한 역사의 숲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여행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모두47개의 서간문으로 되어 있는데 처음 시작을 콜럼버스가 인도로 가는 바닷길을 발견하기 위해 출발한 포르투갈 우엘바 항구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스페인과 그리스를 거쳐 터키의 이스탄불, 인도의 갠지스강, 베트남, 일본, 중국의 만리장성으로 여행은 이어진다. 그리고 러시아, 독일, 영국, 프랑스, 로마, 이집트를 거쳐 아프리카의 희망봉, 브라질, 페루, 맥시코, 미국, 잉카제국, 페루, 아마존, 모스크바, 스웨덴,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그리스, 터키, 인도, 히말라야 산, 하노이, 일본, 중국의 양쯔강과 태산을 거쳐 황하에서 여행을 마무리 짓는다. 한마디로 전 세계를 일주하되 지루함을 없애고 역사적 흐름을 생각할 수 있도록 같은 나라를 두세 번으로 나누어 엮어가고 있다. 그 중에서 마음에 남는 부분을 아래와 같이 옮겨본다.

 

우엘바 항구의 산타마리아 호 : 식민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 자기와 똑같은 동류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면, 그리고 자기를 추종하게 하는 것이라면, 이곳은 지중해를 벗어난 유럽의 시작이면서 동시에 오늘날 도도하게 전개되는 세계화 논리의 출발지점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유럽이 중세를 벗어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콜럼버스가 이 항구를 떠난 1492년은 바로 그라나다에 있는 아랍왕조 최후의 궁전인 알함브라 궁이 함락된 해입니다. 이사벨라와 페르난도 왕이 결혼함으로써 통일을 이룩한 스페인이 800년간의 아랍 지배를 청산하고 국토회복을 완료한 스페인 통일의 원년입니다. p.29

 

마라톤 평원에서 : 마라톤 평원은 해안을 향하여 입을 대고 있는 주머니처럼 입구는 좁고 안쪽은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평원입니다. 전함 600척을 이끌고 마라톤 만에 상륙한 페르시아 대군은 전열을 채 가다듬기도 전에 갑자기 개미 목처럼 좁아진 협곡에서 학익진을 펄치고 있던 아테네의 중장밀집 창병의 돌격과 포위에 당황합니다. p.41

 

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 : 돌궐과 흉노는 중화라는 벽을 넘지 않고는 결코 온당한 실상을 만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유럽이라는 높은 벽을 넘지 않고는 이슬람과 비잔틴의 역사를 대면할 수 없습니다. 만리장성보다 완고하고 알프스보다 더 높은 장벽이 우리의 생각을 가로막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p.55

적군의 성을 함락시키면 통상적으로 3일 동안 약탈이 허용되는 것이 이슬람의 관례였습니다. 그러나 마호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난 다음 바로 이 소피아 성당으로 말을 몰아 성당 파괴를 금지시켰습니다. 다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성소를 파괴하지 말라는 어명을 내린 다음, 이제부터는 이곳이 사원이 아니라 모스크라고 선언하고 일체의 약탈을 엄금했습니다. p.57

 

인도의 마음 갠지스 강 : 바라나시는 매년 100만 명 이상의 순례자들이 찾아와 인도의 마음을 길어가는 곳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갠지스를 강가라고 부릅니다만 나는 당신의 편의를 위해 갠지스라 쓰겠습니다. p.61

 

카투만두에서 만나는 유년 시절 : 우리가 문화의 원형을 만난다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입니다. 근대 이후의 산업화 과정은 한마디로 탈신화과 물신화의 과정이었습니다. 인간의 내부에 있는 자연을 파괴하는 과정이었으며 동시에 외부의 자연마저 허물고 그 자리에 과자로 된 산을 쌓아 올리는 과정이었습니다. 더구나 앞으로 예상되는 영상 문화와 가상 문화에 이르면 문화란 과연 무엇이며 이러한 문화가 앞으로 우리의 삶과 사람에게 무엇이 될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p.82

 

만리장성에 올라 : 이처럼 난감한 현실은 만리장성의 장대한 모습을 무척이나 부럽게 합니다. 작은 성 하나 쌓지도 않은 우리들을 부끄럽게 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집의 작은 담장을 쌓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을을 지키는 성이 없고 나라를 방어할 성벽이 없다면 제 집의 담장인들 온전할 수 없음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p.104

 

아우슈비츠의 붉은 장미 : 청산한다는 것은 책임지는 것입니다. 단죄 없는 용서와 책임 없는 사죄는 은폐의 합의입니다. 책임짐으로써 다신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청산입니다. 굳이 베를린이 아니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곳이 세계의 어느 곳이든 기적과 번영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아우슈비츠의 비극은 전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114

 

베를린의 장벽 : 통일에 이어 새로운 약진을 준비하고 있는 독일의 의지가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과거의 독일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습니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과거 프로이센 왕국의 개선문이었습니다. 이 문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로 뻗어 있는 유서 깊은 보리수 거리와 6.17 거리는 히틀러가 나치 군대의 퍼레이드를 사열하던 거리이기도 했습니다. p.122

 

런던의 타워브리지 : 상품으로 둘러싸인 세상은 마치 황금으로 둘러싸인 미다스 왕의 정원과 같습니다. 황금 정원에서 오열하는 미다스 왕은 인간 소외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언어를 상품으로 만들고 화폐를 상품으로 만들어 온 현대 자본주의가 앞으로 어떤 뜻을 지향할 것인지 생각하면 망연해집니다. 당신은 절대로 상품화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자연, 인간, 그리고 화폐 세 가지를 들었습니다. p.133

 

로마 유감 : 로마 유적에 대한 찬탄이 새삼 마음을 어둡게 하는 까닭은 그것이 곧 제국에 대한 예찬과 동경을 재생산해내는 장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 문화유산 가운데 40%가 로마에 있다는 사실은 세계사의 현주소를 걱정하게 합니다. p.147

 

킬리만자로의 표범 : 도시가 문화 공간이며 역사 공간임에는 틀림없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연으로부터의 거리를 문화의 높이로 계산하고 있는 것이 도시의 본질이었습니다. 그러나 돈 없는 도시의 모습은 돈 없는 사람의 모습보다 훨씬 더 초라하였습니다. 단 하루라도 닦고 쓸고 때우고 칠하지 않으면 금세 회색공간으로 남루하게 변해 버리는 것이 도시였습니다. p.161

 

아메리칸 드림 : 미국은 꿈의 대륙이고 20세기를 미국의 세기라 한다면 아메리칸 드림은 곧 20세기의 꿈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20세기를 살아온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꿈꾸어 온 가치라고 해야 합니다. 20세기 100년은 미국의 승리와 영광으로 가득 찬 세기임에 틀림없습니다. 동구사회주의의 이상이 좌절된 지금, 우리는 이제 유일한 패권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의 꿈을 통하여 미래의 꿈을 읽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p.212

 

잉카 최후의 도시, 마추픽추 : 어디론가 떠나는 길보다는 그 자리를 지키는 숲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 마추픽추의 마음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길을 자신의 품에 안고 있는 숲, 그리고 발밑에 무한한 땅을 갖고 있는 숲에 대한 그리움을 그들은 남겨 놓고 있습니다.

나는 이 마추픽추가 숲이 되지 못하고 메마른 폐허로 남아 있는 산정이 비극의 어떤 절정 같았습니다. 왜 우리의 역사에는 지혜와 땀이 어린 터전들이 황량한 폐허로 남아야 하는가. p.240

 

예술의 도시, 파리 : 파리는 내게 매우 피곤한 도시였습니다. 가는 곳마다 부딪치는 너무 많은 예술 작품은 예술이 생활화되어 있지 않은 나에게는 하나하나가 긴장의 누적으로 이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생제르맹 거리의 노상 카페에서 다리쉼을 하며 생각의 혼란을 추스르고 있습니다. p.278

 

빈에서 잘츠부르크까지 : 빈의 소리도 그렇고 잘츠부르크의 풍광도 그랬던 것처럼 클래식의 세계도 역시 우리들의 관념 속에 들어앉은 환상이며 신화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금치 못합니다.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요한 슈트라우스, 주페, 그리고 모차르트의 가묘까지 한곳에 모여 있는 빈의 음악가 묘역에서의 일입니다. p.294

 

베네치아의 자유 공간 : 베네치아는 물론 과거의 도시입니다. 그러나 한때 꽃피웠던 자유 공간의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베니스 영화제가 열리는가 하면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베니스 비엔날레도 열리고 있습니다. 미래를 향하여 한때 열려 있던 공간은 그 미래 이후에도 역시 여전히 자유의 공간으로 남아 있음에 놀라게 됩니다. p.305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 그리스의 하늘에는 아크로폴리스가 있습니다.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의 모든 곳을 내려다보고 있으며, 아테네 어느 곳에서든 아크로폴리스가 보입니다. 야간 조명을 받아 밤하늘에 솟아 오른 파르테논 신전의 아름다운 자태와 그것에 담긴 역사의 무게는 참으로 중후합니다. 그러나 아크로폴리스는 폐허였습니다. 삭막한 석회석 돌산에 대리석 기둥 46개만이 무너져 내린 돌더미를 발밑에 굴려 놓은 채 마치 고대 그리스의 뼈대처럼 하얗게 서 있습니다. p.306

 

사마 춤과 카파도키아 : 코니아는 이슬람 전통이 완고하게 남아 있는 도시입니다. 내가 이 고도를 찾아온 이유는 이곳이 사마 춤의 본 고장이기 때문입니다. 터키 사람들은 이 사마 춤의 세계가 곧 그들의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종교란 교의와 의례가 아무리 정교하게 짜여져 있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인간의 사고를 단순화하는 패러다임을 내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마 춤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 단순화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321

 

인도의 얼굴 : 콜카타는 사상과 예술의 도시이며 동시에 인도의 얼굴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 식민 도시에서 인도의 정직한 얼굴을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무엇을 예술이라고 하며 어떤 생각을 사상이라고 하는지 더욱 혼란스러웠습니다. 인도가 안겨 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옆에서 보기에도 안쓰러웠던지 내게 인도의 얼굴을 보여 주려고 애썼던 유학생의 친절을 잊지 못합니다.

그중 하나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테레사 수녀의 사랑의 선교회죽음을 기다리는 집이었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거처하는 성당에는 늦은 밤인데도 환히 불 밝힌 기도실에서 사랑의 기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p.334

 

태산의 일출을 기다리며 : 태산은 당신도 잘 알다시피 오악지수로 불리는 중국의 신산입니다. 전설의 임금인 황제로부터 요, 순 이래 100여 명이 넘는 역대 제왕들이 하늘에 봉선을 고해 온 산입니다. 중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혼은 태산으로 돌아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인, 묵객, 명사들이 이곳에 오르는 것을 일생의 행복으로 여기는 산이기도 합니다. 1,800여 곳에 비각과 제자를 남겨 놓은 석각, 서법의 박물관입니다. p.380

나는 태산, 취푸에 이어 황허를 찾아갔습니다. 황허는 천변만화의 길고 긴 굽이굽이는 물론이며, 이 대하의 유역에서 흥망을 거듭한 나라와 인걸의 역사에 이르면 어느 곳 하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p.382

 

 

 

 

k******4 2022.06.10. 신고 공감 1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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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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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의 『더불어숲』은 1998년에 1, 2권으로 나뉘어 처음 출간되었다. 20세기의 저물녘인 1997년 한 해 동안 ‘새로운 세기를 찾아서’라는 화두를 지니고 22개국을 여행한 기록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세계사가 뒤바뀐 기억의 장소에서부터 세계화의 한파가 몰아치는 삶의 자리까지 선생의 편력은 깊고 너른 여정이었다. 문자 그대로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선생의 해박한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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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의 『더불어숲』은 1998년에 1, 2권으로 나뉘어 처음 출간되었다. 20세기의 저물녘인 1997년 한 해 동안 ‘새로운 세기를 찾아서’라는 화두를 지니고 22개국을 여행한 기록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세계사가 뒤바뀐 기억의 장소에서부터 세계화의 한파가 몰아치는 삶의 자리까지 선생의 편력은 깊고 너른 여정이었다. 문자 그대로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선생의 해박한 지식, 현실에 대한 겸손하되 날카로운 인식, 세상을 향한 정직하고 따뜻한 통찰을 벼린 글과 더불어 그림과 사진으로 엮어낸 이 책은 초판 출간 이후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이어 2003년에는 한 권의 합본호로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된 『더불어숲』을 초판 발간 18년 만에 돌베개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출간한다. 이번 개정판은 한 권의 소프트커버본으로 꾸며 책의 무게를 줄였다. 내용을 부분 개정했으며, 표지 제호와 표지·본문 디자인까지 모두 새롭게 바꾸었다. 물론 책에 스민 성찰과 감동은 고스란하며, 오히려 선생의 메시지가 품은 시의성은 더욱 적실해 보인다.

s*********4 2020.04.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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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밑이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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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전반에 흐르는 내용이 언덕위 여인의 승전비처럼 깨달음과 많은 지식을 선사한다.좋은 책이다.한권 소개해 드리자면    '가난한 아빠 부자 아들1,2,3'  읽어보시면 2차대전의 모든것과 쉰들러리스트를 왜 그렇게 찍었는지의 정확한 답이 보일것이다.유적이 너무 많아 몇개만 추린다면 1492년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궁,마라톤평원의 기념물들,소피아성당,아유슈비츠수용소,오로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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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전반에 흐르는 내용이 언덕위 여인의 승전비처럼 깨달음과 많은 지식을 선사한다.


좋은 책이다.


한권 소개해 드리자면    '가난한 아빠 부자 아들1,2,3' 


 읽어보시면 2차대전의 모든것과 쉰들러리스트를 왜 그렇게 찍었는지의 정확한 답이 보일것이다.


유적이 너무 많아 몇개만 추린다면 1492년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궁,마라톤평원의 기념물들,


소피아성당,아유슈비츠수용소,오로라순양함,데카브라광장등


문화유산을 선정하고 그것을 보존하는 일도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그러한 유산을 유산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문명관은 참으로 막중한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힐러리가 그랬다 " 한국인들은 과거를 너무 빨리 잊는다"고/...


글 두개 '관용'과 '미즈노교수와 종로피맛골이야기' 옮겨봅니다.





제목 : 관용




장묘문화 윗분들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지 ..




 




묘지는 미세먼지를 막아줄 숲이 있던 곳이고 후손들의 터전인 집,공장,논밭을 위한 땅이다.




 




민중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노회찬의원도 소도에 묻혀버린 브라만계급이 되셨다.




 




안타깝다.




 




풍수에 전순이란 말이 있다.




 




혈앞에 내민 자리를 말하는데 산으로부터 내려온 지기가 혈을 이루고도 남아서 만들어진 자리이다.




 




원래 '전'이란 글자는 양탄자를 뜻한다.




 




한국의 국운은 백악(북악)산을 뒤로한 청와대와 경복궁이 혈자리이고 그 앞 광화문광장이 전순이라




 




할 수 있다.




 




묘를 지을때도 전순의 크기 유무를 보는데 보통 알맞은 터가 좋고 무악대사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도 전순을 보았을 것이다.




 




복수를 위해 수원에 있는 '화령전','운현각' 현판을 박정희대통령 친필현판 대자뷔일까 복수를 위해




 




광화문현판을 떼버렸다. 이런 발자취도 다 역사인데..




 




고박정희대통령의 광화문 현판글씨는 광화문일대의 기운을 장악하는 글씨다.




 




왜 우린 관용을 실천하는 지도자를 갖지 못하는 것일까




 




김대중대통령이 그립다.




 




이순신장군동상을 세운 의미는 여러가지가 있다.




 




일본의 침략야욕을 누르는것 풍살과 도로살을 제압하는 수호신의 역할을 한다.




 




횡단보도는 자동차의 통행속도를 줄여주기 때문에 도로살의 강도를 상당히 약화시키는 의미가 있다.




 




즉,풍살은 음기가 가득 실린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다.




 




세종로의 일부를 공원화하기 위한 논의과정에서 충무공동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자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풍수적 이유로 무산되었다.




 




김대중대통령은 독재권력과 몸싸움,말싸움은 말할 것도 없고 목숨싸움까지 했지만 화해의 손길을




 




먼저 내미셨다.




 




왜 이런건 본받으려하지 않을까.




 




진정한 복수는 내가 그 일을 당했을때 그것을 되갚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일어났던 원인을




 




파악하여 그 상황을 해결함으로써 그 문제를 푸는 것이 진정한 복수이다.




 




보수가 그렇지 못하고 군부독재권력이 그렇지 못했다면 진보는 달라야하는데 왜 모두 판에 박은듯




 




똑같은 것일까.




 




학생들은 지도자의 이런 모습을 보고 무얼 배울 수 있을까 또 수백년후 학생들은 싹 지워져 버린




 




이 시대의 흔적을 어디서 보며 배울 수 있을까 예로 숭례문 세로현판을 보자.




 




광화문현판도 독재자의 글씨가 아니라 이 시대의 역사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게 무얼까 창의력?




 




한국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된 가장 큰 요인중 하나는 우수한 인력을 쉽게 뽑을




 




수 있는 한국사회구조에 있다.




 




OECD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 OECD에서3년마다 한번씩 실시하는 학업성휘도 평가.




 




 




최근에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한국이 여전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1등~7위까지 전부 동아시아 국가다.




 




그렇다면 한국의 창의력 지수는 얼마나될까?




 




한국은 2015년에 총139개국중 31위를 기록했다.




 




최상위 성적은 모두 유럽국가라는 것이다.




 




글로벌 창의력지수는 기술력,인재,관용성등 3가지 부분을 종합평가한 것이다.




 




한국은 1번은3위 2번은 50위 마지막의 제일 중요한 관용성은 70위를 기록했다.




 




관용성 지수도 두 가지로 평가된다.




 




1.인종,민족적소수자에 대한 포용력.




 




2. 성적소수자에 대한 포용력




 




1번은58위 그리고 번은82위를 기록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중용이란 어느 양극단의 중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비겁과 만용의




 




중간을 중용이라했다.




 




즉,중용이라는 것은 남들이 보기에는 아주 비겁한 행동도 용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특정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뜻이다.




 




선입견과 편견을 배제하고 눈앞에서 벌어진 구체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제기할 수 있는




 




모든 대안을 모두 끄집어내어,거기서 가장 올바른 대안을 잡아내는 것이 바로 진짜 중용이다.




 




결국 새로운 상황에 얼마나 많은 대안을 꺼낼 수 있는가가 창의력의 핵심이다.




 




100C물이 든 양동이에 수돗물 한방울 넣는다고 양동이속 상태는 바뀔까 인간이 측정할 수 있는




 




과학구조로는 잴 수 없지만 분명히 바뀌었다. 이런 물방울이 되어보자.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은 꼭 있게 마련이다.




 




못된 시어머니밑에 있던 며느리가 못된 시어머니가 된다는 옛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시어머니들이 아무리 좋은 고참들이 있다해도 후임이 그 권력자리에 않은후




 




그 특권을 휘두르며 못된 짓하는 졸부는 어느시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게 되어있다.




 




그런 졸부가 있더라도 그런 양동이가 있더라도 우리 모두 한 방울의 물이되자.




 




모든 직업에는 권리와 의무가 함께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달콤한 권리만을 누리기를 바란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권리만을 주장하는 사람을 우리는 졸부라고 부른다.




 




권리와 의무를 같이 짊어질 줄 아는 사람을 우리는 의리 있는 사람이라 부른다.




 




권리보다는 의무를 더 많이 이행하는 사람을 우리는 위인이라 부른다.


''''''''''''''''''''''''

애정을 바칠수 있는 도시가 강한 도시입니다.

 이 문구를 왜 한국에는 적용안시키시는지 안타깝다 별다섯개 드리고 싶지만 하나만 제한다.

제목 : 미즈노교수와 종로피맛골이야기


지금은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생글생글 잘 웃던 미즈노교수가 방송에 잘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이 스튜디오에 모여서 토론하던 곳에서 미즈노교수는 "저희 일본에서는 자식이 사업자금이


 부족해 시골부모님에게 가서 가만히 있으면 말을 안해도 부모님이 알아서 주십니다. 또 연인들끼리도 


사랑한다는 말을 안해도 다 압니다."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말에 주변사람들은 "에! 그게 뭐야 말을 해


야지" 하며 어이없어 했다.

 

이야기가 좀 다를진 몰라도 야만이란말은 18세기 프랑스에서 만든 말로 자신의 문화가 다른 문명보다


 우수함을 말하기위해 만든 말이다.

 

타문화를 자신의 문화적 시각으로만 해석하려는 극단적인 예가 '야만'이라는 단어다.

 

12세기 한국과 일본에는 모두 무신정권이 같은 시기에 등장한다.

 

청기백기게임의 원형도 알고보면 운동회때의 청백전이 아니라

 

백강전투후 400년동안 일본에 존재했던 시대가 헤이안시대고 그 이후가 700년간의 무신시대다.

 

수도를 두 번씩이나 옮긴 간무천황이 794년에 헤이안쿄(현재 천왕이 사는 도시 교토)를 도읍으로 


정착시킨후 1185년에 이르러서야

 

미나모토가문이 다카모리왕의 손자 다이라씨와 전장에서 맞붙었을때 서로를 구별하기 위해 한쪽은 등에

 

 홍기를 꼽고 한쪽은 등에 백기를 꽂은데서 청백전이 유래한다.

 

이로인해 다이라씨가 궤멸하고 군사,경찰,행정권이 미야모토가문의 수장 요리토모에게 넘어간다.

 

이때 시작된 또 하나의 풍습이 있는데 무신정권의 호화로운 요리인 가이셰키요리와 승려들의 공양음식인

 

 쇼진요리가 합해져서 현재의 일식요리의 원형이 탄생되기도 한다.

 

이런 전통이 1868년 메이지천황의 시대가 도래할 때까지 700년 동안 무신들이 전국에서 난립해 싸우는

 

전국시대가 계속된다.

 

우리나라에 군청단위가 있다면 일본에서는 현단위의 땅에 지배자인 영주가 있어 그곳의 무사집단과 농민


집단이 영주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서로 경쟁하는 시대를 그들은 700년이나 지속시킨다.

 

만일 거기속한 사람이 자신의 불만이나 억압에 대한 표출을 하게되면 그곳 집단에 해를 끼쳐 단결에

 

 해가된다하여 자신의 욕구불만을 자신의 내부로 내면화하는 문화가 뿌리를 내려 지금도 일본에선

 

 제일 심한 욕이 우리가 잘아는 '빠가야로'라는 바보란 말이 제일 심한욕이라 알고있다.

 

어느 기자가 그런다 한국과 일본의 고소고발 사건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이건

 

 단순비교가 아니라 원인을 역사적 유래를 놓고 비교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라마다의 문화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건 무리가 따를 때도 있다.

 

그럼 한국욕의 발원지는 어디인가 '바보'는 욕도 아니다 그냥 애칭 정도일까

 

조선은 500년동안 양반중심의 중앙집권제가 뿌리를 내린다.

 

서민들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멸시와 천대를 뒤에서 욕으로 푸는걸로 해소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외부의 억압으로 인해 생기는 불만을 욕으로 푸는 문화를 발달시키게 되었고

 

일본은 외부의 억압으로 인해 생기는 불만을 내면화하는 문화가 발달하게 된다.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다 사대부의 발원지를 보자.

 

진,송시대이후 사대부라는 명칭이 직업은 비록 달랐지만 농,공,상과 같이 섞여 살았다가 후대에와서

 

 사대부는 곧 문벌이 높은 집안을 가리키게 되었고 그들이 사는 곳은 농,공,상과 완전히 구별되도록

 

서로 섞여 거주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압구정도 중국 송나라의 정승 '한충헌'이 황제를 새로 세운 공을 이룬뒤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지은후

 

 벼슬을 버리고 갈매기와 함께 논다는 겸손의 뜻이 원형이다.

 

그 압구정이 조선으로 넘어와 '계유정난'을 기획한 한명회가 갈매기압으로 부르던 정자를

 

지은후 그곳의 뜻이 서민들에 의해 누를압으로 바뀌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다.

 

발원지를 알면 재미나는 것들이 많다.

 

한강의 발원지도 오대산 '우통수'와 태백 황지의 창죽동의 검룡소를 발원지로 보기도한다.

 

여기는 귀한 곳이기에 잘 보존되고 있다.

 

그럼 지금 한국은 발원지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문화유산은 또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을까

 

안압지,불국사,석굴암,첨성대,무령왕릉,고인돌,장군총등 거의 다인 문화유산은 모두 귀족이나

 

 왕족들을 위한 유산이다.

 

그럼 우린 이런 문화유산을 정말 잘 지키고 있을까

 

우리는 약간이라도 불편하거나 보기 싫으면 싹쓸어버리고 다시 짓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종로의 피맛골,중앙청,명성황후생가 담장의 일부,북촌을 밀어버리고 빌라단지를 만들자는 사람들,


창덕궁의 아기자기한 산책로를 시원스럽게 밀어버린 사람들,천재시인 백석과 길상사 자야여사가


사랑을 나누던 집,10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조선시대 세운 단성사가 헐릴때 우리 영화인들은 돈세는


 일만했다.


돈에 미친한국영화인들,올림픽 메인스타디움과 국회의사당을 지은 건축가 김수근씨의 집도 싹


 밀어버리거나 밀려고했다.

 

이제껏 나온 문화유산중 95%인 서민들의 유일한 유산 한국에 욕이 왜 많은지를 알려주는 유일한

 

 증거가 바로 종로의 '피맛골'이다.


종로통 대로변 정승판서행차의'말을 피하다'에서 유래된 피맛골은 종로통의 뒷골목이다.


지금 당장은 경제적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과거의 역사를 통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을 기를 수 있기 때문에 문화유산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이다.


낡은 것은 허물고 처음부터 새로 짓는다는 한국식 개발과정은 한국이 지닌 약점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이다.


세월이 지나면 무엇이든 잊혀지는 법이지만 역사의 현장은 고이 보존되고 간직되어 다시 후손들에게


전해져야하는 법이다.

 

우리는 지금 전통과 낙후를 구분못하는 혼돈에 빠져 있지않은지...

 

가난의 잔재를 지워버리고 싶었던 구시대적 발상이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하고 있는 


것일까

 

1392년 조선은 개국했고 그 시절 숭례문을 만들게된다.

 

숭례문은 한명회의 계유정난때도 있었고 임진왜란때도 있었고 흥선대원군시절에도 있었고

 

 김영삼대통령이 치적이라고 내세우는 우를 범하며 근현대사가 그대로 녹아 있는중앙청을 부술때도

 

 있었지만 69세 노인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고 그 노인은 국민들의 비난을 받으며 감옥으로 향했다.

 

종로의 피맛골은 1392년 조선의 개국시절 서민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기게된다.

 

피맛골은 한명회의 계유정난때도 있었고 임진왜란 때도 있었고 흥선대원군시절에도 존재했고

 

 김영삼대통령이 치적이라고 자랑하며 근현대사가 그대로 녹아있는 중앙청을 부술때도 있었지만 낡은


 것은 허물고 처음부터 새로 짓는다는 한국식 개발과정으로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고 국민들은 


무관심하거나 부순사람을 지지한다.

 

옛날 것을 없애는 것은 한국의 약점 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이다.

 

 

몇몇 정치인의 생각만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를 통째로 바꾸려는 발상 이제는 좀 바꿀떄

 

도 되지 않았을까

 

외국에서는 모짜르트생가 베토벤 생가에서 외국정상들과 칵테일 파티를 한다는데

 

왜 우리는 이런 야만의 시대에 살아야할까

 

 

 

참고도서 몇권만 추려서 권한다

 

서울, 북촌에서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다


일생에 한 번은 독일을 만나라


세계는 기다리지 않는다


내사랑 백석


맨큐의 경제학 페이지230 (역사적건물의 외부효과)


구석구석 찾아낸 서울의 숨은 역사이야기

 


YES마니아 : 플래티넘 s*****6 2019.05.24.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