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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친구가 윌리엄 트레버의 이야기를 종종 하더니 마침내 슬쩍 읽어보라고 권하기에 바로 책을 주문했다. 단편을 먼저 볼까 장편을 먼저 볼까 고민했는데 단편집을 먼저 골랐던 건 좋은 선택이었다. 읽는 동안은 장마라 내내 비가 무서울 정도로 퍼부었는데 그게 또 안 어울리는 듯 나름대로 어울렸던 것 같기도 하고. 읽을 좋은 책이 늘어났다는 건 늘 기분이 좋다. 단편집을 먼저 다 읽고 장편으로 넘어가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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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버는 사람의 속마음을 전면에 내보이는 화자와 전개를 선호하는데, 서술이 사건 사고를 전달하는 식으로 딱딱하고 고전적이라 전반적으로 지루하다. 사람의 마음은 자기가 흥미를 느끼는 것에 관심과 호응이 높아지니 더 그렇다. 20세기 중반의 사람들과 삶이 흥미롭기는 쉽지 않다. 인생이 대체로 거기서 거기니까. 소설 속 상황은 진부하고 답답한 상황이 많은데, 청혼을 기다리는 여성, 다른 삶을 욕망하지만 이혼을 못하는 부부들, 눈치 보고 이용당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안주하는 남녀, 도움이 필요하지만 품위를 위해 속마음을 꾹 누른 채 사는 노년, 부유한 삶을 부러워하며 일상에 갇혀 그저 그런 삶으로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갈 사람들 등등. 지금 삶에도 여러 변주로 반복되는 것이지만 서술이 지루해 '그땐 그랬지, 지금도' 하는 생각만 남는다. 같이 읽었던 레이먼드 카버 문체와 비교하면, 카버가 유려한 테크니션 피아니스트같이 느껴진다. 트레버는 환상적인 것을 추구하지도 않고 분위기를 만드는 기교도 부리지 않는다. 모든 걸 꾸역꾸역 대면하게 한다. 누구누구 씨는 누구를 만났고 어디로 갔고 무엇을 했으며 블라블라... 일상, 일상, 일상, 이 삶을 보라,이다. 그들은 부자든 가난하든 어리든 늙었든 엘리트든 노동자든 외로움과 슬픔, 죄책감에 젖어 살아가는 낙오자의 모습이다.
트레버의 소설이 사실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상상 초월의 이야기가 많은 요즘 현실을 생각하면 트레버의 소설을 읽은 뒤의 잔상은 그리 크지 않다. 내가 무덤덤해진 걸까. 『축복받은 집』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줌파 라히리는 “1995년 구입한 윌리엄 트레버 단편집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나는 이 책에 실린 작품에 견줄 만한 이야기를 단 한 편이라도 쓸 수 있다면 행복하게 죽겠노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라고 했지만, 나는 윌리엄 트레버에게 쏟아지는 상찬과 소설 쓰기의 모범이라는 평가가 과하지 않나 싶다. 한겨레출판에서 꾸준히 내는 트레버의 다른 소설들을 읽으면 평가가 달라질까. 너무 큰 기대로 이 단편집을 읽었던 터라 또 도전할 맘이 지금은 안 생긴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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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한 인물과 이야기에 빠져서 읽을 수밖에?안톤체호프의 작품과 비교한다면 단편인건 똑같지만 위트는 체호프의 작품이 돋보이고 윌리엄 트레버는 극적긴장감이 더 돋보였다. 두 작가 모두 단편으로 유명하다고 해서 구매했는데 정말 잘한것같다. 다음 작품도 읽어봐야겠다. 인물들이 현실적이었다. 감상에 젖지 않고 현실에 순응하거나 현실을 밀어부치는 것들도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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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은 한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한국의 롤모델이 미국이라서 그 안에서 육성된 미국작가의 글에 동질감을 느끼는 것일까. 사회가 개인을 억압하고, 개인이 개인을 옭아매는가하면 단체와 개인 사이에 타협이 벌어지기도 마찰이 빚어지기도 한다. 사실 인간관계는 공부로 해결되는 분야가 아니다. 끝없이 경험하고, 고치고, 또 실수하는 일종의 프로그래밍같은 분야기에. 사회를 뇌의 단면을 갈라 그 속을 보여주듯 잔인하게 확대한 소설. 윌리엄 트레버의 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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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빌려보려다가 책이 두꺼워서 기한 안에 다 못읽을것 같아서 구매했습니다. 단편집 이니만큼 하나 하나씩 천천히 읽어보려고요. 현대문학 에서 이렇게 단편집들 모아서 내니 참 좋네요. 다른 여러 작가님의 단편집들도 많이 나오길 바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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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트레버라는 이름은 생소한 편이라 단편집이 출판될 정도로 양질의 단편을 많이 썼나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아일랜드 태생인 이 작가의 수록된 23편의 단편은 그런 의문에 대한 충분한 답이 되었던것 같다. 대부분 단편집의 작가를 소개할때 OO의 체호프라는 수식어를 많이 써서 이번에도 의례 그럴것이라 넘겼는데, 윌리엄 트레버야 말로 체호프와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 장편도 많이 남겼다는데 더 많은 작품들이 국내에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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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런던의 외딴 교외에 에스라는 나이 지긋한 여인이 살았다. 에포스는 원기 왕성한 사람으로, 스스로 관심 있는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는 한
지금 같은 생활을 유지하리라 마음먹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녀는 영화와 연극을 정기적으로 관람했고 긴 시간 동안 책을 읽었으며, 남녀를 가릴 것
없이 자기보다 마흔 살은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게다가 그녀는 지금까지도 해마다 한 차례 아테네를 여행했는데, 그때마다 왜
그리스에 정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고는 했다. 그러나 이제 변화를 주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녀는 어찌 되었든
런던의 삶을 즐겼다.
윌리엄 트레버를 두고 ‘현대 단편소설의 계보를 잇는 이야기의 대가’ 그리고 ‘인간 생활의 가장 기민한 관찰자’라고 이름 붙인 이유를 살피기에 충분한 단편선이다. 줌파 라히리나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장편 소설도 잘 쓰지만 단편 소설에서도 특기를 발휘했던 작가들이 윌리엄 트레버에게 반한 것도 특이하다. 윌리엄 트레버 또한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을 가리지 않고 썼다. 그리고 스스로를 ‘어쩌다 장편소설을 쓰는 단편 작가’라고 규정했다.
윌리엄 트레버 William Trevor / 이선혜 역 / 윌리엄 트레버 : 그 시절의 연인들 외 22편 / 현대문학 / 614쪽 / 2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