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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삶의 의미를 잃은 시대, 대화는 어떻게 삶을 다시 세우는가 <철학 르네상스의 대화>
저자 이케다 다이사쿠. 하버드대학교, 베이징대학교, 볼로냐대학교 등 세계 주요 대학,학술기관에서 32회 강연하였으며, 유엔 평화상을 비롯한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저자 루 매리노프. 뉴욕시립대학교 철학과학과장 등을 역임했으며, 1998년 미국실천철학협회를 창설했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문제를 철학의 관점에서 성찰하고 대처하도록 돕는 '철학 카운슬링'의 선구자로 널리 알려져있다. 또한 불교를 '인간의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설하는 철학'으로 주목해 왔다.
<철학 르네상스의 대화>는 철학을 통해 철학으로 살아가는 법을 이야기 하는 책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생명과 죽음, 평화와 교육, 여성과 행복, 문명의 미래 등 '인간 답게 사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는 책이다.
철학하면 해석하기 어려워 끝까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을 해왔었다. 요즘에는 번역이 잘 나와서 현대 사회에 맞춰 철학에 대한 책이 잘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조금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이 책은 이케다 다이사쿠와 루 매리노프의 대화체로 이루어져 있어서 훨씬 부드럽고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어서 소설책 읽듯이 술술 읽어가게 되었다.
p.17 고민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고통과 고민을 안고 살아갑니다. -중략- 중요한 것은 그 고민에 짓눌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전진하는 힘으로 바꾸어 가는 일입니다.
p.38 은혜를 알고 감사하며,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갈 때 인간은 자신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높일 수 있습니다.
p.115 단순히 '소비'하는 데 그쳐서는 무언가를 함께 이루어 냈을 때의 깊은 감동도, 공명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충실하게 성장하는 일도 어려워집니다. "인간은 고립되면 자신을 잃는다. 다시 말해 인간은 넓은 인간 관계 속에서 자신보다 더 크고, 더 진실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p.191 에머슨은 인간이 인간답게, 또 창조적으로 살아가려면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사람들에게 호소했습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인데 어원으로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다. 단순히 철학이라고 하는 것보다 의미를 풀어서 들으니 철학이란 무엇인지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책을 통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필요한 사람의 자질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내가 어떤 자리에 있는가보다 성실하게 임하고, 자연과 함께 하는 살아가며, 인간관계에 진실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분도 이 책을 통해 '인간 답게 살아가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살아가는데 정답보다 질문이 필요한 독자, 철학을 삶 가까이에서 만나고 싶은 독자, 지친 마음을 다독여 줄 철학 대화를 찾는 독자, 삶이 흔들릴 때 철학으로 중심을 잡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철학르네상스의대화 #루매리노프 #이케다다이사쿠 #중앙일보S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교양철학 #철학책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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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추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하나의 역설이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철학 상담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끝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루 매리노프 박 사가 지적한 "의미의 위기"는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 문제가 아니라, 현대 문명이 근본적으로 직면한 시대적 과제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철학은 어렵다고 한다. 그만큼 접근하기 어려운 철학을 두 석학의 대담을 통해 접근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매리노프 박사는 20세기 과학의 발전 이후 인류가 묻기를 멈추었다"고 지적한다. STEM 분야에 거대한 자본이 집중되는 반면, 인문학은 자원을 잃어가고 있다는 그의 진단은 매우 날카롭다. 스마트폰과 Al 기술로 무장한 현대인은 무 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기술적 답변은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정작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는 여전히 무력하다. 과학이 제공하는 효율성과 편의는 우리의 외적 조건을 개선했지만, 내적 공허함을 메워주지는 못했다. 생성형 인공지능 LLM 의 시대에 대량의 정보 접근이 진실 도달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의 정보하 시대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 소셜미디어와 뉴스 알고리즘은 우리를 확증편향의 소용돌이로 몰아넣 는다. 정보의 진위를 판단할 철학적 사고력 없이, 우리는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는 정보만 수용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 사회의 분열과 깊아 연결되어 있다.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 우리 사회의 갈등의 심화 등 이 모든 것의 근저에 는 공유된 가치관과 성찰의 능력 부재가 있다. 철학은 본래 상아탑의 학문이 아니었다. 소크라테스는 광장에서, 공자와 석가모니는 제자들과의 대화 속에서 철학했다. 철학은 모든 사람의 손 안에 있던 삶의 지혜였다. 현대 사회가 필요토 하는 것은 철학의 "대중화"가 아니라 철학의 "복원"이다. 철학 카운슬링이라는 개념이 탄생한 배경은 이를 잘 보여준다. 사람들은 여전히 철학자를 필요로 하고 있었고, 철학자들은 단지 그 요청을 듣고 응담하기만 하면 되었다. 이케다 다이사쿠와의 대담에서 강조되는 불교의 중도 개념은, 오늘날 극단화된 이분법적 사고의 대안을 제시한다. 현대는 "찬성 또는 반대","맞거나 틀리거나"라는 이진 논리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실제의 인생샤는 "즉시 결론을 낼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불확실성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이것이 중도의 삶이 가르치는 진정한 지혜다. 이는 단순한 절충주의가 아니라, 상황의 복잡성을 온전히 인식하면서도 책임 있는 실천을 하는 자세이다. 마리노프 박사가 강조하는 또 다른 핵심은 대화의 힘이다. 그는 이케다 회장을 통해 "대화가 인간을 치유하고 변화시킨다"는 것을 경험했다. 이는 특히 의미심장하다. 현대인은 역설적이게도, 소통 도구는 가장 발달했으나 진정한 대화는 가장 부족한 세 대다. SNS 상의 논쟁, 뉴스 댓글에서의 적대 등이것들은 대화가 아니라 상호 간의 논박일 뿐이다. 상대를 이기거나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고 함께 진리를 탐색하는 대화가 희귀해진 것이다. 불교의 "불 경보살"처럼 모든 사람을 존경하는 태도로 시작하는 대화. 거울이 되어 상대 안의 가능성을 깨우는 대화. 이것이 철학의 복원과 함께 현대가 필요로 하는 실천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변화, 팬데믹 등 현대의 위기들은 기술로만은 해결될 수 없다. 이 모든 문제의 뿌리에는 인간관의 부재, 공동체의식의 상실, 생명존엄성에 대한 망각이 있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철학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다. 그것 너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자신의 행동의 의미를 성찰하며, 타인의 내면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을 존중하는 태도다. 현대의 철학은 "사유하는 인간'을 되찾는 운동이어야 한다. 기술이 담을 준다고 믿고 "묻기를 멈춘" 사람들을 다시 철학하게 하는 것. 극단의 소용돌이에 빠진 사회에 중도의 지혜"를 회복시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고립과 분열의 시대에 상대를 존중하며 마음을 여는 대화의 문화를 복원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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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과 철학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쫑쫑은 개인적인 의견을 담아 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철학 책을 한권만 읽은 것은 아니다. 왠지 할머니에게서 옛 이야기를 듣는 느낌으로 철학 책을 찾기도 했고 내 스스로 이 정도는 읽어봐야 할 것만 같은 필요성에 의해 철학 책을 읽어본 적도 있다. 늘 나에게 있어 '철학'은 내가 하고 있는 학문과는 어쩐지 동떨어져있는 학문이었다. 나는 철저히 이과생이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 역시 감성적이기 보다는 이성적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아..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갖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내가 나의 일도 철학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은 아인슈타인의 일대기를 그린 책을 읽으면서이다. 가장 최근에는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철학과 과학의 친밀한 관계를 인정하게 되기도 했고 이러한 영감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생애를 더 깊숙히 알게 되면서부터이다. 아인슈타인은 우리에게 아주 유명한 물리학자로 기억되고 있지만 그는 음악과 미술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나는 그가 바이올린을 아주 잘 다루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자신의 바이올린에 애칭까지 붙여주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음악에 애정을 쏟아부었는지 잘 알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어린 시절 그림에 소질을 붙이게 되고 자연을 소재로 멋진 그림을 그리다 생물의 움직임을 깨닫게 되고 마침내 해부학에도 커다란 관심을 갖게 된다.
비단 이런 유명한 분들의 일대기만을 눈여겨 보지 않아도 내 주변에서도 이런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 적이 있다. 유명 대학병원의 의사이신 분의 연구 결과를 들을 일이 있었는데 이 분은 연구결과 발표 후 자신의 가족이 잠시 시간을 소비해도 될지를 주최측에 물어보셨다. 승락을 받은 후 그 가족은 각자 첼로와 바이올린을 가져왔고 그분의 아내는 미리 준비가 되어있던 피아노 앞에 앉으셨다. 그 순간 발표장은 얼어붙은 듯 했고 조용히 그들의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수준급의 연주를 들으면서 내 머리 속은 복잡해졌다. 아니 이렇게 유명하신 의사 선생님께서 첼로 연주는 언제 배우기 시작했는지 그럴 만한 여유가 있으셨던 것인지 머리가 얼마나 비상해서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셨던건지 신기했다. 결국 나는 훌륭한 과학 연구도 결국 훌륭한 문화적 소양과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과학과 철학의 끈끈한 관계를 스며들게 해준 이도 있다. 유럽에서 공부를 한 나의 지인은 나에게 가끔 뜬금없는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그의 질문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처음 질문을 들었을 때 의도를 파악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그만큼 열린 질문을 하기 때문에 나는 나의 생각의 크기를 최대한 부풀릴 수 밖에 없다. 다음 질문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아,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확실히 어떤 분야의 과학을 했느냐에 따라 사고는 달라질 수 있겠구나.' 하는 답을 듣기도 했다. 내가 제일 처음 그런 류의 질문을 들었을 때는 나에게 장난을 하는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내게 있어 그것은 답이 아주 명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개 일 수 있었고 나는 그 중 하나만을 알고 있었다. 「철학 르네상스의 대화」는 두 유명 과학자의 대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책이다. 물리학자인 한 연구자와 대학 설립자와의 이 전의 만남과 그들간의 대화를 가감없이 확인해볼 수 있다. 번역본이라는 한계점 때문에 아주 정확한 뉘앙스를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으나 최소한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은 충분히 알 수 있다. 나는 그 두 연구자가 철학을 대하는 태도부터 그들의 살아온 발자취를 책으로 읽으며 과학과 철학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또 한번 배운다. 책의 곳곳에서 인상적인 내용들을 보았지만 이 두 사람 역시 혼자만의 과학적 세계에 갇혀있지 않았고 타인과 함께 하는 연구자이며 자신의 능력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이 감동적이다. 이 시대에 연구자로써 많은 지식을 얻었다는 것은 단지 좋은 환경을 만났다는 것으로 대변할 수 있고 그것은 후대를 위해 아낌없이 내려가야 한다는 멋진 생각도 공감이 되었다. 연구자로써 본인의 연구에 더욱 매진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이 책을 읽어본다면 과학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성숙한 연구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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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이케다 다이사쿠의 말들은 가르치지 않는다. 그저 곁에서 조용히 건넨다. 존엄, 평화, 교육, 미래—무거운 말들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가장 오래 남은 건 이 한 문장이었다. 대화는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움직인다. 내 말만 앞세우지 않고 상대를 진짜로 들을 때, 갈등 너머의 것이 보인다는 것. 그리고 책은 조용히 물었다. 많이 가진 게 행복이냐고. 진짜 중요한 건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 누구에게 어떤 온기를 남기느냐였다. 인생의 절반쯤 서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 앞에서 오래 머물게 될 것이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게 하고, 남은 길의 얼굴을 그려보게 하니까. 철학은 특별한 사람들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가—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 철학은 이미 내 삶 안에 있었다. 책을 덮고 남은 건 지식이 아니라 질문 하나였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며 살아갈 것인가. 그것이 이 책이 준, 가장 조용한 선물이었다. # 철학 르네상스의 대화 #이케다 다이사쿠# 중앙일보S #컬쳐블룸 #컬쳐블룸도서리뷰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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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생의 앞날을 헤쳐가는 철학의 지혜
AI 시대로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치열한 AI 기술 개발 경쟁에 세상은 열광하고 있지만, AI가 가져올 사회적 파장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다.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혼란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철학이라는 나침반이 필요하다. 혼돈의 시대를 헤쳐가는 지혜를 얻기 위해 "철학 르네상스의 대화"를 선택한다.
1장 '내면의 힘'에 눈떠라! 에서는 철학 없는 사회는 아무리 화려하게 겉모습을 꾸민다 해도, 한 번의 지진이나 폭풍 앞에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다. 21세기는 교육의 세기이자 철학의 세기여야 한다. 고민 없는 인생은 없다. 중요한 것은 고민에 짓눌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전진하는 힘으로 바꾸어 가는 일이다. 고뇌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고뇌를 정면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인간은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최선의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존재이다. 철학의 어원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다. 철학은 진리를 찾기 위해 먼저 의문을 품는 데서 출발한다. 이데올로기는 신념과 배운 가르침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한다. 참된 철학은 명문이나 명리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 빛을 발한다.
2장 부모에 대한 추억과 가정교육 에서는 중도의 사상은 인류가 조화와 공생의 사회를 이루어 가는 데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부모에게 감사할 줄 아는 일은 인간으로서 성숙하고 성장했다는 분명한 증거이기도 하다. 부모의 지혜와 미덕은 자녀들의 삶과 행동 속에 계속 살아 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를 스승으로 여기고, 겸허하게 배우는 자세가 중요하다. 모든 아이는 미래에서 온 사자이다. 모든 어른에게는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분명한 책임이 있다. 여성이 더욱 활약할 수 있는 사회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회의 균등이 필요하다. 여성의 유연한 지혜와 섬세한 감성이 적극적으로 살아난다면, 사회 전체에도 새로운 활력이 생겨날 것이라 믿는다. 3장 '격려의 마음'과 철학 에서는 좋은 교사는 배우는 사람이어야 한다. 배우려면 먼저 자기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한다. 학생들이 품는 소박한 물음을 소중히 여기고, 질문하는 힘을 이끌어 내야 한다. 칭찬하며 키우고, 격려하며 기른다. 가르친다는 것은 곧 배우는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무엇보다 자신감을 심어 주어야 한다. 상담에서는 대화의 힘으로 그 마음속에 잠든 용기를 끌어낸다. 내면의 철학자가 깨어나면, 열쇠가 되었던 말이 자신의 말이 되어 다시 나오게 된다. 과학과 학문은 그 바탕에 건전한 윤리와 사상이 놓여 있지 않다면 올바로 설 수 없다. 타인을 이해하고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안에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진리를 깨닫고 발견하고 배우고 가르칠 권리가 있다. 정치권력이나 종교의 권위는 언제나 진리를 지배하고 지워 버리려 한다. 철학자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철학은 고난 속에서 더욱 깊어지고, 더욱 밝게 빛을 발하게 된다. 4장 강인한 낙관주의의 인생을! 에서는 우리는 어떤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마음의 상태를 더 좋은 방향으로 끌어올리고, 그에 따라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매 순간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면, 모든 일은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 위대한 정신은 역경에 맞닥뜨려도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참된 낙관주의란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절대적 신뢰이며,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는 불굴의 신념이고, 변혁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용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사물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것이 환경을 바꾸고 자신을 변혁해 가는 첫 걸음이다. 환경을 바꾸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은 언제든지, 즉시 바꿀 수 있다. 그 변화가 실제 사회에서도 매우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5장 '인간으로 돌아가라!' '인간에서 시작하라!' 에서는 기술은 올바르게 쓰이면 큰 유익을 가져다주지만, 잘못 쓰이면 반대로 해로운 결과를 낳기도 한다. 과학기술은 인간을 더 행복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만, 인간의 정신적 가치와 사람들 사이의 유대를 약화시킬 수 있다 인간과 자연의 단절은 인간성의 감각을 점점 약화시키고 있다. 인간 교류가 가상 세계로 옮겨 간 결과 관계가 사람 사이의 관계 또한 순간적이고 덧없는 관계로 바뀌고 있다. 기술은 사람들을 적극적인 생산자에서 소극적인 소비자로 바꾸어 놓는다. 기술만능주의는 인간의 탄생과 죽음을 가족이 자연스럽게 경험할 기회를 빼앗아 간다. 생과 사를 마주하지 않는다면, 인생을 충분히 살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의사에게는 생명의 존엄에 대한 겸허함과 더불어 인간적 성장이 요구된다. 인간성이 풍부한 의사, 전체적 통찰을 바탕으로 인격이 빛나는 의사이다. 기술만으로는 인간의 존엄성을 확립할 수 없다. 인간 존엄을 세우는 분야는 결국 윤리밖에 없다. 서양문명은 과학기술과 근대적 의학을 탄생시키고 물질적 풍요로움도 가져온다. 그러나 그 안에는 의미와 목적이 두드러지게 결여되어 있다.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가운데 인간은 더 의미 깊은 인생을 살 수 있다. 6장 '한 사람'의 마음에 태양의 빛을! 에서는 철학 부재의 배경에는 정신적 자산보다 물질적 자산의 더 중시되고, 이론만 있고, 실천은 거의 없는 분석학파가 영미권 철학의 주류를 이룬다. 철학은 삶의 의미를 깨우고, 살아가는 힘을 일으키는 지혜이기도 하다. 집단괴롭힘은 세계 여러 나라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과제가 된다. 집단괴롭힘과 현대 사회의 인간 소외 문제의 밑바탕에는 타인의 부재, 타인에 대한 존중의 결여가 자리하고 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이 타인을 미워하게 하는, 악의와 폭력의 구조 속에서 집단괴롭힘은 극단적 정점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타인을 향한 따뜻한 배려의 마음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 애정이 가득하고 따뜻한 인간교육의 터전으로서 가정이 더욱 중요하다. 도덕적 규범의 붕괴든 부성의 붕괴든 집단괴롭힘의 배경에는 선의 부재와 인격적 가치의 부재가 있다. 인생은 큰 고뇌와 어려움을 이겨내야 자신을 연마할 수 있다.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승리하는 모습을, 어른들이 자기 삶과 행동으로 분명히 보여주는 일이 중요하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 태양처럼 살아가는 힘을 끝없이 빛나게 하는 것이 바로 철학 르네상스 이다. 7장 '치유'란 바로 전체성의 회복 에서는 통합된 인간은 사람의 여러 측면이 잘 조화를 이루며 서로 어긋나지 않게 기능하고, 그 존재가 가장 충실하게 발휘된다. 심신 모두 건강한 일체성을 되찾는 과정이 치유이고, 그 조화가 이루어진 상태를 건강이라고 할 수 있다. 생활습관병을 예방하려면 건강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추고, 올바른 생활습관을 몸에 익히는 것이 필수적이다. 진정한 건강이란 여러 형태의 괴로움이 닥쳐와도 견뎌 낼 수 있는 힘을 지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이란 인류의 근본 명제이다. 치유란 생명의 전체성을 다시 회복하게 하거나,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조정 내지 회복 과정의 행위이다. 8장 개인과 사회의 '치유해야 할 상처' 에서는 미국 사회는 그리스적인 이상보다는 로마적인 현실주의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사회다. 치유의 힘을 회복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자각이다. 자기 안에 있는 생명력이라는 커다란 잠재력을 발휘할 엄청난 기회를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먼저 자각해야 한다. 사람들 사이의 대립과 분열을 낳은 그릇된 이데올로기 와 편향된 사상을 바로잡지 않는 한, 사회의 상처는 근본적으로 치유될 수 없다. 세계는 하나가 될 수 없는 까닭은 인간이 자신과 하나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신과 하나가 되어 있지 않다는 말은 생명의 전체성과 일체성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이 기계의 톱니바퀴나 네트워크 단말기의 일부가 된 듯 살아가는 상태가 계속된다면, 개인과 사회의 붕괴는 물론, 붕괴가 불러올 지구의 파괴 또한 더욱 깊어질 것이다. 진리에 이르는 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끝까지 자신을 알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다. 상대를 존경하고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대화 속에서 치유는 시작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치유의 담당자가 될 수 있다. 치유의 책무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함께 짊어져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을 괴롭히는 고통을 가장 낮은 수준까지 줄여 갈 수 있다. 9장 대화가 바로 '치유' 에서는 자애의 마음은 지극히 당연한 행동을 통해 사람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괴로움을 알아차리고 동고하는 것이 치유의 출발점이다. 인간으로서 대등한 대화는 상대방의 괴로움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 괴로움이 치유된다는 확신을 주는 대화이다. 치유의 본질은 철학적인 접근이든 정신분석적 접근이든 결국은 가족 같은 진지한 대화 속에 있다. 대화의 기본은 상대방을 존경하고 공감하며 타인을 진심으로 아끼는 인간애이다. 대화는 상대방의 선심을 이끌어내고 서로 교류하는 자리가 된다. 상대방의 마음에 있는 악심을 표출시켜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대화는 언어의 춤과 같다. 사람은 한마음이 되어 춤출 때 비로소 깊은 일체감을 느끼는 법이다. 대화는 소리의 행동이다. 찬양이 되고, 격려가 되며, 때로는 질타가 된다. 선에 입각한 인격과 인격, 전신과 정신의 역동적 교류이다. 우리는 단호히 일어서서 올바른 소리의 힘으로 사람들을 현혹시켜 민중의 마음을 해치는 언론의 폭력을 타파해야 한다. 10장 평화와 인간주의의 대화 에서는 인류는 우주에서 보면 작고 덧없는 존재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광대한 우주를 생각하고 수많은 별들 가운데서 평안함을 느낀다. 대우주에서 보면 지구 역시 작은 행성에 불과하다. 그 안에서 인간이 서로 다투고 전쟁을 되풀이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경의를 표하는 행동은 결국 자신을 존중하는 태도로 되돌아온다. 위대한 인물과 만나 그 귀중한 경험과 지혜를 배우는 일은 만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 거만한 마음으로는 참된 대화를 나눌 수 없다. 권위나 권력이 아닌 같은 인간으로서 평등하게 진리와 정의를 탐구하려는 자세가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대화가 시작된다. 묘법이라는 우주의 법칙에 바탕을 둔 기원은, 숙명의 쇠사슬을 끊고, 자타가 함께 행복의 길을 열어 가겠다는 강한 다짐과 서원이 담긴다. 11장 철학의 지혜는 '인류의 보배' 에서는 철학이야말로 인생이라는 긴 항해에서 어두운 바다를 비추는 등대가 되고, 격동하는 사회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항로를 가리키는 나침반이 된다. 자기 자신을 향상하는 일에는 완성이 없다. 매 순간 끊임없는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 종교는 인간을 더욱 현명하고 강하게 그리고 더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교조주의는 사람들의 생각하는 힘을 빼앗고 예속시키는 경향이 있다. 교리가 목적이 되어 버리는 폐해를 막기 위해서 지성의 힘과 지혜의 힘이 중요하다. 고대 철학자들의 지혜에는 보편적인 가치가 깃들어 있다. 동양과 서양의 고전 철학은 모두 삶과 죽음이라는 영역을 넘어 존재하는 변하지 않는 본질을 깨닫고자 한다. 아시아 에는 대립보다는 조화, 분열보다는 결합, 나보다는 우리를 중시하는 흐름이 이어져 온다.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며 서로 돕고 번영하려는 사고의 흐름이 앞으로 인류 전체에 더욱 크게 공헌할 수 있다. 12장 시대를 창조하는 철학 에서는 덕은 각 시대마다 인간성의 위기에 맞서 인간을 다시 세우기 위한 지표로 요청됐다. 덕은 처음부터 당연하다는 듯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대가 최악의 상황에 놓일수록 인간은 오히려 도덕적 대의를 세워야 한다. 덕에는 인간의 성품은 단련을 통해 바꿀 수 있다는 공통된 기본 이념이 있다. 모든 사람이 언제, 어디서든 덕을 실천할 수 있고,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더 나은 세계를 위해 공헌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먼저 행동하는 것이다. 자신이 변하면 환경이 바뀌고, 인생은 올바른 궤도에 오르게 된다. 덕에 관한 지식을 아무리 많이 쌓는다 해도, 그것만으로 덕이 되지는 않는다. 실천해야 한다. 행동해야 한다. 덕에 걸맞은 행동을 거듭 실천해 습관이 될 때, 비로소 선에 가까워진다. 상락아정의 사덕은 보살에 갖추어진 덕성이다. 자기 인생에서 존엄한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 중도의 본의이다. 인간은 타인과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은 채 살아갈 수는 없다. 서로의 인간성을 일깨우고 살아가는 힘을 되살리려는 노력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13장 예술의 탐구와 사제의 유대 에서는 지혜의 전통은 우주의 구조 속에 내재한 어떤 기하학적 정수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법칙은 인간 자신의 깊은 내면에도 그대로 관철되어 있다. 음악은 아무리 힘든 시대일지라도 우리에게 힘을 주려고 거듭 격려의 말을 걸어온다. 스승의 말과 행동을 통해 인간의 궁극적 진실을 배우고 자기 안에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사제 관계의 가장 심오한 부분이다. 21세기 대학 교육의 사명은 최선의 지식을 배우고, 연구하며, 사회에 환원하는 데 있다. 대학이 짊어져야 할 사명은 막중하다. 고등교육기관은 영지와 창조성이 풍부한 전체인간을 길러내야 한다. 세계가 겪고 있는 경제 위기 또한 사리사욕을 탐하는 에고이즘 에서 비롯된다. 지금이야말로 전체 인간을 길러내야 할 때다. 14장 환희로운 인생을 여는 생사관 에서는 문명의 병으로부터 인류를 다시 살리는 근본은 인간 안에 있는 내적인 힘의 회복에 있다. 진정으로 글로벌한 문명을 창조하는 데 철학은 더없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며, 인간 자신이 바뀌면, 반드시 해결의 길 또한 찾을 수 있다. 인간의 가치와 진정한 행복감은 어떤 철학을 지니고, 선을 위해 끝까지 살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삶 자체는 무질서화에 일시적으로 저항하는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은 삶 속에 도덕적 질서를 확립할 때, 물리적인 무질서화를 넘어서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대우주 그 자체가 하나의 생명의 대해이며, 그 안에서 끊임없는 변화 속에 생과 사의 리듬이 이어지고 있다. 생과 사의 반복이 삼세에 걸쳐 영원히 이어지는 것이 생명의 실상이다. 15장 '생(生)도 환희' '사(死)도 환희'의 철학 에서는 생사의 문제를 탐구하는 일은 바람직한 현대 세계의 모습을 근본에서부터 다시 생각하게 하는 큰 시사점을 제공한다. 사는 생과 더불어 생명의 두 가지 측면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사를 진지하게 응시하지 않으면 생이란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건전할 생명철학이 없으면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게 되고, 그 두려움은 한 사람의 인생을 최대한 충실하게 살아갈 힘마저 위축시킬 수 있다. 우리 생애의 다른 모든 행위는 마지막 행위를 시금석으로 삼아 시험 받아야 한다. 죽음을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은 동시에 자기 삶의 경험마저도 끝내 깊은 결실을 맺지 못한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현실과 마주할 때, 인간은 자기 유한성을 자각하게 된다. 인간이 영위하는 삶의 중심에 깊은 생명관과 생사관을 세워야 비로소 환희의 인생이 열린다. 16장 여성이야말로 '평화를 위한 문화' 창조자 에서는 남성은 대체로 세상의 사물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다. 객관성은 집착에서 벗어난 초월성을 높이는 반면, 타인을 비인간화하여 불건전한 나와 그것의 관계로 기울게 할 위험도 있다. 여성은 대체로 세상의 관계성을 보다 주관적이고 관계적인 방식으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다. 주관성은 때로 의존성을 높일 수 있지만, 타인을 인간화해 건전한 나와 너의 관계로 이끄는 힘도 지니고 있다. 남성은 때로 대립적인 자세를 취하기 쉬운데, 그것이 소통을 가로막고 결국 충돌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여성은 대체로 상대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소통을 이어가고, 그 과정에서 대립을 완화하는 데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관계가 점점 메말라 가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공감력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보살은 진실한 애정과 배려로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존재이다. 사무량심으로 가득한 삶의 방식이야말로 평화를 위한 문화를 가져온다. 사람들을 격려하고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자애의 행동은 사회적인 지위나 부, 학식과는 아무 관계없다. 17장 '인간혁명'이야말로 '세계시민'의 철학 에서는 고유한 사상 풍토는 오랜 세월에 거쳐 서서히 길러진 것이다. 다른 풍토에 새로운 사상의 씨앗을 심으려 할 때에는, 그 지역이 지닌 고유한 전통과 에토스 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사람들이 다투는 이면에, 서로의 차이에 대한 집착이 자리하고 있다. 인간 생명 안에 내재적 보편, 다시 말해 인간의 평등성과 존엄한 공통 기반이 존재한다. 그 기반 위에 설 때, 온갖 차이를 넘어 차이에 대한 집착을 극복할 수 있다. 새로운 세기에는 생명관과 생사관의 변혁, 인간의 내적 변혁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인간의 행복을 위한 철학은 공생하는 사회를 위해 행동하는 가운데 비로소 그 가치를 빛내는 것이다. 세계시민의 철학은 모든 사람의 생명에 갖추어진 선성을 믿고, 그것을 함께 빛나게 하려는 용기 있는 실천철학이다. 첨단 기술은 빠른 속도로 세상을 바꾸고 있다. 중국 선전시 공안국에서 휴머노이드 를 경찰 업무 지원에 투입한다. 순찰에 투입한 로봇 은 개발사 CEO를 발차기로 넘어뜨리는 영상으로 인간에 대한 공격이 가능함을 이미 시연한 바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 가 제안한 로봇3원칙을 스스로 깬 상황은 인간을 위한 로봇 이 아니라, 인간을 해칠 수 있는 로봇 이라는 위험성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기술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기술이 아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효율성과 생산성은 향상될 수 있겠지만, 기술이 가야 할 방향을 정해주지는 않는다. 철학은 기술이 가야 할 앞길을 밝힌다. 철학 없는 사회는 화려하게 꾸며도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다. 철학 없는 사회는 철학 없는 교육을 낳고, 철학 없는 교육은 철학 없는 인간을 만든다. 철학 없는 인류의 미래는 너무도 어둡다.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철학을 정립해야 한다. "철학 르네상스의 대화"는 내면의 힘, 가정교육, 격려, 낙관주의, 인간의 행복, 치유, 상처, 대화, 평화, 지혜, 실천, 예술, 생사론, 생사관, 여성의 역할, 세계시민의 철학 등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담겨 있다. 철학을 통해 세상을 바르게 보는 통찰을 기른다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 르네상스 는 사람의 마음속에 태양처럼 살아가는 힘을 끝없이 빛나게 하는 희망찬 미래를 비추는 참된 광원이다. "철학 르네상스의 대화"는 철학을 통해 인생의 다양한 주제를 탐구하며, 세상을 현명하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돕는다. 중앙일보S' 와 컬처블룸 서평단에서 "철학 르네상스의 대화"를 증정해주셨다. 감사드린다. #중앙일보S #이케다다이사쿠 #DaisakuIkeda #루매리노프 #철학르네상스의대화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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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인간을 고립시킨다는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생산자해서 오로지 소비자 역할만 하게 만든다라는 내용이 굉장히 신선하고 독창적이었다. 기술을 많이 사용하면서 AI도 쓰니 사람들은 모두 생산자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예전에는 음악이 필요하면 온 가족이 악기를 하나씩 들고와 같이 연주를 하고 노래를 하였는데 지금은 그저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소비할 뿐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우리도 어릴 때 집에 필요한 물건을 어른들이 직접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디지털화된 세상 속에서는 그런 것도 그저 프린트를 하거나 어떤 도구에 의지할 뿐이지 이제는 스스로 생산하지 않는다. 아 무언가 크게 깨달은 느낌이다. 또한 진정한 치유는 타인과 깊은 대화를 통해 삶과 마주하는 용기라는 이야기도 한다. 사실 대화도 요즘 사라져 버린 것들 중에 하나다. 지하철 안이 조용하고 카페하니 조용한 이유는 한국 사람들이 매너가 좋아서가 아니고 모두 디지털 세상에 빠져있기 때문에 때문이다. 어떤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서로의 다른 생각을 계속적으로 얘기하면서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했다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어보면서 그 차이점에 오히려 기뻐하며 들어보는 대화를 해 본 지가 언제던가? 정반합이 순서댜로 오듯 철학의 부족이 계속 우리를 빈곤함에 시달리게 하는 중이다 르네상스가 필요한 시점이다 #중앙북스 #철학르네상스의대화 #이캐다다이사쿠 #컬쳐블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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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인류는 진화했고 가난을 이겨냈으며 엄청난 과학의 발달을 일구어냈다. 그렇다면 과거보다 분명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런 풍요로운 시대가 될 수록 이상하게 정신은 더 가난해지고 공허감이 밀려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철학'이 이런 시대일 수록 더 가까이 다가온다. 삶의 의미를 잘 모르고 헤매게 될 때, 어떻게 살아야 정답인지를 찾아야 할 때 우리는 철학을 찾는다. 세계적 불교 철학자 '이케다 다이사쿠'와 철학 카운슬링의 선구자 '루 매리노프'의 대화가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1928년에 태어나 거의 100년 가까이 살다간 철학자와 20년 정도 어린 철학교수의 대화에서 우리는 삶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고민 없는 인생은 없다. 겉으로 행복해보이는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고민은 있기 마련이다'라는 말이 왜 이토록 위로가 되는 것일까.
어떤 학문에도 재능이 없었고 학창시절에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던데다 특히 '철학'이라는 단어만 봐도 어렵다고 느꼈던 나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같은 철학자들의 조언이 그닥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말을 증명하기 위해 죽음까지 선택하지 않았는가. 철학이 뭐라고. '정의롭고 위대한 철학자는 어떤 탄압에도 굴하지 않습니다. 박해조차 영예로 바꾸어 갑니다'라는 말에서 철학에 대한 신념이 죽음까지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대단하다는게 지금도 의아스럽긴 하다.
100세 시대, 아니 120세 시대가 왔다고 하니 어느새 반 정도는 살아온 셈인데 좋은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좋은 죽음을 맞는 것에 더 관심이 간다. 이케다 다이사쿠는 이미 좋은 죽음을 맞아 저 건너편의 세상으로 떠났으니 물어볼 재간은 없다. 정말 좋은 죽음이라는게 있는 것인지. '동물은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은 좋은 삶과 좋은 죽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삶은 비록 초라했을지 모르지만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죽음을 맞고 싶다.
'인류가 우주까지 날아갈 수 있을 만큼 발전했으면서도 여전히 작은 지구에서 서로 다투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우주비행사의 말이 가슴을 치지 않는가. 인류는 어리석은 전쟁을 반복했었고 지금도 여기저기에서는 이런 전쟁을 벌이고 있는 존재들이다. 과학의 발달로 우주로 날아가고 수명은 길어지고 AI로 정답을 찾아가는 시대가 왔지만 어리석은 역사는 계속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철학이란 학문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어쩌면 정답이 없는게 인생이지만 이런 질문의 시간이라도 없다면 더 어리석은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좁은 지구에서 치고 받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우리에게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보라는 조언이 위로와 겸손의 마음을 선사한 인생선배들에게 고개를 숙이게 된다. #리딩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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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철학 르네상스의 대화」 이케다 다이사쿠, 루 매리노프|중앙일보S 철학책을 읽으며 위로받는다는 말을 예전에는 조금 낯설게 생각하기도 했다. 하나의 답을 얻으면 또 다른 질문이 따라오고,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을 의심하게 만들며, 결국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묻게 만드는 것이 철학이니까. 그런데 《철학 르네상스의 대화》를 읽으며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철학이 사람을 위로한다는 것은 힘든 마음을 잠시 달래준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돌려준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이케다 다이사쿠와 루 매리노프의 대담집이다. 두 사람은 내면의 힘과 가정교육에서 시작해 격려와 낙관주의, 인간과 사회의 치유, 대화와 평화, 생과 사, 여성과 문화, 인간혁명과 세계시민에 이르기까지 꽤 넓은 주제를 이야기한다. 17개의 장을 따라가다 보면 처음에는 각각 다른 주제처럼 보였던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첨단과학의 시대 과연 우리는 어떤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 읽으면서 가장 오래 인상적인 단어는 치유였다. 우리는 보통 치유라고 하면 상처가 사라지는 것을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치유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상처가 없었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상처를 가진 채로도 다시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회복하는 의미다. 그래서 책에서 말하는 ‘치유’와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혼자 자신의 상처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을 던져주고, 때로는 내가 가진 가능성을 다시 발견하게 해줄 때 비로소 내 삶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대화가 치유로 이어진다는 챕터였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말을 주고받지만, 정말 대화를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서도 머릿속으로 내가 할 말을 준비하고 있고, 상대의 생각을 이해하기보다 설득하려 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만나면 이해보다 승패를 먼저 생각한다. 말을 많이 하는 시대인데 이상하게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더 멀어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말하는 대화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방법이 아니다. 상대를 바꾸기 위한 말이 아니라 상대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말한다. 철학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삶이 힘들 때 빨리 답을 얻고 싶어 한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관계가 좋아지는지, 어떻게 하면 불안을 없앨 수 있는지 누군가 정답을 알려주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는 정답을 외워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훨씬 많다. 죽음 앞에서 무엇을 믿을 것인지, 실패한 뒤에도 다시 살아갈 이유를 어떻게 찾을 것인지, 나와 다른 사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내가 가진 삶을 무엇으로 의미 있게 만들 것인지. 이런 질문에는 하나의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철학은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열쇠라기보다, 삶의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바꾸는 힘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점이 계속 생각났다. 힘든 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힘든 일을 바라보는 내가 조금 달라지는 것. 상황이 바뀌지 않아도 그 상황 속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철학이 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힘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 책은 충분히 그 역할을 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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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대표하는 두 지성, 이케다 다이사쿠와 루 매리노프가 나누는 대담집 <철학 르네상스의 대화>를 읽었습니다. 현대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개인의 삶과 맞물려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상기해 보게 만드는 독서였습니다. 책은 고대 그리스 철학과 동양의 불교 사상을 아우르며, 일상에서 부딪히는 실천적 주제들을 하나씩 풀어갑니다. 단순히 이론을 나열하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고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설명해주었어요. 특히 루 매리노프 교수가 강조하는 '철학 상담'의 개념은 관념에 머물던 학문을 삶의 현장으로 끌어오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소크라테스나 공자의 가르침이 오늘날 우리의 고민에도 유효한 답을 건넬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케다 다이사쿠 이사장은 한 사람의 내면 개혁이 곧 사회 전체의 변화로 이어진다는 '인간혁명'의 관점을 지속적으로 드러냅니다. 비폭력과 평화, 그리고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각자의 일상적 선택에 달려 있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두 저자는 문명의 충돌과 환경 문제, 그리고 물질만능주의가 가져온 폐해를 함께 짚으며, 인간성 회복이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는 데 뜻을 모읍니다. 세계적인 위기 속에서 개인이 느낄 수밖에 없는 무력감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동양의 연기(緣起) 사상과 서양의 합리적 정론이 자연스럽게 교차합니다.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두 사람이 대화를 통해 사유를 넓혀가는 과정 그 자체가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해요.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고 중심을 잡게 하는 단단한 기준점을 만들어 줍니다. 지식을 쌓기 위한 읽기를 넘어 삶의 태도를 새로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복잡한 현실 속에서도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 왜 중요한지 깨닫게 해준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철학르네상스의대화 #이케다다이사쿠 #루매리노프 #중앙일보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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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_
철학이라고 하면 왠지 어렵고 멀게 느껴진다. 철학자들이 오래된 책상 앞에 앉아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고민하는 모습, 혹은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과 사상을 해석하는 학문을 먼저 떠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학 르네상스의 대화》를 읽으며 철학은 매일 반복해서 던지는 아주 평범한 질문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가. 이런 질문에는 검색창에 몇 글자를 입력한다고 해서 정답이 나오지 않는다. AI에게 물어도 수많은 답을 얻을 수 있지만, 그중 어떤 답을 자신의 삶의 기준으로 삼을 것인지는 자기 자신이 결국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마음에 남은 것은 ‘답’보다 ‘질문’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철학을 정답을 전달하는 학문에서 끌어내어,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바라보게 하는 행위로 되돌려놓는다. 특히 매리노프가 말하는 철학 상담의 의미가 인상적이다. 상담자는 상대에게 삶의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이미 존재하는 생각의 힘을 발견하도록 곁에서 돕는 사람이라는 점 때문이다. 너무 자주 누군가에게 답을 요구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옳은지 누군가가 대신 결정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내려준 답은 잠시 우리를 안심시킬 수는 있어도,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것까지 대신해주지는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하는 일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책의 초반부에서 만나는 이 문장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철학이나 교양은 결코 겉치레가 아닙니다.” 특히 이어지는 내용에서 철학을 특정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성실하고 진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연결하는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철학을 많이 안다고 해서 반드시 철학적인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철학자의 이름을 알고, 어려운 철학 용어를 설명할 수 있다고 해서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철학을 제대로 공부했다면 그 지식은 삶의 태도에서 드러나야 하지 않을까. 그 점에서 책 후반부의 이 문장은 앞의 생각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덕’에 관한 지식을 아무리 많이 쌓는다 해도, 그것만으로 덕 있는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실천해야 합니다. 행동해야 합니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철학과 교양을 대하는 나 자신의 태도도 돌아보게 된다. 사람들은 책을 읽고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밑줄을 긋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저장하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그 문장이 내 행동을 바꾸었는가를 생각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타인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과 실제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라고 알고 있는 것과 결과가 마음대로 나오지 않았을 때 과정의 의미를 인정하는 것도 다르다. ‘대화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상대방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듣는 것 역시 다르다. 철학은 결국 살아내는 만큼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최악의 환경에서 최상의 결과를 끄집어낼 수 있는 존재이다.” 이 문장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인생에서 환경은 분명 중요하다. 누구나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살아간다. 경제적인 상황, 가족관계, 사회적 환경, 예상하지 못한 사건처럼 자신의 의지만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도 많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에게 아무런 선택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환경 자체를 당장 바꾸지 못하더라도, 그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는 때때로 달라질 수 있다. 고통은 실제로 고통스럽다. 누군가에게 힘든 상황을 견디라고 쉽게 말해서도 안 된다. 다만 모든 조건을 통제할 수 없는 인간에게도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다음 행동을 선택할 가능성은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이 문장이 가진 힘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문장이 그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고뇌를 극복해 가치를 창조하는 인생이 진정으로 좋은 인생이며 승리의 인생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고뇌’보다 ‘창조’인지도 모르겠다. 고통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삶이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그 고통을 지나오면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지키게 되었으며, 다른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에 따라 그 경험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상처가 저절로 가치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와 태도를 만들어낼 수는 있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놀라운 힘일 것이다. 🔖“철학은 '삶의 의미'를 깨우고, '살아가는 힘'을 일으키는 지혜이기도 합니다.” 철학을 이렇게 정의하면 철학은 갑자기 아주 가까운 것이 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힘든 순간에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때로는 돈이나 정보일 수도 있고, 실제적인 해결책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해결할 방법이 당장 보이지 않는 순간에는 ‘왜 살아야 하는가’, ‘이 삶에서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의미의 문제가 더욱 절실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책에서 이어지는 질문, 🔖“괴로워하는 마음을 어떻게 격려할 것인가? 그리고 어려움에 맞서는 힘을 마음속에서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는 단순한 철학적 질문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가 실제로 마주하고 있는 질문처럼 느껴진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만이 아닐 때가 있다. “괜찮아질 거야.” “힘내.” 이런 말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지만, 너무 깊은 고통 앞에서는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왜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 힘인지도 모른다. 철학이 줄 수 있는 위로가 있다면 바로 그런 위로일 것이다. 문제를 없애주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문제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다시 세우는 것. 상황을 당장 바꾸어주지는 못하더라도 그 상황 속에서 내가 어떤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지 질문하게 하는 것. 그래서 철학은 위로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오히려 얕은 위로를 넘어서는 순간 철학이 시작될 수도 있다. 이 책에서 특히 오늘날의 사회와 연결해서 생각하게 만든 개념은 ‘중도’였다. 현대에서는 무엇이든 빠르게 판단하도록 요구받는다. 찬성인가 반대인가. 옳은가 틀린가. 좋은가 나쁜가. SNS에서는 짧은 문장 하나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뉴스의 제목만 보고 사건 전체를 이해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의견을 이해하기보다는 상대방이 어느 편에 속하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한 사람에게도 서로 모순되는 감정이 함께 존재하고, 하나의 사건에도 여러 원인이 얽혀 있다. 지금 옳다고 생각했던 선택이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 삶에서 ‘중도’는 무조건 가운데를 선택하는 타협과는 다른 의미로 읽혔다. 쉽게 어느 한쪽으로 몰려가지 않고, 복잡한 현실을 복잡한 그대로 바라보려는 태도. 그리고 판단을 미루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생각한 뒤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극단적인 언어가 넘쳐나는 시대에 필요한 철학적 태도가 아닐까 싶다. 책 제목에 ‘대화’가 들어간 이유 역시 생각해 볼 만했다. 과거 어느 시대보다 많은 소통 수단을 가지고 있다. 메신저, SNS, 댓글, 영상 통화 등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방법은 넘쳐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서로를 이해하는 일은 더 어려워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말은 많아졌지만 대화는 줄어들었다.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듣기보다 반박하기 위해 듣고, 상대가 무엇을 말하는지 생각하기 전에 내가 무엇이라고 대답할지를 준비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이야기하는 대화는 상대방을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보고, 그 사람에게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생각과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 책을 읽으며 ‘좋은 대화란 무엇일까?’라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좋은 대화는 반드시 의견이 일치하는 대화일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이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 그것이 더 어려운 대화일 것이다. 그러니 대화에는 말솜씨보다 태도가 먼저 필요한지도 모른다. 특히 제17장 [‘인간혁명’이야말로 ‘세계시민’] 부분에서 문화에 관한 대목이 기억에 남았다. 다른 문화권에 자신의 사상이나 가치관을 전달할 때에는 그 문화가 가진 고유한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는 문화와 문화의 관계를 넘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내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바꾸려고 하는 순간, 도움은 쉽게 간섭이 된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도, 친구 사이에서도,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 속에는 때때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 되어줬으면 한다’는 욕심이 숨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의 경험과 상처와 가치관이 있다. 그것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함부로 지워서는 안 된다. 상대를 존중한다는 것은 반드시 그 사람의 모든 생각에 동의한다는 뜻이 아니라, 동의하지 않는 순간에도 그 사람의 고유성을 인정하는 것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세계시민’이라는 말도 국제사회에만 적용되는 개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서 이미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책을 덮고 나서도 계속 생각나는 것은 철학의 거창함이 아니라 일상의 구체적인 모습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누군가의 말 때문에 마음이 상했을 때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것을 인정할 수 있는지.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차이를 불편함으로만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배울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일 것인지.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좋은 것들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지. 그래서 《철학 르네상스의 대화》는 철학적 지식을 더해주는 책이라기보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삶의 자리로 가져오는 책처럼 느껴졌다. 철학은 어려운 개념을 외우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순간마다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묻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은 혼자만의 사유로 끝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때로는 나와 다른 생각을 만나고, 그 과정에서 내가 가진 생각을 수정하고 넓혀가면서 비로소 깊어진다. 알고 있는 것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철학과 교양이 겉치레가 아니라면 그것은 삶의 모습으로 드러나야 한다. 타인을 대하는 태도로 드러나고, 갈등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드러나며, 내가 약한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실수했을 때의 태도에서도 드러나야 한다. 철학은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명함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삶의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뒤 ‘철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보다 먼저 든 생각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말 행동으로 옮기며 살고 있는가. 그리고 또 하나.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충분히 듣고 있는가. 지금 필요한 르네상스는 다시 생각하고, 다시 질문하고, 다시 대화하는 인간의 르네상스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시작은 오늘 내가 만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조금 더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한 번쯤 의심해보는 것. 알고 있는 좋은 것을 작은 행동 하나로 옮겨보는 것. _ #철학르네상스의대화 #이케다다이사쿠 #루매리노프 #중앙일보s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서평 #서평단 #철학도서 #철학 #인문 #신간 #신간도서 #새로나온책 #도서리뷰 #책리뷰 #책소개 #추천도서 #책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