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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 영원한 이방인, 최치원
"[18-60] 영원한 이방인, 최치원" 내용보기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 ~ ?)은 대표적인 6두품 출신이다. 868년 그는 12살의 나이로 당시 선진국이었던 당(唐)나라에 유학을 갔는데, 7년 만에 외국인 관리를 뽑는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하였다. ‘상투를 대들보에 걸어 매고 송곳으로 허벅지를 찔러 가며’ 악착같이 노력한 결과였고, 6두품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발버둥이었다. 과거에 합격한 그는 876년 당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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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 ~ ?) 대표적인 6두품 출신이다. 868 그는 12살의 나이로 당시 선진국이었던 ()나라에 유학을 갔는데, 7 만에 외국인 관리를 뽑는 빈공과(賓貢科) 합격하였다. ‘상투를 대들보에 걸어 매고 송곳으로 허벅지를 찔러 가며악착같이 노력한 결과였고, 6두품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발버둥이었다.

 

과거에 합격한 그는 876 당나라의 선주(宣州) 표수현위(漂水縣尉) 되었다. 황건적의 공을 세운 유비(劉備, 161~223) 직책도 현위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출발이 나쁘다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작 현위(縣尉)’ 만족하기에는 그가 가진 야심은 컸다. 결국 그는 현직 관리를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고위직 승진시험인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 도전하기 위해 현위를 그만 두었다. ‘고시 낭인 길을 선택한 셈이다.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작사가라는 김이나는김이나의 작사법이라는 책에서

나는 번도 꿈을 위해 무모해진 적은 없다. (나는) 지극히 현실적이었기에, 작사가가 되겠다고 모든 때려치우고시상(詩想)’ 떠올리는 몰입하는 등의 행동은 해본 적이 없다.

정말 간절하게 음악 일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불확실한 자신의 재능만 보고 현실을 포기하는 사람이 간절한가, 아니면 현실을 챙겨가며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멀리서부터라도 일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이 간절한가 ”[pp. 12~13] 하여 자신의 꿈을 위해 현실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인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마찬가지로 박학굉사과를 보기 위해 퇴직한 최치원은 IMF사태 수많은 한국유학생들이 겪은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해야 했다. 낯선 이국 땅에서 수입마저 끊긴 외국인이 받을 취급은 뻔하지 않는가.

 

무렵 최치원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전기(轉期) 맞이하게 된다. 바로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고변(高騈, 821~887) 추천으로 관역순관(館驛巡官) 것이다. 일이 인연이 되어 황소(黃巢, ? ~ 884) 난이 발생하자 그는 자연스럽게 고변의 종사관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시절 그는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으로 문장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아무리 문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토황소격문 일종의 공문서임이 분명하다. 그러니토황소격문 최치원이 아닌 고변의 이름으로 발표될 밖에.

 

고변의 휘하에서 나름 승승장구했지만, 그는 신라인이었다. 그에게는 지울 없는 이방인의 낙인이 찍혀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나라 관리가 되었어도, 그의 목록이당서(唐書)> “예문지(藝文志)” 기록될 정도로 인정받아도 ()나라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일까? 그의 시를 다룬 책의 1 새벽에 홀로 깨어부터 3 은거를 꿈꾸며까지 에는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이의 외로움과 쓸쓸함이 엿보이는 ()들이 종종 보인다.

 

새벽풍경

 

바람도 산마루 보드라운 구름 차마 흩고

햇볕도 언덕머리 쌓인 녹이지 못하네.

홀로 풍경 읊으니 마음 아득한데

바닷가 갈매기와 쓸쓸히 벗하네 [p. 19]

 

이유는 없지만, 최치원은 어느 순간 귀국을 결심하고 당나라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고변의 곁을 떠났다. 어쩌면 가진 재주를 맘껏 뽐낼 없는 환경에 지쳐서였을 지도 모른다.

 

()나라 유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관리가 있던 시절이라서 그는 헌강왕(憲康王, 재위 875~886)로부터 시독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지서서감사(侍讀 翰林學士 守兵部侍郞 知瑞書監事)’라는 벼슬을 받았다. 또한 고변의 막하에 있을 글을 모은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 헌강왕에게 바치기도 했다.

그의 적극적인 대응은 894 진성여왕에게 바친시무십여조(時務 十餘條)>에서 절정에 오른다. 상소로 그는 6두품 최고의 관직인 아찬(阿飡) 올랐지만 여전히 그가 있는 일은 없었다.

그가 돌아온 고국 신라에서도 그는 여전히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이성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은 그는 결국 탈속과 은거의 길을 걷는다. 아마도 시기의 시로 보이는 작품들도 책에 실려 있다.

 

겨울철 산사에서

 

잠시 선방(禪房) 쉬니 그리움 아련하고

이렇게 희귀한 산수 사랑스럽기만 하네.

빼어난 경치에 오래 머물지 못함이 슬퍼

한가롭게 읊으며 집에 돌아감을 잊네.

스님은 샘을 찾아 먹을 길어 내고

학이 솔가지 뜨매 눈이 날리네.

시와 즐기던 도연명(陶淵明) 흥취를 일찍 알았더라면

세상 명리(名利) 하마 잊었을 텐데 [p. 77]

 

물론 새벽에 홀로 깨어 최치원의 () 다루고 있지는 않다. 앞에서 말한토황소격문 포함한 공문은 4 갈고 김매는 마음으로, ‘<사산비명(四山碑銘)>’ 가운데 임진왜란 절과 함께 파괴된 초월산 대숭복사 비명(初月山 大崇福寺 碑銘)’ 제외한 3개의 비명(碑銘) 5 신라의 위대한 고승 각각 실려 있다. 비록 여기에 실린 글들이 공문(公文) 비문(碑文)이라는 제약된 형식 때문에 그의 사상과 철학을 온전하게 담지 못했지만, 그의 뛰어난 문장능력을 알려준다.

 

책을 통해, 번역가가 가려 뽑은 최치원의 시와 산문을 맛볼 있었다. 소개글에 따르면, 책이 최치원의 시와 산문을 함께 뽑아 이를 쉬운 우리말로 풀어 일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시도라고 하니, 그의 명성에 비해 작품들이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있었다. 아마도 여기에는 그의 산문 상당수가 내용과 형식에 제약이 있는 공문(公文) 비문(碑文) 같은 글이었다는 점도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언젠가 아래에 인용한 시처럼 책을 고마운 친구 삼아 같이 노니는 날도 오지 않을까.

 

고마운 친구에게

 

외로운 나그네 여기서 그대를 번이나 만났거늘

가을바람에 읊으며 헤어짐을 슬퍼하네

버드나무에 올해 새로 잎은 시들었건만

나그네는 작년 그대로일세.

길은 하늘 아스라한데 시름 속에 늙어 가니

바다 너머 고향집 꿈에나 돌아갈까

허허, 몸은 봄날의 제비런다

단청 그린 높은 집에 다시 노니니. [p. 59]

w******f 2018.11.06. 신고 공감 10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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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전의 감성이 느껴진다
"천 년 전의 감성이 느껴진다" 내용보기
명성이 자자하지만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던 최치원의 시를 이번에 봤는데 정말 너무 좋아서 눈물이 왈칵 솟았다. 천 년전의 시가 2천년대를 살고 있는 내 마음을 흔들었다. 문학의 힘, 시의 힘이 느껴진다. 그때의 자연과 그때의 사람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고 세상사는 시절이 바뀌어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 최치원의 외로움과 회한과 서러움이 가득 배여 있는 글들에 취한 듯하
"천 년 전의 감성이 느껴진다" 내용보기
명성이 자자하지만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던 최치원의 시를 이번에 봤는데 정말 너무 좋아서 눈물이 왈칵 솟았다. 천 년전의 시가 2천년대를 살고 있는 내 마음을 흔들었다. 문학의 힘, 시의 힘이 느껴진다. 그때의 자연과 그때의 사람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고 세상사는 시절이 바뀌어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 최치원의 외로움과 회한과 서러움이 가득 배여 있는 글들에 취한 듯하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u*****a 2020.10.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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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늦은시각에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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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홀로깨어 ~ 최치원선생의 선집이다책의 구성1부~3부 - 최치원의 시 가운데 수작들 모음이다 ‘새벽에 홀로 깨어’ ‘비 오는 가을밤’ ‘은거를 꿈꾸며’ 4부 ‘- 밭 갈고 김매는 마음으로’ - 최치원 산문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는 열 편의 작품5부 ‘신라의 위대한 고승’ - 사산비명(四山碑銘) 가운데 세 작품을 뽑아 놓았다. 이 세 작품은 최치원이 왕명을 받고 신라의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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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홀로깨어 ~ 최치원선생의 선집이다


책의 구성

1부~3부 - 최치원의 시 가운데 수작들 모음이다

 ‘새벽에 홀로 깨어’ 

‘비 오는 가을밤’

 ‘은거를 꿈꾸며’ 


4부 ‘- 밭 갈고 김매는 마음으로’ - 최치원 산문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는 열 편의 작품


5부 ‘신라의 위대한 고승’ - 사산비명(四山碑銘) 가운데 세 작품을 뽑아 놓았다. 

이 세 작품은 최치원이 왕명을 받고 신라의 위대한 고승의 사적을 기리기 위해 쓴 비명(碑銘)으로, 

최치원 문장의 정수로 꼽히는 작품들이다. 


6부 ‘참 이상한 이야기’ - 수이전??(殊異傳)의 열 작품을 실었다. 

수이전은 신라 시대 민간에 전해지던 이야기이다. 

r********7 2019.03.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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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의 작품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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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에 대한 어렴풋한 동경과 기대를 가지고 이 책을 주문했다.골품제도가 강경했던 신라시대 6두품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뛰어난 재능을 널리 펴지 못한 비운의 인물이라는 그에 대한 어렴풋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이 책을 통해 그의 내면의 사색이나 성찰, 판단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주문했다. 이 책의 문제라기 보다는, 애초에 역사에 남겨져있는 최치원의
"최치원의 작품 모음집" 내용보기

최치원에 대한 어렴풋한 동경과 기대를 가지고 이 책을 주문했다.

골품제도가 강경했던 신라시대 6두품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뛰어난 재능을 널리 펴지 못한 비운의 인물이라는 그에 대한 어렴풋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 그의 내면의 사색이나 성찰, 판단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주문했다.

 

이 책의 문제라기 보다는, 애초에 역사에 남겨져있는 최치원의 작품이 많지 않다고 한다.

두껍지 않아 하루 반나절이면 다 볼 수 있는 이 책은 최치원이 지은 시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대다수의 시가 그렇듯이 깊은 철학적 논증보다는 감정적인 서사를 읊은 내용이 대다수다.

또한, 본래 한시를 한글로 옮긴 것이라서 본래 문맥이 100퍼센트 정확히 옮겨지기 힘든 것도 있다.

옮긴이가 최선을 다해 훌륭한 번역을 했지만..

 

산문집으로는 본인의 유학길에 대해 읊은 것과 그 유명한 황소 격문 등이 담겨 있는데,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지은 것으로 그의 전체적인 사상이나 생각, 삶에 대한 통찰을 들어보기는 어렵다.

 

사실 이 책을 읽고나니, 그가 스스로 신분적 한계에 봉착되어 비운을 느꼈다기 보단 체제에 순응하고 그 안에서 최대한의 기회를 잡으려고 한 것 같다고 판단되었다.

어떤 사람에 대한 판단을 할 땐 실제 그가 쓴 글을 직접 보고 그가 처한 상황을 과학적으로 추론해보아야 실제적인 면모를 알 수 있지 않나 싶다.

s*****b 2020.08.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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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홀로 깨어, 잠들기 전 고요한 시간에...
"새벽에 홀로 깨어, 잠들기 전 고요한 시간에..." 내용보기
나의 깊은 곳에 감춰있는 감정을 이끌어내어 글에 전념하게 만든다.글에 스며있는 저자의 그 모든 감정, 글로 표현 할 수 없는 그러한 감정이 어떻게 글에 스며있게 하였는지...잠들기 전 고요한 곳에서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잠이 달아나기도 하고 꿈 속에서 글이 살아나서 눈 앞에 펼쳐지기도 했다.작품을 평가할만한 지식은 갖추지 못했지만규칙에 따라야 했던 제한된 글쓰기로
"새벽에 홀로 깨어, 잠들기 전 고요한 시간에..." 내용보기

나의 깊은 곳에 감춰있는 감정을 이끌어내어 글에 전념하게 만든다.

글에 스며있는 저자의 그 모든 감정, 

글로 표현 할 수 없는 그러한 감정이 어떻게 글에 스며있게 하였는지...

잠들기 전 고요한 곳에서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잠이 달아나기도 하고 

꿈 속에서 글이 살아나서 눈 앞에 펼쳐지기도 했다.

작품을 평가할만한 지식은 갖추지 못했지만

규칙에 따라야 했던 제한된 글쓰기로 이런 모든 표현이 가능했다는 것에 감탄한다. 

f********1 2018.03.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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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최치원~" 내용보기
신라말기 최치원은 6두품 출신으로 인해힘이 없어서 사람들을 구원을 해주지 못한채슬픔으로 정치에서 벗어났다고 역사책에서배운 적이 있다ㅡ최치원이 6두품출신이 아니었다면신라말기때 쉽게 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안타깝다ㅡ 천년의 역사가 끝났다최치원을 책에서 만나게 되어요세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ㅡ감사할 따름이다.여러분도 꼭 읽어보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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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기 최치원은 6두품 출신으로 인해
힘이 없어서 사람들을 구원을 해주지 못한채
슬픔으로 정치에서 벗어났다고 역사책에서
배운 적이 있다ㅡ

최치원이 6두품출신이 아니었다면
신라말기때 쉽게 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타깝다ㅡ 천년의 역사가 끝났다

최치원을 책에서 만나게 되어
요세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ㅡ
감사할 따름이다.

여러분도 꼭 읽어보시길 바래요
b**********3 2018.01.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