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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고 싶은 현실에 있다고 하자.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다고 여기지 않은가. 만약 약간의 돈을 주고 자기가 좋아하는 영상을 틀어 그 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라. 자기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것들과 시간을 보낸다면 갑갑한 현실 같은 거 잊고 말 것 같지 않은가. 다만 현실에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게 문제가 될 듯하다. 분명한 게 꿈속에서는 내가 원하는 세상만 존재할 것이므로 그렇다.
영화 <인셉션>이 생각났다. 타인의 꿈에 들어가 생각을 훔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였다. 영화의 잔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김중혁의 『꿈이다 아니다』를 읽었더니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 세상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내 꿈속으로 들어와 내가 가진 정보 혹은 기억을 훔쳐 갈 수도 있다. 나의 외모로 누군가에게 다가가 해를 끼칠지도 모르지 않나. 물론 중요인물도 아니므로 훔칠 정보도 없겠지만, 꿈속의 세상과 현실이 맞물려 범죄에 이용되지 않는다고 보장하지 못하겠다.
오랜만에 김중혁의 소설을 읽었다. 상상력의 세계, 꿈의 미래를 경험하는 듯했다. ‘달리’라는 회사에서 드림 큐레이터로 일하는 주이창과 ‘마이멘토모리’에 언더커버로 활동하는 경찰관 주아연이 주인공이다. 주이창은 달리글라스를 끼고 잠에 빠지면 뇌파 데이터를 꿈 변환기를 통해 변환된 영상을 사용자들에게 돈을 받고 ‘꿈 해설 서비스’를 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갈라’와 ‘루팅’을 이해하면 좋겠다.
갈라에서는 접속자가 자기 기억의 표면을 떠다니며 오래된 감정과 기억 속의 장면을 더듬을 수 있다. (중략) 루팅은 사람의 생애 기억과 인지 패턴, 감정 반응을 더 깊은 바닥에 고정시키는 작업이었다. 한번 내려간 것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고, 한번 정착이 시작되면 되돌리는 일도 거의 불가능했다. 갈라가 산 사람을 위한 휴식처라면, 루팅은 죽은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안식처였다. (262페이지)
주이창과 주아연은 남매 사이로 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는 생명유지장치를 하고 있는 상태다. 살아 있는 게 아니므로 그만 보내드리자고 하는 아연과 살아있는 사람을 어떻게 죽은 사람으로 치부하겠냐가 이창의 의견이다. 각자 꿈속으로 들어가 신세계를 경험한다. 꿈속에서 서로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이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꿈의 세계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육신을 버리고 영원하기를 원하는, 즉 루팅을 선택한 사람의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파는 세력이 있다는 거다. 그걸 알선하는 사람이 있고, 그러기 위해서 약을 판매하는 자가 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존엄성 따위 쓰레기처럼 여기는 인간이 등장한다는 게 아이러니다. 다른 한편으로, 지금은 만날 수 없는 가족을 꿈속에서 만난다면 행복한 일이기도 할 것 같다. 다정한 목소리, 웃는 모습으로 대화를 하다 보면 꿈속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AI로 죽은 사람의 모습도 나타낼 수 있는 시대다. 비록 상상의 세계라고 하지만, 꿈속에서 소통하지 않는다고 보장하지 못하겠다.
꿈의 세계를 만든 자, 꿈속에서 소통할 수 있는 자, 상처마저 치유되지 않을까 싶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의 고통을 아는 사람에게 꿈속에서 누구를 만나고 싶은지 물어보면 하나같이 사랑하는 사람을 말할 것이다. 꿈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헷갈릴 법도 하지만 결국에는 꿈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을까. 과거의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미래를 향해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고 누군가 말했다. 아무리 현실이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결국엔 살아있다는 게 중요하다고도 말한다. 일상이 지겨워도, 지겨움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며, 내가 하는 작은 행동 하나가 일으킬 파장을 생각해 보면 살아갈 법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한 명만 있어도 좋은 게 아닐까. 좋은 일이 생기면 꿈은 아닐 거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좋은 일만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꿈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꿈이다아니다 #김중혁 #안온북스 #SF소설 #한국소설 #한국문학 #리딩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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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서점에서 ‘이창의 DALI 소설’을 발견했다. 세 개의 (고유)명사들이 들어간 제목이 눈길을 끌었는데, 잘 모르는 작가였다. 한 번 들춰보니 얼마전에 읽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처럼 사실과 소설의 어중간한 그 사이에서 진술을 하고 있었다. 달리라는 회사가 어떻게 우리의 세상을 침식시켰는지 비판이나 동정 따위 없이 서술하더니, 그 곳에서 있었던 많은 사용자들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빠르게 훑어보며 ’나의 꿈’은 어떨지 생각해보았다. 그 꿈이 과거-현재-미래를 암시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았지만, 나는 꿈을 별로 믿지 않는다. 오히려 어렸을 때 꾼 꿈이 이상하게도 기억이 나긴하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흐릿하다. 대신 이 작가가 알려준 노래를 통해 나는 어떤 이미지를 얻는 기분이었다. 나 역시 음악이라면 들리는대로 적어둘 수 있다. 가사가 아닌 이미지를 적어둘 수 있다. 그래서 여기에 적어본다. 이것은 세 개의 고유 명사가 음악으로 흐르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배를 타지는 않았지만, 차를 타고 가며 지평선으로 지는 노을을 끝도 없이 바라보는 꿈. Are You Going With Me? 이제는 노을을 바라보는 것이 외로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저 오늘 하루가 지는 것이고, 내일은 또 다른 사람에게 다가올 노을일 것이다. 이건 어떨까. 뭔가 빠르게 갈 것만 같은 이 거리에서 악사들이 연주를 한다. On Green Dolphin Street 거리는 분주한 가운데 악사들은 계속해서 이 연주를 이어갈 것만 같다. 시작과 끝이 이어진 듯한 이 노래에 맞춰서 걷고 또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 또한 외로움, 노을과 닮아있을까? 서로 상관없는 거리의 보행자들의 목소리가 들려도 상관없을 것 같다. 그저 어딘지 닮은 것 같은 거리풍경에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악사들의 연주가 들려온다. 그렇담. 이제 몸을 좀 풀어볼까. 차 안에서 노을을 보는 꿈, 거리를 걷는 꿈, 그리고 이제 리듬을 타는 꿈이다. Where Did I Go Wrong? (UB40) 이 노래 속의 음표들이 나와 함께 리듬을 탄다. 꿈 속에서. 끝이 없는 것은 여전하다. 이제 좀 쉬어서 가는 것도 좋겠다. Remember (Harry Nilsson) 이창의 DALI 소설 주이창이 소설을 쓰겠다고 나섰는데, 혹시 쓴다면 벵하민 라바투트의 When We Cease To Understand The World와 같은 책을 쓰지 않았을까 한 번 상상해본다. 김중혁 작가의 ‘꿈이다 아니다’를 다시 읽고 리뷰를 다시 도전해본다. 이 소설에서 음악이 소개되는데 그 음악을 찾아 듣자, 새로운 소설이 보였다. 이렇게 새로운 소설이 쓰여졌다는 것에 기쁘고(새삼), 내가 다시 읽었다는 것에 뿌듯했다. 이 소설을 읽고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는데, 미리 선곡했던 곡들과 함께 합쳐지면서 완성되었다. 지금 흐르는 곡은 Chicago의 Will You Still Love Me? 멋진 음악을 다시 찾아듣게 해준 김중혀 작가에게 엄지와 검지를 살짝 비틀어서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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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다 아니다 김중혁 저 안온북스
김중혁의 <꿈이다 아니다>는 제목부터 묘한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꿈일까, 현실일까. 그리고 만약 현실의 고통을 모두 지워버릴 수 있는 완벽한 꿈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곳으로 떠나고 싶어질까. 소설의 중심에는 인간의 꿈을 저장하고 해석하는 기술과 이를 활용한 ‘갈라’라는 꿈의 세계가 있습니다. 현실의 고통과 불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꿈은 매력적인 도피처가 됩니다. 하지만 완벽해 보이는 가짜 낙원 뒤에는 자본과 권력, 기술이 결합된 거대한 욕망이 숨어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소설이 단순히 ‘기술이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는 미래의 공포만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고통이 없는 삶이 정말 행복한 삶일까? 실수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고, 슬픔도 느끼지 않는 세계라면 분명 편안할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선택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면서 만들어가는 삶까지 사라진다면 그것을 과연 ‘나의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소설 속 인물들의 선택을 통해 더욱 선명해집니다. 꿈속에서는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흘러갈 수 있지만, 현실에는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존재합니다.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서 인간은 선택하고 관계를 맺으며 조금씩 자신의 삶을 만들어갑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거대한 악에 맞서는 존재가 처음부터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한가진, 주아연, 주이창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고 행동하면서 거대한 시스템에 균열을 만들어냅니다. 작가는 이를 ‘작고 순한 의지들’이라는 방식으로 보여즙니다. 그래서 <꿈이다 아니다>는 거대한 디스토피아를 다루면서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작은 마음을 이야기하는 소설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집니다. 힘든 일도 있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관계도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럴 때 모든 것을 잊게 해주는 꿈이 있다면 얼마나 달콤할까? 하지만 이 소설은 묻습니다. 그렇게 모든 고통을 지워버린 곳에서, 과연 우리는 진짜 나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꿈이다 아니다>가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SF적인 상상력과 범죄 미스터리의 긴장감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야기가 현실의 문제로 다가옵니다. 기술이 점점 인간의 기억과 감정, 삶에 깊숙이 들어오는 시대에 ‘편리함’과 ‘행복’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결국 이 소설이 말하는 ‘진짜 세계’는 완벽한 세계가 아닙니다. 실수도 있고 후회도 있고 때로는 고통도 있는 세계입니다. 그럼에도 내가 선택하고, 누군가와 연결되고, 오늘의 경험을 내일의 나에게 이어갈 수 있는 세계입니다. 도망치고 싶은 현실이야말로 어쩌면 내가 끝까지 살아내야 할 나의 세계인지도 모릅니다.
<꿈이다 아니다>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흔들면서 묻습니다. “당신이라면 완벽하게 행복한 꿈과 불완전하지만 진짜인 현실 중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책을 덮고 나면 꿈의 세계보다 오히려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평범한 하루, imperfect한 선택,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대화 같은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김중혁 특유의 상상력과 유머에 SF, 미스터리, 철학적인 질문이 더해진 작품을 좋아한다면 흥미롭게 읽을 만한 소설입니다. #꿈이다아니다 #김중혁 #소설추천 #안온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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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에 걸쳐서 읽은 김중혁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꿈이다 아니다’ 는 과연 요즘 소설이 어떤걸까 싶다. 분명 점점 ‘신박’해 지는 것도 같은데, 왜 아쉬운지 모르겠다. 각 장마다 제목이 보여주는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시작에서 끝까지 촘촘히 흘러가는데도 불구하고, 소설이 책으로 나왔을 때 보여주는 밀도감 있느 진행은 쏙 빠져버린 것만 같다. 만약 이 소설이 한 장은 캐릭터의 대화, 다음 장은 긴 묘사와 서술, 이렇게 번갈아서 구성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분명 독서 시간이 걸리고 조금 더디더라도 책, 소설, 문학이 안겨주는 포만감에 흡족했을 것만 같다. 분명 지난 번에 ‘딜리터’를 읽었을 때는 지금과는 다르게 충분하고 새롭다는 생각이 가득했는데, 이번 소설은 좀 다르다. 작정하고 매 장을 <대화>로 엮은 것만 같다. 그래도 그렇지…. 소설인데! 이랬다 저랬다하는 독자의 마음에 작가님도 장단 맞추기 힘들겠지만…. 사실 장단은 작가님의 뜻대로 흘러가는 것 아닌가. 독자는 작가의 눈높이 맞춰서 읽어야한다는 말이다. 소설이 어려워서 읽기 힘들수도, 소설이 어두워서 싫을수도, 소설이 이상해서 피할수도 있지만, 독자는 그래도 읽고 싶으면 읽게 된다. 펼쳐진 책에 이미 마음이 가닿아서 시간이 걸리거나, 아니면 책장 속에 있다가도 꺼내서 읽게되는 것이다. 달리와 루팅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질 때 물거품이 되는 것처럼, 꿈을 서비스하는 일은 어딘지 소설을 서비스하는 것과 접점이 된다. 하지만, 소설은 서비스와는 좀 다르다. 소설은 작가가 오롯이 자신의 세계를 이야기로 이어붙이는 작업이다. 그런데 자신의 세계가 새로운 세대의 물결에 휩쓸리면 안되지 않을까. 물결을 타는 것은 좋겠지만, 휩쓸리면 오직 한 명인 그 작가는 어디로 갈까. 작가님의 다음 책을 또 기다리는 한 명의 독자로서, “이번 소설은 소설 바깥에서 생각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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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의 장편소설 <꿈이다 아니다>는 꿈과 현실 사이에 과연 무엇인가가 존재하는 지 생각해 보게 한다. 달리의 꿈 해석 서비스와 갈라, 그리고 루팅을 주제로 이와 연관되거나 파헤치려는 자들의 어쩌면 황당한 좌충우돌이 전개된다. 실제로 이러한 서비스가 주어진다면 주인공들처럼 나도 도전해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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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운전 중 라디오에서, 사람이 어떤 영화를 보는 순간 뇌에 쌓인 이미지를 모니터 등에 재생할 수 있는 ‘뇌 활동 기반 영상 복원’ 기술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아직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떠한 영화를 보고 있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 라고 출연자가 이야기하였는데 그녀가 그러한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회사의 대표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직까지는 그 기술 수준이 걸음마 단계가 아닐까 짐작한다. (하지만 인공 지능의 발전 속도를 생각한다면...) “루팅은 달리의 비밀 서비스예요. 고객들의 꿈 아카이빙을 이용해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을 여는 거죠. 보통의 마인드 업로딩 방식은 정신을 정보 단위로 추출해서 이전하는 거잖아요. 루팅은 생이 전체의 기억, 인지의 흐름 전체를 꿈의 세계에 정착시키는 방식이에요. 좋아하는 꿈을 50개 정도 고르면, 인간의 ‘소울’을 꿈 아카이빙 속에다 넣을 수 있어요. 죽기 전에 루팅을 하면 영원히 죽지 않고 꿈에서 살아가는 거죠.” (pp.29~30) 그러한 이야기를 접한 터이니 《꿈이다 아니다》 속의 꿈 관련 기술들을 그저 신기루처럼 들여다보지는 않게 된다. 꿈을 영상으로 변환해주는 회사인 달리, 뇌파 데이터를 수집하는 도구인 달리글라스가 그렇다. 여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소설 속 회사 달리는 회비를 내는 사람에 한하여 영상을 제공하고, 드림 큐레이터를 통해 ‘꿈 해설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간의 욕망은 기술 개발의 도구이고, 기술 개발의 결과는 다시 인간의 욕망을 부채질한다. “갈라는 신세계였다.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은 이미 원주민이 살고 있는 곳이었지만, 갈라 속 세상은 완벽하게 새로운 곳이었다... 갈라는 신세계였다. 새로운 영토였다. 이 정도면 사기칠 만했다.” (pp.63~64) 소설은 달리의 새로운 차기 수익 모델인 (죽음 뒤의 영원한 꿈 속 삶을 제공하는) ‘루팅’, 그리고 루팅의 베타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갈라‘ 서비스와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코마 상태를 겪어야 하는 오빠인 주이창과 여동생인 주이연이 여기에 엮이게 된다. 주이창은 달리에서 일하면서, 그리고 주이연은 형사로서 서비스에 침투하여 사건들을 만들고 해결한다. “... 악의 트라이앵글은, 각자의 욕망에 충실했고, 다른 사람의 이익을 탐하지 않았다. 도재호는 달리와 갈라를 통해 돈을 벌고 싶어 했고, 이기태는 꿈의 지도를 만들어 인간을 통제하고 싶어 했고, 오지상은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서 종교의 의미를 실현하고 싶어 했다. 도재호는 갈라에서 멈추지 않고 루팅이라는 방법을 고안해냈으며, 오지상은 루팅을 통해 죽음을 극복하는 신이 되고 싶어 했고, 이기태는 인간의 육체를 실험 장비로 사용할 수 있게끔 다양한 약을 제공했다.” (pp.175~176) 주이창을 부추기는 것은 이기태, 오지상, 도재호로 이어지는 ’악의 트라이앵글‘이고, 주이연을 이용하는 것은 ’에레보스 꿈 연구소‘의 한가진이다. 달리의 사장인 도재호 등은 갈라 그리고 루팅 서비스가 가져올 디스토피아적 현실에 눈 감는다. 도재호와 함께 기술을 개발하였던 한가진은 이를 알고 이 서비스들을 방해하기로 한다. 현실에서 만나지 않던 주이창과 주이연은 갈라 서비스 안에서 만난다. “갈라의 세계는 무한대로 넓고, 한없이 아담한 곳이다. 유일한 교통수단은 생각과 마음이다. 생각보다 가깝다고 생각하면 빛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고, 마음만 잘 먹으면 더 빨리 움직일 수도 있다. 꿈속의 물리 법칙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 갈라에서는 1분 만에 깨닫게 된다. 갈라의 하늘에는 블랙홀 같은 게 사방에 널려 있는데, 일종의 지뢰다. 거기에는 자신이 업로드하지 않은 무의식의 풍경에 나타나는데, 그걸 보고 놀라는 순간 꿈에서 깨게 된다.” (p.214) 과거의 김중혁은 현실에 발을 딱 붙인 상태에서 가공할만한 상상력으로 독자들을 기괴한 공간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김중혁은 현실에서 두어 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렇기 때문에 저절로 가능해지는 상상력 안에 독자들을 안주하게 만들고 있다. 김중혁의 이야기가 주던 신선함의 시공간이 그립다. 그건 그렇고 아래의 〈작가의 말〉은 좋았다. 머릿속 이야기를 좀더 그럴싸하게 소분하여 내놓을 수 있기를 응원한다. “소설의 출발점은 하나가 아닐 때가 많다. 인생의 많은 순간이 동시다발적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출발시키고, 작가는 그걸 수습하고 모으는 역할을 한다. 작가는 출발선이 정확히 어딘지도 모른 채 달리다가 결승선에 도착하는 셈이다. 물론 거기가 결승선이 아닐 수도 있지만 계속 달렸다가는 평생 한 편의 소설만 쓰게 될 것이다. 물론, 그것도 나쁘지 않지. 작가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평생 한 편의 소설을 쓰고 있는데, 작가는 그걸 소분해 책으로 써서 파는 사람들이다.” (p.310, 〈작가의 말〉 중) 김중혁 / 꿈이다 아니다 / 안온북스 / 311쪽 / 2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