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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교회 안에 머물러야 하는가’에 대해 손희송 주교님이 건네는 대답을 담은 책이다. 모태신앙인 내게 성당은 오랫동안 ‘당연히 가야 하는 곳’이었다. 주일이면 성당에 가야 한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입력되어 있었고 그렇게 신앙생활을 이어왔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교회 안에서 여러 봉사를 하면서 성당의 의미가 조금씩 달라졌다.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무언가를 하며 느끼고 얻는 것이 많아졌다. 이 책은 그동안 교회 안에서 내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것들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하느님의 초대에 합당하게 응하는 것이 신앙이다.”(22쪽) 하느님께서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함께 부르신다. 그래서 신앙은 처음부터 ‘나와 하느님’만의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세례와 성체성사 역시 내가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개인적인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책은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룬 사람들은 서로 간에도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서로 한 몸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는 이른바 ‘코드’가 같은 이들이 모인 ‘끼리끼리’의 모임이 아니다.”(146쪽) 성당에서 봉사하면서 처음에는 이 부분이 조금 어려웠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일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교회는 애초에 나와 잘 맞는 사람들만 모인 곳이 아니다. 서로의 다름을 견디고, 잘못에 대해 용서를 청하며 한마음이 되어가는 공동체라는 말에서 그 고민에 대한 답을 발견했다. 이번 여름신앙학교를 준비하면서는 ‘하느님 나라’가 무엇인지 아주 작게나마 느꼈다. 책에서는 하느님의 자비를 받아 자비롭게 변화된 이들이 모인 곳에서 이미 하느님 나라가 세상 안에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한다.(31쪽) 신앙학교를 준비하며 불평도 불만도 없이, 굳이 나서거나 자랑하지도 않으면서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맡은 소임을 다하는 선생님들을 보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런 곳에서 하느님 나라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현실의 교회가 언제나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한때는 ‘하느님이 계시다면 세상은 왜 아름답기만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느님의 교회인데 왜 그 안에서도 잘못이 생기고 실망스러운 모습을 만나게 되는 것일까. 책에서는 교회의 시작부터 빛과 어둠, 은총과 죄가 함께 존재했으며 교회는 세상 마지막 날까지 ‘보화를 담은 질그릇’의 모습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111쪽) 또한 교회의 거룩함이 자동으로 죄를 사라지게 하는 것은 아니며, 교회는 끊임없이 사랑을 실천하면서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124쪽) ‘아, 여기에 정답이 있었구나.’ 현실의 교회가 부족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는 여전히 그 안에 머무르시며 사람들을 부르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들을 통해 교회는 계속 새로워진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회’를 일구어가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책에서는 평신도들이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 신자답게 살아가려 노력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한다고 말한다.(95쪽) 거창한 일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자리에서 신자답게 사는 것 자체가 평신도의 몫이라는 이야기가 반갑게 다가왔다. 나름대로 그렇게 살아보려고 노력 중이니까. 본당 봉사에 대한 부분도 기억에 남았다. “본당에서 봉사하는 평신도들의 임무는 무엇일까? 바로 본당 사목자를 도와 교회가 하느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성전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195쪽) 이 문장을 읽으니 내가 하는 봉사가 갑자기 조금 멋지게 느껴졌다. ‘나, 생각보다 큰일을 하고 있구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봉사라도 그것들이 모여 교회를 이루고 성장시키는 일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니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도 새롭게 보였다. 또 주일마다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사람이라면 평소에도 감사의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164쪽) 미사 안에서 “제 탓이요”라고 가슴을 치면서 일상에서는 다른 사람의 탓만 할 수는 없다. 미사 안에서 고백한 것을 성당 문을 나선 뒤의 삶에서도 살아내는 것. 그것이 평신도로서 해야 할 가장 현실적인 신앙생활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가톨릭교회의 역사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전례 개혁에 관한 부분에서는 엄마에게 들었던 옛 미사 이야기가 떠올랐다. 라틴어로 미사를 봉헌하고 사제와 신자들이 함께 제대를 향해 미사를 드리던 시절부터 오늘날의 전례에 이르기까지, 내가 당연하게 참여하고 있는 미사에도 오랜 교회의 시간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의 뿌리는 가정이다.”(205쪽)라는 문장에서는 내가 왜 아이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전해주고 싶은지도 다시 생각했다. 나 역시 부모에게서 신앙을 물려받았다. 어린 시절에는 그것이 그저 ‘주일에는 성당에 가야 하는 것’ 정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간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에게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살아가다 언젠가 스스로 꺼내어 볼 수 있는 신앙의 유산을 남겨주고 싶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만난 문장은 그래서 더욱 마음에 남았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분과 함께 지내야 합니다. 그분을 가장 확실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231쪽) 이것이 내가 교회에 가는 이유이고, 앞으로도 계속 교회 안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가야 하니까’ 가던 성당에서 어느새 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봉사하고, 때로는 부딪치고 용서하며 신앙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주님께서 세우셨지만 우리가 함께 일구어가는 교회. 책을 덮으며 얼마 전 세례를 받은 친구가 떠올랐다. 이제 막 신앙생활을 시작한 친구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왜 교회에 가야 하지?’라는 질문에 ‘신자니까’라는 대답보다 조금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리고 모태신앙으로 오랫동안 교회 안에 머물러 온 나에게도 이 책은 하나의 대답이 되었다. 왜 나는 교회에 가는가. 그곳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서로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받은 것을 나누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 조금 더 신자답게 살아보기 위해서. 그래서 나는 다시, 우리의 교회로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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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이 책에 감사했던 점은 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 ‘교회의 역사’를 너무나 알기 쉽게 적혀있다는 것이다. 특히 1부, ‘주님이 세우신 교회’를 읽을 때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공의회 부분이다.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자잘한 내용은 다른 책에도 정말 많이 나오는데, 그냥 흘러 읽었던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자세히 알고 나니 왜 다양한 책과 교리에 많이 언급되었는지, 왜 중요한지를 알 수 있었다. ‘전해져 내려온 신앙의 본질을 보존하되 현대인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새로운 방식, 새로운 표현으로 전하자는 것이다. (p.87)’ . . .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교회는 ‘그들만의 세상’처럼 느껴지고 있을 것이다.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 각자의 삶을 통해 공의회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배우고 익히며, 삶으로 수행해나간다면 교회 안에 갇힌 우리들만의 세상이 아닌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생명 전부, 모두를 위한 세상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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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게된 손희송 주교님의 [주님의 교회, 우리의 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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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송 주교님의 신간, 『주님의 교회 우리의 교회』는 구약에서부터 내려오는 교회의 형성 과정과 그 이어짐을 정리해 주면서, 이스라엘의 교회와 현재 우리 교회와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인해 이어진 교회의 역사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명확한 정리는 교회의 큰 역사의 흐름을 깨닫게 해주었다. 역대 공의회들이 열린 의의를 간략하게 소개해 주어서 이 시대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갖는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교회, 그리고 평신도들이 가져야 할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도 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찾을 수 있었다. 교회사 안에서 현재 우리 신앙인들의 위치와 사회적 상황이 어떤지에 대한 인식도 명확히 해 준다. 종교적 무관심, 생명 의식의 결여, 세속주의 풍조, 윤리적 상대주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무관심 등, 이런 것들을 그리스도인은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형편에 따라 힘든 상황들은 종종 외면하게 되는 게 현실이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이지만, 믿음을 바탕으로 거룩함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신앙인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적극적인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다각도로 알려준다. "평신도들은 세속 안에서... 자기의 고유한 임무를 수행하며 복음 정신을 실천하고 누룩처럼 내부로부터 세상의 성화에 이바지하며, 또 그렇게 하여 무엇보다도 자기 삶의 증거로써 믿음과 바람과 사랑으로 빛을 밝혀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교회 헌장, 31장> 무신론과 세속주의가 판치는 세상 속에서, 나와 우리 교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정표가 되어 준 책이었다. 이 책의 곳곳에 천주교인이라면 꼭 숙지해야만 하지만, 읽기는 참 힘든, 교회 헌장이나 사목 헌장과 같은 읽기 참 힘든 문헌들을 적절히 인용되고 있다.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을 쏙쏙 뽑아서 알려주시는 손희송 주교님만의 명강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주님의 교회 우리의 교회』는 교회의 발전을 위해, 현재를 알고 좀 더 나은 신앙인이 되기 위한 등대 같은 책이다. 사도직 활동에 실제적인 바탕이 되어 주는 책이기에, 실천하는 신앙인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책으로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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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우리 우리가 속한 교회의 시작은 어디일까? 예수님 승천 후 성령강림으로 시작된 교회활동의 기초는 어떠했을까? 그 교회는 지금의 교회와 어떻게 다를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세우신 교회에 어떤 의미를 두셨고 어떤 모습으로 지속되기를 원하셨을까? 그 교회는 항상 예수님의 뜻에 맞게 걸어왔을까? 그렇지 않다면 어떤 노력들을 통해 지금까지 이어져왔을까? 지금, 우리는 어떤 교회 안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사제도 수도자도 아닌 우리가 이 교회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전반부는 주님이 세우신 교회라는 주제로 교회의 역사와 신약성경에서 나타나는 교회의 본질, 그리고 이 교회를 올바르게 이끌기 위한 백성의 노력과 교회를 구성하는 우리들의 사명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후반부는 현대 사회 안에서의 교회의 모습과 다양, 복잡해진 상황에서 빚어지는 갈등들, 특히 교회 안에서의 일치, 교회 밖에서 타신앙과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이루는 평화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현대적 의미의 무신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현대 사회의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지체로 우리가 어떤 삶을 봉헌해야 할지를 얘기한다. 그리고 그 삶을 통해 어떤 사명을 수행해야하는지 ‘사도로서, 선택된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소명의식을 깨달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여 하느님 사랑의 열매를 맺는 이가 되라고 글을 맺는다. 최근 공동체에 대한 책들을 자주 들게 되었는데 손희송 주교님의 간결한 글발로 뼈대를 잡고 다른 책들을 살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교회는 이렇게 우리 모두를 통하여 선한 것을 이루시는 하느님이 계시기에 그 길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곧 하느님의 나라가 이곳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이를 위해 ‘진리의 협력자’로서의 소명을 잊지 말고 서로를 격려하며 해나가야 할 것이다. 님의 교회, 우리의 교회]를 주님, 부르심 받은 우리[주님의 교회, 우리의 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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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사실 제목보다는 부제에 눈이 갔다. 교회의 본질과 구성원의 역할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읽어 본 책은 예상대로의 내용이었지만, 깊이 있게 성찰해 볼 만한 부분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에 이스라엘만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메시지가 그들에게 거부당하고, 예수님도 배척당하셨기 때문에 십자가와 부활, 성령 강림을 통해서 새롭고 확장된 모습의 공동체,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이 함께하는 교회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p.41) 그러나 교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의 본질적인 불완전성 때문에 역사적으로 많은 죄와 오류를 범해왔고 그것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책은 이러한 결점을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시한다. 만약 치부에 대해 회피와 위선으로 일관했다면 더 내부에서 곪아갔을 것이고 바뀌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을 계속 이어나간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교회가 결코 그리스도처럼 완전무결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교회의 약함과 죄스러움을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정화와 쇄신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p.91-92) "'거룩하시고 순수하시고 순결하신'(히브 7,26) 그리스도께서 죄를 모르셨지만(2코린 5,21 참조) 오로지 백성들의 죄를 없애러 오셨으므로(히브 2,17 참조), 자기 품에 죄인들을 안고 있어 거룩하면서도 언제나 정화되어야 하는 교회는 끊임없이 참회와 쇄신을 추구한다." (<교회 헌장>, 8항) 이 책의 1부에서 주님이 세우신 교회에 대해 설명하였다면, 2부에서 우리가 일궈 가는 교회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인상적인 개념은 대조 사회였다. 사회가 생산성과 이윤을 최고의 척도로 삼을수록 능력없는 사람, 병든 사람, 나이 든 사람을 외면하며 밖으로 밀어내 버린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이들도 하느님의 자녀로 받아들이시고 품어 주셨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세상에서 외면당하고 내쳐지는 이들을 보듬어 주는 따뜻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p.168 참조) 신유박해가 일어난 다음 해인 1802년에 순교한 복자 황일광 시몬―필자가 성지순례 다니던 시절 어딘가에서 설명을 봤던 분―은 천민 계급인 백정으로 태어나 천대와 멸시 속에 살았지만,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교우들과 함께 지내면서 비로소 사람 대접을 받게 된다. 그리고 신자 공동체를 '지상의 천국'으로 받아들였고, 하느님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다. 하느님과 이웃을 향하게 하기보다는 거스르게 하는 혼탁하고 거센 강물이 세상 속에 흐르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거슬러 살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회심과 은총의 도움이 있어야 하고, 은총은 미사 안에 성령을 통해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베풀어 주신다. 세상과는 대조되는 삶을 살도록 부르시는 동시에 은총으로 도와주신다. (p.170) 앞선 1부에서 교회는 자기 품에 죄인들을 안고 있어 거룩하면서도 언제나 정화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2부에서 이야기한 대조 사회의 개념도 항구적일 수 없으므로 언제나 정화되고 쇄신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서평을 쓰는 본인은 현실 세계의 교회의 속성에 대해 몸으로 체험했으므로 익히 잘 알고 있다. 주파수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일치했을 때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공동체가 되고, 거기서 어긋났을 때는 세속 사회보다도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주파수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흔들리므로 지속적인 쇄신을 요구한다. 한번쯤 읽어 두면 괜찮을 것 같은 책이며, 교회 안에서 자신이 속한 위치와 역할에 대해 정립해보고자 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어보았을 때 도움이 될 것 같다. "평신도들의 임무는 자기 소명에 따라 현세의 일을 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관리하며 하느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것이다." (<교회 헌장>, 31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