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초등학교 선생으로 30여 년을 살고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던 스타가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HOT, 핑클, 원더걸스, 트와이스, 아이브 등으로 바뀌어 가는 걸 고개 끄덕이며 바라보지만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급식 시간에 잔반으로 고기를 버리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적, 우리는 도시락에 누군가 계란 하나를 싸와도 포크 숟가락을 무지막지하게 밀어 넣으며 같이 먹자고 구걸했다. 부잣집 친구가 소고기 볶음이라도 반찬으로 싸오는 날은 그야말로 축제가 벌어졌다. 집에서도 언감생심 돼지고기 한 점 먹는 게 몇 달을 넘겨야 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고기를 버리는 일만큼은 마음 속 깊이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옛날이 좋았다고 하기도 한다. 물론 그들은 그 때의 젊음과 따뜻했던 사람 사이의 정을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때 나와 다른 곳에서 나름 부유한 삶을 누렸을 수도 있겠다. 시간이 흐르면 기억은 또 미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뚜렷이 기억한다. 구더기가 기어 다니는 불 없는 변소 앞에 여러 사람이 줄지어 기다려야 했던 아침과, 동네 아줌마들이 남편의 구타에 악다구니로 맞서던 불면의 밤을……. 신종국 선생님은 그런 시기에 주말이면 몇몇 아이들에게 글쓰는 법을 알려주고 현대 소설에 대해 소개해 주셨다. 그렇게 아이들 지도를 한다고 딱히 수당을 더 주던 시대도 아니었다. 오히려 서슬퍼런 군사 정권 아래 자칫 범법 행위로 찍힐 수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글을 배우던 아이 중 하나였다. 그때 선생님께서 보여 주셨던 날카로운 통찰과 부드러운 시선을 빼앗아 오고 싶었다. 그러나 그 분이 살아내야했던 유년 시절의 신산한 삶을 미처 보지는 못했다. 중학생 시절, 내가 힘겹게 버텨냈던 하루보다도 선생님은 훨씬 더 참혹한 나날을 나이테처럼 가슴 깊이 새긴 채 살아오셨다. 그래서일까 선생님의 소설을 읽으면 마음 한 구석이 계속 아리고 아파서 좀체 글을 읽을 수 없다. 그것이 무엇이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풍요의 시대에 그 시절을 기억해 내고 폭력과 무관심을 넘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은 누군가의 아픈 기억을 외면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한다. 신종국 선생님의 소설은 잊고 있던 가난과 상처를 되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준다. 그래서 나는 이 아픈 이야기들을 끝내 읽어야 한다. 신종국 선생님, 고맙습니다. |
|
260907 그 섬의 별들에게, 신종국, 도서출판 강 - 《연을 쫓는 아이》보다 아프고 깊게 가슴을 파고든 영도의 소년 책 추천해준 지인에게 먼저 고마움을 전한다. 초록 별똥별이 바다 아래로 떨어지는 밤하늘에, 뜬 부산의 달은 영도 바다를 비추는 표지다. 세상 성격 좋아 보이는 저자의 표정과 달리, 왜 이토록 서글픈 <그 섬의 별들에게>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그런 의문을 가지면서 책장을 넘겼다. 손이 쥔 그대로 완독했다. 피난민들로 판자촌이 밀집한1960년대의 부산, 가장 못 사는 동네로 알려진 영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의 자전적 성장 소설이다. 주인공 호기의 시선을 따라 낡은 옷 걸치고 지지리도 먹을 거 없어 궁핍했던 시절 속으로 내던져졌다. 엄마와 동생을 지키려는 싹싹하고 힘이 쎈 형 호철, 중학교 가지 못하고 여공으로 살다가 집 떠난 누나, 일용직 노동자로 영화를 사랑하는 세 손가락을 가진 아버지, 까막눈이지만 가정과 이웃을 챙기는 엄마와 일탈과 공부을 오고가는 막내아들 호기가 한 가족이다. 그 시절을 살아보지 못했지만 꼭 그 시대 속으로 빠져들어가서 격동의 시간을 함께 떠돌았다. 마치 그 곁의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호기가 굶을 때 나도 배가 고팠고 그가 나쁜 짓을 할 때 함께 죄책감을 느꼈다. 함께 문방구에서 책을 읽고, 수학여행은 못 가도 도서관 구경으로 마음을 달랬다. 월사금 미납으로 창피했고, 친구들이 갑자기 사라져 허탈했다. 공부할 때는 응원하며 호기가 더 이상 힘들지 않기를 바라면서. 영도 다리 아래를 지나다디던 작은 통통배를 탄 듯, 사실적 멀미와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이 빗물처럼 스며 들어 금새 축축해졌다. 맞아서 아프고 때려서 아픈 숨김없는 현실가족은 작가의 허구가 아니라 실체적 현실이었기에 내곁에 구석구석 빼곡이 들어앉아 촘촘히 달라붙었다. 책 뒷표지 추천사에서 이창동 감독이 '허구적 상상이 아니기에 더욱 아프다'고 했는데, 읽고 보니 참으로 맞다. 그렇다. 그런 시절에 태어나지 않음에 대한 안도와 더불어, 그 시대를 버텨낸 부모님 세대에 대한 인내에 존경과 찬사를 보내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 한 줄 평, 호기라는 소년의 시선으로 가난의 시대를 버텨낸 한 가족과 그 이웃의 이야기다. 호기에게 힘든 시절은 저 바다에 던져버리고, 네게 속삭이는 봉래산을 바라보면서 어깨를 펴고 걸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섬의 별들이 너를 지켜줄테니까. 솔직히 나는 <연을 쫒는 아이>, <맡겨진 소녀>보다 이 책이 훨씬 더 좋았다. 깊은 바닷속으로 빠져들어 순식간에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먹먹함, 수면 위로 올라온 뒤에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여운이 꽤 오래갈 것 같다. 1960년을 살았던 이들에게는 그 생존의 시절로, 그 때를 살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한 아이의 성장을, 가족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가족의 의미를, 말해줄 책이라 추천한다. © 자소월(自素月), 스스로 뜨는 하얀 달 — 책의 문장으로 현실을 읽습니다 #그섬의별들에게 #신종국지음 #도서출판강 #성장소설 #이창동감독추천소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