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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반역의 세월이여
"아, 반역의 세월이여" 내용보기
폭력은 정치의 본질인가? 아니면 안티테제인가? 우리는 언론 등에서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폭력을 사용한 순간 그는 패배한 것과 같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다. 그러나 박종성 교수의 {한국정치와 정치폭력-해방 후 권력과 민중의 충돌}은 멀리 장 보댕과 토머스 홉스, 이어서 마르크스와 베버, 그리고 파농, 체 게바라, 마오쩌둥에 이르는 사상의 흐름
"아, 반역의 세월이여" 내용보기
폭력은 정치의 본질인가? 아니면 안티테제인가? 우리는 언론 등에서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폭력을 사용한 순간 그는 패배한 것과 같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다. 그러나 박종성 교수의 {한국정치와 정치폭력-해방 후 권력과 민중의 충돌}은 멀리 장 보댕과 토머스 홉스, 이어서 마르크스와 베버, 그리고 파농, 체 게바라, 마오쩌둥에 이르는 사상의 흐름을 계승하여 폭력을 정치의 본질로 보려는 입장을 계승하고 있다. 저자는 모든 정치과정은 필연적으로 폭력을 내포하고 있으며, 폭력은 목적을 단시간 내에 달성하기 위한 '합리적 수단'이라고 한다. "역사는 폭력 그 자체"이다. 폭력이 없다면 "정치사회의 유지는 불가능하고", 사상이나 지식은 "폭력의 장식품"일 뿐이다. 그런데 한국정치학에서는 폭력을 애써 무시하고 배제하려는 입장이 주류임을 지적하며, 저자는 그 이유를 한편으로 "유교적 명분론의 잔재"에서 찾는다. 유교적 전통에서는 예악(禮樂)을 형정(刑政)에 앞세우며,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한편 해방 이후 서구 정치학의 도입 과정에서 역사주의와 행태주의가 주류 담론화된 것도 폭력을 무시하고 혐오하는 "편견과 폐습"에 한몫 했다고 한다. 근대화이론 등에 편승한 역사주의는 '역사발전단계설'에 의해 폭력에 의존하지 않아도 적당한 시기가 되면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인식을 심었고, 행태주의는 '실증적 방법론'에 의해 가치가 개입된 통찰을 배제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현대정치사의 폭력 대립에서 민중의 폭력은 제도권력의 폭력에 대해 불철저하고 불확실한 점이 많았다. 여러 차례 전면 폭력 대결의 기회는 있었으나 진정한 민중 이익, 사회적 과제의 반영이 번번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전선의 통일과 체계화가 미비하여, 결국 제도권력보다 미약한 폭력을 행사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가령 해방공간에서의 투쟁은 반외세 반봉건을, 4.19는 노동자 농민의 세력화를, 6월 항쟁 이후의 민주화운동은 실질적 민주주의 정착을 미처 제기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 성과는 미진한 채로 끝나고, 해방 후 이 땅에는 한 번도 진정한 시민혁명이나 사회혁명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말았다.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확실한 답변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몇 가지 들 수 있는 것은 폭력을 혐오하는 유교적 명분론이 보수수익의 지배논리로 변질, 이용된 점, 미국 등 외세의 강력한 개입, 분단 상황에서 폭력혁명노선을 표방하는 사회주의와 함께 폭력에 대한 일체의 담론이 억압된 점, 주요 지도자들의 분열과 정쟁으로 "무의미한 힘의 낭비"가 이루어진 점(가령 해방공간에서 김일성은 소련, 이승만은 미국, 김구는 중국의 입장을 반영하며 서로 견제하는 데 바쁜 나머지 단결하여 반외세의 문제를 부각시키지 못했다) 등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정치학은 한국과는 전혀 다른 배경에서 성립된 서구의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적용해온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신생국이며 주변부인 한국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구조기능주의적 정치체제론으로 정치과정을 설명하려 하거나, 탈물질주의 정치론을 원용해 한국의 선거를 분석하려 하던 일 등은 한국정치학자들의 안일함을 드러내는 많은 예 중 일부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폭력과 부조리가 난무했던 한국정치사를 현실적이고 독자적인 시각에서 보려는 저자의 문제의식과 고뇌는 높이 평가할 만 하다. 하지만 저자의 방법론과 관점에는 몇 가지 의문이 남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폭력'이라는 핵심 용어의 정의가 분명해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우선 '평화적인' 정치과정과 구분되는, 폭력 시위, 테러, 무력분쟁 등 정치적 물리력이 행사되는 경우를 모두 '폭력'이라고 지칭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국가의 '상투적 폭력' 즉 경찰력과 군사력 외에도 반정부운동자의 검거, 재판, 구금 등 노골적인 폭력을 포함하지 않는 국가기관의 법적 조치 역시 '사법폭력'으로 '폭력'의 일환이라고 본다. 그렇게 되면 '권력'과 '폭력'의 개념 차이가 모호해지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역사 자체가 곧 폭력"이라면, 즉 역사가 폭력의 역사로 환원될 수 있다면, 사상사, 경제사, 과학사, 예술사 등의 맥락은 모두 폭력의 역사에 종속되고 만다. 그렇다면 원시시대부터 현대까지 인류는 같은 일(폭력에 의한 억압과 정치변동)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역사'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이 아닐까? 셋째, 그러면 역설적이게도 폭력의 역사보다 그 배경사일 뿐인 경제사, 사상사, 사회사 등이 더 중요해지게 된다. 이집트 18왕조의 몰락, 나폴레옹의 몰락, 박정희 정권의 몰락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사상, 경제, 사회 등의 변수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도 한국정치사를 논하며 각 시기별로 폭력 대결의 관건이 되는 문제(해방공간에서의 반외세 반봉건 등)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 그 문제들에 대한 분석이 폭력행위 자체보다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 넷째, 아무리 정치과정이 폭력을 내포하고 있다고 해도, 단순한 폭력과 구분하여 대화와 타협의 과정으로서의 정치를 생각할 필요는 충분하다. 한나 아렌트나 위르겐 하버마스가 말하는 '공공영역'을 일방적으로 허구라고 매도할 수 있을까? 다섯째, 저자도 그런 문제를 의식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의 정치시련은 '폭력이냐 권력이냐'를 놓고 합리적 선택을 할 만큼 한가롭지 않았다. 해방공간 조선에 권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권력과 유사하게 보이던 '그것'은 폭력이었다."라는 반박에서도 알 수 있듯 저자는 한국의 특수상황, 그 중에서도 해방공간의 특수상황을 너무 일반화하고 있다. 한국의 해방공간을 토대로 수립한 정치이론이 오늘날 미국이나 영국의 의회정치를 설명하기에 적합할 것 같지는 않다. 그 역의 경우가 부적합한 것과 같이. 결국 저자의 연구에서 배울 점은 많이 있다. 거대 담론의 소멸 이후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듯도 한 한국정치학계에 "자극과 충격"을 주기에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저자가 이를 기존 한국정치학, 정치 담론의 대안으로 제시하기 위해서는 좀더 손질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근.현대 한국의 정치질서를 '조형, 지탱, 변형'시킨 핵심 동인이 폭력이었다는 가설을 꼭지점으로 잡아 그것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잡아당겨 역사를 펼치면 그 마디마디에 묻어나는 통렬한 저항 분비물의 흔적은 농민과 노동자, 학생과 지식인들의 것이었고 더 큰 폭력으로 도적적 정당성의 '빈 자리'마저 앗아 새로운 빌미를 만들어 처단의 텃밭을 마련한 세력은 '제도권(폭)력'의 진용이었다. 질서를 핑계삼아 봉기의 싹을 자르고 안정을 빌미로 폭력의 존재 자체를 말살하려 했던 정치적 계산, 그 속에서 폭력이란 외려 다스림의 좋은 명분이었을 뿐 최고 덕목으로 치부될 수 있는 여백은 아예 없었다. 하물며 혁명이란 이름의 거대폭력 분출까지야 바랄 수도 없었던 자발적 힘의 빈곤.
b******b 2001.05.3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