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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삼성전자 성과급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던 날, 뉴스를 보면서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기쁘지도, 안심 이 되지도 않았다. 그저 어딘가 꽉 막힌 것 같은 찜찜함. 마치 누군가 조용히 문을 닫고 들어가는 것을 담장 밖에서 바라보 는 기분이었다. 반도체 부문은 1인당 최대 6억 원, 디바이스 부문은 600만 원. 같은 회사 울타리 안에서 벌어진 이 격차 앞에서, 잠시 멍해졌다. 그 숫자들이 나쁜 것인지 좋은 것인지 판단하기 전에, 이 숫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무언 가를 드러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사회가 공정하다고 믿고 싶어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 다. 조돈문 교수는 이 장면을 두고 초기업노조의 극단적 집단 이기주의 '라고 잘라 말했다. 그 말이 틀리지는 않을 것이 다. 여전히 찜찜함이 가시지 않았다. 집단 이기주의를 비판하는 나 역시, 어느 순간 내 자신의 이기주의 앞에서는 눈을 감 아온 적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는, 자신에게 유리한 불평등에는 눈을 감고 자신에게 불리한 불평등에만 분노하 도록 설계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왜 우리는 불평등에 분노하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중 하나인 미국을 여전히 선망하는 것일까? 왜 피라미드 형 소득분배가 싫다고 말하면서, 정작 그것을 강화하는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에는 소극적일까? 불편한 사실이다. 이 불 편함은 책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책이 나를 너무 정확하게 건드리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지금의 불평등이 언젠가는 나아 질 거라 믿으며 견디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그 불평등의 이데올로기를 조용히 받아들인 것인가... 사실 우리는 어릴 때부 터 불평등을 참는 법을 배운다. 점수로 줄을 세우고, 대학 이름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어떤 회사에 다니느냐로 삶의 무게 를 가늠하는 세계 속에서 자란다. 그것이 공정하다고 배우고, 그것에 맞춰 살아가며, 결국 그것을 당연하다고 느끼게 된 다. 책에서 말하는 '불평등 이데올로기의 내면화'는 거창한 학술 용어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감각 자체다. 2010년대 기준 한국의 상위 10%는 국민소득의 46.4%를 가져간다. 스웨덴은 30.2%다.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 다. 그러다 이내 그 충격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문제였다. 충격을 받아야 할 숫자 앞에서 금방 무뎌지는 우리 의 감각, 그것이야말로 불평등체제가 가장 교묘하게 작동하는 방식이다. 해결방법은 어디에 있을까? 스웨덴이라는 거울 앞에서 생각해 본다. 20세기 초 미국보다 가난하고 불평등했던 나라가, 사민당과 노동조합의 협력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복지국가 중 하나로 거듭난 이야기. 렌-마이드너 모델, 연대임금 제, 황금삼각형, 낯선 단어들이지만 그 핵심은 단순하다. 성장의 과실을 독점하지 않고 나누며, 그 나눔을 통해 더 오래, 더 지속 가능하게 성장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스웨덴이 아름다운 것은 알겠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이 우리 앞에 놓였을 때, 나는 그것을 닮아가려는 의지보다 먼저 우리는 그것을 할 수 없다'는 체념을 떠올린다. 왜일까. 어쩌면 그것이 책이 말하는 '불평등 이데올로기의 승리'가 아닐까. 대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대안을 실현할 주체도 방법도 없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구조. 그 구조 속에서 우리는 조용히 피라미드 아래 줄을 서며 언젠가 위로 올라갈 날을 기다린 다. 사실은 스웨멘도 처음부터 스웨엔이 아니었다. 작은 개혁이 신뢰를 넣고, 그 신뢰가 더 큰 개혁의 발판이 되었다. 비개혁주의적 개혁이라는 개념이 다소 낯설고 불완전하게 들리더라도, 절박한만큼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완벽한 혁명을 기다리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불완전한 한 걸음이 낫을 것이다. 해결방법은 어디에 있을까? 스웨덴이라는 거울 앞에서 생각해 본다. 20세기 초 미국보다 가난하고 불평등했던 나라가, 사민당과 노동조합의 협력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복지국가 중 하나로 거듭난 이야기. 렌-마이드너 모델, 연대임금 제, 황금삼각형, 낯선 단어들이지만 그 핵심은 단순하다. 성장의 과실을 독점하지 않고 나누며, 그 나눔을 통해 더 오래, 더 지속 가능하게 성장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스웨덴이 아름다운 것은 알겠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이 우리 앞에 놓였을 때, 나는 그것을 닮아가려는 의지보다 먼저 우리는 그것을 할 수 없다'는 체념을 떠올린다. 왜일까. 어쩌면 그것이 책이 말하는 '불평등 이데올로기의 승리'가 아닐까. 대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대안을 실현할 주체도 방법도 없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구조. 그 구조 속에서 우리는 조용히 피라미드 아래 줄을 서며 언젠가 위로 올라갈 날을 기다린 다. 사실은 스웨멘도 처음부터 스웨엔이 아니었다. 작은 개혁이 신뢰를 넣고, 그 신뢰가 더 큰 개혁의 발판이 되었다. 비개혁주의적 개혁이라는 개념이 다소 낯설고 불완전하게 들리더라도, 절박한만큼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완벽한 혁명을 기다리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불완전한 한 걸음이 낫을 것이다. AI와 코스피 9000의 시대, 겉으로는 모두가 잘사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시기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피라미드의 아래쪽에서 내일을 버티고 있다. 화려한 수치 뒤편에 숨어 있는 K자형 양극화의 이면을, 우리는 외면하기 쉽다. 왜냐하면 외면하는 것 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평등한 세상은 한 번에 오지 않는다. 그러나 불평등에 무감각해지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생길 때마다, 세상은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기울 수 있을 것이다. 그 기울기가 충분히 쌓이면, 어쩌면 우리도 언젠가 스 웨덴을 선망하는 것이 아니라 스웨덴이 우리를 배우는 날을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날을 위해, 오늘의 찜찜함을 잊지 않기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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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사회프로젝트 #조돈문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평등사회 프로젝트. 조돈문 지음. 한겨레출판. 2026. _노동과 여성 청년이 만나면 세상이 바뀐다 부제에서처럼, 노동과 여성, 그리고 청년이 만나 서로 연대하면, 세상이 바뀔 수 있을까? 과연 우리 사회가 이 책에서 그리는대로 변화를 수용해줄 수 있는 사회가 맞기는 할까. 우선, 나도 기본적으로 이 사회가 평등해질 수 없다는 회의를 강하게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느끼게 됐다. 우리 사회는 어차피,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평등해질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이 책에 제시하고 있는 방안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다 읽고난 다음에도, 바꾸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내가 이렇게 부정적인 사람이었다니. 한편으로는 나의 생각을 희망적으로 만들어주지 못하는 사회를 탓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조금 더 강하기는 했다. 그리고 또, 평등이란 단어 자체가 갖고 있는 모순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권리, 의무, 자격 등이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같음.'이라니. 이미 모든 곳에서 계급과 등급과 부와 또 온갖 층위를 만들어내는 모든 요소들로부터, 우린 충분히 차별받고 있고 다른 대우를 받으며 다른 처지에 놓여 있다. 어떤 방법으로도 지금의 공고히 구축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없어 보인다. 다만, 조금 나아지는 방향으로의 모색은 가능하겠지, 지금보다 단 반 발짝이라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그 작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다시 가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이미 저자가 사전 공지해준 것과 같이, 이 책에 나오는 무수히 많은 통계 자료가 수치는 한편으로 지금의 사회가 얼마나 쉽지 않은 사회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자료가 없지만, 그런 자료들이 쌓여 지금의 사회를 정면에서 직시할 수 있다면 거부감을 잠시 접어두고 각 수치가 말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확인해줄 필요는 충분할 것이다. 또한 이미 검증되었다면 스웨덴의 모델을 발판삼아 한국식 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 최소한 지금의 격차나 간격을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의 방법 모색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 노동과 평등의 관계에 대한 고찰을 통해 우리 사회가 노동을 대하고 있는 방식, 노동자와 노동이 이 사회에서 갖고 있는 역할이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회복, 혹은 수정 발전되어야 하는가에 따라 불평등사회와 평등사회의 결과값이 달라질 것 같다. 아무리 좋은 모델이 있고, 많은 부분에서 충분히 투자하고 또한 변화의 가능성을 향해 개혁이든 변혁이든 하나가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다 하더라도, 이 모든 것은 곧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이 만들어내는 사회가 하는 일인지라, 어느 것 하나 확신에 찬 논리를 펼쳐나가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다시 회의감이 밀려오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안 될 거라는 부정적 결론을 사전에 결정한 채 지금의 상황을 계속 끌고가는 것은 오히려 퇴보의 길을 가는 것과 다르지 않을테니, 그것만은 선택지에서 빼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어떻게 되었든, 다양한 방식을 총동원하여 더 나은 평등의 수준에 도달하기 위한 인식을 바꿔나가야하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며 내내 스스로에게 반복적으로 해주려 했던 말은, 나의 인식부터 개선되지 않는다면 이 모든 시도와 노력이 의미없어지게 될 것이라는 거였다. 나 하나의 생각조차도 바꿀 수 없다면 이 모든 연구가소용없는 일이 될 테니까. 마음을 단단히 바로잡아야 한다는 다짐을 반복하게 되었다. 덧- 저자의 연구와 방대한 자료가 압도하는 책이었다. 이 연구가 연구로만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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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평등 사회가 지속되는 것은 불평등체제의 피해자들이 지배 질서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11" 이 문장을 읽고 우리는 왜 우리를 위한 사회 질서가 아닌 더 가진 자들이 세운 질서를 지키고 따르려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의 틀은 오래되었다.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개선되기도 하지만, 빠른 변화의 속도에 맞추거나 선제적으로 달라질 수는 없다. 오래된 제도의 허점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대응은 언제나 그보다 느리다. 개선이 반드시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법과 제도가 갈수록 권력과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익을 쫓아 교묘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꼬집어 규탄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보호하고 사회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복지 정책을 두고도 자신들에게 올 이익을 빼앗기는 것처럼 여기고 분노하거나, 복지 대상자들을 향해 상황을 극복해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비난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반면 가진 자에게 더 큰 이익을 주는 각종 제도와 정책은 오히려 그만큼 보장되고 보호 받아야 하는 경제질서로 이해해주려 하고, 이를 형평성에 맞게 개선하려는 변화는 불합리하게 보며 달가워하지 않는다. 불평등 이데올로기의 제 2명제, "불평등이 있다 하더라도 불평등은 정당하다 11"의 그늘에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복지의 대상이 될 리 없다는 듯이 굴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혜택과 권력을 쥐고 있는 가진 자들 편을 들어주는 '불평등의 정당한 그늘'이 아닌 복지의 그늘이 필요한 쪽에 더 가깝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불평등체제의 피해자들이 수혜자의 입장에 서서 질서를 받아들이고 옹호하도록 만들었을까?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생각을 멈추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전부터 느끼던 이 묘한 위화감에 대한 답을 '평등사회 프로젝트'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읽었다.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게시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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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에서 주인공 맥베스는 던컨 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뒤에도 친구 뱅코까지 의심하며 살해한다. 권력도 정당성이 없으면 권력자에게 안식을 가져다 줄 수 없는 것이다. 정당성을 거부당한 불평등체제는 불안정하고 지배세력은 불안감을 벗어날 수 없다. 지배세력이 권력을 독점하고 상생을 거부하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멀어지고, 다수의 행복이 없으면 소수의 행복도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 역시 불평등하고, 시민들은 불평등에 불만인데, 어떻게 불평등체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불평등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평등사회를 이룩할 방안과 전략에 대해 고민해본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 실태를 밝히고, 세계 최고의 성평등 복지국가이자 우리의 벤치마킹 대상인 스웨덴 모델의 역사와 특징을 살펴보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불평등 이데올로기>에서 왜 우리 사회가 불평등을 벗어나지 못하는지에 대해 분석했던 저자는 그 후속편으로 이 책에서 평등사회 대안과 이행 전략에 대해 이야기한다. 성평등을 실현하고 불평등 대물림을 차단하기 위한 진정성 있는 실천은 뭐가 있을까. 이 책은 여성들과 함께 성별 임금 격차를 제로로 만들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청년들과 함께 좋은 일자리 창출과 보육, 주거 국가책임제를 관철하는 등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는 대안들을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 불평등체제에서 어떤 대안이건 모든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주는 만병통치약은 없다. 그럼에도 보다 많은 논의가 활성화되는 것이 평등사회 실현을 위한 시발점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평등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그렇다면 왜 부와 권력은 불평등을 허락하는 걸까. 불평등은 왜 문제가 되는 걸까. 그 동안 전 세계적으로 많은 불평등이 있어 왔다. 100년 전에 불평등은 이보다 훨씬 심했고, 200년 전에는 그보다 더 심했다. 그러니 길게 보면 진보가 이루어졌고, 세계는 더 평등한 쪽으로 움직여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불평등과 심화된 격차 문제를 안고 있다. 어떻게 하면 모두가 평등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경제적 불평등, 능력주의, 이민자 배척과 외국인 혐오 등 다양한 문제들로 가득한 오늘날, 이 책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저자는 평등사회 이행을 위해 노동의 중심적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성차별 지옥의 복합적 차별의 피해자인 여성과 불평등 대물림의 수저 계급 사회를 물려받은 청년과 노동의 평등사회 동맹을 제안한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 실태와 이데올로기 지형을 검토하며 스웨덴의 사례를 분석하고, 노동계급이 계급형성에 성공하고 평등사회 실현을 위한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살펴본다. 그리고 평등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을 제안한다. 노동자들과 함께 여성, 청년 등 불평등체제 피해자들의 주체 형성과 세력화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분량에 담고 있는 내용도 매우 방대해서 수월하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저자의 냉철한 분석과 날카로운 통찰은 여러 번 곱씹어 다시 생각해 볼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모두가 행복하게 상생하는 평등사회를 실현할 수 있기를, 촛불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고 응원봉의 성공을 실현하는 평등사회 프로젝트가 보다 본격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묵직한 책을 덮었다. 이 책이 평등사회 입문서로서, 불평등·불공정 논의의 종결이 아니라 더 다채로운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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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사회 프로젝트>라는 제목은 하나의 선언처럼 느껴졌다. 과연 평등사회가 하나의 '프로젝트'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저자는 어떤 방법으로 이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책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듯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유지하는 구조와 이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를 차근차근 분석해 나간다. '평등사회'라는 다소 이상적인 목표를 현실에서는 어떻게 구현할 수 있다고 보는지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 사회가 미국식 자유시장 모델을 이상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과 북유럽 국가들의 복지 모델은 현실성이 없다고 여기는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은 인상적이었다. 또한 노동운동이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연대보다는 일부 정규직 중심으로 인식되면서 대중적 신뢰를 잃었다는 비판 역시 현재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만드는 지점이었다. 책은 단순히 불평등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여성·청년의 연대를 통해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방향까지 제시한다. 그러나 책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저자는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모델을 비교적 이상적인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각 국가가 처한 역사적·문화적·경제적 조건은 크게 다르다. 높은 복지와 강한 노조 체계가 성공적으로 운영된 배경에는 높은 조세 부담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오랜 정치적 신뢰가 존재한다. 이러한 전제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한국에서 같은 모델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사회 문제를 지배 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선택이나 시장의 긍정적인 기능은 다소 축소되어 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읽는 내내 저자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에서는 다른 방식의 접근도 충분히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불평등 구조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청년 세대의 자산 격차, 비정규직 문제, 지역 간 교육 격차와 같은 현실은 분명 개혁의 필요성을 보여 준다. '평등사회'라는 단어는 처음에는 다소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구호처럼 느껴졌지만, 책을 읽을수록 오히려 지금의 사회가 얼마나 불평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정치권은 끊임없이 평등과 공정을 이야기하지만, 구조를 바꾸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은 쉽게 체감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왜 많은 청년들이 허탈감과 박탈감을 느끼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취업과 주거, 자산 형성의 문턱은 갈수록 높아지는데 청년들이 체감할만큼 구조가 달라졌는지 답하기 어려웠다. 최근 청년들의 정치적 양극화를 단순히 이념의 문제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무엇을 선택해도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무력감과 냉소가 누적된 결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결국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특정 이념의 승리가 아니라, 노력한 만큼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사회가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변화일 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도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왜 우리는 지금의 불평등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였다. <평등사회 프로젝트>는 모든 해답을 제시하는 책이라기 보다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주장과 대안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불평등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라는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게 했다는 점은 분명 의미가 있었다. 큰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책임 역시 함께 감수해야 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복지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부담을 나눌 때 지속될 수 있다. 세금은 적게 내면서 더 많은 복지와 혜택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지속되기 어렵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희생이 아니라, 어떤 수준의 부담을 함께 나누고 그 대가로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불평등과 사회 개혁에 대해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계기를 마련해 주는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