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머리 속에 하나의 역사적 지식으로 자리잡은 광해군을 다시 만난 건 뜨거운 여름 어느날 이었다. 평소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라서 과제로 주어진 독후감 쓰기는 어느정도 고역이었다. 다행히 내가 좋아하는 국사 분야라서 책을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먼저 손에 잡은 책은 '우리궁궐이야기'였다.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칼라로 출력된 궁궐 사진을 보는 재미에 책이 술술 넘어가서 그저 좋았다. 책의 내용을 반정도 읽었을 때, 재미는 있었지만 어떤 느낌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책을 덮었다. 그리고 다시 고른 책이 '광해군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였다. 광해군이라.. 내 기억 속에 '실리외교', '인조반정'으로 남아있는 조선의 임금이었다. 일단 다른 조선의 왕들과 다른 호칭에서 알 수 있듯이 뭔가 잘못이 있는 왕이라는 선입견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도 내 기억 속에 '실리외교'를 펼친 왕이고 책의 부제목도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이니 어느 정도 정치를 잘한 왕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
| 저는 역사에 대해서 아는바가 거의 없습니다 얼마전까진 알고 싶지도 않았구요. 하지만 여러곳을 답사하면서 조선사에 관심이 가던 차에 조금조금씩 여서 서적을 읽고나서 역사의 남겨진 글이 승자의 역사구나하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어 갔습니다. 어느 분이 이 글에 대해 많은 비판을 하셨는데 저도 조금은 심하다 하지만 참 열심히 읽었고 또 다른 서적을 통해 이 시대를 이해하려 합니다. 남명 선생의 글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정인홍에 대한 글도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퇴계선생이나 율곡선생의 말은 많이 듣고 그리고 화폐에까지 많이 나와 있기에 스스럼없이 존경스러워 지는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그 동시대에 살았던 아마도 잊혀전던 인물(남명선생과 정인홍)에 대한 한편의 책이 저에겐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북인에 대한 글 많이 발표했으면 합니다. |
| 냄암 정인홍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남명 조식 선생에 대한 레포트를 쓰면서 접하게 된 '조선중기 사림파의 사회정치사상 – 남명 조식과 내암 정인홍을 중심으로'라는 권인호 교수의 글을 통해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글이어서 지금 와서 기억에 남는 내용은 별로 없지만 정인홍에 대해서 깊은 인상을 받고 내가 존경하는 지식인의 한 분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남명 조식 선생님을 존경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분에 대해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너무나도 적다. 맨날 컴퓨터만 만지는 나로써는 쉽게 풀어 주지 않으면 그 분의 생각 사상들을 이해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하나 둘 나오는 그 분과 제자들에 관한 대중서들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그런 생각으로 단숨에 구입을 한 책이 이 책 '정인홍과 광해군'이다. 얼마전 '광해군: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라는 책도 재미있게 보았기에 더욱 관심이 갔다. 너무 기대했던 탓일까? 너무 실망이 컸다. 결국 다 읽기는 무리라는 생각에 접어두고 책장의 한 켠에 꽂아 두었다. 저자가 충분한 근거로 글을 썼겠지만 구체적인 근거 설명 없이 선과 악으로 몰고 가는 장면은 이해가 잘 안 갔다. 저자가 너무 많은 내용을 한 권에 담아 내려 했서였을까? 기축옥사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그 시대의 사람들이 했을 고민 같은 것이 담겨 있지 않다. 가벼운 연속극을 써 내려가듯이 썼다는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또한 첫 부분에서 남명 선생이나 정인홍의 출생에 대한 부분이나 정인홍이 남명을 스승으로 모시게 된 부분에서 일화를 예로 든 것 까지는 좋았는데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는 갑자기 전지적 작가시점 소설로 바뀌어 각 역사적 인물들이 나누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상상해 내어 쓰는 바람에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까지가 작가의 상상력인지 헷깔리게 된다.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작가적 상상력의 부족하고(재미도 없다.) 인문 역사서라고 하기에는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역사에서 소외되어 있던 북인과 정인홍, 광해군을 재조명 해보려는 시도를 아무리 좋게 보아주려고 해도 요즘 불고 있는 광해군에 대한 관심에 편승해 보려는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몇 번 계속 읽으려고 했으나 더는 못 읽겠는 책이다. 이 쯤에서 덮어 주는게 좋을 것 같다. 다음부터는 제목만 보고 사서 봐서는 안 되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
| 광해군은 과연 폭군인가 현군인가?이것은 자주 논쟁이 되어 온 문제다. 사람마다 학자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좀 더 다각적인 측면으로 현실을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광해군이 폭군이면 정인홍이나 이이첨도 간신이고 광해군이 현군이었다면 그들도 충신의 반열에 설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대해 우리는 광해군의 주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광해군은 장자도 아닌데다 정비의 몸에서 난 것이 아닌 후궁소생이다. 후궁소생의 왕자는 보통 외척을 기반으로 한 정비소생의 왕위계승자처럼 강한 지지기반을 가질 수 없다. 그런 그가 왕세자가 된 것은임진왜란 이란 생각지못한 전란때문이다. 조정에 세도 없는모친의 배경도없이 졸지간에 왕세자가 된 광해군에게는 무거운 짐이 쌓여있었다. 전란의 피해를 입은 민생의 안정과 복구외에도 정치자체도 불안햇다. 선조때 붕당이 시작된 것은 공인된 사실이다. 때는 당쟁이 격화되어 동인이니 서인이니 조정은 공론을 모으지못해 분열상태였고 광해군은 그 와중에서 줄타기를 해야하는 입장이었다. 절대군주제가 군주가 약점을 가지고 있으면 그대로 정치에 반영되기마련이다.또한 현명한 군주라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의지가 강하지 못하면 자신이 추진하는 과업이 실패로 돌아가는 수가 많다. 광해군으로서는 자신의 마땅한 지지기반을 찾아야햇을 것이고 그것이 대북파란 생각이 든다. 대북파는 정통적인 성리학자들과는 다소 거리가 잇다. 좋게 말하면 개방적이고 타사상과도 친화력이 잇지만 나쁘게말하면 조선조 성리학의 이단이다. 이런 남명학파를 광해군은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는 데 이용했다. 전후의 복구대책사업을 벌인 것은 권력유지를 위해 또한 .정권의 안정을 위한 민생의 수습에 현실적으로 절실한 것이엇다. 이런 현실적인 점을 고려하다면 영창대군의 증살이나 명을 저버리고 후금과 화친한 중립외교는 실정으로 매도되어서는 안된다. 비정한 권력다툼에서 살아남기위해 누구라도 이런 짓을 할 수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목대비를 폐위시킨 것도 유교적인 명분에 얽매이지않는 .남명학파의 실리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잇겠다. 그만큼 대북파가 현실적이고 사고에 자유로왓다는 말이다. 결국 그의 실리적인 중립외교와 대북파에 밀린 서인들과의 보복이 인조반정을 일으킨 원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북인의 26가문만이 서인들의 보복을 면하고 나머진 죄다 처형이나 유배까진 가지 않앗더라도 사탈관직에 금고로 관직에 나올 수 없게 한 조치만 보더라도 서인들의 보복이 얼마나 혹독햇나 알만하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한다. 광해군이 폭군이 아니면 정인홍이나 이이첨으로 간신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주군에 충성한 충신일 뿐이다. 역사의 양면성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