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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이트에선가 중국 발레단이 한 실비아를 본 적이 있는데 이 작품으로 노이마이어는 전편의 기억을 내머리 속에서 완전히 지워냈다. 로마 신화를 소재로 한 이야기이고 발레라는 쟝르 특성상 환상 속의 세계를 그려낼 거라는 기대와 달리 그는 철저히 현실적인 인물들을 그려냈다. 본래 서양신들이란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긴 하지만 특히 이 안무가가 그려낸 인물들은 소설 속에서 읽은 신문에서 본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같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을 갖고 옛추억을 씹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얼마나 많이 보아 왔는가. 여러 예술 장르의 중요 모티브이고 내 이웃의 이야기이기도 한 지라 너무나 친숙한 소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서로가 가깝다고 느껴지면 가장 많이 공유하는 부분이 아닐까. 그 은밀함때문에 더더욱 가까와지기도 하고... 다이아나와 실비아가 함께 엇갈려 묘한 삼각구도 포즈를 취하며 서로의 모습을 투영하는 부분에서 남의 사랑 이야기에 심취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서로에게 기대 있는 듯한 모습은 아픈 사랑을 공감하는 두 여인의 모습을 잘 표현한 것 같다.
한 가지 불만이라면 신체가 길쭉한 마리아네스 기요의 카리스마에 보다 우아하고 풍요롭고 이지적인 이미지의 오렐리 뒤퐁이 더 차가운 달과 사냥의 여신다운 품위와 기품이 느껴졌다는 점, 서양회화에서 그려진 님프의 이미지보다는 여신의 이미지가 더 어울려보였다는 점이다. 주인공이니까 그런가? 내 눈에 그녀는 다이아나같은 차가운 역이나 키트리같은 강하고 활달한 역이나 감자티같은 우아하고 기품있는 이미지가 어울려 보인다.
얼마전에 내 눈으로 확인한 마위엘 르그리의 신체이미지는 그닥 팔다리도 길지 않고 얼굴도 동양인에 비교해서도 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늘어난 몸집도 보이고 대략 그렇다. 영상물에서도 물론 그랬다. 바뜨망을 하는 장면에서 발끝이 나처럼 겨우 머리끝에만 오고 40애에 어울리는 굵은 주름도 보이고 그런데 움직이기만 하면 순수한 목동 아민타다. 0.1초의 차이지만 조금 더 공붕에서 체공하며 음악을 타고 사랑의 절실함과 실비아의 배신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표현하는 폴드브라의 움직임이 예술이다. 손끝을 멀리 뻗었다가 자신을 감싸안으며 고통을 호소하고 온몸을 던져 사랑하는 사람을 잡아보려는 마지막 파드되에서의 애절한 몸의 움직임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역시 거장이다.
내가 좋아하는 니콜라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겠지. 아모르로 오리온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가며 차가운 님프 실비아를 사랑을 배워가는 인간 실비아로 거듭나게 하는 니콜라...클라비고를 보며 나는 이 남자의 팔과 허리를 쓰는 법에 반했었다. 손가락 하나로 여인을 유혹하는 클라비고처럼 실비아도 팔동작 하나로 가뿐하게 유혹하네. 니콜라니까 가능하겠지만 간단한 파드되에서도 다른 남자 무용수들처럼 긴장하거나 여자의 무게 중심을 찾느라 고뇌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간단한게 손, 팔과 허리의 움직임으로 여자를 리드해낸다. 여러 명의 남자 무용수들이 실비아를 리프트하며 보여주었던 부산함이 그에겐 없다. 수염 유무와 의상의 색에 따라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갖는 투명한 물같은 무용수다.
여담이지만 난 이 작품 마지막 부분에서 예전에 인기였던 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프란체스카와 로버트 킨케이트가 떠올랐다. 실비아가 아민타가 재회한 후 희끗한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서로 애끓는 사랑의 감정을 확인하지만 인강의 삶을 살가면서 만난 남편에게 돌아간다. 가정을 생각해서 킨케이드를 가슴에 묻어버리고 가정으로 돌아간 프란체스카와 실비아와 오버랩되고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한 불같은 사랑의 대상이 선택한 것을 존중하는 아민타에게서 킨케이드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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