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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친구들을 만났다. 대학에서 처음 만나, 20여 년을 알고 지내오는 친구들이었다. 주문한 음식들이 차갑게 식을 때까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쩐지 세상이 밝아지고 주변이 풍성해진 것을 느꼈다. 그것은 아마도, 서로의 사정을 나눔에서 오는 '공감의 힘'일 것이다. 타인의 이야기가 내게 닿으면서 일어나는 '공명의 힘'이 나를 더 강하고 자신이 있게 만들어 준 것일 테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저자는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지만, 어쩐지 생각하는 결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특히 한 무례한 임원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 그의 폭력적인 태도를 '그것을 수용하는 나에 대한 죄책감'으로 환원하는 부분에서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할 때가 많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글을 좀 더 빛나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 글이 가진 에피소드가 재미있거나 자극적이어서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컬투쇼' 사연들이 에세이 시장을 도배해야 하리라. 글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그 에피소드를 둘러싼 '사유'라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왜 거기까지 내가 이르렀는지. 그 깊은 사유의 세계로까지 나아가게 되면 거기에 더는 나 혼자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삶은 다 달라도, 생각하는 것은 비슷할 수 있다. 그것은 더 깊이 내면을 파고들수록 명확해진다. 저자는 스스로를 번역했다고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번역된 것은 나이기도 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고,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고. 에피소드를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며 나는 기억 속에 묻어두었거나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던 과거를 하나하나 마주했다. 어른들의 무책임 속에 방치된 저자의 이야기 속에서는, 무책임한 담임 때문에 1년 동안 지독한 학교 폭력을 경험했던 나를 만났고, 프리랜서로 살면서 불안에 떠는 저자의 이야기 속에서는 마찬가지로 프리랜서로 살면서 남편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나를 만났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서 이제야 스스로에게 화해의 악수를 건넸다. 덕분에 나 역시, 나를 마주보고 미소라도 지어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내게는 따스하고도 달콤했다. 아주 친한 친구와 머리가 아프도록 수다를 떤 것처럼, 어떤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위로 받은 이 시간을 나는 참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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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책들처럼 치열한 전투로 얻어낸 반짝이는 성취로 끝날 줄 알았다. 이런 방법으로 열심히 언어를 공부해서 통역을 하며 화려한 세계를 경험했다는 류의. 그런데 이 책은 반짝이는 성취 끝의 무너짐에 대해 고백했다. 왜 나는 성공하고 싶었을까?라는 질문 속으로 파고들고 또 파고들었다. 과거의 상처와 곪아터진 자신의 결핍 그리고 현재의 무너진 몸을 아프게 고백했다. 자신을 번역하면서 일어난 변화의 기록을 보며 나는 홀린 듯 모든 문장에 밑줄을 그어갔다. 나는 현재 많이 아파서 일을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다. 평생 하던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공포스러웠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남은 것은 허물어진 몸과 마음이라는 허망함에 떠밀리고 왜 그렇게 살았나?라는 분노가 치솟았다. 그런데 책 속의 그 문장들이 나에게 다르게 삶을 번역할 수 있다고 속삭였다. 저자가 번역하는 그 길을 나도 따라가고 싶어졌다. 방구석에 이불을 둘러싸고 숨어만 있고 싶은 나, 왜 내게 구원을 내려주지 않냐고 신에게 대드는 나, 모든 것이 내 잘못인 것 같은 나, 그 모든 나를 있는 그대로 끌어안아 주는 그 길을. 그 길 위에는 목 놓아 울어도 된다고 그 시간을 지나온 것만으로도 기적같은 일이었다며 불어주는 따뜻한 입김이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살고 싶어졌다. #나는나를번역하기시작했다 #김연경에세이 #책서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