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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혼자 늙지 않는다'는 책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그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지만, 공유되지 못한 내밀한 경험이 궁금했고, 가족제도 바깥에서 살아도 괜찮은 삶의 방식이 알려지길 바랐다. 나는 80년대생으로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이하 공간비비) 조합원이다. 20대 후반에 공간비비를 만났으며, 현재 40대 초반에 이르렀다. 그들 곁을 함께 지나오며, 어지러웠던 내 삶은 서서히 달라졌다. 누구에게나 이런 인연을 맺는 행운이 찾아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젊은 시절, 나는 일에 적응하기 어려웠으며 인간관계는 자주 미끄러졌다. 스스로 이상한 사람은 아닌지 의심과 불안이 컸다. 그때마다 공간비비에 들러 세 명의 활동가들에게 기대 인생 상담을 하고, 그 울타리에서 '공부를 통해 계속 변화하고 돌봄 실천을 통해 신뢰관계를 쌓으며'(p.63) 다른 이들과 연결되어 청춘의 시간을 통과했다. 그들은 언제나 길 잃은 이들을 환대했으며, 각자의 내면의 힘을 믿을 수 있도록 공감과 위로, 조언과 기다림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응원과 지지 덕분에 나 또한 서툴게나마 비혼여성 1인가구로서 셋 이상의 공동체 관계 실험을 하고, 실패하고, 일어서고, 유지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전국에서 많은 이들이 전주에 위치한 공간비비를 탐방하러 온다. 이들은 공간비비가 어떻게 2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버티며 새로운 형태로 확장해왔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2003년 '비혼들의 비행'이라는 소모임이 '비혼여성'이라는 위치에서 돌봄과 공동체의 가치를 체현하며 변화해온 과정에 대한 세심한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지속가능한 공동체 실험은 곧 한국 사회의 가족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닫힌 정상 가족 신화를 부수고, 현존하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통한 제도적 인정과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변화를 촉구한다. 또한 공동체 윤리를 새로 쓴다. 각 자의 역할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보다 자율적으로 각 자 할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하는 책임의 윤리’(p.190)를 통해 ‘공평보다는 평평’(p.193)이라는 윤리적 기준을 제시한다.
한국 사회에서 혼자 살아가는 일은 각자도생, 곧 경제력과 능력으로 무장해야 함을 의미한다. 혼자 살면 돈이라도 많아야 한다, 결국 가족밖에 없다, 나이 들어 진정한 친구는 없다는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그만큼 혈연·혼인·입양이라는 가족 제도를 넘어선 새로운 친밀한 관계를 상상하고 실천하는 방식은 생각만큼 지지받지 못한다. 가족 제도와 로맨스 규범에 너무 익숙해져 있고, 실패의 순간마다 문화적 인정과 자원은 미약하며, 새로운 공동체적 관계는 상처와 환멸로 이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경험한 공간비비는 '대단한 신념'이 아니라 '일상의 신뢰'를 쌓아가고자 노력했다. 일상에서 '다름을 조율하며 서로의 꼴을 보아주며'(p.62)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자 '참고, 기다리며, 견디며'(p.195) 세월을 통과했다. 단절과 회피가 아닌 방식으로 '저마다가 편안해하는 최적의 거리를 알아채고'(p.199), 세 명의 상근활동가가 안정적인 구심점이 되어 조합원 각자가 가진 강점과 자원을 발견하도록 지지했다. 그들의 환대와 돌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가 아니라 각자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집중하며'(p.62), 어느새 서로의 취약한 면을 이해하고 상호 돌봄을 배우게 되었다.
공간비비의 삶은 성공의 문법과 다르다. 신자유주의적 삶의 흐름을 기꺼이 비껴가며, '돈을 많이 벌지 않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의미 있게 살기 위해 몸도 마음도 재구성'(p.110)하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다. 그들은 비혼여성이라는 정체성에 갇히지 않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갈 용기를 주고받는다. 나 역시 그 곁에서 ‘나에게 맞는 비행고도’를 찾아가는 중이다. 이 책이 가족제도 바깥에서 다르게 늙어가고자 하는 누군가에게, 우리는 혼자 늙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러주는 하나의 참고문헌이 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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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오래 붙들려 있던 말은 "꼴을 봐야 한다"였다. 좋은 면만이 아니라 못난 꼴, 성가신 꼴, 봐주기 어려운 꼴까지 계속 보게 되는 것. 같이 늙어간다는 건 그런 일이다. '내 마음'이 아니라 '네 마음'을 알아야 한다는 대목도 오래 남았다. 지은이는 이해가 먼저가 아니라 태도가 먼저라고 말한다. 다 이해하지 못해도 대할 수는 있다는 것. 그리고 '기꺼운 마음'. 희생으로서의 돌봄이 아니라 기꺼움으로서의 돌봄. 여성에게 돌봄은 대체로 안 하면 안 되는 일로 주어져왔고, 그래서 돌봄을 말할 때는 늘 어떤 방어가 따라붙는다. 이 책은 그 방어를 억지로 풀라고 하지 않으면서도, 그럼에도 기꺼이 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고 말한다. 읽고 나서 남은 건 결심이라기보다 순서에 대한 감각이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할 수 있으니까 한다'에서 시작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게 합리적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 문장에는 내가 빠져 있다. 할 수 있는지만 있고, 하고 싶은지가 없다. 거절을 잘 못한다. 누가 뭘 부탁하면 일단 되는 쪽으로 일정을 맞춰보고, 안 되겠다는 말은 끝까지 아낀다. 그러면서 정작 내가 아쉬울 때는 말을 못 꺼낸다. 꺼내기 전에 상대의 사정부터 헤아려보고, 대개는 헤아리다가 그만둔다. 주는 일은 반사처럼 되는데 받는 일에는 매번 준비가 필요하다. 이건 관대한 게 아니라 한쪽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혼자 늙지 않는다는 말에는 받을 줄도 안다는 뜻이 들어 있을 텐데, 나는 그 절반만 연습해온 셈이다.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고, 내 욕구를 살피고, 그런 다음에 기꺼이. 그 순서를 지킬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내 욕구를 묻는 일에 서툴고, 물어봐도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올 때가 많다. 다만 이제는 하기 전에 한 번 멈추게는 될 것 같다. 그 멈춤이 오래 남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