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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계를 넘어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 언론과 대중매체는 연일 이 거대한 서사시를 다루기에 바쁘고, 우리 아이마저 너무 재미있게 보았다며 나에게 강력하게 추천을 해왔다. 오디세우스라는 이름과 그의 대략적인 모험담은 살면서 어렴풋이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수백 쪽에 달하는 무거운 완역본 고전을 새로 사서 읽을 만큼의 엄두나 의욕까지는 나지 않았다. 그저 영화를 보기 전, 그리고 아이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최소한의 맥락과 교양을 챙기고 싶다는 가벼운 호기심이 시작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오디세이아 관련 책들 중 내 손에 쥐어진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책을 펼쳐 들고 읽어나가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약간의 답답함이었다. 원작이 가진 웅장하고 거대한 서사의 줄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물 흐르듯 이어지기를 바랐으나, 이 책은 어떤 특정한 장면이나 사건을 하나씩 내세워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깨달음과 메시지를 짧은 이야기 형태로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기보다는 저자의 프레임에 맞춰 에피소드들이 파편화되어 배치되다 보니, 몰입하려 하면 자꾸만 이야기의 맥없이 끊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전이 주는 특유의 스펙터클한 서사감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서술 방식이 다소 수박 겉핥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 내려갈수록 이 지루함과 식상함의 원인이 오롯이 책의 구성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워낙 수많은 미디어와 대중매체에서 <오디세이>를 다루다 보니, 나는 이미 어깨너머로 너무 많은 정보들을 흡수한 상태였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물론이고, 그 안에 담긴 교훈과 메시지까지 머릿속에 이미 하나의 완성된 이미지로 입력되어 있었던 것이다. 스포일러를 완벽하게 알고 보는 영화처럼, 이미 결론과 의미를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텍스트를 하나씩 확인해 나가는 과정은 어쩔 수 없이 지루함을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미 매체를 통해 파악한 내용이 정적인 문장으로 재확인되는 수준에 그치다 보니, 책이 전달하는 이야기들이 반복적이고 식상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결코 나쁘다거나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이 책과 내가 만난 '시점과 계기'가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만약 내가 오디세이아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던 상태에서 이 책을 만났다면, 짧고 친절한 단상들을 통해 고전의 문턱을 낮춰주는 아주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다만 지금의 나는 이미 너무 많은 미디어의 정보로 꽉 차 있는 상태였고, 그렇기에 이 책이 가진 본래의 장점이 나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던 것뿐이다. 비록 기대했던 방식의 독서는 아니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오디세이아라는 거대한 고전이 왜 3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지는 명확히 가슴에 남았다. 수많은 유혹과 시련 속에서도 '나 자신'을 잊지 않고 결국 내가 있어야 할 자리, 나의 집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의 여정. 책은 잠시 서재 한쪽에 가만히 덮어두려 한다. 세간의 열풍이 한 김 식고, 삶의 어느 길목에서 문득 나만의 방황과 귀환에 대해 생각하게 될 때 다시 펼쳐본다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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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를 보고 나서 고전의 내용의 풍부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이타카의 왕인 오디세이가 트로이 전쟁으로 나가서 승리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데 걸린 시간이 20년이었다. 전쟁기간이 10년,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10년이 걸렸다. 한 인간이 이런 세월을 거쳐서 자신이 살던 집과 가정으로 돌아오는데 고통과 극복의 서사가 담긴 이야기다. 오디세이가 이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오디세이아라고 보른다. 오디세이는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수 많은 시련을 극복하고, 더 강인하고 지혜로운 존재가 된다. 우리도 삶에서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거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이 고전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목적지보다 여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오디세이아는 보여준다. 시인 콘스탄틴 카바피의 '이타카'라는 시에서는 여정의 의미를 잘 알려주고 있다. 이타카를 마음에 품어라. 그곳에 닿는일이 당신의 운명이니까 그러나 결코 서두르지 마라. 차라리 그 여정이 오래 이어지는 편이 좋다. 섬에 도착할 즈음 지긋한 나이가 되어 도중에 얻은 것들로 풍요로워질테니까. 이타카가 당신을 풍요롭게 해 주리라 기대하지 마라. 이타카는 오디세이가 꿈꾸던 집이 있던 곳이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많은 시련을 겪는다. 그러나 이타카에 도착한 이후에도 오디세이는 여러 시련이 있었으나 이것도 극복한다. 오디세이를 강하고 지혜롭게 만든 것은 여정 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오디세이가 극복한 경험으로 인한 것이다. 우리의 삶도 오디세이아일텐데, 그 끝은 죽음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삶이라는 긴 여정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우리의 모든 삶도 오디세이아이다. 세상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그 상황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야 오디세이가 되는 것이다. 오디세이아는 어떠한 강인함이나 확신의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모호함, 취약성, 변화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역경 앞에서 낙관과 끈기를 가질 수 있는 교훈을 준다. 오디세이에서 가장 강조하는 말은 '도전을 받아들이고 길을 나서라'라는 것이다. 인생의 여정에서 수많은 어려운 일이 생긴다. 질병, 실패, 이혼, 헤어짐, 우울 등이 생길 때 우리는 이를 받아들이고 행동을 취해야 한다. 오디세이는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잃지 않고 괴물이나 신의 저주도 받아들이며 끝까지 노력한다. 자신의 상황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할 방법을 계속 찾는다. 우리는 영웅이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배운다. 오디세이에게 닥칠 어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오디세이 그 자체도 속임수, 인내심, 치밀한 전략을 가진 왕이었다. 그러나 어려움이 닥쳤을 때는 덜 우울하고, 상황을 개선하고자 더 적극적으로 노력했으며, 좌절에서 더 빨리 회복하였다. 그런 사람일수록 삶 전반의 만족도가 높다. 이러한 사람은 장애나 어려움을 자신의 무력함의 증거로 보지 않고 풀어야 할 과제로 본다. 오디세이가 칼립소와 함께 오기기아섬에서 7년을 보냈다. 그는 천상의 미녀인 칼립소와 있어도 행복하지 않았다. 계속 집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에 바닷가에서 파도를 보고 있었다. 칼립소가 매일 좋은 음식과 잠자리를 해 줌에도 불구하고 오디세이는 떠날 생각뿐이었다. 삶의 조건이 나아진 것으로 보여도 우리의 마음의 핵심 가치와 관계가 어긋나면 행복하지 않다. 오디세이는 칼립소를 두고 결국 떠나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다. 칼립소 효과는 우리가 삶의 쾌락에 빠져서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잃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불확실한 세상으로 나아가지 않으려고 하고 안정된 생활 속에서 만족의 족쇄에 묶여 있게 된다. 우리의 목표가 뚜렷하다면 칼립소 효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의 중요한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 과연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오디세이에게 배울 것은 그는 삶의 주도권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력감에 사로 잡혀 있으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주체성과 통제감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은 성취감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과제를 바로 시작하는 것이다. 이를 행동 활성화라고 부른다. 행동을 하하다보면 용기가 생기고,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높아진다. 결국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오디세이는 이러한 자존감이 있었기 때문에 집이 있는 이타카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오디세이가 이타카로 가는 것도 파이아키아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다. 어떤 일이든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 없다. 이러한 도움을 오디세이가 받을 수있었던 것은 그리스의 크세이나의 전통이 있어서다. 그리스 세계에서는 손님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제우스가 손님으로 언제든지 올 수 있다는 믿음때문이었다. 남을 도와주는 것이 결국 나를 돕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그리스인들은 알았다. 파이아키아 사람들은 힘든 오디세이가 지친 몸을 쉬도록 하고, 이타카로 가는 길까지 도움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에서 누구와 함께 여정을 같이 하느냐가 중요하다. 오디세이가 집에 갈 수 있었던 것은 혼자 가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오디세이가 집으로 빨리 돌아가지 못한 이유는 키클롭스인 외눈박이 괴물을 조롱하였기 때문이다. 키클롭스에게 처음에 오디세이는 노맨이라고 하여 하찮은 존재라고 하였지만, 키클롭스에게서 도망갈 때에 자신이 트로이의 영웅이라는 것을 자랑하였다. 이에 분노한 키클롭스의 아버지인 포세이돈에 의하여 배가 폭풍우를 맞아 집으로부터 먼 곳으로 떠내려 가게 된다. 자신이 키클롭스를 재치로 무찌르고 간 것을 인정받고 싶어 한 행동에 나쁜 결과를 맞이한 것이다. 남이 알아주지 못할까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임을 보여준다. 더 큰 목적을 위해서는 자기중심성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들은 터 큰 회복력과 함께 다른 사람과 유대관계가 좋고, 더 오래 지속되는 성취를 얻게 된다. 진정한 힘은 자신의 잘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에는 그것을 내려 놓을 수 있는 용기이다. 오디세이는 이타카로 돌아와 구혼자를 물리쳐도 그 여정이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계속된다. 저승 세계에서 테이레시아스의 예언은 오디세이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알려주지만 막을 수는 없었다. 우리의 어려움이나 고통은 끝임이 없다.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일을 마주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 어려움을 피하거나 막아보겠다는 것보다는 무엇이 오든 대비하고 잘 해결하겠다는 마음이 필요하다. 오히려 어려움에 맞서 싸우기 보다는 그것과 함께 성장하려는 유연한 전략이 필요하다. 그래도 오디세이아에서 가장 중요한 배움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다. 우리에게 진짜 가치가 있는 것은 집, 가족,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에서의 기쁨이 아닐까. 성공하더라도 그 성공의 과정에서 우리가 포기한 것들에 대하여 우리는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사회에서 정한 성공의 기준인 부와 명예에 집착하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더 크다면 그것은 과연 잘한 것일까. 모든 사람에게 오디세이아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목적지에 도달해도 삶이 끝나지 않는다. 인생은 모험의 연속임을 오디세이아는 잘 보여준다. 그래서 고전을 꼭 읽어야 한다고 하나 보다. 2026. 8. 15. 걷는 변호사 조용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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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교수님의 유튜브채널 소개보고 읽게 된 책. 감동입니다. 인생에 대해,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지나고 있을 모두에게 위로가 되는 책. 그것이 인생이다. 목적지를 늘 마음에 품고 나아가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여정이다. 이제 오디세이아 이어서 읽어보려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