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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도 맞고, 말도 통하고, 취미도 잘 맞는 사람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면 참 행복할 것 같다. 그런 사나이들이 한 배를 탔다. 박남준, 유용주, 안상학, 한창훈 이 네 명의 사나이들이다. 서로들 잘 아는 사이들이니 마음이 잘 맞을 테고, 모두 시인이거나 소설가니 눈빛만 봐도 말이 통할 것이며, 모두 술을 좋아하는 취미를 갖고 있으므로 조건이 아주 잘 들어맞는 환상의 조이다. 게다가 현대상선에서 경비를 다 제공해주는데 이 공짜 여행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홍보를 위해서 으레 태우던 기자 대신 작가 네 명을 태웠다는 것은 참으로 새로운 발상이다. 컨테이너선 하이웨이호를 타고 두바이를 향하는 네 남자들의 마음은 큰 파도처럼 출렁거렸을 것이다. 대만의 지룽, 홍콩, 중국의 얀티안,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의 포트클랑 그리고 인도양을 가로지르는 항해 3만 리, 총 스무하루가 걸렸다. 이 책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는 바로 네 작가의 생생한 선상기록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바다와 하늘, 말 그대로 망망대해였겠지만 작가들이 좀 특별난 사람인가, 그들이 보는 물결도, 피부로 스치는 바람결도,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도, 비릿한 바다내음도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것하고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한 달 가까이 한 공간에서 같은 사람끼리 지내야 하는 것은 괴로울 수도 있겠지만, 죽이 잘 맞는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은 소중한 추억을 남겨 줄 것이다. 나는 부러움 한 가득 담은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네 명의 작가들이 똑같은 장소를 다녀와서 책으로 엮었다는 것은 의미깊은 일이다. 각자 어떻게 느꼈을까, 어떤 시선으로 보았을까를 독자로서 보는 것은 하나의 즐거움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유용주의 글과 박남준의 글이 내 스타일에 잘 맞았다. 특히 유용주의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마음을 끌었다. 여러 과일 중에서도 사람마다 선호하는 과일이 다르듯이 이것은 순전히 나의 기호일 뿐이다. 유용주 시인의 글이 다른 사람에 견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철학적이었고 표현이 은유적이었고 시적이었다.
바다는 물방울이 모여 만든 커다란 집이다. 세상의 실핏줄들이 모여 만든 단단한 집이다. 우리는 모두 이 집에서 태어나 이 집에서 죽는다. 그러니 아무도 이 집의 주인이라 말할 수 없다. 주인이 없다고 해서 함부로 드나들면 안 된다. 누구나 살 수 있지만 문패를 달 수 없는 모세혈관의 집, 못 하나 박을 수 없는 순결한 집.
배는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 없는 장부처럼 뚜벅뚜벅 큰 걸음으로 간다. 묵직한 남자다. 오래 견디는 여자다. 황소처럼 뚜렷하게 간다. 직선으로 간다. 직선이 지칠대로 지치면 곡선이 되는 이유, 그것이 바다의 품이다, 바다는 둥글게 휘어진 직선이다.(69쪽/ 유용주편)
아무리 둘러봐도 다 바다다. 그러나 바다에도 길이 있다. 아무리 넓다해도 함부로 길을 벗어나지 않는다. 바다에도 길이 있고, 하늘에도 길이 있고, 사람 사이에도 길이 있다. 그 길은 하나같이 서로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하고, 알고 싶어하고, 믿고 싶어하는 그런 마음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다. 배가 지나간 자리에 흰 빨래 눈부시게 눈부시게 펄럭인다.(71쪽/유용주편)
시인의 통찰과 인식은 아름다운 문장들을 길어올린다. 그 문장들은 또 보는 이들의 가슴에 박혀 삶의 풍요로움을 준다. 언어의 마술사 유용주의 글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돋보였다. 그들은 네 명이서 즉흥시도 지었다. 마치 한 사람이 쓴 시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들이 마음에 경계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각자가 언어의 집에서 가져다가 만든 합작품이다.
그대에게 나는 예인당하고 싶다
아주 천천히, 천천히 각도를 맞추어 나를 끌어다오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루어다오
별과 달이 이끄는 대로 나는 그대에게 가련다
저 파르테논 신전보다 더 웅장한
도시의 밤 불빛을 뒤로하고
나는 깊고 푸른 바다로 노 저어 나아간다
이제 그대는 돌아서고 뱃머리를 돌린다
울지 마라 그대여, 그대와 인연은 여기까지다
내 가슴 깊이 당신의 팽팽한 동아줄을 간직할 것이다.
이 생이 끝나는 날, 그 동아줄 타고 그대에게 돌아가려니
그대 별빛 즈려 밟고 마중 나오소서
상상만 해도 아름다운 모습이다. 출렁이는 물결 위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별빛 받으며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속에 노래도 부르고 시를 지어올리는 그 밤이 너무도 짧았으리라. 스무 날의 밤들은 그들의 객기와 풍류들로 엮어내느라 느린 시간 속에서도 상당히 분주했으리라. 나는 어느 새 그들의 낭만에 예인당해 망망대해로 한 없이 끌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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