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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냥 내 성격이 그런 것 같아요." 대부분의 여성은 자신이 가사의 모든 것을 떠안고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남편이 게으르거나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원래 꼼꼼한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Daminger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인식되지 않고,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바뀌지 않는 노동, 바로 인지 노동(cognitive labor)을 이야기 한다. Daminger는 인지 노동이 무엇인지, 왜 여성에게 불균형하게 집중되는지, 그리고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 는지를 이야기 한다. 흔히 가사 불평등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눈에 보이는 노동을 중심으로 생각한다. 누가 설거지를 했는가, 누가 청소를 했는가, 누가 아이를 목욕시켰는가. 그러나 Daminger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정신적 프로세스'", 즉 가정이 원활히 돌아가도록 하기 위한 생각과 판단의 노동에 주목한다. 그가 정의하는 인지 노동은 네 단계로 구성된다: 필요를 예측하기, 선택지를 파악하기, 결정을 내리기, 그리고 결과를 모니터링하기다. 예를 들어 아이의 편식이 심해진다고 느끼는 것은 '예측'이다. 전문가 상담이 필요한지, 어떤 방법이 있는지 조사하는 것은 '선택지 파악'이다. 실제로 치료사를 찾아가 기로 결정하는 것이 '결정'이며, 이후 아이의 식습관이 나아지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살피는 것이 '모니터링'이다. 이 과정은 하루에도 수십 번, 가정의 모든 영역에서 반복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대부분 여성의 머릿속에서 조용히, 쉬지 않고 돌아간다. 무엇보다 이 노동이 잔인한 이유는 시간 기록지에 포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직장에서 이메일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아이의 다음 주 소풍 준비물을 기억하고, 노부모의 병원 예약 날짜를 떠올리는 여성의 뇌는 끊임없이 '백그라운드 처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유급 노동 시간에도, 가사 노동 시간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보 이지 않으니 인정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니 나누어지지 않는다. Daminger의 연구에서 충격적인 발견 중 하나는, 대부분의 커플이 인지 노동의 불평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젠더 문제라는 사실은 부정한다는 점이다. "이건 젠더 문제가 아니에요. 저라는 사람의 문제예요." Daminger는 이것을 '개인 본질주의(personal essentialism)'라고 부른다. 여성은 자신이 '원래 꼼꼼하고 계획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한다고 믿고, 남성은 자신이 '원래 즉흥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못 한다고 믿는다. 젠더 불평등은 이렇게 개인의 성격 차이로 번역되어, 문제 자체가 증발해 버린다. 그러나 Daminger는 날카롭게 반문한다. 직장에서는 복잡한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세밀한 계획을 세우는 그 남성이, 왜 집에서는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가?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투자의 문제다. 누가 그 능력을 키울 인센티브를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다. 구조적 요인도 이 불평등을 고착시킨다. 경제학자 Claudia Goldino 명명한 탐욕스러운 일(greedy work), 즉 언제든 연락 가능하고 헌신을 요구하는 직장 문화는, 맞벌이 커플에게 한 명의 커리어를 우선시하도록 강요한다. 그리고 대개 그것은 남성의 커리어가 된다. 더 심각한 것은, Daminger의 연구에서 여 성이 더 높은 소득을 올리거나 더 긴 시간 일하는 경우에도 여전히 인지 노동의 더 많은 부분을 짊어졌다는 사실이다. 남 성의 고된 직장 생활은 가정에서의 부재를 정당화하는 이유가 되지만, 여성의 고된 직장 생활은 오히려 그녀가 "원래 유능하다"는 증거로 해석되어 더 많은 가사 노동으로 이어진다. 이 이중 기준은 명백한 불공정이지만, 워낙 일상에 깊이 배어 있어 많은 이들이 눈치채지 못한다. 또한 책임의 비대칭성 문제가 있다. 사회는 아이가 학교에 제때 준비물을 챙겨 가지 못했을 때,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책임을 지는 사람이 신경을 쓰게 되어 있다. 어머니는 사회적 감 시 속에서 자동적으로 더 많은 인지 노동을 떠맡는 구조 안에 놓여 있다. Daminger의 연구에서 흥미로운 대조군은 동성 커플과 트랜스젠더 파트너를 포함한 퀴어 커플들이다. 이들 역시 완전한 평등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이성애자 커플에 비해 격차가 훨씬 작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태도의 차이였다. 퀴어 커플들은 인지 노동의 배분을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협상하고 조정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했다. 이 성애자 커플이 "나는 원래 이걸 잘해서, 그는 원래 저걸 잘해서 "라는 논리로 분업을 당연시하는 반면, 퀴어 커플들은 누가 무엇을 할지에 대해 더 자주 이야기하고, 불균형이 생겼을 때 더 적극적으로 재조정하려 했다. 이는 젠더 역할이라는 기본 스크립트가 없을 때, 커플들이 얼마나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달리 말하면, 인지 노동의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학습된 것이며, 따라서 바꿀 수 있다. Daminger는 인지 노동의 문제가 개인이나 커플의 차원에서만 해결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학교는 특별한 의상이나 수제 간식 준비 같은 요구가 부모에게, 특히 일하는 부모에게 어떤 인지 적 부담을 지우는지 성찰해야 한다. 기업은 직원들이 진정으로 퇴근할 수 있도록 '탐욕스러운 일'의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정부는 조각보처럼 이어 붙여야 하는 돌봄 공백을 채울 수 있는 공공 인프라를 제공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다른 것을 가르쳐야 한다. 소녀에게만 장난감 정소기를 선물하지 않아야 하고, 소년도 어릴 때부터 타인의 필요를 살피고 돌봄의 책임을 나누도록 배워야 한다. 인지 노동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연습과 투자를 통해 개발되는 능력이다. 그 연습의 기회가 한쪽 성별에게만 주어져 왔기에 오늘의 불균형이 생긴 것이다. Daminger의 연구는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게 한다. 우리는 이미 '평등'을 이상으로 삼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가정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오래된 불평등이 조용히, 그리고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더 교묘한 이유는, 그 불평등이 성격 차이나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도록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건 젠더 문제가 아니에요. 저라는 사람의 문제예요." 이 말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멈추고 물어야 한다. 정말 그런가? 어쩌면 수백만 여성이 공유하는 더 큰 이야기의 일부는 아닌가? Daminger가 말했듯, 사회학자의 임무는 개인의 경험이 더 큰 구조 속에 어떻게 위치하는지를 보게 돕는 것이다. 그 시선을 갖는 것,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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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 머릿속 노동은 누가하는가? by앨리슨 데이밍거 🌱 평등한 우리 집’에서 왜 꼭 한 명은 ‘통제광’이 될까? 기억하기, 계획하기, 챙기기… 쉬는 중에도 다음 일을 계산하는 ‘머릿속 노동’의 불균형을 탐구한다! 🌱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집안일 즉 가사노동은 집안을 원활히 돌아가게 하기 위한 신체적 노동과 육아 등을 말한다. 그러나 단지 그것 뿐일까? 어떠한 일이든 사전에 계획되고 정리가 되어야 누군가에게 주어지고 진행된다. 이것을 '인지적 가사노동' 이라고 한다. "인지적 가사노동이란 가족의 필요와 요구가 무엇인지, 가족이 가족 외부의 타인과 사회에 대해 어떤 의무를 지는지, 그러한 가족의 필요와 의무가 충족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수행되는 일련의 사고 과정이다." 예를 들면 휴지 삼푸잔량 확인, 아이학원 등록마감, 부모님 생신선물, 세탁기 수리기사 연락, 아이줄넘기 준비, 가스검침원 약속잡기, 우체국 등기연락, 관리비 계좌변경 등 그런 것들이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꼭 해야하고 하지 않으면 일이 멈추거나 타격이 생기는 일들이다. 이러한 인지적 가사노동의 대부분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다. 과거에 비해 남성의 가사 참여도가 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50프로에는 턱없이 모자란데도 이러한 인지적 가사노동은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다. 많은 이들이 그것은 성별 특성상 여성들이 더 잘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성이 없는 집의 경우에는 남자들이 그 일을 수행한다. 이는 성별적 특징이 아니라 하거나 배우고자 하는 의지의 문제이고 여성이 존재하는 가정 내 남성은 그 의지가 약하다. "대부분의 영역에서 그러하듯이 정신 사용 영역에서도 실천이 완벽을 만든다. 인지노동을 함으로써 인지노동을 잘하게 된다. ~그 결과 여성의 역량은 더욱 커졌고, 이는 여성이 계속 집안일을 책임지도록 장려했다. " 이렇게까지 된 데는 가정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았을 경우 생기는 문제를 여성들이 대부분 떠 안게 되는 불합리한 구조 때문이다. 남성들은 일정 부분의 눈에 보이는 가사노동을 분담함으로써 자기 할일은 다 했다고 믿고 나머지를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것은 여자의 일이라고 믿는다. 아니, 사회 전체가 그렇게 생각한다. 여성들은 그것이 두렵다. 슈퍼우먼은 볼 될지 언정 자신의 가정이 삐걱대는 모습을 드러내며 무능력자로 몰리고 싶지 않기에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려는 방어기제가 더 크게 생긴다. 나도 이 책을 읽기 전 까지는 '인지적 가사노동' 이라는 것을 크게 의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미처 몰랐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고 화도 났다. 왜 항상 내가 더 바쁘고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지를 알게 되면서 억울해졌다. 더 많은 여성들이 이 사실을 알아야 하고 주변인들에게도 계속 인지시켜야 함을 절실히 느낀다. @hanibook 🔅< 한겨레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머릿속노동은누가하는가 #앨리슨데이밍거 #한겨레출판 #인지노동 #머릿속노동 #가사노동 #서평단 #도서협찬 #추천도서 #책추천 #신간 #베스트셀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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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노동은누가하는가 #앨리슨데이밍거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 앨리슨 데이밍거/전경훈 옮김. 한겨레출판. 2026. _보이지 않아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인지노동'의 불평등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당연히 노동은 겉으로 드러나는 노동 행위의 물리적 시간과 과정으로만 판단된다고 생각했었다. 퇴근 후 집안일을 돌보는 시간, 겉으로 보이는 시간, 누가 무엇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의 확인 가능한 부분으로만 여기고 있었다. 오늘날의 가족에서 성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 사용과 더불어 정신 사용까지 포괄해 설명할 수 있는 확장된 가사노동을 사회학이 필요하다.(284쪽)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노동은, 일이란 겉으로 보이는 시간 사용만이 아닌, 정신 사용하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게 됐다. 왜 그동안 생각조차 하지 않았냐고, 한방 맞은 느낌이었다. 책을 읽기 전 제목을 보면서도 당연하게 '노동'이란 단어에 초점을 맞춰 생각했었다. 그래, 노동은 누가 하는 거지? 보이지 않는 노동의 불평등이 무엇이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무릎을 쳤다. 사실은 '머릿속'에 강조점이 있었구나! '인지노동'이란 단어가 그제서야 제대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나서, 표지에 나열되고 있는 노동의 목록들이 결국,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확인할 수도 없는 목록들이라는 걸 알게 됐다. 우리는 끊임없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인지노동'을 쉴새없이 하고 있는 중이구나, 하는 것도 함께 느끼게 됐다. 우리가 가사노동을 이해할 때 비육체적 형태의 노동을 배제한다면, 가정생활에서 나타나는 성별 차이의 전체 모습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280쪽) 당연히 책을 읽으며, 나의 경우는 어느쪽인가를 가늠하기 시작했다. 책 속 사례들을 살피며 나는 '남성 주도 커플'일까 '여성 주도 커플'일까, 아니면 '균형 커플'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결론으로, 결혼 생활 20년이 넘은 이 지점에서, 15년 정도는 당연하게도 '여성 주도 커플'이었다. 그러다 지금은 일정 부분 조금씩 그 역할을 넘겨주려 애쓰고 있기는 하다. 여성인 내가 의도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나의 역할을 회피하고 있기도 하고, 이제는 자녀 양육의 일이 많이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많은 부분에서의 인지노동을 하도록 만드는 노력을 하고 있기도 하다. "더 능률적이다", "더 빠르다, "더 낫다" 같은 표현들이 초인 유형 여성의 식사 계획하기와 아이 돌보미 찾기부터 선물 고르기에 이르는 과업 수행을 정당화했다.(...) 초인 유형 여성의 우월한 인지노동 역량은 그녀의 DNA에 쓰여 있는 예정된 결론이기보다는 여러 해에 걸쳐 계발되고 사회적 힘에 의해 강화된 과정들의 정점으로 보였다.(173-174쪽) 보통 여성이 가정 내 많은 부분을 담당하게 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이지 않을까. 더 잘한다고, 더 효율적으로 빨리 일이 진행된다고, 대부분의 역할을 여성에게 부여하는 관점. 심지어 여전히 아직도 한국사회는, 과거 봉건적인 사고방식의 근간을 완전히 뽑아내지 못하고 집안의 일을 여성의 일로 간주하는 지점이 다분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주부'라는 단어를 여성과 연결지어서만 사용하는 편견이 단적인 한 예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남성 주도 커플은 단순히 '성별이 뒤바뀐' 여성 주도 커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남성 주도 커플은 전통과 변화의 요소들을 뒤섞고 있었고, 대부분은 그들의 비전통적 방식과 세상의 규범 및 구조 사이에서 마찰을 겪었다.(216쪽)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성에 대한 역할 부분의 편견이 얼마나 공고한지 느끼게 된다. 불평등에 대한 인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사회는 많은 부분에서 성에 대한 차별을 당연하다는 듯이 일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성에 따른 불평등, 성적 차별이란 단어가 익숙해지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반드시 50:50의 역할이기를 바라는 건 아니라고 했다. 다만 어떤 이유를 설명할 때, '여성이니까'가 답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성에 대한 차별을 가사노동을 역할, 특히 인지 노동에 대한 사회적 차별로 연결시켜 이야기하고 있는 책을 처음 만났다. 그래서 놀라웠고 또 당황스러웠으며, 나의 기존 생각을 깰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이 책의 제목에 주목하게 됐다. 머릿속 노동, 인지노동. 꼭 기억해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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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은 이미 한 차례 치러졌다. 오랫동안 집안일은 사랑이나 의무로 여겨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사노동 또한 '노동'임을 인정받게 되었다. 청소와 요리, 육아에 투입되는 시간을 계량하고 가시화하는 연구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노동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 책은 시간을 기준으로 가사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또 다른 노동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바로 계획하고, 예측하고, 결정하며 가정을 운영하는 '머릿속 노동'이다. 그렇다면 왜 집안일을 분담하는데도 한 사람만 유독 더 지치고 피곤하다고 느낄까. 설거지는 반반 하고, 청소도 번갈아 하는데도 왜 누군가는 늘 머릿속이 바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저자는 그 이유를 인지노동에서 찾는다. 인지노동이란 몸을 움직여 집안일을 수행하는 것이 아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예측하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며,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끝까지 확인하는 일련의 사고 과정을 의미한다. 집안일을 '실행하는 사람'과 집안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같은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많은 가정에서 후자의 역할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는 점을 포착했다. 저자는 다양한 형태의 커플들을 인터뷰하며 인지노동이 실제 가정에서 어떻게 분배되고 있는지를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집안일을 공평하게 나누고 있다고 생각하는 커플들조차, 정작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계획하고 예측하며 결정하는 머릿속의 노동은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러한 불균형은 흔히 "내가 원래 꼼꼼해서", "상대가 원래 무던해서"라는 말로 설명된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개인의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불평등을 성격의 차이로 환원하는 '성격 본질주의'라는 사고방식으로 분석한다. 즉, 성별에 따라 형성된 역할과 훈련의 결과를 타고난 기질의 차이로 받아들이는 순간, 인지노동의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굳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저자는 모든 가사와 돌봄을 기계적으로 50:50으로 나누는 것이 해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실행'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계획하고 예측하며 결정하는 권한과 책임까지 함께 나누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쓰레기를 버려 달라", "장을 봐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여전히 한 사람이 전체를 기획하고 있다는 의미다. 진정한 재배분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먼저 알아차리고, 일정을 관리하며, 끝까지 책임지는 과정 자체를 함께 맡는 것에서 시작된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처음부터 효율적일 수 없다. 상대가 나와 다른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거나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도 감수해야 한다. 저자는 바로 그 '통제 내려놓기'가 인지노동을 재배분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공평하다고 믿었던 가사 분담이 반드시 평등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눈에 보이는 집안일은 나누고 있었지만, 그 일을 계획하고 기억하고 책임지는 머릿속의 노동은 여전히 한 사람에게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 책은 우리가 막연히 느끼기만 했던 불균형에 '인지노동'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그동안 설명하기 어려웠던 불평등함을 가시화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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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본능적이거나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방식으로, 또는 '나다운' 방식으로 행동할 때조차도, 우리는 또한 성별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29" 언젠가 결혼 생활의 현실 혹은 남편에게 심부름 시키면 벌어지는 상황이라는 제목으로 본 이야기다. 아내가 남편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아내 : 우유 하나 사 와. 계란 있으면 6개 사 와. 남편은 우유를 6개 사왔다. 아내가 물었다. 아내 : 왜 우유를 6개나 사왔어? 남편 : 계란이 있길래 6개 사왔지. 웃으라는 의도도 있겠지만 차마 웃음이 나오지도 않는다. '남편, 심부름' 키워드를 넣어 검색하기만 하면 이와 비슷한 사례들이 쏟아진다. 냉장고에 있는 감자 반만 까서 삶아놓으라는 말에 총 양의 절반이 아니라 각 감자알의 절반씩만 껍질을 깎아서 삶아놓은 것 같은 이상한 일들이 국가와 인종을 불문하고 일어난다. 이들에게 '제대로 된 명령어'를 입력하는 법 마저 공유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멀쩡히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연애와 결혼까지 한 성인이라는 것이다. 가사노동을 나눠야하는 아내와 남편이 되기 전까지 아마 이들의 취약함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이들 대부분은 사회에서 자신들이 다른 여성노동자들보다 더 일을 잘하고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고 단단히 믿고 있다. 이들이 우월하다고 믿는 사고와 능력은 왜 가사노동의 범위에서만 이토록 퇴화되는 것일까? 저런 상황들은 유머일 뿐이고 일부의 극단적인 예시이며, 요즘은 반반결혼, 노동과 경제 관리를 반씩 나눠 부담하는 방식이 유행하면서 가사노동의 불평등에 대한 인지와 개선,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에서는 항목과 시간으로 다 계산되지 않은 '인지노동'의 존재와 불평등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 여러 세대에 걸친 페미니즘 활동가들과 사회과학자들이 가치 있는 사회적 기여와 여성이 짊어진 과도한 부담으로서의 집안일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얻기 위해 운동을 벌였고 지금도 계속 벌이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싸움에서 비롯한 한 가지 유감스러운 부작용은 가사노동이 시간 계랑으로 드러나는 육체적 요소로 단일하게 축소되었다는 사실이다. 52"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진행되는 인지노동은 생필품이 얼마나 남았는지, 어떤 제품을 얼마에 구매해야 하는지, 가족모임, 병원 예약을 관리하거나, 저녁 메뉴와 냉장고 안의 식재료를 가늠하는 것처럼 사소하고 빈번하며 반복적인 가사노동부터 육아, 돌봄처럼 책임이 크고 장기간에 걸친 의사결정과 노동을 아우른다. 가정에서 이 인지노동을 주로 하게 되는 것은 누구일까? 왜 '여성'들이 인지노동의 대부분을 맡게 되는 것일까? '엄마가 우리집 대장'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것처럼, 가사노동/인지노동은 확고하게 여성들의 몫이 크다. 가정의 대소사를 여성 파트너가 주관하면서 여성들은 초인/관리자로 묘사되고, 남성들은 허당/서투른 보조자로 묘사되곤 한다. 표면적으로는 여성을 치켜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별 차이의 관념을 강화하고 인지노동을 불균형하게 부담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리고 이 차이를 성별 불균형이 아닌, 개인 성격 차이로 계획적이고 꼼꼼하고 더 잘 챙기는 사람이 맡아서 분담하는 것이란 인식 때문에 "커플 다수가 인지노동 배분 방식이 최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깨부술 수 있는 힘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293)"해 변화의 가능성을 축소(283)해왔음을 '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를 통해 밝힌다. 때문에 이 책을 권하는 것은, 이를 통해 그저 남성 파트너들이 여성에게 가사노동의 대부분을 전가하려는 행태를 보인다고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노동의 범위로 채 인식하지 못했던 '인지적 가사노동'이란 무엇인지 파악하고, 가정 내에서 어떻게 부담되고 있는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 어떻게 접근하고 시도해야 하는지 알아보기 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반'으로 정해진 가사노동의 분배에도 불구하고 불균형과 부담을 느끼고 있는 여성 파트너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하지만, '일부러 제대로 가사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일부 남성 파트너들과 '균형적이고 공평하게 가사노동을 분담하고 있'다고 자신하는 일부 남성 파트너들에게 이 책이 어떻게 느껴질지 의견이 궁금해진다. 책을 통해 어떤 '실전(노동, 불평등, 불만요소)'들이 가정 내에 존재하고 있는지 책을 통해 새롭게 깨닫고, 그동안 의식하지 못한 채로 수행했던 인지노동이 어떤 배경을 통해 이루어져 왔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완벽한 평등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는 가시적인 목록과 시간으로 반영되지 않았던 회색지대를 발견하고 이를 더 나은 방식으로 풀어가기 위한 받침이 되어주는 좋은 질문이었다.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게시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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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같은 가정에서 함께 살림을 꾸려나가는데, 한쪽은 매사에 안달복달하고 '관리자' 역할에 노상 진이 쭉 빠진 것처럼 느낄까? '가사'라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영역을 담당하는 사람은 왜 해도 해도 끝이 없다는 말을 달고 사는 걸까? 왜 양육자 모두가 육아에 참여한대도 한쪽이 더 큰 부담을 지는 형국이 될까. 가정경제와 가족관계의 전반적 관리를 포함하는 가사 부담의 불평등에 으레 따라 나오는 반응은 '엄마/아내가 가장 큰 결정권자'거나 '각자 잘하는 일을 한다'는 식이다. 그러므로 우리 관계는 평등하고 공평하다고. 과연 그럴까? 가정 경제 규모 관리, 가족 성원의 일상 전반, 하다못해 빨래와 식사에 필요한 순서와 준비물, 가족 행사 챙기기는 누가 맡는가? '같이' 한다 하더라도, 그것들의 '실패'는 누구의 탓으로 돌려지는가? 자녀에게, 연로한 부모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연락을 받고 누가 부양하며, 매일 입고 쓰는 물건과 각종 공과금 등은 누가 책임지는가? p.8 (추천사) 이 책은 가사노동을 바라보는 관점을 기존의 기계적 분담 논리에서, '가사와 육아가 누구의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동시킨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대개 가사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이들 남성들은 가사노동을 평생 '머리에 이고' 살지는 않는다. (...) 남성들은 자신이 가사노동에 서투른 모습을 반복적으로 증명함으로써, 가사 책임을 회피한다. 그리고 여성들은 보통 자기 남편의 '무능력'을 남편의 비겁함보다는 그의 천성 탓으로 돌리곤 한다. p.86 한번의 인지노동은 약간 성가신 소소한 일처럼 보이겠지만, '작은' 행동 혹은 찰나의 생각들이 쌓이면 그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왜 누구는 혼자서도 잘 살고 멀쩡히 사회생활을 하다가도 가사 문제엔 얼이 빠져서 '상세한 지시와 칭찬'을 요구하고, 누구는 장단기 계획을 도맡고도 '큰 일'엔 서투르다 여겨지는가? 왜 동등한 주체가 만나 독립된 가정을 꾸리고서도 한쪽은 퇴근 없는 직장을 오가고, 누군가는 휴식과 출근을 분리할 수 있는가? 물어야 한다. 이것은 정말 진정 그가 그 일에 적합한 성격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의도된 나태함일까? '적성에 맞는 일'의 결과일 뿐인가? 그렇지 않다. 설령 '잘 하는 일'을 맡아 나눈다 하더라도, 부담은 편중되어 있다. 누군가 준비부터 뒷처리에 실행을 맡고, 누군가는 결정만 내리면 된다면, 또한 그 결과의 책임이 한쪽에 편중되고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면, 이를 평등이라 할 수 없다. 수직-업무적 위계 관계가 아니고서야 더더욱. 저자가 말하는 인지노동의 단계적 분담이 진실로 '분담'이 아닌 이유다. 개인의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편만 급작스레 무능력자가 될 일이 없으니. p.117 커플들의 합동 결정은, 결정 단계에 이르는 데 필요한 동이한 수준의 준비 작업에 남성이 참여하지도 않고, 혹은 옳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동일한 중압감을 남성이 경험하지도 않으면서 가정생활에 참여했다는 것으로 '점수'를 따는 경우가 많았다. (…) 결정하기는 상대적으로 이득이 높은 인지노동이다. 예상하기나 지켜보기보다 눈에 잘 띄고, 많은 경우에 커플이 제한된 자원을 사용하거나 자녀를 양육하는 방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p.280 인지노동은 모든 곳에 존재하면서도 여성에게 크게 편중된 가사노동의 한 차원으로 드러났다. 또한 이는 우리가 통상 가사노동을 연구할 때 사용하는 시간 기반 지표로는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 이성 커플 다수에서 여성들은 더 무거운 인지적 부하를 떠안고 있었고, 그것도 상대적으로 부담은 크지만 보상은 적은 활동들에 불균형하게 집중되어 있었다. 다만 그것이 과연 개인만의 전략이고 의도겠는지, 물을 필요가 있다. 사회가 어떻게 오래된 방기를 조장하고, 어떤 면에선 누군가를 집 안으로 '묶어 치워버릴' 수밖에 없게 하는지. 어떻게 이 차별이 성격과 현실의 이름으로 '합리적 선택'으로 탈바꿈되는지. 모든 노동이 얼마나 젠더-수행에 밀착되어 있는지, '정상 사회'가 얼마나 많은 비가시노동을 전제하는지를 생각해보라. 저자의 말처럼 "문화적인 힘들이 어떻게 여성을 몰아가서 가정이란 맥락에서 그러한 기술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게 하는지(19)"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돌아보라, 그것은 정말 무능과 재능의 문제였는지. 가정이 관리자와 이용자로 나누어진 공간은 아니었는지. 질문에 답할 때쯤엔 이전과 같을 수 없으리라 믿는다. '같이 살아가는' 일이 마땅히 그러해야 하듯이. p.282 이러한 서사가 호소력이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지나 반세기 동안의 '젠더 혁명'이 불균형적으로 행위에 초점을 맞춰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반복해서 여성들에게 그들 또한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해왔으면, 여기서 '무엇이든'은 주로 직업적 성취의 맥락에서 이야기되어왔다. 이는 중요한 진전인지만 충분한 것은 아니었다. 젠더를 '한다'는 것에는 행동뿐 아니라 사고방식과 정신적 습관까지 포함되기 때문이다. p.293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개인과 커플에게 변화의 주체로서의 힘을 되돌려주는 것과, 인지노동 문제를 그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자기계발서에는 남성과 여성, 그리고 커플을 향한 권고로 가득하다. (…) 즉, 문제의 핵심을 남성과 여성 개인이 무엇을 하고 있으며, 혹은 무엇을 하고 있지 않은지에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진정으로 문제적인 것은 개인들의 선택지를 제한하고 그들의 행동을 특정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힘들을 간과하는 데 있다. *서평도서제공: 한겨레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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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엄마인 여성이 아이를 돌보는 일보다 자신의 일을 우선순위에 놓으면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한다. 또한 자신이 행한 노동의 대가를 바라면 가족을 위한 일인데 대가를 바라느냐고 비난의 시선을 보낸다. 반대로 남성이 자기 일을 우선순위에 놓거나 자신이 한 일의 대가를 바라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로 여기고 화제로 삼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이렇게 엄마들은 온종일 집에서 갖가지 종류의 노동을 하면서도 집에서 논다는 말을 들어 왔다. 하지만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아내가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아내가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고 아이들을 건사해주기 때문에 남편이 마음 편히 나가서 일하고 올 수 있는 것이다. 아내라는 비임금 노동자가 있기 때문에 남편이 임금노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내도 남편과 동일하게 일을 하고 있을 때에도 문제는 비슷하다. 똑같은 강도로 직장에서 일을 하고 돌아와서도, 아내의 일은 집에서 다시 시작되니 말이다. 물론 예전보다는 집 밖의 생산노동만큼 집 안의 재생산노동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많아졌긴 하다. 실제로 가사노동 분담은 과거에 비해 평등해졌다고 하고, 남성들도 과거에 비해 가사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이다. 덕분에 일부 사람들은 성차별의 실제를 부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집안일은 함께하는데 여성들의 머릿속만 이렇게 바쁜 것일까. 현대 사회의 여러 특징들이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머릿속 노동'을 요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슨 데이밍거는 이성애, 퀴어 커플에 속한 부모 172명을 심층 인터뷰하며 오늘날 가정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추적한다. 그리고 육체적 가사노동이 줄어드는 동안 인지적 가사노동은 더 복잡해지고 늘어난 현실을 포착하며, 그동안 제대로 가시화되지 않았던 인지노동 불평등에 관한 사회학적 논의를 본격적으로 연다.
30대 초반의 백인 여성 크리스틴의 하루를 보자. 그녀는 음식을 만들고, 어린 아들을 어린이집에 대려다주고 다시 데려오는 일처럼 자신의 시간을 대부분 잡아먹는 익숙한 집안인들을 처리하는 와중에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잠재적인 문제들을 검토하고, 그 문제들을 해결할 선택지를 선별하고, 수많은 결정을 내리고, 이미 내린 결정의 결과와 영향을 검토하고 추적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 이해하는 '집안일'이란 개념은 크리스틴이 보내는 하루의 이러한 측면들을 적절히 잡아내지 못한다. 크리스틴의 경험은 여러 형태의 '인지노동'이다. 그녀가 하는 육체노동은 아주 쉽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끊임없이 생각하기로 진행되는 인지노동은 겉으로 전혀 보여지지 않는다. 이제 집안일을 행하고 생각하는 일의 조합으로 고려하는 가사노동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이해가 필요해진 것이다. 대체로 눈의 띄지 않는 불평등이 더 눈에 잘 보이는 불평등을 지탱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면, 이 책을 통한 논의는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이다. 가사노동과 돌봄의 불평등에 대해 다루는 책은 많이 있어 왔지만, 이 책이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지만 가정을 굴리는 데 필수적인 머릿속 노동, 즉 ‘인지노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지적 가사노동이란 모든 가족구성원의 욕구 충족을 보장하려는 일단의 정신적 과정이다. 이는 시간으로는 측정되지 않는, 가시화되지 않은 가사노동이기에 평등을 지향하는 관계 속에서도 불균등하게 분배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동안 막연하게 머릿속으로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말끔하게 해소되는 기분도 들었다. 머릿속 노동이라니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개념인데, 그 동안 내가 해온 많은 것들이 인지노동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시간 사용과 정신 사용을 함께 고려해 가사노동을 더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고 있다. 저자는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지노동의 평등한 분배를 위한 거시적인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직장에 나와 있는 낮 시간에도 집안일을 더 많이 생각하는 수많은 여성들과 가사노동과 육아 수행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온 여성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책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머릿속 노동의 불균형을 인식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될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