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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벌 에버렛(Percival Everett)은 미국 문학계에서 도발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성찰을 견지해 온 작가이자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영문학 교수이다. 그는 장편소설 『제임스(James)』를 통해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석권 하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고, 2021년 출간된 『더 트리스(The Trees)』를 통해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세계적인 문학적 반향을 일으켰다. 작품의 공간적 배경인 미시시피주 머니(Money)는 1955년 백인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는 이유로 14세 흑인 소년 에밋 틸(Emmett Till)이 참혹하게 고문당하고 살해된 역사적 비극의 현장이다. 소설은 에밋 틸 살해범의 후손인 백인 남성들이 목에 가시철사가 감기고 고환이 잘린 채 살해되는 기이한 연쇄살인으로 출발한다. 훼손된 백인 사체 곁에는 틸을 연상시키는 흑인 남성의 시신이 가해자의 잘린 고환을 쥔 채 발견되지만, 이 흑인 사체는 영안실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다음 살인 현장에 다시 출몰하기를 반복한다. 미시시피주 수사국(MBI) 소속 흑인 수사관 짐 데이비스와 에드 모건은 백인 경찰 조직의 적대감과 무능을 뚫고 사건의 실체에 접근한다. 수사의 중심에는 100년 넘게 미 전역의 흑인 학살 희생자 기록을 축적해 온 105세 노인 마마 Z와, 이 방대한 학살의 명단을 연필로 한 자씩 필사해 나가는 데이먼 스러프의 아카이브가 자리한다. . 소설의 표제인 '더 트리스(The Trees)'는 학살의 도구로 사용된 남부의 나무들과 더불어, 세대를 거쳐 혐오와 차별의 특권을 대물림해 온 백인 가문들의 '가계도(Family Tree)'를 동시에 지시하는 다층적 은유이다. 에버렛이 조명하는 백인우월주의의 본질은 개별 구성원의 편협한 악의에 머물지 않는다. 에밋 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허위 진술의 당사자 그래니 C(실제 인물 캐럴린 브라이언트)의 가족들이 보여주듯, 백인 사회는 과거의 반인륜적 범죄를 "이미 지나간 흘러간 역사"로 치부하며 철저한 도덕적 면책을 시도한다. 이러한 역사적 불감증은 경찰 및 사법 권력과 결탁하여 오늘날에도 제도적 폭력으로 남아 있다. 공권력에 의한 비무장 흑인 살해 사건이 정당방위로 은폐되는 현실은 20세기 초의 린치가 21세기식 사법 행위로 형태만 바꾸어 지속되고 있음을 입증한다. 에버렛은 소설의 한 장 전체에 실제 린치 희생자 수백 명의 이름을 쉼 없이 열거함으로써, 백인우월주의가 은폐해 온 살인의 규모를 독자의 시각적 의식 속에 각인시키며 구조적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증언한다. 미국의 인종 갈등은 한국 사회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차별을 정당화하고 소수자를 타자화하는 내적 메커니즘을 추적하면 매우 구조적인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오랜 기간 유지해 온 단일민족 신화를 바탕으로 사회적 약자와 이주민을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해 왔다. 제조·농축산업 등 국가 기간산업의 저임금 노동을 지탱하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제도적 차별과, 난민 및 다문화 가정을 향한 온라인상의 노골적인 혐오 정서는 미국 남부의 인종적 타자화와 동일한 배제의 논리를 취한다. 더욱이 제주 4·3이나 5·18 민주화운동 등 국가폭력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두고 일부 정치 집단이 희생자를 왜곡·폄훼하는 양상은, 과거의 학살을 단순한 오락이나 잊힌 사건으로 취급하던 소설 속 백인 사회의 태도와 정확히 일치한다. 더 트리스』에서 데이먼 스러프가 희생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타자기로 기록해 나가는 행위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 망각에 저항하는 윤리적 실천이다. 과거의 폭력을 은폐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사유화한 사회는 언젠가 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에버렛이 보여주는 디스토피아적 복수극은 정당한 성찰과 법적 정의가 부재한 사회가 맞이할 파멸의 경고장이다. 한국 사회 역시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진입하는 전환기 속에서, 내재된 배타적 혈통주의와 타자 혐오를 청산하고 역사적 상흔에 대한 공적 책무를 다할 때 비로소 증오와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