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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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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라 라슨의 『패싱』은 책을 읽는 순간보다 책을 덮은 뒤 더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패싱’이라는 개념,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을 숨기고 다른 인종으로 살아가는 이야기에 관심이 갔지만, 읽고 난 뒤 마음에 남은 것은 단순히 인종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 작품은 결국 한 사람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규정되고, 타인의 시선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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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라 라슨의 『패싱』은 책을 읽는 순간보다 책을 덮은 뒤 더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패싱’이라는 개념,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을 숨기고 다른 인종으로 살아가는 이야기에 관심이 갔지만, 읽고 난 뒤 마음에 남은 것은 단순히 인종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 작품은 결국 한 사람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규정되고, 타인의 시선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1920년대 뉴욕 할렘 르네상스 시대를 배경으로 한 『패싱』은 어린 시절 친구였던 아이린과 클레어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흑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피부색이 밝아 백인 사회에 섞여 살아갈 수 있었던 두 사람. 그중 클레어는 자신의 배경을 숨긴 채 백인 남성과 결혼하고, 백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반면 아이린은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며 안정적인 가정과 사회적 위치를 지키며 살아간다.


겉으로 보면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어느 한쪽만 자유롭거나 행복하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클레어는 원하는 삶을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춰야 하는 불안 속에 살아간다. 아이린 역시 안정된 삶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과 역할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억누르고 있다. 두 인물 모두 자신이 선택한 삶 안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특히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인물들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클레어의 선택은 위험하고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차별적인 사회 속에서 더 나은 삶을 얻고자 했던 욕망과 절박함이 담겨 있다. 반대로 아이린은 올바른 선택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녀 역시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클레어가 가진 자유와 대담함을 부러워하고 두려워한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우정인지 경쟁인지, 동경인지 질투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게 흘러간다.


넬라 라슨의 섬세한 문체도 이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격렬한 사건이나 직접적인 감정 표현보다 인물들의 작은 행동과 대화 속에 숨겨진 감정을 보여준다. 아무렇지 않은 듯 이어지는 말 한마디 안에도 불안과 긴장, 질투와 욕망이 담겨 있고, 독자는 그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따라가며 인물들의 내면을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패싱』은 큰 사건보다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이 책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이유는 시대를 넘어 공감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얼마나 타인의 시선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지, 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 안에서 얼마나 많은 모습을 숨기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꼭 인종이나 정체성의 문제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보여지는 나’와 ‘진짜 나’ 사이에서 고민하며 살아간다.


『패싱』은 읽는 내내 편안한 감정을 주는 책은 아니었다. 오히려 불편하고 답답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작품이 가진 힘이라고 느꼈다. 인물들의 선택을 쉽게 이해하거나 비난할 수 없게 만들면서, 결국 독자 자신의 시선과 가치관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100년 전에 쓰인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지금도 선명한 메시지를 가진 소설. 『패싱』은 정체성과 차별, 욕망과 선택이라는 깊은 주제를 짧은 이야기 안에 담아낸 작품이었다. 읽고 난 뒤 명확한 답보다 더 많은 생각을 남기는 책, 그리고 사람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까지 돌아보게 만드는 오래 기억에 남을 고전이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s*****5 2026.06.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