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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힘든 순간, 수도원에서 내면의 목소리를 찾게 된 여정을 담은 책!"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힘든 순간을 경험한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난을 마주한다. 어떤 이들은 그대로 좌절하거나 실패의 경험으로 남겨 두고, 또 어떤 이들은 여행이나 취미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극복하거나 새로운 기회로 바꿔 나간다. 저자는 침묵으로 둘러 싸인 수도원을 택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이 덕분에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삶의 본질을 깨닫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책은 저자가 32년 동안 뉴 카말돌리 수도원을 오가며 느끼고 경험한 기록을 담은 책으로, 저자 스스로 가장 살아있는 경험을 한 이야기라고 칭하고 있다. 그가 이곳에서 가장 힘든 순간을 어떤 식으로 보내며 치유해 나갔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통해 내 안에 숨겨진 가장 깊은 목소리를 들어보면 어떨까 한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긴 시간 수도원의 침묵 속에서 내면을 들여다본 저자의 깨달음을 전하고 있는 에세이로, 우리에게 삶에 대한 통찰을 전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상실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방법, 죽음 앞에서 살아갈 방법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러 통찰 중에 "만약 아직 괜찮지 않다면, 그건 아직 끝이 아니라는 뜻이겠지요."라는 문장이 깊이 와닿았는데, 덕분에 지금의 어려움이 끝이 아니라는 위로와 더불어,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을 꿈꿀 수 있었다. 만약 어려움에 처해 괴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면, 저자와 같이 나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며 나만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어떨까? 그러다 보면, 내가 진짜 필요로 하는 것들을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 인상 깊게 다가온 문장들 ===== ----- 왜 나는 이 카톨릭 수도원의 침묵 속에서 이토록 환희를 느끼는 걸까? 아마도 이곳에는 환희를 가로막을 '나'라는 존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18페이지 中 ----- 보통의 우리들은 어떤 순간을 맞이했을 때 오롯이 그 순간의 감정에 빠져들 수 없다. 또 다른 자아, 또 다른 감정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불안한 나, 두려운 나, 걱정스러운 나, 슬픈 나 등등. 때문에 기뻐해야 할 상황에서조차 우리는 그것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 하지만 저자는 수도원에서만큼은 내면 안팎으로 고요한 침묵을 누릴 수 있었고, 덕분에 환희가 느껴지는 순간, 아무런 방해 없이 그 자체로 누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런 감정을 완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이미 축복 아니었을까. ----- 이곳에서 세상은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올바른 균형을 되찾을 뿐이다. 무언가를 찾아내거나 얻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이 모두 떨어져 나가게 두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모든 것이 가능성으로 살아 숨 쉬는 이곳에 죽어 있는 시간이란 없다. 41페이지 中 ----- 내면의 자아를 찾아 보낸 침묵의 시간들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덕분에 저자는 본인에게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되면서, 이 수도원에서만큼은 늘 살아있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 "한가로움을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평온함을 유지하는 법을요. 그 여백의 시간 속에서 비로소 무언가 당신에게 일어나기 시작하니까요. 하지만 고작 30분 정도 한가롭게 있어서는 안 됩니다. 30분이 대여섯 번쯤 지나야 내면에서 무언가 꿈틀 거리기 시작하거든요. 그러고 나서도 앞으로 세 시간은 더 남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하지요." 110~111페이지 中 -----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바로 '여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보통 한가로움을 즐기는 법을 배우지 못해 어정쩡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은데, 앞으로는 여백의 시간을 즐기는 법을 배워보면 어떨까 한다. 그 시간들이 쌓이다 보면 분명 우리 안에서 무언가 일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이정표가 되어 줄 것이다. ----- 모든 희망을 내려놓는 일이란 정말 힘든 일이겠지요. 하지만 수도자의 삶이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 말이에요. 그러자 그가 말했다. "맞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무엇보다 죽음을 위한 훈련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믿습니다. 이것은 삶을 위한 훈련입니다.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과정이지요." 132~133페이지 中 ----- '죽음'을 죽음으로만 여겨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언젠가 맞이할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살아갈 날들을 대비하고 준비한다는 개념이다. 그러니 죽음으로부터 회피하거나 도망치려 하기보다, 정면으로 맞닥뜨려 삶을 위한 훈련을 진행한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 "결국 모든 것은 다 괜찮아질 겁니다." 시프리안은 낭떠러지 반대 방향으로 핸들을 꺾으며 말했다. "전 그렇게 굳게 믿어요. 만약 아직 괜찮지 않다면, 그건 아직 끝이 아니라는 뜻이겠지요." 274~275페이지 中 ----- 만약 지금 내가 괜찮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건 아직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로,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의 끝은 언제나 찬란할 터이니 지레 짐작하여 포기하지 말자. ===== 마무리 ===== 저자에게 있어 가장 힘든 순간 수도원을 택한 것은 어쩌면 신의 한 수가 아니었을까. 불타버린 집, 아버지의 죽음, 미래에 대한 불안 등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그는 수도원에서 머물며 마음의 안식을 찾게 된다. 덕분에 쉼 없이 내면의 이야기를 글로 옮길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안정감도 찾게 된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하나의 감정을 단조롭게, 온전히 느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진정한 쉼도 누릴 수 있게 된다. 이는 복잡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진정으로 필요한 삶이자 자세가 아닐까 한다. 나도 언젠가는 저자처럼 마음의 안식을 주는 나만의 장소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며. 마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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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결국다괜찮아질겁니다 저자에게 일어난 삶의 불확실성, 예를들면 갑작스러운 가정의 화재와 그로인한 아버지의 죽음, 또 딸의 켄서진단까지 이러한 3중고의 과정들은 일상속에 인간의 능력과 한계를 벗어나 삶속에 예고 없이 찾아오는 비극의 한가온데 있는일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독자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만약 독자누구라도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범인들에게 거대한 슬픔이 밀려올때 마음을 치유하고 삶의 본질을 찾기 위해서 수도원같은 곳이라면 정신적 위로와 위안이 될수있을까, 독실한 신실함을 떠나 공간적의미가 정신영역에 도움을 받읃수 있는가를 본문을 접하는 나 자신에게 의문을 던지게 된다. 그러한 물리적 시련들을통해 오늘 독자입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내내 고민하며 책장을 넘기게 된다. 갑작스럽게 연거푸 밀려오는 상처와 상실감 속에서 누구라도 저자가 선택한 수도원의 입교 과정을통해 우리가 목격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까지 생각해보는 좋은 시간이 됐다. 저자는 각각의 고유한 영역에서 겪게되는 아픔들을 온전히 수용하고 유연성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우리들까지 어떻게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일어날 힘을 얻게 되는지 이유에 대하여 심연깊은 조바심과 갈등들을 그대로 보게했다. 무엇보다도 베네딕트 수도원이라는 특정이 흥미로운 지점은 다행스럽게도 비신자라는 저자나 나나 보편적인 수준에서 일반인 누구라도 이해할법한 믿음이라는 존재론적 희망은 상당히 고무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더더욱 배울점은 걱정하고 염려하며 안달복달 하는대신 조용히 현실을 직시하고 미런하나마 믿음으로 내면과 외면을 응시하는 성숙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내면을 단단히 하며 긍정마인드로 차분히 일상을 컨트럴하고 자신을 핸들링하고 있다. 그리고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휼룽하게 보게 됐다. 결과적으로 성직자에게는 불안 욕망 그리고 슬픔과 남탓하고싶은 스트레스가 없을까? 다만 성숙하게 대면하고 지켜볼줄 안다는 차이라고 생각한다. 성숙함은 고등한 동물들의 고유한 덕목이다. 저자는 차라리 소란스럽게 우유부단하게 호들갑떨며 엉망이 되기보다 비트겐슈타인의 #말할수없는것은침묵되어야한다~ #말할수없는비극과상실감은침묵하겠다~라는 수준높은 이성적 자아를 나에게 목격하게 해줬다. #성숙한도덕적인간의믿음이나가치관은신같았다 #삶의불확실성은통체하는것이아니라수용하는것이다 #좋은책이다. 결국다 괜찮아질 겁니다~중에서 저자에게 #산다는것은 예고없이 소중한것 앗아가고 감당하기 힘든 비극을 선물해 상처로 소란으로 & 불안으로 힘들고 #어려운시간들에 영항을 받는다고 #저자는진단한다 그리고 살기위해 베네딕도회 수도원으로 향했다. 그곳에 화려한 위로나 명쾌한 삶의 해답은 없었다. 이러한 납득하기 결국다 괜찮아질 겁니다~중에서 저자에게 #산다는것은 소중한것 앗아가고 감당힘든 #비극 선물하는것 #상처 #소란 #불안 #고통에 영항받을때 납득과 살기위해 #베네딕도회수도원으로향했다.
결국다 괜찮아질 겁니다 #강력추천 #이해인수녀 #나태주시인 #달라이라마 #알랭드보통 #PicoIyer 저 @seosawon_books @seosawonmk #서사원 출판사의지원으로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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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alingEssay 그는 과연 감당하기 힘든 시련 앞에서 어떻게 삶의 끝에서 그가 향한 곳은 세상과 단절된 깊은 큰 상실과 고통을 이야기할 때면 늘 마음이 겸허해진다. 그 고통은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찾아오는 아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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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단으로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코 아이어의 신작 삶의 벼랑 끝에서 침묵을 선택한 어느 은둔자의 이야기 <결국 다 괜찮아 질 겁니다>
저자 피코 아이어 1957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나 하버드대학교에서 학위를 취득후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Video Night in Kathmandu>, <Lady and the Monk>, <The Global Soul>, <The Open Road> 그리고 한국에 소개된 <여행하지 않을 자유>등이 있다. 1922년 이후 베네딕도회 뉴 카말돌리 수도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그 외에는 대부분 일본의 교외에 머물며 침묵과 사유의 삶을 이어 가고 있다고 한다.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는 글쓴이 피코 아이어가 갑작스러운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고, 사랑하는 아버지를 떠나보내기도 하고, 사랑하는 딸은 암 진단을 받았다. 삶이 그에게서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갔을 때 그는 '뉴 카말돌리 수도원'으로 들어가 치유를 하게 된다. 32년동안 수도원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끈임없이 변화하는 삶을 살고 있다. 변화가 없으면 세상은 도태되었다고 생각하며, 날마다 새로운 것들이 생겨 넘처나기까지 한다. 그로인해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슬픈 일보다 행복하고 기쁜 일들이 더 많았다면 어른이 되면서 기쁜 일보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다는 것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삶을 이어나가는 한편, 또 어떤 사람들은 회피하거나 늪에 빠진다. 피코 아이어는 자신의 삶의 고난과 역경을 어떻게 해소하게 되었는지 '뉴 카말돌리 수도원'에서 생활하며 노트에 적은 기록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p.23 이 얼마나 단순하고도 명쾌한 변화인가.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했다. 이제는 세상이 내 마음의 중심에 자리 잡은 느낌이었다. 화재로 집을 잃고 남의 집 바닥에서 잠을 청하다, 친구 드와이트의 추천해준 집으로 향한다. 집을 구한 후 햇살을 받으며 고요한 길을 거닐면서 드는 생각을 보니 아! 하고 느껴졌다. 보통 내가 세상의 주인이다 라는 생각을 하지만 화재로 집을 잃었을 고, 혼자 살 작은 방을 얻게 되었을 때 세상이 내 마음의 중심에 자리를 잡은 느낌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보통 세상이 나를 버렸다,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 등등으로 생각할 텐데,, 이 사람의 생각을 읽으니 힘든 상황 속에서도 긍정을 찾고 감사함을 느끼는 태도를 지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29 수도원의 고요는 깊은 숲이나 산 정상의 그것과는 다르다. 이곳의 고요는 살아 움직이며 진동하고, 손에 잡힐 듯 밀도가 높다. 그리고 그 고요가 지닌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을 한층 더 깊고 넓게 확장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 모두의 소유라는 점에 있다. p.144 어떻게 하면 불길 속에서도 평온을 유지할 수 있을까? 대체 어떤 믿음이 있어야 포식자들이 기웃거리는 어둠을 그토록 깊이 신뢰하며 밤마다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걸까?
p.219 "바로 그거예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돕는 것. 하지만 긍정적인 방식으로 말이죠.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수 있도록 그 '없음'의 상태를 만들어주는 것. 우리가 다시 채워질 수 있도록 비어 있게 해주는 것 말입니다." 저자 피코 아이어는 수도원에서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되찾았다. 이 책을 읽으니 각자의 마음과 맞는 곳을 찾는다면 분명 삶을 살아가는데 힘을 내고 다 괜찮아질 것이라 믿는다. 이 책을 통해 수도원처럼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수 있는 상태로 만들 수 있는 곳이 떠올랐다!
과연 현대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고 불릴만한 저자의 글이었다. 인생의 수많은 파도를 겪은 피코 아이어가 침묵을 지키고 온전하게 괜찬아질 수 있는 시간의 기록은 모두에게 힘이 분명이 될꺼라 믿는다. 피코 아이어의 책을 좋아하는 독자, 인생의 파도 속에 갇힌 독자 등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결국다괜찮아질겁니다 #피코아이어 #서사원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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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데믹을 지나며 나의 삶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계획했던 일들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고, 오랜 시간 집에 머무르면서 처음으로 멈춰 있는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 고요는 내 삶을 천천히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동안 나는 끊임없이 앞으로만 달려가느라 정작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는 묻지 않았다.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결핍을 이야기했고, 원하는 것을 더 얻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통해 내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배우게 되었다. 비로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살피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삶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흔들릴 때마다 수도원으로 향한다. 침묵 속에서 그는 자신과 마주하는 고요의 시간을 갖는다. 그가 오랜 시간 수도원을 찾은 이유는 언제나 다시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였다. 고요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욕망을 조금 내려놓고, 세상을 조금 더 넓게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 그렇게 그는 수많은 상실 앞에서도 살아가는 법을 익혀 간다. 공간이 사람을 바꾸는 힘에 대해 떠올렸다. 숲에서는 자연스럽게 걸음이 느려지고, 성당에서는 목소리가 낮아지며, 도서관에서는 조용히 책장을 넘긴다. 공간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령하지 않지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일깨워 준다. 수도원 역시 저자에게는 그런 공간이 아니었을까. 그곳의 침묵은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더 또렷하게 들을 수 있도록 그를 도왔다. 생각해 보면 누구에게나 각자의 수도원이 필요하다. 반드시 종교적인 장소일 필요는 없다. 새벽의 공원일 수도 있고, 혼자 걷는 산책길일 수도 있으며, 책을 읽는 서점 한구석이나 방 한편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의도적으로 고요한 시간을 갖는 일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소란 속에서 살아가느라 정작 자신의 목소리는 듣지 못한 채 하루를 끝내곤 한다. 어쩌면 고요는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진실된 시간이 아닐까. 저자가 수도원에서 배운 것은 특별한 수행법이 아니라 침묵이 가르쳐 주는 삶의 방식이었다. 침묵 속에서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들.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세상과 함께 살아갈 줄 아는 태도. 더 많이 소유하기보다 기꺼이 나눌 줄 아는 마음. 상실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하고, 불안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용기 말이다. 누구에게나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고요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것일 것이다. 삶은 결국 얼마나 멀리 달려왔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자주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와 다시 세상으로 걸어 나올 수 있었는지에 의해 달라진다. #결국다괜찮아질겁니다 #에세이 #인문에세이 #북스타그램 #서평 *도서증정 @seosawon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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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라고들 한다. 하지만 때로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이 될 때면 내가 짊어진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를 쓴 피코 아이어 역시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연이어 닥치며 막막함을 마주했다고 한다. 산불로 터전을 잃고, 아버지의 죽음과 딸의 암 진단이라는 상실 앞에서 오래된 수도원으로 발길을 향한다. 도망치듯 떠나간 수도원에서 그는 침묵이 현실 도피가 아니라 상실을 마주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는 시간이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고, 세상의 소음에서 떨어져 자신의 내면을 바라본 특별한 경험을 이 책에 담았다. 보통 수도원이라 하면 수행을 전제로 하는 특정 종교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책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죽음·질병·이별·고독과 같은 고통 앞에, 외부의 소란에서 물러나 자신의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 스스로를 마주한 경험에 초점을 맞춘다. 삶의 가혹함을 받아들인 뒤 다시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작가, 그리고 수도원에서 만난 이들의 성장을 보며 멈추는 용기와 내면의 응시, 그리고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출발점은 작가가 소란한 세상을 뒤로하고 침묵 속으로 숨어드는 과정을 다룬다. 여기서의 숨어듦은 도망치는 회피가 아니라, 너무 빨리 흘러가는 삶에서 잠시 멈추는 선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보통 어떤 어려움을 마주할 때면 '빨리 벗어나고 회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기 마련인데, 잠시 멈추는 시도가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작가의 메시지는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어서는 고요 속에서 얻은 힘으로 매일을 살아내는 법을 다룬다. 침묵을 입을 닫는 행위로 규정짓지 않고, 나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의식적으로 고요를 선택함으로써 현실을 견딜 힘을 얻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힘들 때 멈추는 것에 그치지 않고, 멈춘 뒤에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 혹은 무엇을 아직 붙잡고 있는지 어떤 두려움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지 나를 살피고 들여다보는 탐구가 이어지는데 그렇기에 작가는 고요한 수도원 생활이지만 마음속에서는 그 어떤 장소보다 시끄럽고 혼란한 스스로를 마주하게 되었다고도 했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 자체가 평온함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 고요의 시간 속에서 시끄러운 현실에서 미처 들을 생각을 하지 못했던 내 마음에 집중하는 시간이 된다는 점이 나에게도 꼭 필요한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 때마다 수도원을 찾았던 그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그곳에서의 시간들은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을 향한 여정임을 깨닫게 되었다. 겉으로 드러난 사건보다 그 사건이 남긴 빈자리와 기억을 들여다보고, 상실을 외면하지 않고 삶이 남긴 가혹함을 온전히 마주하는 시도 끝에 비로소 회복의 가능성이 생긴다. 이 회복의 가능성은 희망을 불러일으키는데, 여기서 희망은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라 상실을 통과한 뒤에도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태도로, 어떻게 상처를 마주하느냐가 내 멈춰진 삶을 다시 숨 쉴 수 있게 하는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상실과 고통 앞에 우리는 비어진 그 현실을 부족함이나 결핍으로 생각해 다른 무언가로 계속 채우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마음의 빈자리를 인정할 때 비로소 주변의 경이로움과 감각이 되살아나며 상실을 안고도 우리는 다시 사랑하고, 기다리고 또 하루를 살아낼 수 있다는 메시지가 마음속에 오랜 울림으로 남을 것 같다. 나 역시 여러 가지 아픔과 상실로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의미 없이 매일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다른 이를 탓하거나 아픔 속에서 계속 발버둥 치지 않고, 잠시 멈춰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며 침묵과 고요로 다스리는 시간을 가졌다면 조금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현실에서 멈춰 찾아간 수도원에서의 시간은 상실을 안고 살아갈 수 있는 태도를 알려주었다. 침묵이 지닌 아름다움과 거룩함. 꼭 이것이 수도원이라는 공간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삶 곳곳에서 가능하다는 작가의 다정한 위로가 마음에 남았다. 무거운 현실에서 그저 벗어나는 은둔으로 끝나지 않고, 침묵 속에서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는 법을 스스로 깨친 그의 문장들이 같은 아픔을 겪은 이들에게 상실을 극복하는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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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네이버 카페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 받은 후 솔직하게 작성한 것입니다.
32년간 침묵이 가득한 수도원을 오가며 쓴 이 책을 통해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보다 단단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의미있게 읽어 보았습니다.
그렇게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이 함께 할때마다 저자는 캘리포니아 빅서 끝자락에 있는 오래된 베네딕도회 수도원을 찾았습니다. 세상에서 잠시 비켜 선 그곳에서 그는 침묵을 통해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고 그 속에서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번쯤 고독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고독을 단순히 외로움이나 고통으로 여기면 안됩니다. 외로움은 관계의 결핍에서 발생하는 감정이지만, 고독은 스스로 선택하는 충전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고독을 아픔, 불행으로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저자처럼 삶의 의미는 고독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혼자 있을 때, 자신에게서 도망칠 수 없게 됩니다. 그 순간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인 삶의 의미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굳이 우리가 직접 체험하지 않아도, 이 책처럼 삶의 본질적 의미를 전해주는 글을 읽으면서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미리 정해진 하나의 일률적인 목적지나 방향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자신만의 그 방향과 속도,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을 위해 우리는 고독 속 사유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고독은 공허나 고통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정해 준 길이 없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 길을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그러면서도 우리 인간은 완전한 고독 속에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는 관계를 통해 성장하고 사랑을 통해 위로받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독과 관계의 균형을 잘 맞춰 나가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유는 행복을 나누기 위해서이고, 혼자 있는 이유는 그 삶의 근원인 자신을 발견하고 행복이 무엇인지 잊지 않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 내부의 헛된 욕망과 소음을 털어내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과 다시 연결되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홀로 남겨진 그 고요한 시간 속에서야 비로소 저자는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해답으려 합니다. 물론 수도원 속에서도 삶의 비극과 고통들을 한 번에 해결해 주는 명쾌한 해답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자는 고독 속에서 역설적인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삶의 의미는 모든 문제가 해결된 깔끔한 무결점의 결말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극과 고통, 상실의 한복판에서도 여전히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그 태도 자체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책의 문체는 담백합니다. 누구나 겪었을 나름의 고난과 상실의 순간을 떠올리며 따라가다보면 그 몰입감과 생생함은 탁월합니다. 특히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가벼운 위로나 무턱대고 나열하는 긍정의 메시지로 가득찬 책이 아니었습니다. 저자 자신의 담백한 고백 속에서 고스란히 전해지는 차분한 시선이 우리에게도 생각의 지점을 선물합니다. 책을 읽는 동안 세상의 온갖 소음에 짓눌러왔던 무의미했던 생각들은 잠시 내려놓고, 쉽게 바라보지 못했던 우리 안의 고요 속 우리 자신을 마주하게 하는 소중한 시간을 선사할 것입니다. 자신과 자신의 본질 자체에 더 귀를 귀울이고 의미를 찾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결국다괜찮아질겁니다 #삶의벼랑끝에서침묵을택한어느은둔자의이야기 #피코아이어 #최지숙 #서사원 #북유럽 #서평이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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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했습니다. 삶의 벼랑 끝에서 침묵을 택한 어느 은둔자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사는게 힘들고 버거워 숨조차 쉴 수 없을 때 수도원의 침묵 속으로 숨어들었던 저자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아버지의 죽움, 과거의 상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도망친 곳에서 깨달은 것들을 담담하게 들려주어서 좋았습니다. 저자는 집이 갑작스러운 산불로 잿더미가 되었고, 사랑하는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딸은 암 진단을 받았고, 삶은 그에게서 예고도 없이 가장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앗아갔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비극이 생겼을 때마다 저자는 캘리포니아 빅서 끝자락에 자리한 오래된 베네딕도회 수도원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화려한 위로나 명쾌한 삶의 해답은 없었지만 세상의 소음이 완벽히 차단된 그 침묵의 공간은, 오롯이 자신의 내면을 응시할 수 있는 ‘비밀의 방’이 되어주었다고 합니다. 3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수도원을 오가며 써 내려간 이 책은 단순한 수도원 체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불과 죽음, 상실과 불안, 질병과 이별이라는 가혹한 터널을 통과하며 저자가 마침내 깨달은 삶의 본질에 관한 기록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독자들에게 가장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상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가’라는 인생의 가장 보편적인 질문을 던져주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이유로 지금 힘이 드는 독자들에게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결국 다 괜찮아질 것’이라는 용기와 단단한 위로를 선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힘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해드립니다.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 #컬처블룸리뷰단 #최지숙 #서사원 #피코 아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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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할 여지가 없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 어쩌면 우리 중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믿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불확실성 앞에서 나는 언제나 확실한 것만을 선택하려 했다. 실패할 가능성이 적은 길을 고르고,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우며 살아왔다. 그것은 신중함이라 믿었지만, 어쩌면 불확실성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나만의 예방책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국다괜찮아질겁니다 #피코아이어 #최지숙_옮김 #서사원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는 피코 아이어가 32년 동안 수도원을 오가며 써 내려간 삶의 기록이다. 집은 산불로 잿더미가 되었고, 사랑하는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으며, 딸은 암 진단을 받았다. 삶이 가장 가혹한 얼굴을 드러낼 때마다 그는 수도원을 찾았다. 하지만 그곳은 위로나 해답을 얻는 장소가 아니었다. 오히려 침묵 속에서 외면해 왔던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공간이었다. "때로는 이곳에서의 삶이 더 격렬할 수도 있어요. 모든 갈등이 내면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이죠." 이 책이 말하는 침묵은 세상을 등지는 일이 아니다. "이곳에서 세상은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올바른 균형을 되찾을 뿐이다."라는 문장처럼, 불필요한 것들을 내려놓고 삶의 본질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다. 수도원은 세상을 떠나는 곳이 아니라, 다시 세상으로 돌아갈 힘을 기르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믿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종교가 없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단어는 늘 나와 조금 거리가 있는 언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은 믿음을 신에게 향하는 마음이 아니라, 흔들리는 삶 속에서도 끝내 나를 살아가게 하는 하나의 확신으로 다시 바라보게 했다. 그 문장을 읽고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의 믿음은 무엇일까.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걸까. 사실 요즘 아침에 눈을 뜰 때면 문득 '왜 살지?'라는 질문이 떠오르곤 했다. 이 책은 그 질문에 섣불리 답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그 질문을 품고 살아가야한다는 걸 깨닫는다. 가끔 도심 속 사찰을 찾는다. 특별한 기도를 하기 위해서도, 답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조용히 걷고 잠시 머물다 돌아오곤 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그 시간을 왜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그곳에서 찾고 있었던 것은 대답이 아니라, 세상의 소음을 잠시 내려놓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침묵의 시간이었음을. 돌아오는 주말에도 나는 아마 사찰을 찾을 것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잠시 비워두기 위해. 흔들리는 삶 속에서도 나를 살아가게 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조용히 귀 기울여 보기 위해. 📖 이 책은 '결국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쉽게 위로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 조용히, 그러나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질문 하나를 건넨다. '당신을 끝내 살아가게 하는 믿음은 무엇인가.' 삶의 소음을 잠시 내려놓고, 나를 끝내 살아가게 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묻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와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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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저절로 괜찮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아플 만큼 아프고 잃을 만큼 잃어야 조금 괜찮아진다. 괜찮아진다는 것은 상처가 아물었다거나 나았다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 상처와 함께 사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 이미 잘 알고 있다. 우리 세상이 얼마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지 말이다. 우리의 타고난 본능은 우리로 하여금 혼돈 속에서 확실한 답을 찾아 헤매도록 만든다. 갖은 애를 써서 온갖 모범 답안들을 축적한다. 그러나 그 답안들은 내 삶에서 적용되지 않는다. 어떻게 이토록 온갖 실패를 반복했는데도, 이 실패 속에서 하나도 배우지 못하는 것일까. 언제부턴가 인생의 구루들이 하는 말이 전혀 와닿지 않게 되었다. 나르시시즘으로 가득 찬 감정 자본주의의 시대가 우리에게 명령을 내린다. 이 명령들은 다정한 목소리로 나에게 속삭인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세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세요." "스스로를 사랑하세요" 나는 이 목소리들을 전혀 반응하지 못한다. 대신 물러나는 법을, 침묵하는 법을, 내세우지 않는 법을 이야기하는 책들을 찾아서 읽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가 읽고 싶었다. 왜냐면 이 책의 부제가 "삶의 벼랑 끝내서 침묵을 택한 어느 은둔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왜 나는 이 가톨릭 수도원의 침묵 속에서 이토록 환희를 느끼는 것일까? 아마도 이곳에서는 환희를 가로막을 '나'라는 존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 마치 카메라 렌즈 뚜껑이 벗겨지는 것처럼 자아가 사라지는 순간 세상은 그 거칠고 즉각적인 모습 그대로 밀려든다. " 책의 지은이 피코 아이어는 영국 옥스퍼드 출신의 작가로 예기치 않게 삶의 벼랑에 내몰릴 때마다 가톨릭 수도원으로 향했다. 그는 1957년생으로 지금으로부터 33년 전, 처음 '침묵'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화재로 집을 잃고 남의 집 바닥에서 자고 있었는데 그의 모습을 본 친구가 하룻밤에 30달러면 바다가 보이는 조망에, 공용 주방도 있고 점심도 가져다 먹을 수 있고, 샤워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알려준다. 그곳은 바로 '수도원'이었다. 그는 살던 집이 산불로 잿더미가 되었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딸이 암 진단을 받았을 때처럼 이전의 삶이 찢겨 나가는 순간마다 그는 침묵의 공간으로 향했다. " 나는 언덕 위에 작은 오두막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삶과 죽음이라는 엄연한 현실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 곳. 언제라도 쓸려나갈 것 같고, 다시 세상으로부터 단절될 것 같은 곳. 하지만 수도원의 침묵 안에는 우리의 짧은 삶과 희망을 넘어 지속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 그곳에서 유한한 자아가 사라지는 경험 안에도 존재했다. 그곳은 결코 상실의 세계가 아니었다. 오히려 해방의 세계이며, 우리가 고요를 망가뜨리는 방식들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가 처음 수도원에서 깨달은 것은 그간 삶 속에서 매 순간을 너무 애를 쓰며 살았다는 것이다. 밀도 높은 침묵이 가득한 수도원에서 그는 스스로에게 필요한 올바른 균형은 불필요한 것들이 떨어져 나가게 두어야 되찾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수도원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을 자세하고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는 법을 배워나간다. 세상을 본인의 관점에 가둔 채 살아왔던 과거의 삶에서 멀어진다. 본인이 겪은 고통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준 수많은 고통들을 바라보게 된다. 침묵의 순간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이자 그는 변화한다. 그는 변화의 양상은 일일이 꼽기 힘들 만큼 다양하다고 말한다. 그에게 이제 기쁨은 쾌락의 반대말이며, 자유는 한계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생겨난다. 길 위에서 헐떡이며 내달리던 그 자아가 이제 더 이상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통제도 치유도 아니다. 우리는 우주의 중심도 아니고 심지어 각자의 삶의 주인공도 아니다. 이 세상은 애초부터 무수히 많은 것들이 복잡하고 촘촘하게 얽혀 만들어졌고, 그것이 돌아가는 이치는 인간의 힘으로 밝혀낼 수 없다. 우리의 모든 고통은 결코 설명되는 법이 없고 우리의 슬픔은 없어지지 않는다. 대신 한없이 연약한 존재인 우리는 침묵과 고요 속으로 도피하여 웅크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회복탄력성'이 아니다. 상처받고도 숨 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